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6)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83%
  • 리뷰 총점8 17%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9.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칼 뵘에게 가장 적합한 모차르트 레퀴엠
"칼 뵘에게 가장 적합한 모차르트 레퀴엠" 내용보기
칼뵘의 리드로 연주되는 여러 클래식 곡들은, 그 특유의 느린 템포로, 개인적으로는 선호하는 경향이 아니다. 물론 지지층이 확고하고 그 나름대로의 해석의 특이함은 언제나 새로운 Issue 를 제기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대세이지만 말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의 네빌 마리너에 의한 연주는, 화면이 주는 감흥에 어우러져서 많은 이들의 귀에, 연주 템포와 함
"칼 뵘에게 가장 적합한 모차르트 레퀴엠" 내용보기

     칼뵘의 리드로 연주되는 여러 클래식 곡들은, 그 특유의 느린 템포로, 개인적으로는 선호하는 경향이 아니다. 물론 지지층이 확고하고 그 나름대로의 해석의 특이함은 언제나 새로운 Issue 를 제기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대세이지만 말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의 네빌 마리너에 의한 연주는, 화면이 주는 감흥에 어우러져서 많은 이들의 귀에, 연주 템포와 함께 익숙하게 자리잡고 있고(나 또한 그렇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칼뵘의 일반적인 경향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모차르트 레퀴엠"이라는 걸작에 대해서는 이 모든 것이 뒤바뀐다.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쥐스마이어 버전의 연주 중에, 브루노 발터부터 최근의 아르농쿠르의 연주까지 정말 많은 음반들이 클래식 애호가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지만, 칼 뵘과 빈 필은, 그 어떤 연주에서도 보여주지 못했던 장엄함을 선사한다. 칼 뵘 특유의 느린 템포는, 아마 모차르트 레퀴엠에 가장 적합한 호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특히, 라크리모사 부분을, 모든 조명을 끄고, 이웃과 화합이 가능한 수준에서 가장 큰 볼륨으로 들어 본다면,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무거운 감흥이 촉촉해지는 눈이라는 수단으로 아름답게 드러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 레퀴엠의 최상의 연주반중에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j*****k 2007.12.02. 신고 공감 7 댓글 0
리뷰 총점
천국이 있다면 이 음악을 들을때 그곳이 천국(모짜르트 레퀘엠-칼뵘)
"천국이 있다면 이 음악을 들을때 그곳이 천국(모짜르트 레퀘엠-칼뵘)" 내용보기
이 음악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처음 보았을때였다. 하지만 아마데우스라는 영화가주는 감흥이 매우 크서 이 음악에 대한 기억은 아마데우스라는 영화가 더욱 멋지게 느껴지게 했던...단지 그것 뿐이었다.   그리고 대학1년때 기숙사 생활을 한 나는 음대 4학년생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그 당시 내가 즐겨듣던 음악은 무한궤도 부터 넥스트까지의 신해철
"천국이 있다면 이 음악을 들을때 그곳이 천국(모짜르트 레퀘엠-칼뵘)" 내용보기

이 음악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처음 보았을때였다.

하지만 아마데우스라는 영화가주는 감흥이 매우 크서 이 음악에 대한 기억은

아마데우스라는 영화가 더욱 멋지게 느껴지게 했던...단지 그것 뿐이었다.

 

그리고 대학1년때 기숙사 생활을 한 나는 음대 4학년생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그 당시 내가 즐겨듣던 음악은 무한궤도 부터 넥스트까지의 신해철 음악과 전람회,공일오비,윤종신 등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때부터 즐겨듣던 음악들이라 이들의 노래를 매우 좋아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기독교 신자이던 음대 4학년생 형은

신해철 음악을 사탄의 음악이라고 규정하고 더이상 듣지 못하게 했었다.

그때부터 클래식음악을 듣기 시작 한 것이다. 나에게 유일하게 기숙사내에서 들을수

있는 음반은 그 형이 가졌던 클래식 음반 뿐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반감을 가졌으나 클래식 음반이 그렇치만 그땐 감성도 있고 아주 음악을

쉽게 들을 수있었던 나이였던 것같다. 계속 익숙해지니 클래식이 너무 좋아지고

말았 던 것이다. 그래서 1년을 클래식만 들었던것 같다. 물론 클래식을 들을땐

너무 좋아서 아무일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때는 클래식을 들으며 책을 읽는 다던지하는 다른일을 할수 있으리라 도저히 상상히 되지 않았다. 클래식을 들으면

단지 클래식감상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 들었으니..

 

그리고 처음으로 공연장에서  관람했던것이 이 모짜르트 레퀘엠이다.그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음악은 음악 그자체만으로도 설레이고 눈물나게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때처럼 클래식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잠시 클래식에 미쳐있었지만.. 군대에서의 3년 가까운 세월은 다시 클래식을 들어도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기 충분한 시간이었으며 다시 노력하지 않는한 귀가 터이는 일은 없었다.

최근에 다시 들어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그때 많큼 감흥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클래식을 다시 들어보고자해서 구매한 음반이 이 칼뵘 지휘의 모짜르트 레퀘엠이다. 물론 여러가지 음반들을 샀지만 이음반을 가장 많이 듣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칼뵘의 느릿느릿한 지휘가 레퀘엠의 웅장함과 맞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레퀘엠의 음반중 최고로 치는 음반중의 하나가 칼뵘의 지휘이다.

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카라얀의 지휘에 익숙해져있어서인지 칼뵘 지휘의

레퀘엠을 들을때 답답함을 느꼇었다. 물론 지금은 익숙해져 칼뵘은 칼뵘대로

카라얀은 카라얀대로 모두 좋다.부디 이 씨디가 아주 오랫동안 내귀를 즐겁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예전과 같은 감성이 살아 나지 않아 비록 책읽는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s******3 2009.05.04. 신고 공감 3 댓글 8
리뷰 총점
레퀴엠 - 모차르트의 삶을 떠올리는,
"레퀴엠 - 모차르트의 삶을 떠올리는," 내용보기
신을 위한 ,신을 향한 곡이지..싶은.. 누굴 위한 레퀴엠인지,,진혼곡으로 죽음을 테마로 음반을 모으다 찾은 앨범. 그치만 곡 자체에선, 짙은 죽음보단 경건한 기도가 느껴져서 어쩐지 되려,살아있는 이들을 애도하는 듯이 느껴지는 곡 . 하기야 하늘까지 닿게 끔 연주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것이지 말 그대로 장례용 음악은 아닐테니까.. 울적할때 들어도 좋은 곡..
"레퀴엠 - 모차르트의 삶을 떠올리는," 내용보기

신을 위한 ,신을 향한 곡이지..싶은..

누굴 위한 레퀴엠인지,,진혼곡으로

죽음을 테마로 음반을 모으다 찾은 앨범.

그치만 곡 자체에선, 짙은 죽음보단 경건한 기도가 느껴져서

어쩐지 되려,살아있는 이들을 애도하는 듯이 느껴지는 곡 .

하기야 하늘까지 닿게 끔 연주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것이지

말 그대로 장례용 음악은 아닐테니까..

울적할때 들어도 좋은 곡..

 

y*****7 2015.09.30.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작곡가 자신을 위한 진혼곡- 모차르트의 레퀴엠
"작곡가 자신을 위한 진혼곡- 모차르트의 레퀴엠" 내용보기
소유한 음반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나 그래도 일반인보다는 조금 많이 가진 애호가로서의 원칙중 하나는, 가진 작품이 있다면 일단 다른 작품을 우선해서 구입한다는 것이다. 내게는 이미 실황음반으로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있었고 그래서 일단은 듣지못한 다른 곡들을 듣는 것으로 이 음반의 구입 우선순위는 뒤로 밀려졌다. 하지만 실황음반 특유의 잡음에 약간 질려버렸던 나는 무엇
"작곡가 자신을 위한 진혼곡- 모차르트의 레퀴엠" 내용보기

소유한 음반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나 그래도 일반인보다는 조금 많이 가진 애호가로서의 원칙중 하나는, 가진 작품이 있다면 일단 다른 작품을 우선해서 구입한다는 것이다.

내게는 이미 실황음반으로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있었고 그래서 일단은 듣지못한 다른 곡들을 듣는 것으로 이 음반의 구입 우선순위는 뒤로 밀려졌다.

하지만 실황음반 특유의 잡음에 약간 질려버렸던 나는 무엇에 떠밀리듯이 이 음반을 사버렸다.
안동림교수님의 이 한장의 음반으로 추천되었던 리히터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의 강렬함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레퀴엠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한 노래이다. 하지만 자세히 그 내면을 본다면 죽은 이와 헤어져 지상에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곡이다.

그렇기에 첫 곡 '레퀴엠'(Requiem)에서 떠난 이의 안식을 기원하며 죽은 이의 이별을 슬퍼하는 곡의 분위기는, '진노의 날'(Dies irae)에서 죽음과 그 뒤에 올 심판의 두려움을 보여주다가 '거룩하시다'(Sanctus) 즈음에서 신앙의 힘으로 평온을 되찾고, '천국에서'(In Paradisum)나 '영원한 빛'(Lux aeterna)에서 다시 만날 희망을 기원하면서 곡을 마친다.


하지만 이 곡은 작곡가가 '눈물의 날들'(Lacrisimosa)을 쓰다가 사망하고 그 제자 쥐스마이어가 뒷마무리를 하면서 다른 레퀴엠과는 달리 수미일관의 분위기를 띄고 있다. 

이러한 수미일관은 외형적으로는 쥐스마이어가 모차르트가 쓴 첫곡의 선율로 마지막곡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직접 이 곡을 다 썼다면 과연 분위기가 달라졌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고전주의의 품격과 형식을 잘 보여주지만 극적인 베르디의 레퀴엠만큼이나 죽음의 공포를 앞둔 인간의 두려움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특히 극적이지만 다소 길이가 짧은 '진노의 날' 보다는 '지엄하신 대왕이여'에서 나오는 첫 합창의 절규가 심판자 앞에서 무력해지는 인간의 나약함을 그대로 묘사해준다.

이것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이 작품을 최대한 완성하고자 했던 모차르트의 절박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음반을 받아서 들은 날은 우연히도 법정스님의 입적일이었다.

이 음악을 들었던 내가 좀더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던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칼 뵘이 연주한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고전시대의 품격과 장엄함을 충분히 보여주면서도 섬세한 표현으로 극적인 작품의 감정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내게 있어서 첫음반은 첫사랑과 같이 확고부동한 느낌을 주곤 한다.
그래서 두번째 구입한 음반은 끊임없이 첫음반과 비교되어 들리는지라 구입때도 심히 걱정했었다.
하지만 이 음반의 해석과 완성도는 첫음반의 감흥을 충분히 넘어서고도 남는다.

n*****0 2010.03.14.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처음으로 구입했던 칼뵘 지휘의 Mozart Requiem
"처음으로 구입했던 칼뵘 지휘의 Mozart Requiem" 내용보기
모짜르트를 들은지는 꽤 되었다.   참고로 표기법이 모차르트로 정해졌지만 나는 아직도 모짜르트라고 쓴다.   Mozart를 모차르트라고 쓰면 내가 생각하는 그 Mozart 같지가 않아서이다.   스스로 모짜르트 매니아라고 자처하고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주옥'과 같은 그의 음악은 너무도 좋다.   요즘 유행하는 광고처럼 좋은데... 정말 좋은데... 뭐라 말은 못하겠고
"처음으로 구입했던 칼뵘 지휘의 Mozart Requiem" 내용보기

모짜르트를 들은지는 꽤 되었다.

 

참고로 표기법이 모차르트로 정해졌지만 나는 아직도 모짜르트라고 쓴다.

 

Mozart를 모차르트라고 쓰면 내가 생각하는 그 Mozart 같지가 않아서이다.

 

스스로 모짜르트 매니아라고 자처하고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주옥'과 같은 그의 음악은 너무도 좋다.

 

요즘 유행하는 광고처럼 좋은데... 정말 좋은데... 뭐라 말은 못하겠고... 정말 좋다라며 언어의 한계, 내 능력의 한계, 표현의 한계에 답답함을 느낀다.

 

직접 듣고 느껴보라며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음악들이 있다.

 

물론 그 사람의 단계(?)에 따라 추천하는 음악에는 차이가 있다.

 

남들에게 추천하는 음악이 아닌 내 스스로 너무도 아끼고 사랑하는 음악들이 있다.

 

아마 내 평생 사랑하는 음악이 될 것이다.

 

마술피리, 피아노협주곡 20번, 21번, 24번, 27번, 현악 3중주, 현악 4중주, 현악 5중주, 클라리넷 협주곡, 클라리넷 5중주, 피아노 4중주, 교향곡 40번, 41번, 소야곡, 돈지오반니, 피가로, 그랑 파르티타, 피아노 소나타, 환상곡 등등... 그리고 레퀴엠...

 

지구상의 대부분 사람이 이 레퀴엠 앞에서 숙연해지고 겸허해지리라 생각한다.

 

모짜르트 최후의 작품이며, 결국 모짜르트 손으로 완성되지 못한 K.V 626 d minor Requiem.

 

칼뵘의 이 연주는 내가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Requiem 연주중 최초로 소장한 음반이다.

 

소장하고 있는 Requiem 중 유일한 LP 이다. (나머지는 모두 다 CD 혹은 DVD)

 

구입시기는 내가 중학교 까까머리일 때... (당시는 두발길이를 단속했었다...)

 

다른 음반과 비교하면 많이 느리고 신중하고 장중하다.

 

특히, Rex tremendae 의 템포는 너무도 느리다.

 

이 음반에 익숙하다가 다른 음반을 들었을때 템포의 변경에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기준이 되는 연주인지는 모르겠지만, Mozart 의 Requiem 연주중 어찌보면 가장 Requiem 다운 연주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Mozart 다운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스스로 썼던 이 음반, 음악에 관한 발췌로 리뷰를 마무리하겠다.

 

 

 

=======================================================================

 

음반의 겉은 비닐로 쌓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여 비에 손상을 입을까

두려워 본인은 비를 맞더라도 판은 멀쩡하라고 품에 꼭 넣은채 집으로

돌아왔다. 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가득하여 하늘자체의 색깔이 검게 변한 듯.

아직 어두울 시간이 아니지만 집안에는 형광등이 켜져있었다.

그러나 평소의 형광등에서 느끼던 찬란함은 사라지고 밤의 어둠과 형광등

특유의 파르스름한 음산한 기운으로 집안에는 평소와 같은 저녁 특유의

따스함은 찾을 수 없었다.

까까는 자신의 시베리아 골방으로 들어가 이번에도 신중히 칼로 음반의

비닐을 벗기고 음반의 실체를 드러냈다. 혹시 처음부터 스크래치가 있는지

형광불빛아래 확인을 해봤으나 이 새 음반에는 먼지도 앉다가 미끄러질

정도로 매끈했다.

역시 음반을 새로 사서 처음으로 턴테이블위에 올려놓을때의 그 두근거림과

설레임.....


게다가 이번에는 진혼곡이라 그런지 까까의 얼굴에는 전에없던 경건함과

진지함까지 깃들여 있었다.

 이 음반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감춰져 있을까?

날씨탓인지 다소 감상에 빠진 까까는 바늘을 음반에 올려놓고는 볼륨을

평소보다 다소 높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방의 불을 끄고, 방문을 연채로

마루의 소파에 앉았다.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가 방해를 해서인지 스피커에서 스며나온 음악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안 바닥에 가라앉은채 조금씩 조금씩

흔들리는 듯 했다.

평소의 까까는 놀기좋아하고 항상 방방 들떠있는 듯 하며 맏이임에도

불구하고 묵직하거나 과묵하지 못한 성격이나, 그날은 음산한 날씨탓인지

아니면 성스러운 음악을 만들려는 죽음을 앞둔 어느 음악가의

눈물겨운 노력이 눈앞에 아른거려서인지......


친척들이 별로 없어서일까, 아님 아직 어려서 그런 자리에 참석치

않아서일까?

까까에게는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과의 헤어짐의 기억이 거의 없다.

단지 아주 어렸을때 지금처럼 동생이 많이 생기기 전에 집에는 지금

할머니보다 더 할머니가 계셨다. 부모님께서는 그분이 증조할머니라고

말씀해주셨다.

어렸을 때 '진주할머니, 진주할머니' 했던 기억이 난다.

 

============================================================

 

 

진주할머니께서는 옛날사람처럼 비녀를 꼽으셨고 머리를 감으실때는

머리를 풀어 어깨쪽으로 가지런히 하시고 물에 적셔서는 참빗으로

빗으시곤 하셨다.

안방에서는 진주할머니, 그냥 할머니, 그리고 까까 이렇게 셋이서 자고,

엄마, 아빠랑 애기동생은 엄마&아빠방에서...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니 진주할머니가 그때까지 아랫목에 누워계셨고

이불이 할머니 머리까지 덮여있었다.

'진주할머니 숨막힐텐데...'

꼬마는 자다가 깨면 할머니를 찾곤 했으므로 그날도 할머니를 찾는데

할머니는 뭘 잘못했는지 진주할머니 앞에서 막 울고계셨다.

분위기가 이상해서 엄마를 찾으니 엄마도 울었는지 눈이 빨갛고 계속

훌쩍거렸다.

엄마가 울어서 꼬마도 울었다.

꼬마는 아빠가 눈물 흘리는걸 그날 처음 보았다.

주위에 사시는 친척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들이 아침 일찍

오셔서 다 운다.

그날 아빠는 이상한 옷을 입으셨다. 전에 안하시던 우습게 생긴 모자도

쓰시고...

전부다 하얀색으로 옷을 맞췄는지...

옷감은 별로 안좋았다. 좀 빳빳하고. 하지만 바람은 잘통해 시원하겠다.

주위의 사람들이 전부다 그런 옷을 입었는데 꼬마만 그 옷을 안해줘서

꼬마도 그 옷 해달라고 조르다가 아빠한테 혼이 났다.

버스를 타면 멀미를 해서 가기 싫은데 아빠가 꼬마는 꼭 가야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꼬마는 하얀버스를 타고 아빠 무릎에 앉아 어디론가 갔다.

버스에서는 잠이 들었는지 어느새 하얀버스는 멈춰있었고 친척들은 어느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아침에는 누워계시던, 매일 꼬마 옆에 계셨던

진주할머니가 하루종일 안보인다는 것을 깨닫고 아빠한테 진주할머니

어디계시냐고 물으니 진주할머니는 이제 하늘나라로 가셨다고했다.

친척들이 산에서 뭔가를 땅에 묻는데, 나쁜 아빠는 꼬마만 그걸 못보게하고

아빠만 그쪽으로 가서 울었다. 문득 진주할머니를 땅에 묻는다는 생각에

무서워 울면서도 아빠한테 막 화를 냈다.

 그날밤부터 꼬마는 할머니하고 둘이서 잤다.

 

 

=============================================================

 

 

 어느틈엔가 판이 다돌아갔다.

 뒷면으로 바꾸지 않고 다시 바늘을 올려놓았다.

 집안은 더욱 어두워져갔고, 음악은 어둠과 다투지 않고 서로 협력해서

 집안을 가득 채우는 듯 했다.


 가족을 위해 저녁준비를 하시던 어머니께서 문득 하시는 말씀

 '재성아, 무슨 음악이 그러냐? 꼭...

 장송곡 같다.'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봄이었다.


1997년 12월 4일 23:40

 

누구를 그리며 Requiem을 듣고 있는Wolf/volf/ 정재성

 

 

==============================================================

 

지금도 Requiem을 듣고 있다.

남은 오늘, 계속 Requiem을 들을 것 같다.

이쯤되면 좋아하다 못해 거의 광적이다. 내가 누군가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10년도 넘게, 어느 한 순간도 변함없이....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멋모르던 첫사랑도, 나이들어 해보았던 짝사랑도 이토록 맹목적이진 않았다.

앞으로 어느 누구를 만나 사랑을 한다해도, 그 사랑이 눈먼사랑이라도 그리

길지않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한 이성은 다시 돌아오리라...

나는 계속 맹목적이기엔 너무도 용기가 부족하고 나에 대한 집착이

강하므로...

내가 그를 이토록 좋아하는 것은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하였다.

그의 음악을 사랑하다보니, 그 음악을 만든 그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를

좋아하다보니 그와 닮아지고 싶었다.

짧은 생애동안 그가 이 세상에 남겨놓은 음악은 절대로 굽힐수 없는

나의 이상과 일치한다.

그의 음악을 들을때면 난 어린애가 된다.

난 어렸을 때 참 잘울었다. 기쁜일이 있어도 눈물이 나왔고, 슬픈일이 있어도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나를 감동시키는 일이 있어도 눈물이 나왔다.

그러다 어느때부터 감동도 사라졌고 눈물도 사라졌다. 사라진 눈물에 대한

미련은 없더라도 사라진 감동에 대한 아쉬움은 컸다.

난 이제 더이상 웬만한 자극으로는 감동을 받을수 없다는 사실과, 그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자각이 나를 아연케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를 만났고, 그의 표정, 몸짓 하나하나에 어린애처럼

기뻐하고, 때론 슬퍼하고, 어쩔땐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감동은 그를 만난지 10년이 넘어서도 변함없이 내게 다가온다.

그는 마지막으로 Requiem을 이 세상에 남겼다. 하지만 그것도 완성할

기운이 모자라 울며 중간에 펜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것이 200여년전의 오늘밤이다.

그래서..... 난

오늘밤 계속해서

그의

Requiem을 듣는다.


그의 이름은

Wolfgang Amadeus Mozart
 

 

1997년 12월 5일 00시 05분

모짜르트를 사랑하는 정재성



d******8 2010.07.23.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Karl Bohm 모차르트 : 레퀴엠 (Mozart : Requiem) 칼 뵘
"Karl Bohm 모차르트 : 레퀴엠 (Mozart : Requiem) 칼 뵘" 내용보기
절망과 비통의 미학,(이것이 그대로 쓰여있다..) 모차르트의 스완 송 [레퀴엠] 백조의 노래..라고 되어있지만, 그냥 스완 송..하고 바꾸었다.. 그래봐야.본글 속의  안동림 교수란 분만큼 나는 이 곡을 잘 쓸 수는 없을테니 이 대로 베끼기도 싫고.. 많이 들으신 분들이야..[레퀴엠 하면 역시 ,하고 아실 것이라 여기기에.. 최근에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냥 곡만 사서 듣다가 스
"Karl Bohm 모차르트 : 레퀴엠 (Mozart : Requiem) 칼 뵘" 내용보기

절망과 비통의 미학,(이것이 그대로 쓰여있다..)

모차르트의 스완 송

[레퀴엠]

백조의 노래..라고 되어있지만, 그냥 스완 송..하고 바꾸었다..

그래봐야.본글 속의  안동림 교수란 분만큼 나는 이 곡을 잘 쓸 수는 없을테니

이 대로 베끼기도 싫고.. 많이 들으신 분들이야..[레퀴엠 하면 역시 ,하고 아실 것이라

여기기에..

최근에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냥 곡만 사서 듣다가 스트리밍 에 지겨워져서

CD로 원하는 곡만 반복적으로 실컷 들을 수있는 시스템이 그리워서

그냥 사버렸다.

포레의 곡이..쉽지 않고..구하기..(딱 레퀴엠만 들어있는 앨범 으로)

있었는데 놓치는 경우도 있고..간발의차로..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부터..미사 를 진행해보았다면 익숙한

방식의 흐름이다.

경건이 절로 스며나온다. 나를 위한 곡인데..나를위한 경건..

참 좋은 것 아닌가...나의 준비된 죽음도..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의 말이,

축복의 말이. 울리는 지금...

 

 

 

y*****7 2015.08.1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