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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읽었던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는 전 세계인구를 모두 먹여 살릴 수 있는 기술문명이 발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빈곤지역이 발생하며 그 수치가 줄어들지 않는지를 역추적 하는 내용이었다. 켄타로 토야마의 [기술 중독 사회]는 중독이란 단어를 타이틀에 넣음으로써 기술이 발달하는 것이 과연 인간에게 호의적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 묻는다는 점에서 앞서 읽었던 책을 떠올리게 했다. 두 작가 모두 기술이 발달한다고 빈곤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선한 의도를 행동화 하는데 필요한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는 '우리'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트위터Twitter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매체로든 설득력 있는 주장을 세우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생각하기와 쓰기 그리고 의사소통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들은 문자 메세지, 파워포인트, 이메일로 많이 쓰이지만, 그것으로 이 능력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39쪽 기술이 발달하고 인터넷사회가 되면서 상대방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 다양해졌다.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고 비용도 들지 않는다는 이로운 점보다는 소통이 아닌 '배설'에 가까운 컨텐츠들은 오히려 인간관계를 화합하지 못하고 패를 나누고 다툼을 조장했다고 보기 쉽다. 예를 들어 글을 쓸 줄 안다고 모두 작가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과 같다. 인터넷으로 지리적, 시간적, 비용적 측면을 효과적으로 감소시킨 기술의 장점외에 인공지능 혹은 유비쿼터스와 같은 디지털 도구 또한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인격과 만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다. 저자는 아이들이 디지털 도구를 통해 긍정적인 측면을 배울 수도 있지만 흐트러지고 싶은 자연적인 욕구도 함께 작용한다고 말한다. 게임에 열중하는 아이에게 화를 내는 부모의 경우 아예 기기를 차단시키지 못하고 학습과 관련된 디지털 도구로 제한을 두는 상황만 봐도 이해가 쉽다. 하지말라고 했을 때 반항심리를 떠올리자면 아이들이 게임에 미치면 미칠수록 공부와 멀어지려고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데도 이를 부모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대략 이렇게만 책의 내용이 가득했다면 이 책의 역할이 새롭지도 각광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강력한 백신은 있었지만 소아마비를 퇴치하기 어려웠던 것은 세상이 디지털 장치로 가득하지만 우수한 품질의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과 같고, 이는 인권법이 있지만 뿌리 깊은 편견이 남아 있는 것과 같으며, 선거가 있지만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장애 요소가 존재하고, 환경보호기술이 있지만 기후변화에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과 같다. 310쪽 저자는 기술사회가 부정적인 영향을 갖게 된 것이 우리의 인격과 관련되어 있다고 이야기 한다. 가령 노예해방, 여성들의 인권신장 부분은 기술이 가져온 혜택이 결코 아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자연스럽게 깨우쳐진 것도 아니었다.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부분으로 기술과 인간의 인격이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를 차분하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더불어 기술을 가졌지만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부족하면 앞서 기재한 발췌문처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는 점등을 통해 해당 기술이 적절하게 쓰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의 중요성도 알려주었다. 그동안 기술이 우리를 어떻게 발전시켰느냐, 혹은 기술의 한 분야인 무기가 우리를 얼마나 파괴했는지 등만 보았다면 앞으로 기술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며, 이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통찰력있는 시선으로 알기쉽게 쓴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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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중독 사회
저자는 스스로를 일컬어 ‘갱생중인 기술 중독자’(13쪽)라고 고백한다.
그 ‘갱생’이란 말이 ‘기술 중독’이 부정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기술 중독이라는 말의 의미는 간단히 말해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기술적인 방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13쪽)을 말한다.
그러니 그런 저자의 고백을 듣고 나니, 이 책의 정체가 무언지 밝혀졌다.
그리고 중립적인 의미로 쓰였을 것 같은 책 제목 『기술 중독 사회』 도 뭔가 부정적인 냄새가 풍기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처음에는 기술 중심 시대를 지향하다가, 기술을 보는 관점이 어떻게 완전히 달라졌는가를 기록한 책이다.
기술 중심 시대의 문제점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과학 기술 발전이 사회의 발전에 주요원인이 될 것이라는 환상-믿음 - 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인류 문명의 발전이 과학기술 발전에 의한 것처럼 착각하는데 기인하는 것이지만, 이 착각은 문명의 발달에서 문화적인 요소를 감안하지 않는데 기인한 것이다. 문화는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문명의 발달이 기술 쪽으로만 편향되어 보이는 것이다.
기술 중심 시대의 문제점은 다양하게 지적할 수 있는데, 우선 ‘기술 십계명’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153쪽)
그 중 의미 있는 것은, 먼저 의미보다 측정을 중시하고,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것, 과정은 제쳐두고 목적을 우선으로 삼는 것, 어떤 가치를 취하는가에 대하여는 가치중립을 선호하는 것들이 기술 중심 시대의 폐해를 드러내 보여주는 항목들이다.
기술의 바람직한 방향
그렇게 기술 중심 시대의 문제점을 지적한 다음에, 이 책의 2부에서는 ‘기술과 우리의 미래’라는 제목 하에 기술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논하고 있다.
기술 중심 시대의 한계는 분명하다. 균형있는 발전을 원하는 사람, 자기 초월의 동기부여를 가진 사람, 진정으로 사회변화를 원하는 사람에게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은 기술 중심적인 가치로 지원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기술을 적용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의 의도와 안목, 그리고 자기 통제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의도와 안목, 자기 통제를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부유한 집안으로 입양된 데이비드의 예를 들고 있다.
부유한 부모는 데이비드를 좋은 사립학교에 입학시켰지만, 그는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저자가 마침 그를 지도한 적이 있는데, 그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데이비드는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데이비드는 공부하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많지 않았고 (의도), 그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으며 (안목), 어떤 경우에도 숙제에 전념하지 않았다 (자기 통제).>(255쪽)
또한 사회적인 차원에서 보는 의도와 안목, 그리고 자기 통제는 개인의 그것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저자의 결론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풍요로워도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한 변화를 위하여 사람은 내면적 성장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사회 차원으로 발전하여 갈 때, 이를 ‘사회의 내면적 발전’이라 한다.
밑줄 긋고 새겨야 할 말들
가난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거의 모든 사회문제에 연관되어 있다. (16쪽)
지속 가능한 행복 추구를 위한 다섯 가지 비결 (149-150쪽)
- 긍정적인 감정, 적절한 타이밍과 변화, 사회적 지원, 동기. 노력. 헌신,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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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말하고 있는 기술 중독이란 컴퓨터를 기반으로하는 기술을 말하고 있다. 물론 기술이란 상당히 다양하며 포괄적이지만 저자 켄타로 토야마 의 전공은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자이기에 우리 사회와 밀접한 컴퓨터 기술을 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컴퓨터 기술의 바탕에는 교육이 있다. 전세계 많은 국가들이 컴퓨터를 도입하고 있지만 실제 사용하고 잇는 국가들이 한정되어 있는 이유는 그 나가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인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도와 아프리카나 동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는 의식주에 대한 문제,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은 컴퓨터가 들어오기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것은 IT 기반의 다국적 기업들에게는 잠재성이 큰 사업이며, 아프리카에 인터넷을 도입하려고 하는 구글의 현재 모습에서 그들은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으며 현재진행형이다. 이렇게 아프리카에 네트워크와 컴퓨터가 보급되기 위해서 시급한 것은 바로 그 나라의 전염병과 건강 문제 해결이었다. 우리가 쓰는 백신은 저온으로 신속하게 아픈 사람에게 배달이 되어야 하지만 아프리카는 도로 교통과 뜨거운 기온, 가난함 이 세가지 문제로 인하여 그들은 현재 전염병에 자유롭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도로망 확충과 교육에 있었다. 이렇게 우리가 쓰로 있는 인터넷과 블루투스 가반의 모바일 사용. 이 두가지 기술은 우리 삶에 새로운 혁신을 불러왔으며 우리 삶이 달라진 이유는 인터넷 그 자체가 아니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욕망이 인터넷으로 인하여 촉발되었던 것이며, 인터넷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혁신과 혁명의 씨앗을 뿌려주었던 인터넷에도 단점은 분명이 있다. 처음 인터넷이 도입되었을땐 그것을 사용하고 즐기는 수준이었더면 지금의 현 상황은 사회갈등의 씨앗으로 변질되었다. 정보를 공유하고 주고 받는 범주를 넘어서 법을 악용하고 감시망을 피하는 법을 공유하기 시작하였으며,우리 삶의 바탕이 되고 우리를 통제하는 법과 제도는 제자리 걸음에 있다. 여기에 서로의 이해 관계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책에는 우리 삶과 밀접한 기술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게 만들어주었다. 지금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서 먼거리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시간과 청각에 의존하고 있다..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기술은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사람이 하는 일을 대신하는 산업이 발달할 것이며 후각적인 정보를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이동할 수 있는 기술들이 생겨날 거라는 걸 예측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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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인 CES의 쇼케이스를 보고 있으면 우리 사회의 기술이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지 새삼 깜짝 놀라게 된다. 2016 올해의 키워드만 해도 3D 프린팅, 로봇, 스마트카, 사물인터넷, HDR 등 각 분야에서 저마다의 첨단 기술을 뽐내기 바쁘다. 그 중에서도 인공지능 기술은 여러 분야와 접목되어 사람이 없어도, 굳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도 활발히 이루어지는 세상을 구축하며 관심이 뜨겁다. 이렇듯 첨단 기술은 새로운 시대의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과 함께 IT 강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또한 창조경제를 활성화 하겠다는 명목으로 정보기술 분야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IT를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창조경제혁신센터도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얼마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기술로 환경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접했다. 최근 미세먼지는 엄청난 오염도 수치를 기록하며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미세먼지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실시하며 새로운 성장기회로 인식해 관련 사업을 육성해야 하다는 것이 그의 뜻이다. 산업 사회에서 여러 기술을 개발한답시고 불거진 환경문제를 아이러니하게도 기술로 완화시킨다? 그 결과가 궁금해지는 발언이었다. 나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가는 기술과 함께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에 기술 만능주의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 기술혁신, 이 상태로 그냥 받아들여도 안전한 것일까? 우리는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나 "인간적인" 부분에서는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기계의 성과에 밀려 인간 노동력의 가치는 떨어지고 결국엔 실업자의 증가를 불러오는 사태를 꼽을 수 있다. 또한 기술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계층 문제와 이에 따른 또 다른 양극화 문제가 떠오를 수도 있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기술만능주의의 디스토피아를 우려하고 있다. 이 책 또한 '첨단기술은 인류를 구원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기술중독에 빠진 현시대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책에서는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기술이상주의, 기술회의주의, 맥락주의, 사회결정주의와 같이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컴퓨터 공학자의 길을 걷는 저자 또한 처음에는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입장의 기술이상주의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인도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쌓은 경험이 그에게 다른 시각을 가져다 주었다. 기술적으로 가장 발단한 나라임에도 미국의 빈곤율은 줄어들지 않았고, 더욱이 빈곤의 끝을 달리고 있는 인도에서 기술이란 무용지물로 그 무엇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기술이 빈곤문제 또한 해결할 수 있다는 저자의 기대는 산산히 부서져버린 셈이다. 이렇게 인도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얻은 교훈과 함께 기술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증폭의 원리'와 '패키지 개입'을 통해 풍요로운 기술혁신 시대에도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다."라는 핵심 메시지를 전달한다. 먼저 증폭의 원리란 기술을 적용해야 하는 곳 혹은 대상에 따라 기술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곳에서는 효율성이 배가 되지만 반대로 이를 갖추지 못한 곳에서는 비효율성이 더 크게 나타난다는 원리이다. 다시 말해 기술은 성향 그 자체를 바꾸는 역할은 하지 못하며 단지 그 성향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육 혁명을 일으키고자 가난한 지역 학교에 컴퓨터나 노트북을 나눠주었다. 그러나 낙후한 지역일수록 제대로 된 관리와 시스템 구축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학습을 통한 생산적 욕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락을 통해 즐기고자 하는 자연적인 욕구가 더 크기 때문에 이를 게임하는데만 이용하게 되었고,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기술관련 수업 계획서 작성, 사용 매뉴얼 숙지 등 업무만 증가시킬 뿐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다음으로 패키지 개입은 사회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기술, 사상, 정책 등을 하나로 묶어 적용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대표적인 예로 소액대출 서비스를 언급했다. 빈곤 완화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간 아이디어였지만 실행 주체와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소액 대출 제도의 창시자인 방글라데시의 마함무드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을 세우고 이를 통해 소비와 사회의 선순환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반면 멕시코의 은행은 성장과 수익을 우선시하면서 원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실패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우리 삶을 혁신적으로 바꿔놓은 디지털 기술임에도 깊게 뿌리내린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실 기술이 가져다 주는 혜택은 실제 내 경험과 주변의 발전으로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지만 이면의 사각지대에서 보여지는 기술의 모습을 바로보기는 쉽지 않은데 그런 점에서 굉장히 인상적이고 유익한 책이었다. 결론적으로 그의 질문은 수사적 질문이 아니었던가. 기술은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 무작정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책이다. 혁신적인 변화를 위한 기술 발달이 아닌 인간존중을 바탕으로 올바른 의도와 통제가 뒷받침 된 기술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다. 점차 인간을 뛰어넘는 기술들이 만들어지고 있느데 어쩌면 내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런 발전들이 반갑기보단 오히려 버겁고 겁이난다. 첨단 기술 개발이 끊이지 않고, 기술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기술만능주의 시대에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은 결코 장밋빛 미래만을 선사하진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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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인터넷을 보면 1~20년 전에 만든 자료인데 2000년대는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 있을 거라는 내용을 보여주는 만화들이 있습니다. 커다란 브라운관 TV 가 아니라 얇는 화면으로 TV 를 보고, 걸어다니면서 조그만 기계로 전화를 하거나 자료를 찾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로 한시간이면 충분하며 드디어 자동차들도 하늘을 날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이미 몇 년 전에 실현되어 우리 삶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워 진것도 있고 지금도 여전히 꿈꾸는 듯한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만큼 몇 년 후에도 꿈꾸는 소리라고 할지는 알 수 없네요. 이렇게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의 삶도 낙관합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정말 좋은 것인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기술 중독 사회'를 지은 저자도 이런 사람들 중의 한 명으로, 기술의 발달에 따른 우리 사회의 변화 및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최고의 IT 회사 중 하나인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오래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기술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고 기술의 발전을 빠르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인도로 자리를 옮기면서 기술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네요. 인도는 IT 강국으로 매년 수많은 젊은이들이 미국의 대학에 진학하거나 실리콘밸리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그보다 훨씬 더많은 사람들은 최저 생계비보다 적은 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한살씩 나이를 먹으면서 사라집니다. 이들이 더 나은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PC를 보급해서 교육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성과는 없습니다. 공공장소에 PC를 갖다놓자 아이들이 스스로 컴퓨터 사용법을 익혀서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강연도 한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지만 이제는 없어진지 오래고 실제로는 그만큼 효과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네요.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정보 교육을 시키고자 PC 나 태블릿 보급 등에 힘썼는데 이를 가진 집단과 그렇지 않는 집단간의 성취도 차이가 거의 없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들은 언제든지 찾을 수 있고, 학습에 대한 소프트웨어도 많아서 개인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실제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런 기술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가 풍부하지만 빈부 격차가 심한데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범죄 조직에 노출되어 범죄를 반복적으로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올바로 자랄 수 있도록 클래시컬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세계의 유명 오케스트라에 많은 베네수엘라 출신들이 포진하고 있네요. 지휘자로서 서른 이전의 어린 나이에 LA의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두다멜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더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네요. 기술을 알고 배우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기술 자체의 중요성에 매몰되어 이 기술로 인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해나갈 것인지를 잊으면 안 되겠네요.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이 기술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 것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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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중독 사회>는 책 제목으로만 보면 휴대폰 중독이나 인터넷 중독 같은 내용이 실려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만, 책 내용 자체는 그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인류의 지속적인 성장이나 발전을 가로 막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일반적으로는 기술발전을 들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 책입니다. 따라서 책 제목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기술에 대한 환상> 정도가 맞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게된 가장 큰 이유가 빌 게이츠의 추천였는데, 어떻게 보면 빌 게이트같은 인류 전체를 위한 오피니언 리더들을 비롯한 정치, 사회적 지도자들은 똑 읽어봐야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술개발이 인류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공학분야,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 많이 이야기 됩니다.(인류의 거의 문제는 에너지 문제로 바꿔서 생각할 수 있고, 따라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있다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과학 기술은 이러한 문제(인류의 불평등)를 해결한다기보다는 증폭시킨다고 지적합니다.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많은 문제점을 생각해본다면 무척 수긍이 가는 내용입니다. 기술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기술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성장이 우선되어야 다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성장우선주의라는 보수주의적 사고방식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어, 그 한계가 느껴집니다. 결국 저자는 기술보다는 이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자세나 태도가 인류의 성장과 불평등 해소 등의 해결에서 훨씬 중요한 것으로 이야기하는데, 이를 위한 방법으로 다소 애매한 개념인 '내면적 성장'을 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서로를 돕고 위하는 이타주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가져야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저자는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이타주의를 끌어내기위한 요소를 분석하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특히, 사회변화를 고장난 기계를 고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오케스트라를 육성하는 것으로 생각하자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즉, 결코 인류의 문제는 일부의 리더에 의해 단시간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우리 모두가 문제 해결에 동참하려고 노력해야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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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과학기술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일종의 메시아적인 관점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제도를 만들고, 무언가를 오랜 기간을 걸쳐 펴뜨리기 보다는 이 편이 더 빠르고 쉬워서 그리고 보면 한때 스마트폰에선 기술우위냐 콘텐츠 우위냐는 논쟁을 단순화시켜 대립각을 세웠던 웃지못할 시간도 있었다. 인문학이 필요하다며 각종 형태의 토크쇼나 강연회가 난무하게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저자의 다양한 경험과 사례가 나오는데 1/3 부분에서 스스로 덮었다. 반복되기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탓하면 덮었다.
하지만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언뜻 받아들일만 했다(?) 기술 자체가 좋고 나쁨이 아니라, 세상을 한번에 바꿜 수 있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꿈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것을 시스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윤리, 합리적인 올바른 사람다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목적과 수단, 목표와 방법, 앞뒤가 섞인 세상이지만 지켜야 할 것과 보여주기식의 행동은 가급적이면 줄이자.
빈국으로 자원봉사를 가면서 잔뜩 짐을 싣고가선 그들에게 나눠주고 간단하고도 단기적(?) 육체노동을 하고선 힐링을 외치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봉사인지를 언급한 기사가 문뜩 생각난다.
6살난 딸애가 "커서 뭐가 되고 싶나?"고 물어본다. "나두 더 클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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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중독 사회 가볍게 생각했던 이 책은 표지의 가장 위에 빌게이츠의 추천사 글을 보고 놀라웠다. '인간 행동에 대한 깊은 이해를 촉구하는 책이다' 라고 한것이다 이 책을 지칭하면서 한마디 하였다는 것이 진짜 빌 게이츠가 한말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지은이의 이력을 보면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 졌다. 지은이는 정말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오랜시간동안 일을 했으면 공학도로써 정말 공학에 관심이 많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 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인정한 지은이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막연하지 않았고 지극히 현실적이었으며 객관적인 사실에 가깝다고 느꼈다. 특히나 기술 사회가 현 시대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많이 알수가 있었다. 특히나 여기서 말하는 기술은 아무래도 컴퓨터 기술에 가까웠다. 지은이가 컴퓨터 관련 경험의 바탕에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이 든다. 어쨌든 디지털 기술이 등장함에 따라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다양한 문제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격차가 어떤 격차의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증상이기 때문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미 있던 격차는 기술 때문에 더 벌어지고 있다면서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의 내용은 내가 읽기에는 다소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앞으로 이런 현상으로 미래를 살아간다면 기술로써 맞닥드리는 기술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은이는 아주 현실적으로 꼬집고 있다고 느꼈으며 미래를 위해 어떻게 우리가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수 있었다. 결국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고 마무리 하고 있었다. 맞는거 같다. 기술에만 의존하여 기술 중독 사회로 나아가는 것보다는 결국에는 인간 존중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지은이는 말하고 싶었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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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엔지니어로 몸동작을 카메라가 인식하여 추적하여 조이스틱
없이도 게임 할 수 있는 키넥트 시스템을 구현한 사람이다. 기술로 먹고 사는 저자는 기술의 가치를 의심해
본적이 없으며 기술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길 원해 개발도상국의 빈곤계층을 돕기 위한 기술 개발을 주도하며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연구하였고
그 결과를 이 책으로 밝히고 있다.
1부에선 첨단기술이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인류에게 번영을 가져왔는지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실험들을 결과를 실제로 확인하여
충격적인 진실을 밝히고 2부에선 기술은 인간의 의도에 따라 나쁘게도 좋게도 증폭시킬 수는 있으나 기술
그 자체는 아니며 기술만 강조하면 놓칠 수 있는 기술이면의 인간의 문제를 바라보게 한다.
페이스북으로 아랍의 봄을 일으켜 독재자를 끌어내리는데 성공한 이집트와 튀니지의
성공사례와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실패사례, 디지털 재고 관리로 비용 절감에 성공한 월마트와 달리
디지털 도구로 비용이 증가한 미국의 의료보험사례, 디지털을 감시의 도구로 언론과 정보를 차단하는 독재정부, 기술은 디지털 격차를 낳으며 빈부의 격차를 더 심화시킨다.
기술은 성향에 따라 더 좋게 혹은 더 나쁘게 증폭시켜 영향을 준다. 그렇기에 저자는 성공한 기술에 대해서만 주목하면 전체 그림을 바라볼 수 없음을 알려준다.
빈곤계층의 다양한 프로그램의 성공의 유무는 기술이 아님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기술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에 비판한 책은 많은데 이 책이 놀라운 점은 디지털, 첨단기술뿐 아니라 패키지 개입-사회문제 처리를 위해 기술, 사상, 정책 등에 계속 적용된 하나의 묶인 해법-도 기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빈곤문제, 의료문제, 교육문제를 성공한 사례를 빌려와 이식, 적용하면 개선될 것이란 근거
없는 낙관을 말이다.
학교 공교육의 정상화와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북유럽의 학습법, 교육법들을 가져왔지만 우리나라의 교육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시골의
폐교직전의 학교를 되살리고 정상화시킨 남한산성초등학교의 사례로 도입한 혁신학교 모델의 성과는 남한산성초등학교의 성공사례를 뛰어넘지 못한다. 기술과 패키지개입에서 놓치는 부분은 ‘인간’이다. 인간의 선한 의지와 안목 통찰력인데 우리는 법과 제도, 기술, 사상만 있으면 문제를 개선하고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어 왔다.
계획하고 실행하는 인간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기술과 패키지 개입만으론 극단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술이나 패키지 개입이 성공하기 위해선 무차별 확산이 아닌 리더, 실행자, 수혜자의 역량에 달려있음을 가나의 아세시학교에서 학생을 지도했던 사례와 아셰시대학교 창립자 아우아, 카스트의 하위 계급인 타라 스리니바사가 기부학교인 샨티 바반에서 공부하여 가난을 벗어나 자기 실현한 성공사례, 인도의 내적 성장은 인도의 IIT 같은 교육기관으로 바라보고 있다. 기술이나 정책보다는 사람을 키우는 것, 인간의
내적 성장인 의도, 안목, 통찰력으로 바라본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기술도 정책도 아닌 사람임을-내적으로 성장한- 강조하여 우리가 소홀하게 여기고 간과하고 있는 기본을
다양한 각도와 접근으로 통찰하여 설득하고 있다.
감상
선한 의도와 실행력을 갖고 있는 영웅들의 성공사례를 제공하는데 인간의 내적 성장은
그 영향력이 놀라움에도 불구하고 실현의 방법이 남아있으며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극빈과 자기 계급을
벗어나 유리천장을 뚫고 자수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공 이후 타인에게 이롭게 했을 때의 그 놀라운 영향력은 분명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극한의 어려움을 뚫고 초인간적인 의지로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들은 어느 시대에도 있어 왔다. 혁신가나 영웅을 제외하고 개인을 둘러싼 사회와 환경을 뛰어넘기 쉽지 않다.
사회의 변화는 개인, 기업, 사회의 내면적 성장으로 가능하다는 해법을 바라본 저자가 인재들이 많은 미국에서 교편을 잡고 내면적 성장을 위해
명상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저자처럼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체에서 최첨단의 기술을 연구하면서 개발도상국의 빈곤계층의
빈곤문제를 도운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런 경험을 살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전수한다면 기술과 이론 중심의
맹목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첨단기술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고민하는 인재들이 배출될 것이다.
벽 구멍 프로젝트로 물리적인 환경만 제공하면 교사 없이도 아이들 스스로 배운다는
엉터리 아동교육서가 해법인양 범람하고 사회적 기업을 무조건 찬양하거나 인도의 한 지역에서 성공한 마이크로 크레딧이 빈곤해결의 궁극의 해법인듯 비판이나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자세도 위험함을 지적한다.
공무원과 정치가들의 정책입안이나 법제정의 의도들을 간파하는 힘도 필요함을 알려준다.
비판점은 백신기술 그 자체를 비판없이 초긍정으로 받아들이며 그 부작용이나 위험성은
고려하지 않는 점이다. 빌게이츠가 백신에도 투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선 백신을 긍정하는 단어가
꽤 많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불편하다. 빈곤계층에게 더 필요한
건 백신이 아니라 건강한 음식과 위생적인 환경이다.
기술이 이루어 낼 사회 변화에 대한 그릇되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믿음에 비판을
가하고 사람의 생각과 의도가 반영된 실행이 사회 변화를 가져왔다는 놀라운 통찰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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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생들은 노트를 사용 않는다고 한다. 나 때만 해도 직접 연필이나 펜을 이용해 수업 내용을 필기했는데, 지금은 개개인이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지라 그럴 필요가 없단다. 일찌감치부터 컴퓨터를 사용해온 세대임으로 그 편이 익숙할 것이다. 게다가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은 얼마나 멋진지 모른다. 디지털 치매라 하여 과도한 전자기기의 사용이 오히려 두뇌에는 해롭다는 연구결과도 있긴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뒤흔든 문물을 애써 외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이 과연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많은 문명의 이기가 우리의 일상에 도입됐다. 분명 예전에 비하면 우리는 기술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그로 인해 이룬 생산성 향상도 무시못한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예측한 것처럼 미래가 마냥 핑크빛인 건 아니다. 수많은 낙관에도 불구하고 기술 자체는 우리가 기대하는 효과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개발도상국의 빈곤 계층을 돕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 활동에 참여해온 저자가 제시한 사례는 기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오래 전 들었던, 기술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는 말이 살짝 떠올랐다. 사실 이와 같은 관점 역시도 위험하기는 하다. 원자 폭탄이나 유전자 변형 기술 등을 단지 기술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존재하겠는가. 아니, 이는 너무 극단에 속할 수도 있으므로 보다 보편적인 문제로 되돌아가보도록 하자.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는 컴퓨터 사용이 드물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교사의 확보조차도 요원한 이 나라들에 컴퓨터를 도입한다면 한껏 나은 교육이 이루어지리라는 점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바다. 하지만 저자는 컴퓨터의 도입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못했음을 말했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컴퓨터를 오로지 학습에만 사용하는 걸 용납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하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를 공부와는 상관없는 동영상을 시청한다거나 게임을 즐기는 등에 활용했다. 의도한 대로 컴퓨터를 쓴 아이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이들 국가는 컴퓨터만 부족한 게 아니었다. 전력 상황도 아주 안 좋아서 수시로 전기가 끊겼다. 그럴 경우 컴퓨터는 무용지물로 변신했다. 발생한 에러를 손보기 위해 교사는 수시로 수업을 멈추어야만 했고, 그 때마다 교실은 산만한 분위기로 뒤덮였다. 차라리 칠판에 백묵으로 수업을 하는 편이 낫다고, 저자는 감히 판단했다. 내가 보아도 꼭 컴퓨터에 의존해 수업을 진행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기술이라 하는 것은 어느 하나만 발달한다고 하여 도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나를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뒷받침이 따라야 했는데, 어느 하나가 부족한 국가의 경우 안타깝게도 결핍은 모든 영역에 존재했다. 이는 기술 아닌 사람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였다. 기술을 이해하는 능력은 글자를 읽고 쓸 줄 모르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좀 더 뛰어났다. 기본을 등한시 한 상태에서 응용을 요구하는 건 어리석은 태도인 셈이다. 고로 오로지 기술만으로 전 세계의 빈곤을 퇴치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생각을 다시 해야 한다. 기술 습득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본 교육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들의 노력은 오히려 또 다른 불평등을 가져다줄 따름이다. 이는 오래 전 접한 매슬로우의 이론을 연상시켰다.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이에게 자아실현을 언급하는 건 무모한 태도다. 물론 극소수의 사람은 매슬로우의 이론을 비웃듯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교육의 기회를 부여잡기도 하였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노숙을 하고, 하루에 한 끼조차도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육을 위해 매일 수 킬로미터를 걷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먹고 사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육을 실시한다면 기술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미래를 꿈 꿀 수 있도록 돕는 인문학을 택하는 것이 옳다. 더딘 것 같지만 이미 사회는 변화를 경험 중이다. 인도가, 파키스탄이, 몇몇 아프리카 국가에서, 다시는 모국을 찾지 않겠다며 직장을 따라 미국 등지로 떠났던 이들이 선한 뜻을 실천해 보겠다며 되돌아오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들은 높은 임금과 직장이 제공하는 다양한 복지 혜택을 포기했다. 오로지 자신과 제 가족에게만 집중했던 지난날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성장을 묵묵히 지켜봐준, 그러나 여전히 열악함과 싸우고 있는 그 곳에 새로운 싹을 틔워보겠다는 꿈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에 이와 같은 변화를 일으킨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적어도 기술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앞선 많은 욕구들이 해소됐을 때 모두가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하진 않는다. 일부는 보다 높은 자리, 보다 거대한 부를 좇는다. 기술 아닌 사람, 기술보다 더 높은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교육. 그와 같은 시선이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일 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