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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이희인님은 <여행자의 독서; http://blog.yes24.com/document/8019924>에서 베트남여행에서 읽은 두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베트남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책읽기라고 생각합니다만, 베트남에서 성장한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http://blog.yes24.com/document/8049295>과 베트남 작가 응웬옥뜨의 <끝없는 벌판>입니다. <연인>이 근대 베트남을 지배한 사람들의 뒤틀린 삶을 그렸다면, <끝없는 벌판>은 이들의 식민지배가 남긴 베트남 사람들의 굴곡진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베트남과 우리나라의 관계는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저항한 독립전쟁이 북부베트남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열강은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면서도 독립전쟁의 주도한 호치민의 좌파정권을 북위 17도를 경계로 하여 북쪽에 두고 남쪽에는 우파정권이 들어서도록 분할한 것입니다. 결국 북쪽이 주도한 통일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대립하는 양상으로 치닫게 되면서 서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는 형세였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북부베트남이 공산정권이 남부베트남을 통합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는 당시 미국과의 관계를 비롯한 산업발전에 필요한 자금 등 다양한 점들을 고려하여 베트남전쟁에 파병을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북부베트남의 집요한 공세 끝에 미군이 철수를 결정하면서 베트남은 통일을 이루게 되었고, 우리 군 역시 철수를 하면서 베트남과의 관계는 단절되었습니다. 전후 베트남이 사회적으로 안정을 되찾고 국가발전을 고려한 국제관계를 수립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와도 수교를 하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전쟁 중의 어두운 과거사를 덮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베트남의 개방과 사회발전에 우리나라 역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결혼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 편입되는 베트남여성들이 늘고 있어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점을 본다면 베트남 사회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합니다. ‘메콩강 거친 벌판에서 피어난 감동의 성장소설’이라는 카피가 붙어 있지만 <끝없는 벌판>을 읽으면서 내내 너무 처절한 그들의 삶에 안타까움이 커지면서 결국은 주인공마저도 그 사회에 쳐진 그물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마무리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설마 이럴까 싶은 의문까지도 들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메콩강 지류들이 복잡하게 얽혀드는 들판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야만 하는 모양입니다. 쌀농사가 년간 다모작으로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농사를 지을 논이 없으면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입니다. <끝없는 벌판>의 주인공 가족은 벌판에 오리를 방목하여 키우고 있는데 오리가 먹을 것을 찾아 거룻배로 이동하는 뜨내기 삶입니다. 가끔씩 들이닥치는 조류독감으로 키우는 오리들을 살처분해야 하는 횡액을 당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벌판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성에 대한 관념이 우리네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가족도 어느 날 어머니가 눈에 맞은 남자를 따라가 집을 나가면서 떠돌는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 주인공의 아버지 역시 오가다 만난 여자와 관계를 맺었다가 버리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삶에 도덕이라는 관념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커가는 주인공이 새로운 삶의 길을 모색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은 나락의 길로 빠져들어가도록 방치한 작가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그 벌판에서 세 명의 어린 무법자들에게 유린당하고 마는데, 주인공은 한 차례 저항을 하는 것을 끝으로 포기하는 모습도 낯선 듯합니다.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에 답이 될 듯한 구절이 있기는 합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우리 남매는 무엇이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직접 몸으로 시도해보면서 결과를 얻었다. 그것이 앞날을 살아가기 위한 우리만의 학습방식이었다. 남녀가 몸을 섞는 일은 내가 좀 전까지 겪어보지 못했을 뿐이다. (…) 처음에는 갈기갈기 찢기듯 아프더니 그 다음엔 날개미가 허물을 벗듯 살점이 한 꺼풀 벗겨지면서 쓰라린 고통을 안겨주었다.(15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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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베트남 농촌의 참담한 현실 그렸지만, 절반의 성공에 머문 삽화까지 보태어진 글임에도 제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거룻배를 생활터전으로 삼아 ‘끝없는 벌판’의 샛강을 헤쳐다니며 오리를 치는 한 가족의 참담하고 스산한 삶. 옷감 장수와 눈이 맞아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간 어머니의 부재 속에 권위적이고 이기적이고 무정한 아버지와 한 살 터울의 어질고 살가운 남동생, 우연히 같이 지내게 된 몸파는 여자와 한 두평 쪽배를 타고 정처없는 유랑생활을 하는 10대 여자 아이의 눈에 비친 남부 베트남 메콩강 유역 농촌의 삶. 가난과 결핍과 고난에 찬 삶의 여정을 그리면서 다행히 작가는 이 아이에게 전지적(全知的) 시점을 부여함으로써 작고 보잘 것 없는 아이의 눈 대신에 마치 대지의 어머니처럼 저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살피며 그 너른 품속에 모든 걸 감싸 안는 혜안을 갖게 한다. 이 책의 미덕인 동시에 큰 결점이랄 수 있겠다 이는 강을 따라 흘러다니며 이 가족과 이들이 만나는 주위 사람들이 가난에 찌든 삶 속에서 아무런 희망도 찾지 못한 채 보여주는 비인간적인 이기와 패륜의 참상을 상당 부분 희석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고난의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순례자의 모습이랄까,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감내할 수 있다는. 계속되는 가뭄과 기근, 조류독감으로 중요한 생계수단인 오리의 살처분 등 참혹한 농촌 현실을 보다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책의 대부분은 이러한 절망의 표시로 왈패들의 집단 강간과 패악질, 늘어나는 창녀들과 농민들의 하룻밤 쾌락, 여염집 부녀자들의 화냥기로 채우고 있다. 더하여 끝장면에 주인공이 왈패들에게 처녀를 빼앗기고 혹 아기를 가졌을지도 모르겠다며 새로 태어날 아기를 두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억지스럽다. 베트남 문단에 샛별처럼 등장한 젊은 여류작가로, 흔히 보이는 사회주의 문법처럼 섣불리 희망을 노래하기보다 오늘날 베트남의 그늘진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며 뒤에 역자의 말처럼 ‘자신의 느낌대로 편안하게 쓴’ 글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벌판에서 맴돌며 마치 감방죄수나 다름없이 살아온 내가, (…) 빈궁기를 대비하느라 논밭에 고개를 처박고 진이 다 빠질 때까지 일만 하는 그런 사내와 결혼하고, 애걸복걸 칭얼대는 아이들 소리와, 호리병 밥그릇 밑바닥의 밥풀을 야자나무 숟가락으로 벅벅 긁어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온 가슴이 그렇게 쓰라린 화상으로 문드러져야 한단 말인가? (…) 내 인생도 엄마의 복사판이란 생각에 두려움만 가득”한 현실이라면 작가의 현실을 말하는 시각은 좀 더 불편하고 심도깊고 날카롭게 벼리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글 속의 삽화도 뚜렷한 인상을 남기기보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풍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베트남 농촌의 일면을 알게 해주는 값진 경험이었으며, 특히 베트남에 거주하면서 그 때 그 때 작가와 의견을 주고 받는 등 번역에 충실을 기한 역자의 노고와 베트남에 대한 진정어린 마음은 두드러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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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벌판 넘어 다가오는 빗줄기
지난 2일부터 첫 주 내내 주요 일간지에 소개된 베트남 소설 <끝없는 벌판>을 한 번에 읽었다. 한국일보에 소개된 것처럼 국내에 소개된 몇 권 안 되는 베트남 소설을 다 읽어 보았지만, <끝없는 벌판>과 같은 느낌은 처음이다. <전쟁의 슬픔>도, 최근에 다시 나온 <하얀 아오자이>도, 그리고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도 <끝없는 벌판>과 같은 가슴 저린 감동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기 때문이다. 많이 슬프고 아프고 답답했으나, 책을 읽는 내내 가슴속에는 먹먹한 감동이 아주 오래 남았었고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
베트남을 여행하다 보면, 이 나라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에 대체 이 천차만별을 언제 다 보게 되고 알게 될 수 있을까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전쟁이 끝난지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중부 지방 최대의 휴양지라는 곳에서 보았던 한국군 초소처럼 전쟁의 흔적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하지만, 여행족들이 넘쳐나는 호찌민 배낭족 거리(데탐)나 하노이 호안끼엠 호숫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혼여행을 즐기러 가기도 하는 냐짱의 빈펄랜드, 예쁜 집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호이안 같은 곳은 겉으로는 더 이상 전쟁의 상흔을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옛도읍 후에에서 강을 의지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베트남 사람들의 신혼여행지라는 달랏에서 산기슰에 화전을 하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호찌민의 신도시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풍경과는 너무나 달라 그 느낌이 아직도 상처처럼 내게 남아 있다. 개혁개방 이후 베트남의 발전상은 세계적 최첨단의 모든 물질과 문명, 이제 막 전쟁을 치르고 난 빈곤과 척박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빈부의 차이로 여기저기에 나란하다.
응웬옥뜨의 소설 <끝없는 벌판>에는 후에의 강가 사람들이나 달랏의 화전민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메콩강 사람들이 나온다. 메콩강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풍요로운 곳으로 설명되고 또 그렇게 배운다. 메콩강 가는 길... 길가의 야자나무나 파파야 나무에는 열매가 다닥다닥 하고, 강을 오가는 많은 배들은 보기에 풍성하고 분주해 보인다. 메콩강 사람들은 그러나.... 건기와 우기를 넘나드는 지루한 계절 속에서 지독한 내핍을 겪는다. 계절의 변화는 기대와 설레임이 아닌 궁핍을 예고하고, 사람들의 일상은 메말라 바스러진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가난과 상상하기 힘든 빈곤이 도처에 넘친다. 짧지 않은 기간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내가 본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아마도 작가는 주변의 보고 들은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쓴 듯하다. 그러면서도 소설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지금까지 그러한 상황을 묘사한 어떤 소설류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작가의 경지는 작가가 농부의 딸이며 메콩강의 딸.... 베트남의 딸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작가의 고향 까마우는 우리나라 해남에 해당하는 베트남의 땅끝이다. 베트남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면, 이 나라에 얼마나 많은 민족들이 모여 살고, 각각의 민족들이 사용하는 소수민족어는 물론이고, 긴 국토만큼이나 다양한 차이를 보이는 각 지역 사투리가 있는지 알게 된다. 역자의 첫 번째 역서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반레, 실천문학사)도 아주 감동적으로 읽은 기억이 그리 멀지 않다. <끝없는 벌판>은 까마우 사투리로 가득 쓰여 졌다고 하는데, 후기에 원작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역자의 노력이 상당했다고 쓰여 있다. 베트남 여행 중 사투리를 듣고 잠깐 동안 소통의 어려움이나, 알아듣고 나서의 즐거운 기억이 내게는 있다. 예를 들어, 중부 지방 호이안을 여행할 때 샌들이 떨어져서 길가 수선공에게 고쳐 신은 적이 있다. 샌들을 고치는 동안 그 수선공과 짧은 베트남어 실력으로 대화를 하는데... 수선공이 비엣남(우리는 베트남이라고 말한다)을 자꾸만 ‘비엣놈 비엣놈’ 해서 우리 말 발음 ‘놈’ 이 생각나 많이 웃은 적이 있다. 또, 자전거를 뜻하는 베트남어 ‘쎄답’을 ‘씨돕’ 이라고 해서 처음엔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했다. 까마우 사투리를 나는 모르지만 아마도 하노이나 사이공에서 쓰는 말과는 또 다를 거라고 짐작한다. 가슴 아린 고통과 감동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걸 보면... 역자의 번역이 원작의 뜻을 제대로 옮긴 것이라 믿어진다.
책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끝없는 벌판>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감동을 옆으로 옆으로 아낌없이 전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끝까지 놓을 수 없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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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딩씨의 추천을 받아 두 시간 만에 읽어버렸다.
문체가 깔끔하고 괜한 알은 체 없는, 좋은 책이었다.
올해 읽은 소설 중에서는 1,2위를 다툰다.(읽은 게 너무 없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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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면 떠 오르는 건 나 역시도 아직 전쟁이란 단어 인 것 같다. 우리나라 만큼이나 혹독한 전쟁을 치뤘고, 이제는 옛날의 베트남이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 나라로 시집을 오는 것이 베트남에서 살아 가는 것 보다 나을 거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나라 베트남!
이 책을 읽기 전 신문에서 작가의 인터뷰 글을 보았다, 작가 역시 베트남 소설이 이제는 전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 했다, 그 새로운 이야기의 출발점은 바로 너무도 가난한 베트남의 농촌의 모습이었다, 척박 해 질 대로 척박해진베트남의 농촌 모습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적나라 하게 말 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척박하고, 가난으로 발버둥 쳐야 하는 매춘으로 유린 당하는 베트남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모습이 풀 한 포기도 없을 것 같은 사막의 땅으로 갈라져 만 가는 벌판이라 생각을 했는 지도 모르겠다.
농촌의 모습을 너무도 리얼하게 말 해줌으로써 자아비판까지 받아야 했던, 그렇지만 대중들로 부터는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미래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그 벌판에서 조차 폭행을 당하고도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른들의 잘못도 용서할 줄 아는, 속 깊은 아이로 키워볼 거야.” 라고 말을 해 줌으로써 작은 희망이라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베트남 농촌의 현실은 내가 생각 한 것 이상의 아픔과 가난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는 걸 책을 통해 알 수 있었고.가난이 싫어 시집을 오는 것을 전적으로 이해 하지는 못했었는데, 가난 보다 더 힘든 것들이 너무도 많이 베트남의 농촌에 산재되어 있는 걸 알게 되어서 마음이 아팠다.
작가는 문학이 인간의 삶을 변화 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글을 쓴다고 했는데 그녀의 말에 동의 하고 싶어졌다.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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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 중에 읽은 <끝없는 벌판>
내일까지 중간고사인데,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읽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 만에 단숨에 읽고 나서 그만 펑펑 울었습니다. 많이 슬프고 가슴 아팠습니다. 특히, 초경을 시작한 여주인공에 대한 동생의 보살핌에서, 그리고 마지막에 폭행을 당하면서 ‘디엔, 디엔아...’ 하고 동생을 부르는 장면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소설 속 내용이 베트남의 일반적인 모습 내지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 시집오는 베트남 신부들은 거의 메콩강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신부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쩐지 이제는 베트남 신부들을 보면, 그저 평범한 이웃 아줌마로 보아질 것 같습니다. 저는 ‘코리아 헤럴드’에 난 기사와 작가의 사진(10월 5일 기사)을 보고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76년생이면 우리나라 나이로 32살인데 어쩜 그렇게 천진한 소녀 같은지요. 더구나 월드스타 ‘비’랑 나란히 나온 사진을 보면서 많이 부럽기도 했답니다. 시험 공부 중에 이 책을 읽었어도 후회는 없습니다. 책 속 그림은 우리나라 풍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오래 동안 감상을 했구요. 언젠가 베트남에, 특히 메콩강에 한 번 가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