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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서양미술순례를 읽을 때만 해도 몰랐다. 내가 저자의 책을 모조리 찾아 가며 읽게 될 줄은... 결과적으로 저자의 책을 읽게 되면서 나는 사회로 부터 숨통을 찾은 기분을 종종 받는다. 그의 글은 어려울 수 있는 문제들, 당장 해결 될 수 없는 그러나 언제가는 해결이 되야 할 것들에 대한 숙제들에 대해 같이 생각 할 수 있게 자신의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 해 주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하여금 가끔은 글의 문장력을 닮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까지도 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저자의 글이라든가 생각이 신영복교수님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번에 읽은 시대를 건너는 법은 한겨레신문에 서경식의 심야통신이란 칼럼을 통해 연재 했던 내용을 책으로 묶어 놓은 것이었다.
저자의 이야기 한 가운데는 재일 조선인의 문제가 있지만 더 크게 생각을 하게 되면 디아스 포라적인 문제 결국 인간에 대한 고민이 같이 포함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처음엔 재일 조선인에 대한 문제를 생각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 보면 우리나라에서의 디아스 포라의 사람들도 같이 생각 해 봐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되고 조금더 나아가 보면 팔레스타인들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고 볼 수 있다.
어려울 수도 있는 문제들, 내가 알고 있다고 당장 세상은 달라 지지 않지만, 저자의 말 처럼 내 머리위로 폭탄의 비가 내리게 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절대 안되지 않을까?
역사시간에도 배우지 못했던, 신문에서도 비판하지 못하고, 알려 주지 않았던 문제들을 나는 저자의 책을 통해 배웠다. 역사적 의식도 아직은 투철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도 약자의 입장에서 행동 할 용기는 나에게 아직도 없지만, 저자의 글을 통해 나의 정신이 조금씩이라도 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 시대를 건너는 법을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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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런 책을 읽으면서 치우친 나의 사고가 고르게 되기를 바란다. 자꾸 생각이 획일화되고 편협해져 가는 것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살면서 지고가야 하는 삶의 무게가, 당사자에게는 크나 큰 고통이었으나... 지나고 나면 그 짐이 그의 인생을 이끌어 온 하나의 축이자 기반이 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인생을 풍성하게 하고 성장하도록 한 원동력이 되었음을 발견할 때가 있다.
저자도 그랬다.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가면서...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주어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참으로 힘들고 어렵게 살았다. 그 고통은 어린시절에서 끝나지 않았고, 두 형이 한국의 감옥에 갇히게 된 청 장년의 시절을 거쳐,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도 계속 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시대를 아파하고 타자를 생각하는 넓은 마음을 지니지 않았을 테고, 이런 책도 나오지 않았을테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고... 아픔이 있는 만큼 성숙한 열매가 나오는 것 같아 어떤 암울한 인생이라도 정말적이지 않은 것 같다. 치열하게 벽을 넘어 고민하고 열심히 산다면.
제 3자의 눈에 더 잘 보이는 것이 있다. 재일 조선인으로 바라보는 한국은 참이나 사실적이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인지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그대로 마주할 때 느껴지는 고통이 가슴 속 뼈저리게 느껴진다. 감정이 시리다 못해 나락으로 떨어지고, 주체할 수 없이 슬프고 힘들어졌다.
책을 읽는 내가 이런 감정에 빠져들 정도이니, 저자가 지닌 슬픔의 깊이는 얼마나 클 것이며, 우리 나라가 처한 현실은 얼마나 위태위태한 것일까...
어쨌든, '시대를 건너는 법'. 너무나 멋진 제목이라는 생각을 내내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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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평생 자신의 모습을 자기 눈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눈이 몸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그저 내 모습을 비춰주고 있는 것일 뿐, 나의 참 모습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똑바로 바라봐줄 수 있는 또다른 존재가 필요하다. 사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존재가 없다면, 사회는 곧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지 알지 못하는 삐에로와 다를 바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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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요구되는 교양이란 한마디로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폭탄공격을 당하는 쪽의 고뇌와 아픔을 상상하는 힘은 전쟁에 저항하고 평화를 쌓기 위한 기초적 능력이다. 따라서 이런 기초적 능력을 결여한 채 젊은이들이 사회로 나가는 것이 나로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무감각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너무나 병들고 비틀어진 세상...
이미 100여 년 가까이 우리의 역사는 식민지 지배와 전쟁, 독재라는 파란을 겪으면서 겨우겨우 맥을 이어왔다.
이제는 전쟁의 상처도 잊혀졌다고 여기지만,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아있다.
재일조선인 2세인 저자의 삶은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어디에서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이방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꾸 외면하고 싶어지는 암울한 과거의 상처를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면해서는 안되는 것은 그 상처의 원인이 청산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중일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영토 분쟁도 갈수록 심화되는 극우 성향 때문이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피해자이지만은 않다.
사람은 힘이 없을 때는 피해자이지만, 힘이 생기면 가해자가 된다.
저자의 지적대로 우리도 청산하고 사과하지 못한 베트남 전쟁의 예가 있다.
그리고 지금 한국 사회는 얼마나 폐쇄적으로 타민족을 차별하고 배척하는가.
어디에 속해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람으로서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일상과 생존에 코박은 우리가 시야를 넓히고 관심을 가지고 타자의 불행과 상처를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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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교수의 책은 언제 읽어도 즐겁다. 그건 번역자의 몫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단문과 미문의 글쓰기가 주는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소년의 눈물이 그랬고, 이 책 역시도 그런 매력이 있다. 이산의 고통, 이산의 갈등, 이산의 눈물. 이방인 또는 망명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배타적인 것들로 가득차있다. 동일자와 타자라는 이분법은 넘어설 수 없는 강처럼 보인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경고와 두려움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제국주의란 한 그릇된 영웅의 장난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처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무관심한 일본인들이나 우리들에게 주는 경고는 새겨들어야 할 소중한 교훈이다. 이 책에서 그가 번역하는 리버럴 아트로서의 교양은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은 바꿔말하면 동일자에 대한 객관성의 유지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교양은 역시 교양인에 한정된 지식처럼 보인다. 이 정도에서 나는 다소 부담스럽다. 서경식교수의 문화에 대한 다양한 관심은 부럽고, 한편으로는 그가 왜 그렇게 거기에 관심을 가지는지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부담스럽다. 특히, 문화를 대하는 비교양인들의 잘못된 태도에 대한 비판은 어쩐지 디아스포라와 에그자일의 시선으로는 못마땅하다. 다만 나의 편견일까? 옥에 티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내가 교양인축에 들지 못하는 무뢰한이기 때문일 것이다.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역시 그의 책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과 윤이상 평전 상처받은 용을 샀다. 가끔씩 느끼는 점이지만 예스24에는 절판된 책들이 너무나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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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조선인 2세하면 생각나는 분이 서경식 이분과 강상중 이 두분이 떠오른다. 최근에 정대세 축구 선수도 비슷한 경우이다.
이 책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주제는 디아스포라이다. 여기에는 한국인(조선인)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에서 자라나서 살고 있는 저자에게 있는 당연한 의문인 것이다. 책에 나오는 어떤 분의 질문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의 질문도 왜 재일 동포 2세 혹은 재일 동포 3세가 일본인으로 살아가지 않고 어렵게 권리행사도 하지 못하는 타자인 외국인으로 살아가냐는 것이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내용은 결코 같은 대접을 해 주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결국 일본 국적을 가지더라도 실제로는 권력 관계가 생기고 대등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 내용이었다.
비록 국적이 한국인이지만 저자는 한국말에 서툴러다. 이 책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모어와 모국어가 다른 것이다. 모어를 사용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모국어를 잘 할 수 없다는 미안함, 혹은 컴플렉스가 동작하는 이유이다. 이런 경우에 모국인 한국에서도 외국인 대접을 받고, 일본에서도 소수인 외국인 대접을 받는 미아가 되어 버리는 현실이다.
다음 주제로 기억과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대인 학살인 아우슈비츠의 경우에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고, 우리나라의 성노예 정신대의 경우에도 실제 그런일이 없었다고 부정하는 세력들이 있다. 정말 상식적이지 않는 행위이기에 믿기 어려울 순 있지만, 많은 증거들이 있는데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희생자들이 하나 둘씩 돌아가고,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잊혀저가고 있는 것이다. 잊지 않기 운동을 하기 위해서 독일의 걸림돌은 상당히 나에게는 충격적이고 배워야 할 내용으로 받아들어졌다. 끌려간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보도에 약간의 돌출물을 세워 기억을 잊지 않는다. 프리모 레비의 무덤에 세겨진 수인 번호 174517도 그 시대의 강력한 기억장치이다. 아울러 우리도 정신대 할머니의 기억도 잊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방향성에 대해서는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이다. 이 책이 지어진 당시에만 하더라도 일본의 자민당이 절대 우위에 있고, 총리가 되기로 예정되어 있는 신조 아베의 노선이 우경화에 가고 있다. 그래서 <야전>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일본 국민들에게 각성과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독일도 메르켈 정권이 들어서서 우경화 되고 있고, 오스트리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지만, 독일에서의 우경화는 속도가 늦지만 일본의 우경화는 걱정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이밖에 여러가지 방향성에 대해서 일관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히틀러에 저항한 뭰헨 대학생 운동인 <백장미의 기도>(한국어 제목은 다름)에서에 백장미단의 소개와 성녀 전설에 대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80년대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죽음>의 독자인지라 관심있는 내용이었는데, 그가 말하는 경고인 성녀 전설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보는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한겨레 신문의 연재를 비롯하여 중앙일보의 기고문이 적은 비율이지만 적혀있다. 내용을 보면 금방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이질적이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신문에 몇년에 걸친 칼럼이지만 일관성이 있고 저자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무엇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족사인 할아버지부터의 일본 이민사, 형들이 받은 고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항상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들 이분의 가족사를 볼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을 굉장히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감성적인 분들으 눈에서 눈물 한두 방울 흘리고 말 것이라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