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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환 이용휴(李用休, 1708-1782)의 산문은 『탄만집』(100여편), 『혜환잡저(惠寰雜著)』(총 334편)에 대부분 수록되어 있다.『혜환잡저』의 글들은 멀리 있거나 떠나는 이를 위해 지은 증서(贈序)와 송서(送序)를 비롯해, 남의 글이나 그림에 써 준 서문(序文)과 제발(題跋), 상대의 건물 이름에 담긴 뜻을 풀어준 기문(記文), 남의 자(字)를 지어 주며 의미를 밝힌 자설(字說), 장수를 축원하는 수서(壽序), 죽은 이에게 말을 거는 제문(祭文) 등이 주류를 이룬다. 혜환은「서증외손허질」에서 외손자 허질에게 옛사람의 격언들을 전하면서 각별한 정을 드러낸다. 만족함을 아는 자는 하늘이 가난하게 할 수 없고 구함이 없는 자는 하늘이 천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시름과 고통을 참기는 쉬우나, 기쁘고 즐거운 것을 참기는 어려우며, 노하여 꾸짖는 것은 참기가 쉬우나, 기뻐서 웃는 것은 참기가 어려우며, 남을 헐뜯는 자는 스스로를 헐뜯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성취시키는 자는 자신을 성취시키는 것이니, 천하(天下)에는 선을 하는 것보다 더 쉬운 것은 없고, 악을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는 것이다. 하나의 생각이 사물에 미치지 못하면 곧 창자를 썩히게 되고, 하루라도 일을 만들지 않으면 곧 미련한 놈[頑漢]이 되는 것이다. 고인(古人)에게 양보하면 뜻이 없는 것이고, 지금 사람에게 양보하지 않으면 아량이 없는 것이다. 군자(君子)가 일정한 사귐이 있는 것을 일러 '의(義)'라 하고, 일정한 맹세가 있는 것을 일러 '신(信)'이라 한다. 가마[釜]와 고(鼓)가 가득 차면, 사람이 그것을 궁글대질하고, 사람이 가득 차면 하늘이 그것을 궁글대질한다. 득의(得意)한 장중(場中)에서는 다른 사람의 뜻과 기상을 키워 주기도 하지만 또한 다른 사람의 선한 바탕을 없앨 수도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스스로 반성하고 스스로 송사하거나, 스스로 강하게 하고 스스로 후하게 하거나, 스스로 취하고 스스로 짓거나, 스스로 포악하게 하고,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분명히 자기를 따라 말미암는 것이지, 남에게서 말미암는 것은 아니다. 천 사람이 나를 알게 하는 것이 한 사람이 나를 알게 함만 못하고, 한 세대가 나를 알게 하는 것이, 천 세대가 나를 알게 함만 같지 못하다."(하권 59, 60쪽)
혜환은 「보졸헌기保拙軒記」에서 평생 포의로 지낸 벗 권동야를 위해 기문을 쓰면서 '졸로(拙路)의 인생철학'을 피력한다.
일찍이 종이에 획을 그어서 두 가지 갈래 길을 만들었다. 하나는 졸(拙)이란 글자를 썼고, 하나는 교(巧)란 글자를 썼다. 졸로(拙路)에는 고금(古今)의 졸(拙)한 자의 성명 약간을 쓰고, 교로(巧路)에는 고금의 교(巧)한 자의 성명 약간을 썼다. 천천히 그 평생을 궁구하건대 졸로(拙路)에는 대개 처음에는 막혔다가 마침내는 형통한 사람이 많았고, 교로(巧路)에는 대개 앞서는 영달하였다가도 후에는 고달프게 된 자가 많았다. 드디어 한숨 쉬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는 진실로 화복(禍福)과 생사(生死)가 나누어지는 곳으로 삼가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또 졸(拙)이란 하나의 맥은 대역(大易)으로부터 온 것이니, 겸괘(謙卦)·손괘(巽卦)·간괘(艮卦)·둔괘(遯卦)란 것이 모두 이런 뜻이다. 다만 그 이름만을 바꾼 것으로는 건(乾)괘의 "용(龍)이니 쓰지 말라"라 말한 것과 미제(未濟)괘의 "여우는 꼬리가 물에 젖는 것을 경계한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은 곧 한 부의 역(易)에서 수미(首尾)를 기결(起結)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군자 중에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매우 드물다. 그러므로 혹 재주가 높아 다른 사람들의 시기(猜忌)를 사게 되고 혹 벼슬하여 출세하여도 재앙을 부르는 것이니, 그 마땅히 생각을 하여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아! 충신(忠臣)· 효자(孝子)·절부(節婦)·의사(義士)들 중에는 모두 고지식한 사람이 많다. 그 마음은 오직 충효(忠孝), 절의(節義)가 중요함을 알아서 마땅히 행동하여야 하기 때문에 곧바로 행동하고 다시는 털끝 만큼이라도 지혜를 써서 공교롭게 피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 경박하고 재빠르며 기민하고 권도를 잘 부리는 무리들은 명성과 이득과 총애와 녹봉은 반드시 남보다 앞에 있다. 그리하여 분수를 지키어 질박함을 안고 있는 자를 보게 되면 비웃으면서 둔하고 서툴러서 쓸모가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를 교환(巧宦: 처세에 능한 관리)과 교추(巧趍)로써 지목을 하면 곧 발끈하여 성내는 것이 안색에 드러나게 되고, 박졸(朴拙)하다고 바꾸어 부르면 기뻐하는 것은, 진실로 졸(拙)한 것으로써 길덕(吉德: 美德)을 삼고 교(巧)는 이것과 반대가 되는 까닭이다. (하권65-7쪽)
동병상련이랄까. 혜환은 재주가 있으나 요절한 천재들을 안타까워했다. 평와 김숙과 우상 이언진이 그러한 경우다. 김숙은 자가 사징이고 호는 평와, 본관은 개성이다. 이언진은 18세기 중엽 역관 출신의 천재 문인으로, 자는 우상, 호는 송목관이다. 혜환은 「평와집서」에서 이렇게 요절한 천재문인을 안타까워한다. 천하에 커다란 원통함이 있는데, 원고와 피고의 뒤바뀐 것과 같은 것은 여기에 끼지 못한다. 재주가 있었으나 요절하여 성취하지 못한 경우와 이미 성취했으나 글이 사라져 알려지지 않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요절하여 성취하지 못한 것은 하늘에 달린 것이요, 글이 사라져 알려지지 않는 것은 세상에 달린 것이다. 하늘에 달린 문제는 운명이니 논할 것도 없거니와, 세상에 달린 문제는 그 처지에 따라서 추켜세워지기도 하고 억눌려지기도 한다. 권세가 있는 사람은 겨우 뜻도 모르고 읊조릴 줄 만 알아도 모두 문집으로간행된 것이 있지만, 한미한 사람은 비록 기예가 『시경』과 『이소』를 통달하고 문명한 시대를 만났더라도, 홀로 물러나서 드러내지 못하게 되니, 심하도다, 세상의 다스림이 불공평함이여!(상권 267쪽) 혜환은 출중한 능력을 가졌지만 기회를 얻지 못한 인재들을 통해 울분을 토로하고, 불합리한 세태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였다. 혜환은 이가환과 6언시를 실험했는데 여항문인 송목관 이언진(1740∼1766) 유파에게 영향을 미쳤고, 서얼 출신의 이덕무와 박제가 등 연암소장파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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