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가 한때 황우석 박사에게 그렇게 열광했던 이유는 그가 그렇게도 전국민이 바라던 노벨상을 타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지만, 결국 그의 잘못된 연구와 논문으로 인해 오히려 전국민이 피해를 보게 되는 일까지 발생하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노벨상이 목적이 아니라, 연구하다가 보니까 상까지 받게 되었다는 수상자들의 수상소감을 우리는 진지하게 들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 되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짧은 내용의 수상소감문이었지만, 아주 명료하게 머릿속에 정리될 수 있도록 이야기한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보통 수상 소감문하면, 자기의 연구 과정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피력하고 자기가 왜 이 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 그 당위성을 이야기해 나가는 것이었는데, 이 책은 일반인들이 수상자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수상 소감문이 기록되어 있었다는 장점이 있었다. |
|
자그마치 노벨화학상 100년을 담고 있다. 노벨상 시상 연설로 그 역사를 본다. 시상 연설이기 때문에 너무 칭찬으로 꾸며진 말 같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약 노벨상 수상자의 연설을 설명한다면 그것은 또 여러모로 불편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축사와 노벨상 수장자의 약력과 그와 동시에 그들이 이루어낸 업적의 내용을 동시에 포함하는 노벨상 시상 연설.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화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물론 그들이 노벨상이라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받을만한 업적을 나았기 때문도 있지만 바로 그 발견에서 이루어지는 발견 그 이상의 말들이 이 책에서는 보여지고 있다. 발견이 있다면 그 발견이 이루어낼 변화가 있을 것이고 그 발견이 과거에 빗대어져 이룩한 업적도 있을 것이다. 나도 이론적인 것에 대한 이해는 부족할 수밖에 없고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런 것들의 내용이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정말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그것을 통해서 조금은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과학이 더 이상 갈 곳 없는 막다른 곳에 서있는 학문이 아니라(이 생각은 현재 읽고 있는 소설의 영향이 크다) 아직도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나오는 과학자들의 열정으로 나는 그렇게 믿게 되었다. 우리는 과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하는 입장이 아닌 배우는 입장이거나 혹은 잊고 지내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도 과학의 진보를 위해 자신의 땀방울을 아끼지 않고 쏟아내어 결국에는 이 세계적인 무대 위에 올라섰던 그들의 모습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적어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날 화학상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린 그 사람들의 이름도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나온 이유는 아무래도 그들을 기억해달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업적 또한. 노벨이 남긴 이 거대한 상. 그리고 그 상에 이름 올린 사람들. 하나같이 기억해주어야 하는데 지나간 우리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차츰차츰 발전해나가는 역사를 보면서 처음에는 작은 발견이었던 것이 큰 발견이 되는 모습이 인상 깊었던 책이었다. 이 책을 전문적이고 딱딱한 책으로 느끼고 전에 그 안에 담긴 과학자들을 보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너무나 멋진 이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그들 이야기를 역사가 가더라도 너무 멋진 얘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마 석상에 올라가서 혹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조금 더 발전된 과학을 들고 오겠다고. |
|
책을 읽으며, <학문의 첨단>을 걸어온 이들의 면모를 살필 수 있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뇌리를 스쳤다.
"그럼, 우리는 도대체 지난 100년 동안 무슨 공부를 한거야?"
노벨상을 시상한지 한 세기가 지나도록 단 한 명의 수상자(김대중 대통령은 <평화상> 수상)도 배출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매년 수학과 과학분야 <올림피아드>에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영재>들을 배출하는 나라인데 말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100편이 조금 못된 수상자들의 시상이유를 들어보니 그 까닭이 엿보였다.
먼저 우리는 (탐구방법적인 면에서)서양식 학문을 답습한 시기가 짧았다.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방을 한 시기부터 따져도 불과 100여 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고, 그나마 쌓은 상아탑도 해방 직후에 치른 한국전쟁 때문에 유지하기 힘들었을 터이다. 그리고 배고픈 시절엔 먹고 살기에 바빴을 테니 제대로 된 <학문>을 공부했다기 보다 악에 바쳐 이를 악물고 <가난>을 벗어나려는 학문에 매달리는 경향이 강해졌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거의 모든 학계가 먹는 것을 해결하기에 급급한 <응용학문>이 발달하는 풍토가 만연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 대학생들은 오로지 <취업>을 위한 관문으로써 대학공부를 할 뿐, 공부다운 공부는 경시하고 있다. 그 결과, <기초학문>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바보취급 당하고 폐강 위기까지 거론되는 형국이다. <인문학 위기>라는 말은 벌써 20년 전부터 들려와서 이젠 위기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
반면에 서양은 이미 천년 전에 <대학>이라는 불리는 학문의 장(볼로냐대학, 1088년 설립)을 마련하고, 유수한 학생들을 수없이 배출했다. 또, 생각의 깊이가 남다른 <철학>이란 학문은 마치 서양에만 존재했던 것인양 온통 <유럽 사람들>로 도배를 한 지 오래다. 들은 얘기지만 한때 <동양철학>이란 학문을 경시했던 때도 있었단다.
이런 현실에선 서양 사람들이 <세계 모든 인류에게 공헌한 과학자에게 수여한다>는 취지의 상을 휩쓰는 건 당연지사가 아닐까? 그럼 <노벨상>은 서양사람들만 받았을까? 아니다. 동양 사람들도 많이 받았다. 대표적으로 중국, 인도, 일본이 있다. 그 중에 <화학상>은 동양에서 유일하게 일본이 4번(2006년까지)이나 받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와 다르기에 그들은 받고 우리는 받지 못했을까? 이 질문의 까닭도 이 책의 내용에서 짐작해보았다.
우리네 교육환경은 <창의적인 사고>를 장려하는 환경이 아니라 <지식전달적 사고>, 즉, 암기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가늠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는 있다. 바로 <공정성>의 때문이다.
우리가 <객관식 문제풀이>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공정성> 때문이다. 그렇지만 객관식 문제의 폐해성이 보고되고...그래서 객관식 문제는 줄이고 주관식(서술식) 문제는 늘리는 추세라고는 하나, 익숙치 않은 방식에 애들만 죽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물리화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열역학 제2법칙>을 정의하는 문제를 냈다고 치자. 답은 다음과 같다.
<상호작용하는 두 계에서 에너지의 흐름은 전체 계가 가질 수 있는 상태수가 최대가 되도록 흐른다.>
이게 뭔 이야긴지 이해가 되시는가? 아시는 분은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이해하신 훌륭한 분이시다. 여기서 <엔트로피>를 설명할 수는 없다. 복잡한 관계로 그냥 간단하게 <반응열>이라고 판단하셔도 무방하다. 그래서 열역학 제2법칙을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열은 뜨거운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움직인다.>이다. 열이 어떻게 움직이는 데? 라고 물으신다면 그게 <엔트로피>이기 때문이라고 답을 할 수 있겠다.
정리하면, 우리는 객관식 문제 하나 풀어놓고 <열역학 제2법칙>을 이해했다고 평가하는 실정이란 말이다. 초중생이면 <열이 뜨거운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흐르기 때문이에요>라고 대답을 하면 될 것을, 우리 학생들에게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하라고 하면 묵묵부답,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는 말씀이지요. 애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나요. 당췌 설명을 시도할 수조차 없는 교육을 시키는 형편인데요.
초중고생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정작 대학에 들어와서는 공부다운 공부는 뒷전이고 오직 취업전선(먹고 살기)에만 관심을 기울이니 <노벨상>을 받는 행운이 찾아올 턱이 없지 않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황우석 사태를 맞이했고, 국제적 해프닝(?)을 벌이면서 <노벨상> 주문을 주저없이 외쳤다... 그땐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참 부끄러웠다.
이제 이 책을 읽으니, 다시 그 때 부끄러웠던 경험이 떠오르며 우리는 참 부단히 노력하고 개선해야만 <노벨상> 따위를 탈 수 있겠구나 싶다. 물론 <노벨상> 나부랭이를 타든지 말든지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다. 역대 수상자들이 모두 노벨상을 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공영을 위하다보니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우리도 인류공영을 위해 이바지하면 <노벨상> 따위를 탈 수도 있으니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은데 가까운 시일 내에는 그러지 못하겠나 싶어 부끄럽다는 게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겐 몹시 따분하고 지루한 내용의 책이다. 그런데도 혹여나 이 책을 아이들에게 권해주면서 무조건 <암기>해야만 노벨상 탈 수 있고, 그래야 대학에도 갈 수 있다고 강요할 선생과 학부모가 있을려나? 그렇다면 참 좋은 기획으로 내놓은 책이 원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왜곡되고 말 것이다. 그저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
|
노벨이라는 성공한 사업가에 대한 일화가 참 많이 있다. 예전에 신문에서인지, 아니면 책에서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런 일화를 읽었었던 기억이 있다. 어느날 노벨의 형이 죽었다. 그런데 신문에서 오보가 났다. 노벨의 형이 아니라 노벨이 죽은 것으로 오보가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신문의 헤드라인을 보고 노벨은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죽음의 사자 노벨이 죽었다라는 식의 신문기사는 노벨의 인생 전체를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한줄의 기사로 인해 노벨의 인생 전체가 뒤바껴 버리게 된 것이다.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로 인해 전쟁에서, 그리고 광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던 현실을 비꼰 기사였지만,그 기사 하나로 인해 노벨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자신이 벌어들인 모든 재산들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작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생긴 상이 노벨상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에 앞장에 보면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 노벨의 유언장을 그대로 수록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진본인지 아닌지는 내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노벨은 상을 주는 목적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었고, 심지어 법인을 만들어서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이 상을 수여하도록 제안한 것을 보면상당한 식견과 혜안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책에도 기록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도 1981년 이후에 네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한명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한때 황우석 박사에게 그렇게 열광했던 이유는 그가 그렇게도 전국민이 바라던 노벨상을 타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지만, 결국 그의 잘못된 연구와 논문으로 인해 오히려 전국민이 피해를 보게 되는 일까지 발생하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노벨상이 목적이 아니라, 연구하다가 보니까 상까지 받게 되었다는 수상자들의 수상소감을 우리는 진지하게 들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 되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짧은 내용의 수상소감문이었지만, 아주 명료하게 머릿속에 정리될 수 있도록 이야기한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보통 수상 소감문하면, 자기의 연구 과정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피력하고 자기가 왜 이 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 그 당위성을 이야기해 나가는 것이었는데, 이 책은 일반인들이 수상자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수상 소감문이 기록되어 있었다는 장점이 있었다.그러면서도 자기들 나름대로의 어려움과 갖가지 고생담들을 조금씩 기록하고 있어서 노벨상이 결코 우연히, 쉽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
|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다이너마이트를 개발, 상용화함으로써, 본인도 원하지 않았던 결과였지만, 전쟁을 통해 많은 인명피해가 초래되는 것을 본 노벨이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재산으로 만든 상. 일부 설에는 자신의 형의 죽음을 노벨이 죽은 것으로 오인한 신문사에서 노벨을 '죽음의 상인'이라고 불렀던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아서 그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 만든 상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그래도 비정부기관에서 주는 상 중에서 최고가 노벨상임에는 분명합니다.
어느새 100년이 넘었지만, 노벨상의 권위와 명예가 계속될 수 있는 건, 각 분야별로 충분히 엄정한 심사를 통해 인류에 공헌했다고 충분히 검증된 사람들이 선발되기 때문이겠죠. 물론 노벨평화상의 경우에는 전세계 차원이 아닌 지역의 평화 및 개발을 위해 큰 영향을 미쳤던 분도 계시지만요.
김대중 전 대통령 처럼요.
저는 노벨화학상 시상 연설인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화학상편을 읽었습니다.
고등학교가 인문계였지만, 학교의 방침이 인문계, 자연계 구분없이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모두 이수하는 것이었기에(그땐 좀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화학 기본은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노벨상 레벨은 역시 좀 어렵긴 하네요...
내가 원래 알고 있었던 정도라곤, 삼투압, 퀴리부인이 발견한 라듐, 비타민에 대한 연구, 효소 촉매작용, RNA 정도뿐... (아. RNA를 한글자판으로 바꿔놓고 치면 '꿈'이라는 단어가 되네요^^)
아는 것이 별로 없던 상태라서, 시상하면서 수상자의 업적을 요약해놓은 글 만으로 전체 내용을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일단 많은 새로운 개념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책 하나면 화학분야에서의 근대의 모든 발전이 다 들어있겠죠.
관심은 있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은, 화학을 전공하고 있는 처제한테 물어봐서 확실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한번 일독한 후 처제에게 선물하는 것도 이 책을 100% 활용하는 방법이겠네요.
갑자기 든 궁금증. 매년 각 분야별로 마땅한 선발자가 없으며 특정분야 수상을 거르기도 하나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한국의 문학자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최강의 인프라와 Sales에의 자신감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화학에 관심이 있었는 분들은 꼭 한번 일독을 권합니다. 당신의 미래에 노벨상이 당신의 오른손에 있을지 모릅니다.
|
|
많은 사람의 열망의 대상이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노벨상은 개인 뿐만아니라 국가로서도 영광인 상이다. 1901년이후 평화상, 의학상, 문학상, 물리학상, 화학상을, 이어 1968년에 제정,1969년부터 경제학상이 추가되어 매년 평균 한명, 과학상은 평균 2명미만이다. 이렇듯 노벨상은 어느덧 민주주의 시대에 유일한 귀족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만큼 영향력이 가졌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노벨상 수상식 장면을 언급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노벨상은 스웨덴 왕의 이름으로 거행한다. 시상식은 노벨이 세상을 떠난 날짜인 12월 10일, 오후4시에 하는데, 스톡홀름 필하모니가 모차르트와 멘델스존의 곡을 골라 연주한다. 단상위에 입장순서는 노벨이 지정한 데로 물리학상, 화학상, 의학상, 문학상, 평화상에, 추가된 경제학상 순이다.
수상식은 짧고 진행 대본은 똑같다. 수상자는 한사람씩 호명되어 앞으로 나오는데, 이 때 해당분야의 스웨덴 학술원 회원이 수상자의 명예로운 업적에 대한 간략한 찬사를 보내는데, 이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 이번 책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수상자는 왕으로부터 가죽 상자를 전달받는데, 노벨의 옆얼굴과 수상자 이름이 새겨진 황금메달, 상장, 다음날 수표로 바꿀 수 있는 상금 증서가 들어 있다. (경제학상은 뒷면에 수상자 이름이 뒷면에 적혀있다) 나중에 스톡홀름 시청에서 왕이 주최하는 연회가 열리고, 건배와 수상자들의 간략한 인사말을 한다. 그 다음날 수상자들은 정식으로 연설을 한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화학상'분야는 물리학이나 의학처럼 한 획을 긋는 혁명적 아이디어나 발견을 보이지는 않지만, 기초학문이 화학이 점차 타 분야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학은 지구와 우주의 모든 종류의 화합물과 액체, 기체, 고체 생물, 무생물 전체를 다루는 학문으로 다양성과 방대성을 보여준다. 19세기에는 유기화학이, 그 뒤 물리화학이 대두되고, 20세기에는 생화학이 자리 매김한다.
첫번째 노벨화학상은 네덜란드의 물리화학자인 반트호프에게 돌아간다. 노벨화학상의 3명중 2명은 유기화학자가 아니고 물리화학자인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1916년과 1917년은 1차세계대전으로 노벨상 수상이 취소되고 1918년에 독일의 물리화학자인 프리츠 하버가 수상하는데, 독가스에 대한 공포로 수상의 논란이 많았던 시상이었다.
1930년까지 물리화학분야의 노벨수상자들은 동위원소에 대한 연구를 했고, 1920~40년까지 생화학의 호르몬, 효소, 방사능 화학분야에 수상의 영예를 주지않아 뒤처진 감이 있었다. 원자는 물리학과 화학 사이의 결정적인 축이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전통적인 화학의 가장 큰 성과물이지만, 구성, 성질면에서 다양한 모습의 원소들은 1920년이후 전자, 양성자, 중성자의 관점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유기적 합성은 노벨화학상의 전성을 이루게 된다.
사실 노벨화학상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이 책을 읽어나갈 수는 있지만, 비전공자에게는 그리 즐겁지만 않다. 아마도 학문마다 큰 흐름과 줄기가 있을진데, 그 줄기를 잡기 못하고, 줄기에 달린 잎들 하나 하나를 관찰하자니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이 책을 통해 단순히 노벨상의 일반적인 지식을 원하거나 노벨상 관련 이야기를 원한다면 실망하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을 알고자 한다면, [노벨상의 교양을 읽는다-한국경제신문]을 참조하면 좋을 듯 싶다. 다만 이번 책을 읽으면서 간략적이나마 화학분야에 대해 전체적인 조망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 만족한다. |
|
노벨상을 받은 화학자들의 수상소감문을 모은 책인줄 알고 서둘러 구매했으나 노벨상을 수여하는 재단에서 수상 이유를 간략하게 밝힌 글을 모아 출간한 책이었다.
책의 두께는 곧 노벨 화학상의 역사를 말해주는듯 두꺼웠으나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는 발췌독 외의 기능은 없으니 이는 내가 이 책을 사고 후회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