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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말 중에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말이 있다. 기록하기만 할 뿐 새로이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중국 역사서술의 전통이 되었다. 당연히 전통시대 우리의 역사 서술도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는 적극적인 해석을 한 역사이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서도 자신들에게 이롭게 해석하여 그렇게 받아들이기를 강요한다. 역사는 기록이 아니라 정치활동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역사적 사건들을 가능한 있는 그대로 보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로 덧칠되지 않은 원전을 읽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의 편저자 존 케리는 이 책이 2500년 인류사를 총 망라한 현장기록서, 즉 크고 작은 사건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 남긴 순수한 사건기록을 원전 그대로 보여주는 것 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책의 내용 전체가 다 역사적 중요사건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는 일상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훗날 역사적 사건이 되는 것 일지라도 당시에는 그런 저런 일중의 하나였음을 감안할 때, 이 책에 나와있는 여러 사건들의 목격자의 기록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건에 대해 그만큼 신빙성 있는 자료를 대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다. 과거의 지식이나 추측이 아닌, 정교하지만 생명이 없는 객관적으로 재현된 역사서술이 아닌, 내 눈으로 보았다는 이야기, 주관적이고 불완전하지만 진실의 느낌을 주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배워왔던 역사들과 비교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당시 그것을 보았던 사람들의 기록이다. BC 430년 투키디데스가 쓴 아테네의 역병에 대한 관찰기록에서부터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시 일어난 차틸라 학살까지, 180여 개의 사건에 대한 목격자의 기록들을 사건의 중요성보다는 관찰과 서술의 수준을 우선적으로 살펴서 900여 페이지에 옮겨놓고 있다. 이 기록들 또한 하나의 역사이다. 일반화를 겪지 않은 역사, 해석의 덧칠이 가해지지 않은 역사의 단편들인 것이다. 물론 그들이라고 편견이나 정치적 관점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역사관이 오늘날보다 소박했기 때문에 그들의 의도는 우리가 알아채기 쉽다고 역자는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이 편저자의 말대로 2500년의 인류사를 다루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1000년의 서구사에 불과하다는 느낌이다. 180여 개의 사건 중 11세기 이전의 내용은 8개에 불과하고, 11세기 이후의 사건들도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내용이 20세기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고, 그것도 대부분이 1차, 2차 세계대전의 전쟁기록이다. 물론 고대의 사건에 대한 기록이 그만큼 희소 하다는데 그 까닭이 있겠지만 말이다. 또한 인류사라고 하지만, 반쪽만의 세계사, 즉 서구인의 시각에서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를 알려줄 뿐이라는 생각이다. 2차 대전 기록중의 일본관련 내용 몇 장면, 그리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관한 몇 장면을 제외하면 동양과 이슬람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은 없다. 오히려 기록들은 동양이나 이슬람지역에 더 많이 남아있을 터인데 말이다. 또한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사건이 전쟁이나, 학살 또는 재앙과 관련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원주민을 정복하고 학살하는 이야기, 역병에 걸린 환자들이 죽어가는 모습, 전쟁 중 침몰된 배에서 벌어지는 아비규환 그리고 전투 중 신음하고 쓰러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새삼스레 깨닫는다. 나가사키에 떨어지는 원자폭탄의 성능과 폭발 후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해놓은 글에서는, 그 폭탄에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하나도 나와있지 않음을 보고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을 쓴 글에서, 그들을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 아닌 원시미개인으로 묘사한 글을 보고서, 연합군의 폭격으로 불타는 도시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서, 과연 전쟁이란 무엇이고, 왜 사람들은 전쟁을 해야만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끔 만든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 책에 있는 사건들을 기록한 목격자들은 승자도, 패자도 아닌 단순한 목격자로서 보고 겪은 것들을 자신의 입장과 관점에서 기록하기도 했지만, 승자나 패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본 기록들도 많이 있다. 대부분의 전쟁기록들이 그러하다. 따라서 그들의 글을 읽고서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어떻게 평가할지는 순전히 이 책을 읽는 개인들의 몫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 모두 나름대로의 역사관속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덧칠을 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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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두 가지 의미에서 '자연의 것'이 아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노장친화적(?)인 우리 동양인의 사고와 심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서양인들은 그 인식과 행동에 있어, 언제나 인위/자연의 이대별을 하고 시작한다. 이 때, '인위'라는 영역은, 바로 '문명'과 통한다. 대체 '토목공학'이 영어(그리고 영어 이전에 서양 문명권의 지배적인 언어로 기능했던 모든 선배격 언어들)로 왜 civil engineering인지 궁금한 사람이있다면, 이 단서를 기초로 해서 차근차근 사고를 정리해 보기 바란다. 법학자들도 잘 모르는 '자연 채무'의 명명 근거도 원칙적으로 다 이 사고의 요소가 그 출발점이다. '역사'는 실제 발생하였던 사상(事象) 그 자체가 아니며, 한정된 지식과 인식틀을 가진 관측자의 주관과 해석에 의해 가공되는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역사는 보는 이의 해석이며, 이는 실증주의의 가장 선명한 저편 극단의 스탠스를 취한다 해도 달라지는 점이 아니다. 어쩌면 해석은 역사의 본질이며, 결국은 지양하고 탈피해야 할 전단계적 허물이 아니기까지 하다. 다른 한편으로, 역사는 그렇게 해석의 과정을 거친 개별 역사만으로 존재 이유가 충족되는 파편의 영역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연역되는 거대한 '일반 역사'로서의 정립까지 완수되어야 최고의 격조를 갖추게 된다. 이 두번째 점은 이 책과 직접 관계가 없으므로 일단 건너뛰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역사의 원전'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은 한편으로 오해, 오역이기도 하며, 다른 의미에서 '원자료의 원초적 중요성'을 새삼 되새기는 각성의 구실을 하기도 한다. '원전'은 정말 모호한 개념이지만, 대체로 독어권에서 말하는 quelle가 이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출전'이기도 하고, '근거'로 새겨지기도 하며, 아니면 이차적 텍스트, 아이디어, 구축된 구조 모두를 생성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 번역본에 '원전'이라는 제목이 붙었다면, 그는 지극히 타당하다. 반면, 본질적으로 가공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 역사의 본질을 외면하고, 현재 주류로서 넉넉히 인정받은 평판을 받고 있는 일체의 사관이나 진단, 학설을 다분히 '왜곡'이라는 단죄성 판단을 전제로 깔고 태그한 제목이라면, 이는 대단히 편향된 의식을 노출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항상 내가 느끼는 바지만, 이 책은 정말 '재미없다'. 1차 사료란, 그저 그로부터 피가 뚝뚝 떨어지는, raw 이전의 proto-raw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며, 이로부터 뭔가 의미를 찾는 작업이란, 이에 타고난, 혹은 환경으로 인해 습득된, 흥미를 느끼는 지성인의 손길과 시선이 아니고서는, 오관이 감당할 수 없는 섬뜩한 속살을 두고 벌이는 고역일 뿐이다(인간의 신체란 한 꺼풀의 피부만 파고 들어가도, 공포와 경악의 대상일 뿐이듯). 하지만, 그게 설사 제 인식과 삶의 기준에 근본의 변화를 끼치지 못하더라도, 예컨대 타지마할의 석관 한 구석에 찜찜하게 핀 한 점의 곰팡이라든가, 혹은 보헤미아의 어느 뒷골목에서 취객이 장엄히 전개한 토사물을 직접 제 눈으로 보는 감회란, 또 색다른 체험의 설렘과 긍지를 관찰자에게 안기지 않는가. 거듭되는, 영원히 반복되고 내생에까지 그 굴레를 벗지 못할 찌그러진 안면의 정신착란 오덕년이 남긴 그 모든 미친 스포일러 기록이 어느 낡은 컴퓨터 하드에 제 범죄의 결정적 흔적으로 영원히 남아, 한 짓궂은 애널리스틱 히스토리언의 영원한 먹잇감이 되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날것은 날것대로 영원한 존재 의의가 있다('기록'과 '일차사료'를 구분 못하는 무지한 시각이, 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할 수는 없다. 동양권에선 한번 정사의 편찬이 이루어진 후, 일체의 원자료가 소실됨을 모르는가?). 이 책에서 재미 있는 유일한 부분은, 본문보다 명쾌하고(당연한가?) 두툼한 분량의 양적 무게를 압도하는 영양가를 발산하는 김 선생의 해설 파트라고나 하겠다(강조하지만 참 재밌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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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채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아(我)와 피아(彼我)의 끝없는 투쟁"이라 했다. 역사는 단재 선생 말처럼 투쟁일까?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사이에 이루어지는 역사라면 아와 피아의 끝없는 투쟁이다. 하지만 모든 역사가 투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사람'이 만들어가는 삶의 현장이다. 거대한 역사만이 역사가 아니라 이름없는 인민의 역사도 역사다.
2500년 동안 역사의 승자들이 자신들의 '관점'과 '해석'에 따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인민들이 직접 목격한 사실들을 기록한 '역사'를 만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존 캐리가 엮은 <역사의 원전>은 인민-구경꾼, 여행가, 전사, 살인자, 희생자, 직업기자-들이 직접 눈으로 봤던 것들을 생동감, 빠른 필치로 생생하게 담았다. 역사는 '객관성'을 중요시하지만 이들의 기록은 '주관적'이다. 오히려 이런 인민의 주관적 느낌을 생동감있게 기록한 것이 이 책이 주는 역사를 객관적인 역사로만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준다.
2500년 동안 인민들의 눈앞에서 일어났던 역사다. 몇 가지만 예를 든다면 투기디데스의 '아테네 역병', 플리니우스의 '베수비우스 화산폭발', 이븐 파들란이 '바이킹 족의 장례', 존 샌드슨의 '카이로의 런던 상인', 로보트 윙크필드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처형', 우틀리 먼테이큐의 '터키의 목욕탕', 엘리스 중위의 '트라팔가', 윌트 휘트먼의 '링컨 대통령 암살', '베트남 전쟁', '한국전쟁' 따위다.
그들은 중요한 사건만 기록하지 않았다. 인민이 자신의 눈 앞에서 이룬 사건을 관찰과 서술로서 잘 표현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중요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의 원전>에 기록된 글들이 중요한 사건이 있다.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처형', '링컨 암살', '타이타닉호 침몰' 등은 매우 중요한 역사다. 하지만 조 애컬리가 쓴 일기 중 어느 날 오후 토끼를 잡으러 간 이야기 같은 경우는 시시한 것같지만 한 사내아이가 살해 행위에 길들여지는 과정은 매우 중요한 역사 현장이다. 이는 <역사의 원전>에 기록된 수많은 학살과 잔혹한 역사의 투영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가 기록한 '서인도제도에서 스페인인의 만행'을 보면 알 수 있다.
"말을 탄 스페인인들은 길고 짧은 창을 들고 살인과 기괴한 잔혹행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에 뛰어든 그들은 어린이도 노인도, 심지어 애를 밴 여자와 그 뱃속의 태아도 남겨두지 않았다. 마치 우리 안에 가둔 양떼를 잡듯이 배를 가르고 토막을 냈다. 한 칼에 얼마나 통쾌하게 배를 가르느냐, 얼마나 멋있게 목을 자르느냐, 얼마나 똑바르게 창을 꽂느냐를 놓고 서로 내기를 걸기도 했다"(본문 151쪽)
한 사내아이가 토끼를 살해하는 장면을 연상하면서 카사스의 기록을 보면 인간이 어떻게 살해를 넘어 잔혹한 학살의 길을 갈 수 있는지 유추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살해자가 이런 과정을 걷는 것은 아니다. 학살과 잔혹함은 이런 작은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인민이 자신들이 목격한 그 기록들을 모은 것을 보면 역사가 되고, 그 역사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서인도 제도에서 스페인의 만행'을 통하여 우리는 '엘우드 하비의 '버지니아에서 본 노예 매매'와 새뮤얼 호우의 '뉴올리언스, 여성 노예의 처벌'을 연상할 수 있다.
"소년의 색깔에 관한 야비한 농담 몇 마디가 나온 후 누가 200달러를 불렀다, 그러자 사람들 속에서 저렇게 보기 좋은 젊은 검둥이는 더 높은 값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저런 놈은 줘도 안 가지겠다고 했다."(본문 443쪽)
"여자 아이 옆 6피트 떨어진 곳에 덩치 큰 흑인 하나가 채찍을 들고 서 있었는데, 그의 채찍질은 강력하고도 기막히게 정확했다. 한 차례 내리칠 때마다 맞은 자리의 피부가 길게 떨어져 나와 채찍에 들러붙거나 호늘거리며 포석 위에 떨어졌고, 그 뒤로 피가 튀어나왔다. 아이의 살아 있는 몸뚱이에는 줄이 계속해서 패여 피 흘리며 꿈틀대는 검푸른 근육덩어리로 변해가고 있었다."(본문 446쪽)
서인도 제도와 노예 매매, 처형은 관찰자가 사실을 기록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했음을 알게 된다. 지배자와 승자, 백인들이 그들의 눈으로 본 역사가 아니다. 같은 현장에 있었지만 승자와 지배자는 그들의 시각에서 현장을 해석한 역사를 기록했고, 이들은 현장을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역사의 원전>이 우리에게 읽혀져야 하는 이유다. 여기에는 이런 참혹한 역사만 아니라 별난 이야기, 천박한 이야기, 하찮은 이야기까지 담았다. 과연 이것이 역사에 기록될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할 것들도 많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드레스 앞자락 속으로 가슴의 주름살을 눈여겨보는 외국 대사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음탕한 마음, 아니면 그냥 무심코 보였을까? 콧구멍이 쌍발식 엽총 총구처럼 생긴 조 루이스는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콧구멍을 쌍발식 엽총 총구로 생각했는데 그 당시 쌍발식 엽총이 없었다면 옛날 돌도끼 생활을 했던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조 루이스의 콧구멍이 어떻게 생겼다고 생각했을까?
처형 날 아침 얇디 얇은 비단 스타킹을 신고 있는 마타 하리는 왜 그랬을까? 풀만 먹어서 입이 파래진 아일랜드 사람들의 굶주림은 우리나라가 겪은 보릿고개를 연상케 한다. 시대와 살았던 삶의 공간은 달랐지만 그들이 겨험한 역사 현장은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역사와 현장이다. 생소한 느낌을 받지 않는다. 이런 느낌과 생각은 어쩌면 역사는 진보보다는 반복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열쇠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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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원전 >>
르포르타주형식의 역사서적이다. 소크라텔레스부터 베트남전쟁까지 세계사의 이슈가 된 쟁점들에 애해서 사가가 아닌 일반인들 그 시대를 살았던 아주 평범한 개인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솔직한 역사 이야기이다. 특별히 무거운책(부피가 많긴 하지만)은 아니다.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쉽게 읽어나 갈 수 있는 책인것 같다.
역사라는 장르를 르포형식으로 가볍게 다루어서 일반인들이 세계사에 접근하기가 쉬운 책이다. 이책은 가장 큰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시각 그리고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쳐했던 그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서술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개인의 관점차이지만 역사를 다양한 방향에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
| 엄청난 분량의 원전 시리즈 ... 지식의 원전을 가볍게 독파하고 역사의 원전을 손에 들었다.... 읽어 내력갔다 ... 무슨 말이야..... 배경지식이 없으니까 모르겠잖아 .... 지식의 원전을 뒤에 해제 부분을 통해 충분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지만 역사의 원전을 너무 힘들었삼 ... 읽다 말았는데 .... 근데 새삼스레 목차를 모니 이제 친밀한 역사인물의 이름이 보이네요 ... 새로 읽어 봐야 겠어염 /// 감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