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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가 끝나면 무엇을 먹고 살까
"잔치가 끝나면 무엇을 먹고 살까" 내용보기
자본주의 황금기는 지났다. 불황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현재 세계 경제의 키워드는 '침체'다. 이것은 단순한 경기순환적 위기가 아닌 체제의 토대 자체를 뒤흔드는 근본적인 위기다. 과연 무엇이 자본주의를 구원할 수 있을까. 부분적인 보완과 땜질 수준을 넘어서는 전면적인 체질 개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제 기획해야 할 새로운 미래의 키워드는 '지속가능성'이다.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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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황금기는 지났다. 불황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현재 세계 경제의 키워드는 '침체'다. 이것은 단순한 경기순환적 위기가 아닌 체제의 토대 자체를 뒤흔드는 근본적인 위기다. 과연 무엇이 자본주의를 구원할 수 있을까. 부분적인 보완과 땜질 수준을 넘어서는 전면적인 체질 개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제 기획해야 할 새로운 미래의 키워드는 '지속가능성'이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발상에서부터 탈피해 시장의 바깥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심각한 경기침체와 더불어 전례없는 생태-에너지 위기까지 동반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종식하고 연대와 협동의 원리로 삶의 방식을 개편하는 과감한 노력이 필요하다. 잔치는 끝났다. 모두가 죽을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함께 살 것인가. 인류는 이 벼랑 끝 질문 앞에 서 있다. 

 
연대와 협동의 원리에 기초해 환경과 사회, 경제의 삼박자를 모두 갖춘 공동체의 복원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제도도 손질을 해야 겠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각성과 아래로부터 삶의 방식을 전환해가는 것이 시급하다. 최근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협동조합을 공부하는 모임이 늘어나고 마을공동체 살리기 시도가 잇따르고 있는 바, 이미 전환을 위한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불가능한'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로 '전환'하는 일은 '혁명'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잔치가 끝나면 무엇을 먹고 살까>에서 저자는 피크오일과 기후변화라는 인류 생존의 위기 앞에서 더이상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성장 방식을 고집해서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한다. 성장 신화로부터의 과감한 탈피. 보수 뿐만 아니라 진보 또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진보가 여전히 성장과 발전의 환상에 젖어 있기 때문에 '박정희 신화'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운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한다.

 

성장의 정치경제학과의 결별. 양극화와 빈곤문제 해결이 일차적 과제인 상황에서 이는 대단히 급진적인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20%가 부를 독점하고 인류 전체를 공멸로 몰아가는 성장에 제동을 걸면서, 80%가 골고루 부를 나눠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성장의 패러다임을 기획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하면 될 듯 하다. 성장이냐 분배냐의 논쟁은 촌스럽다.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다시 농촌으로 가자는 브나로드 운동을 펼쳐야 한다. 마을공동체의 복원이야말로 착취와 억압의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들이 평화롭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맺는 지름길이다. 식량-농업과 에너지의 자립, 자치가 없는 민주주의는 사실상 허구의 민주주의다. (p11)
 
자본주의 산업문명은 전혀 지속불가능하다. 피크오일(석유정점)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는 기후변화이다.(중략) 오늘날 우리는 이런 붕괴와 끔찍한 식량위기를 예견하고 이에 대해 대비해야 함은 물론이고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기획해야 한다. 시민사회운동은 민주주의와 함께 인간 삶의 생존과 사회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생태적 전환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p29)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대안은 농업에서 시작될 수 밖에 없다. 다가오는 자원고갈 사태에 대비하여 석유농업에서 탈피한 지역자립과 자치의 유기농 생태농업을 기초로하는 식량 자급사회, 에너지 자립과 자치 사회가 주춧돌이 될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 임노동 관계가 아니라 평등과 협력의 인간관계, 이윤극대화의 주식회사가 아니라 사회책임의 협동조합, 지배와 착취의 사회가 아니라 자립과 자치의 공동체, 자원착취와 낭비문명이 아니라 자원절약과 생태계 보호의 문명 등 우리가 전환을 기획하면서 논의할 수 있는 대안은 이미 상식의 차원에서도 충분히 제시되어 있다.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의 힘으로 사고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기획도 못하는 산업문명의 노예 신분으로 전락했음을 겸허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과 이른바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전문가주의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전혀 다른 신천지가 보일 것이다. (p31)

 

우리의 각성과 삶의 방식 전환은 밑에서부터 자율과 자치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생태적 전환과 각성은 저항의 민주주의와 참여의 민주주의를 넘어서 자립과 자치의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 물론 풀뿌리 사회운동과 제도정치는 대체재가 아니라 상호보완재이다. (p57)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성장과 진보라는 이름의 생산력 발전 지상주의는 물질만능의 점점 더 거세지는 소비중독과 함께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생산관계가 바뀌기에 앞서 사회 자체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p190)
 
생태적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풀뿌리 시민사회운동과 더불어 국가의 의지와 정치 리더십 발휘가 관건이다. (중략) 생태적 대안운동이 일부에서는 국가의 소멸이나 직접민주주의 또는 아나키즘을 거론하지만 그런 희망은 아마도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경우에나 가능할 지 모른다. (중략) 노동운동은 단순한 정치세력화나 권력자원 배분에의 참여 정도를 넘어 국가 전략을 갖춘 생태적 대안 제시의 집권세력으로서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문제는 생태적 인식 전환이고 민주주의의 대화와 설득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다. 극도의 배금주의, 극도로 파변화된 개인주의를 벗어나 자율, 자치의 교육과 학습공동체, '보다 더 많이'가 아니라 '보다 더 적게' 소비하고 '보다 더 가까운' 대안사회의 전망은 이같은 노력으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p196~197)

 

석유정점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후폭풍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석유를 전량 수입하고 석유문명 체제에 완전히 포섭된 한국경제는 IMF와는 비교할 수 없는 충격의 쓰나미 앞에서 그 기초부터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중략) 문제는 석유체제의 전환에 대한 전체 패러다임을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 (p258)

 

 

 

YES마니아 : 플래티넘 x******0 2012.11.03. 신고 공감 1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