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육체의 의미에 관한 페미니즘에 관한 책.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줄리아 크리스테바나 루스 이리가레이에 관한 지식을 가지게 된 후 다른 책을 볼 필요를 느낀 적이 지금 까진 없었다. 비록 이 책의 서문에선 이 두 사람을 넘어선 사람들에 관한 이론들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 책은 하나의 여성문제에 관한 평범한 이론 모음집일 뿐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마돈나의 이중적 의미'에는 마돈나가 없다!!! 이 책에선 푸코의 작업을 표방한다. 즉 푸코가 역사학에 기여 했다고 이해되어지는 서술작업의 중요성들, 즉 일련의 특정한 진술이 '섹슈얼리티로 만들어지기 위하여 응집되어지는 과정'을 분석해서 규명한다. 이는 역사서술의 방식에서 여성이 탄압받았다고 서술된 많은 양식들을 고쳐 쓸 때, 사실 여성은 권력자로서 또는 역사적 발전의 주관자로서 다양한 맥락에서 생산적으로 서술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slavegirl'들이 자신의 주인을 유혹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완전한 방법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서 역사적 모습을 찾기도 한다. 정리하면 여기서 마돈나의 '이중적' 의미 란 사람들이 보기에 단지 자본의 노예로서 상품화된 육체를 가진 여성에 대해 그 관점이나 글쓰기의 변화를 통해 그 능동적인 면을 찾자는 것이다. 책에서는 잡다한 이론들이 뒤섞여지는데 구조주의적인 영향으로는 다음과 같은 말을 찾을 수 있다. "개인은 늘 능동적이다. 어쨋든 그들의 행동할 역량은 구조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 주체는 대개는 그 한계내에서의 생존 방식을 추구한다." 제 2장의 문제들은 육체나 머리, 다리 등등에 관한 보통 사람들의 시선이 어떻게 정형화되었는가를 구조주의 적으로 제시한 다음, 그 대안적 글쓰기를 제시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우리 주변의 예를 들자 : 젖받침대(브래지어) 광고에서 퍼뜨리는 받쳐주고 올려주고 키워주고 감싸주고고....등등 이런식의 말들은 브래지어가 마치 겉옷처럼 남성들에게 보여진다는 이데올로기적 작용을 한다. 하지만 사실 브래지어는 단지 성인으로서 그 필요에 의해, 또 여성이라는 성의 자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말이다. 색상이나 디자인 이전에 여성이 살아가는데 하나의 도구로서 자리매김하는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현상들에 대한 구조적 제시들은 하나의 사회의 편견을 유통시키고 여성들을 억압한다. 하지만 그 의미들을 제고해봄으로써 그런 고정유형들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푸코는 상당히 개론서적이다. 심지어 물질적 토대의 이데올로기적 전화 같은 내용이 푸코만의 개성적 작업인양 분류되고 그 비판을 자랑스러워 하는 내용에서는 웃음마저 나온다. 푸코의 '성의 역사'가 그렇게 한방향으로 흐르는 책이 아니란 것은 직접 보면 금세 알 수 있는 것들일 텐데......왜 외국책 에서까지 이런 오독을 보는 기분은 씁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