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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짚어내는 편협한 생각이 도가 지나친 것 같아 몇 자 적고자 한다. 저자는 조선의 학자, 이른바 저자가 말하는 책벌레들의 사상과 책에 대한 열정을 열거하면서 온통 불만과 불평 투성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학 교수다운 날카로운 비판은 없고 순전히 개인에 대한 불만을 넘어 사리에 맞지 않는 글로 조선의 책벌레들을 기만하고 있다. 저자의 생각은 조선의 문맥(文脈)을 형성한 조선의 책벌레에 대해 서술하고 있지만, 어쩐지 그 이치가 온당치 않을 뿐만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즉 사상의 발원지나 시대의 관점, 혹은 조선의 학자가 견지하고 있는 유교 및 성리학에 대한 사상을 21세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가 저자의 편협된 생각인지, 또 왜 그런 불평을 늘어놓는지 텍스트를 두고 잠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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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지속적으로 지적하듯이 우리들 대부분은 조선 시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식이 교과서를 통해서 얻은 것이 전부 혹은 대부분일 것이고, 그것만으로는 그 기나긴 세월 속의 (하지만 여전히 지금 한국을 지배하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왕국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단편적인 지식만을 혹은 오해만을 갖게 만들기 때문에 이와 같이 조금 더 다른 각도에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의 존재는 충분히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전해준 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우선 전하고 싶다. 저자는 ‘조선’이라는 왕국이 단순히 무력으로 인해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기존 ‘고려’와는 다른 방식으로 국가를 성립시키고 유지될 수 있었으며 그렇게 오랜 기간을 지탱하게 될 수 있는 점 중 ‘책’과 관련된 부분을 빼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고, 그런 입장 속에서 조선 사회를 대표하는 여러 지식인(책벌레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첫 번째로 다뤄지는 인물은 조선 건국의 핵심 인물인 정도전이고 그가 어떤 입장에서 책을 통해서 그리고 인쇄술의 개선을 통해서 자신의 의도에 따는 국가를 건국할 수 있었는지를 그리고 지속되도록 하려고 했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책이라는 것은 결국 책을 써낸 사람의 시각과 입장을 읽는 이가 동의하게 되거나 부정하게 되는 과정이라는 생각에 따라 책을 읽을 수 있는 일반적으로 양반으로 불리는 지배 계급 혹은 귀족들이 국가의 독점 속에 출판되는 책들을 통해서 이데올로기적 동의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설득이 되도록 하여 국가 지배를 정당화 하게 하고 지배가 지속될 수 있도록 의도했다는 점(그리고 가부장적 사회가 공고히 되도록)을 통해서 정도전이 책을 통해서 진정으로 혁명을 마무리 한 것이고, 발간되는 책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조사하고 분석하는 것이야 말로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어떠했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정도전의 입장을 정확하게 이해한 정적 이방원은 정도전을 제거했지만 그가 하려했던 정책은 그대로 진행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건국과 그 지배의 지속에 있어서 책이 갖고 있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는 것과 세종의 시대가 돼서 보다 다양한 지식들이 분출하게 되는데 세종 본인의 천재성과 함께 많고 다양한 책들이 소개될 수 있었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조선 시대를 지탱하는데 있어서 책이 갖고 있는 중요성과 함께 조선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는 주자학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고 있는지와 얼마나 순식간에 그리고 국가의 주도하에 주입되게 되는지를 분석하며 왕-내신의 권력관계 변화를 설명하고 있고, 그 주자학의 보급과 함께 이황과 이이로 대표되는 당대의 탁월한 지식인들이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를 얼마나 깊이 있게 분석하며 음미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어가는가를 설명해준다. 이런 논의 후 조선을 지배하던 양반 세력들이 얼마나 책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책이 당시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논의한 후 그 수많은 책들을 통해서 얻게 된 지식을 정리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대표적인 지식인들을 언급하고 있다. 주자학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인물들도 등장하고 있고, 그와 같은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조금은 벗어난 입장을 갖고 있는 인물들도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자는 기본적으로 맑스(마르크스)주의로 대표되는 유물론과 지식-권력이라는 입장에서의 푸코와 획일성에서 벗어난 다양성에 대해서 보다 주장하는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많이 느낄 수 있지만 그러한 영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보다는 다양한 각도에서 조선 시대를 바라보는데 활용하고 있는 것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 같다. 단순히 한국학의 영역에서만 조선을 그리고 당시의 지식인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입장인 것 같고, 최근 자주 다뤄지고 있는 정조에 대해서 보이는 비판적인 입장과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지는 것 같은 연암 박지원에 대한 설득력 있고 객관적인 평가 그리고 당시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원천인 중국 베이징 서적상의 풍경에 대한 언급들은 전혀 모르던 내용들을 접하게 되었기 때문에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과 같은 탁월한 지식인들이 단순히 태어나기를 탁월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이 아니라 당시 그들이 얻을 수 있었던 지식의 양 또한 지금과 같이 넘쳐날 정도는 아닐지라도 충분히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채워줄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올랐었으며, 책과 지식에 대해서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관심을 보였던 조선의 양반 사회에 대해서도 긍정과 부정의 입장에서 그들의 모습들을 바라보려고 하고 있다. 즉, 최대한 객관성을 갖으려고 노력하면서도 자신만의 시각을 잃지 않으려고도 애쓰고 있다. 지식인이라면 그리고 교양인이라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조건이지만... 그런 것 갖추고 있는 사람 별로 없는 한국 사회에서는 뒤늦은 발견이라도 한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신채호까지 다루면서 지식-권력-교양에 대한 논의들이 점점 더 사라져만 가고 있는 세상에서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그리고 그저 넋을 놓고 중요성만을 강조하기에는 혹은 잃어가는 것을 바라보기에는 역사적 겪었던 경험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있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조선시대의 책을 중심으로 그 시대의 지식인들을 바라보고 있기는 하지만 간간히 수다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인문학 책이기 보다는 조선시대의 책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조선 시대를 바라보며 여러 얘기들을 꺼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나칠 정도로 정규 교육 과정을 등한시 했었는지 내용에서 논의되는 대부분이 생소하기만 했고, 처음 접하는 용어들과 이름들이 많아서 읽는데 조금은 어려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들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충분히 흥미롭기만 한 내용들이며 책들에 빠졌던 조선 사회의 책벌레들을 통해서 부러움을 그리고 반성을 하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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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을 거쳐 망국의 시대까지 너무나 암울한 역사 때문에 조선을 전체적으로 부정적으로 바라 봤다. 그동안 일제에 의해 주입된 당쟁과 사화, 모래알같은 조선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알게 모르게 내면화되었을터다. 물론 그 전부터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꾸준히 역사 관련 책들을 읽어 오면서 나의 왜곡된 시각을 조금씩 수정해 오고는 있었지만 작년부터 아이들 역사를 가르치면서 읽은 집중적인 독서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규장각 답사, 연암과 다산의 저작 읽기, 정도전과 조광조에 이르기까지 개혁적 사림에 대한 여러가지 책들, 이덕무를 비롯한 조선의 책벌레들에 대한 다양한 저작들까지..
오늘 또 한권의 책을 서고에서 빼 들었는데, 그것은 바로 강명관이 쓴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으나 얼마 읽지 않아 책을 통해 시대를 바라보는 저자의 탁월한 시각에 놀랐다. 나란 인간은 귀가 얇아서 어떤 저자의 책을 읽느냐에 따라 생각이 많이 좌우되는데, 그래서 다양한 관점의 책을 읽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조선을 세운 것은 이성계이나 조선을 만든 것은 정도전이라는 말처럼, 조선의 정신과 뼈대를 세운 정도전이 쓴 '서적포를 설치하는 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책을 통한 성리학적 이념의 전파에 열성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정적을 제거한 태종이 금속활자로 책을 찍어내자는 정도전의 생각을 계승한 점은 필요성을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을 통치한 27명의 왕 중에서 맹자의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실천한 단 한 사람으로 저자는 세종을 꼽는다. 조선 문화의 모든 것이 세종대에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책의 출판 또한 왕성하게 이루어진다. 이것은 세종의 강력한 의지로 탄생한 경자자와 갑인자 덕분이다. 밀랍으로 고정하여 하루에 몇 장 찍어내기 어려웠던 기존의 금속활자를 보완하여 갑인자에서부터는 대나무로 활자를 완전히 고정하여 획기적인 속도의 개선을 이룬다. 저자의 세종에 대한 찬탄과 함께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했으나 그것으로 백성을 위한 책은 전혀 만들지 않았다는 지적과 함께 책의 출판이 오로지 사대부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몰아낸 세력이나 연산군이나 무능하고 부패한 것은 오십보 백보라 참신한 사림을 정치의 전면에 내세워 개혁의 이미지를 선전하고자 조광조를 등용했다. 조광조는 도덕 교과서 자체라고 할만한 인물이나 그가 꿈꿨던 소학의 전파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남녀칠세 부동석, 여성의 일은 오로지 음식과 의복의 마련에만 있다는 것, 여성은 두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것, 여성의 칠거지악 등 철저한 가부장적, 남성 중심주의 시각에 지배자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책이 바로 <소학>이었다.
개혁을 추진하다 부패한 훈구세력에 의해 희생당한 맑고 강직한 그의 이미지는 의도적인 것이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조광조 일파가 소학에 목을 매다시피한 궁극적 목적은 양반만의 독특한 사회적 습관을 만들려는 목적이었다고. 그는 결국 비명에 갔지만 '소학화'한 양반들은 조선의 상것들을 영원히 지배했으니 최후의 승리는 조광조의 것이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유교적 윤리의 강화가 사회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되물으면서...
이 책을 읽어가면서 과연 오늘의 책벌레인 나와 여러분도 세상을 만드는 데 한 몫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던져줄 것이다. 여러분께 강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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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 방송에서 <이산>, 케이블 영화체널에서 <8일>을 통하여 우리는 정조를 만나고 있다. 일명 '개혁군주' 그가 조금이라도 오래 살았다면 조선은 근대시대를 열고 100년 후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았을 것이라는, '만약'을 떠올리면서 안타까워한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강명관이 지은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를 읽고서 충격을 받았다. 개혁군주라 명명된 정조가 '문체반정'을 일으킨 주역이었음을 알았다. 정조는 세종 이후 가장 많은 책을 읽었던 군주였다. 책을 읽었기에 그는 명석했고, 통치철학을 누구보다 잘 깨닫고 있었다. 우리는 그를 근대 군주라 말하지만 문체반정을 일으킨 것을 볼 때 아니었다. 강명관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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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저자의 시각이 참신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 미친(?) 사람들을 통해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이 꽤 흥미롭다.
요즘 조선시대 관련 역사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책이 나올수록, 조선시대는 그만큼 더욱 입체적인 역사가 될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돈에 미친 사람들, 예술에 미친사람들 등등. 그런 사람들을 통해 조선을 바라보는건 어떨까? 돈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뭐 그런?!
책 속의 다양한 그림들도 재미있게 봤다. 글이 다소 건조한 느낌을 줘서 처음에는 쉽게 읽히지 않았지만, 읽다보니 그 내용이 재미있다. 기존의 통설을 깨는 것도 있고,.. 가끔씩 놀라운 얘기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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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다. 요즘도 많이 쓰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 말이 역설적으로 펜이 결코 칼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 펜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위로하는 말이라는 해석에 크게 공감한다. 힘센 자는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이 맞기를 크게 기대한다. 나는 그래도 몸보다는 머리를 쓰는 직업을 택했으며, 보통 사람보다는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조선은 문(文)의 나라였다. 더 좁게는 성리학, 주자학의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서 책을 읽은 사람, 책을 읽는 사람이 존중받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고, 어떤 책들을 읽었을까? 강명관의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에서 하는 이야기다. 그의 『조선 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가 그 시대의 책과 그 책에 관련된 지식의 생산과 유통에 관해서 쓰고 있다면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는 그 책을 소비한 사람들, 바로 책벌레들에 대한 이야기다(물론 저작 순으로는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이 앞이다).
강명관이 본 조선 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는 자못 비판적이다.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 기술을 자랑하지만, 그 금속 활자는 지식의 대량 유통에 기여하지 못했다(“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금속활자와 세종조의 인쇄기술은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양반-남성의 영원한 제국을 위한 것이었다.”,
16쪽). 그들의 책과 지식은 백성의 것이 아니었고, 한 줌 되지 않는 지배 세력의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유통시켰던 지식은 지배 논리를 공고화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들이었고, 그들의 그 외의 것은 억압했다. 성리학, 주자학만을 파고 들었으며, 그 밖의 것을 다룬 책들은 배척하고, 탄압했다. 물론 그런 책들을 읽은 사람들까지. 실용적이고, 혁명적인 저작들은 저자 생전에 출판되지 못했으며, 따라서 그런 생각이 전파되기도 힘들었던 시대였다. “다산은 자신이 당면한 사회현실을 절절히 발언했으되, 그 발언은 저작의 형태로 유포될 수 없었던 것이다. 나아가 조선왕조가 끝나기 전 다산의 전집은 공식적으로 발간된 적이 없다. (중략) 박제가의 『북학의』가 그랬고, 박지원의 『열하일기』 역시 그랬다.” (300쪽)
강명관은 조선 시대를 만들어낸 책벌레들을 거의 연대순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들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만들었으므로 조선의 정치와 정신의 변천이 그대로 따라오고 있다. 조선의 기틀을 기획했던 정도전과 그의 아이디어(금속활자)를 활용한 태종에서 시작해서(“혁명은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도전이 생각했던 금속활자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39쪽), 타고난 독서가이면서 학문의 경계가 없었던 세종의 시대가 펼쳐진다. 그 후엔 학문의 협소화가 생겼다. 조광조나 퇴계 이황, 율곡 이이의 독서는 주자학이라는 틀에서만 이뤄졌던 것이다. 조선에서의 생각의 폭은 이렇게 좁혀지고 만 것이었다. 그 다음은 새로운 지식의 흡수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지식들은 모두 중국(청)을 통한 것이었다. 홍대용도 그랬으며, 박지원도 그랬다. 간서치(看書癡) 이덕무의 책도 대부분은 중국을 통해 들어온 책들이었다. 문체반정으로 책을 탄압했던 호학(好學) 군주 정조의 태도도 중국을 통한 학문의 수입과 관련이 있다: “문체반정에 반성문을 제출한 사람들은 예정된 출셋길을 달려 영의정이 되고 국구(國舅)가 되었다. 하지만 반성문을 쓰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던 박지원과 이옥은 그런 혁혁한 벼슬은 없었지만 자신의 소신대로 작품을 썼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비록 화려한 문집이 아닌 필사본으로 남았지만, 문학사에 이름을 남기고 21세기에도 읽히고 있다.” (297쪽)
이 책에서는 그저 저자와 제목만을 연결시키기에 급급했던 이수광의 『지봉유설』,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등이 어떤 책이며, 그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성리학이 성과 이, 기와 같은 고도로 추상화된 언어를 도구로 삼아 오직 관념의 조작에 몰두한다면, 『지봉유설』은 지시 대상이 분명한 현실의 구체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중략) 『지봉유설』의 세계는 성리학과는 대척적 공간에 놓인 지식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141~142쪽) “이 책(『성호사설』)에는 ‘사회’가 들어 있었다. 체계가 없는 듯 보이는 글쓰기 속에 그는 자기 시대의 심각한 문제, 곧 정치와 사회, 경제의 모순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한 것이다.” (198쪽) “새 책 없는 세상에 인용으로 이루어진 『임원경제지』가 폄하되어야 할 이유는 아무 데도 없다.” (331쪽)
그 밖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까지 책벌레로서 세상 밖으로 건져내고 있다. 미암 유희춘은 이쪽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겠지만, 대중들에게는 낯선 이름이고(교과서에 없으니), 이의현이라는 사람도, 유만주라는 사람도 그렇다. 강명관이 쓰고 있는 허균의 이미지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많이 다르다(“아마 허균에 씌워진 ‘조숙한 근대인’이라는 이미지는 조선 후기 사회에서 서구 근대의 모습을 찾으려는 한국인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허구일 것이다.”, 146쪽).
조선 시대의 책벌레들을 한 명씩 한 명씩 다루면서 결국에는 책에 관해서, 조선이라는 시대에 관해서, 책을 읽는 사람에 관해서, 책을 읽는 행위에 관해서 총체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책을 많이 읽자는 얘기도 아니고, 그 시대에 대한 아련한 회고(回顧)도 아니다. 지식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통해 과연 어떤 공부여야 하는지에 대한 반성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책도 별로 의미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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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의 책이 나올 때마다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았다. 이 번 책도 나오기가 무섭게 인터넷 서점으로 달려갔다. 한 장 두 장 넘기다 보니 금세 끝장까지 달려와 있었다.
강명관의 글은 처음이 어렵다. 첫눈에는 별로 문학적이지 않은 글이라 구두가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20~30쪽만 참고 읽어내려 가면 슬슬 풀리기 시작한다. 그만의 글맛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시간을 잊는다.
나도 본래 좀 삐딱선을 탄 사람이라 그런가 필치가 나카로운 강명관의 <책벌레>에 이론을 제기할 염을 갖지 않았다. 다 맞는 말이다! 통설에 따른 세종, 정조 이런 왕들의 모습이 뒤집어진다. 그렇다고 그들의 위업이 부정된다는 뜻은 아니다. 균형잡힌 제3의 시각이 마련된다는 말이다.
<책벌레들>을 읽으며 생각했다. 맞다, 조선은 책벌레들 즉, 선비의 나라였다. 그런데 이웃 나라인 중국에 비하면 웬지 폐쇄적인 나라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도 책벌레들, 공부 께나 한다는 사람들의 나라다. 하다 못해 어느 대기업에 취직하려해도 공부 못하면 전혀 기회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공부는 여전히 폐쇄적, 틀에 박힌 그 공부가 그 공부 아닌가?
답답하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시간을 두고 바꿔나가야 할 그런 현실이다. <책벌레들>을 읽으며 나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좀더 냉철하게 따져볼 기회를 가졌다. 참 좋은 책이다. 이 가을, 등불을 끌어당기며 읽어봄직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적어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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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조선의 지식세계에 대해 상식 수준에서 막연히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해 현대의 관점에서 매우 불만에 찬 눈빛으로 꼬나보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자랑하는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라는 게 유럽처럼 대중적인 지식의 확산에 기여한 바가 없으니 허풍떨 것 없다는 것이며, 성리학의 대가라고 치켜세운 퇴계나 율곡도 주자의 책에 각주나 다는 한심한 수준이라는 것이며, 개혁군주라고 칭송받는 정조는 사상탄압의 압제자이고, 최고의 문장가라는 박지원도 조선의 천재 이단아라는 허균도 실상을 파헤쳐 별 볼일 없는 과장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의 문제 제기가 통렬한 똥침으로 이어졌으면 좋았으련만 가벼운 쨉만 날리다가 헛스윙으로 끝나는 부분이 많아 아쉽다. 저자의 내공의 문제인지 출판사의 기획방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까려면 진중권이나 김용옥 식으로 아예 대놓고 쌍욕하면서 까던가, 아니면 정민 식으로 정공법을 택했으면 괜찮았을텐데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스탠스가 되어 욕을 먹게 된 책이다.
전반적으로 책의 완성도는 낮으나 학계 동업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 한 저자의 전복적 시선에서는 가히 취할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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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다독가의 후회가 낳은 독서록 그렇다면 홍석주는 왜 <독서록>을 만들었을까? 앞에 서문이 있다. 읽어보자. 나는 여섯 살 때 글을 읽을 줄 안 뒤로 이제 서른 해가 지났다. 박학과 다문에 뜻을 두기는 하였으되 그 요령을 터득하지 못해, 제자백가와 술수서에서 괴이쩍고 자질구레하고 불경스런 패관잡기의 이야기까지 또한 때때로 닥치면 닥치는 대로 읽어 대었던 것이다. 하지만 옛일을 알 수 있는 전적이나 세상을 경영하는 일에 대해서는 도리어 공부할 겨를이 없었다. 중도에 깨닫고 비로서 간약한 독서를 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총명이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 개탄스러웠고,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지 못하는 것만 절감하였다. 해서 늘 단정히 앉아 손으로 책을 만질 때면 멍하니 후회에 젖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 다독가라면 필연적으로 갖는 후회다. 젊은 시절의 난독이란 얼마나 후회스러운가. 다독가가 아닌 나 역시 쉰이 되어서야 젊은 시절의 무질서한 난독을 후회하고 있지만, 살아서는 그 병을 고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홍석주의 후회는 좋은 결과를 낳는다. 아우 헌중(홍길주의 자) 또한 학문에 뜻을 두어, 경사의 여러 책은 그 대략을 섭렵하였고, 그가 짓는 문장은 도도한 물과 같이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다. 만약 계속 노력하고 게으름을 피지 않는다면 그 성취는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헌중은 재주가 높고 민첩하여 얻는 것이 너무 쉽다. 나는 그가 스스로 만족해하면서 그칠까 두렵고, 또 그가 나처럼 마구 책을 읽어 요령을 깨치지 못할까 두렵다. 이에 내가 읽고 얻은 바가 있었던 것과 또 내가 읽고 싶었으나 읽지 못했던 책들을 뽑아 그 목록을 늘어놓고 그 개요를 기록해 하고나서, 헌중에게 "천하의 책 중에 볼 만한 것이 또한 많으니, 너는 모쪼록 힘써야 할 것이다" 하였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중에서- 회사의 도서관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책입니다. 학문적인 깊이나 독서에 관한 호기심은 있지만, 그렇다고 조선시대 책벌레들의 이야기까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바쁠 때일 수록 돌아가는 것도 필요한 것이라 위안하면서 집어들고 읽었습니다. 대학교수인 저자의 가끔 독설적인 의견이 마음에 걸리고, 고서에 대한 이해가 없어 고서를 언급한 부분은 대략 넘어갈 수 밖에 없었음에도 다시 국사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입니다. 아니, 그 시기에 이런 내용을 좀 배웠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용한 모든 인물들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황이나 이이, 정조, 정약용, 신채호의 책읽기와 책에 대한 생각은 가슴으로 읽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종교적으로 고민할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읽으면서 '나한테 이렇게 절실한 고민이 100년도 전에 쓰여진 소설이 주인공이 이미 고민했었다는 사실'에 명작(고서)에 대한 경의감이 생겼습니다. 오늘 이 책을 읽고 책읽기에 대한 생각 또한 크게 200년 전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위에 글은 다독이 지나쳐서 난독이 된 것에 대한 후회와 재주가 높은 자들이 스스로 만족해서 쉽게 그치는 것에 대한 경계가 묻어나 있습니다. 책의 주제와 관계없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인용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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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난 조선사에 대해서 잘모르니까 대부분 공감하면서 읽었는데 어떤분이 신랄하게 비판한리뷰를 보고 좀놀랐다.. 예를 들어 직지심경같은것은 난저자의생각에 많이 동감하는데.. 그게 세계최초이면 머하냔말이다..일반평민들은 책을 접해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조선지식인들이 중국에가서 책을 구입하는 상황이었다는 점만보더라도 수긍이 가지않을까?? 이미 이때부터 우리는 여러가지면에서 중국보다 한참뒤떨어진상태였던것이다.. 지금 우리가 기술이 몇년앞선다고 하지만 과연 다른모든부분에서 중국보다 앞선다고 말할수있을까?? 어떻게 보면 지나친 성리학중심주의가 조선과 향후우리나라를 망쳐놓았다고 말해도 되지않을까..서양은 이미몇백년을 앞서가고 중국과 일본은 이미 서양문물을 받아들여서 국력을 키우고있는데 우리는 선비라고 앉아서 공자왈맹자왈하고있으니 우리가 일본에 먹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만큼 폐쇄주의와 고립정책은 위험한것이리라....
조선시대에도 인물들이 많았고 책벌레들이 많았지만 그러한 지식들과 천재들이 내어놓은 정책들이 번번히 막히고 대중화되지 못했기때문에, 그러한 사회적인,구조적인 미숙함으로 인해서 우리는 지금 강대국의 대열에끼지못한것이 아닐까...
우리스스로를 보면 참 어떨때는 답답하다는 생각이든다..뒤로는 온갖호박씨를 다까면서 정식으로는 얌전한척위엄있는척, 권위있는척, 먼가 잘보이려고하고 가면을쓰고 체면을 차리는 우리네 민족성때문에 우리는 너무나도 알게모르게 피해를 당하는것같다...
그만큼 우리민족과 나라가 열린마음이 부족하고 보수적이고 수구적이며 개방적이지 못하고 새로운 사상과 기발한 아이디어와 창의력과 개혁적인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언젠가 평범한 일본인 직장인이 노벨상을 받았다는 기사가 우리를 충격에 빠뜨린적이 있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보면서 뭔가 반성해야하지 않을까?? 맨날 중국 짱개 일본 쪽바리..우리나라칭찬하면 그냥 입만해벌리고 있지 말고 뭔가 정말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국민들의 의식의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이 되지않는가 말이다...
글쎄..왜 이책을 읽고 이런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우리나라좋은나라..우리가 하면 다좋은것..우리나라를 지키고 FTA를 반대하면 애국하는 것이고 한글이 최고이고 직지심경이 세계최고이다.. 라는 것을 벗어나서 정말 우리가 가지고있는 마인드와 의식과 생각들이 깊고 선진적이고 깨어있는지... 우리개인개인의 생각과 국민전체의 마인드와 사회구조적인 모든 부분들이 뭔가 많이 배워야한다고 생각되어지지는 않는지... 우리나라는 여전히 후진국이다.. 비단 경제뿐만이 아니라 선진국으로부터 그들의 사상과 마인드와 개인의 이념과 신념과 어떤 가치들과 본질들에 대해서 배우고 일깨워야 한다....
책벌레.. 세종이나 이순신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조선시대때 나온것처럼 진정한 책벌레는 세상을 향한 외침과 행함이 있어야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