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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아직 그 달이다 | 이상국 | 창비 | 2016-05
국향 진하게 베어나는 가을이다. 이런 날은 한 편의 시詩를 감상해도 좋고, 한 권의 시집을 통째로 읽어도 더 없이 즐겁다. 박음질하듯 한 땀 한 땀 고운 언어로 길어 올린 시편들과 마주하면 어수선한 머릿속이 순식간에 정돈 되고, 복잡한 생각들도 서둘러 제자리를 찾는다. 그렇다고 모든 작품들이 그런 호사를 누리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밑도 끝도 없이 주절주절 난해하게 직조된 작품들은 제외이다. 시는 어디까지나 ‘함축의 미’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는 제 기능을 상실한 감각기관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빠른 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한 밀레니엄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의 형식이 난타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파괴된다. 이를 세풍이라 치부하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우리 민족의 정서에 가장 잘 어울린다는 7·5조의 운율은 고사하고라도 어느 정도의 가락은 살려야 시의 맛이 제대로 우러날 텐데 말이다. 21세기를 기점해서 퓨전문학의 길로 너무 성급하게 접어든 것은 아닐까? 지나치게 가파른 경사면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시를 사랑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문학詩文學의 형식은 파괴되고, 글은 길어지고, 시문의 조탁彫琢은 난삽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모든 작품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 이것이 ‘시’인지, ‘산문’인지 독자를 조롱하는 것처럼 난해한 시를 만나게 된다. 그때는 굳이 알은 체 할 필요 없다. 그저 목례도 없이 눈인사만 나눈 뒤 곧바로 안녕하면 그뿐이다. 머리 복잡하게 이해도 되지 않는 작품을 붙잡고 앉아 시간 낭비할 필요가 뭐 있겠나, 싶어서이다. 그럴 땐 지극히 평범한 서정시 한 편 감상하는 게 낫다. 시인의 생활 주변에서 일어난 미세한 떨림까지도 감지하여 써 내려간 작품은 얼마나 솔직하고 감동적인가 말이다. 여기에 부합된 이상국의『달은 아직 그 달이다』(창비, 2016)라는 시집 한 권을 읽었다. 따뜻한 시 한 편을 감상해 보자.
눈은 오다 그치고 어쩌다 한잔 생각이 간절한 저녁,
가게들이 더러 셔터를 내리는 그 시간에 마누라 눈치를 보아가며 기어이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을 주문한다면 치킨집 주인도 좋아하겠지
벌거벗은 채 차례를 기다리던 닭들도 얼른 기름 가마 속으로 들어가며 몸을 풀겠지만 저녁 내내 어정거리던 알바 청년은 얼마나 신이 나서 골목길을 달려오겠니
거기다 소주나 맥주 천쯤 같이 시킨다면 초저녁부터 갑갑한 통 속에서 사내들의 오르내리는 목젖과 출렁이는 뱃구레를 그리워하던 그것들은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몸을 흔들겠지 걸그룹처럼 춤을 추며 달려오겠지
―「동네 치킨집을 위한 변명」전문
눈이 오다 그친 늦은 저녁 시인은 치킨에 술 한 잔이 간절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를 직접 발설하지 못한 채 마누라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천진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순수한 마음에서 길어 올린 시야말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리라. 이게 바로 시의 참 맛이다. 벌거벗은 채 차례를 기다리던 닭들에게 잠시 머물던 시인의 시선은 곧 아르바이트 청년을 향해 유창하게 펼쳐진다. 그 안에 시인의 속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처럼 상상력의 극치를 보이면서 독자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오늘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한 우리는 모두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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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청이라는 말
휘영청이라는 말 그립다
어머니가 글을 몰라 어디다 적어놓지는 않았지만 누구 제삿날이 되어 깨끗하게 소제한 하늘에 걸어놓던 그 휘영청
내가 촌구석이 싫다고 몰래 집 떠날 때 지붕위에 걸터앉아 짐승처럼 내려다보던 그 달
말 한마디 못해보고 떠나보낸 계집아이 입속처럼 아직도 붉디붉은,
오늘도 먼 길 걸어 이제사 제사도 없는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의 타관객지를 지나 떠오르는 저 휘영청
휘영청이라는 말
달은 시인에게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휘영청이라는 말을 가끔 하셨나 보다. 그러니 “오늘도 먼 길 걸어 / 이제사 제사도 없는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머니의 휘영청이 떠올랐겠지. 내게 달은 아버지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하회마을을 찾았는데 그때 본 반달 빛이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였다. 그때부터 내게 달빛은 아버지의 빛이다. 돌아가신 육친의 빛이다. 그러고 보면 달은 저승에서 이승에 보내온 빛이거니와 이승에서 저승으로 보내는 그리움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어머니가 깨끗하게 소제한 하늘에 걸어놓던 그 휘영청 달이 그립다. “시뻘건 달이 앞산 등성이 어디쯤에 둥실 떠올라 허공 중천에 걸리면 어머니는 야아 야 달이 째지게 걸렸구나 하시고는 했”다. 시인은 그 말에 붙들려 시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썼지만 거기 못 미친다. “달은 아직 그 달”(「달은 아직 그 달이다」)이건만.
어느 날 저녁
마트에서 돌아오는데 간지럼 혹은 무슨 즐거움 같은 게 나를 슬쩍 건드리고 지나간다 비닐봉지에 든 맥주였을까 저만치 가는 여자의 단발머리일까 하여튼 집으로 돌아오는데 수줍은 듯한 어둠도 그랬지만 서늘한 가로등도 나를 아는 것 같았다 이런 적이 별로 없었다 나는 늘 저녁의 골목을 집 나갔다 오는 아이처럼 고개를 숙이고 돌아오고는 했는데 오늘은 달랐다 차오르는 어둠에 아무렇게나 몸을 적신 나를 무슨 희망 같은 게 물고기처럼 툭 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때 골목길에는 나밖에 없었고 소년처럼 반바지를 입은데다 비닐봉지를 든 나를 그렇게 건드리고 간 것은 아무래도 나인 것 같았다
시인은 마트에서 비닐봉지에 맥주를 사 들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저만치 단발머리 여자가 걷고 있고 가로등은 서늘하다. 소년처럼 반바지를 걷고 있는 그이에게 무슨 간지럼이나 즐거움, 희망 같은 게 물고기처럼 툭 치고 지나간다. 그이의 내부에서 솟아오른 빛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스스로 빛을 만든다. “모두 어디가 조금 모자라거나 불편한 것들뿐인데도 / 그런 시를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딴사람처럼 웃”(「나도 웃는다」)고, 산도라지꽃 같은 평양의 “흰 저고리에 붉은 스카프를 한 소년 소녀들”을 보고 “분발하고 싶”다며 “북한산 비아그라를”(「평양」) 사는가 하면, “가게들이 더러 셔터를 내리는 그 시간에 / 마누라 눈치를 보아가며 기어이 / 후라이드 반 양녑 반을 주문”(「동네 치킨집을 위한 변명」)한다. “그래도 나는 날아가고 싶다”(「그래도 날고 싶다」)고 노래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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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25 농성장을 꽃밭으로 바꾸어 주는 ‘사랑’ ―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이상국 글 창비 펴냄, 2016.5.9. 8000원 시인 이상국 님은 마흔 해라는 나날을 두고 시를 써서 일곱째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창비,2016)를 선보입니다. 마흔 해에 걸친 시쓰기는 마흔 해에 걸친 노래라고 느낍니다. 마흔 해를 한결같이 시처럼 삶을 바라보며 읊는 노래이지 싶습니다. 시라고 하는 한길을 차근차근 걸어온 발자취를 헤아립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쌀을 씻어서 불리고, 부엌을 갈무리하고,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고, 마당을 쓸고, 밭자락을 돌아보고 난 뒤에 시 한 줄을 가만히 읽어 봅니다. 봄이 되어도 마당의 철쭉이 피지 않는다 / 집을 팔고 이사 가자는 말을 들은 모양이다 / 꽃의 그늘을 내가 흔든 것이다 (그늘) 내가 아는 유월은 오월과 칠월 사이에 숨어 지내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 유월에는 보라색 칡꽃이 손톱만 하게 피고 은어들도 강물에 집을 짓는다. (유월)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새 유월에 새롭게 들일을 합니다. 바야흐로 한낮 햇볕이 따가운 철인 터라 새벽 일찍 하루를 엽니다. 일흔 해나 여든 해를 살아온 이 시골자락에서 언제나처럼 시골일을 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찔레꽃이 지면서 찔레알이 천천히 여무는 이 유월에, 붓꽃도 차츰 시들고 옥수숫대는 무럭무럭 오르는 이 유월에, ‘시 할아버지’와 ‘시골 할아버지’ 사이에 흐르는 기운을 생각해 봅니다. 일흔 고개로 접어든 ‘시 할아버지’는 이녁 어릴 적 이야기를 자꾸 시로 적바림합니다. 어린 나날 마주한 시골 모습을 그리고, 어린 나날 먹던 밥을 그리며, 어린 나날 하던 시골일을 그립니다. 일흔 살 시 할아버지는 천천히 흙내음 쪽으로 몸이 기울어질는지 모릅니다. 어린 날 마음에 새겨진 흙내음을 떠올리고, 오늘날 새롭게 마주하는 유월 바람을 가만히 되새깁니다. 지난날 유월에 만난 칡꽃을 되새기면서, 오늘날 새삼스레 맞이하는 유월 땡볕에 땀을 흘립니다. 아카시아꽃을 씻어 / 밥 잦을 때 안치면 // 이밥보다 하얀 / 꽃밥이 되었다 (꽃밥 멧밥) 친구 어머니 문상을 했다. // 그 나이 되도록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니 얼마나 고마웠을까. (신발을 찾아 신다) 시 할아버지는 아카시아꽃을 씻어 꽃밥을 지어 먹었다고 합니다. 나는 오늘 내 보금자리에서 모시잎을 훑어 모시밥을 지어 먹습니다. 이른 봄에는 여린 쑥을 뜯어서 쑥밥을 지어 먹었고, 오뉴월에는 모시잎을 뜯어서 모시밥을 지어 먹어요. 가을에는 감자밥을 지어 먹고, 겨울에는 고구마밥을 지어 먹어요. 때로는 무밥을 지어 먹고, 당근을 넣은 당근밥도 지어 먹습니다. 감꽃을 주워서 감꽃밥을 지어 먹기도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시골일은 하나같이 ‘먹는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땅을 만지는 일이란, 내 입으로 들어올 밥을 정갈히 다스리는 일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살림을 짓는 일이라면 아이들을 건사하면서 보살피고 사랑하는 일이 될 테지요. 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시 한 줄이란, 시로 지은 꿈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일이 될 테고요. 아이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뛰노는 하루란 그야말로 재미난 놀이를 짓는 일이라 할 터입니다. 얼마 전 한국의 중구청 공무원들이 / 쌍용차 대한문 농성장을 철거하고 / 화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 꽃들이 얼마나 좋아했을까 // 노동자들의 자비다 (자비에 대하여) 투박한 말투로 꽃을 말하고 사랑(자비)을 말합니다. 농성장이 사라지고 꽃밭이 생겨난 일을 지켜본 시 할아버지는 ‘꽃사랑’을 넌지시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에는 너른터(광장)가 수없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넉넉히 모여서 뭔가를 꾀할 만한 자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저나 “한국의 (중구청) 공무원”들이 꽃밭(화단)을 좋아한다면, 꽃을 그토록 사랑한다면, 광화문도 청와대도 국회의사당도 모두 조용히 헐고서 꽃밭으로 바꾸어 줄 수 있을까요? 모든 시멘트덩이를 걷어내고 꽃밭이나 꽃숲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요? 고속도로도 골프장도 축구장도 말끔히 걷어내고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요? 농성장만 꽃밭으로 바꾸지 말고 온 나라에 고운 꽃내음이 퍼지는 사랑스러운 마을로 바꾸어 볼 수 있을까요? 예닐곱살쯤 돼 보이는 계집아이에게 / 아빠는 뭐 하시냐니까 //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환해지며 / 그 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쫄딱) 착한 사랑을 그리고 싶습니다. 고운 사랑을 그리고 싶습니다. 농성장을 꽃밭으로 바꾸어 주는 사랑보다는, 아프게 외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랑을 그리고 싶습니다. 오월꽃과 유월꽃이 베푸는 보드라운 냄새에 몸을 맡길 줄 아는 사랑을 그리고 싶습니다. 흙내음을 아끼고, 나무 한 그루를 돌볼 줄 아는 사랑을 그리고 싶습니다.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를 덮고 아침밥을 지으려 합니다. 부엌에 들어온 파리 한 마리를 손으로 살살 쫓으면서 문 밖으로 내보냅니다. 굳이 파리채를 들지 않고도 파리를 밖으로 내보낼 만합니다. 파리더러 거름자리로 가서 네 몫을 즐겁게 맡아 달라고 속삭입니다. 환해지는 골목처럼 환해지는 마을을 그려 봅니다. 이웃이 서로 아끼는 살림을 그려 봅니다. 환해지는 나라와 환해지는 시 할아버지 마음을 그려 봅니다. 유월볕을 받는 논자락 볏포기가 싱그러이 빛나는 나날입니다. 2016.6.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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