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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에세이류의 글을 잘 읽지 않는 취향이라 2002년의 화제작이었다는 지은이의 첫번째 글모음인 '야생초 편지'를 읽지 않았습니다. 서점에서 우연히 보게 된 유난히 흰 바탕의 깔끔한 표지가 눈에 띄어 이 책을 열어 보았습니다. 처음 보는 책을 열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지은이 소개를 보고서야 이 책의 지은이 '황대권'이 누군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서른살 되던 해인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 징형을 선고받아 1998년까지 13년 2개월을 교도소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쪽에 비교적 해박한 남편에게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으니, 5공화국 시절 그렇고 그런 용공조작사건들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이 책은 지은이가 힘들고 고단한 수감생활 중 카톨릭 신앙을 갖게 되고, 그의 신앙생활을 도와준 '디냐'라는 세례명을 가진 분에게 보낸 편지글을 모은 책입니다. '디냐'자매님은 지은이가 서문에 밝힌 바와 같이 13년이 넘는 오랜 수감생활 중에 가족을 제외하고 가장 오랜 기간인 10년이라는 세월동안 그의 곁에서 그를 다독거려 준 신앙의 거울이자 진정한 멘토였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지은이의 깊은 사유를 느낄 수 있는 글도 좋았지만, 지은이의 글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디냐'자매님의 모습도 훌륭했습니다. 이 서간집에는 역경에 처한 한 인간이 신앙을 매개로 어떻게 두 발로 다시 서게 되는지,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렵고 심각한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는 책은 아닙니다. 교도소 내 종교방 운영 이야기, 교도소 사람들의 이야기, 수감생활의 단상, 어지러운 바깥소식에 대한 생각 그리고, 자매님의 안부를 묻는 것 또한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같은 인간으로서 열린 마음으로 읽는다면 의미있는 책읽기가 되는 좋은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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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 황대권님의 <야생초 편지> 이후 두 번째로 만나는 그 분의 글입니다. 야생초에 대한 그 분의 특별한 사랑과 관심이 마치 소외된 계층에 대한 연민처럼 느껴졌습니다. 단순히 야생초에 대한 이야기뿐이었지만 우리가 그냥 ‘잡초’라고 부르며 무참히 밟고 뽑아버리던 야생초를 고귀한 생명으로 대하는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들 중 소중하지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요? 바우님의 편지를 읽으면서 그 분의 따스한 마음이 신앙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바우님이 영세를 받고 신앙 생활을 하게 도움을 주었던 디냐 자매님과의 편지를 엮어 만들어진 것입니다. 서른 살 나이에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십삼 년 이 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 신앙적인 소통을 하였던 디냐 자매님과의 서신입니다. 우리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고 깊은 사랑의 관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우님도 한 서신에서 “사랑하는 디냐 자매님께”라고 쓰고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신앙을 통한 나눔을 뜻합니다. 서로 간의 편지를 통해 신앙의 본질과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하는 두 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신앙 편지라서 자칫 신앙과 무관한 분들에게는 지루한 종교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부디 그런 편견을 버리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나라를 망치고 있는 것이 이런 편견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치적으로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남과 북의 정치적 대립으로 우리 머리 속에도 삼팔 선이 그어져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으로 치부해버리는 현실처럼. 바우님이 감옥 생활 중에 믿은 것은 하나의 종교를 넘어선 깨달음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는 신앙인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저의 종교관을 말하자면 종교는 믿는 수단일 뿐 신에 대한 믿음은 하나라는 생각입니다. 무얼 믿느냐보다는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사랑을 주었듯이 우리도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해 사랑할 수 있다면,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이 세상이 천국일 거라고 말입니다. 이 세상은 온통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다투기 때문에 어지럽습니다. 바우님 자신도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치욕적인 고문과 오랜 감옥 생활을 하면서 분노와 절망을 느꼈을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바우님은 그들에 대한 증오심이나 복수심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고, 이상하게도 고문을 당하면서 그들이 밉기 보다는 가여웠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일 테니. 바우님이 말하는 신앙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겨나는 온갖 감정과 일들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바우님이 디냐 자매님께 보낸 편지만으로 엮여 있어서 디냐 자매님의 글은 볼 수 없지만 분명 바우님의 글처럼 따뜻함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종교는 신과 인간의 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바우님의 서신을 보며 그 분이 말하는 신앙에 공감하게 됩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은 인간에 대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부당하고 절망적인 삶에서 희망을 끌어올리는 바우님의 모습을 보며 많이 부끄러웠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바우님은 육체적으로 감옥에 갇혀 있을 망정, 정신과 마음은 누구보다 자유인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야말로 ‘자기애’, ‘이기심’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름다운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바우님과 디냐 자매님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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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를 나오고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간 한 사람이 있다. 젊은 나이에 앞날은 너무도 눈부시게 맑고 주위의 부러움을 한껏 받는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조작된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갇힌다. 아내는 떠나버리고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투사가 된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고 신에게 다가가기보다 신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 “왜 그 많은 사람 중에 내가... ”하면서 하루아침에 뒤바뀌어버린 현실을 인정하기란 어려웠으리라. 신앙이 있던 사람도 오히려 자신의 어긋난 운명에 신을 저주하고 신앙을 버리고 복수의 칼을 갈았으리라. 하지만 황대권은 그 투옥된 그 해 감옥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4년 뒤 1989년 그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 준 디냐자매에게 첫 편지를 보낸다.
“ 대철 베드로입니다. 그냥 바우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사실 제가 편지를 쓰는 것은 자매님의 깊은 신앙심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자매님의 인자하면서도 초롱초롱한 눈매가 신앙에 대해서 서슴없이 여쭈어 보고픈 느낌을 갖게 합니다.”(본문중)
1989년 11월23일 첫 편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신앙의 멘토를 정하고 10년 동안 편지를 쓰게 될 첫걸음의 순간이다. 그에게는 종교가 삶과 죽음의 문제였기에 멘토를 정함에 있어 엄격했을 것이다. 처절하고 극적인 순간에 세례를 받은 그이기에 편지에 나오는 그의 신앙생활은 치열하고 열성적이다. 감옥 안에서 책읽기, 그림그리기,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철저한 생활을 한다. 그런 그에게 디냐 자매와의 만남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필연적이었다.
“제가 보기에 자매님은 바로 그런 거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저하지 않고 제 안의 내밀한 반성과 기도를 ‘디냐거울’에 비추어 보았던 것입니다. 이런 거울을 제 곁에 구비해 놓으신 하느님께 진정 감사드립니다 -188p-"
거울이 있어야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있듯이 자매를 거울삼아 자신의 신앙생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반성해나간다.
편지형식이라서 그 순간순간의 저자를 만나는 것 같은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책을 읽기 전에 편지들의 내용이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고차원적 문제에 있지 않을까 염려했다. 하지만 몇 장 읽기도 전에 그런 걱정은 없어졌다. 그가 신앙을 택하게 된 동기는 보통사람들과 많이 달랐지만 신앙을 가지면서 고민했던 생각들은 일반신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신앙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환경, 자연치유법, 야생초 등에 대한 글들도 실려 있다.
천주교용어들이 많아서, 용어설명이 잘 돼 있기는 하지만,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다소 있다. 편지들은 어느 정도 일정한 형식을 보여준다. 시작은 감옥 안에서의 종교생활이나 일상적일 일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후반부에 그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이나 신앙의 의미를 찾아내고 마지막으로 자매에게 안부를 전하며 끝을 맺는다. 놓쳐버리기 쉬운 특히나 감옥 안에서의 생활이지만 그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지기보다 푸근해지고 따뜻해졌다. 역경을 이겨내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과는 다른 더 인간적이고 깊이가 있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여러모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떠오르게 한다. 편지형식이라는 점, 억울하게 옥살이 하면서도 그 고난의 시간을 오히려 내면적인 성숙의 시간으로 승화시켰다는 점, 책속의 문자적인 지식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 글씨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점 등이 유사하다. 공통점을 열거하고 보니 비슷한 점이 참 많다. 신영복님은 사색을 통한 자아성찰을 한 반면 황대권님은 신앙을 통해서 했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가을이라 그런지 편지로 된 글이 더욱 보고 싶었는데 거기다 신앙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금상첨화였다. 올 가을에는 떨어지는 낙엽에도, 노을 진 하늘의 붉게 줄지어 서 있는 구름에도, 오랜만에 걸려오는 반가운 친구의 목소리에도 실려 있을 신의 섭리를 느껴봐야겠다. |
![]() 황대권의 10년에 걸친 신앙 편지
황대권. 그의 프로필을 보았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 MBC 느낌표(!) 선정도서 <야생초 편지>를 쓴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매스컴의 위력이 대단한 걸까. 단지 내가 읽고 싶었던, 잘 알려진 낯익은 책을 쓴 작가라는 것만으로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집어들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 책도 좋을 거란 기대를 막연히 안고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야생초 편지>를 먼저 읽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작가와 책에 대한 평가가 조금은 더 후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를 이해하는 데 한 작품만 읽어보고 평가한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편협한 사고에 치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야생초 편지>도 읽어보고 싶다. 책 안쪽 날개에 실린 사진을 통해 그를 처음 본 느낌은 가톨릭 신자가 아닌 세상의 도를 깨우친 도인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선하게 웃는 그의 소박한 모습이 책의 내용보다도 더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일기보다 더 자세히 써내려간 편지글의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 표지의 소제목이 말해주듯` 황대권의 신앙편지´ 모음인 것이다. 출소한 뒤 10년이 지난 상태에서 월간<생활성서>의 부탁을 받고 신앙 에세이를 쓰다가 뜻하게 않게 발간한 책이다.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형을 선고받고 억울하게 1985년부터 1998년까지 십 삼년 이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하면서 그가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던 건 깊은 신앙심과 1989년부터 1997년까지 디냐 자매님과 주고받은 이 편지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고 혼자 추측해본다. 그 당시 보안법 위반으로 들어온 공안수들은 일반 재소자와 격리되어 독방생활을 해야 했고 공장 출역도 금지되었다. 오로지 종교방에서의 생활이 보장된 상태에서 가끔 집회 때 뵙는 신부님과 수녀님들, 그리고 디냐 자매님과의 편지 교류는 그에게 유일한 행복이었으리라.
'한 사람과 10년 동안 지속한 옥중에서의 편지라?' 그 10년이라는 기간만으로도 이 책의 탄생은 참 대단한 것 같다. 편지 내용은 주로 감옥내 종교방 운영과 관련된 가톨릭 이야기들이고 자매님의 안부를 묻는 것 또한 빼놓지 않고 있다. 그는 신앙의 본질을 이야기하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는 사랑의 비유를 인용한다. 신앙인의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얼마든지 여유롭고 넉넉하게 서로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둘 사이의 관계는 하나님을 통과하면서 더욱 가까워지고 긴밀해진다는 것이다.
누구나 / 몸에 걱정 하나 / 마음에 병(病) 하나를 / 깊이깊이 묻고 사나니. / 그 몸 아픔, / 그 마음켕김. / 걱정도 그윽해지면 / 영혼의 노래 되고, / 병도 잘 다스리면 / 육신의 복음(福音) 되나니. / 거기에 이르는 길은 / 오직 사랑뿐. / 그 밖의 다른 구원을 / 얻으려 하지 말라. - 김대규님의 '사랑 잠언' 전문 (227쪽)
그의 편지 속에 묻어나는 디냐님에 대한 마음은 순수하다. 하나님 안에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평행선을 그어 놓은 관계처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다가가는 그의 모습이 애틋하면서도 아름답기까지하다. 디냐님은 가족 이상으로 그에게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어주는 존재였다. 그에게 참 특별한 존재였던 디냐 자매님이 건강상으로 안 좋은 일이 생겼다. 1995년 2월 이후에 쓰인 편지를 읽다보면 그녀가 암 수술을 받고 입원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수술 후 건강이 많이 좋아져 일상생활이 가능해진 건 참으로 다행이다. 천사같이 고운 성품을 지닌, 세 딸과 늦둥이 아들을 둔 엄마의 신분으로 인간의 의술로도 어찌할 수 없는 병에 걸렸다면 그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만으로도 힘이 들기에 말이다. 늘 자매에게 정신적,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았던 그가 보답이라도 하듯 건강과 관련된 서적을 탐독해가며 자매에게 도움을 주려는 그 마음이 보기 좋았다. 책들을 읽으며 감동한 나머지 '암에 걸려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망령된 말을 하는 그 모습조차도.
한때 기독교인이었던 나는 이 책을 접하면서 가톨릭 용어에 생소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저자가 용어 옆에 괄호를 달아 부대설명을 하지 않았다면 그 용어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라 많이 답답했을 것 같다. 천주교 외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종교적인 시각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그리 큰 감동을 하지 못할 수도, 아니 나와 상관없는 종교 이야기라 따분하게 여길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편협한 마음을 비우고 같은 인간으로서 열린 마음으로 이 책을 대한다면 잔잔한 감동이 밀려올 것이다. 8쪽에 수록된 그의 자필편지만큼이나 포근하고 정겨운 책이다.
2007/10/11
Written by Das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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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 올림』의 저자 황대권님의 대표작은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야생초 편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서 2002년 『야생초 편지』가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가 되어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름이다.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장 신앙의 멘토를 만나다 _ 1989년에서 1990년 디냐 자매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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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그의 이름에서는 자그마한 풀내음이 풍겨온다. 이미 '야생초편지'로 많은 이들의 가슴에 잔잔한 따스함을 전파해준 이가 이번에는 감옥 안에서 썼던 편지들을 가지고 찾아왔다. 그것도 신앙 편지. 따스함이 폴폴 풍겨나오는 편지들은 어디를 펼치든, 짧은 시간에 읽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참고로 내가 책을 읽은 곳은 화장실이었다. 그 덕에 아침에 5분 지각도 많이 했다. 한 장만 더, 한 장만 더 하면서 읽다보면 변기에서 엉덩이를 뗄 수 있어야 말이지.
천주교를 오래 믿어왔기에 그의 말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친숙하다. 고등학교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신앙에 묻혀 살아온 시절의 추억과 느낌들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각박한 현실 속에서 신은 어느새 내게 멀어져있었다. 그렇다고 그걸 자책하거나 안타까워하는 건 아니다. 그저 순리로 여겨질 뿐이다. 그런 가운데 이런 신앙 편지는 오랫만에 옛 느낌들을 되살려준다. 아쉬운 건 그렇다고 해서 다시 신앙을 가지고 싶지는 않다는 것. 이미 너무 세속에 발을 깊이 들여놓았나보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쉬워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 신앙인이 된다는 건 무척이나 험난한 길이라고 여긴다.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야하기 때문이다. 화내는 것도 참아야하고,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하고. 때로는 자신이 가식덩어리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런 고난의 시간을 거친 후에 자신을 되돌아보면 훨씬 좋은 사람이 돼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싸움이 끝난 건 아니지만. 이런 싸움들이 황대권의 편지 속에서 드러난다. 공소를 이끄는 사람으로서 다른 제소자들의 신앙을 이끌어가는 데 드러나는 어려움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달에 영세받은 형제들 중 몇몇이 벌써 신앙적 갈등에 휩싸여 있습니다. 영세를 받았으면 뭔가 변호가 있어야 하는데 예전과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차라리 영세를 받지 않았으면 이런 불편함은 없었을 것이라며 오히려 영세받은 것을 큰 부담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종교를 믿어야한다든지, 종교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건 구역질나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런 목소리가 없다. 그래서 읽기가 편안하다. 단지 자신이 믿음으로써 좋은 점을 조곤조곤 이야기할 뿐이다. 그 어투의 사이사이에는 평화로움이 배어있다. 종교인의 향기라고 할까. 읽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맑디맑은 이슬 같은 책이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오랫동안 하면서 세상 누구보다 현실을 원망할 것 같은 저자가 이렇게 세상 누구보다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 역설은, 큰 고난일수록 사람을 강하게 한다는 잠언을 문득 떠올리게 한다. 그의 인품을 닮고 싶다는 마음을 통해 그가 좋아한다는 '평화의 기도'가 가진 뜻이 새삼 새롭게 느껴지는 밤이다.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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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름 모를 야생화와 들꽃들을 참으로 좋아한다. 언제부터 이들을 좋아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황대권님의 [야생초 편지]라는 작품을 읽은 직후부터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정성스럽게 그린 예쁜 꽃들의 그림과 갱지에 적힌 글에서 전해져오는 풋풋함과 쓸쓸함에 가을을 느끼기도 하고 나도 야생초들에 대한 공부를 해볼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에겐 온통 좋은 기억들만 남아있던 독서였기에 이런 황대권님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은 정말로 반가웠다. 책을 보고 "어라?"라는 말을 뱉어버린 이유는 이 책이 신앙생활에 대한 수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가 없기에 특정 종교들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은 없지만 내가 이 책을 가슴 속 깊이 읽어 낼 수가 있을지 걱정이었다. 분명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으리라는 걱정 속에 나는 조심스럽게 황대권님과 다시 한 번 만나게 되었다. 책의 소개 글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그 분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시던 시절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받아들이시고 자원봉사자인 디냐자매님이란분께 십 년 동안 썼던 편지들을 모은 책이라는 것이었다. 십 년이라는 시간 앞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 꾸준하게 끊이지 않고 이어온 두 분의 우정의 편지는 끝없는 이야기처럼 길고도 길게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감옥에서 생활하다보면 그 죄가 깊던 얕던 아니면 유죄이건 무죄이건 종교생활을 하고 싶어지는 것 같다. 무언가 붙들고 싶고 용서받고 싶은 사람의 마음 때문이리라. [바우 올림]이라는 책을 통해 황대권님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알아가는 기분이었다. 이 책은 전도의 목적으로 쓰여 진 건 아니지만 종교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단언컨대 내가 만난 것은 종교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황대권님과 디냐자매님의 서신 속엔 그들의 삶이 녹아 있었고 그것은 생물학적인 성을 뛰어넘어 인간과 인간사이의 아름다운 우정이었다. 성별과 나이를 떠나 이토록 아름다운 인연을 맺으신 그 분들의 우정이 부럽고 질투가 났다. 그것을 엮어준 것은 종교이지만 유지시켜준 것은 종교뿐 아니라 두 분이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기회이다. 하지만 나는 [바우 올림]을 통해 한 번 더 황대권님의 만나 그 심연 속의 아픔과 삶에 대한 의지 그리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살내 나는 소중한 인연의 끈을 느낄 수 있었다. 신앙편지라고 지레 겁먹고 읽지 않는 이들이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되지만 어느 곳에서나 사람의 진심은 통하는 법이기에 부디 이 책이 야생초 편지처럼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가을 황대권님의 손에서 디냐자매님의 손으로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온 이 편지는 어떤 선물보다도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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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 올림/황대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맑아지고 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다.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주고받는 이야기가 논리적이지도 않아도 이야기를 나누는 속에서 지난 나의 부족했던 삶을 돌아보게 되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기다려진다.
책도 비슷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답답해지거나 묘한 황홀경에 빠져 금지된 욕구들을 샘솟게 하는 책도 있고, 내용이 재미있지 않아도 한 장 한 장 책을 넘길 때 마다 마음이 편한 해 지는 책이 있다. 나에게는 신영복 선생님의 책이 후자의 경우다. 감옥이라는 외부와 단절된 공간 속에 있으면 외부로 뻗혀갈 인간의 촉수가 자신 내면을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내면을 파고 들어가면서 만나는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인 성찰은 담담하면서도 삶의 진리를 보여준다. 구미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어, 인생의 가장 황금기와 같은 30대를 감옥에서 보낸 <바우올림>의 저자 황대권님의 글에서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운 대상인 자기 자신을 향한 치열한 탐구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잇는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글이었다.
책은 지은이가 수감되어 있는 동안 신앙의 구도자 역할을 했던 디냐 자매에게 보낸 작가의 편지글 모음이었다. 예전에 작가의 또 다른 책인 “야생초편지”를 읽으면서 느꼈던 아기자기함도 있었고, 신앙인으로서 첫 발걸음을 걷는 고민의 흔적들도 담겨 있었다.
나도 작가와 같은 카톨릭 신자다. 신앙심이 굳건한 어머니가 태어나자마자 유아세례를 받게 하셨고, 중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성당에 꽤 열심히 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점점 멀어졌고, 10년이 훌쩍 지나 군대 훈련소에 있을 때 맛난 간식의 유혹에 끌려 성당을 다시 찾았다. 군대라는 공간에서 마주한 성당은 작가가 감옥에서 마주한 성당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군대와 감옥의 공통점은 어쩌면 살면서 절대 만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몸과 마음을 부대끼며 만나게 되는 곳이고 그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에 대해 다시금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묘한 감정이 교감을 느끼며 책을 읽다보니 작가의 마음이 조금 더 깊이 전달되는 것 같았다.
작가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면서도 또 가장 냉정한 카톨릭 비판자이게도 했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은 요즘에 우후죽순처럼 많아지는 종교단체 사람들이 한번 쯤 꼭 읽어봐야 할 부분이라 생각되었다. 예전 틱낫한 스님과 베리건 신부의 대화를 기록한 “평화이야기”라는 책에서 틱낫한 스님은 “불교라는 종교보다 평화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말을 했었다. 이 책에서도 기독교의 “오만과 무지”를 경계하는 글이 있었는데 그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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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올림' 이란 책제목을 보며 황대권씨의 세례명이 바우라는 것과 이것이 또한 그의 편지글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야생초 편지에 이어 읽게되는 그의 두번째 서신글이다
이 책은 그의 신앙의 멘토인 '디냐 자매님'과 그의 길고긴 -1989년부터 1998년까지 보낸 편지글이다.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생활에서 만난 그의 신앙.. 하나님을 나는 느끼고 싶어 이책을 집었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때 그리고 그의 삶을 다시 들여다 보며 생각나는 사람은 신윤복씨와 성경의 요셉이다. 성경의 요셉을 보면 그 또한 억울하게 누명을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젊은 나이에 타지에 나와 고생하는 것도 서러운데 충직하게 일하다고 주인의 아내를 희롱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그 또한 얼마나 간절히 감옥에서 나가기를 희망하지만 매번 좌절하게 된다 그치만 성경의 구절에서 요셉은 늘 하나님이 늘 요셉과 함께했다고 쓰여 있다. 그치만 요셉이 그것을 믿기에 얼마나 많은 믿음이 필요했을까...
황대권씨의 감옥에서의 삶을 보면 그는 자유인 못지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자신의 계획대로 폭넓은 독서와 공부를 하고 야생초화단을 가꾸고, 그림을 그린다. 너무 많은 것에 노출되어 있는 내가 이것저것 하다 아둥거리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통제된 삶가운데 자신의 질서를 정하고 살아가는 모습의 글을 접하며 나의 삶을 다시 정리하는 기분을 가지게 되었다.
교도소내에서 그는 공안수이라는 이유로 독방을 써서 다른 수감자들과 잘 교류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다른 사람들을 전교-기독교로 말하면 전도인듯- 하려는 모습, 그곳에서 나름대로 신앙의 공동체를 운영하며 겪는 어려움들 가운데 하나하나 일구어 가는 모습또한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꼈다.
황대권씨와 서신을 주고받는 '디냐'자매님에 대해 글에서 추측할 수 있는 건 그가 딸 셋과 늦둥이 아들 임마누엘을 둔 평범한 가정주부라는 것에 조금 놀랐다. 책을 읽기 전 난 그저 수녀님이 겠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평범한 가정주부께서 이곳 교도소로 봉사나가셨다가 황대권씨를 만난 것이 아닌가 한다. 조금은 두렵고 쉽게 사역하기 힘든 곳을 나가신 디냐자매님역시 아주 멋진 주부이지 않을까 싶다 환경을 생각하고 어려운 성경교리 공부를 하며 또 그분과의 서신에서 시대의 논리를 대화하는 그분 또한 넘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디냐자매님의 건강이 어떤지 궁금해 하며 이 책을 덮는다
....중간에 서신의 날짜가 바뀐건지 아님 서신이 바뀐건지 출판사측에서 확인 바랍니다 . p172 1993년 6월 2일 중년의 문턱 들어서며 p174 1993년 3월 12일 엄격한 자기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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