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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괴리된 삶은 눈먼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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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에 불가리아를 여행한 인연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1905년 지금은 러시아 영토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불가리아였던 루스추크에서 태어난 엘리아스 카네티는 1911년 가족들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다가 이듬해부터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하였다고 합니다. 1921년에 이주한 독일에서 김나지움을 다녔는데, 1차 세계대전이후 혼란한 사회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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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에 불가리아를 여행한 인연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1905년 지금은 러시아 영토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불가리아였던 루스추크에서 태어난 엘리아스 카네티는 1911년 가족들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다가 이듬해부터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하였다고 합니다. 1921년에 이주한 독일에서 김나지움을 다녔는데, 1차 세계대전이후 혼란한 사회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빚어진 대규모 소요사태를 체험했다고 합니다. 1924년에는 빈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면서 군중의 사회-심리학적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현혹(Die Blendung)>의 초고인 <칸트 불에 타다(Kant fangt Feure)>를 1931년에 완성했습니다.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화형(Auto-da-fe)>, <바벨탑(Tower Babel)> 등의 제목을 붙였습니다. 독일어 제목 <Die Blendung>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밝은 불빛이 비치면 일어나는 순간적인 실명상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신을 빼앗겨 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거나 그렇게 되게 함’을 의미하는 우리말 제목 현혹에 해당하는 독일어는 Die Verblendung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 번역본의 제목을 현혹(眩惑)으로 정한 이유를 1. Die Blendung에 딱 맞는 멋진 우리말 제목을 찾지 못했고, 이 소설의 중심주제가 ‘현혹된 정신’, 그리고 문화, 물질과 권력에 ‘현혹된’ 인간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Die Blendung’을 영어로는 ‘The blinding’으로 번역되는데 일시적인 실명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통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빛은 간상세포가 인식하여 전기자극으로 전환시켜 뇌에 있는 시신경중추로 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둠 속엣 갑자기 밝은 불빛을 보게 되면 간상세포가 만들어내는 전기자극이 갑자기 증폭이 되면서 마비상태에 빠지면서 시각중추로 전달되지 못하는 상태, 즉 실명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빛이 꺼지고 조금 지나면 회복이 됩니다. 따라서 순간적 실명, 혹은 일시적 실명상태를 의미하는 우리말 가운데 멋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쉬이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현혹>의 주요 등장인물은 자칭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중국학 학자 페터 킨, 그리고 그의 가정부로 들어왔다가 두 번째 부인이 된 테레제, 그리고 킨이 집에서 쫓겨난 뒤에 만나게 되는  ‘체스의 천재’라고 부르는 포주인 꼽추 피셜레 등입니다. 킨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변하는 상황에 따라 1부 ‘세계가 들어있지 않은 머리’, 2부 ‘머리가 없는 세계’ 그리고 3부 ‘머릿속에 있는 세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부 ‘세계가 들어있지 않은 머리’에서는 2만5천권에 달하는 책을 소장한 집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지내던 페터 킨의 집에 새로 들어온 가정부 테레제가 8년에 걸쳐 책들을 소중하게 관리하는 모습을 본 페터 킨이 그녀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테레제는 결혼과 함께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데, 가정부일 때 하던 일보다 안주인으로서의 권리 챙기기에 열중할 뿐 아니라 침대를 사러갔을 때 만난 직원과 일탈을 보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킨이 유산도 없는 상태라는 것을 알고는 집에서 내쫓기까지 합니다. 그런가하면 킨은 위험한 테레제를 집에 가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옮긴이는 이러한 테레제의 행태가 물질에 현혹된 인간의 전형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세계가 들어있지 않은 머리’라는 작은 제목은 세상물정을 모르고 사는 페터 킨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부 ‘머리가 없는 세계’에서는 집에서 쫓겨난 페터 킨이 지금까지는 피상적으로 접촉해오던 외부세계와 직접 만나게 됩니다. 2부에서는 외부세계에서 자유를 즐기던 킨이 이상적인 하늘이라는 카레어서 자칭 체스의 천재라고 하는 포주 피셜레를 만납니다. 2부는 킨과 피셜레가 함께 움직이면서 겪는 일들을 적고 있는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속임수를 쓰고 폭력까지 난무하는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머리, 즉 이성이 없는 세계인 셈입니다. 여기에서 킨은 테레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테레제는 킨이 자신의 돈을 훔쳐갔다고 경찰에 신고를 했기 때문에 이를 자백하라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킨은 자신이 테레제를 죽인 살인범이라고 자백합니다.


3부 ‘머릿속에 있는 세계’에서는 피셜레로부터 전보를 받은 킨의 동생 게오르크가 형을 구하기 위하여 독일로 옵니다. 테레제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형의 잘못된 생각을 되돌리고, 경비원과 테레제를 내쫓고 형을 집으로 돌아오도록 조치하고 파리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킨은 극도의 불안 속에서 자신의 도서관에 불을 질러 책들과 함께 불에 타 죽고 맙니다. 그러니까 머릿속에 있는 세계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세계를 이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현상을 군중적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작가가 추구하던 군중의 심리연구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데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행태는 굳이 군중심리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읽어내기가 아주 어려웠던 것은 죽었던 등장인물이 다시 나타나는 등 서로 다른 시점이 뒤엉키는데다가 등장인물이 생각하는 바를 마치 현실에서 일어난 것처럼 적고 있는 까닭이라는 생각입니다.

y*****2 2024.05.29.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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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현혹'시킨 놀라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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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지 한 달이 넘었건만, 나의 언어는 이 책 앞에서 여전히 침묵하여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나를 '현혹'시킨 이 놀라운 작품에 누가 되지 않을 리뷰를 써보고 싶다는 어찌보면 가당찮은 욕심 때문에, 한 문장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결국 길을 찾지 못했다. 그래, 엘리아스 카네티!   그는 어떤 다른 수식어도 필요없이 그저 결단코 천재다. 수전 손택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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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지 한 달이 넘었건만, 나의 언어는 이 책 앞에서 여전히 침묵하여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나를 '현혹'시킨 이 놀라운 작품에 누가 되지 않을 리뷰를 써보고 싶다는 어찌보면 가당찮은 욕심 때문에, 한 문장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결국 길을 찾지 못했다. 그래, 엘리아스 카네티!

 

그는 어떤 다른 수식어도 필요없이 그저 결단코 천재다. 수전 손택이 나에게 안겨준 두번째 도전, 카네티의 '현혹', 그는 24세첫 소설로 이 작품을 발표하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첫 소설, 그것도 24세 때, 그리고 노벨문학상까지! 꼭 이런 3가지 성과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 이 작품을 읽어보면, 언어의 다양한 오해와 착각의 세계를 이토록 날카롭게 분석한 그의 관찰력에 매순간 오만개의 느낌표로도 부족한 경탄을 쏟아낸다. 건조하고 정확한 언어들만으로 가볍게 600페이지의 분량을 채운, 자신과 독자 모두에게 "가차 없이 준엄한 책"을 쓴, 그렇게 열정의 정신을 펼친 카네티에겐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어떠한 찬사도 부족해 보인다. 다만, 그저 '천재'라는 단어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정확성'과 '엄격성'을 위해 스탕달의 '적과 흑'을 되풀이해서 계속 읽으면서 집필한 '현혹'의 주인공은 책에 열중한 고지식한 독신 은둔자이자 중국학 학자 페터 킨 교수다. 그는 온갖 주제의 지적인 탐욕을 채워주는 2만 5천권의 장서와 함께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숨어서 연구에만 몰두하는 독서광이다.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실제의 느낌은 '책에 미췬' 사.이.코. 정도가 맞겠다. 카네티는 킨의 이런 광기 단계를 '머리'와 '세상'의 세 가지 관계로 묘사해서, 책과 함께 은둔하는 '세계가 들어있지 않은 머리'와 킨이 집을 탈출하여 표류했던 야만적인 도시를 '머리가 없는 세계'로, 그리고 결국 세상 경험을 하고 돌아온 광기인 '머릿속에 있는 세계'로 나눴다. 이 머리와 세계의 관계를 고지식한 킨 교수가 돌아다니며 경험하는 동안, 여러 에피소들이 독자를 박장대소하게 만드는데 그 표현들이 놀라울 정도로 친절하지 않다. 인간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인 언어, 그것을 통해 어떻게 오해와 착각이 만들어지는지, 이 극단적인 등장인물들을 통해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현실의 와해된 세계를 제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거기서 카네티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

 

 

주인공의 환상과 결합된 재미없고 건조한 대사가 끝도 없이 이어지다 갑자기 뚝 끊기고 다른 등장인물의 생각으로 옮겨타는, 그 어이없는 단절이 절묘하게 연결되는 모든 언어들의 향연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또 소설치고 묘사가 거의 없긴 하지만, 군더더기 없이 몇 단어로 표현하는 외모에 대한 정확한 묘사는 실소가 터져나올 만큼 날카롭다. 그래서 이 '현혹'을 읽으면, 작가의 언어에 현혹되어 감히 나의 언어로는 무엇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패배감과 경외감이 동시에 불끈불끈 끓어오르게 된다. 이토록 건조한 언어들로 고차원적인 유머와 뜻하는 세상을 창조해 낸 그래, 엘리아스 카네티! 나에게 소설의 또 다른 세상을 맛보게 해 줌과 동시에 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 천재! 진심으로 감동이다.

 

더불어, (이런 일은 처음이지만) 번역자 이온화씨에게도 감사드리고 싶다. 엘리아스 카네티의 전공자가 없는 국내 실정을 감안하여 '과감하게' 번역할 용기를 낸 것도, 그리하여 우리에게 그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카네티의 언어를 우리나라 언어로 잘 표현해낸 것도 모두 감사드린다.

 

 

 

 

 



t****o 2012.07.27.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