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곡의 연주를 많이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나마 직접 갖고 있는 것은 EMI에서 나온 샹송 프랑소와의 연주로, 좀 자의적인 템포와 때때로 늘어지는 감이 있어 제대로 듣지 못했지요. 그 외에는 그저 유명한 op.9-2 같은 연주들 뿐, 그러나 프랑소와의 연주를 들으면서 분명히 여기에 뭔가 있다고 생각했던 바 여기저기를 뒤지고 수소문해 이 음반을 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목록에 집어넣고 재수입되기까지 몇 달을 기다리면서, 과연 그럴 가치가 있을까, 자문도 해 보면서요...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음반이 각인되는 경우는 대개 크나큰 기대와, 그 기대를 뛰어넘는 만족 및 감동이라는 차례로 이루어지지 않나 생각됩니다 (예외도 있습니다만). 모라벡의 야상곡은 거기에다 수 개월동안 애간장을 태웠다는 죄과 (괘씸죄 --;) 가 있어 더욱 '벼르고' 듣게 되었죠. 그러나, 이렇게 잔뜩 벼르고 듣는 건 이 음반을 듣는 데 있어 잘못된, 더 정확히는 어리석은 접근이었습니다. 아무리 이 음반을 폄하하려 하더라도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아름다운 터치, 여차하면 부서져버릴 것 같은 섬세하고 투명한 터치는 오점을 찾아내려는 마음을 단 몇 분만에 흔들어 버립니다. 거기에 분명히 스탠더드가 아닌 템포 - 전개부에서 좀 빠르다 싶을 정도로 달려가던 리듬이 절정에 다다라 살짝 멈추면서 안겨주는 정적의 숨막힘, 그야말로 야상곡이 갖고 있는 꿈결같은 로맨티시즘이 '꿈처럼' 실현된 연주였습니다. 그렇다고 여느 로맨틱한 연주가 그렇듯 달콤한 사탕처럼 일찍 질려버리기에는, 물 흘러가듯 쏟아지면서도 흐려지지 않는 그 또렷한 타건과, 극적인 템포를 취했음에도 무리가 없는 완급조절이 야상곡의 깊이 (존 필드의 녹턴과 쇼팽의 그것이 차이가 나는 부분,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 바로 여기겠죠) 를 충분히 껴안아주고 있습니다. 모라벡의 야상곡 연주는 곡의 내재된 깊이와 표면적인 아름다움 모두를 어떻게 획득하는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많은 분들이 추천했던 게 허언은 아니었구나 하고, 몇 달이고 이 음반을 기다린 보람이 뿌듯이 다가오더군요. 비록 리마스터링을 했음에도 녹음이 아주 좋지는 못해서 이슬같은 터치가 약간 흐려진 감이 있고(별 1개 깎음), 저가음반인 관계로 내지가 부실한 면은 있습니다만(별 1개 깎음) 이 음반의 놀라움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어느 평론가가 "모라벡은 이 녹턴 음반 만으로도 대가의 대열에 낄 수 있다" 고 했다는 말에 저는 동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음반을 들었다기엔 한참 모자라는 감이 있고, 그 내공도 부족하지만 모라벡의 야상곡은 제가 여지껏 들어 본 피아노 연주 중 가장 투명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가장 쇼팽스러운 연주를 들려 주었습니다. 이것은 호로비츠나 피레스 등이 보여주는 영롱함과는 또다른 차원, 그야말로 쇼팽답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지요. 어딘가 대책없이 센티멘털하고 자기파괴적인 면을 갖고 있는 쇼팽의 로맨티시즘은 위에 언급한 피아니스트들의 건강한 영롱함으로는 표현에 한계가 있습니다. 때로 무너질 것 같은 템포가 역경을 시로 뿜어내는 청년처럼 되살아나고, 음이 사라져버릴 듯한 고음부의 피아니시모가 그토록 길고 아름다운 울림을 갖고 있는 모라벡의 연주는 낭만과 절망이 동전의 양면이었던 쇼팽을 멋지게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여유와 관조의 쇼팽이 루빈스타인이라면, 청년 쇼팽의 비애는 모라벡이라고나 할까요.. 이 음반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야상곡에 관심이 있는 분이시라면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몇 달이고 기다릴 가치가 충분히 있는, 컬렉션에서 절대 잊혀지지 않을 명 연주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에, 진짜래니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