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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고 나서야 금서에서 풀린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주의 선언>을 이렇게 밝은 불빛 아래서 읽을 수 있다니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걸 절감했다. 동시에 “상황이 아무리 많이 변했다 하더라도,’공산주의 선언’에 개진되어 있는 일반적 원칙들은 대체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완전한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새로운 공동체를 행한 운동으로서의 공산주의도 계속될 것이다.” 라고 한 저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의 말은 그대로 완전한 이해를 주었다. 이 책을 쓴 저자의 목적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수준에서는- 은 제 3장 중 특히 ‘자본의 세계화, 빈곤의 세계화’ , ‘새로운 공산주의를 향하여:’아래로부터의’ 세계화’ 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결국 자본주의의 승리에 의해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고 급속도로 진행된 ‘세계화’는 과연 그 이전 시기보다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가? 결론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국가간의 차이가 늘어나고 국가 내에서도 불평등은 크게 확산되었을 뿐더러 발전도상국의 노동자들은 엄청난 노동 강도와 노동 시간, 낮은 임금을 받으며 ‘과잉 착취’를 경험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19세기 <자본>에서 묘사했던 당시 영국 노동자들의 현실이 단지 시공간만 변했을 뿐, 이에 대해 자본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1999년 ‘시애틀 시위’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Attac’ 이라는 새로운 사회운동 단체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그들은 민중들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세계화를 요구하였는데 세계화의 목표는 이윤이 아닌 전세계인의 평등과 자유, 인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아래로부터의’ 혹은 ‘대안’세계화라 부르기도 한다. 자본주의 국가라는 공동체에서 배제되고 착취 받는 사람들이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국제적 연대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킬 것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에서 이것이 바로 새로운 공산주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이런 이유로 ‘공산주의 선언’은 계속 읽혀져야 하고 더 나은 세상과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인류의 이상 역시 지속될 것이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이 구절은 더 이상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말이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라는 형태로 구체화되고 민중, 노동자,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알 수 있다. 개도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미지 좋은 초인류기업의 횡포를,,,,<녹색시미 구보씨의 하루>라는 책이 있다. 자국산 신발 신기를 요구하는데 그 근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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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읽으면서 새로운 것을 알기도 할테고, 미처 잠재의식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것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꺼내서 엮기도 할 것(실은 이게 진짜 책 읽는 목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이며 온갖 생각들을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을 읽는 동안, 특히 뒷부분을 읽을 때 체 게바라가 생각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체 게바라가 게릴라 활동을 하러 산 속에서 생활하면서도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이 생각났다. 그때 읽고 있었던 책이 마르크스의 책이었다지. 이제서야 체 게바라가 자신의 고국에서 혁명에 성공한 후 또 다른 혁명을 위해 왜 볼리비아로 떠났는지 이해가 간다. 그야말로 체는 마르크스의 이론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니 '공산당'이란 말은 금지어 1호였었다. 사실 그런 것에 그다지 관심이나 흥미를 갖지도 않았었다. 부끄러운 얘기겠지만... 마르크스는 그저 학교 다니면서 외워야 할 사상가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공산주의가 어떻고 민주주의가 어떻고를 떠나, 아니 공산주의가 대부분 실패했다는 사실을 떠나 위대한 혁명가이자 사상가이며 실천가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지식의 얕음으로 인해 지은이의 해석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 이해한 것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150여 년 전에 씌인 책이라지만, 또 공산주의 국가가 대부분 몰락했다지만 아직도 마르크스의 이론은 진행형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반공이념에 의한 공산주의 말고 마르크스의 진짜 공산주의가 말이다. 동독이 흡수되고 소련이 붕괴함에 따라 마르크스의 이론은 허구였음이 드러났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건 왜곡된 이론을 가지고 판단했거나 한쪽만 보고 단순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뭐,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만큼 내가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최근에 나온 책이기 때문일까. 뒷부분에서는 현실을 인용해 가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조목조목 설명해 준다. 이미 공감하고 있고 열받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것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누가 자본주의를 싫어하겠나. 다만 점점 심각해지는 부의 편중화와 고용불안정을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나가 인식하는 것일 게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란 일부 힘 있는 사람들에게 우호적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마찬가지로 세계 기구도 힘 있는 국가에 우호적이라는 점 또한 변함이 없다. 그걸 이미 마르크스는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책 속에 갇혀 있는 택스트로 읽을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와 함께 읽어야 할 책이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나저나 책꽂이에 꽂아두고 바라보기만 했던 동일 출판사의 <로자 룩셈부르크>를 읽어봐야겠다. 노동자들을 국제적으로 연대하고자 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국익이라는 명목으로 흩어졌고 그것을 강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군부에 의해 살해된 여성운동가 룩셈부르크... 이렇게 책 속에서 새로운 인물을 만나는 재미 또한 책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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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으로 가능한 세상일 뿐인가?]
얼마 전에 아이세움의 인물시리즈로 스탈린을 읽으면서 스탈린이 공산당 활동을 열심히 하게된 계기가 바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선언]을 읽은 다음이라고 한 부분이 기억난다. 공산주의 선언..아마도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는 [공산당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책이 아닌가 싶다.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반공 교육을 받아왔기에 일제시대 악날한 일본인들보다도 북한 사람들은 더 잔인하게 남한 사람을 고문하고 괴롭혔다고 들어왔다. 같은 민족?이라는 개념 대신 항상 경계해야 하는 대상으로써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는 민족으로 말이다. 이론상으로 공산주의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평등하게 나누며 사는 최고의 삶일지 모르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고 옳지 않은 모습으로 실현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들 가운데 대부분은 붕괴했고 지금은 모두 자본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모습이 자명하게 드러난다. 경쟁 사회 속에서 경쟁없이 홀로 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 속에서 말하듯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 자본국가에서 벌어지는 경쟁에 의한 모순 ,빈익빈 부익부를 창출하면서 교묘하게 그 안위를 이어가는 구조에 대한 비판은 분명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것에서가 아니라 삶 자체에서 개인의 이익보다 전체의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는 그 사상만큼은 누구나 동조하게 되지 않을까 ?문제는 현실에서 올바르게 실현되기 힘들다는 난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불가능하다고 해서 그 이론을 버릴 것이 아니라 분명 우리가 받아들이고 고민해야 할 점이 있다는 말에는 동감한다. 책의 제목에서도 보여지듯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노력이 현실에서도 미래에서도 필요하기 때문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 선언]을 영원한 고전으로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이데오로기로 거부할 시대는 아닌 게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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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봉건제가 무너지면서 영주대신 부를 누리게 되는 또다른 계급 부르주아가 태동하는 시기에 노동자들의 처참한 가난을 목도하고 엥겔스와 함께 공산주의 선언을 작성하고 발표한다. 그러나, 마치 마르크스의 이론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처럼 혁명이 일어났던 러시아는 레닌의 사후 스탈린이라는 독재자를 만나면서 공산주의의 초기 이론으로부터 변질되고, 끝내 공산주의는 성공하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보면, 국가라는 과도기를 거쳐 계급이 사라진 새로운 공동체로 나아간다는 공산주의 이론은 단지 희망사항으로만 보인다. 책의 저자가 언급했던 ‘반지의 제왕’ 이야기처럼, 반지를 악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반지를 얻는 순간, 세상을 지배하려는 야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독재자는 자본주의 하에서도, 공산주의 하에서도 있어왔듯이 멀고먼 옛날 청동기 시대부터 존재해 온 지배와 피지배계급, 강자가 되려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어떤 논리를 갖다 붙여 놓아도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길은 묘연해 보인다. 이 시점에서, 공산국가들은 사라졌지만 공산주의는 계속된다는 저자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현재 좋은 의미로 쓰이고 있는 ‘세계화’란 낱말 뒤편에는 자본의 세계화라는 경계해야 할 현상이 숨어 있다. 자본은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돈이 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진출하여 오로지 수익을 내는 것에만 집중한다. 이러한 거대 자본주의에 대한 곳곳의 저항은 투기자본의 횡포를 막기 위한 ‘아탁’과 같은 단체처럼 구체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계속되는 한, 공산주의 혹은 또다른 이론이 등장해서라도 현실의 모순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화의 목표는 이윤이 아니라 전세계인의 평등과 자유, 인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의 운동을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혹은 ‘대안’ 세계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공산주의의 모습이 아닐까? 자본주의 국가라는 공동체로부터 배제되고 착취받는 사람들이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국제적 연대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킬 것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p232~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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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잘 사용하지 않는 말 중 하나가 '공산당', '공산주의'라는 말일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 교육을 받고 지금도 '공산주의'하면 뭔가 눈치를 봐야 하고 몰래 이야기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공산주의 선언'이라니? 그것도 이를 미화해서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운동'이라고 명명했다. 어찌보면 반가운 일, 어찌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구나 하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하나의 고전으로서 이 책을 접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공산주의를 나쁘게만 바라봤던 기존의 편견을 조금은 씻어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반가운 일이라 생각된다. 고전이라 함은 현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시대의 교훈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의 지은이 역시 공산주의를 하나의 이기적인 사상으로 보지 않고 자본주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알아야 하고 어떻게 사회가 발전해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듯 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도 생가케 해 주는 책이다. IMF에서부터 자본의 세계화라는 틀 속에서 벌어지는 거대 자본주의 국가들의 횡포 아닌 횡포가 아직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언급하진 않았지만 한미 FTA에 대한 생각도 해 보게 한다.
기존의 책들이 나 자신을 생각하고 우리 가족을, 우리 인생을 감동적, 감정적으로 생각케 했다면 이 책은 좀 더 현실적으로 삶을 생각하라고 일러주는 듯했다. 그래서 좀더 숙연해 지고 삶에 대해,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해 좀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라고 충고해 주고 있는 책이다. 이를 계기로 좀더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갖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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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 참 대학을 다니고 있던 90년대 초반에는 마르크스 레닌 주의에 대한 다양한 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마치 지성인의 한 모습인 양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 책이 "나의 고전 읽기"가 되어 나왔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흥분과 전율을 감출 수 가 없었습니다.
세기의 천재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해 청소년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자본주의는 곧 붕괴되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해 혁명 세상이 다시 올 수 밖에 없다는 이론을 펼친 그 시대적 배경이 이 책에는 나와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 많은 청소년들과 학생들이 그 시대적 배경을 빠트리고 마르크스 주의에 대해 공부하려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친철하게도 당시 유럽의 프랑스 혁명에서 시작되어 신분제 사회였던 봉건제가 무너지고 시민세력이었던 부르조아 세력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 등을 거치면서 권력을 잡은 부르조아 세력도 마찬가지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에만 급급하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노동자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혁명으로 인해 자신들의 처지가 나아지리나는 기대가 빗나가고 더 악한 빈곤의 생활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한 마르크스와 엘겔스는 새로운 공동체 그것은 국가의 개념이 아니고 국경을 초월한 전 세계의 프로레타리아 계급의 연합 공동체의 출현이 당연한 일이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마르스의 주의를 왜곡해 등장한 공산주의 국가(헝가리, 폴란드, 소련, 중국등)들은 20세기 후반에 그 모순을 드러내며 다 붕괴하였다.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공동체는 국가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20세기 대분분의 국가들은 마르크스 사상과는 다르게 국가가 그 공동체 역할을 감당하므로 많은 모순점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공산주의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사실 현재의 자본주의는 자본의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극심해지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길은 공산주의 밖에 없음을 '선언' 하였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표방했던 국가들이 무너진 이 시점에게 공산주의를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본성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역시 유효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머지 생각들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다양한 사고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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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화합을 앞세우는 21세기에 공산주의?? 처음에 책장에 적혀진 제목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그렇게 첫 장을 넘겼다. 공산주의가 주는 독재 ,쿠테타 , 낙후된 삶들의 짧은 생각들…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은 의지 역시 공산주의 안에 포함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어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기에 이 책이 낯설게 느껴지고 한장 한장 처음이 더디게 지나갔지만 이후에는 달랐다. 공산주의와 21세기는 웬지 어울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공산주의의 이념은 지금도 우리사회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생각하게 해주는 모습이다. “ 성공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 는 마무리 글을 보면서 공산주의의 이념과 자본주의 세계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준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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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날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적인 운동을 공산주의라 일컫는다.
공산주의 선언 책 160쪽에서
세상을 뒤엎은 몇몇 사람들 중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있고 그들을 생각하면 '사회주의'혹은 '공산주의'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솔직히 이 책을 보기 전까지 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점을 잘 알지 못했으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장했던 공산주의의 선언과 지은이 박찬종 씨의 친절하고 정확하고 예리한 설명을 통해 감을 잡게 되었다. 지금은 공산주의라는 의미가 너무 퇴색하고 굳어버려서 평화로운 자본주의를 위반하는 잘못된 체제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주의를 주장하던 시대는 현실이 늘 불안하고 궁핍하고 고통받았던 프롤레타리아들에게 그 사상은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게 한 새로운 비젼이었음이 틀림없었다. 그 둘의 사상은 굶주린 노동자들에게 희망이었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보장해주는 사회주의 국가로 변화했고 강대국이 된 적도 있었지만 현재는 '마르크스주의 종말'을 듣기도 할 정도로 그를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승리를 외치기도 한다.
모든 생각이나 사상은 세월이 흐르면 변질되고 오해되기도 한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늘 피 말리게 가난했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구원하려고 했던 것이 진정으로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둘의 이상에 의해 많은 것들이 구원받았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공산주의가 옳은 사상이냐 그른 사상이냐 자본주의가 승리했으냐 더 많은 오류를 낳느냐를 따지기 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구원하고 싶었던 프롤레타리아와 잘못된 현실을 비판하고 능동적인 혁명을 통해 현실의 희망을 제시한 공산주의 선언은 분명 훌륭한 사상임을 느끼게 되었다.
***p.s잘 정리된 돋보기. 눈에 띄게 만들어서 좋았습니다. 인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