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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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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한밤중에 행진]을 주문했었다. 그 책에 요시다 슈이치의 [7월 24일 거리]가 보너스로 왔다. 그때, 그랬다. "이게 왠 땡이냐?" 그 땡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라는 기억이 정확하다. 돈을 주고 산 책보다 공짜로 날아들은 책이 백만배가 나았으니까. 그때의 기억때문에 요시다 슈이치의 책을 두 권 더 주문했다.   요시다 슈이치와의 두번째 만남이다. 7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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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한밤중에 행진]을 주문했었다. 그 책에 요시다 슈이치의 [7월 24일 거리]가 보너스로 왔다. 그때, 그랬다.

"이게 왠 땡이냐?"

그 땡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라는 기억이 정확하다. 돈을 주고 산 책보다 공짜로 날아들은 책이 백만배가 나았으니까. 그때의 기억때문에 요시다 슈이치의 책을 두 권 더 주문했다.

 

요시다 슈이치와의 두번째 만남이다. 7월24일 거리를 읽고 여성 작가인 줄 알았다가 인터뷰란을 보고 남자인 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놀랐다. 그 솔직한 심정은 이랬다. "이 새끼 뭐야?"  그렇다. 남성작가라고는 상상도 할수 없을 만큼 섬세했고, 따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후의 아들 표지에 작가의 사진이 실려있었다. 오오, 잘생겼다. 그런데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이 좀. 뭔가 게이스러운 분위기였다. 나는 게이를 알고 있다.

 

학창시절에 양 팔을 좌우로 흔들며 뛰는 남자녀석들을 보면, 달려가서 540도 발차기로 때려눕힐 만큼 여성스러운 자식들을 나는 싫어했다. 세월이 흘러 먹고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가 되었을 때, 내 먹고사는 일에 중요한 조언자가 되어줄 누군가를 소개받아야 했고, 그는 디자이너 였고, 뉴욕에서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지인이 내게 말했다.

"일이니까 네가 이해를 해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움을 받을수 없을거야."

나는 웃었다. 어지간히 성격이 이상한 사람인가보다, 라고 생각을 하며 그 정도의 조언을 할 정도로 내가 편협해 보였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떤 동네의 스파게티 집에서 그를 소개 받았을 때, 나는 무려 한 시간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자는 게이였다. 몇번이나 뒷통수를 내려치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그에게 동화되었다. 내가 정체성을 잃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주장에 설득을 당했다는 편이 옳겠다.

"사랑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뉴욕으로 떠났다."

그의 섬세함과 성숙함. 그리고 또 다른 성인다운 모습을 깨닫기 시작한 무렵이 아니였다면 나는 쌍욕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을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다르다는 이유로 구석으로 몰려있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 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그때쯤 나는 그가 나를 덮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을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게이들에 대한 생각 역시도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아니, 오히려 게이들을 옹호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그가 말했다.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한테만 대쉬하지 너 같은 사람들 한테는 안그러니까 걱정마." 게이들 중에는 예술가들이 많았다. 그게 그들의 다른 점 중 하나라고 했다. 놀라운 미적 감각과 섬세함이 그들에게 주어진 어떤 빈공간의 혜택 같은 것이었다.

 

이 책은 두 편의 중편소설로 구성되어있다. 하나는 호모에 관한 이야기이고, 하나는 한 가정의 세남자 이야기이다. 나는 솔직히 첫번째 소설을 보며 요시다 슈이치를 좀 의심한다. 생긴 것도 그렇고 그 글은...절대 게이가 아니고서는 써 낼수 없는...뭔가가 있다. 7월 24일 거리를 떠올려봐도 그랬다. 뭔가 남다른 섬세함이있다. 남자는 가질수 없는.

 

두 번째 만남이란 그렇다. 이전까지 두 번째 만남을 가진 작가들 중에 전작을 능가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정도? 그건 내 첫 작품에 대한 선택이 좋았을 수도 있고, 작가 내공의 한계일수도 있다. 그런데 요시다 슈이치와의 두번째 만남은 놀라웠다. 7월24일 거리도 대단한 수작이었지만 최후의 아들은 더하다. 이 책이 요시다 슈이치의 대뷔작이라 하는데 마땅히 신인상을 받을만하고 이런 작품이 신인상을 받지 않는다면 어떤 작품이 신인상을 받는단 말인가.

 

오쿠다히데오, 에쿠니가오리, 츠지히토나리, 다지이오사무, 호시신이치, 기타야마 교이치, 이케이도 준, 쇼지유키야, 오기와라히로시, 와타야리사, 시라이시가즈후미 , 쿠마가이타츠야, 카와카미히로미......지금까지 내가 만나 본 일본 작가들이다. 이들 중 단 한명을 꼽으라면 요시다 슈이치를 꼽겠다. 물론,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나,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작가들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 이외에도 하루키라든가 좋은 작가들을 만날 기회는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작가들 중에, 일본의 현대 문학을 이끌 사람들 중에서는 요시다 슈이치가 최고다, 라는 것을 최후의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 자의 글은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나 또한 철저하게 감성으로 소설을 대한다. 감성을 통해 다양성을 들여다 보고, 감성을 통해 또다른 깨달음을 느낀다. 보수적인 문학가들의 눈으로 보자면 그저, 대중소설가로 비추어 질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시다의 글은 독특한 색깔이 있다. 그 색깔이란 뭐랄까, 일단 엄청난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빨려들어간다 정도가 아니라 내가 그곳에 있는 것 같다. 어찌 그런 풍경을 그려낼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뭔가 대단히 상세하게 묘사를 하지 않음에도 왠지 그가 말하는 장면들이 살아 움직이듯이 떠오른다. 삶을 느끼는 감도도 매우 깊다. 표현도 너무나 매끈하고 잘빠졌다. 장면을 통해 우러나는 감정의 파동이 나에게까지 강하게 전달되어진다. 어렵지 않아 읽기에도 수월한 문장이다. 감성의 여운도 진하다. 대사와 장면묘사에서 작가 인생의 깊이를 느낄수 있다. 그것이 고전문학처럼 무겁고 어려운 짐처럼 표현되지 않아서 더욱 쉽고 강렬하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어떻게 남자가 이런 글을 써낼수 있을까. 실로 믿을수 없다. 당장 한 번 더 읽으라도 다시 읽을 수 있다. 단, 한페이지도 지루한 장이 없다.

 

아씨, 담배 없네. 담배사러 가야겠다. 이건 좀 더 담배 한 대에 커피 한 모금을 음미하면서 그 여운을 즐겨야 하는데 이 중요한 순간에 담배에게 배신을 당하다니. 돗대가 남으면 벨소리를 울리는 담배를 개발하라!

 

글이 너무 좋아서 깜빡 잊을 뻔했다. 담배를 사오니까 생각이 났다. 왜 책값이 구천원인가. 180페이지에 짧은 소설임에도 굳이 양장본을 만들어 구천원을 받는 이유가 대체 뭘까. 유통상의 문제인가? 잘모르겠다. 묻고 싶다. 마치 그건 어차피 많이 팔리지 않을 것 같으니까 한 권에서라도 더 많이 남겨먹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뭘 기대하고 구천원을 받는지. 내가 만약 요시다슈이치를 모르고, 서점에서 이것을 발견했다면 사는 것은 고사하고 욕만 바글바글 했을 것이다. 다른 책들도 다 그렇게 받는데 뭘 그러냐 라고 말하면 나는 그에게 말하겠다.

"한 판 붙자!"

b******k 2008.12.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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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자들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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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의 특징은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사회와 융화하고 호흡하지 못하는 성적소수자, 미취업자, 과거의 아픔으로 가슴에 상처를 담은 사람과 같은 사회적 부적응자들이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이 현실에서 겪는 고통과 소외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작가 특유의 가볍고 쉬운 필치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과 좀더 쉽게, 가까이 다가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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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의 특징은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사회와 융화하고 호흡하지 못하는

성적소수자, 미취업자, 과거의 아픔으로 가슴에 상처를 담은 사람과 같은 사회적 부적응자들이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이 현실에서 겪는 고통과 소외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작가 특유의 가볍고 쉬운 필치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과 좀더 쉽게, 가까이 다가갈수 있도록...

 

이 책은 두개의 짧은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최후의 아들과 파편.

최후의 아들은...

중학교시절 동성애를 가진 친구(우콘)에게 느낀 묘한 감정을 가진 주인공이 주류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자신을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동성친구(엠마)와 함께하면서 겪게되는

성적 소수자, 사회와 격리된 동성애자로서 아픔과,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직업도 없이 생활하는

주인공의 복잡한 내면을 요시다슈이치는 특유의 플롯 기법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엠마가 남긴 편지를 읽고 과거의 기억인 비디오테잎을 보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리고 사회적 통념속에 동화될수 없는, 두려워하는 자신들을 이야기한다.

엠마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어머, 그래 맞아 난 모순덩어리야, 그러니까 호모지." 하는 말과

"..난 사양할래. 나한테 당신을 당신집안의 최후의 아들로 만들 권리도 책임도 없다고.."

사회에 온전히 적응할수 없는 성적 소수자들로서의 위치와 현실, 그 현실을 헤쳐나갈

의지, 용기가 없는 자신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그들이 갖고있는 아픔을 이야기한다.

비디오 영상을 통한 과거와 현재의 숨가쁜 전환속에서 작가는 그들의 불완전한, 사회와 갈등하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묘사하는듯 하다.

두번째 단편 파편....

어린시절 엄마를 잃은 두 아들의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때문에 엄마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막내 다케시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로 올라갔지만 취업하지못하고 사랑에 빠져있는 형 다이카이

파편에서도 최후의 아들과 같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두 형제의 심리를 플롯의 변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것이다.

엄마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생각하는 다케시는 여자에 대한 집착을 드러낸다.

자신이 꼭 함께하고 지켜주겠다는...학생시절 사귀었던 여자친구(소라), 청년이 되어서는

호스티스 여성(사쿠라)에게 보이는 집착을 통해 사회에 대한 부적응을 이야기한다.

형 다이카이는 폰섹스 일을 하는 여성(유코)와 함께하면서 직업도 없이 사회에 대한 부적응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있는건 아닐까?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웃으면 그들도 웃는다.

그들은 우리와 다를게 없다고..

그들도, 우리도, 다만 이 사회의 구성원일 뿐이다 라고............

e****e 2007.10.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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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아들(1997)_요시다 슈이치
"최후의 아들(1997)_요시다 슈이치" 내용보기
요시다 슈이치의 데뷔작이자 신인상 수상작인 '최후의 아들'을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차트 역주행이니 정주행이니 말이 많은데 저 같은 경우에는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역주행한 셈입니다. 최후의 아들은 중편 소설로 책에는 '최후의 아들' 외에도 같은 정도 길이의 소설 '파편'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소설의 배경은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나가사키 입니다. 나가사키의 소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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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의 데뷔작이자 신인상 수상작인 '최후의 아들'을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차트 역주행이니 정주행이니 말이 많은데 저 같은 경우에는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역주행한 셈입니다. 최후의 아들은 중편 소설로 책에는 '최후의 아들' 외에도 같은 정도 길이의 소설 '파편'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소설의 배경은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나가사키 입니다. 나가사키의 소소한 분위기 그리고 골목 골목에 대한 묘사가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곳을 배경으로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들의 생각과 이야기들이 커다란 곡선을 그리듯 잔잔하고 천천히 흘러가는 그런 소설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이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점차 책을 읽어 가는 자신의 생각을 비추게 되고 끝에는 강렬하지만 짧은 여운을 남기게 되는 소설인 것 같습니다.


최후의 아들

도쿄에서 바를 운영하는 게이 엠마, 그리고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항상 그를 쫓아다니는 나...

어느날 나는 비디오를 보면서 그 추억을 쫓는다...


파편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다이카이, 오랜만이라고는 하나 고작 몇년 비웠을 뿐인데 훌쩍 커버린 동생 다케시는 어느새 아버지를 대신해 술가게를 운영해 나가고 있었다. 형도 동생도 어느새 조금씩 변해 버린 서로를 감지하지만 짐짓 모른체 한다... 

t********n 2015.02.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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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상의 잔잔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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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절제는 어디가 최대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화나고 슬퍼하고 울다가 다시 웃고 행복해하고 또 살아가고 어른이 되는 걸까? 최후의 아들과 파편이라는 두 단편은 그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듯 하다. 그러면서도 그 과정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적절한 듯 모호한 듯 그렇게 그려진다.요시다 슈이치의 데뷔작품인 이 [최후의 아들]은 또 하나의 비디오라는 프레임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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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절제는 어디가 최대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화나고 슬퍼하고 울다가 다시 웃고 행복해하고 또 살아가고 어른이 되는 걸까? 최후의 아들과 파편이라는 두 단편은 그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듯 하다. 그러면서도 그 과정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적절한 듯 모호한 듯 그렇게 그려진다.

요시다 슈이치의 데뷔작품인 이 [최후의 아들]은 또 하나의 비디오라는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 있다.
시를 쓰고 싶었던 남자, 남자를 사랑하지만 그 사실을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하지 못하는 남자. 그리고 그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맛난 음식을 해주고 남자의 어머니와 즐거운 담소를 나누고 싶은 남자. 그들은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 속에 머무르지만 결코 그들과는 속하지 못하는 세계를 살고 있는 남자. 그는 정말 최후의 남자인가? 동성애를 그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내면의 일부 중의 하나를 동성애적 관점으로 그리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사실 박하향 같았던 [워터]를 읽은지라 조금 혼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작가의 작품을 순차적으로 만날 수 있는게 아니라서 [최후의 아들] 한 편만으로는 워터의 느낌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세 부자의 이야기를 담은 [파편]을 함께 만나면 그 연장선 상에 워터가 있음을 알게 된다. 폭우 속에서 아내와 아들은 위험에 빠지고 아들에게 손을 내민 순간 아내를 사라지고 만다. 엄청난 사실을 받아들이고 또한 크나큰 절망을 겪어냈을 가족. 그러나 어디에도 그 슬픔의 작은 흔적조차 작가는 보여주지 않았다. 남겨진 이들은 같이 소풍을 가고 물놀이를 즐기며 마음속에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남자들만의 잔잔한 일상을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유부단한 모습의 형과 다소 다혈적인 동생과 그들을 지켜봐주는 아버지.. 그들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

이 소설에 여자는 크게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치만 이 소설에는 여성의 눈빛이 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좋은 여자이고 싶었던 남자와 좀도 다정다감한 엄마의 역할까지 해주고  싶었던 아버지를 모습은 따뜻한 사랑이다. [꾸준히 사랑받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16쪽] 정말 꾸준히 사랑받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란 걸 알지만 꾸준히 사랑한다면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 같다. 나의 주변에 나를 둘러싼 많은 이들을 꾸준히 사랑해야겠다. 그들도 나를 꾸준히 사랑하리라는 믿음으로......

 

 

 


r*********s 2007.10.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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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로서 존재해야 하는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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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나'의 파트너 엠마가 집을 나가는 이유로 -'나'를 그 집안의 최후의 아들로 만들 자신이 없다-고 밝히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그렇게 남겨진 내가, 엠마와 사는동안 촬영했던 비디오들을 돌려보는 시간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는 하는 일 없이 엠마에게 빌붙어 비디오나 찍으며 살고 있다. 대부분 카메라 앵글 밖에 위치하는 '나'는 일인칭 시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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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나'의 파트너 엠마가 집을 나가는 이유로 -'나'를 그 집안의 최후의 아들로 만들 자신이 없다-고 밝히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그렇게 남겨진 내가, 엠마와 사는동안 촬영했던 비디오들을 돌려보는 시간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는 하는 일 없이 엠마에게 빌붙어 비디오나 찍으며 살고 있다. 대부분 카메라 앵글 밖에 위치하는 '나'는 일인칭 시점이라는 것 외에는 딱히 주인공이라 하기도 뭣할만큼 모든 것에서 관찰자의 입장이다. 자기의 인생에서도 말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대변되는 사회의 통념 앞에 굴복하지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도 못한다. 시를 좋아하지만 마음속으로도 (오직 독자에게 들릴)그 사실을 당당히 말하지 못한다. 자랑스러운 건 오로지 반듯한 글씨체뿐이다. 라는 것의 속성이 강압이란 단어와 대비는 될지라도 나약함을 의미하진 않을 것인데, 감수성이 여린 마음으로 치우쳐서 뭔가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걸까 싶어 안쓰럽기도 했다.

  엠마는 모순적이다. 그래도 '나'보다는 조금 낫달까. 적어도 그(녀)는 사회가 규정한 남녀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나'를 건사할 만큼 경제적으로도 자립했고, 맛있는 요리를 하는 즐거움도 알고 있는 안팎으로 능력 있는 현대여성이다. 다만 그 모순은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라는 데 있을 뿐이다. 단지 하나의 모순점이건만 대를 잇는다는 본성에 정확히 반대되는 무게감 때문에 엠마의 생활 역시 뒤틀려있다. 놀고먹는 남편을 돌보아주고 그의 배신을 참아내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나'는 분명 여자를 좋아한다. 지금은 남자와 지낸다. 단순히 '바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학창시절의 친구였던 우곤은 사회의 아들이 되기 버거운 내가 그의 (어딘가 다른)퇴폐적 분위기를 동경하게 됨으로써 호모를 도피처로 삼게했을 뿐, 사랑은 아니었으며 엠마는 육체보다 내면의 여성성이 훨씬 부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올곧은 자아를 가진 남자를 좋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여성향도 남성향도 아닌 모순체일 뿐이니까. 엠마는 사회 속에서 제대로 아들노릇을 할 수 없는 내가 그저 남성을 연기하면 되는 반쪽자리 여성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 여성이 요구하는 건 시대의 뒤틀린 남성이라 어쩌면 더 쉬울 지도 모른다. 연기에 속아 넘어가는 엠마를 볼 때 자신을 뻔뻔하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내'쪽이 훨씬 안됐다. 저 여자 앞에서도 이 여자 앞에서도 결국 내가 좋아하는 시집은 탐정소설의 커버로 덮어야 할 만큼 내 자아를 누일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아쉬움을 맛보는 데서 오는 멋을 모른다. 부족함을 불완전이라 여기기에 무엇이든 쫓으려고만 한다.그러면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추구하면 모순이 생기게 마련이다"

 

 

 엠마 가게 손님이었던 기자의 말이다. 이들의 모순이 결국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려다 생겨난 것일까? 완전함이란 기준자체가 잘못된 것인지 완전함을 추구하지 못하는 게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저 말을 그냥 넘겨버리는 주인공들의 삶의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늘 다투고 화해하는 연애의 굴레처럼 인생은 돈다. '나'의 부모님으로 대변되는 사회의 통념도 삐걱삐걱, 돌아갈 듯한 기미가 보인다. 어머니는 이유 없이 아버지의 밥을 챙기지 않고 집을 떠나온다. 그런 어머니가 며느릿감에게 요구하는 전통적 여성성인 '요리'는 위장 애인인(생물학적으로 여성인) 사와코에게는 없을지언정 엠마에게는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이 곧바로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어머니가 다음날 바로 아버지에게 돌아갔듯이, 자신이 며느리 자리에 소개되는 거라 생각해서 달아난 엠마도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모순이란 건 누구나 갖고 있는 모습이기에 공감하기 쉬울 것 같은데도 처음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고의는 아닐테지만 '내'가 지독히 내면의 소리를 감추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 밖에서 내가 비디오 전부를 훑어본 것이 사실은 소설 속 '나'의 시선 이므로 '나'역시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기회를 가졌을 거라 생각한다.

 그 증거로 '나'는 비디오를 다 본 후 엠마가 오길 기다리며 일기장에 쓰인 엠마라는 이름을 모두 '이와구라 마사토'라는 원래의 남자이름으로 바꾸어 적기 시작한다. 이것은 비디오의 시작부분에서, 그들의 모순된 세상이 세운 가상의 나라에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던 친구가 '안티 호모' 무리에게 맞아 죽은 후, 일기장에 쓰인 본명을 모두 대통령이라는 익명으로 가렸던 '나'의 행동과 상반되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들은 좀 더 건강한 관계를 이루지 않을까 낙관한다.

 

 

 

 더불어, "배가, 고픕니다." 하고 혼자 목소리를 내보는 마지막 장면이 꽤나 인상적이다. 이는 통념과 자아 사이에서 우왕좌왕 하던 걸음이 드디어 방향을 찾은 순간이 아닐까. 그 한걸음으로 시작되는 길이 언젠가는 소설 속에서 한번도 등장하지 않은 '내' 이름을 걸고 시를 발표하는 날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YES마니아 : 로얄 a***o 2009.06.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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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아들] 공동체는 언제부터 강해지는가?
"[최후의 아들] 공동체는 언제부터 강해지는가?" 내용보기
2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입니다. 첫번째 이야기인 '최후의 아들'은 게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게이는 자식을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최후'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이지요. 일본 사회에서도 게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깡패들의 린치도 각오해야 하고, 부모님이나 회사에도 숨겨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게이 동료들은 두 종류의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지요. 소수
"[최후의 아들] 공동체는 언제부터 강해지는가?" 내용보기

2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입니다. 


첫번째 이야기인 '최후의 아들'은 게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게이는 자식을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최후'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이지요. 


일본 사회에서도 게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깡패들의 린치도 각오해야 하고, 부모님이나 회사에도 숨겨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게이 동료들은 두 종류의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지요. 


소수의 아주 깊은 관계, 혹은 다수의 아주 앏은 관계...


하지만, 아무리 깊은 관계를 맺는다고 해도, 즉 하나뿐인 연인 관계를 맺는다고 해도, 그 관계는 너무나 쉽게 깨어집니다. 


결국 최후에 남은 동료는 자기 자신 밖에 없게 되지요. 그것도 다른 동료를 믿지 못하는 자신 뿐인 공동체를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 그것은 어쩌면 '게이'라는 특정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수 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인 '파편'에서는 일반적인 사람들도,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같은 상처를 나누고 있는 가족들도 서로에 대해서 깊은 관계를 유지하기 버거워하고 있으니까요. 


이 두 개의 이야기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 그 관계를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합니다. 


차라리 그냥 혼자 고독하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무의미한 시도일지라도, 다른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손을 내밀고, 다른 사람이 내미는 손을 잡아줘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결국은 슬픔으로밖에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시지프스의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연습 없는 실전 뿐인 인생이니까.. 그냥 무작정 부딪쳐야 하는 것일까요?



l*****6 2013.03.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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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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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토리움 인간은 어른 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청년기의 인간을 뜻한다. 최후의 아들은 워터의 뒷부분에도 삽입되어 있고, 최후의 아들이라는 단행본 속으로도 따로 출간될만큼 주목받았던 소설이다. "모두가 구원받기 위해, 누구 한 사람이 꼭 희생되어야 한다면, 모두 구원받지 않으면 돼."라고 간단명료한 원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최후의 인간]보다는 사실 함께 실린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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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토리움 인간은 어른 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청년기의 인간을 뜻한다. 최후의 아들은 워터의 뒷부분에도 삽입되어 있고, 최후의 아들이라는 단행본 속으로도 따로 출간될만큼 주목받았던 소설이다. 

"모두가 구원받기 위해, 누구 한 사람이 꼭 희생되어야 한다면, 모두 구원받지 않으면 돼."라고 간단명료한 원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최후의 인간]보다는 사실 함께 실린 [파편]에 더 눈길이 갔다. 

파편은 형 다이카이를 중심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도쿄에 사는 그는 동거하는 여자친구를 잠시 두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아버지를 도와 함께 술배달을 하는 동생 다케시가 있는 고향으로. 다케시는 순박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집착적인 구석이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아버지의 쓸모없는 창고를 집으로 개조해나가기 시작하는 면만 봐도 그렇다. 조금씩 조금씩 돈이 생길때마다 집을 고쳐나가는 그에게선 긍정적인 젊은이의 모습보다는 어딘가 이그러져있는 모습들이 발견된다. 

사실 학창시절 다케시는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상처를 주면서 헤어져야만 했다.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자 그는 자신의 손가락에 칼을 대었는데, 이토록 극단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다케시는 정상적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지금의 다케시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여자에게 집착하고 있다. 이번에는 호스티스다. 이혼녀 호스티스는 다케시를 계속 거부하지만 그는 그녀를 돌봐줘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 그녀에게 매번 돈을 가져다준다. 물론 그녀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찰의 개입이 있고서야 일단락 되는가 싶어졌다.

문제는 다케시만의 것이 아니었다. 형 다이카이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함께 동거하고 있는 여자친구는 구찌 가방을 사기 위해 폰섹스 아르바이트를 한다. 매번 잠자리에서 다른 남자에게 외설스런 말들을 지껄이는 여자친구와의 동거. 순탄할리 없다. 형도 동생도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진 않다.

가족에겐 문제가 있다. 그 옛날 홍수에 엄마 다에코를 잃고난 일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도 모를일이었다. 아빠 쇼조는 이 두 아들에게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파편은 우울한 이야기다. 희망의 증거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회색빛 내일을 예찬하지도 않는다. 요시다 슈이치의 장점인 쉽게 쉽게 풀어서 보여주기식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i*****i 2010.01.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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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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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아들을 최후의 남자로 읽어서 연애소설인 줄 착각한 경력이 있는 이 책.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은 일요일들과 열대어를 읽었는데 중단편이랄까 단편이라기에는 긴 ... 여기의 두 주인공은 평범한 주위에서 싶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사적인 모습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을뿐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은 차분하다. 최후의 아들은 대통령의 죽음에 관한 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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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아들을 최후의 남자로 읽어서 연애소설인 줄

착각한 경력이 있는 이 책.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은 일요일들과 열대어를 읽었는데

중단편이랄까 단편이라기에는 긴 ...

여기의 두 주인공은 평범한 주위에서 싶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사적인 모습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을뿐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은 차분하다.

최후의 아들은 대통령의 죽음에 관한 얘기로 시작되

나의 얘기가 나온다 과거에서 현재로 ...

엠마 본명은 따로 있지만 엠마가 더 친근한 그 또는 그녀

요리잘하고 착한 엠마 장면장면의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나

탱고의 기본은 남자와 여자라 말하는 나

어린시절 친구 우콘의 영향일짜 '나'는 이성애자? 동성애자?

 

파편 두 형제 동생은 일잘하고 여자가 일을 함에도 자신이

돈을 벌어 전세를 얻어주고 생활비를 주는 동생

형은 도쿄에 살면서 따른 직장은 없고 같이 사는 여자는

명품을 사고 싶다고 폰섹스 아르바이트를 하고

동생이 아는 여자는 동생의 호의를 점점 불편해 하고

형이 아는 여자는 이제 형이 보내려 한다

 

삶은 고독하고 따분하게 흘러간다 이들에게는... 

a******2 2007.10.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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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그려지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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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이건, 독자의 상상력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게 되는 거 아닌가 싶지만. 특히 이 작품은, 작품 속의 영상. 비디오 카메라에 담아 남긴 영상을, 실제 영화처럼 혹 비디오를 틀어서 보고 있다는 느낌으로 읽게 된다. 직업도 없이 호모 엠마,에게 얹혀 살고 있는 주인공. 그 주인공와 엠마가 비디오로 남긴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보여준다고 해야하나? 그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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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이건, 독자의 상상력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게 되는 거 아닌가 싶지만. 특히 이 작품은, 작품 속의 영상. 비디오 카메라에 담아 남긴 영상을, 실제 영화처럼 혹 비디오를 틀어서 보고 있다는 느낌으로 읽게 된다.

직업도 없이 호모 엠마,에게 얹혀 살고 있는 주인공. 그 주인공와 엠마가 비디오로 남긴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보여준다고 해야하나?

그 비디오를 통해, 조금은 색다른 사랑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감상 혹 사랑에 대한 또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최후의 아들"이란 제목만 봤을 때는, 그전에 읽었던 이문열의 "인간의 아들"이 떠오르면서, 그런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지 않을까 했는데. 내 생각, 내 선입견은 역시 짧았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그런 느낌이 들려나? 엠마가 남긴 쪽지에 표현된 단어, 혹 문장인데, 그렇게도 책 제목 혹 작품이 제목이 정해질 수 있구나, 싶었다. 물론, 그전에 읽은 책에서도 그런 경험은 있었지만 말이다.

문득, 내가 기억력이 짧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읽은 작품들은 어떻게든 짧게나마 다른 작품들과도 연관지어 생각해 낼 수 있구나 싶어진다. ^^

이 작품이 내게 주는 의미는, 내가 좋아하는 요시다 슈이치의 초기작품이라는 거. 그래서 내가 쌓아가고 있는 작가의 이미지에 또 다른 이미지를 심어줬다. 그리고 영화를 좋아해서 작은 영화들을 찾아 보곤 했는데, 그런 내 경험이 이 작품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문화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는 것. 그건 경험의 유무에 따른 게 아닌가 싶다. 암튼, 그런 의미에서 읽어볼 만한 작품이었다. 물론,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건 아니다. 그냥, 내 나름으로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세계는 틀림없으니까, 간접경험의 시간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는 것이다.

요시다 슈이치를 진정 좋아하는 독자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

n***8 2007.10.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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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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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퍼레이드'라는 책으로 첫만남을 가진 이후 완전히 매료되어 틈틈히 만남을 이어나가고 있는 요시다 슈이치는 그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작가였다. 그의 글은 작품마다 조금씩 그 색을 달리하면서도 기본적으로 튀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뇌리에 눌러붙어서 잊혀지지 않는 기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름을 보는 순간 머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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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퍼레이드'라는 책으로 첫만남을 가진 이후 완전히 매료되어 틈틈히 만남을 이어나가고 있는 요시다 슈이치는 그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작가였다. 그의 글은 작품마다 조금씩 그 색을 달리하면서도 기본적으로 튀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뇌리에 눌러붙어서 잊혀지지 않는 기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름을 보는 순간 머릿속 어딘가에 들러붙어있는 기묘한 힘을 가진 단어들이 살아나 '최후의 아들'이란 이 책을 굉장히 흥미로운 모습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런 상태에서 요시다 슈이치의 데뷔작이란 문구와 작가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라는 말까지 더해지자 이 책은 나에게는 무슨일이 있어도 읽어야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 책은 '최후의 아들'과 '파편'이라는 두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번째 이야기인 '최후의 아들'은 신주꾸 뒷골목의 동성애자들의 이야기였다. 80년대 영화의 제목으로 정말 잘 어울릴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지 조금 당황스런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나에게 요시다 슈이치란 이름 때문인지 책소개를 자세하게 보지 못했기에 사전지식이 없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만 생각해서 액션이나 사나이들의 이야기를 생각했기에 그 당황스러움은 남들보다 더 컸다.
하지만 그런 당황스러움의 책의 재미를 떨어뜨리진 않는다. 요시다 슈이치는 자신이 해야할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주인공이 삶을 통해 소외된 이들의 삶과 사랑을 깊이있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두번째의 '파편'은 어머니가 없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고로 아내를 잃은 아버지나 두 아들은 오랜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사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큰 아들인 다이카이가 집으로 돌아와 잠시 머무르는 동안 비추어지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삶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를 느끼게 된다.
두 이야기는 굉장히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두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의 외로움에 가슴이 축축히 젖어들어 무거운 기분을 느끼게 된다.

내가 이제껏 알던 요시다 슈이치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 전에 읽었던 책들보다 조금 더 어둡고, 조금 더 무거운 느낌이며, 조금 더 우울하다. 내가 그의 책들을 많이 만나보지 못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더 밝고, 가벼운 느낌의 글을 쓰는 것이겠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기쁜일일 것이다. 지금의 나 역시 그런 기분이다. 조금은 다른 요시다 슈이치를 만났지만, 그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기분에 약간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q*******1 2013.11.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