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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에 따른 공정한 배분을 꿈꾸는 현대 사회에서 불평등의 존재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기에 타인의 가난을 외면하는 것은 우리에게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영역에서 어떠한 불평등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조사조차 행해지고 있지 않은 것은 또 다른 문제라 하겠다. 왜냐하면 이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조감도를 그리는 것조차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건강에 있어서의 불평등 문제는 눈에 훤히 보인다. 부유할수록 건강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이제 모두의 상식이 되어버렸다. 안타깝게도 상식은 상식의 영역에 그칠 뿐 이의 해결을 위한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이 한국 사회의 건강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한 초석이 되어주길 바라는 건 너무 큰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껏 행해지지 않았던 조사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여의도의 아침은 투쟁대오의 힘찬 함성으로 가득하다.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정 문제는 최근 들어 더욱 심해졌다. 많은 이들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는 점이 부당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경제적인 영역에만 놓인 것이 아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스트레스로 인해 사람들은 담배와 술에 의존하게 된다. 이는 건강의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건강보험 제도가 존재하지만 개개인이 부담해야 되는 비용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소득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경우 건강이 악화되더라도 의료 서비스에의 접근이 불가능할 때가 많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조사에 의하면 경제적 수준에 따른 의료 이용량의 격차가 해가 갈수록 벌어져, 서울지역 국민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경우, 최상위 계층과 최하위 계층의 총진료비가 2001년에는 최상위 계층이 최하위 계층의 1.53배였으나, 2004년에는 이 격차가 1.72배 수준으로 커졌다고 한다. 비정규직의 대다수가 여성임을 감안할 때,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고된 장시간 노동이 저체중아 출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부유한 계층에서도 저체중아를 출산하는 일은 없지 않다. 하지만 꾸준한 관리에 필요한 경제적 비용을 부유한 계층에서는 충분히 감당가능한 반면, 비정규직은 그렇지 못하다. 출생 시에는 비슷한 조건이이었을지라도 누군가는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반면, 다른 누구는 평생 짊어져야 할 장애를 지니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시장주의자들은 사회의 다른 불평등과 마찬가지로 건강불평등도 개개인의 책임이라고 이야기한다. 미국의 경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험 제도가 아직도 마련되고 있지 못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건강불평등을 사회가 인식하고 이에 대해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지극히 정치적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나날이 미국적인 경향을 지지하는 정도가 높아지고 있다. 경제 부흥을 제1 의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차기 정부를 향해 건강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위해 비정규직 완전 철폐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로 비추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전반적으로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은 세계적 추세를 고려할 때 NHS(National Health Service)에 기본한 영국의 평등한 의료의 경우 해체의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구체적인 목표 설정 하에 건강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빈곤 가구의 배율을 2020년까지 8%감소, 흡연율 격차 25% 감소, 과체중 비율 25%감소”를, 스웨덴의 경우 “지니계수를 0.25미만으로, 빈곤층 비율 4% 미만으로, 흡연인구 매년 1% 감소” 등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이러한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는 또 다른 고민을 필요로 하는 바이겠으나, 적어도 건강불평등의 문제가 사회의제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현 한국의 상황보다는 한 발 앞서 있음만은 분명하다.
차기 정권에서는 보건복지부와 여성부를 통합한 ‘보건복지여성부’라는 대형 부처가 출범할 것이라고 한다. 복지와 관련된 업무가 한 부서로 단일화된다는 점에서 이는 긍정적으로 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건강불평등 해결을 위한 아무런 정책도 가지고 있지 않던 기존의 상황 개선은 복지서비스의 단순한 양적 확대만으로 달성 가능한 것이 아니다. 다(多) 부처 간의 협동에 의한 문제 인식 및 목표 설정이 필요하며, 건강불평등 문제를 사회 의제로 만들기 위한 전략의 마련도 필요하다. 또한 현재의 국가보건의료체계에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의 마련도 행해져야 할 것이다.
‘건강불평등을 사회가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는 철학과 정치의 문제’라던 마이클 마못, 런던대 교수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색깔논쟁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성숙했는가?’라는, 약간은 뜬금없어 보이는 질문을 하게 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건강불평등 문제가 언젠가 이슈화된다 할지라도 이를 해결코자 하는 노력이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면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을 것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