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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이 회자되는 말 중에 ‘멘탈붕괴’라는 표현이 있다. 인간의 건전한 상식과 정신이 무너진다는 의미이다. 지난 4년 동안 예상을 뛰어넘는 행보를 보인 청와대의 주인의 영문 이니셜(MB)로 축약되어 사용되는 이 말 만큼 지금의 한국사회를 잘 표현해 주는 말도 없는 듯 하다. 특히 현실의 기독교에 있어서 이 멘탈붕괴는 심각하다. 천 이백만 성도라는 허장성세를 떨고 있지만, 이미 성도 수는 그 절반 정도 수준으로 떨어졌다. 절대수의 감소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의 여부 이다. 사람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모욕하고, 현실의 부패한 세력의 대명사 취급을 당하면서도 어쩌지도 못한다. 장로가 대통령이 된 현 정권 들어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양식 있는 기독교인이 어디에서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밝히기가 부끄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현실이야 그렇다 치고, 기독교의 미래는 어떠할까? 이미 대부분의 교회에서 청년들이 거의 사라졌다. 과거의 기독교는 군사독재의 어두움 가운데 고통 받으면서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빛을 비춰주는 존재였다. 그 때 청년들은 기독교 가운데서 희망을 발견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기독교는 부패한 정권의 하수인으로 자청하여 그들이 제공하는 더러운 떡을 받아먹는 집단이 되어 있었다. 청년들이 교회로부터 발길을 돌림은 당연한 일이다. 현실을 이 따위로 살아가는 인간들로 가득한 천국이 무슨 천국이란 말인가 도대체 문제가 무엇이며, 어디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까? 현실 교회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이머징 교회(emerging church)’이다. 세상과 소통할 능력도 의사도 별로 없는 제도권 교회들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복음과 세상의 다리 역할을 해 보겠다는 새로운 형식의 교회들이다. 이들은 과거의 잊혀졌던 교회사를 다시 살펴보면서, 무려 5백년의 역사 동안 수 많은 박해를 꿋꿋이 견뎌온 ‘재세례파(Anabaptist)’라는 집단에 주목하였다. 아나뱁티스트는 예수님 승천 후부터 이어져 왔던 초대교회의 전통이, 4세기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인정으로 세상의 체제와 결탁하여 왜곡된 것을 바로잡고자 했던 교인들이다. 그들은 십자군을 일으키고 성직을 매매하던 부패한 로마 카톨릭은 물론 종교 개혁가들조차 복음적인 주장과는 달리 봉건 제후들과 결탁함으로 ‘작은 크리스텐둠(Christendom.기독교체제)’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항하여 성경에서 의미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길을 추구하다가 엄청난 핍박을 받아왔다. 메노나이트, 아미쉬, 후터라이트 등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소수의 교인집단이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예수의 정치학>(1972)이라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신학서적을 출간한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1927~1997)라는 메노나이트 신학자에 의해서이다. 소수의 핍박 받아오던 기독교인들이 4세기 이후 제도권으로 들어오게 되자 일종의 ‘아노미 현상’이 일어났다. 그 동안 초대교회는 고난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현실의 고난을 견뎌가고 있었는데, 이제부터 당면한 새로운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 많은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현실적인 그들의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은 그저 위급했던 특수한 시대에만 적용되었던 것으로 취급하고, 지금부터 당면한 새로운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도입하게 되었다. 그 당시 최고의 학문으로 인정되던 그리스/로마의 철학체계가 본격적으로 기독교에 편입된 것이다. 이를 ‘크리스텐둠(Christendom)’ 이라 칭하는데, 이는 기독교가 한 국가의 지배적 종교로 위치하여 그 영역 안의 사람들은 최소한 형식적이라도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교회는 국가와 정치적으로 타협하여 지배하는 입장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현실 종교의 힘을 빌리기 위해 교회로 들어오게 되고, 이들이 권력을 잡음으로써 교회는 점점 그리스도의 뜻과 멀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요더는 <예수의 정치학>을 통해 주류 기독교에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기한다. 그 동안 기독교는 그 이름을 ‘基督(그리스도)’이라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 만을 존재론적으로 다룰 뿐, 그가 이 땅에서 가르치고 본을 보인 삶은 거의 외면하였다. 요더는 이 책을 통해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동일시해야 할 모델이요 지켜야 할 규범임을 강조한다. 1972년에 최초 출간되고, 20년 후인 1992년에 개정판이 나온 <예수의 정치학>은 총 12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더는 자신만의 독특한 근거를 발견하여 제시하기 보다는 기존 성경학자들의 해석을 활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형식을 취하였고, 누가복음과 사도바울의 서신서, 그리고 요한계시록 등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였다. 그 동안 교회는 성경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저 자신의 시대에 맞지 않는 시대 착오적인 인물로 여겨왔다. 바로 자신들이 시대의 변화에 맞춰 구세주를 제한시키는 ‘세대주의자’요, 자신의 입장에 부합하는 예수만 인정하는 ‘자유주의자’였던 것이다.
크리스텐둠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서구에서는 거의 와해되었다. 기독교 교리를 형성하고 발전시킨 서구인 자신들조차도 더 이상 기독교가 국가와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주류에서 힘을 발휘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제도권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요 혼란이었다. 힘이 없어진 기독교에 더 이상 힘을 빌리고자 오는 사람들은 없어졌다. 사람들은 급속도로 교회를 떠나가고 커다랗게 지어 놓은 교회당은 팔려나갔다. 기독교는 더 이상 ‘주류’가 아니라, 다원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소수’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최후의 크리스텐둠 국가인 미국의 신앙과 시스템을 받아 온 한국 또한 크리스텐둠 국가의 파생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서구의 뒤를 이어 쇠락의 길에 접어든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진리가 아닌 자신들의 이권으로 집결하는 기현상을 보이며, 건전한 양식이 있는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인다. 사학법 개정, 학생인권조례, 레이디 가가 등에 보이는 반응은 현실의 난국에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한국교회의 현주소이다. 이러한 시점에 주목되는 이들이 바로 아나뱁티스트들이다. 그 동안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순전한 복음을 추구해왔던 그들은, 기독교가 주류가 아닌 소수의 시대를 당면한 이 어려운 상황을 미리 살아온 사람들이다. 힘을 가지고 압도하지 않고 친절한 이웃으로 살면서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 새로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유일한 길일 것이다. 요더의 <예수의 정치학>은 이들 아나뱁티스트들의 관점에서 성경을 재조명하는 책이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픈 열망이 있는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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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과 책을 쓴 사람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별점을 5개 주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책의 내용과 책을 쓴 사람이 연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내용 별이 3개이다.
내용 자체는 좋다. 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을 수 있다. 특히 푸리에의 글이나 '팔랑스테르'를 모르고 있다면 정말 엄청나게 훌륭한 내용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열심히 노력해서 '황제'가 된 뒤부터 '황제'처럼 성을 즐긴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해 이 사람 때문에 메노나이트/재세례파를 좋지 않게 보게 되었으며 정통 그리스도교에서 이단이라고 하는 결정이 이유야 어쨌든 그럴 법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학생 성추행 문제가 심각해서 학교를 옮긴 신학 교수였고 끝까지 자신이 저지른 짓을 성추행이라고 하지 않고 "야수의 송곳니 뽑기"라는 등의 괴변을 지껄이던 사람이었다.)
(메노나이트/재세례파 공동체에서는 너무 좁은 사회를 유지하는 덕분인지 세례를 강조하면서도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교리 덕분인지 세례받기 전인 어린이를 대상으로한 성범죄가 만연되어 있다고 할 정도인데,
저자는 학기가 시작되면 여학생들에게 함께 "가족같은 친밀함"을 느껴 볼 수 있을지를 묻는 편지를 돌렸고 "가족 같은 친밀함"이 뭔지 묻는 여학생에게는 동의를 할 때마다 점점 강도가 세지는 - 마지막 단계는 사정인 - 유사 성행위 단계 도표를 보여 주었다고 한다. 물론 사정을 했더라도 삽입 성교가 아니니까 성행위가 아니라고 교육/세뇌하기는 기본이었단다. 자세한 내용은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를 추천한다.)
아내와의 건전한? 결혼생활을 지키는 동시에 한번에 50여명을 성추행하기도 했다니까 (자신이 요더에게 당했다고 밝힌 사람만 100명이 넘음)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말은 지나칠 정도로 엄청 잘했다는 점이 문제!
특히 70년대, 80년대에 성범죄를 집중적으로? 저지르고 있었기에 이 책을 쓰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수업에 들어오는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으니까 베스트셀러 종교서적 작가이면서도 여신도 성추행 문제가 있는 전**과 다를 바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메노나이트 공동체는 성추행도 저자의 주장처럼? 시간을 두고 평화적으로? 해결해서인지 저자의 성추행은 죽기 몇년 전인 90년대 초에야 밝혀진다.)
저자의 사생활은 무시하고 내용만 읽고자 한다면 강추할 수 있고 실재로 이 책은 꽤 여러 신학자에게 영향을 끼쳤으니까 강추할 수 있고 또한 푸리에가 말한 그대로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은 그대로 두고 과정?만 바꾸는 교묘함을 보여주니까 정말 강추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이 좋다고? 해서 저자까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