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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없음. ※ 다소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서평을 썼음. 그 시각의 농도는 심히 옅은 편이지만 읽는 이에게 알레르기 반응이 없기를 기도할 뿐. 신을 향한 인간의 천착은 끊임이 없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신에 대한 갈증의 농밀함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알고, 경험하며, 믿는 수많은 종교의 이면에는 신을 찾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이 담겨있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인간의 종교성은 어쩌면 인류역사의 마지막까지 계속될 것이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신과 인간은 언제나 공존한다는 명제에 동의하게 된다. 이를 풀어서 보다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전지전능한 신의 절대성은 시간의 구속을 초월하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언제나 현재의 시간대에서 통합된다. 반면 철저하게 시간에 구속된 인간은 항상 현재로 존재하는 신과는 다른 시간의 성질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즉, 신은 언제나 현재의 시간으로 존재하면서 과거의 인간을 만나고, 현재의 인간을 만나며, 미래의 인간을 만난다. 2년 만에 새로운 장편소설을 들고 돌아온 파울로 코엘료는 『포르토벨로의 마녀』를 통해 신의 여성성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모성의 근원과 그 본질을 탐구하고 싶었고, 이 사회가 왜 신의 여성성을 속박해왔는지 묻고 싶었다, 라고 말하는 작가 코엘료의 고백에서 신을 향한 인간의 목마름, 그리고 신과 공존하고 있는 현재적 인간을 새삼 목도하게 된다. 이러한 코엘료 자신의 의지가 철저하게 반영된 듯, 그의 신작 『포로토벨로의 마녀』는 우리가 흔히 인식해왔던 신의 남성성과 배치된 여성성으로서의 신을 조명하고 있다. 권위적이며 공의적이고 규범적이라는 기존의 신에 대한 일반적 통념을 제시하며, 자애롭고 보듬어주며 희생적인 신의 다른 면을 부각하면서 대조한다. 아테나라는 한 여인의 짧은 삶을 통해 그동안 감추는 것이 미덕이었던 여성성에 대한 강렬한 찬사를 발산하고 있다. 역사는 남성적 가치를 지향해왔다. 역사적으로 동서를 막론하고 지구상의 모든 종족과 국가는 여성에 인색했다. 여성의 존재감은 아예 없거나, 또는 있거나 말거나, 또는 보다 발전된 공동체에서 남성을 돕는 존재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여성의 존재감은 중세를 넘고, 19세기의 페미니즘 태생의 시기를 넘어, 작금의 21세기에 이르러서는 남녀평등이 당연한 인류 보편의 가치로 인식될 정도로 진보했다. 코엘료는 마치 지난 수 천 년 동안의 여성의 빈곤했던 존재감을 보상해줘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를 피력하듯, 인간 여성에 대한 찬가는 물론, 남성에게 독점된 잃어버린 신의 정체성의 반쪽까지 건드리고 있다. 포르토벨로의 마녀인 아테나의 삶은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진다. 춤을 추고 글을 쓰며 자신의 공백을 확인하면서 그것을 채워가는 그녀의 행동은 기묘하지만 다분히 철학적이다. 소설의 중반부 이후 마녀로서의 본격적인 아테나의 신성이 발휘된다. 아테나의 인성과 아야소피아라는 신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녀는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며 제자를 만들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기존 종교(기독교)의 전통과 규범에 얽매이지 말 것을 주장하며 극도의 이단성을 발산하는 아테나의 행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환호와 분노를 동시에 불러 일으킨다. 기존의 것,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것, 진리라 여겼던 것에 대한 아테나의 도전은 자신의 수제자 앤드리아에게 그 역할을 넘기며 죽음으로 마무리 되는 것으로 소설 안에서 일단락된다. 소설의 막장을 덮은 후, 코엘료가 소설의 창작 목적으로 언급했던 '신의 여성성 탐구'라는 외연적 동기는 <사랑>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내포적 목적을 수식하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다.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여성이 갖는 가장 강력한 힘의 표준어인 <어머니>라는 단어는 <여성으로서의 신>과 동의어로 소설속에서 계속해서 등장한다. 어머니의 자비로움과 편안함이라는 모성적 사랑을 신의 성품에 반영하여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난 또다시 생각했다. 어쩌면 파울로 코엘료는 신의 여성성을 탐구한 것이 아닌, 사랑과 자비라는 있는 그대로의 신성 그 자체를 탐구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남성과 여성, 암컷과 수컷의 개념은 그것을 창조하고 구분한 절대자에게는 구속할 수 없는 개념이다. 신의 신성, 즉 신적인 성품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로 구분되거나 특징 지을 수 없다는 얘기다. 방향이 바뀐 것이다. 거꾸로 신의 성품이 남성과 여성으로 존재하는 인간에 녹아든 것이며, 그것은 철저하게 일방통행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신의 의지며 주권이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 신이 전지전능하다는 것, 그리고 신이 선(善)하다는 것까지를 인정하게 되면, 자신의 형상을 인간에게 집어 넣은 당신의 작업에 겸허하게 되는 동시에 신성을 남성성이냐 여성성이냐 하는 등의 기준으로 들이대지 못하게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신성은 차원을 논할 수 없는 절대적 상위개념이며, 남성과 여성은 신 안에 구속된 종속적 하위개념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된 방향성을 확인하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파울로 코엘료의 하나님 탐구와 사랑에 대한 천착은 매우 감미롭고, 충분히 아름다우며, 결코 가볍지 않다. 다시각적 인터뷰 형식과 극적 반전이라는 기계장치를 통해 가슴 두근거림과 긴장감을 제공하며, 어렵지 않으면서 충분한 무게를 함의한 문장을 통해 신과 사랑을 탐구한 파울로 코엘료의 기술에 나는 심히 매료되었다. 쏟아지는 아포리즘의 홍수속에서 하나님과 사랑과 여성과 나 자신을 동시에 사유(思惟)할 수 있도록 한 코엘료의 언어 연금술을 상찬하며 별 다섯 개를 흔쾌히 던진다. 오늘날의 사회는 "모든 것은 설명 가능하다"는 오해에 사로잡혀 있다. 사회는 우리가 세상에, 또 우리 자신에게 완벽하게 투명할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그 속엔 커다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손에 잡을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어떤 공백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신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p. 398, 작가후기>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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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다음 장으로 페이지를 넘기기가 두려워졌다. <데미안>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 흡사한 감정을 이 책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하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니 다소 결말이 허망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라는 껍질을 깨고 새로운 나를 탄생시키는 것도 물론 어렵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린 그 과정의 첫발을 이제 막 내디뎠을 뿐이라는… ‘파울로 코엘료’라는 작가는 그 이름이 주는 무언가가 있다. 그의 신작이 예약판매 중이라는 보도를 접하자마자 나는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 듯 결제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하지만 즉각적인 구입에 비해 그의 책을 읽기 위해 집어 드는 건 나날이 추후로 미루어졌다. 지금까지의 그의 작품들이, 쉽게 읽히는 반면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해야만 비로소 ‘읽었다’는 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작가는 신의 여성성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득 여성의 모습을 한 신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스나 로마의 신화에 등장하는 몇몇 신들이 아마도 여성이었지? 그리고 다산을 상징하는 풍만한 몸매의 조각상들이 몇몇 고대 문화권에서 출토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이들이 믿는 가톨릭이나 개신교, 이슬람교 등 소위 고등 종교라 불리는 종교들에서 여성의 위치는 부차적일 때가 많다. 마치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어머니로서의 존경은 받을 수 있으나 신은 아닌 것처럼… 그렇기에, 읽는 사람에 따라 달리 평가할 수 있겠지만, 소설 속 등장 인물인 헤런 라이언의 ‘어머니’의 깨어남에 관한 연재기사가 받았다는 ‘이교도적인 것을 부추긴다’는 비난으로부터 이번 작품이 자유롭지 않을 수도 있다. 이언 벅 목사와 같은 관점을 취한 사람이 우리 세상엔 꽤나 많기에… 그렇다면 작가가 말하는 여성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남성인 작가에게 여성성은 직접 체험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성/여성성은 생물학적인 남성, 여성의 문제와는 조금 다르다. 오늘날 주목 받고 있는 관계에 기초한 여성적인 리더십이 꼭 생물학적으로 여성이어야만 체득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남성이라 하여도 귀를 기울이면 자기 안에 존재하는 여성성과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인위적인 가공 아닌 자연, 본능에 충실한 삶 등을 여성적인 것이라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다름 아닌 ‘배꼽’이었다. 아기와 어머니를 이어주는, 탯줄을 끊음으로써 우리는 독립된 하나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탯줄을 끊는 행위는 우리의 몸에 ‘배꼽’이라는 상처를 남긴다. 내가 누군인지를 물을 때 어쩌면 가장 먼저 주목해야 되는, 우리 존재의 근원성을 담고 있는… 하지만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일종의 한계를 남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억압해왔던 여성성을 향해 걷던 아테나가 가시적인 행보를 멈춘 까닭은 그녀의 아들 때문이었다. 또한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어머니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론은 자칫하면 여성에게 가치 있는 것은 출산과 양육이라는 가부장적 가치관으로의 회귀로, 더 나아가 여성성의 발현을 위해 여성은 꼭 결혼해야만 한다는 식의 강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이는 아테나의 한계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앤드리아’ 라는 인물을 통해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비록 이 소설을 통해 그녀에 의해 세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기존에 아테나가 걸었던 길을 아테나 대신 걷고 있는 앤드리아에 의해 극복되어야 하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중세 시대에 많은 이들이 마녀의 오명을 쓰고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누군가를 살리고 죽이는 극단적인 형태에선 많이 벗어났을지도 모르나, 주류와 다르다는 이유로 오늘날 쉬이 행해지는 차별로 이는 이어지고 있다. 지금껏 억압해온 여성성을 되찾기 위한 시도 역시 마찬가지의 잣대로 평가되고 있다. 오늘날의 여성은 이기적이다는 비난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고유의 전통이 파괴된다는 우려에 이르기까지… 그렇기에 아테나는 마녀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결말이 허무하게까지 느껴질 수밖에 없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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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며 하두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길래 주문해서 봤던 책
지금 2007년 가을동안 읽은 책만 지금까지 약 80여권정도되는데 이 책은 단 10페이지를 읽고 덮어버린 책...
왜 샀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음. 이 책을 주문하기전에 반드시 서점가서 읽어보고 자기에게 맞는 책이라고 판단하면 사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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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사 놓고도 한참동안을 읽지 못했다. 처음 몇 장이 고비였던 것 같다. 다른 책에서 접하지 못했던 서술 방식이 낯설었던지 처음에는 잘 읽어지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소설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을 들을 수 있었고 그저 소설을 이어나가기 위한 대사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심오한 뜻이 들어있는 글귀들을 읽느라 책 읽는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책을 다 덮고 느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샀고, 읽었지만 정작 작가가 했던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내용들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풀어쓴 책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철학책이다
작가가 인생을 살면서 느낀 점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들을 소설의 형식으로 게다가 자신의 말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을 적는 것처럼 객관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서 적은 철학책
내가 그 동안 살면서 생각한 것들과 너무 닮아 있었다. 서양 사람이면서 동양사상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종교는 다를지라도 세상의 이치는 서로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우주이고, 우주가 나이다...라는 글귀
작가의 생각이 불교와 너무 닮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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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을 읽으면서 처음 눈에 띄었던 것은 한 화자의 일관된 서술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인터뷰를 모아놓은 형식이라는 것이었다. 주인공인 '아테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수정 없이 묶어놓은 형태인 이 소설은 그런 형식 덕분에 그녀의 진짜 모습을 쉬이 파악하기 어렵게 해놓았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아이가 1000 피스짜리 직소 퍼즐을 맞추듯,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그녀의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서술방식이 우리가 흔히 맞닥뜨릴 수 있는 '선입견의 한계'를 어느 정도 와해시켜줄 수 있어 좋았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의 그녀의 위치가 워낙 독보적인 만큼, 이 책이 한 화자만의 생각이 담긴 이야기였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도 그와 같은, 혹은 그와 반대인 선입견을 갖기 쉬웠을 것 같은데 코엘료는 이 한계를 독특한 '인터뷰 형식'을 통해 가볍게 뛰어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서술방식 덕분에 그녀가 가질 법한 신비감-손에 닿을 듯 말 듯한 그 느낌-을 나도 어느 정도나마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바이든 아니든.
책을 읽어나가면서 서술방식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테나라는 인물의 성격이었다. 사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토론자리에서 나는 이 책을 소독용 크레졸 희석액에 비유했는데, 이는 내가 아테나에게서 받은 인상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주변 상황이 어떻든 간에 자신의 성정을 잃지 않고 오히려 주변까지 자신처럼 물들여놓는 그녀가 꼭 소독액처럼 보였다. 그녀는 최고의 경지를 추구하는 수도자같기도 했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한 운동가와도 같았으며, 동시에 누구나 자기 마음 속에 갖고 있을 법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구현한, 완벽성의 현현이기도 했다. 그녀는 여성성의 완성, 사랑의 전달, 그로 인한 자아의 완성을 그녀 생의 목표로 삼고 생의 순간순간을 충실히 걸었다. 스스로 충실히 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살기를 스스럼없이 권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는 정말 힘들기에, 내가 만나고 또 책 안에서 읽은 사람들 중에는 아테나가 가장 소설적인-100% 픽션에 가까운-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녀의 진면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앤드리아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녀는 책 속에서 아테나에 대한 험담만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정말 그렇게 느껴서 그랬다기 보다는, 자신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 이미 다다른 아테나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위협을 느꼈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험담이었다. 동시에 그녀 자신도 그런 (정신적, 사회적) 위치까지 도달하고 싶어한다는 욕망도 느낄 수 있었고. 나는 아테나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공동체는 오히려 앤드리아가 더 잘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테나는 너무 순수하다. 순수한 나머지 미처 자신을 따라오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컨트롤하기 어려워할 수도 있다. 아마 그녀 마음 속에서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어두운 감정들에 대한 생각이 있던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혼녀이기 때문에 영성체를 할 수 없음에 느꼈던 분노나 자신의 출생 때문에 언제나 느꼈던 불안정감은 항상 갖고있었을지언정, 질투, 특정 상대에 대한 열등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초조한 조바심같은 것을 느껴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지 않는다. 그녀 마음 속에서의 비교대상은 그녀가 도달하고자 하는 어떤 최고의 경지일 뿐이었고 항상 그것을 바라보면서 한 발 한 발 내디딘다. 중간의 실패도 실패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그녀는 그 목표에 집중하고 있다. 사실 실패가 실패로 느껴질 때는, 자신에게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 혹은 남들과 비교해서 더 뒤쳐졌다고 생각될 때인 법인데, 그녀에게는 길고 긴 남은 생이 있고 자신이 갖고 있는 목표인 어머니적인 '사랑'을 구체화시킨 아들 비오렐이 있고 그 목표를 이루는 데 있어 남들과 어떤 성과를 비교할 필요도 없는 사람이다. 때문에 너무 깨끗하다. (사실 더러워질 필요가 없다.) 누구와 꼭 부대끼기 보다는 그냥 저 혼자 살아도 될 것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렇게 완벽한 나머지 마치 환영같기까지 한 사람을 앞에 내세워서 코엘료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책의 제목에도 쓰인 '마녀', 실제로는 중세 시대의 앞서가는 여성 현자들이었다는 그 '마녀'라는 이미지를 아테나에게 덧씌워놓은 작가가 실은 책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도 아테나가 추구하는 것과 비슷한 것-내가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든가, 완벽성 등등-을 추구하라고 슬쩍 종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는 아테나가 가고 있는 길을 가고싶어하는 사람 중의 하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내내 불편했다. 책 속에서 그녀를 묘사하는 대목 중 '21세기를 사는 22세기의 여자'라는 대목이 있었는데, 사실 이렇게 묘사될 만큼 너무나 독보적으로 마이웨이를 걷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배짱이 없으면 안되는 법인데, 나는 아직 그녀만큼 당당하게 한 보 한 보를 디딜 만한 배짱도 담력도 없기 때문이었다. 흉내는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자유의지의 표상처럼은 난 살 수 없다. 가장 겁없어야 할 스물 여섯에, 나는 생쥐처럼 주변 바스락 소리에 움찔대며 산다. 다수가 가면서 자연스레 정해진 길을 벗어나 이유없이 다들 잘 가려하지 않았던 길목에 굳이 들어서는 사람에게 요즘 사람들은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 사람의 성공 여부에, 그 사람의 생각에, 그 사람의 성격에 각각 여유없이 빠듯하게 잣대를 들이대면서 '그것 봐, 혼자 튀는 짓 하더니 내 언젠가 저럴 줄 알았다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때를 고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유주의가 보편성을 획득한 이 시점에, 사람들은 이상스레 겁이 많아져서 자발적으로 '가던 길'만 가려고 한다. 그리고 '승산 있는' 일만 하고 싶어한다. 어떤 의미에서의 하향평준화다. 그 평준화의 잣대를 상관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들이대기 시작했다. 파시즘의 시작이다. 내 주변의 잠재적인 파쇼를 물리치고 어떻게 그녀같이 그 길을 걷는 성공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인가. 코엘료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든, 이건 어느 정도는 위험한 책이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지금까지 믿고 살아왔던 '내 인생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길 은연중에 요구하기 때문이다. 아테나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온전히 독자들이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것은 선택하고 말고를 떠나 달갑지 않아도 겪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직시하고싶지 않았던 모습, 내 안의 판도라의 상자를 엿본 사람이라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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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으로 믿음을 주는 사람이 있다. 코엘료가 그렇다. ‘포르토벨로의 마녀’의 매혹적인 표지에도 끌렸지만 코엘료라는 이름 때문에 그런 것에 끌리기도 전에 샀다. 코엘료니까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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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코엘료의 책은 연금술사와 11분 밖에 읽어보지 않았지만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내가 읽어본 그의 책들 중에는 단연 돋보이는 책임에 분명하다. 아테나라는-이 시대의 성녀이자 마녀인-매혹적인 여성과 그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러 화자들의 목소리가 잘 어울어져 소설적인 재미가 휼륭했다. 코엘료의 책 중에서도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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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이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바로 그 존재랍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너무 좋아하는 작가라서 신간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너무나도 설레였다. 포르토벨로의 마녀에서도 파울로 코엘료 특유의 종교적인 색채과 여자에 대한 신성한 존중감... 그리고 그것을 통한 깨달음과 삶에 대한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한 것 같다.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아테나로 불리우는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집시의 딸로 태어나 버림받았지만 유복한 집안에 입양되어 커가면서 점차 영적인 존재와 소통하고 매혹적인 춤을 추며 깨달음을 얻어 남들과는 다른 비범한 인생을 살게 된다. 사랑은 그냥 사랑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아테나 역시 그저 아테나였을 뿐이지만 그녀의 관능적인 매력과 선견지명은 곧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과거의 마녀들의 그것과 같게 여겨지게 되고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보다 과감하고 보다 지혜로운 그녀의 말과 행동들이 그녀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눈과 입을 빌어 설명되어지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사소하지만 반전까지 느낄 수가 있다.
언젠가 비오렐과 주말을 함께 보낸 후 다시 데려다 주기위해 갔을 때 나는 결국 아테나에게 물었다. 내가 헤어지자고 말을 꺼냈을 때 어떻게 그렇게 담담했느냐고 "나는 평생... 고통은 조용히 받아들이라고 배웠으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정말이지 그녀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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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료 작가의 글을 읽으면 아..정말로 인생을 아는구나 글 자체가 아주 풍성하다는 느낌을 받곤했다.
그런데 이 책은 서술 방식이 독특한것은 좋았으니 산만하게만 보이고 내용도 벌여놓은것보다는 끝도 허무하다.
책장이 안 넘어가는것을 억지로 억지로 넘기며 읽었다.
그리고 조금은 광고에 혹한거 같기도 하고.빌려서 볼껄 괜히 샀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나중에 이 나라 떠날때 다 도서관에 기증하고 가면 되니까 아깝진 않다.
하지만 끝까지도 뭔가 찜찜..읽고 나서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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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정말 묘한 매력을 가진 여인. 모든 것들 알고 있으면서도 또한 모든것을 모르는 듯이 행동하고. 또 마녀가 갖추어야 할 진정한 영혼의 의미에 대한 배움의 자세를 가진 여자.. 아테나에 대한 주변이의 인터뷰 형식으로 글이 진행 된 것이 지겹지 않게 책장을 넘어가게 한다. 코엘료의 문장은 매우 짧다. 하지만 한 문장 한문장 기억해야할 말이 꼭 담겨져 있으며, 또한 고민하며 읽어야할 흥미 있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