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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노동자당은 2002년 대선에서 룰라를 당선시킴으로써 명실상부하게 국가권력을 쟁취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전면화되면서 유럽의 좌파정당들도 제 3의 길을 내세우며 기존 노선의 변화를 꾀하거나, 약화되어가는 판국에 제 3세계에서 좌파정당임을 공공연히 내세운 정당이 최초로 집권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집권은 세계적으로도 주목의 대상이었지만,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주요한 과제로 삼고 있는 한국 진보 진영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면서, 정치세력화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에서는 정치세력화와 정당 결성, 의회진출은 시급한 당면과제이면서도 오랜 논쟁꺼리였다. 이것은 개량이냐 혁명이냐의 고전적인 주제의 연장선에 있으며 연구와 판단에 중요한 가치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브라질 노동자당은 이런 논란을 피해가지는 못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략적으로 브라질 노동운동은 한국의 노동운동의 경험보다 10여년 앞선다. 한국에서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노동운동이 가시화되고 본격화된 것처럼, 브라질 노동운동도 78년 총파업으로 오랜 군사독재체제아래서의 무력함을 떨치고 하나의 사회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브라질에서는 78년 총파업 이후에 곧 정당의 필요성을 느끼고 조직에 들어가는데 이것이 바로 80년에 창당된 브라질 노동자당이다. 이후 브라질 노동자당은 한국의 민주노총 격인 씨유티를 결성하며 브라질 노동운동의 구심역할을 한다. 브라질 노동자당은 씨유티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사용자에 대항하고, 노동운동의 세력확대를 꾀하고, 선거에의 꾸준한 참여로 창당한지 20여년만에 집권에 성공한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길은 순조롭지 않았다. 현장에서의 투쟁은 순탄치 않았고 선거에서도 이미 89년 대선에서 접전을 펼쳤으면서도 그 후 십년을 훌쩍 넘기고서야 국가권력을 쟁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브라질 노동자당은 현장 투쟁과 노동자 계급의 탄탄한 기반위에 있었으면서도 우경화되어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 브라질 노동자당과 룰라는 이미 그 이전부터 관료적이며 사회민주주의적인 개량의 길을 걸었다는 비판도 받는다. 실제로 2002년 선거를 전후해서는 초국적 자본과 호의적인 관계를 맺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일부 도입하기도 하였다.
브라질 노동자당은 브라질의 노동운동이 한국 노동운동과 유사한 과정을 거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민주노동당과 여러모로 닮은 면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의 고무적인 모델로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브라질 노동자당도 민주노동당이 처한 개량주의, 사민주의, 정체가 모호한 잡탕정당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 브라질 노동자당이 개량주의, 사민주의 등의 딱지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겠지만 브라질 노동자당에 대한 그러한 판단은 다소 성급하고 편협한 판단이라는 생각이다. 브라질은 20세기 말에 군사독재정권의 주도하에 급속도로 산업화된 제3세계국가로서 종속이론이 창출된 곳이기도 하다. 브라질의 자본주의나 노동운동은 기존의 개량이나 사민주의 논쟁이 벌어졌던 서유럽의 역사와 상황과 다르며 고유의 정치사회적 조건과 국제적인 조건으로부터 규정받으며 성장했다. 또 브라질 노동자당은 80년대 이후 브라질에 도입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응하면서 성장해왔다. 브라질 노동자당은 유일무이한 진보정당이 아니면서도 트로츠키 극좌경향부터 사민주의 경향까지 다양한 정파들을 아우르며 현장 투쟁, 지역 운동, 무토지 운동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의회 진출과 국가 권력 쟁취를 시도했다. 실제로 80년대 이래 의회 진출과 지역에서 주지사를 배출하고, 제도 정치영역을 점유하고 활용하며 성장해왔다. 그러한 제도 정치와 정책 활동은 실제로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실현하고 세력을 확장하는데 유용했다.
브라질 노동자당은 공공연히 사회주의를 주장하지 않고, 또 사회민주주의를 부정하면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사회주의 강령은 구체적이지 못하며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포괄적인 문구로 남아있다. 이는 당 밖의 비판은 물론이고 당 내부에서도 극좌파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채상환문제라든지, 민영화등에 관해서도 우경화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각론적으로 타당하면서도 브라질 노동자당의 역사와 미래에 비추어 볼 때 그 실효성이 의심된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성장과 집권은 노동자, 민중과 분리되지 않고 그 열망을 받아안고 지도해나가면서도, 현실 정치영역에서의 세력확장과 집권에 성공한 유례없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유럽의 사민주의 정당과도 다르며 브라질을 비롯한 제 3세계 정치경향인 포퓰리즘과도 다른 것이다.
관념속에서의 이분법적 판단과는 달리 현실에서의 역사는 단선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며 지난한 과정이다. 현실에서의 진보는 머릿속에 그려진 아름다운 모델에 근거하여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모순되고 못난 현실에서의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면서 이뤄진다. 실천은 지극히 현실적인 고려아래서 분석되고 판단되어야 한다.
브라질 노동자당은 신자유주의가 실현되던 80년대 활동을 시작하여 신자유주의가 전면적으로 득세한 2003년 집권에 성공했다. 그들은 노동자, 민중의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분리되지 않으면서 국가 권력과 제도 정치를 장악했다. 그들의 실천은 현실에서의 지난한 과정을 겪어왔고 앞으로도 지극히 현실적인 접근으로 나름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갈수록 폭압적이고 전면화되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응하는 것은 역사적이고 관념적인 모델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새로운 투쟁을 통해서 이뤄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브라질 노동자당은 대안을 상실하고 무기력 해지는 자본에 저항하는 진보운동에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하는 하나의 사례로써 주목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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