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홉 살 주인공 '두리' 이야기 속에 '문래동 비둘기' 이야기가 들어 있고, '문래동 비둘기' 이야기 속에 '시골 아이' 이야기가 들어 있는 이 책은 겹을 이루며 잘 짜여진 구성이 인상 깊습니다. 그림이 내용을 받쳐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튼튼한 구성만큼이나 주제 의식도 뚜렷해 드물게 발견할 수 있는 뛰어난 문학 작품입니다. 뛰어난 문학 작품이 흔히 그렇듯 나 자신의 어느 한 부분도 이야기 속에 담겨져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거리를 헤맨 적이 있습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과 떨어져 공단 지역에 사시는 큰형 집에서 살던 시기. 때마침 이제 막 소년으로 넘어가려던 경계의 시기였습니다. 그네에 앉아 놀이터를 완전히 덮을 때까지 어둠을 지켜보기도 했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며 가로등이 켜질 때까지 걷기도 했습니다. 아홉 살 주인공 '두리'가 돌아다니던 문래동 공장 지대까지 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두리는 학교를 끝마치면 늘 심심합니다. 아버지는 지방으로 돈벌러 가셨고 엄마는 공장 근처 식당에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두리는 엄마를 따라다닌다는 핑계로 공장을 돌아다닙니다. '검붉은 용접 불꽃이 멋있는 보일러 공장, 파란 불꽃이 쇳덩이를 두부처럼 자르는 철판 공장, 빨갛게 달구어진 쇠를 두드려 엿가락처럼 만드는 공장을 구경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고가도로 밑에 비둘기들이 사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비둘기들에게 날마다 먹거리를 갖다 주시는 할아버지도 알게 됩니다. 할아버지는 '물고기가 물에서 살 듯, 비둘기들도 원래 살던 자연에서 살아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길들여져 도시에서 살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하십니다. 비둘기 한 마리 한 마리의 특징을 알 정도로 애정도 깊습니다. 특히 오른쪽 발은 없으며 왼쪽 발가락도 두 개 밖에 없는 비둘기와 그 비둘기의 암컷인 애꾸눈이 비둘기에게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두리는 비둘기가 왜 발을 잃었는지에 대해 물어봅니다. 시골에 한 아이가 살았답니다. 아버지와 엄마, 세 명이나 되는 동생과 함께 살았습니다. 가난해도 행복했던 아이는 아버지가 탄광으로 일하러 갔다가 병에 걸리는 바람에 결국 돈을 벌러 도시로 떠났습니다.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열심히 일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려는 생각에 철공장으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아이는 대부분의 철공장 노동자처럼 그만 기계에 손을 다칩니다. 오른손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왼손은 약지와 새끼손가락만 남았습니다. 아이는 너무 크게 충격을 받아 이내 사라져 버립니다. 어느 다리 밑 움막에서 얼굴이 흉하게 생긴 여자와 구걸을 하며 산다고도 하더니 끝내 어느 겨울에 움막에 불이 나 타 죽었다는 소문이 돕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문래동 비둘기들 틈에는 한쪽 다리가 없는 비둘기와 얼굴이 일그러진 비둘기 한 쌍이 끼여듭니다. 얼마 뒤 고물장수 할아버지도 나타나고 할아버지는 비둘기들에게 날마다 먹거리를 가져다주는 정성을 기울입니다. 지방으로 돈벌러 갔던 아버지가 돌아와 두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못 충격입니다. 고물장수 할아버지는 예전에 집 나간 아들을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두 손을 못 쓰는 아들을 찾으려는 할아버지는 탄광촌에서 왔다고 하는데 몇 년째 공장 근처만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아들과 비둘기가 실상 동일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 대목에서 우리는 강렬한 감동을 받으며 작가의 생명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