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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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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란 이런 것이다. '풍자냐 자살이냐'라고 외쳤던 시인 김지하는 자신의 지난 시절을 너무도 많이  잊고 사는 듯 해서 아쉬움이 남는다.그 아쉬움을 오랜만에 권정생 선생의 짧은 우화집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진정한 풍자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감탄하게 된다. 권정생 선생님의 생애를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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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란 이런 것이다.

'풍자냐 자살이냐'라고 외쳤던 시인 김지하는 자신의 지난 시절을 너무도 많이  잊고 사는 듯 해서 아쉬움이 남는다.그 아쉬움을 오랜만에 권정생 선생의 짧은 우화집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진정한 풍자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감탄하게 된다. 권정생 선생님의 생애를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종지기 아저씨는 바로 작가 자신임을 알 수 있다. 평생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다가신 선생님의 삶은 한 편의 동화와도 같다. 말년에 병든 몸으로 교회의 종지기로써 삶을 마감하신 선생님. 맑은 하늘아래에서 같이 일하고 똑같이 가난하게 사는 것이 참 된 삶이라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선생님의 진솔하고 유머러스한 글은 판화가 이철수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더욱 더 해학적으로 승화된다. 생쥐와의 만담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우화라고도 할 수 있고, 동화라고도 할 수 있다. 동화라는 쟝르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하지만, 책의 내용은 어떤 책보다도 날카롭고 , 진지하고, 감동적이다. 책이 출판된 시점이 1980년대 임을 가만하면 선생님은 아마도 이 작품을 목숨걸고 쓰지 않았을까 하는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도토리 예배당의 종지기 아저씨는 늙은 총각이다. 삐적 마르고, 병을 몸에 달고 살지만 누구하나 돌봐줄 사람이 없다. 그의 유일한 동무는 작은 생쥐뿐이다. 이 책의 시작은 아저씨의 유일한 동무인 생쥐의 꿈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그 꿈의 내용이 아주 기막히다. 바로 마흔이 넘도록 장가도 못가고 있는 아저씨가 장가를 가는 꿈을 꾼 것이다.  아픈 몸으로 평생을 혼자 살아간 선생님의 속내를 엿보는 듯하다. 짧은 이야기들은 어떤 것들은 하나의 주제로 끝나기도 하지만, 몇 편의 이야기들이 연작되기도 한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생쥐에게 항상 당하는 아저씨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자신이 망가지면서 남을 웃기는 슬랙스틱 코미디를 연상시키듯 작가는 자신을 비뚤어진 인간으로 묘사하여 생쥐에게 구박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의 이야기는 거침이 없다. 그의 비판 대상은 국내외 정치인을 비롯해 대한민국 기독교에 대한 거침없는 성토로 이어진다. 본인이 평생을 하나님과 함께한 종교인 이었기에 , 다른 종교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생쥐와 함께 하느님을 만나러 간 아저씨는 하늘나라를 지키고 있는 천사를 만나 하느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조른다. 그런데, 천사는 아저씨와 생쥐의 부탁에 난색을 표한다. 도대체 어떤 하느님을 만나게 해달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천사와의 실갱이 끝에 그들이 만난 하느님은 대한민국하고도 서울의 ㅇㅇ교회의 하느님이었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모습이 너무도 어색하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최첨단 유행의 고급스러움으로 치장을 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정 반대였기 때무이다. 제발좀 자기좀 그만 부르고, 괴롭히지 말라고 하소연을 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게 된다. 평생을 하느님에게 기도하는 일로 시작해서 기도하는 일로 하루를 마감했던 종지기 아저씨에게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하느님을 만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지옥을 보기 위해 다시 하늘나라로 간다. 그런데, 이번역시 하늘나라 어디에도 직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대신 천사가 그들에게 보여준 지옥의 모습은 놀라울 뿐이었다. 거대한 망원경으로 바라본 지옥의 모습은 다름아닌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작품이 출판될 시기를 고려했을 때 , 그 지옥의 모습은 워싱턴과 모스코바의 거대한 건물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참히 자행되는 수많은 전쟁들이었다. 지옥은 바로 우리들의 삶 그자체였다. 

 

생쥐와 함께 펼쳐지는 비난방송은 남,북의 현실을 놀라울 만큼 세밀하게 풍자하고 있다. 3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남,북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뿐이다. 80년대 서슬퍼런 군사정권하에서 이런 작품을 어떻게 쓸 수 있었는지 무척 의아하다. 물론 시대가 많이 흘렀기에 지금은 조금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도 몇 편 실려있지만, 대다수의 이야기들은 지금의 현실과 아주 잘 맞아 떨어지는 글들이다. 말하기 힘들지만 꼭 말하고 알아야만 하는 것들을 풍자의 힘을 빌려 쏟아내는 작가의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 얼마전 많은 사람드에게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나는 꼼수다'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많은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훌륭한 작품이다.

 

s******2 2013.07.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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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와의 좌충우돌 우정, 그리고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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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교회 종지기는 삼십 대 초부터 사십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16년 간 선생의 '직업'이었다. 선생은 예배당 종을 치고 밤에 예배당 돌보는 노릇을 하는 대신 예배당의 귀퉁이 방을 얻어 무려16년을 살았다. 이 동화는 선생의 자전적 이야기다. 권정생 선생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생쥐와 대화를 나눌까싶으면서
"생쥐와의 좌충우돌 우정, 그리고 동행" 내용보기
도토리 교회 종지기는 삼십 대 초부터 사십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16년 간 선생의 '직업'이었다. 선생은 예배당 종을 치고 밤에 예배당 돌보는 노릇을 하는 대신 예배당의 귀퉁이 방을 얻어 무려16년을 살았다. 이 동화는 선생의 자전적 이야기다.
권정생 선생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생쥐와 대화를 나눌까싶으면서도 선생은 그렇게 늘 자연의 친구로 살았으니 정말 생쥐와 대화도 나누었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생쥐는 시종일관 아저씨를 씹어댄다(?). 아저씨는 시도 때도 없이 생쥐에게 짜증내고, 화도 낸다. 눈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생쥐와 함께 하늘 나라 다녀온 후에도 울고, 지옥을 보고난 다음에도 운다. 생쥐는 인간의 잘못을 풍자하고 아저씨 없는 틈에 토끼와 물고기와 새와 함께 아저씨 험담을 한다. 아저씨는 몰래 듣고는 또 운다. 생쥐와 오히려 아저씨보다 '인간'같다.
'생쥐'는 권정생 선생의 분신이다. '아저씨'는 겉으로 드러나는 선생의 껍데기다. 결국 둘다 선생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당차고 하고싶은 말 다하는 생쥐, 그런 생쥐가 내뱉는 말이 선생이 하고 싶은 말이다. 생쥐의 말에 따끔하게 아프면서 결코 반박 못하고 짜증내는 아저씨의 소심함은 선생이 부끄럽게 여기는 인간의 모습이다. 둘이 나누는 재치있는 말장난이 재밌지만, 슬프기도 하다. 해학과 풍자로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한다. 독재, 전쟁, 종교를 비판하며, 그런 부조리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음을 고발한다. 그러나 선생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목이 메인 목소리로 내뱉는 선생의 음성이 들려온다. 몇마디 내뱉고 나면 아파서 드러눕고 마는 선생의 세상에 대한 아픔이 느껴져 슬프다.
이 동화는 애들이 읽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울 지 모르겠다. 오히려 어른들이 읽어야 할 동화라 생각한다. 또 이 동화는 선생의 '삶'에 대한 이해없이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선생의 생각이 생쥐와의 대화를 통해 그대로 드러나는데, 어떤 맥락에서 이런 말을 하는 지를 이해하려면 선생이 썼던 산문집과 전기를 읽는 것이 좋다. 선생은 무조건 행복한 결말을 맺거나 희망만을 주는 동화를 싫어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동화의 책무라 여겼다. 이 동화는 비록 30년도 더 된 현실이지만, 그 현실을 우화적으로,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독재 시대에 미묘한 줄타기를 하는 듯 선생의 말은 위태위태하다. 그러나 선생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선생의 현실 진단이 종소리가 은은하게 퍼져 나가듯 오늘에도 여전히 잔잔히 울려 퍼진다.
i****s 2016.01.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