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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좋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에 이책은 저한테 좋은 존재로 남은 책이였어요.
저희 엄마가 딸만 5명을 낳았어요. 그중에 제가 막내로 태어났는데요.. 안 낳으려고 헀다고 하시더군요.. 아들이 아니면 어떻게 하나?걱정을 했다고 하셨어요. 낳고 나니깐 또 딸이였다고 실망을 하면서 이제 안 낳는다고 결심하셨다고 하네요.ㅠ.ㅠ 시어머니가 정말루 무서운 분이셨다면서 그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제 바로 위에 언니하고 제가 차이가 많이 나네요. 바로 위 조카가 16살이거든요. 언니가 학교에 가면 부모인줄 알았거든요.ㅋㅋ
제가 결혼을하고 아이를 낳게 되었어요. 아들을 기달렸어요. 신랑이 장남이라서요. 그런데 딸이 태어났어요.. 시댁과 신랑, 저희엄마 모두 섭섭해하셨어요.저도 그랬고요..
근데 이쁜 딸을 키우면서 제가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후회가 되네요. 이렇게 애교와 사랑스러운 아이를 제가 왜 그랬을까요? 이책을 통해서 제가 많을걸 깨닭고 다시한번 반성하게 되었어요.
딸을 키우는 부모, 딸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신분들이라면 모두 함께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우리딸 미안해~엄마가 너무 소중하게 생각을 안했던거 같구나.. 앞으로 엄마가 너를 위해 아끼고 사랑하고 정성껄 키울께.. 내 보물야~엄마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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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으면서 생각해봤다. 내가 여자여서 속상하고 억울했던 기억이 있었던가를. 근데 딱히 내게 금방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나의 녹슬어가는 기억력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주변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여자여서 속상한 일이 많이 있구나 싶다. 그 중 한 예를 틀자면 아이에 대한 문제다. 큰며느리일 경우에는 아들을 낳지 못해서 여러가지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수 있다. 요즘이야 워낙 저출산이라고들 하고,그야말로 세월 좋아졌는데 누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아들을 낳으려고 하겠느냐 싶지만 생각보다 그런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위에 딸들을 몇 둔 집에서는 아들을 낳겠다는 의지하나로 몇번의 수술도 서슴치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 딸만 있는 집은 딸들이 모두 결혼하여 남편 호적으로 옮겨가면 법적으로 폐가가 된다. 그 집안이 문을 닫고 대가 끊겼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 딸들이 자손을 낳아 피가 이어지고 있어도 법적으로는 그 집안의 대는 끊긴 것이다.......... 만약 딸을 통해서도 성을 물려줄수 있다면 딸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지도 못하는 자식을 낙태한 심신의 고통을 평생 안고 사는 여성은 사라질 것이 아닌가. 여기서 착안한 것이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이다."
물론 지금은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그러나 뿌리 깊이 내려있는 그 생각이 완전히 우리 마음에서 폐지된것은 아닌듯하다. 그러나 이렇듯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생각일지라도 차츰 사라질것이다. "오한숙희"라는 작가의 이름이 참 이상하고 거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의 이름 속에 호주제 폐지의 역사가 배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발달장애인 둘째딸아이를 통해 작가는 인생에 있어서 또 한가지 깨달음을 갖게 된다. 나또한 장애를 바라보던 생각들을 다시 고치게 되었다.
"비교하지 않는 마음, 참 건강한 마음"
"제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제 아이의 오늘을 어제와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마음은 곧 내 마음의 평화를 남의 손에 두지 않는 비결이었다. 세상의 잣대로 소위 정상이라는, 공부를 잘한다는 그런 기준에 맞춰 비교하지 않는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을 보니 그들이 잘하는 것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문이 닫혔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문이 열려있었던 것이다. "
이 모든 이야기는 "다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장애는 '모자람'이 아니라 '다름', 즉 신체적 정신적 조건이 다른 것이라는 이야기다. 아이에게 자주 읽혀주던 책중에 하나가 생각난다. "사람은 다 다르고 특별해"라는 책인데, 그 책에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나오고, 황인종,백인,흑인등뿐 아니라 키가 크거나 작은 친구등.. 여러가지 모습의 친구들이 나온다. 그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에게 사람은 다 다르고 특별해라고 그저 앵무새같은 말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딸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이 책을 통해서 장애가 진정으로 그저 다른 사람일뿐임을 마음으로 느꼈다.
"오한숙희"라는 여성학자이면서 두딸의 어머니가 살아오면서 마음으로 써내려간 이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내 삶에서 어머니라는 이름으로,여자라는 이름으로, 가정 경영인의 이름으로 내 아이에게 희망을 씨앗을 심어주며 살아가게 할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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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 딸이든 아들이든 잘 키우기만 하면 된다더니 둘째가 아들이라니까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그래도 아들이 하나 있긴 있어야지’ 결국 그러시더라.’” 올겨울 둘째 아이를 출산할 예정에 있는 내 친구의 말에 “아직도 아들이 대세야?” 씁쓸한 웃음을 웃었던 적이 있다. “요즘 세상에는 딸 가진 부모가 외려 큰소리치고 산다더라. 나는 아들 가진 사람들 하나도 안 부럽다.”고 하시던 아빠, 어느 날인가 무심중에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오래전 형편 때문에 아이 하나를 낙태시킨 얘기를 하시며, “내가 그래서 아들이 없는갑다. 죄받아서.” 친구의 시어머니나 우리 아빠가 특별히 딸을 천대하고 아들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여성들 세상이 왔다고도 하지만 실상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는 것. 여전히 이 사회는 남성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이 사회의 여성에 대한 부당한 시선과 처우를 인정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는 있지만, 오랜 세월을 걸쳐 굳혀진 남아선호사상은 쉽게 뿌리 뽑히지 않는다. 여성학자 오한숙희 씨는 이러한 세태 속에서 딸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희망을 퍼뜨려야 한다고 말한다. “엄마, 나도 남자로 태어날 걸 그랬어.” “왜 갑자기?” “나도 말 타고 싶단 말이야.” “여자도 말 탈 수 있어.” “여자가 어떻게 말을 타. 난 여자가 말 탄 거 못 봤어.” “왜, 여자도 말 많이 탄다, 뭐.” “말 탄 여자가 누가 있는데?” 하마터면 나는 애마부인을 입 밖에 낼 뻔했다. 그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애마부인이라니, 세상에. “음......”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생각을 쥐어짜는데 만화영화가 생각났다. “<작은숙녀>라는 만화영화에 보면 여학교에서 말 타는 법을 가르치는 게 나오잖아. 그 중에서 제일 잘 타는 사람을 뽑아서 큰 대회에 나가게도 하는 거, 우리 같이 봤잖니?” “아, 정말 그랬다. 그렇지만 그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잖아.” “외국 여자는 여자 아니야? 다른 나라 여자들이 하는 거면 너도 할 수 있어. 안 그래?” 오한숙희 씨의 큰딸 희록이와의 대화 중 일부이다. 성장과정에서 주변어른들을 통해 굳어지는 관념은 나중에 성장해서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어려서부터 사회의 고정관념으로부터 아이를 자유롭게 키워야 한다는 것. 이것은 다만 딸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아들 가진 부모 역시 마찬가지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사회는 남녀 양성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한숙희 씨는 이 책에서, 딸들을 키우면서 부닥친 다양한 일상사들을 여성학적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지칭하는 ‘딸’은 오한숙희 씨의 두 딸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딸들, 바로 여성들이다. 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여성 자신이 먼저 자신감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기울어버린 애인을 붙잡고자 애걸하는 젊은 여자가 나왔다. “준서 씨, 나 버리지 마.” 옆에서 같이 텔레비전을 보던 희록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네가 쓰레기냐? 버리게.” 나는 짐짓 못 알아들은 체하며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자기가 자기를 쓰레기 취급하잖아요. 버리지 말라고.” 오호! 제법인데. 나는 일부러 한번 더 찔러보았다. “그래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거잖아.” “하지만 자기가 자기를 쓰레기 취급하는데 누가 사랑해주겠어요?” 내가 내 딸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고,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당당하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우리의 딸들을, 여성인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주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딸들이여, 여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신을 사랑하자. 지금의 희망이 행복한 현실로 이어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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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록이와 희령이의 엄마 오한숙희님, 정말 훌륭한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세상의 반, 모든 딸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그 분의 글을 읽다 보면 잔잔한 감동이 전해집니다.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자체가 용기이며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는 희망과 격려가 되니까요. 아마도 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아픔을 감추고 속앓이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그것이 자신을 조금씩 갉아 먹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지요. 한 가정의 불행이 엄마만의 책임이 아닌데 세상은 엄마라는 여성에게 죄책감을 강요하며 굴레를 씌우고 있었네요. 그냥 모르는 누군가의 불행이라고 지나칠 일이 아니었어요. 여성들이 차별 받는 사회를 탓하고 원망하면서도 나의 일이 아니라고 무심했던 저를 반성하게 됩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나부터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저도 딸을 키우는 사람입니다. 자식을 잘 키워야겠다는 욕심만 있었지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는 소홀했음을 느끼게 됩니다. 엄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존경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엄마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성장하는 모습, 스스로를 사랑할 줄 하는 모습이 부족했다는 뜻이겠지요. 직장 생활을 하다가 전업 주부로 살다 보니 살림과 육아가 짐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습니다. 직장 다니는 친구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아직도 집에서 놀고 있니 ”라고 물을 때 갑자기 작아지는 나를 느끼며, 왜 당당하게 집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 살림에 전념한다고 말하지 못했나 생각해 봤습니다. 그건 내 자신도 살림하는 것을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라고 여기질 않았던 겁니다.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내는 일, 가족들을 위한 가사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엄마는 가정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답니다. 엎드려서 절 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생색을 냈더니 이제는 알아서 격려와 칭찬을 해줍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마음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자신감 있고 행복한 엄마가 아이도 잘 키울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결혼한 전업 주부들이 느끼는 세상으로부터의 고립감, ‘갇혀 있다’는 기분은 자신감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오한숙희님은 ‘여자들의 팔다리 늘이기 운동’을 하자고 말합니다. 세상과의 소통을 말합니다. 그냥 이웃이나 주변 사람과의 교류라기 보다는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을 함께 해 줄 수 있는 ‘벗’을 구하기 위한 사람과의 유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 내 딸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내 삶에서 희망을 만드는 일이 내 딸의 삶에 희망이 된다는 말을 마음에 새겨 봅니다. 덕분에 잠시 접어 두었던 나만의 꿈을 꺼냈습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꿈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즐겁습니다. 오한숙희님처럼 여성을 위해 일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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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사회에 남아있는 고정관념이며 남아선호사상이 젊은 나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딸아이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 딸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동이나 말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내가 낳은 딸을 내가 존중하지 않는데 누가 내 딸을 존중할 것이며, 그 아이를 낳은 사람을 또 누가 존경할 것인가 -본문에서(p25)-
이 글을 보고 가슴이 툭 내려 앉았다. 내 스스로가 나를 존중하지 않고 그것으로 부족해 딸아이에게까지 대물림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만큼 가정에서 엄마의 존재와 역활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할수 있다. 한 가정의 회계사고 영양사며 육아 보육을 책임지고 있는 만능 재주꾼이 엄마인 나 자신인 것이다. 처음 딸아이를 위해 읽게 된 책이 어느새 나에게 없던 자신감과 환한 웃음을 선물해 주고 있었다. 그것은 또 다른 기쁨으로 다가왔다. 꺼져가던 작은 불씨를 발견했다고나 할까? 그 작은 희망의 불씨가 내 딸아이의 미래에도 불을 밝혀 줄거란 믿음이 생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지금 저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가슴에 메아리 치며 울려 퍼진다.
'머릿속의 생각은 몸으로 실현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세상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그 변화를 누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핵심은 여성 스스로의 자존감과 자신감이다.(p65)
'어른들의 감정은 세월이 지나면서 물이 빠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시퍼런 감정이 남아 있을때 그것을 생각 없이 노출해 백지 같은 아이들의 마음을 물들여버린 것은 쉽게 씻기지 않는다.'(p176)
'아이는 엄마의 기분을 따라간다'(p178) ........
나는 지금부터 '엄마와 딸이 함께 행복한 세상'을 향해 한 발 다가서려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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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남자로 사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친정어머니가 남아선호 사상이 있어서 차별하여 키우신 건 아니지만 분명 나와 여동생 뒤에 남동생을 가지신건 그래도 아들에게 뭔가 바라는게 있으셔서일 것이다. 난 오히려 돌아가신 외할머니께 여자여서 서러움을 참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남동생 옷이라도 넘어서 지나가려하면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었으니까. 남동생이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올때는 외할머니의 영접을 꼭 받고서야 들어오곤 했으니 그 위세(?)가 과히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리라 생각된다. 이런것들을 보고 자라고 나 또한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면서도 아들에 대한 기대감이 완전히 사라졌느냐 하면 아직 뭐라 확실하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자식을 낳아보지 않았으므로, 사실 남편이나 나는 딸을 원하지만 시댁에서 '아들'이야기를 할때 초연할 자신이 없기에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성학을 강의하는 오한숙희, 이 책의 저자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세상이 심어놓은 그릇된 편견에 사로잡혀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얌전해야 한다, 큰 목소리를 내지마라, 여자는 결혼만 잘하면 된다" 등등 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거대한 힘에 눌린 듯 살아온 인생이 보이는 것이다. 딸을 낳으면 그 아이가 살아가면서 편견을 가지지 않고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아이가 잠을 잘 잘수 있게 요람을 흔들어주듯 생각을 흔들어 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이렇게 키우고 싶다 생각했던 것을 저자는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조카의 진로를 결정해 주고 공부를 가르쳐 주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당당하게 밝히는 사람, 딸이 의사 모자가 아닌 간호사 모자를 만들어 가지고 갈 때 왜 의사 모자를 원하지 않는지 물어보고 누가 뭐라든 자신이 원하는대로 하라고 말해주는 사람, 왕비보다는 여왕이 돼라고 딸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엄마이기에 부럽기도 하다. 내가 가져 보지 못한 호사라고 생각되니까.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내가 공주도 못되는 내가 왕비가 아닌 여왕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깨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딸이 힘들고 힘이 빠졌을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존재가 어머니일텐데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결혼과 출산후 아이를 양육하느라 집안에서만 갇혀 있는 여자들, 직장에서 외면받고 살아온 우리들이 사회에서 소외된 장애자라는 글을 봤을때의 충격이란 지금이야 호주제 폐지, 출산휴가 등으로 인해 여자의 위신이 많이 높아져서 차별받던 대우가 개선이 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곳곳에서 결혼한 여자들에 대한 시선은 곱지 못한게 사실이다. 아이들조차 "엄마 돈 벌어오라"고 등을 떠민다고 하지 않는가. 더 큰 집, 더 큰 차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원하는 자식들로인해 직장으로 돈을 벌러 나오는 엄마도 있는게 현실이니까. 그때 당당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여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것이 지금의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족보에 이름을 올려 마지막 선물을 하고 떠난 저자의 아버지, 오한숙희의 이름을 보면 어머니, 아버지의 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조금은 어색해 보이지만 나는 내 어머니의 성까지 같이 가지고 갈 용기가 없다. 아니 귀찮아서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고쳐야 할게 많으니. 나는 하지 못하지만 타인의 용기있는 행동에 박수는 보낼 수 있다. 분명 세월이 좀더 흐르면 여자들이 살아가기에 더 좋은 세상이 될테니까. 아이가 자라고 내가 사회에 발을 다시 내밀게 되었을때 자연스럽게 그 흐름에 몸을 맡기기 위해 아이가 자랄때 나도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높여야 할테니까. 이 땅의 모든 여자들이 행복한 그날까지 세상살이가 그리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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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에게 희망을/가야북스
“결혼하고 싶은가 보네, 다 큰 총각이 이런 책을 보고...”
같은 사무실에 일하시던 여자 주사님이 책 제목을 보더니 슬며시 웃으시며 말을 건네셨다. 머릿속에서는 ‘그게 아니라, 이 책은 여성학을 공부하는 작가가 딸을 키우고 살아오면서 경험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사회적으로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 오고갔지만 내 짧은 대답은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닌 애매한 것이 되고 말았다. 오늘도 난 내 삶에서 마주친 기회에 무기력하게 침묵했다.
나는 참 행운아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멋진 누나들을 많이 만났고, 그 누나들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서 조금 일찍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 가지는 자유가 “여성”이기 때문에 제약 받아야 하고, 노동자로서 가지는 권리가 “여성”이기 때문에 제약 받아야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덕분에 이런 저런 책들도 읽을 수 있었고, 강연회나 집회에도 참여했다. 물론, 아직까지 남자가 페미니즘에 공감한다는 말을 하기는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이런 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미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해버린 ‘무엇’ 인가가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는 한 당연하게 주고받던 농담에도 귓구멍이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자연스러웠던 일상의 모습들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 생겼다. 마치, 메트릭스에서 네오가 선택한 빨간약처럼..
행복한 일도 많았다. 난생 처음으로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날 행사에 참여하면서 내 기억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행사를 진행하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코너였는데, 짧은 전화를 끊고 엄마가 마지막으로 했던 “아들, 엄마도 사랑해”라는 한 마디에 눈물이 핑 도는 행복감도 느꼈다. 명절날 부엌에 넘어오지 말라는 할머니의 말을 못 들은 척 구석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평소 이야기 나누지 못했던 고모, 작은 어머니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조그마한 사회운동단체에서 회원으로 활동하는 지금도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고, 그녀들의 삶의 무게를 조금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가정”과 “아이”는 항상 어려운 주제였다. 나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살고 싶었고, 이 내용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지금의 가부장적 가족질서를 그대로 받아드리는 결론이 날 때가 많았다. 친구들은 토론할 때면 장난으로 “착한 가부장”이니 “일개 가부장”이니 하는 말로 놀리기도 하지만, 참 어려운 문제였다. “내가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구조의 무게를 무시하는 것 같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보자”는 말은 일상에 구체적인 그림이 없는 추상화 같았다.
그러던 중에 읽게 된 오한숙희씨의 <딸들에게 희망을>은 평범한 일상에서 작가가 경험한 “일상의 게릴라”가 오롯하게 담겨 있었다. 여성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일상의 전투를 하면서도 절대 약해지거나, 비관적이 되지 않고 오히려 넉넉하고 밝은 모습으로 살아온 작가의 삶은 넓은 바다를 연상하게 했다.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 빨리 시선을 옮겨 빛을 찾는 것, 작가가 소개한 자신의 인생법칙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책은 여성에게 강요된 자발성에서부터, 딸을 키우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 눈물을 흘리며 느꼈던 페미니즘 치료법, 이혼에 대한 이야기, 여성들의 유쾌한 연대까지 어느 것 하나 지루하거나 복잡하지 않게 쓰여 있었다. 특히나 작가가 딸에게 건네는 말은 여성주의를 떠나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한번 쯤 꼭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성이 억압된 삶에서 살게 되었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자본주의라는 사회제도와 지금의 신자유주의가 여성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았던 점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한번 꼭 추천하고 싶은 좋은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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