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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의 冊이야기 2016-083
【 카운터 컬처 】 데이비드 플랫 / 두란노
같은 성경책을 보면서도 마음에 받아들임이 달라질 때가 있다. 그 때 그 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새롭게 다가오는 경우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한 생명력을 얻으려면 먼저 내 마음의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받아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집을 그대로 마음 그릇에 담아 놓은 채 말씀을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말씀이 내 안에서 생명력을 얻으면 열정이 생긴다. 이렇게 살아야 할 때가 아닌데, 이렇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는 마음이 생겨야 정상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나의 삶이 하나가 될 때 참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다. 가짜가 아닌 진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특정한 사회문제에 열정을 드러내는 걸 보면 적잖이 격려가 되는 반면, 똑같은 크리스천들이 또 다른 이슈에 대해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걸 보면 상당히 걱정된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남다른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영적으로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살고 있지만, 몸은 이 땅을 밟고 서서, 이 땅의 문제들과 맞서면서 살아가고 있다. 크리스천이 아니라도 정의와 불의에 대한 입장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인간은 누구나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분별력이 상실되어서 일간지 사회면 한 귀퉁이에서 시선을 모으는 경우도 자주 있긴 하다). 《래디컬》을 통해 이미 국내 독자들에게 친숙한 이 책의 지은이 데이비드 플랫 목사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길 원한다. 낙태, 가난, 고아와 과부, 성 착취, 결혼, 성윤리, 인종차별, 아직도 복음을 접하지 못한 이들 등에 대해 복음이라는 거울을 놓고 그 모습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특히 크리스천들이 동성애나 낙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염려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크리스천들이 그저 사회적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을 품으실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3)
복음에 근거한 우리의 삶은 어찌해야할까? 지은이는 이렇게 권면한다. 부지런히 일하고, 단순하게 살며, 희생적으로 베풀고, 건설적으로 돕고 영원한 일에 투자하면서 살아가는 삶. 그러면서 기도하고, 사회의 어둠을 복음의 빛으로 밝히는데 참여하되 복음을 선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포하는 삶은 나 자신이 방관자에서 참여자로 변화되는 삶이다.
특별히 마음에 담는 부분은 “사람에게는 관용하되 믿음에서는 불관용하라”는 메시지다. 내가 하는 잘못은 ‘그럴 수도 있지’이고, 남이 하는 잘못은 ‘그럴 수가 없지’라는 마음을 품고 살아온 적이 많았다. 믿음은 그 때 그 때 내 안에서,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겐 관용하되 믿음에서는 불관용하라는 말은 이 땅을 떠나기 전까지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람에 대한 관용과 믿음에 대한 관용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불관용에 얽힌 혼란을 적잖이 정리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관용에는, 상대를 동등한 가치를 가진 존재로 인정하면서 사사로운 신앙을 공적인 자리에서 거침없이 표현하는 기본적인 자유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믿음에 대한 관용은 다르다. 누군가가 특정한 신앙을 표출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 신념이 참되거나, 옳거나, 선하다며 이편과 마찬가지로 타당하다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를 관용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관점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이다. 개인의 분별력과 결단력이 많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문화를 거스르고 복음의 길을 걷기로 결론을 내리면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일단 판단이 선 뒤에는 더 이상 눈길이 가장 편안한 쪽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더없이 영화롭게 하는 방향에 고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이 줄 수 있는 최대치보다 훨씬 큰 상급을 주님 안에서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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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컬처 : 복음과 문화가 충돌할 때 |데이비드 플랫 저 / 최종훈 역 | 두란노
「카운터 컬처」는「래디컬」,「래디컬 투게더」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깊이 각인된 데이비드 플랫 목사의 신간이다. 데이비드 플랫 목사에게 교회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방을 뒤흔드는 공동체’ 이다. 그에게 크리스천이란 하나님으로부터 한 사람 한 사람 독특하게 지음 받아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따라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역은 말씀을 가르치고 멘토가 되고 복음을 전파하는 ‘제자 삼기’라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데이비드 플랫 목사의 목회 철학의 소산이다. ‘복음과 문화가 충돌할 때’라는 부제에서 보듯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 받은 이들이 세상에서 전통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파고드는 우상들과의 영적전쟁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에 대한 답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동성결혼, 성 노예, 이주민, 박해, 낙태, 포르노그래피 등 세상의 음지에 서식하는 문제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동성결혼 문제는 어느 덧 우리나라에서도 민감한 이슈로 떠올랐고, 수많은 해외 노동자와 북한이탈주민들이 정착해가는 우리네 현실에서 이주민들에 대한 처우 문제 역시 남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소수자들의 인권 보호, 인류의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악용해 반성경적인 문화가 이 땅을 덮어가고 있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의 문제만 보더라도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다름과 차이’의 문화를 인정하자는 미명 하에 소수자들의 인권이 신장되면서 이젠 당당하게 법적 권리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크리스천들은 대부분 이러한 문제 앞에 기도가 최선이라고만 생각한다. 열방을 움직이는 골방의 기도는 물론 기본이다. 거기에 복음으로 무장하고 나아가 시대를 장악하려는 쟁점들에 대하여 정확하게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데이비드 플랫 목사는 문제 앞에 침묵하는 것은 죄라고 단언한다. 입 다물고 외면하는 것도 세상의 조류에 동조하는 의사표시기에 그가 주장하는 대안은 더 적극적이고 혁신적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복음’을 선포하고 전파하는 것이다. 진리를 말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복음이다. 이제 ‘크리스천들이 일어나, 오늘날 가장 치열하게 논란이 오가는 이슈들보다 한층 더 급진적인 복음을 선포할 때’ 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혁신적인 복음을 들고 행동하는 크리스천이 되어야할 이유에 대해 ‘예수를 구주로 고백했다면 그분이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일을 왜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질문 안에 내재된 답을 보게 한다. 복음전파는 모든 크리스천들의 사명이고, 그 속에는 사실 이 세상에 난무하는 문제에 대한 혜안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데이비드 플랫 목사는 세상의 문제가 복음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외면하거나 적당히 논쟁하고 침묵하려 들지 말고 복음을 들고 세상의 문제 깊숙이 들어가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논쟁적 이슈에 대해 싸우기보다 침묵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중립적인 태도는 개인의 권익 중시, 새 시대 문화의 조류라는 미명에 숨어 세상에 범람하는 죄악을 묵인하고 용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침묵은 결국 세상에 침투하여 누룩처럼 번져가는 죄악에 동조하는 것이다. ‘카운터 컬처는 문화의 진보를 핑계 삼아 선악의 기준을 바꾸려는 시대정신에 복음으로 맞서라’는 것이다. 세상에 침투한 죄악은 그것을 죄라고 인식하기도 전에 전통과 문화라는 탈을 쓰고 진화하여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어간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진리는 단순하고 유일하며 불변한다. 그래서 복음과 문화는 충돌한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흐름을 좇지 말고 ‘성경의 가치를 사수하라’ ‘복음으로 길을 내라’고 주장하는 데이비드 플랫 목사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세속을 등진 종교인이 아니라 세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복음을 들고 행동하는 크리스천, 실천하는 크리스천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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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플랫 목사는 ‘래디컬’이란 책으로 기독교계에게 강력한 도전을 준 분이다. 메시지에 타협이
없다. 있는 그대로를 전하기에 그 메시지는 새롭고 신선하기 까지 하다.
믿음을 적당히 교회나 오고 가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히며 강력하게 도전한다. 이번 책, ‘카운터컬처’ 또한 그 연장선에서 실질적인 문제들을 하나씩 헤집어
내면서 더 강력하고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도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서 그 동안 나의
신앙 생활이 얼마나 외식적이고 알맹이가 없었는지 크게 반성했다. 마지막 세대에 플랫 목사를 통해 하나님은
강하게 말씀을 전하고 계시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현실적으로 현대 문화가 선악의 기준을 바꿔가고 있다. 동성애는 당연한 개인적인 성적 취향이고, 이를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자는 마치 인종 차별론자와 같은 수준의 반인류적인 자로 취급 당하고 있다. 그래서 법적으로 동성 결혼이
인정되기 시작했고, 심지어 많은 성직자들이 이를 인정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공공연하게 보이고 있다. 결혼은 이미 그 의미가 변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미디어의 발달로
정말 너무나 손쉽게 포르노그래피에 노출되어 심지어는 초등학생에게까지도 노출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매년
4천2백만 건의 낙태가 자행되고 있다. 가난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들, 특히 고아와 과부는 억압되고 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재기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세상 여러 곳에서는 인신 매매가 성행하면 수 많은 어린 소녀들이 사창가에 팔리고 있다. 혼전 성교나 혼외 성교는 이미 평범한 이야기가 되고 있고, 당연시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이미 이를 당연한 문화로 표현되고 있다. 미혼녀의
임신과 출산은 그저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로 아무런 이슈가 되지 않는다. 인종 차별은 이미 오래 동안
이 세상을 아프게 하는데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이슈다. 이러한 문제들은 그저 하나의 문화의 발달과 변화가 아니다. 그 근본을 파헤쳐보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낙태, 인신매매, 인종 차별 등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생명의 존엄성과 동등성에
대한 부정이고, 결혼의 왜곡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첫 제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결혼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세상에서의 그림자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보이시는 것인데, 이러한 결혼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부정을 역으로 강요당하고 차별
당하는 상황이 되어 우리의 목을 옥죄어 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성탄절에 ‘merry Christmas’ 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happy
holiday’라고만 쓸 수 있고, 학교에서는 찬송가로 된 캐롤을 부를 수 없다. 종교를 강요할 수 없다는 법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종교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가만히 있으면 안되는 상황까지 왔다. 플랫 목사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두려움에 굴복해 문화적으로 타협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반문화의 십자가를 지라는 부르심이다.”라고
외친다. 더 적극적으로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그렇다고 낙태하는
사람, 동성연애자, 성매매된 소녀들을 향해 돌을 던져서는
안되고 사랑으로 보듬고 사랑과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을 읽고 많은 반성을 했다.
겉으로 신실해 보이는 종교인이 아니라 행함으로 열매 맺는 신앙인으로 거듭 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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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이 복잡하고 지난한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자녀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경우가 많다. “복음을 거스를 것인가, 세상을 거스를 것인가” 래디털의 저자 데이비드 플랫 목사의 신작 '가운터 컬처'는 이런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내가 선 땅의 고통에 복음으로 답하라!
세상 사람들이 문화의 발전과 진보를 핑계 삼아서 하나님이 정한 선악의 기준을 인간의 편리에 맞게 바꾸려는 시도를 온전한 복음의 가르침으로 맞서야 한다고 데이비드 플랫 목사는 '카운터 컬처'에서 주장한다.
복음은 기독교 신앙의 생명선인 동시에 대항문화의 원천이기도 하다. 진실한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복음은 저마다 속한 문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회적인 이슈들에 맞서도록 크리스천들을 몰아간다. 뿐만 아니라, 안팎을 둘러싼 문화와 실제로 충돌하는 상황을 빚어내기도 한다. ‘카운터 컬처’는 모두 3개 파트에서 10개의 사회적, 문화적 이슈를 다룬다. 제1장은 복음과 문화에 대한 개관을 다루고 제2장에서는 복음과 가난, 복음과 낙태, 고아와 과부, 성 착취 등의 문제를 다룬다.
살인이나 자살과 마찬가지로 임신중절은 인간이 삶과 죽음을 마음대로 주무를 힘을 가진 존재라고 내세우는 짓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창조주 하나님 단 한 분께만 살고 죽는 시점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낙태는 주님의 권위를 향한 정면 도전이나 다름없다. ‘카운터 컬처’ 제3장에서 데이비드 플랫 목사는 복음과 결혼, 복음과 성윤리, 복음과 인종, 복음과 신앙의 자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족속에 대한 현안을 세상 문화의 관점과 성경이 명백히 밝히는 복음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음행을 피하라'(고전 6:18). 짤막한 이 한 구절은 성경에 기록된 성적인 금지 조항들을 모두 아울러 압축한 명령이다. 결혼하지 않은 싱글 남녀들이 섹스에 빠져들고, 결혼한 부부들이 남편, 또는 아내가 아닌 상대와 성적인 관계를 맺으며,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성매매가 일상일 만큼 성이 범람하는 도시,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 주신 말씀이다. 2천 년이 지난 오늘의 세계도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당시 문화 속에 자리 잡은 교회를 향해, 그리고 현대 문화 가운데 서 있는 교회를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카운터 컬처’를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다음과 같다. 세상 문화와 복음이 충돌할 때는 성도인 내가 문제 의식을 가질 때라는 점이다. 왜냐면 이미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 문화가 주는 안락함과 편리, 쾌락에 안주하고 있다면 복음의 가르침 사이에서 갈등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 속에 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마땅히 져야 할 자기 십자가를 놓지 않아야 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좁은 길이지만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그 순간에 같이 걸어주심을 믿어야 한다. |
| 서방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되어지는 진영에 속하는 곳에 거주하는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자유를 만끽하며 물질의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복음주의자들에게 아직도 복음을 자유로이 누리지 못하게 하는 정치 경제 체제는 피상적으로 다가올 뿐이다 한국 교회의 복음주의자들 역시 지척인 북녘 땅의 동포를 향한 동정과 연민은 있을지언정 그들의 아픔과 질곡이 깊숙히 들어오지 못하고 있듯이, 북한 독재 체제 하에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생명의 위협과 압제 속에 죽어간다는 선교사들의 전언에도 지적인 동의와 감정적인 공감은 할지언정 우리의 일 그 자체로 받아들임에 한계가 있듯이 말이다 저자인 데이비드 플랫 목사는 자신의 선교 사역을 통해 깨친 것을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복음이 절대 피상적이지 않은 현실이며 절실한 필요이듯이 복음으로 거듭난 우리가 고통과 질곡에 빠진 인류를 복음으로 품고 함께 짐을 나눠지라고 강력히 촉구한다 더는 피상적이거나 내 눈에 안보이니 마치 없는 듯이 행동하지 말고 실제적이고 찾아가 동참해 복음의 참된 능력으로 이 세상의 가치와 방식에 대척점에 서서 예수님처럼 행동하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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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화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머리를 숙이고, 기도문을 읊조리고 성경을 읽고 교회에 가고 십일조를 드리는데 만족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그럭저럭 잘 지내려는지 선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편안한 삶과 십자가 가운데 무얼 선택할지, 현실에 안주하려는가 아니면 소명을 위해 희생하려는지, 우유부단하게 살것인가 한결같은 심지를 품고 살것인지 요구한다. 지금도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60개국이 넘는다고 한다. 크리스천들이 가장 가혹하게 탄압받는 세계 50개국을 꼽아 순위를 매기는 World Watch List에서 북한은 1등을 차지하고 있다. 성경을 소지하거나 남한, 또는 중국 크리스천들과 접촉한 혐의가 있는 북한인은 총살형이다. 북한 경찰관들은 탈북자로 위장하고 중국 전역의 교회들에 침투해서 북한 교회와 연결이 있는지 확인하는 훈련을 받는다. 북한 크리스천들을 색출해 살해할 목적으로 가짜 기도모임까지 연다.(284)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와 다른 민족들을 '나그네'로 여기면서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파악해야 한다. 복음은 불법이나 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문화 속에서 이민자들을 향해 보내는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착취, 편견, 학대를 맹렬히 비판하라고 요구한다. 이주민 한 명 한 명은 더도 덜도 없이 우리와 똑같은 존엄을 가진 존재들이다.(275) 인류는 다채로운 피부색을 가진 한 가족이다. 미국의 노예제도, 독일의 홀로코스트,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르완다의 인종청소, 일본이 한국과 중국, 인도차이나,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6백만 명에 이르는 주민을 학살한 사건 등은 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태생적으로 우월하다는 사탄의 속임수에 지도자와 국민들이 놀아나면서 벌어진 참극이었다. 성경은 너나할 것 없이 하나님과 아주 흡사하게 지어졌다고 명료하게 가르친다.(257) 결혼 속에는 복음의 신비가 들어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을 성적인 만족이 따르는 자기 완성의 수단으로 여긴다. 결혼을 꿈꾸는 남녀들은 자신을 완성해 줄 짝을 찾아 헤맨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결혼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성관계는 완성을 축하하는 잔치다. 하지만 성경은 달리 가르친다. 결혼은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이루는 수단일 뿐이다. 아내에게 가진 걸 다 내주는 남자, 신부의 아름다움을 책임지는 남자, 아내를 빛내기 위해서라면 권리를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고 목숨마저 기꺼이 버릴 줄 아는 남자.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설계하신 남편의 모습이다.(197)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은밀한 협조자가 되어 가고 있다. 온라인으로 포르노그래피를 감상할 때마다 저마다 가진 개인 컴퓨터로 은밀하게 성노예 산업의 사이클을 돌리는 셈이다. 거실에서, 사무실에서, 또는 핸드폰으로 이기적인 쾌락을 얻기 위해 인간을 성노예로 만드는 산업이 발전하도록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 .(174) 네팔은 유아사망률이 걱정스러울 지경이고, 극심한 가난이 짓누르는고 있으며, 성매매업자의 꼬드김에 넘어가 팔려 가는 어린 소녀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한동안 입양을 금지시켰던 네팔 당국은 독특한 규정을 붙여 문호를 다시 개방했다. 예를 들어, 네팔에서 아기를 입양하려면 자녀가 전혀 없는 가정이어야 했다. 자녀가 있다 하더라도 모두 동성인 경우에 한하여 성이 다른 네팔 어린이를 맞아들일 수 있었다. (145) 우리는 신앙적인 관심사에만 몰두하는 독선적인 만족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자기희생적인 헌신을 염두에 두고 모든 이슈들(입양,가난,낙태,고아와 과부,성 착취 등)을 복음으로 적용해야 한다. 모든 이슈들에 관심을 가질 수 없지만 저마다 독특한 역할을 하나님이 맡겨 주실 것이다. 반드시 기도로 시작해야 한다. 기도는 사회의 불의에 맞서 싸우는 가장 간단하지만 더없이 중요한 방편이다. 싸움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몫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도록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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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선교사들이 가장 큰 고민을 안고 선교를 시작하는 것이 그 지역의 풍습이나 생활습관 같은 것들이 복음과 잘 전달이 될 수 있는 환경인가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오래전 우리나라의 경우를 생각해보자면 조선시대에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 속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순교를 하게 되는 것이 조선 시대의 보수적인 사상들이 팽배했고, 오랜 전통적인 제사의식 등의 유교, 불교와 너무나 상충이 되는 종교였으며, 지배계급과 충돌이 될수 밖에 없는 사랑과 자유를 드러내는 복음은 너무나도 동이 떨어진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너무나도 다른 배경을 가진 기독교 복음은 그당시의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결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가 뿌리를 내리게 된 나라 중의 하나로 된 것이 정말로 놀랍기 그지없는 현 상황입니다. 과연 어떻게 이렇게 상충되는 문화 속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극복할 수있는지 이 도서 <카운터 컬처>를 보자마자 읽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긍휼을 여기는 마음과 믿음으로 행동에 들어가자면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 전혀 쌩뚱맞는 뭔가가 확고히 자리잡은 문화 속으로 침투해들어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에 깊게 공감을 가지게 됩니다. 믿음도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고 긍휼 또한 베풀어야하는 마음도 용기에서 시작이 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용기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담대함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담대함을 가지기 까지 성령님과의 깊은 소통이 있어야하며 성령님으로부터 나오는 이 용기는 결국에는 순교까지 갈 수 있게하는 하나님께 다가가는 길임을 알게 됩니다.
"희생적인 사랑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첫째, 복음은 마음을 움직여 부지런히 일하게 한다."
"둘째, 복음을 품으면 단순하게 살 수밖에 없다."
"셋째, 복음은 단순한 삶을 사는 수준을 넘어 희생적으로 베풀도록 크리스천을 몰아간다."
"넷째, 건설적으로 돕고 영원한 일에 투자하는"
"다섯째, 복음은 상대적으로 넉넉한 이들을 이끌어 참담하리만치 빈곤한 세계를 살리는 일에 힘을 보태게 하신다."
이렇게 희생적인 사랑으로 드러나는 복음은 다섯가지의 모습으로 크리스천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직 나에게는 완전한 복음으로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복음의 형태로 결국에는 희생적인 사랑의 모습으로 간다는 것에 어떠한 문화적인 충격이 닥쳐도 결국에는 복음이 승리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문화를 거스리는 카운터 컬쳐의 첫걸음: 기도하라, 참여하라, 선포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교지역의 문화와 충돌이 있을 경우에는 세상 사람들처럼 무력으로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기도하고, 지역사회에 봉사와 같은 사랑의 힘을 보여주는 직접적으로 참여를 하면서 마지막에는 우리의 최종 목표인 복음을 선포하는 이 세단계를 거쳐 선교를 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어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임을 꼭 기억해야 겠다고 느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크리스천은 반드시 결혼을 순수하게 지켜내야 한다."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딛고 선다면, 결혼을 두고 이것저것 염려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셨던 가정이 하나님의 보호하에서 시작되어야 세상의 근간이 되어 복음이 전파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시작은 결혼의 순수함에서 나옴을 인지하고 가정이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선교를 하는 것은 막대한 지원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과 복음으로 하나가 되어야하지만, 가정의 시작인 결혼의 순수성은 복음과 하나가 된다면 결혼의 시작에 있어서 세상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령님의 인도함에 따르는 가정의 시작이야 말로 복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와 영원한 지옥이 양쪽에 존재함을 인식하고 나면, 복음을 믿으면서 성적인 죄에 대해 침묵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동감할 수 밖에 없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천국과 지옥이 예수님 앞에서 갈라진 다는 것을 안다는 것인데 이러함을 인지한다면 성적인 죄에 대해 구속과 동시에 자유함을 받았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적인 구속은 잘못을 저질르면 안된다는 것을 머릿 속으로 항상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성적인 자유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성적인 유혹이 와도 넘어가지 않는 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앞에 두고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다는 것은 아무리 그 문화가 세속적이더라 하더라도 복음은 이길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이 도서 <카운터 컬처> 선교하기 위한 그 지역사회와 상충이 되는 복음일지라도 결국에는 성령님의 인도하에 복음이 성공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고, 또 어떻게 안정적으로 선교를 할 수 있는지 많은 길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자연스럽게 그 지역사회에 복음이 전파되면 좋겠지만, 복음과 맞지 않는 문화 속에 선교를 한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결국에는 복음이 성공할 수밖에 없음을 믿고 용기를 가지고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면서 행동으로 옮기고 선포하는 그날 까지 참고 인내해야함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많은 선교사님들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시는 좋은 도서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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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문화가 충돌할 때라.... 나 자신의 신앙조차 아직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있는 듯 하여 지금까지는 복음과 문화를 연결해서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복음은 전해져야 하는 게 마땅한 것이고, 문화는 그저 문화일 뿐이라고 .... 먼 산 바라보듯 아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라는 식으로 문화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특정한 사회문제에 열정을 드러내는 걸 보면 적잖이 격려가 되는 반면, 똑같은 크리스천들이 또 다른 이슈에 대해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걸 보면 상당히 걱정된다. 빈곤과 성노예 문제처럼 크리스천들의 활동이 박수를 받는 듯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이지만, 크리스천들의 입장이 비판을 받고 있는 동성애나 낙태 같은 이슈들을 두고는 자리에 앉아 입을 다물어 버린다. p 12 하지만 그리스도가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라고 명령하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p 13 이런 문화들과 그리스도가 무슨 관계가 있나 싶을 수도 있다. 꼭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이런 사회문제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여 저자는 성경의 말씀을 토대로 사회문제가 그리스도와 어떤 연관이 있으며, 크리스천들은 사회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이 말씀을 따르는 것인지 등을 <카운터 컬처> 안에 세세하게 담아 들려준다. 카운터 컬처는 총 3개의 Part로 구성되었고, 문화, 가난, 낙태, 고아와 과부, 성 착취, 결혼, 성윤리, 인종 신앙의 자유,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이라는 10개의 주제로 복음과 문화의 연관성에 대해 설명한다. "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p 55 누가복음에 있는 말씀이며, 이 말씀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가난에 대한 도움은 다른 사회문제 보다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에 더해 저자는 이웃을 돕지 않고 있다면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강력히 말한다. 지상에서 살아가는 크리스천들로서는 신앙을 둘러싼 정부와 사회의 압박에 직면하는 역경을 피해 갈 수 없다. 반면에,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안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양심을 외면하고 은혜와 진리를 이웃들과 나누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믿음을 행동에 옮긴다면 분명히 핍박이 닥칠 것이다. 말과 삶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기로 작정한 크리스천들이 세계 곳곳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p 306 마음이 참 무거워진다. 머리도 복잡해진다.. 양심에, 내 신앙에 찔리는 부분이 너무도 많아 참 무겁게 카운터 컬처를 읽었다. 카운터 컬처에 대한 서평도 어찌 써야 할 지....막막해진다. 크리스천으로서 복음을 제대로 전파하지도 못하고 편안한 삶 만을 위해 기도하기 급급했던 나였기에 사회문제에 나서서 기도하고 참여하고 전파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몫으로만 여기고 있었던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럽다. 여튼 나의 문제는 일단 제쳐놓고 카운터 컬쳐의 결론을 말해보자면 크리스천이라면 사회문제에 복음과 문화가 충돌이 되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하나님과 더불어 참여를 하기 바란다는 것이다. 참여를 하기 전에 반드시 기도로 시작하여야 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품은 채 침묵하지 말라. 문화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에 재갈을 물리는 사태를 막으라. 우유부단한 마음가짐이 삶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 시대를 규정하는 일을 미루지 말라. 하나님의 뜻이 무언지 물을 필요가 없다. 그분은 이미 거룩한 뜻을 분명히 밝히셨다. 주님은 거룩한 백성들이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고, 태중의 아기를 소중히 여기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노예상태로 사는 이들을 건져 내며, 결혼을 지키고,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벌어지는 온갖 형태의 성적인 부도덕과 맞서 싸우며, 인종을 떠나 이웃을 제 몸 같이 사랑하고, 위험을 무릅쓰포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해 보이며,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하길 원하신다. 한 치의 어김도 없이 분명한 사실이다. p 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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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컬처 > -데이비드 플랫 / 두란노 "복음을 품은 채 침묵하지 말라" 오늘날의 기독교는 사실 그 색깔이 많이 퇴색되었다. 존재 가치를 자신 스스로에게서 끌어 올리는 것보다는 세상의 잣대로 웃고 우는 시대이다.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어떻게 만족시킬까를 더 고민한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이 식상하게 들릴까봐 이모저모 나의 모습을 합리화시키며 살 때가 많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시 복음을 재조명하며, 복음을 품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준다. 역시 복음은 원초적이며 강렬할 수밖에 없다. 그는 복음이 문화와 충돌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는데, 여기에는 복음과 문화의 개념이 더 명확할 필요가 있다. 복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며 그가 계획한 인간 구원의 역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에 반해 문화는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의 자유와 의지를 앉혀 놓는 일이다. 그러니 복음과 문화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결혼에 관한 개념도 다르다. 복음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결혼은 인간인 두 남녀의 결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인간 구원 계획을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인간을 창조하신 그 때부터 이미 설계하시고 보여주시기 위한 모델이다. 남자와 여자의 밀당을 통해 어느 쪽이 우위를 차지하며 자신을 만족시킬 것인가에 있지 않다. 남자는 그리스도가 인간을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듯 여자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여자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하신다. 결혼을 통한 만족과 성취가 목적이 아니라, 사방에서 지켜보는 세상의 눈앞에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하나님이 결혼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다. 저자는 이러한 복음과 문화와의 충돌을 여러 부분에서 살펴본다. 우리의 곁에 있는 가난, 낙태, 고아와 과부, 성 착취 등의 고통에 눈을 뜨기를 원한다. 그 고통 속에 있는 이웃들의 눈물을 볼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복음과 충돌하는 여러 가치들, 예를 들어 결혼이나 성윤리, 인종 문제나 신앙의 자유 등의 충돌 속에서 복음을 사수하기를 요구한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누군가의 압제 밑에서 살아가도록 창조된 이는 없다. 그러기에 복음이라는 빛을 통과하여 바라보는 세상은 우리가 침묵하여야 할 마당이 아니다. 복음에 비추어 내가 쏟아내야 할 자리가 분명하다면 기도하고 참여하며 선포하기를 원하신다. 이 책은 상당히 강렬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복음 자체가 강렬하다.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 창세기 1장 1절부터 강렬한 것이 성경이다. 우스갯소리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성경 첫 머리와, 세상 끝 날에 다시 오겠다는 성경의 마지막 구절을 믿는다면 이미 그는 신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복음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친히 인간이 되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어서까지 사랑하신다는 이 강렬함을 제거하면 복음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교회와 믿는다고 따르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원초적인 강렬함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래서 이 책이 더 강렬하게 다가오고 찔리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모든 자리에 우리가 부름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한 자리에 우리는 분명한 부름을 받았으며, 그 자리를 위해 기도하고 참여하며 선포하는 일은 우리의 삶을 통해 꼭 이루어야 할 일일 것이다. '지금도 이 책을 읽으며 거룩한 고민을 하는 이 시간에도 세상의 어딘가에서는 고통으로 쓰러지고 죽어가는 사람이 많다'는 저자의 말이 나를 다시 흔든다. 잠들어 있던 내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그 분을 향한 내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여야 하며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고민하게 한다. 올해 읽은 기독교 서적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찔리며 읽었던 책. "강추". "창조주는 인간을 설계하시면서 주님을 으뜸자리에, 이웃을 버금자리에, 그리고 자신을 그 마지막 자리에 두게 하셨다. 하지만 죄는 그 순서를 뒤바꿔 버린다."(p28)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의 실체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으며 그래서 반드시 예수가 필요하다. 복음이 한층 공격적으로 문화와 맞서는 지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p30)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 얼마나 많으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드러내는 자주성이 문제의 핵심이다. 스스로에게 눈을 돌려 하나님의 방법을 첫손에 꼽아야 비로소 구원을 얻을 수 있다."(p36)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가감하거나 믿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p40) ★"교회가 대단히 강력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크리스천들은 스스로 믿는 바를 위해 고난 당하는 걸 귀하게 여기고 기뻐했습니다. 그 무렵의 교회는 그저 여론의 각광을 받는 사상이나 원칙을 그대로 보여주는 온도계가 아니라 사회의 관습을 바꾸는 온도조절장치였습니다."(p254) -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중에서 #카운터컬처 #래디컬 #두란노 #데이비드플랫 #동성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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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문화가 충돌할 때) 카운터 컬처... 제목만 보면 꼭 복싱에서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듯한 강력한 한방이 연상된다. 카운터 펀치로 복음을 희석시키고 삼키려는 세상의 문화를 향해 한방 날려야 한다는 저자의 혁명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는 듯하다. 이 책의 저자는 래디컬의 저자 데이비드 플랫이다. 래디컬은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게 살아가는 이시대 크리스천들에게 제자도에 대한 혁명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지인의 소개로 래디컬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는데 신앙생활을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레디컬은 10만의 독자가 읽었다. 아직도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품고 있는 남은자, 하나님께서 준비시켜 놓은 자들이 있을거라 생각이 되고 나 또한 그렇게 준비되어 지고 싶어 후속작도 읽게 되었다. 그리스인들에게 문화란 어떤 의미일까 고민해보게 된다. 급격하게 세상의 문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고 교회 안으로도 침투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인권조례등을 통해 동성애, 종교의 자유에 대해 끊임없는 논쟁이 되고 있고 연애인의 커밍도 큰 이슈가 되지 않는듯하다. 뉴스를 통해 길거리에서는 동성애 축제인 퀴어축제를 하고 적극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반대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성경적인 입장에서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데이비드 플랫은 구체적인 대처 방법을 제시해준다. 복음과 문화, 가난, 낙태, 고아와 과부, 성 착취, 결혼, 성윤리, 인종, 신앙의 자유등 그리스도인들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슈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 해야 할지 말씀안에서 강력하게 풀어 낸다. “현대 문화 속에서 성경적인 신념을 품고 살기 위해 치러야 하는 값은 하루하루 가파르게 높아지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나눈다는 개념조차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 시대의 교회들은 주위를 에워싼 문화에 맞서는 대신 갈수록 적응하고 순응하는 길을 걷고 있다.” -p45. 초대교회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움에 타협하지 않고 맞섰다. 저자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현대문화 맞서는 담대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각 이슈마다 문화를 거스릴 ‘카운터 컬처’의 첫걸음으로 기도제목과 어떻게 참여해야하는지 그리고 말씀을 품고 선포해야 할 말씀들을 묵상하게 도와준다. 저자의 글을 읽고 나면 강한 그리스도의 용사로 무장되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선택하셔서 이러한 문화속에 나를 둔 것은 거룩한 말씀을 통해 이러한 문화에 맞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케 하시기 위함임을 믿는다.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와 담대함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겠다는 소망이 생기게 만드는 책이다. 이 시대 문화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복음을 소유하며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이 이 책안에 있다. 이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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