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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이렇게 시작한다.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마태오, 1;1-17)” 어렵고 복잡하단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짧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예수의 일화를 설명한 것에 비한다면, 마태오 사가는 대단히 많은 분량을 바로 이 예수의 족보에 할애하고 있고, 이는 신약성서 전체의 시작을 장식한다. 그러나 아무리 복잡하다 할지라도 우리네 족보에 비하면 새 발의 피(鳥足之血)라 하겠다. 보학(譜學)이 필수이던 시절, 어지간한 사대부라면 입향조(入鄕祖:그 지역에 처음 들어온 조상의 이름)가 어떻게 되는가, 불천위(不遷位:4대가 지나도 위패를 옮기지 않고 계속 모시는 제사)는 어떻게 되는가, 몇 대조 할아버지가 언제 과거에 급제했고 어떤 상소문을 썼다가 파직되어 어디로 귀양 갔는가, 유배지에서 어떤 문집과 시를 남겼는지가 까지도 해박해야 했음을 고려해 본다면 그렇단 말이다. 오히려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에서 바빌론으로 끌려 갈 때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으로 끌려 간 다음 그리스도까지가 또한 십사 대(마태오, 1;17)”, 도합 42대의 가족관계를 원고지 한 장 분량으로 압축해놓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핵심을 추린 성 마태오의 필력이 가히 대단하다 하겠다. 어찌 됐건 공간을 초월한 두 족보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여성인물의 등장이 대단히 미미하단 것이다. 음양의 조화 따위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가정을 이루고 2세를 출산함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은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지언즉, 어쩜 족보에는 여성의 이름 찾기가 이리도 어렵단 말인가. 하물며 성서는 남자(!)인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이 야곱을 ‘낳았다’고 나온다. 번역에서 불거진 문제라 할지라도 대단히 남성 중심적이지 아니한가(영어 성서는 ‘follow’를, 불어 성서는 ‘soumis’란 단어를 쓴다). 이는 이스라엘과 한국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동·서양 왕가 계보도를 보면 십중팔구는 남자이름이다. 여성들이여 아직 실망하지 말자. 한 겹 들춰보면 실상은 다른 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사실 길고 긴 인류의 장구한 역사에서 아버지 쪽만을 통해 혈통을 계승하고 재산을 물려주는 사회제도인 가부장제(부계제)가 등장한 것은, 기껏해야 1만년도 채 안됐을 극히 최근의 일이다(38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출현했음을 감안한다면). 인류학자 프레이저는 불후의 명저 『황금가지』에서 “남신이 여신보다 역사적으로 뒤늦고 여신에게서 발전해 나온 존재라는 결론이 따른다. 여신에 비해 남신의 기원이 더 늦다는 사실은 그 명칭의 성격으로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러하니, 인간 여성을 대할 때도 경외감에 찬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이쯤 되면 자연히 여성의 이야기(Her-story)가 송두리째 사라진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의 전락, 그것은 남성의 탄생이자 가족, 사유재산, 국가, 즉 히스토리(His-story)의 시작이다.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식물을 포함한)들 중에서 하나, 혹은 몇몇의 소수의 파트너를 정해놓고 짝짓기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류와 같이 체외수정을 하는 종은 거의 백 프로 그렇고, 체내수정을 하는 파충류, 양서류, 일부 어류 등도 그러하다. 포유류, 특히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도 이러한 자연의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과 유사한 68종의 영장류 중 사바나 원숭이, 보노보, 침팬지를 포함한 가장 많은 수의 종 역시 수컷(암컷)들이 일상적으로 다수의 암컷(수컷)과 관계를 맺는다. 인간은 DNA나 유전 형질의 98.4%가 침팬지와 동일하다. 그리고 인간이 원시 영장류로부터 진화했다는 다윈의 진화론이 하나의 ‘법칙’으로 굳어진 오늘날,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그것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원시시대 인간도 이러한 경향, 다시 말해 ‘군혼’(群婚:원시 사회에서, 한 무리의 남자와 한 무리의 여자가 집단적으로 행한 혼인 형태)을 따랐음을 쉽사리 유추할 수 있다. 이로쿼이 인들이 친족을 부르는 호칭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 남자는 자신의 자녀들뿐만 아니라 형제의 자녀들까지도 아들, 딸이라고 부른다. 여자의 경우도 자매의 자녀들을 그렇게 부르며, 이 자녀들도 그들을 어머니라고 부른다. “어떤 아이라도 여러 명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갖고 있다. 남자들이 다처제 생활을 하는 한편 그 여자들도 동시에 다부제 생활을 하며, 이에 따라 쌍방의 아이들이 그들 모두의 공동의 아이들로 인정되는 상태가 있었다. 한 부족 내부에서 무제한적 성교가 지배하는 따라서 모든 여자가 모든 남자에게 속하고 또 모든 남자가 모든 여자에게 속하는 상태가 있었다고 결론짓게 되었다.(pp.41-42)” 경우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 조카를 일컫는 다양한 단어들, 유자(猶子), 종자(從子), 질아(姪兒), 질자(姪子), 가질(家姪), 사질(舍姪), 함씨(咸氏), 영질(令姪) 등, 그리고 삼촌을 일컫는 유부(猶父), 숙부(叔父), 큰(작은)아버지, 사숙(舍叔) 등은, 형제·자매의 자식도 결국 자신의 자식과 별반 다르지 않게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또한 이 당시 사람들은 남자가 자손의 생식에 직접 관여하는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 하등동물(?)과 같이 여성과 관계를 가진 후 자식이 바로 불거지는 것도 아니고, 10개월이라는 임신기간 그리고 그 사이 발생했을 수많은 우연들 가운데서 자신이 수태에 관여했을 거라 확신하는 것은 그들 지식수준에서는 무리였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인류학적 증거들은, 어머니와 그 지방의 주위에 있는 대상 혹은 동물과의 접촉의 결과로서 어머니 자궁 속에 태아가 들어가게 된다고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수태의 생리학적인 원인이 알려지기 이전 사람들은 어린아이를 여성의 자궁에 직접 삽입시킴으로써 임신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여성의 자궁에 들어간 것이 무엇이었는가. 즉 이미 형성된 하나의 태아였다.『종교형태론』” 이렇듯 원시인 남성은 난교, 혹은 무규율적 성교 때문에 자신의 자식을 확신할 수 없었다. 남성은 자신의 정자가 여성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그 여성의 몸에서 자식이 태어난다. 그러나 자신이 보지 않는 동안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확신하며, 여성을 수정시킨 것이 자신의 정자인지 다른 남성의 정자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종교학자 엘리아데의 지적대로,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을 한다는 생리학적인 배경지식 자체가 없었으므로, 확신에 차 자신과 관계한 여성이 낳은 자식이 내 자식이라 주장하기에는 더더욱 무리였을 것이다. 수많은 신화와 설화들은 이를 증명한다. 우리의 시조 단군의 어머니는 사람이 된 곰 ‘웅녀’라는 구체적인 인물이지만, 아버지로 알려진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은 대단히 추상적이고 불확실한 존재다(적어도 곰은 ‘만질’ 수 있지만 하늘을 어떻게 만질까). 성경도 다르진 않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과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마태오, 1;18)”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예수의 친부가 누구인지 꽤나 헷갈린다. 일단 법적 남편이자 ‘인간’인 요셉은 제외하자. 성경에 나온 대로 ‘성령’이 임신을 시켰는지(불경한 표현이다), 아님 ‘성부’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성부=성자=성령’이므로 성자인 예수가 스스로 수태 ‘당했는지’ 아리송하다. 이 모든 혼란에도 불구하고 불변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예수의 어머니는 마리아란 점이다. “동정녀인 어머니와 신성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는 전설들이 최소한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다가온다. 그런 종류의 설화는 우화적인 요소를 벗겨내면, 한 여자가 모르는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은 부계 혈통을 중시하는 친족제도보다는 그것을 무시하는 제도라야 더 쉽게 용납될 것이다.『황금가지』” 남성이 ‘내 자식이다’라고 장담하지 못하는 것과는 반대로, 여성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 인간의 여성을 비롯하여 체내 수정을 하는 다른 암컷 동물들은 새끼가 자신의 것인지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다. 여성 혹은 암컷의 몸속으로 정자가 들어와서 수정이 이뤄지고, 무엇보다도 자기 몸에서 자라 자기 몸을 통해 아기(새끼)가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아이를 훔치는 것과 같이 의도적이지 않는 한 다른 여성의 아기와 뒤바뀔 가능성도 희박하다. 군혼이 일반화 된 사회에서는 누가 아이의 아버지인가는 확실하지 않지만 누가 어머니인가는 확실했다. 설사 한 여성이 전체 가족에 대해 똑같이 어머니로서 의무를 진다할지라도, 그녀는 자신의 친자식을 다른 자녀들과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군혼이 존재하는 한 혈통은 어머니 편에 따라서만 입증될 수 있기에, 씨족의 미래도 오로지 여계에 의해 결정된다. “씨족의 생존은 전적으로 여성의 생명에 달려 있으며, 남성의 생명과는 무관하다. 만약 여성이 존속한다면, 씨족의 남성이 모두 소멸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성들은 평소와 같이 다른 씨족의 남성들과 결혼할 것이며, 그들의 자손이 어머니의 씨족을 물려받아 씨족을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씨족의 여성이 모두 죽어 없어지면 씨족의 남성이 살아남더라도 씨족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 (···) 따라서 아버지의 씨족은 아버지의 죽음과 더불어 부족사회에서 사라지는 셈이다.『황금가지』” 그러나 남성은 자기 자식이란 사실에 여성과 같이 확신할 수 없었다. 이러한 사회는 필연적으로 “가내에서의 여성의 지배를 의미한다. 그것은 친아버지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친어머니만을 인정하는 것이 여성, 즉 어머니에 대한 높은 존경을 의미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이다. 모든 야만인들에게서, 모든 미개인들에게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높은 단계의 야만인들에게조차 여성은 자유로울 뿐 아니라 높은 존경을 받는 지위에 있었다.(pp.59-60)”
그러나 군혼은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았다. 섹스천국의 종말! 사건은 먼저 부모와 자녀 사이에 ‘결혼’할 의무가 배제되면서 시작되었다. 곧이어 형제와 자매의 성교도 배제되었다. ‘근친상간의 터부(incest taboo)’가 군혼습속을 낡은 제도로 만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르는 애완동물, 하물며 식물까지도 근친교배 하지 않는 것을 상식으로 여긴다. 수천 수 만 년간의 경험으로 근친교배는 극히 불완전한 2세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컨대 근친 교배는 인구 집단 내에 유전적인 다양성을 떨어뜨림으로써 새로운 질병이나 다른 새로운 환경적 재난에 취약하게 만들고, 사산이나 선천적인 질병 발생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사실이다. 다윈의 깔끔한 정리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서로 다른 변종 사이의 교배로, 또는 같은 변종이라면 계통이 다른 개체 사이의 교배로 태어난 자손이 강건하고 다산성이라는 사실, 반면 근친 간의 동계 교배로 태어난 자손들은 강건성과 다산성이 감소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연유로 해서, 모든 생물이 자손을 영속시키기 위해 자가 수정을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자연계의 일반적인 법칙이다.『종의 기원』” 근친상간에 대한 오늘날과 같은 수준의 확신이 있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교 시절 삶의 관성 탓일까, 실제로 근친혼은 어느 한 순간에 싹 사라졌다기 보단 수십 세기 간 지속 되다가 서서히 소멸하였다. 특히 형제 자매간 금지는 당사자들의 연령차가 적기 때문에 훨씬 더 어려웠기에 더욱 늦게 진전되었다. 인류가 ‘역사시대’에 들어오고 나서도 초기의 기록은, 아직 인간이 근친 간 터부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가장 존경받는 기록인 성서에도 근친 금지 이행기의 고민이 잘 나온다. 우선 부모 자녀 간 근친. 산 위의 동굴에서 아버지 롯과 같이 살게 된 딸들은,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풍속대로 우리에게 올 남자가 없구나. 자 아버지에게 술을 드시게 하고 나서, 우리가 아버지와 함께 누워 그분에게서 자손을 얻자.’ (···) 그래서 그날 밤에도 그들은 아버지에게 술을 들게 한 다음, 이번에는 작은딸이 일어나 가서 아버지와 함께 누웠다.(창세기, 19;31-36)” 소돔에서 가장 도덕적이라는 이유로 대홍수를 피할 수 있었던 가족이 이 지경이니 ‘도덕적이지 못해(!)’ 수장(水葬)된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했을지 눈에 선하다. 성군이자 명군으로 칭송받는 다윗왕의 이야기에도 여전히 근친은 등장한다. 다윗이 아주 고령이 되었을 때 수넴 여자 아비삭이라는 처녀가 다윗의 배우자가 되는데, 이스라엘의 왕위를 계승하는 문제는 누가 아비삭의 남편이 되는가라는 문제와 같아짐으로서, 비록 계모일지라도 어머니와 혼인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음은 형제 자매간 근친. 비단 이복남매일지라도 아브라함 역시 사라와 결혼하였다. “그 여자는 정말 나의 누이입니다.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가 달라서 내 아내가 되었습니다.(창세기, 20;12)” 성서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성서 이상으로 체계적이고 오래 된 이집트 신화에도 근친상간은 빈번히 등장한다. ‘오시리스’ 신은 자신의 누나인 ‘이시스’ 여신과 결혼하여, 오시리스 신과 이시스 여신 사이에서 ‘호루스’ 신이 태어나고, 호루스 역시 어머니이자 고모인 이시스와 결혼한다. 신의 ‘어머니’는 신의 ‘아내’이기도 한 이중의 근친상간이다. 신화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전부터 근친혼은 왕족의 결혼 관습으로서, 특히 고대 이집트의 경우 왕족들은 순혈(純血)을 유지하기 위해 남매간에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중세에 와서도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귀족들의 잦은 근친 교배는 오히려 집안을 말아먹는 우둔한 자손을 생겨나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 도태는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모건의 말대로 “혈연관계가 없는 씨족들 사이의 결혼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더 강력한 종족을 만들어 낸다. 진보해 가는 두 부족이 서로 섞이게 되면 새로운 두개골과 두뇌는 자연히 확대되고 마침내 두 부족의 소질들을 포괄하게 된다.「고대 사회, 또는 야만에서 미개를 거쳐 문명에 이르는 인류의 진보 경로에 대한 연구」” 이러한 발전은 파급력이 대단했기에, 이후 지구상의 대부분의 종족들이 근친행위의 금지를 사회 제도의 기초로 삼기에 이르렀다. 레비-스트로스의 말대로 근친상간 금지라는 선을 통과하면서 인간은 자연적 존재로부터 사회적·문화적 존재가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이 터부는 모든 문화의 출발점이자 모든 문화의 기초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적인 삶의 방식과 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론이 대중을 장악하면 그것도 물질적 힘으로 전화한다는 맑스의 지적처럼, 이제 남편들과 아내들이 서로를 공유하던 기존의 군혼제도는, 친형제, 나중에는 방계의 형제가 배제되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가까운 친족이, 다음에는 점차 먼 친족이, 급기야는 결혼으로 인척 관계가 된 친족까지 배제됨으로서 군혼제도는 더 이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2000년 민법 제809조가 폐지되기 전까지는 동성동본불혼의 원칙(친족 간 결혼 금지의 발전된 형태다)이 엄연히 존재했다. 직계 혈족은 말할 필요도 없다(민법 제768조). “그것은 점차적으로 이루어졌다. 아마 친형제 자매들의 성교를 배제하는 몇몇 고립적인 경우들이 먼저 나타나고, 이것이 점차 규칙이 되어 가다가, 마침내는 방계 형제·자매, 즉 오늘날의 호칭으로 하자면 사촌, 육촌, 팔촌 들 사이의 결혼이 금지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p.49)” 혼기에 찬 원시인 총각(처녀)의 삶을 상상해보자. 이전에는 결혼할 수 있는 배우자가 지천에 널려있었다. 거칠게 말해 친자매건, 사촌이건 맘 가는대로 같이 살아도 흠잡을만한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할 수 없는 집단이 점차 늘어났고 종국에는 모든 친족들 사이의 결혼이 금지됨에 따라, 눈을 씻고 찾아봐야 배우자를 겨우 한두 명 찾을까 말까한 상황에 도달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남자(여자)는 한 여자(남자)와만 동거한다. 군혼제도는 새로운 제도인 대우혼(對偶婚:미개사회에서 한 혈족의 형제 또는 자매와 다른 혈족의 형제나 자매 사이에 남자 한 사람에 여자 한 사람씩 짝을 짓는 결혼 형태)제도에게 그 자리를 넘긴 것이다. 수 십 만년은 족히 걸렸을 대우혼으로까지 이르는 기나긴 여정. 이제 남성과 여성은 여성 우위의 사회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의 남녀평등을 이룩해낸다. 친모라는 확신은 이전 시대 여성이 대접받을 수 있던 큰 무기였는데, 적어도 대우혼 사회에선 누가 친아버지인가를 따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정에서 남편의 지배까지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무렵만 해도 남자는 많은 아내들 중에서 한 사람의 본처를 갖고 여자도 여러 남편들 중에 가장 중요한 한 명의 남편이 있는, 가장 느슨한 형태의 일부일처제였기 때문이다. 군혼제의 해체는 가부장제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닌 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적인 가족의 형태, 즉 가정에서의 여성의 굴종, 여성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가진 남성의 모습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대우혼 이상의 조건이 필요했다. 생산량의 증대가 그것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세계에서 유한한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비로소 우주에 비해 보잘것없는 자신의 존재를 자각할 수 있다. 그러나 유한성에 지나치게 치중하다 보면 자칫 허무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고대로부터 수많은 인간들은 이 허무함을 공동체의 기억(기도), 오디세이아와 같은 언어(예술), 이집트의 피라미드, 자신의 이름을 딴 고대 로마의 대형 건축물 등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불명성에 대한 관심은, 죽을 운명인 개별적 인간의 삶을 둘러싸고 있던 불멸적인 자연과 신의 경험으로부터 생겨났다. 모든 것이 불멸하는 코스모스에 새겨진 불멸성은 인간 실존의 보증서가 되었다. 불멸적인 행위업적과 사라지지 않을 흔적을 뒤에 남길 수 있는 능력에 의하여,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불멸성을 획득한다.『인간의 조건』” 자식에게 물려주는 재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아렌트의 말대로, 자신의 피땀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재산을 후대에 전함으로서 당신은 오랫동안 후손의 기억 속에 ‘불멸’의 존재로 있을 수 있다. 아울러 모든 생명은 자신의 유전형질을 후손에게 물려줌으로서 자신의 유전정보가 새겨진 유전자를 통해 종이 존재 하는 한 소멸하지 않는, ‘죽어도 죽지 않는 삶’을 살도록 본능적으로 프로그램 되어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삶의 지혜가 됐건 돈이 됐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후손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는 행위는, 그들의 생존확률을 높임으로서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가능성 또한 높일 것이다. 아무래도 선친의 재산 등으로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인간은 맨손으로 어렵게 시작한 다른 인간에 비해 좋은 형질의 유전자를 남기기 수월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산력이 워낙 미비하였던 원시시대에는 가부장제에서 남편이 갖는 두 가지 문제의식, 다시 말해 누가 내 자식이냐는 첫 번째 질문만 있었지, 내 자식에게 무엇을 물려 줄 것인가라는 두 번째 질문은 존재할 수 없었다. 갖고 있는 재산이라고 해봤자 남성이라면 아주 조잡한 수준의 무기, 사냥 도구 몇 가지와 고기잡이 도구 몇 가지가 전부고, 여성이라면 나무껍질 등을 재료로 한 거친 옷감 몇 벌, 바구니 몇 개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부모의 물건을 물려받는 자식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상속세 내는 것이 더 골치 아픈 (돈 안 되는) 저 시골의 산골짜기 집은 형제들 간에도 누가 물려받건 관심도 없고, 심지어 서로 가져가라고 떠맡기는 훈훈한(?) 광경이 종종 이뤄지지 않던가. 그러나 어느 순간 생산량이 월등히 늘어났고 ‘최초의 거대한 사회적 분업(p.177)’이 발생하였다. 같은 면적의 땅에 의존하여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수렵 채집민보다 목축민이나 농경민이 10배에서 100배까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아울러 가축의 소유는 젖과 버터와 같은 유제품, 고기를 제공함으로서 안정적인 동물성 단백질의 공급원이 되었고, 분뇨를 비료로 사용하여 수확량을 증가시켰으며, 쟁기를 끌어 경작지를 확대시킴으로서 생산력 증대에 박차를 가하였다. 식량생산의 증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주형 생활을 통해 인구밀도를 높이고, 잉여생산을 저장하였으며, 식량을 생산하지 않는 전문가 계급, 즉 왕과 관료사회를 만들었다. 이 모두는 이전 사회에 비해 소유할 수 있는 재산이 엄청나게 늘었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부는 처음에는 씨족, 특히 모계사회로부터 지속하여 내려왔던 기존의 여성 씨족의 것이었다. 그러나 본인이 힘들게 얻은 것을 빼앗기고 싶지 않는 것은 인지상정! “부가 증대함에 따라 한편으로 가족 내에서 남편이 아내보다 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남편은 이 강화된 지위를 이용하여 자녀들을 위해 전래의 상속순위를 파기하려는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모권제에 의해 혈통을 따지는 한,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러므로 이 모권제는 파기되어야 했으며 또 파기되었다. (···) 그것은 앞으로는 남자 씨족원의 자손이 씨족에 남아 있고, 여자 씨족원의 자손은 씨족에서 제외되어 자기 아버지의 씨족으로 넘어간다는 간단한 결의로 충분하였다. 이로써 여계에 의한 혈통의 산정과 어머니 쪽의 상속권은 파기되고 남계에 의한 혈통과 아버지 쪽의 상속권이 정립되었다.(p.67)” 원시시대 남성은 전쟁을 치르고, 사냥과 고기잡이를 하러 나가며, 먹을거리와 그것에 필요한 도구를 조달하였다. 여자는 집안일을 돌보며 음식과 옷을 만들었다. 이 시기의 남자와 여자는 각각 자기의 영역, 그리고 자기가 만들고 사용하는 도구의 주인이었다. 각자가 주인이라는 말과 같이 이들의 지위는 각자의 위치에서 동등했다. 남자는 바깥에서 여자는 집안에서. 이들의 위치는 상하관계에 의해 규정되지는 않았는데, 생산물의 차이가 적은 것이 크게 일조하였다. 유유상종! 그러나 새로운 부의 탄생과 더불어 가족관계에 혁명이 일어났다. 생계 획득은 남자의 일이었고 그러기에 남자의 소유가 되었다. 가축을 길들이고 보살피는 것, 정기적으로 식량을 재배하는 것은 남자의 일이 되었고, 그 결과 가축과 식량 일체는 남자의 것이 되었다. “생업에 의해 얻은 일체의 잉여는 남자의 것이 되었다. 여자는 그것을 소비하긴 했지만, 그것에 대한 소유권은 조금도 없었다. (과거 수렵채집민 시절) ‘사나운’ 전사와 사냥꾼은 집에서 여자 다음의 자리에 만족하였다. (반면 오늘날) ‘온화한’ 목축민은 자기의 부를 뽐내면서 첫 번째 자리에 올라 여자를 두 번째 자리로 밀어냈다. 그러나 여자는 불평할 수 없었다. 가족 내의 분업은 남녀 간의 재산 분배를 규정하였다. 전에는 가정에서의 여자의 지배를 보장해 주었던 바로 그 원인, 여자가 가사노동에만 종사하는 것이 이제는 가정에서의 남자의 지배를 보장해 주었다. 남자의 노동이 모든 것이었고, 여자의 가사 노동은 보잘 것 없는 부속물이었다.(p.179)” 남성의 탄생! 가족의 탄생!
“모권제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였다. 남자는 집안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여자는 지위가 하락하여 예속적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남자의 정욕의 노예로, 단순한 산아 도구로 전락하였다.(p.68)” 이집트의 신화에서 남편을 부활시키고 새로운 신을 잉태하는 이시스 여신, 그리스 신화에서 나타나는 여신 가이아와 그 뒤를 잇는 데메테르나 페르세포네,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까지. 한층 자유롭고 존경받는 여신의 지위는 이내 가내 노예의 상태로 전락한다. 순위를 가르는 운동 경기에서 한번 벌어진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혼인 제도의 변화, 그리고 생산력에서 남녀의 차는 새로운 여성을 만들어내었다. 보통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쓰는 ‘남성답다’는 말, 즉 자신감, 책임감, 용기 등, 그리고 ‘여성답다’는 말, 아름다움, 의존성, 다소곳함 등이 그것이다. 수렵 채집사회에서는 노동, 출산, 교육은 모두 성별 분업 없이 공동체 전체의 일에 속했다. 그러나 차차 남성이 하는 ‘바깥 일’과, 여성이 하는 ‘집안 일’인 분업되면서 생산 활동에서 주도권을 쥔 남성을 중심으로 가부장제가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하고 가정과 사회에서 성에 따른 각종 차별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믿음을 낳았다. 여성은 사춘기, 결혼, 어머니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 몸을 열등하게 받아들이고 남성에게 의존하는 수동적 역할에 만족하도록 길들여졌다. 한번 권력의 단물을 맛본 남성들이 여기에 만족했을 리는 전무하다. 이후 여성은 항상 남성들의 폭력에 노출되었고 사회구조에서도 이러한 관계가 용인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성서를 다시 읽어보자면(나는 성서인용이 즐겁다^^), 소돔과 고모라가 파괴될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 ‘남자’ 천사 둘이 방문하여 천벌이 닥치기 전에 도시를 떠나라고 경고한다. 롯은 천사들을 극진히 맞아들이지만, 얼마 뒤 소돔의 모든 남자들이 롯에게 천사들을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자 롯이 대답한다. “형제들, 안 되오. 제발 나쁜 짓 하지들 마시오. 저 사람이 내 집에 들어온 이상, 그런 추잡한 짓을 해서는 안 되오. 자, 나의 처녀 딸과 저 사람의 소실을 내보낼 터이니, 그들을 욕보이면서 당신들 좋을 대로 하시오. 그렇지만 저 사람에게만은 그런 추잡한 짓을 해서는 안 되오.(판관, 19;22-24)” 내 딸과 첩은 마음껏 욕보이고 강간해도 좋지만, ‘남성’인 내 손님에게는 적절한 존경을 보여 달라는 용기, 그것도 모자라 밤새 강간당한 첩을 “집에 들어서자마자 칼을 들고 붙잡아 그 몸을 열두 토막으로 잘라 낸(판관, 19;29)” 배려까지. 소돔에서 ‘유일’하게 ‘선량한’ 사람으로 뽑힌 남자가 이러할 진데, ‘선량하지 못한’ 다른 남자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상상하기가 괴로울 지경이다. 성경속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 현실이 그러했다. (여성들에게만 엄격한) 일부일처제, 그리고 (여성들에게만 적용되는) 정조관념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문화권에서 남성이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할 기회를 제한하도록 한 수많은 관행들이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결혼식 날 배달된 신부가 처녀인 것이 확인된 후에야 높은 신부값(bride price)이 치러지는 관행, 정을 통한 남녀 가운데 여성이 유부녀일 경우에만 적용되던(남성이 유부남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간통법, 젊은 여성을 거의 집안에 가두거나 외출 시에는 명목상 보호자인 샤프롱(chaperon)을 붙여 여성을 감시하던 관행, 여성의 성욕을 감소시키기 위해 자행되었던 여성 할례(음핵 절제), 남편이 멀리 떠나 있는 동안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할 수 없도록 대음순을 봉합하거나 정조대를 착용하게 했던 일들 등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폭력은 여성의 부도덕이나 부주의에서 비롯된 당연한 현상으로 간주되어 왔고, 그 단죄의 대상 역시 여성으로 지목되었다. 다행히도 오늘날에는 자유주의, 맑스주의, 급진주의, 사회주의, 실존주의, 에코페미니즘, 포스트모던페미니즘, 포스트페미니즘, 탈식민페미니즘 등 다양한 갈래의 여권론이 여성의 성 정체성 회복과 권리 신장을 위해 노력한다. 오랫동안 남성 담론의 역사(his-story)의 그늘 속에 타자로 방치된 여성의 눈으로 역사를 복원하려는 여성의 이야기(her-story)도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열고 있다. 여성에게 선거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지난세기에 비한다면 얼마나 대단한 발전인가.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근대 시민사회가 형성되던 시기에 인권을 누릴 자격이 있는 인간은 오직 ‘유산 계급의 백인 남성’뿐이었다. 그래서 차티스트 운동을 일으킨 영국 노동자들은 자기들도 재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에겐 노동력이 있다.” 이어 등장한 페미니스트들도 그랬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뛰쳐나와 노동력을 팔 수 있을 때, 비로소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인간으로 대접받기 위해 그들의 적(敵)을 닮아야 했던 노동자들처럼, 철저히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남성들이 이룩한 것들을 걸쳐야만 비로소 ‘여성’이 된다는 역설. 사회적으로 성적 불평등이 격심해서 그러지 않고서야 여성들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을 때는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나 지금은 바야흐로 여성 시대! 교육, 출판, 방송 등 잘 나간다는 분야는 여성들이 접수한지 오래고, 변호사, 의사 등 이른바 사회 지도층에서도 여성들의 진출이 활발하다. 그러나 현실은? 돈 없고 못 배운 낮은 계층 사람들이 신분상승 욕구에 자기보다 ‘조건’ 좋은 남자를 찾는 것은 애교라 하겠지만, 배울 만큼 배웠다는 아니 남들보다 더 많이 배웠다(?)고 자부하는 여성조차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는 자신보다 학벌이나 연봉이 높은 남성을 찾는다. 그래야 결혼에 성공했다나 어쨌다나. 충분히 두 발로 섰음에도 그 열정을 여성의 가치 창조에 힘쓰지 않고, 다시 남성에게로 회귀하는 것이다. 맑스 말대로 역사는 반복한다, “한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소극)으로.『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여성들의 생존 자체가 관건이었던 지난 세기가 희극이었을 리는 만무하고·······. 그래서 “딸에게는 어머니가 없다.『페미니즘의 도전』” 어려서부터 엄마의 삶을 대물림할까봐 두려워한 딸은,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아버지의 뒤를 잇기를 희망한다. 딸은 ‘아버지의 질서’를 따르기 위해 어머니를 죽이고 버리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는 데 성공해 ‘남성’이 되어봤자 생물학적인 여성인 이상 이등남성일 뿐. 그러기에 이제는 그런 자리들을 만들어내는 남성의 질서 그 자체가 도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철학자 가타리(Guattari)는 기존의 남성적인 가부장적 사회 질서를 해체하기 위해 여성도 ‘여성-되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의 ‘여성’은 기존질서에 편입하여 지위상승을 꿈꾸는 여성이 아닌, 기존의 가치(남성적 가치)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모든 시도를 일컫는 말이다. “여성적 신체 되기는 부부나 가족 등에서 생각되는 그런 여성의 범주와 동류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이 규범을 침해하는 것, 기존 질서와 단절하는 것은 모두 일정한 방식으로 여성되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분자혁명』”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에 시달리면서 남성보다 더 남성적인 시선으로 자신들을 평가하는 여성을 어찌 여성이라 말할 수 있으랴. 남성도 여성이 되어야 하지만, 여성도 여성이 되어야 한다. 모계사회, 부계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상이한 시각은 각각 다른 가족형태를 만들어냈다. 여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새로운 사회가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들 것은 당연지사.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대해 지극히 말을 아꼈던 맑스와 엥겔스지만, 우리시대(가부장적 자본주의) 이후의 가족형태는 다름 아닌 ‘사랑’의 모습을 취할 것이라 한다. 다소 엉뚱하지만 우직하리만큼 잔잔한, 그래서 더욱 감동적인 엥겔스의 말로 이 글을 마무리 짓는다. “그것은 새로운 세대가 성장했을 때 결정될 것이다. 일생 동안 화폐나 그 밖의 사회적 권력 수단으로 여자의 몸을 사는 경우가 단 한 번도 없는 남자들과, 진정한 사랑 이외의 다른 어떤 고려로 남자에게 몸을 맡기거나 경제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애인에게 몸을 맡기는 것을 거부하는 적이 일생 동안 한 번도 없는 여자들의 세대. 이러한 사람들이 생겨났을 때는 그들은, 그들이 해야 할 것을 판단할 때 오늘날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실천을 스스로 꾸려나갈 것이며, 또 이에 근거하여 각인의 실천에 대한 여론을 스스로 만들 것이다.(pp.94-95)” 그것이 전부이다.
2010년 10월 이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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