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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TV를 즐겨보지 않는데 요즘은 사극 보는 재미가 솔솔 납니다. 주말 KBS의 <대조영>을 비롯해 MBC의 <이산>, SBS의 <왕과 나>가 재미있습니다. 판타지 사극이라 스스로 칭한 <태왕사신기>도 있으나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이 1% 정도 가미된, 주인공이 광개토대왕이라는 사실 외에는 모두 허구인지라 별 재미가 없습니다. 아니, 10대 때부터 궁궐보다는 전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광개토대왕을 왕위쟁탈에 목숨을 건 나약한 임금으로 그리고 있으니 재미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속이 상합니다. 저렇게 만들 걸 왜 하필 주인공이 광개토대왕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드라마입니다. 인수대비 한씨는 조선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유학자였습니다. 여성 한학자로서 도덕적 유교사회의 여성상을 정리하여 『내훈(內訓)』이라는 책을 펴낼 정도로 나름의 이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쓴 책대로 왕실을 지켜가는 것을 이상으로 살았을 테지만 그녀가 신봉한 유교적 질서와 예법은 다른 여성, 특히 며느리에게는 큰 고문일 수밖에 없었다. (p.62) 『왕을 낳은 후궁들』의 저자 최선경은 여성의 관점에서 이렇게 평했습니다. 인수대비와 성종, 폐비 윤씨와 연산군의 이야기는 고부간 갈등의 되표적인 사례로 전해내려 옵니다. 훗날 연산군은 할머니인 인수대비를 머리로 들이받아 며칠만에 죽게 만듭니다. ![]() ![]() ![]() ![]() <이산>의 주인공은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 이산입니다. 드라마 제목을 '정조'라 하지 않고 '이산'이라 했으니 아마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출 모양입니다. 정조는 세종과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현군이며 업적을 많이 남긴 왕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그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으며, 즉위과정에서도 위협을 받았습니다. 즉위 후에도 끊임 없는 살해 위협을 받았는데, <이산> 지난 주 내용이 바로 성인이 된 정조의 침실에 자객이 침입하여 이산의 목숨을 노린 것이었습니다. ![]() 누구의 사주를 받은 것인지 오늘 드라마를 보아야겠으나, 이덕일이 쓴 『조선왕 독살사건』을 보면 정조를 시해하려 한 것이 세 차례 있었는데, 첫번째 사건은 홍계희의 손자인 홍상범이 암살단을 궁중에 난입시켰다고 합니다. 대궐에 암살단을 난입시킨 것은 조선의 국가 체제가 갈 데까지 갔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후 두 차례 더 암살 시도가 있었습니다. 정조와 당시 노론 세력은 이미 군신관계가 아니라 정적 관계였던 것입니다. 정조는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앞서 <왕과 나>의 성종이 재임기간 동안 정비 세 명과 후궁 열 명을 두었고, 그 자손만도 16남 12녀로, 여색을 즐겼던 왕임에 비해 <이산>의 정조는 민생정치를 펴려했던 그의 이미지와 비슷한 대체로 정숙하고 근검절약했던 왕비와 후궁과 함께 했습니다. 한 명의 왕비와 네 명의 후궁이 있었으나 정조 자신이 스스로 마음에 들어 후궁으로 삼았던 경우는 의빈 성씨가 처음이지 마지막입니다. 그래서 드라마 <이산>은 의빈 성씨(한지민 역)를 주요 인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세자의 누이, 즉 정조의 고모인 화환옹주와 대결 구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화환옹주는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장본인 중의 하나입니다. ![]() ![]() 『왕을 낳은 후궁들』은 여성문화유산 해설사라는 독특한 이력의 저자 최선경이 쓴 것으로, 후궁들의 이야기만을 담은 매우 보기 드문 역사책입니다. 조선사회의 축첩 제도가 여성의 적을 여성으로 만든 비인간적인 제도였는데, 이 책은 후궁들을 왕실 암투의 진원지이지 악의 화신으로까지 그렸던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여성의 시각에서 재조명한 점이 돋보입니다. 폐비 윤씨는 자신에게 사약을 내린 성종을 원망하기보다는 다른 두 후궁 엄씨와 정씨를 저주했다. 반면 장희빈은 그 책임을 숙종에게 물었다. 그리고 죽기 직전 자신의 아들을 성불구자로 만든 것은 숙종과 왕실에 대한 복수이자 부계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다. (p.120) 이러한 참신한 시각을 가졌다는 점 외에도 이 책은 사극을 보기 전에 배경지식으로 참 유용합니다. <왕과 나>를 보기 전에 2편 '조선 최초의 왕비 살해사건 -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편을, <이산>을 보기 전에 6편 '아들을 버린 어머니 -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편과 7편 '대비가 된 후궁 -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 편을 읽으면 참 많은 도움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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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새 월화 드라마 '동이'의 애청자로서 '동이'의 진실이 궁금해 졌다. 그녀는 숙종의 후궁 중 한명으로 조선에서 가장 오래 산 임금 '영조대왕'을 출산한 여자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노비출신이었다. 조선의 엄격한 신분제도 아래에서 어떻게 노비 출신의 여자가 왕의 후궁이 되었으며, 그녀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있었는지.. 너무나 궁금해 하던 중 '왕을 낳은 후궁들'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영조대왕 이외에도 후궁으로 부터 왕이 된 왕들이 몇명 있었다. 단종, 연산군, 광해군, 경종, 사도세자, 순조, 영친왕.. 긴 조선의 역사를 보건데 이들은 분명 몇명되지 않은다. 거기다 영조대왕 이외에 다른 왕들은 그 목숨이 짧았거나, 파행의 정치로 현재는 왕이라고도 불리지 못하는 왕들이다. 양반들 사이의 서자들 마저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조선시대에 일종의 첩이라 할 수 있는 후궁의 자식이 왕이 된다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지만 그 어미와 왕들은 결국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인다. 그것이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든, 주변에 의해서든 말이다. 후궁이 배출한 왕이라는 것에서도 느껴지지만 그녀들의 삶이 참으로 파란만장해서 한장한장이 너무 재미있다.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던 왕들의 가려진 어머니와 그 왕들의 배경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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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서점에서 여러 종류의 책을 보고 있는데,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다 왕을 낳은 후궁들.... 역사서를 좋아하는 터라 바로 집어들어 내용을 훑어보았다 이미 드라마의 소재로 많이 인용된 꽤 유명한 후궁들의 이름도 보였고, 조금은 낯설은 후궁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던 알려지지 않았던 중요한 것은 그녀들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왕을 낳은 후궁들>에는 모두 조선시대를 살았던 8명의 후궁들이 등장한다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씨,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 장씨,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 영친왕의 어머니 황귀비 엄씨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왕의 부인이자 왕을 낳은 어머니이지만 후궁이라는 꼬리표는 죽을 때까지, 죽은 이후에도 따라다녔다 후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들은 한많은 삶을 살아갈 수 없었나보다
원래 왕통은 왕의 적장자가 승계하는 것이 조선시대의 원칙이었지만 정비인 중전이 후사없이 일찍 죽거나 중전이 낳은 아들이 어릴 때 일찍 죽는 일이 많았다 옛날에는 세자를 정하는 일이 왕권을 강화하고 조정을 바로잡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세자를 정하는 일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기에 아들을 생산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던 왕실의 여인들에게 아들을 낳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고 자신의 아들이왕이 되는 일은 그녀들의 꿈이었다 하지만 후궁들의 자식은 세자책봉 문제에 있어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었고, 이는 후궁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중전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는 경우 후궁들과 후궁들의 자식들에게 기회가 왔다 보통 후궁은 여러 명이기 때문에 후궁들의 자식에게 세자책봉의 기회 혹은 왕이 되는 기회가 온다 하더라도 후궁들 간의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는 왕이 총애하는 후궁의 자식 또는 세자가 될만한 재목을 갖춘 사람들이 세자가 될 수 있었다 아니면 정치 세력에 의해 정치적인 의도로 세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8명의 후궁 중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은 사람은 폐비 윤씨와 희빈 장씨가 아닐까 싶다 둘 다 사사되었다는 공통점은 있으나 폐비 윤씨는 모함을 받아 죽음을 맞이했고, 희빈 장씨는 지나친 권력욕과 시기심때문에 죽었다 폐비 윤씨는 성종의 사랑을 받았지만 결국 내쳐졌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연산군은 조정에 피바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희빈 장씨 역시 숙종의 총애를 받아 빈에서 중전의 자리에까지 오르지만 영조의 어미니인 숙빈 최씨에게 숙종의 마음이 돌아서고, 정치적으로도 입지가 좁아진 후 그녀는 역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그녀의 아들인 경종은 4년간의 짧은 재위를 했을 뿐이다 어머니의 불행한 삶만큼이나 아들들 역시 왕으로서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후궁들의 삶은 대체로 불행한 경우가 많았는데, 단종의 어머니는 죽어서까지 험한 처사를 겪어야 했다 단종을 낳은 지 얼마 안되어 죽은데다 세조에 의해 묘까지 파헤쳐졌기 때문이다 비록 후대에 왕후로 추존되고 묘도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게 되지만 그녀의 한은 죽고 난 후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공빈 김씨 역시 젊은 나이에 죽었고 아들인 광해군이 인조반정에 의해 쫓겨나면서 광해군이 힘들게 어머니를 추존한 일이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버리게 되었다 또한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는 직접 아들을 죽여달라 청하기까지 했다 자신이 배아파 낳은 아들이지만 왕실을 위해 결단을 내렸고 사도세자가 죽은 후 남은 생을 회한 속에 살아가야 했던 인물이다 황귀비 엄씨는 일제시대라는 참혹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런 시대에 아들을 남겨두고 눈을 감아야했다
그나마 후궁으로서 평탄한 삶을 살았던 이는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와 순조의 어머니인 수빈 박씨뿐인 듯하다 숙빈 최씨는 무수리에서 빈으로 그야말로 조선시대 최고의 신데렐라의 삶을 살았고, 죽는 날까지 숙종의 총애를 받았으며아들이 왕이 되기까지 했다 또한 수빈 박씨는 정조의 따뜻함을 받았으며 시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와 중전인 효의왕후의 배려와 보살핌을 받고8명의 후궁 중 유일하게 살아 생전에 아들이 왕이 되어 대비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요즘은 여권신장이 많이 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여성들이 알게 모르게 차별받는 경우가 많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여성이라는 이유때문에 말이다 지금도 이러한데, 유교문화가 뿌리깊게 박혀있던 조선시대에는 어떠했을까.. 게다가 강상의 도리와 법도로 무장한 왕실에서 정비도 아니고 후궁으로서 살아가야 했던 여인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왕의 부인이지만 대외적으로는 부인으로 나설 수 없었고, 중전을 충실히 모셔야 했으며 다른 후궁들과 치열한 암투를 벌여야 했으니 그 삶이 오죽했을까 아들이 왕이 되어도 그녀들은 후궁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었다 같은 여자로서 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왕을 낳은 후궁들>을 통해 지금까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왕실의 여인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8명의 여인들이 지금은 하늘에서 편히 쉬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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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낳은 후궁들
지은이 : 최선경 발행인 : 박은주 출판사 : 김영사 페이지 : 235p 독서일 : 2008.02.27
이 책은 궁궐 안 깊숙이 감춰진 후궁들의 삶을 통해 잃어버린 조선의 역사를 복원하겠다는 취지하에서 쓰여졌다. 후궁의 이야기는 역사의 중심에서 소외된 여성들의 이야기로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계층과 인물에 대한 관심은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 했다. 가부장적인 그 시대에서 여성들의 자료를 찾는 것이 지은이에게는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었으리라.
역사서는 여타 다른 책들보다 유독 나의 눈길을 끈다. 아마 그것은 우리네 조상들이 살아온 그림자를 밟아보며 그 시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살려내주기 때문이리라. 어느 순간 손에 닿은 '왕을 낳은 후궁들'. 제목만큼이나 호기심을 자아냈고 숨가쁘게 읽어가기 시작했다.
근래들어 텔레비젼을 보면 유독 우리나라 과거를 심도있게 다룬 드라마들이 많다. 전부터 사극은 있었지만 태왕사신기, 정조대왕 등 많은 인물들이 회로를 타고 안방극장에 찾아왔었다. 그런 흐름에 발을 맞춰서일까? 여기 저기 우리나라 과거사를 다룬 책들도 참 많이 나왔다. 그런 덕분에 요즘엔 마음이 훈훈하고 기분 좋은 바람까지 마음속에서 부는 듯 하다.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들은 '아, 만약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했던 것이였다. 솔직히 가슴아프기도 했으며 화가 나기도 했다. 역사상 성군으로만 느끼고 멋지다 생각했던 성종마저 나의 배신을 때리다니...실로 눈물이 앞을 가릴만큼은 아니지만 씁쓸했다.
과거시대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타국에서도 여인들의 자리는 항상 찬밥신세였다. 부친이나 남편, 혹은 아들의 자리에 따라 자신의 자리도 달라지는.. 그러면서도 정치에는 전혀 관여할 수 없었던 비통한 여인네들의 가슴아픈 한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졌었다.
얼마전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아왔던 '왕과 나, 김처선'에서 폐비 윤씨는 가녀리고 연약하면서도 순박하고 착하지만 정치와 세력의 희생물이 된 것처럼 나왔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니 폐비가 될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찌 그녀만을 탓할 수 있을까?.. 장희빈은 권력을 위해 악착같은 요부가 되었지만 윤씨는 달랐다. 그저 남편 성종만을 바랐던 한 여인이었을 뿐이었다. 윤씨는 성종보다 12살이 많은. 요즘 말로 연상의 여인이었다. 오랫동안 총애는 계속 되었지만 어느 순간 다른 후궁들에게로 눈을 돌린 성종. 세명의 정비에 후궁이 열명, 자손만도 16남 12녀로 여색을 즐겼던 성종. 남성의 바람기는 인정되고 여성의 질투는 용납되지 않는다(?) 어찌 그녀의 투기를 그녀의 잘못이라 할 수 있을까.
희대의 여인으로 불리던 장희빈. 왕비의 자리까지 오르고 아들을 낳아 세자로까지 책봉되었지만 질투심과 시기심으로 인해 후에는 그 모든 것이 물거품되어 사약을 받게 되던날. 그녀는 청하여 자신의 아들(경종)을 불러 아래를 잡아늘여 성불구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장씨의 행동을 보면 악독스럽다(?)라는 표현을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행동은 말도 안되는 여성억압과 남성우월주의. 그리고 왕과 왕궁에 대한 무언의 시위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외에도 몇몇의 여인들과 궁중 생활들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궁생활이 화려함과 아름다움이라기 보다는 암투가 벌어지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많은 여인네들의 혈투장으로 느껴졌다. 왕의 사랑을 받고 아들을 낳고 살면 모든 것이 다 좋았을 꺼라는 막연한 그런 기대심리는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어떤 남성들은 과거처럼 일부다처제를 원한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어떤 여성들은 일처다부제를 하는 건 어떻냐는 핀잔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남성도 여성도 둘의 관계에서 의지를 하고 삶을 살아감에 있어 따뜻한 배려를 한다면 사랑나눌 이를 양으로서 판단하지는 않으리라 싶다.
일부일처제든. 일부다처제든. 일처다부제든간에 그저 그냥 서로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따뜻한 살림을 꾸리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은 아닐까.
추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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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극땜 조선사에 관심이 많아져서...멀 읽을까 하다 고민끝에 고른 책...너무 잼있어서 하루만에 다 읽었네요 드라마 생각하면서 읽으니까 더 좋았어요... 안에 사진도 있으니까 지루함도 덜 하고..몰랏던 것도 알게 되고...오랜만에 정말 잼있는 책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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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이란 쉽게 말해서 첩이다. 첩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나쁜편이다. 현재도 나쁘고 과거에도 나빴다.
조선의 신분제는 모계를 승계하기 때문에 엄마가 천민이면 자식도 천민이여서 신분이 태어나는 것도 일종의 고통의 연속이 되기 쉬운 시절이었다. 이러한 신분불이익이 적용되지 않는 곳은 유일하게 조선왕실이었다. 왕의 승은을 입기만 하면 궁녀에서 노비가 후궁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다. 자식이 왕이 되는 엄청난 일을 경험 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는 여성이 바꾼다는 말이 실감나는 책이다.
이책은 특히 장희빈에 대해서 자세히 다룬부분이 인상적이다.
희빈 장씨는 죽기전에 자신의 아들을 성불구자로 만든 여인인데 장희빈이 사약을 받는 자리에서 세자의 국부를 잡아당겨서 불구로 만드는 내용을 보면서 이것이 서인에 의해 조작되거나 과장된 이야기라고 해도 장희빈의 실제 성격을 알 수 있는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드라마 동이의 삶도 알 수 있는 책으로 많은 역사공부에 도움을 주는 책이라 매우 유익하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와 책이 함께 하면 더 많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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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통사 위주로만 읽다가 왕을 낳은 후궁들이라는 주제로 쓰여진 내용이 읽을수록 재미 있었다
시각도 신선하고 일일이 후궁들의 묘역이나 관련 장소들, 기록들이 있어 새로운 관점의 내용들을 더욱 관심있게 볼 수 있어 좋았다.
다른 후궁들의 이야기는 대충 알고 있었는데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의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되었고 남편과 결탁(?)하여 아들을 죽음으로 몰게 된 그 어미의 맘이 짐작되어 나도 마음이 아팠다
한편, 이런 새로운 시각의 역사책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앞으로도 이러한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다시금 새겨서 교과서에서 배우고 시험을 대비해서 마냥 외우는 그런 역사가 아니라 살아 숨쉬며 우리 곁에 있는 그런 역사책을 계속 만나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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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6일>
최근 우리나라 독서계에 불고 있는 역사 읽기의 바람은 '왕'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조선시대의 여러 분야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포커스를 맞춤으로서 더욱 거센 돌풍으로 자리잡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음지로 밀려나 있던 내시와 궁녀들을 재조명하면서 덩달아 그들에 대한 책들도 속속들이 발간되고 있고 또한 중전에 포커스를 맞춘 조선왕비실록이라든지 백성들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 조선풍속사 등은 조선시대를 두루 폭넓게 대하고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독자들에게는 어렵고 딱딱하다고만 여겨졌던 역사를 재밌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소식이라 하겠다.
본 책도 조선시대 궁궐 안을 또다른 시각으로 바라봤는데 그것은 후궁에 대한 시각이었다. 왕실에 자손을 번창시키려는 목적으로 들인 후궁들. 구중궁궐 안에서 정비의 눈치를 살피며 대신들의 권력과 음모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한많은 삶이 극렬하게 드러난다. 그런 후궁들 중에서도 아들을 왕좌에 앉혔던 후궁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후궁은 처음에는 정비가 후사를 낳지 못할 때 양반가의 딸들 중에서 정식간택을 하여 들였다고 한다. 나중에는 정식 간택없이 궁녀들 중에 승은을 입어 후궁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 더욱 많아졌고 왕좌에 아들을 올린 이들도 궁녀 출신이 많았다.
첩은 본처가 될 수 없고 본처와의 상하관계도 확실했던 사회였지만 왕실은 달랐다. 첩이라 해도 후궁은 처음부터 지위가 높았고 정비가 죽으면 계비로 중전의 자리에 앉을 수도 있었다. 후에 성종은 장희빈의 사사 이후 후궁은 정비가 될 수 없다고 법제화 하였다.
하지만 왕좌에 오른 후궁의 아들이 늘어나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왕후로 추존하고 종묘에 모시는 사례도 늘어났다. 그녀들은 '궁(宮)'이라는 호칭을 얻었고 지금은 청와대 옆 궁정동에 칠궁(七宮)이라는 사당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그녀들을 나열하자면 장희빈의 대빈궁, 숙빈 최씨의 육상궁,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의 선희궁,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의 경우궁, 영친왕의 어머니 엄 귀비의 덕안궁 그리고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영조의 후궁이면서 진종의 어머니인 정비 이씨의 연호궁, 선조의 후궁이면서 원종의 어머니인 인빈 김씨의 저경궁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왕의 여자'보다는 '왕의 어머니 '쪽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었다 했다. 권력의 그늘 아래서 고통 받았던 그녀들은 왕의 어머니였지만 후궁이어서 관련자료가 부족했고 자료마다 출생 연대나 신분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궁녀에서 후궁이 된 그녀들은 신분과 가문이 비천했기에 아들을 낳고도 눈치를 보아야 했다. 그녀의 아들이 왕좌에 올랐다 해도 수빈 박씨 외에 그녀들은 이미 죽은 후였기에 살아 생전에는 영광을 받지도 못했다. 후궁의 이미지가 화려하게 포장되었지만 현실은 녹녹하지 않았던 것이다.
"후궁들의 이야기는 한편으론 역사의 중심에서 소외된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계층과 인물에 대한 관심은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그중의 하나가 잊혀진 여성의 역사를 찾는 일이고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역사 속에 기억되는 길이기도 하다." (p.7 책을 내면서 中)
저자의 바람대로, 나도 그러했듯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 시절의 여인들이 재조명되고 재인식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또한 이 책처럼 소외되었던 계층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와주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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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후궁들의 이야기는 늘 궁궐의 어두운 뒷면같은 이야기들이다. 한 남자의 사랑을 받기위해 벌였던 정비와 수많은 후궁들의 암투, 그 속에는 쓸쓸히 사라져가는 후궁들도 있었고, 왕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후궁도 있었으며. 왕의 사랑의 한 순간의 사랑으로 끝나버린 후궁들도 있었다. 왕을 낳은 후궁이지만 죽은 후에도 시련은 다시 찾아오고.... 단지, 왕을 낳은 여자였다는 이유로 촌부의 삶과 후궁의 삶. 어떤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
일부다처제의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면서 초기에는 다처의 풍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성계 역시도 첩이 아닌 처를 함경도와 개경에 동시에 두었다. 그 후 본처 이외의 여인은 모두 첩으로, 궁에서는 정비 이외의 여인은 후궁으로 두었다고 한다. 물론 숙종이전에는 정비가 죽은 후 후궁을 정비로 했지만 숙종이후 후궁은 정비가 될 수 없도록 하라는 명으로 후궁이 왕비가 되는 일은 없었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 세조에 의해 현덕왕후의 묘를 파헤쳐지는 시련도 있었다. 권씨는 문종의 세번째 비로, 단종을 낳고 숨을 거두었는데 문종은 그 후 왕비를 맞이하지 않았다고 한다. 연산군의 어머니폐비 윤씨는 장희빈과 함께 TV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역사속의 인물이다. 가난한 양반의 가문으로 간택을 통해 성종의 정식 후궁이 되었고 총애를 많이 받았다. 공혜왕후가 죽은 후 성종의 후손을 잉태한 상태에서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자신의 생일날 후궁의 처소에 든 성종의 용안을 할퀴면서 궁궐에서 쫒겨났고 3년 후 사약을 마셨다. 선조의 후궁이었던 공빈은 광해군을 낳고 2년 후 사망했다. 임진왜란으로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지만 인목왕후에게서 선조가 아들을 얻자 세자의 자리가 위태했다. 하지만 왕이 된 후 공빈 김씨를 공성왕후로 추승했지만,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인조1년 공성왕후는 다시 공빈으로 강등되었다. 너무나 유명한 희빈 장씨. 의도된 궁녀의 신분으로 숙종의 사랑을 받았지만 궁에서 쫒겨나고 인현왕후가 다시 궁으로 불러들인다. 하지만 숙종의 총애를 받고 교만해진 장옥정은 중전을 모함. 결국 폐위시키고 중전의 자리를 차지했다. 왕비가 된 장희빈은 아들 윤까지 세자로 책봉되었지만 숙종의 사랑이 최씨에게 옮겨가고 후궁으로 맞이하면서 질투심에 최씨에게 가혹한 짓을 했다. 인현왕후가 다시 환궁하였고 희빈으로 강등되어서도 결국 별궁에 신당을 만들어 민씨를 저주해왔음이 발각되면서 자결을 명했고 결국 사약을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그의 아들이 바로 경종이다. 이 밖에도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무수리 출신으로 숙종의 총애를 받았는데 영조는 어머니에 대해 더할 수 없는 효자였다고 한다.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대비가 된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 영친왕 어머니 엄귀비 이야기가 재미있게 설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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