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6)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름다웠던 여인. 불의 시대를 살다간 예지자 로자
"아름다웠던 여인. 불의 시대를 살다간 예지자 로자" 내용보기
아름다웠던 여인. 불의 시대를 살다간 예지자 로자       극단으로 치달아가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충돌과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 등이 얽혔던 1910년대는, 말 그대로 '불의 시대'였다.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로 연결된 민족․경제․지리적인 예속관계가 어떻게 세계대전으로 폭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 중에 터진 러시아 혁명은 이
"아름다웠던 여인. 불의 시대를 살다간 예지자 로자" 내용보기

아름다웠던 여인. 불의 시대를 살다간 예지자 로자

  

 

 극단으로 치달아가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충돌과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 등이 얽혔던 1910년대는, 말 그대로 '불의 시대'였다.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로 연결된 민족․경제․지리적인 예속관계가 어떻게 세계대전으로 폭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 중에 터진 러시아 혁명은 이념의 대립이 계급해방이 아닌 새로운 억압으로(이를테면 스탈린주의와 냉전체제) 변질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우리는 약 100년전의 그 사건들의 영향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러시아 공산주의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으며, 신자유주의적인 세계 속에서 우리는 계급의 양극화와 획일적인 이념을 강요당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여기의 현실은 로자가 살았던 그 시대의 변질된 반복일 뿐, 그 ‘이후(post)'가 아니다.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로자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갈등과 반목은 그 자체로 억압으로 다가오지만 그것은 오히려 자체 내에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저항의 기운이 생성되는 바탕이기도 하다. 로자는 19세기 말엽부터 짙어지는 전운과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을 예민한 시선으로 간파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에 로자는 제국주의적 자본주의는 궁극적으로 몰락할 수밖에 없을 것임을 이론화한 <자본축적론>을 발표하며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인한 비극을 예언했으며, 전쟁 중에는 ‘스파르타쿠스단’을 조직하여 반전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시대는 로자를 외면했다. 세계대전은 끝내 발발하였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30년도 지나지 않아 인류는 또 한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또한 레닌 식의, 위로부터의 혁명은 스탈린 체제와 같은 봉건주의적인 사회주의라는 비극을 낳았으며 그것은 해방 이후 한반도의 북부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이것은 구호만이 바뀌었을 뿐 본질은 그대로인 비극이다. 이념의 시대가 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는 1910년대에 나타난 제국주의와 사회주의의 모순을 절묘하게 결합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대변인이며 역사소설로 필명을 떨쳤던 막스 갈로가 새롭게 쓴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은 불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한 여인의 생애와 고뇌, 비극적인 죽음의 원인을 파헤친다. 로자의 이념과 사회적 활동 외에도, 불구였던 그녀가 불구인 세계에 대해 가졌던 불같은 열정, 연인 레오와의 사랑 등, 사적인 행로도 서간과 일기, 기록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막스 갈로의 글을 따라서 로자의 여로를 쫓아가면서 우리는 다시금 되묻게 될 것이다. 대중의 의지에 대한 존중, 혁명과 일상, 사회주의와 국제적 연대가 합쳐지는 세계란 과연 불가능한 것인가. 로자의 생애와 사상은 이 질문에 대한 뜨거운 상징이자 해답으로 다가온다.

YES마니아 : 로얄 2*****h 2009.04.20.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불꽃처럼 살다간 여성
"불꽃처럼 살다간 여성" 내용보기
레닌과 체 게바라. 사람들은 그 둘이 좀더 오래 이 세상에 머무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를 향한 외침을 현실 사회에서 실현했던 레닌 그리고 휴머니즘으로 오늘날 모든 이들을 울리는 체 게바라. 하지만 나는 이에 한 명을 더 추가하고 싶다. 로자 룩셈부르크. 그녀야 말로 불꽃처럼 살다 떠났다. 하지만 죽음 이후 지금까지도 앞서 언급한 두 사람에 비하면 크게
"불꽃처럼 살다간 여성" 내용보기
레닌과 체 게바라. 사람들은 그 둘이 좀더 오래 이 세상에 머무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를 향한 외침을 현실 사회에서 실현했던 레닌 그리고 휴머니즘으로 오늘날 모든 이들을 울리는 체 게바라. 하지만 나는 이에 한 명을 더 추가하고 싶다. 로자 룩셈부르크. 그녀야 말로 불꽃처럼 살다 떠났다. 하지만 죽음 이후 지금까지도 앞서 언급한 두 사람에 비하면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이어서일까? 유대인에 절름발이어서? 하지만 그녀의 치열했던 삶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언젠가 선배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수많은 열사들을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사회라고. 로자 룩셈부르크 역시도 시대가 만들어낸 영웅이었다. 러시아, 독일 등에 의해 분할 점령당한 폴란드 사회 속에서 그녀는 평범한 삶을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폴란드의 독립을 원하는 민족주의자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폴란드 사회에서 유대인으로서 그녀가 가졌던 정체성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가족은 유대주의와는 거리가 먼, 폴란드 사회에 철저히 동화된 삶을 살았었다. 그런 생활 속에서 그녀가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국제주의였다. 그녀는 폴란드 사회를 뛰어넘어 유럽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지녔다. 곳곳에서 존재하는 착취의 현장에 분노할 줄 알았으며, 마르크스가 예언한 혁명의 도래에 대해 굳게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끊임없는 학문의 자세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끊이지 않는 학구열과 함께 스스로를 이론적으로 단련시켰던 인물이었다. 행동만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려 드는 몇몇 혁명가들에게서 결핍되어 있는 지적 능력을 그녀는 지니고 있었다. 당에서의 고립, 함께 했던 동료들로부터의 배신 속에서도 그녀가 견디어나갈 수 있었던 힘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를 향한 수많은 폭언과 개인적 신상에 대한 비하들을 모두 견디어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지적 능력 때문이었다. 학문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동시에 사회 변화에 대한 진실된 신념을 가졌던 그녀의 모습들이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스스로를 소진시켜가며 만들어나갔던 혁명이라는 대의를 향한 지독하게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그녀의 모습. 하지만 그녀는 결코 비인간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혁명가이기 이전에 여린 영혼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휴머니즘이라는 가치관이 내포하고 있었다. 그녀는 세상을 완전히 바꾸길 원했지만 폭력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혁명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독일 민중들의 성숙치 못한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이성을 믿었고, 자신의 외로운 싸움에 지쳐나가면서도 세상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고수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레오 요기헤스 앞에서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살고 싶어했었다. 다른 이들이 그러하듯이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꿈꾸었던 그녀. 하지만 레오는 그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만큼 큰 인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그녀의 지적 능력을 두려워했으며, 그녀와 함께 하되 그녀 위에 군림하는데 익숙했다. 그들의 사랑은 이미 시작부터 잘못되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헤어질 수 없는 인물이었으며, 평생 그들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 그녀는 결코 수정주의적 흐름을 용서치 않았다. 평생을 두고 계속된 베른슈타인에 대한 논박. 하지만 그녀의 급진주의적이고도 원론적인 마르크스에 대한 추앙은 독일 사회에 예견된 제국주의적, 전체주의적 흐름을 꿰뚫어보았다. 그리고 죽음으로써 그토록 바라던 사회 변화를 스스로 이루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수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책에서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를 본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에만 치우쳤다는 몇몇 평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어느 책도 그녀의 인간적 고뇌를 이토록 간절하게 서술하진 못할 듯 싶기 때문이다.
q*****2 2003.11.02.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반역의 여인
"반역의 여인" 내용보기
암울했던 1980년대,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이름은 은밀한 유혹이었다. 마르크스·엥겔스와 레닌·스탈린 또는 트로츠키 보다도 더욱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힌 과격한 공산주의자이면서도, 강렬한 눈빛이 매혹적인 이 여인의 이름은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 되어 있었다. 이미 세상이 바뀌어 어느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을 이 원리주의 혁명가를 이제야 되돌아볼 시간을 가졌다. 로자 룩셈
"반역의 여인" 내용보기
암울했던 1980년대,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이름은 은밀한 유혹이었다. 마르크스·엥겔스와 레닌·스탈린 또는 트로츠키 보다도 더욱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힌 과격한 공산주의자이면서도, 강렬한 눈빛이 매혹적인 이 여인의 이름은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 되어 있었다. 이미 세상이 바뀌어 어느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을 이 원리주의 혁명가를 이제야 되돌아볼 시간을 가졌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나라가 갈가리 찢긴 19세기 후반의 폴란드에서 태어난 유태인이자 후천적 절룸발이 장애인이었으며, 무엇보다 (참정권도 없던)여성이었다. 모든 조건이 그녀를 시대의 반항아로 몰고 갈 분명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마크르스 사상의 정통 후계자로 인정받을 정도의 지적 명석함이 충만했고, 누구보다 자연과 새를 사랑하는 쁘띠 부르즈와(Petit bourgeois)의 삶을 추구했던 로자가 이처럼 세계사에 길이 남을 과격 혁명분자가 된 사실은 많은 생각거리를 제기한다. 막스 갈로의 이 모범적인 평전은 서문에 1919년 1월 15일(훗날 룩셈부르크·리프크네히트·레닌의 머릿글자를 따서 ''3L Day''라 명명된다) 그 처참한 암살 장면으로부터 출발한다. 급박한 사건 전개는 마치 흑백무성(黑白無聲)영화를 보듯 독자를 그 역사적 현장 속으로 빨아들인다. 그리고 다시 차분한 논조로 돌아가 그녀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왜 사회주의자가 되었는가, 왜 그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었는가 담담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제2인터네셔날에서 거둔 연설가로서의 눈부신 성공과 ''자본축적론''으로 대표되는 이론적인 업적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녀의 전 생애는 결국 최종적인 파국을 맞은 1919년 벽두의 베를린 봉기로 귀착된다. 정적들에게 목숨을 구걸했다든지(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중립국으로 망명하였더라면 지금 우리가 평가하고 있는 로자의 위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녀는 오직 행동으로 기억되는 혁명가이기를 바랐고, 그랬기에 자신이 끝까지 몰고 간 그 자리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다. 용케 목숨을 건졌더라도 당대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볼세비키 망령에 대한 거부감과 사방이 정적으로 둘러싸인 그녀의 특수한 정치적 입장을 고려할 때, - 아마도 트로츠키의 예에서 보듯이 - 나찌와 레닌에게 이중으로 추적당하는 고단한 삶 밖에는 기대할 바가 없었을 것이다. 누구와도 견줄 길 없이 예민한 역사적 통찰력은 이런 미래 상황을 이미 꿰뚫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참에 순교자가 되자. 굳건한 신념에 따라 사회주의 대의를 지키기 위하여 한 목숨 바치는 것이 나의 소명(召命)이다''라고. 그녀를 읽다보면, 실패가 당연히 예견된다. 사회주의에 좌절하기로는 너무나 명석했고, 혁명을 성공하기에는 너무 도덕적이었다. 한마디로 냉철한 분석과 불타는 신념의 모순덩어리였다. 그녀가 레닌의 절반 만큼이라도 정치적 감각이 있었더라면, 사회주의 혁명의 토양이 비교적 비옥했던 독일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대중의 자발성''을 철석같이 믿었고(자신의 신념에 따르면 믿어야만 했다), 인본주의자이자 근본적으로 철저한 민주주의자였던 그녀는 레닌식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모델을 따르지 않았다. 이런 이상주의 철학과 함께, 당시 유럽을 풍미했던 민족주의의 파고를 가볍게 보았던 착오도 무시할 수 없는 실패 요인이다. 유태인 핏줄에 러시아령 폴란드 출생, 독일 국적의 태생적 국제주의자일 수 밖에 없었던 로자의 비극인 셈이다. 로베스피에르·나폴레옹·드골 등 여러 편의 권위있는 평전을 집필한 바 있는 역사학자 답게 저자는 수백편의 편지와 저서·기사·팜플렛을 넘나들며, 날카로운 사상적 투쟁의 시기에 살았던 이 여류 혁명가를 충실하게 그내고 있다. 특히 사적·공적 교류를 가져왔던 수많은 동지·연인과 정적들과의 관계를 드라마틱하고 생동감 있게 살려낸 점은 이 노작(勞作)의 또 다른 미덕이다. (그녀를 혁명으로 인도한 첫번째 연인, 그녀에 대한 비극적인 암살의 실체를 규명함으로써 마지막 임무를 완수한 레오 요기헤스..... 최전방에서 의미없이 전사한 마지막 연인 한스 디펜바흐, 남편과 정치적 입장이 다름에도 영원한 우정을 나누었던 루이제 카우츠키, 같은 날 암살당한 스파르타쿠스단의 영수(領袖) 카를 리프크네히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 평전을 통하여 모순으로 가득 찬 삶 속에서도 너무나 인간적이고 따듯한, 혁명가 이전의 진솔한 인간 로자 룩셈부르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저자가 정통 사회주의 이론가는 아닌 바, 룩셈부르크주의의 사상적 근원에 갈증을 느끼는 독자라면, 그녀의 다른 저작집들을 - 유감스럽게도 대표작인 ''자본축적론''은 아직 구할 길 없지만 - 참조하여야 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이것이 바로 ''영감''을 받은, 종교적이며, 예언자적인 로자의 언어다. 그건 이런저런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것을 붙들어두기 위해 두어야 할 수를 계산하는 정치 지도자의 언어가 아니다. 그건 깊은 영감을 받은, 지적이고 명석한 한 여자, 그러나 무엇보다 ''열정적인 믿음''에 따라 움직이고, 자신의 신앙에서 삶을 보고, 삶과 신앙을 일치시키는 신도로 거듭난 한 인간의 목소리다. 그리고 이 정치 연설문은 정당의 강령이기보다는 종교 텍스트의 계보에 들어가야 할 경건한 유언처럼 울려온다. ☜1918년 12월 독일 공산당 신당 창당의 기조연설을 위해 쓴 글에 대하여
YES마니아 : 로얄 k****1 2006.01.05.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상과 현실 사이의 좁은 틈으로 걸어가기
"이상과 현실 사이의 좁은 틈으로 걸어가기" 내용보기
평전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평전들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앉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실한 번역이다. 다음은, 단지 인물에 대한 자료의 나열에 그치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인물에 대해 광적인 애정이다. 대체로, 이러한 문제점만 없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평전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위에서 얘기한
"이상과 현실 사이의 좁은 틈으로 걸어가기" 내용보기
평전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평전들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앉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실한 번역이다. 다음은, 단지 인물에 대한 자료의 나열에 그치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인물에 대해 광적인 애정이다. 대체로, 이러한 문제점만 없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평전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위에서 얘기한 내가 생각하는 좋은 평론에 들어갈 것 같다. 이 평전의 가장 큰 미덕은 저자가 가지는 인물에 대한 애정과 객관적 평가가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특히, 객관적 평가는 책의 내내 일관성을 이뤄, 과연 저자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알 수 있었다. 책을 쓴 저자의 생각을 명료하게 알 수 있었다는 것은, 비록 저자라는 필터를 통해서지만, 인물이 행한 행동의 동기와 메커니즘을 알기 쉽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인물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냉철한 비판, 그와 중첩되는 인물이 세계와 싸우며 겪게 되는 세계에 대한 애정과 비판이 주름을 이루며, 한 권의 '좋은 책'을 만들어 낸다. 이 주름들이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이루며, 결국 책이라는 또는 치열함이라는 한 세계가 완성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로자 룩셈부르크는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사회주의 혁명가들에게서 약간 떨어져 있다. 굳이 말하자면, 혁명가라는 그늘 속에서도 더 어두운 그늘에 있었던 인물이다. 이진경씨의 '맑스와 근대성'에서는 로자에게서 탈근대적 맹아를 발견하기도 하지만(주체와 대상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부분에서, 아마), 어쨌든 이 인물은 주류에서 벗어 난 또는 벗어날려고 한 인물이다. '국제 사회주의자', 대중에 대한 무한한 믿음, 냉철한 이론가, 연약한 여인, 어머니가 되고 싶었던 여자. 혁명에 대한 종교적 진회. 원칙주의자. 이렇게, 서로 상반된 주름들이 로자라는 인물을 구성한다. 그 만큼, 이 인물을 정확하게 구성해 내기란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다. 저자가 말하는 로자의 한계는 혁명과 대중에 대한 지나친 낙관과 원칙주의에서 오는 냉철한 현실인식의 한계다. 내 생각에는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던 대중에 대한 개념, 단지 원칙을 지키기 위해 계속 극좌로 몰리는 과정과 이 과정에서 레닌과의 논쟁, 그 이외의 수 많은 논쟁들. 로자가 할려고 한 일이 종교적 천년 왕국의 건설이 아니라 혁명으로 가기위한 '운동'이었다면 누구가 느낄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이리라. 하지만, 이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얼마나 될까. 로자가 페스트 푸드가 아닌 바에야. 한 순결한 영혼의 존재로, 인류의 정신사적 지평이 넓혀지고, 인류가 최후까지 인류가 지켜야할 소중한 것들이 엄청나게 늘어 난 느낌이다. 한 인물을 통해 양심의 역사를 알고 그를 둘러싸고 돌아가는 세계사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지금도 수많은 로자가 자기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리라.
g********m 2003.05.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붉은 로자’의 평전입니다.
"‘붉은 로자’의 평전입니다." 내용보기
파리대학 역사학 교수를 지낸 막스 갈로가 쓴 ‘붉은 로자’의 평전입니다. 유대인에 대한 병적 질시, 편견이 당연시되고 만연하던 유럽사회를 살아야 했던 ‘유대인‘, 어릴 적 앓은 병 때문에 평생을 절름발이로 살았던 로자. 큰 두 눈에, 앙 다문 입술, 매부리코, 다소 듬직한 몸매를 담고 있는 그녀의 사진을 처음 보고 마치 나에게 뭔가 불만을 품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착각이 잠
"‘붉은 로자’의 평전입니다." 내용보기
파리대학 역사학 교수를 지낸 막스 갈로가 쓴 ‘붉은 로자’의 평전입니다. 유대인에 대한 병적 질시, 편견이 당연시되고 만연하던 유럽사회를 살아야 했던 ‘유대인‘, 어릴 적 앓은 병 때문에 평생을 절름발이로 살았던 로자. 큰 두 눈에, 앙 다문 입술, 매부리코, 다소 듬직한 몸매를 담고 있는 그녀의 사진을 처음 보고 마치 나에게 뭔가 불만을 품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착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515페이지의 사진 아래에 적힌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내 자리에서, 길거리의 전투나 감옥 안에서 생을 마치기를 소망합니다” 1871년5월3일에 태어나 1919년1월15일, 스파르타쿠스의 베를린 봉기와중에 독일군에 의해 개머리판에 난타당한 후 살해당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일생을 평전으로 풀어낸 이 책은 이름은 들었던 적이 있으나 자세히는 알 지 못했던 놀라운 한 여인을 우리에게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로자 룩셈부르크인가. 역자가 후기에서 밝힌 바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정한 이해의 공백에 빠져 잇었던 부분이 잇습니다. 즉, “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후, 1871년 파리코뮌,1914년 일차대전 발발의 시기는 그 무엇보다도 사상적 갈등의 시대였다. 사회주의 사상이 전 유럽을 흔들어대던 그 혁명의 시대에 독일에서는 군국주의에 저항하는 세력이 없었느냐하는 것이다. 어떻게 가장 선진적이며 철학적인 국가라는 독일에서 그토록 무참하게 나치즘으로의 길을 열어줄 수 있었단 말인가?” 하는 것이죠. 프랑스 대혁명이후 일차대전, 이차대전까지의 유럽의 내부는 마르크스(1818-1883)철학의 후계자들이 사방을 뒤엎고 다녔고 급기야 가장 봉건적 국가였던 러시아에서 1917년 11월의 볼세비키혁명과 레닌의 집권이 뒤따릅니다. 바로 이시기에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의 사회주의 혁명에 투신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녀의 시대는 막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과 동시대였던 것이죠. 저로서는 이제서야 로자 룩셈부르크가 사는 동네를 알아낸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의 사는 집을 알았으니, 이제 다시, 왜 로자 룩셈부르크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합니다. 로자는 볼세비키혁명의 성공이 완전한 것이 되려면 유럽의 선진국 독일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해야만 한다고 믿었습니다만, 1차대전에서 프랑스와 연합국에 패한 독일의 군부는 총부리를 안으로 돌려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탄압에 나서고 온건한 사회주의자들이 이에 동조함으로써 독일 혁명은 물거품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로자의 죽음을 즐기던 독일의 패잔병들 중에는 젊은 시절의 히틀러도 포함되어 잇었습니다. 그 다음은 독일국가사회주의 노동당의 득세, 나치즘의 발흥, 히틀러의 집권, 그리고 이차대전으로 역사는 흘러갑니다. 레닌과 동시대를 살고, 레닌과도 자주만났던 로자는 그와 같은 개인적인 친분에도 불구하고 레닌이 이끄는 러시아 혁명정부의 관료주의와 수십만의 반대자들을 “혁명의 수호”라는 명분으로 잔혹하게 학살해버리는 공포정치를 끊임없이 비판합니다. “만일 자유가 없다면, 소비에트에서의 삶은 필시 마비에 이르고 말 것이다. 보통선거, 언론과 집회의 자유, 자유롭게 논쟁할 자유가 없다면 삶은 온갖 공적 제도들 속에서 시들고 말 것이며, 관료주의만이 유일하게 활동적인 요소로 남을 것이다.....그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공적인 삶에서 야만상태를 다시 초래할 것이다. ” “룩셈부르크주의“로 요약된 그녀의 사상은, ‘대중’의 의지에 대한 존중, 혁명과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화해와 공존”이라고 합니다. 가능한 사상일까요? 저로서는 가능하지 않은 사상이 불러온 인간의 좌절의 기록이라고 이 책을 평하고 싶습니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솔직한 기분으로는 말입니다. 그러나, 감히 그녀를 이런 식으로 평할 자격이 저에게는 없죠. 트로츠키를 생각나게 하죠? 물론, 이 모든 의문점, 해석등등은 모두 이 평전속에 속속들이 담겨있습니다. 갈로가 그녀를 우리에게 소개하면서 빠뜨리지 않고 누누이 말해주는 부분은 그녀의 인간적 감성에 대해서 입니다. “ 나는 때로 인간이 아니라 한 마리 새 같다는 생각을 해보곤해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어쩌면 당대회에서 보다는 정원의 한구석이나 혹은 들판에서 풀잎이나 덤불 숲에 둘러싸여 있을 때, 더 편안한 것 같아요. 당신에게는 그 모든 걸 말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내가 사회주의를 배반한다고 질책하지는 않을테니까. 당신은 알고 있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내 자리에서, 길거리의 전투나 감옥 안에서 생을 마치기를 소원합니다. 하지만 가장 깊숙한 곳의 나는 동지들의 것이기보다는 검은 박새들의 것이랍니다.” 그녀의 끔직한 죽음에 뒤이어 사라졌던 사체는 1919년5월31일, 국경의 운하에 떠오릅니다. 그녀의 장례식 사진을 보고 있습니다. 꽃더미에 묻힌 로자의 관이 놓여있군요.
h*****m 2002.10.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100년 전에 살던 로자가 말해주는 삶
"100년 전에 살던 로자가 말해주는 삶" 내용보기
그녀에 대한 평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마르크스 이후의 최고의 지성’ 1871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1919년 독일 군부에 의해 1월 추운 어느 겨울날 무자비하게 살해당했고, 그녀의 시신은 5월에 버려졌던 강 하구에서 찾았다. 난 이 책을 읽는 동안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나와 꼭 100년의 차이를 두고 살아간 어느 여성의 일생이, 어느 여성의 감성이 1971년에 태어나 세기를 넘어
"100년 전에 살던 로자가 말해주는 삶" 내용보기
그녀에 대한 평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마르크스 이후의 최고의 지성’ 1871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1919년 독일 군부에 의해 1월 추운 어느 겨울날 무자비하게 살해당했고, 그녀의 시신은 5월에 버려졌던 강 하구에서 찾았다. 난 이 책을 읽는 동안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나와 꼭 100년의 차이를 두고 살아간 어느 여성의 일생이, 어느 여성의 감성이 1971년에 태어나 세기를 넘어 살아가고 있는 나와 동화되어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열정적이고, 의욕이 넘쳤다. 또한 그 불타는 신념 뒤에 고독한 모습이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고픈 욕심도 있었다. 내가 그녀에 비해 미치지 못한 여러 부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녀가 유년 시절을 지나, 사춘기를 지나, 스위스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1890년대의 그 열망들이, 1990년대를 지나온 나의 20대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그녀는 나와 세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첫째, 그녀는 이방인이였다. 사회적으로는 유대인이라는 이방인, 육체적으로는 장애인이라는 이방인였다. 중세 이후 악마, 마법, 이단과 결부되어 유대인들에게 자행되는 학살과 차별대우는 유럽의 어느 지역에서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잔인한 선입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려는 유대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가 빗어낸 민족주의라는 마약 앞에 또 다시 희생당해야 했던 이방인들 중 그녀가 있었다. 둘째, 그녀는 실천가였다. 마르크스가 주창한 사회주의 이념아래, 비인간적 자본주의 행태를 꼬집고,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을 인도하는 일에 앞장 섰다. 절음발이라는 어려운 육체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폴란드, 독일, 프랑스 등을 두루 돌아다니며 군중들과 저명한 학자들 가운데 서서 올바른 사회주의를 위해 그녀의 몸을 희생시켰다. 셋째, 그녀는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 아픈 몸 때문에 남달라야 했던 그녀는 어떻게 해서라도 범인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해도 안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녀는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고, 또한 자신이 자신 능력 그 이상을 소비시켜며 일생을 살아갔다. 난 그녀가 살아간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시기가 남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혼란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20세기 말에서 출발한 나의 시대를 보면 조금씩 고개를 드는 민족주의, 지역주의 등이 제기 될 때마다, 100년 전이 생각나 소름이 돋곤 한다. 당시 로자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고, 또 위태롭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희생당한 동료들을 바라보며, 또 같이 죽음의 길로 뛰어가는 동료들을 버릴 수 없어서 끝까지 동참했던 것으로 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 고집스럽게 혁명의 물결을 믿고 있었고, 억척스럽게 레닌을 비난하면서 러시아 혁명의 말로를 점쳤으며, 신념 아래 타협은 있지도 않았다. 이런 면이 그녀를 무자비한 살해 현장 속으로 몰고 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인 현장을 떠나면 나의 영원은 ‘검은 박새의 것’이라던 아름다운 그녀의 생각은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았고, 그녀는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인간 외의 많은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갔다. 신념을 지키면서 생의 목표를 위해서 달려가야 했던 아름다운 영원 로자 룩셈부르트를 읽으며 21세기에 나의 생의 목표는 어디로 향해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k*****a 2002.10.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