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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 3은이라고 하면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를 보통 꼽습니다. 혹은 도은 이숭인을 대신 꼽기도 합니다. 그런데 도은이 1347년생, 포은이 1338년생, 야은이 1353년생인 반면 목은은 1328년생이며 따라서 다른 세 분과 나이 차가 제법 납니다. 실제로 목은은 저 세 분을 학문적으로 가르친 스승이며 같이 거론될 연배, 지위가 아니긴 합니다.
그 출생지별로 보면 목은은 영덕, 도은은 성주, 포은은 영천, 야은은 구미로서 네 분 모두 경북지방 태생이라는 게 또 특기할 만합니다. 영덕과 영천은 동쪽에 치우쳐 있으며 성주와 구미는 서쪽이라 서로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이 중 목은이 가장 사랑한 제자로서 매우 총명했다고 일컬어지는 도은은 이인임의 일가이기도 했습니다. 드라마 <용의 눈물>을 보면 도은이 말 뒤에 묶여 질질 끌려가며 아주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고 표현되지만 실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장형이 집행되었다고 기록에는 나옵니다.
<용의 눈물>에서 목은은 독을 탄 어주를 마시고 유명을 달리하는 걸로 나오는데 이미 목은은 태조 앞에서 대등한 예로 일관하며 아호인 "송헌"으로 호칭하는가 하면 퇴궐할 때 등을 보이는 등의 처신으로 미운 털이 박힌 상태였습니다. 벌써 죽음을 각오한 걸로 묘사되지만 이 죽음이 태조가 직접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는 식입니다. 실제로는 유배 중에 숨을 거두셨다고만 기록에 나옵니다.
이 한반도에는 정말로 수재, 천재, 대학자 등 문(文)의 동량이 너무도 많이 배출됩니다. 목은은 역대 중국에서 실시된 과거 급제자 중 최상위 합격자였습니다. 그러니 고려 조정에서건 새로 창건된 조선의 정부에서건 존중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머리가 우수하니 제자들 중에서도 수재급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왔겠습니까.
목은, 도은, 또 가장 유명한 포은은 모두 그들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의도된 죽음을 맞았지만(혹은 그리 추정되지만) 야은 길재는 출사를 거부하기는 했으나 천수를 다 누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튼 충신으로서 후세의 존경을 받은 인물임에는 변함이 없고 이런 인물들을 모두 키워낸 스승이 바로 목은이라는 점에서 그의 인간적 위대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