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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무척 이기적인 아이였다. 내가 잘난 맛에 살았다.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한 조연이라 생각했다. 그 당시 작가가 되고 싶은 한 친구가 자신이 공책에 쓴 수필을 가지고 내게 왔다. 나는 그 글을 귀찮은 듯이 대충 읽고선 “이건 많이 부족해”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그 수필을 내가 보는 앞에서 차가운 표정으로 찢어버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우리는 서먹해졌다.
남의 시선에서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사실 참 힘든 일이다. 내가 아닌, 너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들어야 하고 내가 아닌, 너가 힘들었고 슬펐던 일들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나는 한번도 친구의 노력이나 용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혹시 내가 그 친구의 꿈을 짓밟은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도 죄책감이 든다.
20대에 여자들을 사귀면서 나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난 그녀들의 사랑이 필요했고 그녀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뭘 먹고 싶은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떤 음악을 듣는지가 늘 신경 쓰였다. 그녀가 웃어야 내가 비로소 마음이 놓이고 행복해졌다. 라캉은 ‘(내)모든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실감났다. 그녀들이 좋아하는 팝송, 영화들을 나도 원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녀들이 다 떠나고 내겐 꿀리지 않는 문화적 소양과 지나치게 남 눈치 보는 버릇이 남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연애는 ‘내’가 아닌 ‘너’를 이해하는 좋은 경험이었다.
요즘 나는 인간성이 더 업그레이드 되어 리액션 하는 것이 즐거움 중에 하나가 되었다. 만약 누군가 ‘하루 종일 아팠다’고 한다면 그 하루가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 3초 정도 생각해본다. 그러면 그 마음과 내 마음이 연결된다. 그리고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그들의 자랑을 섬세하게 알아차리려 노력한다. 그 사람도 모르는 그의 장점을 내가 최대한 밝혀낼 때, 그는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너가 행복하면 나도 진심으로 행복하게 되는 경지에도 이른다.
진정한 공감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넘어 훨씬 더 큰 희생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까지도 포함한다.
영화 페이스 오프에서 꼰대 같은 FBI요원 숀 아처(존 트라볼타)는 사춘기 딸과 대화가 단절되어 있다. 그녀가 학교에서 탈선을 하고 거친 친구들을 사귀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절대 이해할 수도 없다. 계속해서 자신의 시선으로만 딸을 바라보고 무엇을 강요한다. 이 둘의 벽은 높아져 간다. 그러다 캐스터(니콜라스 케이지)가 숀 아처의 얼굴을 하게 되자 딸을 귀찮게 하는 남자친구를 때려 눕히고, 칼로 남자를 찌르는 법을 가르쳐준다. 최소한 그때 우리의 속은 후련해졌다. 왜냐하면 그때 아빠는 (외형상으로는) 자신의 방식을 버리고 딸의 언어로 그녀와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영화 패치아담스 中) 10년 전에 본 영화 ‘패치 아담스’에서 정신병원에 있는 어떤 할머니는 국수에서 헤엄치고 싶다고 말한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아무도 할머니 말에 대꾸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 패치 아담스는 할머니의 소원대로 대형국수를 만들어 할머니가 그 안에서 헤엄치게 만든다. 그 후 할머니의 증상이 좋아진다.
나는 이 영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화라고 하는데, 어떻게 저런 환자들의 헛소리를 다 들어줄 수 있을까? 그리고 저렇게 해서 환자가 정말 치료가 되는 걸까? 칼 로저스의 책 ‘사람중심상담’을 읽으면서 나는 그 가능성을 찾았다. 책에서는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자신들이 이해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더 이상 정신분열 환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놀라울 정도로 관심이 없다. 우리에겐 단절이 만연되어 있다. 나는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각자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의미 없는 육성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권위와 기준으로, 자기 이야기만 할 뿐 아무것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서 절망적인 소외감을 느끼고 이 세상과의 높은 ‘벽’을 확인한다. 그 벽을 재차 확인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더 이상한 말을 지어내게 된다. 알코올릭이 세상을 등지고 술에 더 빠져드는 이유도 어쩌면 세상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점점 미치게 된단다.
어느 날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ㅇㅇ님이 내게 상담을 요청했다. 그녀는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를 엄마에게 빼앗겨 슬퍼했다. 난 그녀가 고양이에 집착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싫어한다. 그리고 그녀가 고양이에 집착하는 것이 그녀의 어려운 인간관계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드니깐 예쁘고 자기 말 잘 듣는 고양이에 집착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 고양이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녀는 새로운 고양이를 얻게 되었고, 그제서야 그녀만의 세계에서 고양이와 함께 행복하게 잘 살게 되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내 가치관의 개입 없이 오로지 그녀가 원하는 것을 향하게 하는 것이 좋은 상담이었겠구나! 그녀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거나 비판하면 안 되겠구나! 그녀의 개성 있는 존재자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것이 그녀와 나의 관계를 위해서도 좋겠구나!’
영화 속의 패치 아담스도 환자들의 이야기를 그 자신이 아닌, 타인의 기준에서 들어주고 공감해준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행복을 되찾고 점점 사회에 적응하기로 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 자체의 타당성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내 기준에서 유치하고 헛소리에 가까울 수 있는) 어떤 말이라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영화를 본 지 10년 만에 그 사실을 깨달았다.
칼 로저스는 '사람중심상담' 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깊이 들어주고 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거의 항상 눈물을 흘립니다. 나는 그들이 사실은 기뻐서 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아 이제 살았다! 누군가가 나를 들어주네. 누군가 나를 제대로 알아주네.”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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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과 변화에 대한 믿음이 가득 담겨 나를 매우 고양시키는 종류의 것들이다. 공부를 하고 있을 뿐인데 막 가슴이 뜨거워지고 벅차진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과 결부시키자면 별개의 이야기였다. 이론을 공부하면서도 별다른 기법이 없어 가장 쉬울 것 같고 인간미 넘쳐 가장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기법 없이도 치유하는 상담이란 곧 상담자의 마음의 넓이와 이해의 깊이가 최고에 다다라야 가능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 한다. 오늘 문득 든 생각인데, 어쩌면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상담하는 게 한편으론 가장 어려운 상담 중 하나는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주관적 감정과 그들에 대한 소유욕, 변하길 바라는 조급한 마음과 분화되지 않은 내 상태 등이 방해를 많이 일으킬 것 같다. 합리화일 수도 있고.
중간에 로저스의 아내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사랑에 대해 이상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지.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내가 하는 사랑은 역시 내가 그리는 것에 가까운 사랑이면 좋겠다. 그렇게 로저스에 대한 실망이 약간 생기고 책의 흐름도 살짝 지루하게 흐르기에 느슨하게 읽다가 다시 교육에 대해 얘기가 나오자 집중했다.
로저스는 단지 상담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대일, 또는 집단상담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런 내담자들을 만들어 낸 사회 구조 자체를 개혁하는 데에도 상담과 심리 전문가들의 실천이 개입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론 그에 대한 어려움과 기존 체계의 저항이 작지 않음도 인정하고 있다. 나 개인적으로, 학생들이 배우는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비인간적인 행태와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목격 및 경험했고 비록 사교육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그것을 타파하고 개선하려는 시도에 노력을 쏟았으며 그게 얼마나 동료들이나 고용주로부터 카리스마 없는 선생으로나 여겨지는 외롭고 고민스러운 일인지를 몸소 실감했기에 공감이 많이 됐다. 그러나 학생들로부터 직접 받는 피드백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내가 틀리지 않다, 그들이 변하고 있다, 보람차고 행복하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상담개론서에 순서로 치면 두 번째로 실려 있는, 그만큼 중요한 상담이론의 창시자이자 영향력 있는 지성인인 로저스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책에서도 힘있는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다니 든든하고 좋았다. 그래서 이 책은 어쩌면 상담을 공부할 때 보다도 상담을 시작한 뒤, 그리고 어느 정도 상담자로 입지를 굳힌 뒤에 더더욱 읽고 실천으로 옮겨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실제로는 내가 그곳에 속해 있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세상과 의사소통하는 나의 방법이다. 나는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무척 많지만 그렇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병에 담고 봉하여 바다로 던지는 편지다. 그저 놀라운 것은 해변(심리적인 그리고 지리적인)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 병을 찾아서 그 편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쓴다. p. 99
우리는 사람을 다루는 일에 자격증이 진정한 자격을 확인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면해야만 합니다. p. 262
많은 연구들에게 이끌어 낼 수 있는 결론은 교사가 교실 안에서 개인적이고 인간다울 때 그 보답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p. 294
누가 누구를 통제하려 하는가? 학생들은 자기 자신의 학습 과정과 자기 자신의 삶의 과정을 통제하는 힘을 획득하는 과정 중에 있다. 촉진자는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 힘을 양도하고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힘만 보유하고 있다. p. 316
늘 그렇듯이 자발적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무언가 배울 것이라고 신뢰해 주면, 학생들은 그들에게 힘을 행사하며 요구하는 사람이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다, 그들은 또 그들의 학생들에게 유사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고, 그 학생들 역시 생각할 뿐 아니라 느끼기를 배울 수 있도록 도울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바로 한 사람이 전인으로서 배우는 기회를 갖게 될 때 나타나는 흥미진진한 누룩 현상이다. p.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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