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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때가 되면 모두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지..나만 돌아갈 데가 없었단 말야..의자뺏기 게임 같은 거지..모든 것은 지나가고, 아무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하루키 소설,그의 처녀작에 가장 강하게 배어 있는 상실감은 붙들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나와 쥐가 함께 보낸 여름은 추억이 되어 버렸고, 다시는 붙잡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평범하게 살고 있는 지금, 누군가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그렇지만, 그들의 추억은 하트필드라는 잊혀진 작가의 이야기와 묘하게 결합되어 더할 수 없는 상실감을 남긴다.
"한 여름에 걸져서 나하고 쥐는 꼭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것처럼 이십 오미터 풀 하나분의 맥주를 들이마셨고, '제이스 바' 마루 가득히 오 센티미터 두꺼로 땅콩 껍질을 어질러 놓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한 여름이었기 때문이다..."그들의 청년시절은 그렇제 지루했고, 습기찬 공기처럼 무겁게, 진부하게 흘러갔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 그때를 동경하고 있는 걸일까. 아무것도 변한 것 없는 삶 속에서, 그 때를 동경하는 것은, 지금 역지 자신의 의자를 차지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함께 했던- 이제는 죽어버려 되돌아 올 수 없는-여자들에 대한 헛된 추억 때문일까. 누구든 돌아갈 수 있는 자리가 있지만, 나에게만은 그 자리가 없는 느낌..하루키의 어느 소설보다도 강하게 얽어매어진 상/실/감..그것이 그의 처녀작을 막 다읽은 나에게도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다. [인상깊은구절] 왕년에 누구나가 쿨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시기가있다. 고등 학교가 끝날 즈음, 나는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의 반밖에는 입 밖에 내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이유는 잊어버렸지만 그 생각을 몇 년인가에 걸쳐 나는 실천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내가 자기가 생각한 것의 반밖엔 말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이 쿨함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나로써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일년 내내 서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오래된 냉장고를 쿨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도 그렇다...그렇게 해서 나는 시간의 웅덩이 안에서 금방 잠들려고 하는 의식을 맥주와 담배로 걷어차면서 이문장을 쓰고 있다... |
| 하루키의 문체가 이제 익숙해져버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에 대해 여럿이 제각각의 평을 내리겠지만,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문학은 기교의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서의 '기교의 문학'이 하루키를 폄하하는 의도에서 쓴 것은 아니다. '기교가 있다는 것'은 형식과 내용을 아우른다. 그만의 식으로 풀어낸다는 것을 나름으로 분석할 수는 있겠으나, 해체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약간의 허무주의 혹은 니힐리즘, 그리고 상실감, 내면에의 작위적 단절. 그러나 그것들을 합쳐 하루키의 문학을 재생산할 수는 없으리란 얘기다. 그런데 하루키의 이 데뷔작만큼은 쉽사리 읽혀지지 않는다. 수록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은 하루키 문체의 정형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웬지 맘 속에 착 가라앉혀 들어지지가 않는다. 창해에서 나온 하루키의 세 단편 모음집, <개똥벌레>,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빵가게 재습격>들은 참 쉽게 읽혔는데 말이다. 시점의 이동이 잦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지 못한채로 책장을 넘기는 것이 또 하루키의 데뷔작답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이후 작품들의 문체를 성취하고 있는 작품이니, 하루키의 팬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둘만한 책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