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진주 귀고리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의 예고편이다. 어찌된 일인지 Girl with a Pearl Earring이라는 나레이션이 깔리면서 스칼렛 요한센의 얼굴이 베르메르의 그림으로 바뀌어가는 마지막은 잘려 버렸지만. 그래도 예고편을 보니 (사실 그 동안은 일부러 기대하지 않으려고 애 많이 썼지만) 바램대로 베르메르의 회화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아름다운 영화가 되어줄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감독인 피터 웨버는 일전에 "이 소설은 뇌가 터져나오도록 섹스가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라는 인터뷰를 해주어서 나를 조금 안심시켜 준 적이 있는데, 그가 작품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그거야말로 콜린 퍼스의 진정한 전공분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얼음처럼 차가와 보여도 눈빛으로는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달아오르는 사내의 리비도를 겁나게 근사하게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이 우아한 영국 배우가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배역이니까. 이 영화를 기대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원작이 꾸밈없이 서사와 인물의 힘으로 흡인력을 발휘하는 엄청난 페이지 터너이고 또 상당히 좋은 소설이긴 해도 결국은 어쩐지 문예 창작 강의를 열심히 들은 소녀 취향의 신진작가가 정석대로 공들여 쓴 습작 같은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르메르와 그리트, 그리고 피터의 삼각관계의 묘사들은 위험스러울 정도로 통속소설의 경계에 닿아 있고, 그 감수성 자체는 할리퀸 로맨스의 감수성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관계와 욕망을 묘사하는 언어와 플롯 모두가 살짝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통속적이고 진부하다. 그러나, 이런 진부함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극적으로 표현될 때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 드라마틱한 플롯은 손상되지 않을 테고, 두 사람의 관계를 묘사하는 통속성은 영화라는 매체로 옮겨지면 오히려 정서적인 효과를 강화하는 강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더구나 베르메르와 그리트가 공유하는 시각적 이해, 세상에 대한 예술적 시선, 미학적 공감대, 이 덕분에 이 이야기는 십대 소녀의 성적 각성이라는 주제에서 근사하게 훌쩍 벗어나는데, 그렇다면 영화로 옮겨졌을 때 훨씬 더 고급스러운 '예술'의 오라를 덧입을 가능성이 생긴다. 난 이거야말로 '촬영'의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비둘기의 날개 Wings of the Dove>를 찍었던 에두아르도 세라가 맡아주어서 안심했다. 그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베르메르의 회화가 살아움직이는 듯한 세계를 눈앞에 창출해 준 모양이다. 어쨌든 이 책은 본질적으로 로맨스고 뒤틀리고 억눌린 욕망의 서사다. 듀나의 서평에 보면 이 책을 '학습만화'와 다르지 않다, 고 했는데 이것만큼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20세기적 상상력을 통해 과거를 복원하고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의 전기적 사실을 복원하는 게 이 책의 본질이라는 데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어느 누가 이 소설을 '사실'이라 믿을 것인가. 이 소설이 전하는 진실은 '고증'보다는 훨씬 더 복합적이고 서사적인 진실이다. 사실적 진실이 아니라 정서적 진실이 문제다. 소녀의 성장과 이루지 못한 사랑과 예술가의 생존조건, 그리고 예술가를 죽이고 아내를 하녀로 삼는 세상에 대한 삐딱한 시선. 이런 여러 주제들은 어쨌든 '사랑' 혹은 '욕망'의 정서 속에 녹아들어간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는 속 깊은 남자와, 예술과 시에 대한 선망을 품고 있으며 미와 시적 진실에 대한 선천적인 감각을 타고난 어느 소녀가 팽팽하게 이루어내는 긴장이야말로, 이 소설을 단순한 통속소설에서 한걸음 비껴나가게 해주는 근간이다. 소녀는 자신이 속한(혹은 속하고 싶어하는) 여러 상충되는 세상들 사이에서 심리적으로 갈갈이 찢기는데 바로 이 두 세계의 충돌이야말로 이 소설이 "훌륭할 때" 제대로 그려내는 부분. 프로테스탄트이면서도 카톨릭 구역에서 일을 해야만 하고, 하녀이면서도 자존심을 다칠 때는 주인의 딸에게 따귀를 때릴 수 있을 정도로 자중심이 강한 여자이고, 손톱에 피가 덕지덕지 묻은 정육점의 소년을 사랑해야 하지만 유화의 물감 용해제인 린씨드 오일의 향취를 풍기는 말없는 남자에게 무섭게 끌리는 모순. 이 두 세계의 소리없는 전쟁은 산문적이고 비시적(非詩的)인 세계의 압승으로 끝이 난다. 여기에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냉소가 있고, 난 바로 그 부분이 마음에 든다. 베르메르란 주인공은, 마흔 세살의 나이에 심장마비나 뇌일혈로 사망. 그러니까 소설의 설정상 그리트를 그릴 당시 서른 셋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생각보다 훨씬 더 젊은 사내였던 것. 읽고 나서 어쩐지 그가 장모인 마리아 틴즈와 아내 카타리나에게(열한명의 아이라니...그걸로만도 결국 그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 이 천박하고 굼띠고 둔하고 몸뚱이 밖에 없는 듯한 미련한 여인은 그 자체로 베르메르를 죽인 세상의 현신이다), 또 반 라위번같은 인간들에게, "살해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술가로서는 성격도 강렬하고 카리스마도 넘치지만(예컨대 화가로서의 그가 "그대로 멈춰"라든가 "입은 그냥 벌리고 있어"라고 이야기하면 아무도 NO라고 대답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사실은 그 어떤 상황도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없는, 현실적으로 극히 무기력한 인간인 것이다. 따라서 베르메르와 그리트의 관계 역시 의외로 단순하지 않다. 주종의 관계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선을 공유하는 영혼의 피붙이이고, 결과적으로 베르메르는 그리트의 불행에 기름을 붓는 가해자 역할을 하게 되지만, 결국 현실적이고 물욕, 육욕이 난무하는 무딘 세상과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같은 피해자이기도 하니까. 그리트가 진주귀고리를 파는 지독하게 현실적인 선택을 하면서 끝까지 "하녀 하나가 공짜로 생긴 셈"이라는 냉소를 견지하는 건, 그 산문적 세상의 승리에 던지는 마지막 저항. 그리고 아무튼, 통속이든 뭐든 항상 감싸고 다니던 머리를 풀어내린 그리트를 보고 "그리트, 네 머리카락.."이라고 베르메르가 말하는 순간의 에로티시즘은 정신적으로 순결을 잃는다는 게 얼마나 육체적으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짜릿한 순간이고, 감정이 시각적이고 극적인 상황으로 선명하게 전이된 이런 부분이야말로 책이 아니라 영화로 보면 더 한없이 근사해질 것만 같은 요소들. 더더구나 그 배우들이 스칼렛 요한센과 콜린 퍼스일 경우라면야! cf. LuNa님의 진주귀고리 소녀 Book Review by 문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