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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을 무슨 봉쯤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나 일본과 같은 경우는 교육을 교육답게 학생도, 실업자도, 전업주부도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이기에 그들의 존재가 사회적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모든 사람은 기본적인 소득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연유로 학생은, 대학생은 미래의 희망임을 확인하고 미래의 노동력으로서의 혹자는 미친짓이라며, 말도 안되는 생각이라며 도리질을 할 수 있겠지만 이제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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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특징은 부채경제다. 빚을 지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평범한 사람들이겠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이 정말 좋아하는 유형은 빚쟁이다. 큰 빚을 질수록 그만큼 매달 빠져나가는 이자를 채우느라 뼈 빠지게 일할 수 밖에 없기에 그렇다. 금융자본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은 사회를 공장으로 만들고 시민 노동자를 빚을 진 채무자로 만드는 경제시스템이라는 데 있다. 일반가계부채를 예로 들면, 부채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3대 대출이 자동차대출, 교육대출, 주택대출이다. 국내에 자동차로 빚쟁이가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비싼 학비와 집값 때문에 대출 노예가 되는 경우는 비일비재다. 그리고 이런 부채경제 혹은 채무경제를 멘탈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자기계발과 자기관리의 문화산업이다. 봉급자의 현실을 풍자한 말로 회사에 길들여진 '가축'이란 의미의 '사축'이 있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에 길들여진 '사축'인 셈이다. 교육대출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학 학비 대출과 대학의 시장화 움직임이다. "대학은 취직예비학교가 되어 있고, 비싼 수업료는 내릴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장학금이라고 해 봐야 원래부터 지급형은 존재하지 않고 대출형, 정확히 말하면 빚밖에 없다. 그리고 학생을 채무노예화하고 그 인생을 자기계발에 옭아매고 있다."(71쪽) 유럽 각국의 학비 제도에 비하면 아시아 각국의 학비 제도는 매우 후진적이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고, 장학금 유형만 따지고 본다면 오히려 한국보다 더 못한 실정이다. 시간강사 출신의 아나키즘 연구가 구리하라 야스시는 『학생에게 임금을』(서유재, 2016)에서 대학 등록금도 생활비도 국가가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생 신분이거나 대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형이라면, 귀가 솔깃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대학에서 학비를 받는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청년들을 빚쟁이로 만들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등록금이 있는 한 대학생은 부채경제를 원활하게 돌리는 데 필요한 호구일 따름이다." 너무 급진적인 주장이라서 이 책이 혹여 금서리스트에 오르거나, 대중매체에서 너무 떠들어대서 사회적인 적색경보가 켜지는 것은 아닐지 오히려 걱정스럽다. 저자의 모든 주장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평소에 공교육의 수업료와 대학등록금은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무상급식이나 무상교육 얘기가 나오면 무조건 대중에게 영합하는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세태가 한심스럽게 여겨진다. 요전에 화제가 되었던 '기본소득'을 시민의 권리로까지 간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무교육과정의 전부 학비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교육의 등록금까지 일괄 면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은 장사하는 기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순진한 것일까. 저자는 대학교육의 무상화와 지급형 장학금 제도는 교육의 기회균등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독자들을 환기시킨다. 모든 지식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공부의 힘과 평생학습의 가치를 강조하는 마당에,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임금을 제공한다는 아이디어는 매우 달콤하게 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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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카리아트(precariat)란 말이 있다. 무산자(無産者)를 뜻하는 proletariat와 불안정한, 믿을 수 없는 등을 뜻하는 precarious의 합성어인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 고용 및 노동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말한다. 구리하라 야스시의 ‘학생에게 임금을’을 읽는다. 올해 38세인 저자는 연 수입은 80만엔인데 635만엔의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 대학강사인 저자는 강좌 수를 늘려보려고 여러 대학의 공모에 응했지만 한 군데도 통과하지 못했다. 전공은 아나키즘 연구이다.(내가 프레카리아트란 말을 처음 접한 것은 아마미야 가린의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을 통해서이다. 두 책의 저자가 모두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의미 있는 단서로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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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게 임금을》은 일본의 대학과 대학생이 처한 현실을 진단한 책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적용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는 내용이 담겨있다. 주요 내용으로 일본의 장학금 제도를 다루고 있는데 이를 한국의 학자금 대출로 바꿔 봐도 무리가 없다. 일본의 경우 지급형 장학금이 없고 대신 갚아야 하는 상환형 장학금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공립대학보다 사립대학을 키우며 등록금의 수직상승을 사실상 방치해왔다. 책은 초·중등 의무교육은 당연시하면서 대학 교육의 무상화는 안 된다고 하는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짚고, 교육 기회균등이 이뤄져야만 모든 인간이 평범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50여년 전 '학생에게 임금을'이란 학생운동 슬로건이 대학 무상화를 이끌어낸 사례를 시작으로 일본의 대학과 대학생이 처한 현실을 진단한다. 학생에게 임금을 지급하라는 요구는 이탈리아에서 학생들의 대학 점거가 확산되는 가운데 널리 공유되어갔다. 물론 이탈리아 정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학생들에 의한 대학 점거는 경찰력에 의해 해제되었다. 빚을 권장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부채경제'도 고발한다. 대학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학생들이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비싼 학비를 받아들이고 빚을 내도록 장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산업혁명 직후 기계를 파괴한 '러다이트 운동'을 되살려 부채 사회에 대한 러다이트 운동을 하자고 말한다. 왜 대학이 공짜여야 하는지 나아가 고등교육 무상화 논리의 역사성과 실현가능성을 발랄하게 들려준다. 책에 그려진 5년 전 일본은 오늘날 한국 대학생들의 모습과 겹친다. 노동자가 임금을 요구하는 것이 자본가에 대한 구걸이 아니듯이, 노동력 상품 생산자인 학생은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비싼 등록금 문제가 무엇보다 학생들을 고립된 ‘개인투자자’로 만들어 배움이 지니는 사회성을 파괴하는 데 있다고 한다면, 학생들이 연대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고등교육의 사회성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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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게 임금을 책 제목을 봤을 땐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깔끔한 표지 덕분에 더더욱 모를 수밖에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책은 이젠 거의 모두 대부분이 진학하는 학교가 되어 있는 대학생활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어떤 문제점이 발생하는지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랍니다. 일러두기를 먼저 보고 나서 읽어야 할 책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네요. 작가가 일본 사람이기 때문에 일본의 '장학금' 제도는 대출형 학비보조금의 형태로 '지급형 장학금'인 우리나라 장학금 제도와 달리 거의 대부분 상환해야 한다고 하네요. 그렇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학문만 해서는 먹고 살 수 없다. 그렇게 시작하는 이야기. 공부를 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자신의 대출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네요. 꿈을 펼쳐야 하는 젊은 나이부터 이렇게 대출금액에 걱정하면서 학자로 살아가는 길이 멀고 험하기만 하다면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으로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의 핵심은 바로 대학 무상화를 말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언젠가부터 취직을 위해 필수 과정이 되어 버린 대학. 더 많은 스펙을 쌓기 위해 선택이 되어야 하는 대학이 되어 버렸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버티기 위해 더 배우는 과정을 쌓는 노동자가 되어버린 학생들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등록금 때문에 부채를 쌓고, 더 좋은 곳에 취업을 하기 위해 스펙 쌓는데 들이는 돈이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학비를 받는 대학이 학생들을 빚쟁이로 만드는 곳이 되어 있기에 등록금 인상에 대한 비판을 합니다. 대학 교육의 무상화는 안 된다고 하는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교육 기회균등이 이뤄져야만 인간들이 평등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면서 다른 나라의 교육 사례 이야도 거론이 됩니다. 유럽이나 교육 정책이 잘 된 나라들. 정말 동양권에서 부러워 하는 시스템을 가진 나라들의 이야기는 많은 책들에서 등장하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유럽에 있는 나라들의 학비 제도에 비하면 아시아는 후진적이라는 평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일본의 실정이 이러하니 당연히 이 주장이 여러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어느 쪽에서 읽는냐에 따라 내용에 대해서 반감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반가운 주장이 아닐까 싶네요. 일본의 장학금 제도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저자의 의도가 왜 대학이 무료여야 하는지 설명하면서 여러 문제점들을 풀어나가는 것을 보고 교육이라는 본질의 의미까지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네요. 교육도 사업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볼 기회도 누려보지 못하는 세상에서, 밝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학생에게 임금을. 이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답니다. 마지막에 한국어판으로 학생들의 좌담이 들어가 있답니다. 일본의 문제점에 대해서만 읽고 끝났다면 아쉬움이 있었을 텐데 이 부분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생각과 마음도 들여다보면서 위기의 대학들이 아닌 정말 꿈을 위해 가야 하는 곳이 되었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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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위스에서 일을 하지 않고도 일정 소득을 보장해주는 '기본소득'제도 도입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결과는 도입 반대의 표가 높아 실현하지 못했지만(- 재원 마련의 불확실성과 증세에 대한 부담감 및 기존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기본소득의 대체 가능성이 의문이라는 점에서 '현상유지'를 택하여 반대 의견이 높았다고 함-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려고 사회적 논의를 시도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 무상급식과 성남시에서 실행하고 있는 '청년 배당' 제도를 기본소득 제도가 부분적으로 시행되는 사례로 볼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기본소득 도입 여부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구리하라 야스시의 『학생에게 임금을』에서도 기본소득의 실현을 내세우며 학생들에게 학비 무상화와 지급형 장학금의 확보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 지식과 교육은 공공재로서 독점대상이 아니므로 공공재의 주인인 학생들에게 쓸모를 따지지 말고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교수뿐 아니라 학생들도 수업을 받으면서 표현에 대한 지적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지적 생산에 대한 몫으로 수업료를 국가로부터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현재 일본의 장학금제도는 대출형 학비 보조금의 형태여서 학생을 채무노예화로 만들고 만다. 학생들이 이러한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학생들 스스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여 기본소득 도입을 사회 공론의 주제로 이끎으로써 국가의 정책을 바꾸는 데 있다.
이 책은 대학의 본질이 무엇이며, 학생들은 그 공간에서 어떻게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형성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품게 해 준다. 저자의 경험을 담아 쓴 글이므로 현장감있게 전달되며, 반값등록금과 국가장학금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내용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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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애초에
학생이 놀면 안 될 이유라는게 없지 않은가. 20세 전후의 학생이 놀지 않는다면 누가 언제 어디서 논단 말인가. 확실히 말해 두고 싶다. 대학은
놀기 위한 장소라고. 솔직히 기업이 원하는 의사소통능력이라는 것도 결국은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든 연인이든 동아리 활동이든 제대로
어울려 노는 인간관계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길러지는 것일 터이다.
1. 『학생에게 임금을』 다소 도발적인 제목이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지식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그 지식을 얻기 위해 대학에 다니며 수업료를 낸다. 하지만 저자 구리하라 야스시는 오히려 학생이 수업료를 내는 현실은 잘못 되었다며, 오히려 학생이 대학으로부터 수업료를 받아야 한다고 도발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
현재 한국을 관통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헬조선"과 "수저계급론"... 이 단어들은 한국의 불평등한 현실을 보여준다. 부의 대물림으로 인해 부자는 점점 부자가 되어가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가난해지는 양극화가 심해지는 사회... 그것이 현재 한국이다. 강남에선 아이들을 좋은 상급학교,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수천만원의 고액과외를 하는반면, 돈이 없어 변변한 학원조차 보내지 못하는 현실...
교육받을 권리라는 말이 있다. 이는<헌법>에 따라 모든 국민은 능력에 맞게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것인데,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현대 한국에선 누구나 균등한 교육을 받는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부의 격차가 교육의 격차를 가속화하는 현실이다.
나날이 오르는 등록금에 학생과 부모들은 등골이 휘어진다. 내 친구 중엔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마련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중소기업에 취업을 했는데 아직까지도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자신의 월급에서 상당부분을 대출금 갚는데 쓴다고 한다. 다행히 난 부모님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대학 등록금은 마련해주셔서 학자금 대출을 받지는 않았지만, 현재 많은 대학생들은 학자금 대출이란 명목 하에 수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소위 엿(?)같은 상황은 우리만의 문제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일본 역시 우리 못지 않은 교육의 격차문제, 학자금 대출문제가 심각하다. 일본에서는 장학금이라 하지만 사실 그 장학금이라는 것도 장학금이라는 이름하에 포장된 대출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구리하라 야스시 씨는 35세 대학 시간강사이다. 그는 연 수입 80만엔에 대출은 635만엔이나 된다고 한다. 그 대출은 일본학생지원기구에서 장학금으로 빌린 돈이라 한다. 일본학생지원기구의 상환 압박에 그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를 보니 예전에 내가 읽은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란 책이 떠올랐다. 그 책의 저자 김민섭씨 역시 대학 시간강사로 일했었는데, 4대 보험도 되지 않는 시간강사 삶의 애환을 그린 책이었다. 오히려 맥도날드 알바에서 4대 보험을 보장해줬다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난 사회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그런데 그런 구조적인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옆 나라 일본에도 있었으니....
2.
『학생에게 임금을』
저자는 대학의 무상화를 논하고 있다. 장학금이란 명목하에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는 대학생들의 현실에 개탄하며, 그는 대학생도 지식이란 공공재를 공유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대학생은 이중의 의미에서 노동자이다.
첫째, 교육비와 교육 기간 동안 먹고 샆기 위해 생활비를 벌지 않으면 안 된다. 본분인 연구와는 전혀 관계없이, 쓸데없는 임노동에 종사하며 소모당하고 있다.
둘째, 교육이라고 하는 상품, 상품이라고 하는 체제를 유지시키는 불가결의 요소로서 대학생은 대학생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경우 단지 수업을 듣는 행위를 넘어 거기서 배운 내용을 기억하는 것, 밝고 원만하게 행동하는 것, 대학자치라는 체제를 위해 분주하게 호라동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 대학생들의 지속적인 활동과 창의와 인내가 없으면 대학생은 존재할 수 없고, 대학은 대학이 아니게 된다.
- 『학생에게 임금을』 pp.23-24-
대학생들의 지속적인 활동과 창의와 인내가 없으면 대학은 대학이 아니게 된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대학에서 지적활동은 교수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학생들 역시 자신의 관심분야나 흥미분야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독서회라든지 동아리를 만들어 독창적인 사유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수는 그런 학생의 반응에 자극을 받아 더욱 깊이 있는 논의와 연구를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지식은 한 번 사용하면 없어지는게 아니라 쓰면 쓸수록, 공유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이 된다. 공공재는 희소성이 없다. 오히려 사용하면 할수록 모두에게 재미있고 가치있는 것이 늘어나게 된다. 대학의 지적활동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재화와 다르다. 학생은 대학의 소비자인 동시에, 교수와 함께 지적활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에게 임금을 받는게 아니라, 오히려 임금을 주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대학을 가지 못하는 현실이야말로 불평등하고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한국과 일본과 달리 서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학생들이 부담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 일본처럼 대출을 받아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는게 아니라, 대학에서 국가에서 학생들에게 부담없이 공부할 여건을 마련해주고 있다.
학생에게 임금을... 이 슬로건은 사실 1960년대 유럽의 대학에서 나온 구호였다. 대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고, 대학의 자치를 수호하려는 학생, , 대학교수, 강사, 교원들이 뭉쳐 정부에 저항했는데, 그때와 때를 맞춰 나온게 바로 학생에게 임금을 이란 슬로건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유럽의 무상교육혜택에는 바로 학생들의 투쟁, 자기 목소리를 내었다는데 있다. 더불어 일본에선 오히려 학생들이 자기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의 많은 학생들이 엄청난 등록금의 부담을 지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정부의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의 등록금 차이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사립대학의 등록금을 인하하는 대신 국립대학의 등록금을 네 배로 올려 그 격차를 줄이려 했다고 한다. 왜 일본의 대학생들은 이런 움직임에 저항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일본의 和 정신 때문일까? 와(和) 정신은 조화를 이루려는 일본인의 특성인데 나쁘게 보면튀지 않고 무던하게 가려는 습성이다. 이런 문화 때문에 괜시리 저항을 하면 조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반동자가 되어 저항을 하지 않았을까 란 생각이 든다.
3.
현재 일본의 대학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대학이 기업화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아니 우리는 어쩌면 일본보다 더 심할지도 모른다. 일본의 대학개혁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건 산업진흥에의 공헌과 경영효율... 구체적으로 보면 실용교육의 중시와 채산에 맞지 않는 분야의 폐지이다. 그래서 일본의 대학들은 인문학부 그 중에서 어학의 비중을 줄이는 추세이다.
일본의 대학개혁 슬로건인 "특색있는 대학 만들기" 이는 간단히 말하면 취직전문학교로 만든다는 것, 기업을 위한 인재육성에 기여하는 대학을 만든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업의 경제활동에 불필요한 과목들... 인문학, 철학, 역사학, 사회학, 어문학 등을 없애가는 것이다. 그렇게 학과를 폐지하고 남는 돈으로 컴퓨터 등의 설비를 구비한다. 19세기에는 기계설비의 근대화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거나 저임금에 열악한 환경으로 일을 했는데, 21세기에는 대학교원이 대학의 설비투자 때문에 해고당하는 현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요즘 대학교를 보면 호화찬란한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기숙사 역시 민자기숙사라며 호화시설을 자랑한다. 단 기숙사비는 한 학기에 최소 60만원 이상이나 되는 높은 가격을 자랑하지만.... 그런데 이건 한국만이 아닌 일본에서도 보이는 현상이기도 하다.
대학의 캠퍼스라 하면 무수한 유인물과 덕지덕지 붙은 대자보들, 지저분한 몰골을 한 학생이 확성기를 들고 연설을 하고 있는 광경 등 아마도 지금부터 10년 이전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라면 이런 잡다하고 어수선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생은 반짝반짝 윤이 아는 건물과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가 있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사회인이 된 졸업생들이 오랜만에 대학을 방문한다 해도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런 풍경뿐, 모교의 옛 모습은 만날 수 없을 것이다.
-『학생에게 임금을』p.198 -
원래 대학은 자유와 투쟁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학생 자치활동이 활발한 곳이기도 했다.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서로 깊이 교류하고 예술과 음악에 빠져들기도 하고, 독서와 토론회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로이 터놓고, 술을 마시며 연애를 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이런 학생의 자치활동이야말로 대학을 대학답게 만든 요인이었다.
하지만 이런 학생들의 자치활동은 기업의 입장에선 도움 안되는 것이었다. 기업에게 있어 대학은 하나의 비지니스 투자다. 신자유주의에 입각해 기업의 스폰을 받는 대학들은 성가신 존재인 자치활동을 정화하기로 했다. 와세다대학교의 동아리방 철거, 도쿄대 최대 자치기숙사이자 6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코마바 기숙사의 철거는 대학이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탄압한 사례라 하겠다.
와세다 대학의 동아리는 졸업생, 중퇴자, 제적자, 실업자, 타대생, 재수생 등 구성원이 다양했다. 다양한 만큼 동아리 문화는 알차고 풍부했다. 대학의 틀을 넘어 학생들은 자신들간의 교류의 장을 만들어갔다. 그런데 대학이 그런 자유를 빼앗아갔다. 코마바 기숙사는 기숙사 자치회에서 기숙생을 선발하고 재정관리부터 전단 제작이나 기숙사 행사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이 토론해서 실행하는 구조였다. 학생들은 합숙으로 공동생활을 하며 민주주의의 감각을 익혔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대학측이 기업의 경영논리를 내세워 학생들의 자치활동 아니 자유를 빼앗았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상황일까?
학문의 전당인, 자유를 토론하는 공간인 대학이 기업의 노예가 되고, 기업을 위한 취업양성소가 되는 현실은 정상적이지 않다. 비정상적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대학개혁론자들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정상을 비정상으로 규정짓는다.
순수학문이 아닌 기업을 위한 학문을 가르치고, 그리고 높은 등록금을 학생에게 부담시키는 대학... 높은 수업료를 마련하기 위해 수업을 빠지고 아르바이트나 취직활동를 하는 대학생들, 그럼에도 학비가 비싸니까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고, 그것으로보 부족하니까 장학금을 빌리는 현실... 그런 현실인데 학생들이 수업에 빠진다고 불만을 갖는 대학교수...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쁜 것은 대학과 기업이다.
동아리 활동 같은 것도 하지 않고, 친구도 없이 혼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갈 곳은 화장실뿐이다. 혼자 밥 먹는 것을 보이기 싫어 학교식당에 가지 않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 점심을 먹는 학생들... 신자유주의라는 미명하에 기업 위주의 교육정책의 폐해가 아닐까?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아닌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말하는 인재상을 키우는 것이 대학의 존재이유 아닐까?
4.
『학생에게 임금을』
이 책은 일본 대학교육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이 낯설지 않은 건 무엇일까?
그건 일본의 교육문제와 한국의 교육문제가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돈이면 다 되는 더러운 신자유주의의 영향 하에 대학들이 기업화되어 가고 있다. 몇년 전 두산그룹이 스폰으로 있는 중앙대학교에서 취업에 도움이 안되는 학과를 폐지해서 말이 많았다.
기업들이 대학의 운영에 깊이 관여하는 건 우려스럽다. 기업들이 대학의 운영에 입김을 불어넣는 것.. 그것은 대학은 더이상 대학이 아니다. 취업양성소일 뿐이다. 학생들이 하나의 인격체로서가 아닌 기업의 부속품으로 취급받는 현실에서 대학이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취업이 아니라, 바로 인문학적 사유, 그리고 대학의 존재 의의가 아닐까?
덧붙여서.....
대학은 1088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최초로 생겨났다. 당시 대학은 교수나 교직원이 아닌 학생이 갑의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교수와 교사 월급을 학생이 주었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허가없이 절대로 휴강을 하지 못했으며, 휴강을 한다면 월급을 주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교수가 어디 여행을 가려면 담보를 맡겨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수강인원이 5명 미만이면 월급을 주지 않았고, 학생들이 수업 진도를 컨트롤했다 한다. 가히 학생이 대학의 주인인 시대였다.
지금은 이렇게 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건 필요하다고 본다. 더이상 자신들의 교육받을 권리, 자유로이 대학에서 공부할 권리, 학비 부담없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권리 최초의 대학의 학생들처럼 대학생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었으면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가『학생에게 임금을』에서 주장한 재미있는 권리를 소개하는 것으로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학비를 무상으로 하는 것.
빌린 것을 갚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학생의 자치활동을 탄압하지 않는 것.
함께 모여 바보 같은 소동을 벌여 보는 것.
학생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 화를 내는 것.
화장실의 변기를 따뜻하게 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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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번역된 이유는 일본의 사회적인 문제가 바로 우리의 문제와 흡사하기 때문이다.학생들의 학력은 과거보다 점점 높아지는데 취업의 문턱은 좁아지고 있는 현실.. 30년전 그들은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어도 취직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기득권을 가지고 누리고있는 현재, 자신들이 대학교 시절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것들을 지금 현재 대학생들에게 모두 차단하고 있다. 취업문제에 대해 공감을 하면서도 그들은 그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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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가 계속되는 요즘. 갈수록 힘들어지는 청년들. 항상 뉴스에서 외치는 말은 청년 일자리 확대. 정작 변화된 것 없는 현실 속에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학생에게 임금을』 조금은 뜬금없는 것 같은 소리기에 이 책의 저자가 굳이 이 책을 쓴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 책의 주제는 단 하나. 입신출세의 학문인 유교를 비판하는 것이다. '꺼져라, 유교. 잘 가라, 행복이여. 어차피 영화를 누려도 죽으면 한 줌 흙으로 사라질 뿐이다.그렇다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 (중략) 인간이 어떤 빚에도 속박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좋을 만큼 생각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까. 뻔한 대답인 것 같지만 그것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학비 없는 대학이다. 대학 교육이 무상화 되었을 때 진짜 자유는 시작된다. - page 9 그렇기에 그는 대학 무상화를 이 책에서 논하였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우리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돈을 갚기 위해 싫어도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빌린 것을 갚지 않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고, 그래서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 page 184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 입니다. 그래서 취업을 하고 일을 하더라도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기는 커녕 오로지 '돈'이 목적이 되어 기계적으로 벌기만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지게 되는 빚은 학비와 관련될 것입니다. 물가의 오름과 같이 오르는 등록금. 하지만 교육과정은 시대의 흐름만큼 변화되지 않음에 실망을 하겠지만 그런 시간적 여유도 심적 여유도 없기에 우리는 한창인 20대부터 '빚의 노예', '돈의 노예'가 되어야만 합니다.
토론 형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선 안타까움만이 남아있었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목소리. 하지만 현실화되기엔 그저 꿈꿀수 밖에 없음에 우리는 이런 책을 읽으며 잠시나마 위로를 받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육'이 지니는 보편성과 사회성. 그동안 그 의미를 모른채 지내온 것에 대해 다시금 반성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라도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고등교육이 회복하여 우리의 삶의 질도 향상되길 기대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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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실업자에게 학적을! 등록금도 생활비도 국가가! 꿈꾸라 하기 전에 잠잘 시간을! 참 매력적이게 다가오는 문구이기는 하다. 하지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아니 그보다도 필요한 자금은 세금으로 충당할텐데 해당사항이 있는 가정에서는 환영하겠지만 그렇지않은 가정에서는 반발이 일어날법한 이야기같다. 지금 영유아에게 가정에서 보육하면 일정금액을 주는것도 혜택을 받는이들은 국가에 낸 세금을 이렇게나마 돌려받는다 생각하지만 그렇지않은 이들은 자기자식을 낳아 키우는데 왜 나라에서 돈을 주느냐고 내가낸 세금을 왜 엉뚱한데 사용하느냐고 반발하지않던가. 이책의 저자인 구리하라 야스시의 좌우명은 "일하지 않고 실컷 먹고 싶다."가 좌우명이라 하는데 책내용을 접하기전 그말부터 보았을때는 그저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합리화를 시키는 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을 펼쳐 읽으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의 장학금 제도를 보면서 우리와 다른 그들의 장학금 제도에 놀라고 우리나라도 대학입학과동시에 학자금대출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빚의 세계로 인도하지만 일본은 우리보다 더 한수위라는 생각과 함께 그 행태에 놀라고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교육적불평등의 한가지 원인이 되는 대학 등록금에 대해 생각해보고 금수저 흙수저 하는 수저색깔론에 대해서도 새삼스레 생각해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물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반짝 하고 이런 주장이 실현되보면 어떨지 상상해보았었다. 상상력이 위축되어서인지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이 떠오르던 이야기긴했지만 그래도 막상 대학에 입학해서 등록금을 버느라 휴학해서 일하고 다시금 등록금을 모아 한학기 공부하고 또 쉬고를 반복할 많은 대학생들의 현실을떠올려보면서 조금더 구체적으로 현실적인 공약이 나와 그것이 실현되었음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기에 솔직히 대학등록금 반값투쟁이며 서울시에서 박시장이 공약으로내세워 실천하고있는 이자지원 이런 이야기들이 머나먼 이야기로 관심이 별로 없다. 나에게 머나먼 이야기라 지금 시행된다해도 막상 내가 혜택을 보려하면 사라지고말 이야기임을 알기에. 그래서 더 무관심했던것 같은데 그런 내 자신이 순간 부끄러워졌었고 일본의 이야기뿐이 아님을 뒤쪽부분에서 우리나라 현실에 대해 대화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가 정말 교육격차로도 이어지고 인생격차로 이어지는구나 싶으면서 내아이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