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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공부가 중요한 이유들...
"생각하는 공부가 중요한 이유들..." 내용보기
토론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드는 생각이 진보든 보수이든 찬성이든 반대이든 나만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의 답답함이다. 보수의 생각 속에도 진보의 생각 속에도 장단점이 있을 텐데..나의 생각만이 옳고 나중엔 거의 궤변에 가까운 논리로까지 진행 되는 걸 종종 본다. 그들에게 물어 보고 싶다..생각이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이런 생각도 해 본
"생각하는 공부가 중요한 이유들..." 내용보기

토론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드는 생각이 진보든 보수이든 찬성이든 반대이든 나만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의 답답함이다.

보수의 생각 속에도 진보의 생각 속에도 장단점이 있을 텐데..나의 생각만이 옳고 나중엔 거의 궤변에 가까운 논리로까지 진행 되는 걸 종종 본다.

그들에게 물어 보고 싶다..생각이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이런 생각도 해 본다 학교에서 어릴적 수업 시간 부터 생각이란 과목의 수업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생각이 늘 옳을 수 없고 상대방의 생각이 늘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 있는데 나의 생각 테두리 속에서만 생각을 하게 된다. 논술의 경우도 그렇지 않은가..생각이 우선 되어야 자신만의 글이 나올 수 있을 텐데..그런 생각중심의 논술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써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기만 한다. 모두 생각이 없는 껍질의 교육이란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생각의 깊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배움의 생각이란 말이 눈에 들어 왔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배울 수 있다면..글 쓰기에 대한 멘토의 책들이 많이 나온 것처럼 생각의 배움에 대한 멘토의 책들도 많이 나올수록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미 고인이 된 저자의 생각에 대한 글들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 건 어떤 하나의 사물을 바라 보는 것에 대한 자신의 진정한 마음의 우러나옴이 바탕이 되어야 생각의 근간이 될 거란 생각을 하게되었다.

뉴스에서 흘러 들은 기사들을 나의 생각인냥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비판을 하고 불평을 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가운데서도 나의 생각이 바탕이 되어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의 배움이란 아마도 대상이든 사물이든 사람에 대해서든 진지하게 바라 볼 수 있는 마음을 바탕으로 한 방향으로만의 치우침이 없는 그 중립성을 갖는 것에서 부터 시작 되는 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이런종류의 책이 주는 고마움은 책에 대한 답을 읽는 독자가 스스로 할 수 있게 해 준 다는 것에 있다는 생각이다.

 

w*******i 2007.11.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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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생각하기’ 공부이어야 한다
"교육은 ‘생각하기’ 공부이어야 한다" 내용보기
한창기 선생이 창간한 첫 번째 잡지는 <배움나무>이다. 1976년에 창간한 <뿌리깊은나무>의 전신이랄 수 있는데 1971년에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 책에 실린 글은 어디에 발표되었든 문화 시평에 해당하는 글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102편의 산문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한창기 선생은 우리의 전체주의적인 습관과 싸운 분이라는 것이다. 선생은 우리에게 스민 전체주의 특성을 고치자고
"교육은 ‘생각하기’ 공부이어야 한다" 내용보기

한창기 선생이 창간한 첫 번째 잡지는 <배움나무>이다. 1976년에 창간한 <뿌리깊은나무>의 전신이랄 수 있는데 1971년에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 책에 실린 글은 어디에 발표되었든 문화 시평에 해당하는 글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102편의 산문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한창기 선생은 우리의 전체주의적인 습관과 싸운 분이라는 것이다. 선생은 우리에게 스민 전체주의 특성을 고치자고 지속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그 대상이 대통령일 경우도 있고 국회의원일 때도 있으며 장관일 경우도 있고 지식인일 때도 있다. 전체주의 특성을 고치자고 하고 있으나 그 문장은 전체주의적이지 않다. 합리를 바탕으로 설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적을 받은 사람이 먼저 반감을 갖는 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몇 가지를 예를 살펴보면 이렇다.

 

우리는 세상 사람을 ‘우리’와 ‘비 우리’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아니, 어느 서양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아는 사람)’과 ‘비 사람(모르는 사람)’으로 나눈다. 그리하여 아는 사람, 알아야 될 사람은 헌신적으로 잘 대해 주면서도 모르는 사람, 몰라도 될 사람이면 아예 그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거나 외면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400쪽)

 

늙은이는 자신의 늙음이 부끄럽지 않았어야 했겠다.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늙게 된다. 그런데 자기가 늙었음이 부끄러운 사람들이 이룬 역사야말로 부끄러운 역사가 된다. 머리에 검정 물감을 들인 노인들은, 비록 버릇없는 젊은이들이 자기들의 늙음을 얕잡아 보고 그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그 아름답게 흰 머리를 지켰어야 했다. (112쪽)

 

성탄절은 신앙과 연관되는 공휴일이다. 나라가 분별심 있게 신앙상의 휴일을 개인에게 주려거든 개인이 선택한 신앙상의 중요한 날짜를 공휴일로 누리도록 함이 더 옳겠다. 불교 신도에게는 ‘성탄절’에 일하게 하고 초파일에 쉬게 함이 얼마나 더 이상적이랴! 다른 신앙의 신도들에게는 그들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날이 공휴일로 인정받는 공평성을 허락하자.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공휴일이 한 해에 하루 또는 이틀이면, 무신론자들에게도 하루 또는 이틀의 신념의 공휴일을 인정하자. (69쪽)

 

우리의 전체주의 특성과 지속적으로 싸우는 선생님 모습은 서양 것이라면 덮어놓고 따라하는 우리의 지배적인 풍조와는 다르게 우리의 전통 문화 가치의 탐색에 몰두하는 모습과 자연스레 연결된다. 따라서 ‘세계화는 종국적으로 농업 포기하자는 것, 포기하지 않더라도 도시의 부자들에게 대량 ‘공장 농사’ 짓게 하겠다는 것, 종국에는 온 국민의 생업을 ‘공장’에 예속시키겠다는 것 말고도 실제로 ‘해외 진출을 하자는 것’을 뜻하는데, 그 말은 평화로운 인상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투쟁 대상으로 치는 싸움꾼의 언사이면서도 강대국이 뿌려 주는 모이 몇 톨 더 쪼아 먹겠다고 다툴 뿐인, 말 잘 듣는 자의 언사일 뿐’이라고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뿐더러 그러한 경향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한결같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체주의적인 특성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창기 선생은 제도보다는 사람에 희망을 걸고 잇다. 훌륭한 제도를 가지고도 덜된 사람은 일을 수행할 수가 없어도, 덜된 제도를 가지고도 훌륭한 사람은 일할 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을 주름잡는 사람들의 사람됨은 이미 여러 십 년 전에 형성되었다. 어제에 배운 바가 이제에 하는 바를 결정한다. 이에 어린이가 받는 교육이 우리가 받은 교육보다 낫게 하려는 선각자의 실천력이 필요하다. 새 세대가 주어진 여건에서 더 슬기롭게 반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육은 우리가 오늘날에 누리고자 하는 물질적인 풍요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가 받은 교육이 ‘외우기’ 공부였다면, 새 세대의 교육은 ‘생각하기’ 공부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YES마니아 : 골드 g*******g 2009.12.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