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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꽤 큰 서점 매대에서 저렴하게 처분하고 있는 책을 구입했다. "도적 떼"를 읽으면서 역시 열린책들 편집이다 생각했기 때문에, 이 책도 별다른 고민 없이 집어왔다. 처분하는 책이라 제 값 주고 사기엔 외관이 조금 낡았지만 원체 Mr. know 세계문학 시리즈는 작은 크기, 깔끔한 표지를 갖추고 있기에 괜찮았다.
논문 압박 때문에 이 책을 사 두고서도 소설이라 선뜻 읽기가 힘들었는데, 웃으면서 재미있게 읽었다는 발표맨님 리뷰를 읽고 꺼내 들었다. 단편선집이기 때문에 복잡한 감정이 공존한다는 발표맨님의 말이 맞았다. 초반에는 우리 근대 소설 "운수 좋은 날"처럼 표면적으로는 유머러스한데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 삶을 너무 리얼하게 묘사했기에 씁쓸하기까지 한 엽편소설이 10편 수록되어 있다. 체호프를 뛰어넘는 단편소설가가 없다더니, 서너 페이지라는 짧은 분량에 압축해 놓은 기승전결이 놀라웠다. 결말을 향해 꼭 해야할 말만 하며 집중해서 달려가는 것이다. 정말 매력적이어서 책장 넘어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특히 "쉿!"의 남자주인공에게 공감 200%!!
책의 나머지 절반은 평범한 단편소설 분량의 이야기가 몇 편 수록되어 있다. 러시아어 고유명사가 익숙하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음울하고 어두컴컴한 분위기여서 앞의 엽편소설보다는 읽는데 시간이 걸렸다. 근대 러시아의 가난과 민중의 고통이 전해져 왔다. 특히 과학주의와 초현실 사이에서 지식인 주인공이 겪는, 니체 느낌이 나는 고뇌를 보며 주인공에게 체호프 자신을 투사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검은 수사" 같은 소설에서 주인공이 환각 속에서 검은 수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환희에 빠지고 자신을 마치 이 시대의 초인처럼 느끼던 것이 인상 깊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속 사랑은 체호프나 체호프 주변 사람의 이야기일까?? 소설을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작가에 대해 궁금해지게 된다. 연보를 보니 의사이기도 했고 결핵을 앓았으며, 차이코프스키와 친분이 있었구나. 어쩐지 인간 마음과 몸을 세밀하게 '관찰'해서 묘사하는 기술이 예사롭지 않았다.
문학사조를 잘은 모르지만 1860-1904년을 살았던 체호프는 낭만주의적이면서도 리얼리즘적인 느낌이 들고, 미시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몇 사람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대화와 상황들을 보면 연극적인 느낌도 든다. 체호프 자체가 희곡 작가였으니 당연한지도, 그렇다면 이 단편들도 극본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쓰여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현대에 맞게 약간 변용되어 지금도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 속에 들어 있기에 지금도 체호프의 단편들이 읽히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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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들을 모았다. 따라서 어디서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단편소설이라고 하기에도 분량이 아주 적은 '꽁트' 정도의 글들도 많아서 전혀 부담이 없다.
방금 전에 읽은 글은... 사랑의 설레임을 너무 잘 드러내고 있다.
사랑이 그녀를 어떻게 용감하게 만들었는지 같이 읽어보자.
「타고 내려갑시다. 나제지다 뻬뜨로브나!」 내가 간청했다. 「딱 한 번만! 절대로 다치는 일 없이 안전할 겁니다, 내가 보장하지요.」
남자는 여자에게 썰매를 타고 내려가자고 한다. 그러나 여자는 썰매가 너무 무섭다.
얼어붙은 언덕 끝까지 펼쳐지는 공간 전체가 그녀에게는 잴 수 없이 깊고 무서운 심연처럼 보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썰매를 타자는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지고 숨이 멎을 듯한데, 어떻게 저 심연 속으로 진짜 뛰어든단 말인가!
여자는 정신이 나가 죽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남자는 막무가내로 부탁한다.
나젠까가 결국은 진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그녀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양보한다는 것을 알아챈다. 창백해져 덜덜 떠는 나젠까를 썰매에 앉히고, 한 팔로 안고서 함께 심연으로 뛰어든다.
사랑은 여자를 용감하게 만듭니다. 결국 여자는 남자와 함께 썰매를 타기로 한다. 그나저나 왜 남자는 굳이 겁많은 여자에게 썰매를 타자고 한 걸까? 참 악취미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쟈!」 내가 속삭이듯 말했다.
오, 이런 사랑 고백 퍽 낭만적이다. 물론 짓궂기는 하지만, 전형적인 프러포즈에 비해 얼마나 색다르고 멋진가!
시간이 좀 지나 정신을 차리자, 궁금한 표정으로 나의 눈을 바라본다. 그 네 마디의 말을 이 사람이 했을까, 아니면 세찬 바람 소리 때문에 그렇게 들렸다고 착각한 것일까? 하지만 나는 나젠까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장갑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이 남자, 완전 선수다. 여자가 뭘 궁금해하는지 알면서도 천연덕스럽게 모르는 척 합니다. 능청이 수준급이다. 여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론 "야, 네가 그렇게 말했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이야기가 재미가 없어진다.
그녀가 내 팔을 잡았고, 우리는 한동안 언덕 근처를 걸었다. 수수께끼같은 일 때문에 나젠까의 마음이 편치 않아 보였다. 그 말을 한 것인가, 안 한 것인가? 그런가, 아닌가? 그런가, 아닌가? 이것은 자존심과 명예와 인생과 행복에 관한 문제이다. 세상에서 아주 중요하고,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나젠까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초조하고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며, 엉뚱한 말을 늫어놓으며, 내가 무슨 말인가 하기를 기다린다. 이 귀여운 얼굴에, 얼마나 재미있는 표정인가? 나는 나젠까가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뭔가를 말해야겠고, 뭔가를 물어야겠는데,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찜찜하고 두렵지만, 뛸 듯이 기쁘기도 하다...... . 「아세요?」 나젠까가 나와 눈을 맞추지 않고 말했다. 「네?」 내가 물었다. 「저어...... 한 번 더 타시겠어요?」
오, 사랑스런 나쟈. 남자의 눈에 여자는 얼마나 사랑스럽게 보였을까? 「저어... 한 번 더 타시겠어요?」라니... 사랑은 여자를 용감하게 만든다.
남자는 다시 속삭이듯 말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젠까!」
썰매 타기를 두려워하던 나쟈는 집에 돌아가자는 남자의 제안에 이렇게 말한다.
「아니, 저는...... 저는 썰매 타는 게 좋아요.」 나젠까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다시 한 번 타시겠어요?」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하는 여자라니... 너무 사랑스러울 것 같다. 읽는 내가 다 흐뭇하다. 참 좋을 때다. 얼마나 설렐까? 심장이 두근두근 거릴 거다. 아, 정말 좋을 때다.
다음 날에도 이 두 남녀는 썰매를 타러 간다.
그러나 곧 3월이 왔다.
햇빛이 부드러워졌다. 얼어붙어 반짝거리던 언덕도 검게 변하더니 마침내 녹기 시작했다. 더는 썰매를 탈 수 없게 된 것이다.
불쌍한 나쟈! 이젠 어떡하면 좋지? 더군다나 남자는 이제 먼 도시로 떠나야 한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궁금하신 분은 책을 읽어보시라!
이 작품의 제목은 '농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