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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어떠한 타이틀을 걸고 있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무슨 상을 받았다느니, 베스트셀러라느니 하는 타이틀을 걸고 있는 책을 보고 실망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내 생각일지도 모르나 그런 타이틀을 걸고 있는 책들은 책을 읽기 전에 환상을 심어줘서 객관적으로 그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근래에는 마해송, 사계절, 창비좋은책, 비룡소 등 알만한 출판사에서 큰 상금과 상을 내걸고 뽑은 책들은 속속들이 내놓는데 글쎄... 그다지 끄덕일 만한 ....바로 이것이다 할만한 책을 만나보진 못했다. 짜임새로 봐서는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읽고 나면 금방 잊혀지고 마는 책들 같다. 한마디로 말해서 기교는 있고 감동이 없다고 생각한다. 읽고 나면 아 바로 이것이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책들은 오히려 조용히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들이다. 문학상이 가지는 의미가 오히려 퇴색되지 않을까 우려도 되고 차라리 그럴 바에는 바람의 아이들처럼 좋은 신인들의 글을 찾아내 그들을 발굴하는데 힘을 쏟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리뷰를 처음 쓰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문학상 운운했던 것은, 타이틀을 걸고 나온 책들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였는데 말이 길어진 것 같다.
얼마전 두 개의 단편소설집을 샀다. 하나는 바람의 아이들에서 나온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이고, 다른 하나는 창비에서 나온 <라일락 피면>이다. 바람의 아이들 책은 꼼꼼하게 챙겨 읽어서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고 창비에서는 청소년문학 <구덩이>를 재미있게 읽은 터라 한국작가들의 청소년단편소설은 어떨지 궁금했던 차에 이 책이 나와 반가웠다.
책은 오래도록 되씹으며 곱씹으며 읽었다. 모든 작품을 말하기에는 힘들기 때문에 몇 몇 작품만 거론하고 싶다. 우선 전체적인 평을 말하자면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은 공통된 어떤 주제가 없어서 산만하고 문학적으로 수준이 서로들 너무 차이가 많이 난다고 생각이 된다. 평균적으로 수준이 고르지 못하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일 것이다. 바람의 아이들은 좋은 원고를 선별해서 나오기로 신뢰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급하게 만든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이경혜의 글을 빼고는 그저 그렇거나 그나마, 이거나 한 쪽이었다. 타이틀작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은 평균적인 작품이고 김혜진 작가의 감각이 나오려다 만 작품 같다.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어느 블로거의 평처럼, 무언가 짠하게 남겨주는 게 없다는 게 이 책의 한계이자 치부이다.
그런 점에서 <라일락 피면>이 문학적으로는 훨씬 나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바람의 아이들 책들을 좋아해서 창비책에 손을 들어주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라일락 피면은 <선택>이라는 공통된 주제 안에서 8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선택의 갈래들을 보여준다. 공통된 주제가 있어서 그런지 8개의 글이 갈래가 모아지고 그만큼 집중력도 있었다고 본다. 다만 아쉬운 건 그런 공통된 주제가 있어서 무언가 좀 갑갑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보다는 문학적으로 더 나은 작품이지만 두 책 다 청소년들을 위한 대단한 책이다라고는 선뜻 말하기가 어렵다.
공선옥의 작품은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청소년들에게 알게 해준다는 것에서는 의미를 높이 두지만 급하게 글을 마무리 해버렸다는 게 눈에 빤하게 보인다. 만약 요즘 청소년들을 생각했다면 작가가 조금만 더 요즘 청소년들을 생각해주었다면 옛날 회상법이 아닌 오늘날의 시선에서 광주항쟁에 대한 얘기를 풀어나갔으면 어땠을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방미진의 작품은 재미있고 통통 튀는 재치를 보여주었으나 읽고 나면 역시 꽁트를 보는 선에서 머무르는 글이다.
지금은 이런 가정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진원의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는 정말 이런 가정이 있을까 하면서도 나중에는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 글이다. 글을 풀어가는 방법과 의미에서 천천히 호흡을 고르고 위트와 진중함을 저울질하며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작품이다. 재미는 있는데 감동이 없거나 완벽하긴 한데 재미가 없는 작품들에서 이 작품은 재미와 감동을 반반씩 품고 있는 글이다.짠하고 울리는 무언가가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으나 마음을 울리는 '종'을 품고 있는 글이였다. 주인공 보린은 당당하고 당돌하게 말하는 아이지만 그 속에는 누구보다 큰 연민과 상처가 있는 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태양이 눈부셨기에, 나는 태아처럼 움츠러들었다.'는 표현은 그래서 더욱 눈부시게 다가왔다. 선택이 꼭 행복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불행해 보이는 것을 선택하게 되더라도 그 불행을 행복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두 책 중에서 좋았던 작품을 꼽으라면 이경혜, 오진원의 작품을 망설이지 않고 말하겠다. 이경혜의 작품은 모두 고루 읽어보고 있어서 이번에도 역시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의 단편작품을 오랜만에 보아서 더욱 반가웠다. 한 작가에 대해 지나치게 편을 드는 것은 우스운 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번 작품은 무언가 좀 빠진 듯 하면서도 그 느슨함이 오히려 매력이 되었다.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글을 풀어나가는 그녀의 눈이 어두워지지 않았음을 증명해 준다. 오진원의 작품은 선택이라는 것이 꼭 행복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절망에서도 행복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준 글이었고, 정성을 다해 쓴 글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가장 어린 나이의 작가여서 가장 쉬운 주제로 무난하게 타협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것이 이 글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일 게다.
2. 청소년단편집이라는 타이틀이 독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목적을 갖고 모인 글이기 때문에 더욱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지 않겠나. 앞으로의 작품들은 조금 더 실험적이고 당당하고 당돌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청소년소설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작품들을 보면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어깨에도 힘이 들어간다. 우리 모두 청소년기를 지나오지 않았는가. 청소년기에는 실험과 도전에 목말라 하고 껍질을 뚫고 나아가고 싶어하는 시기이다. 작가들이 더욱 자유롭고 실험적이 되기를 바란다. 어떤 기준과 잣대로 청소년을 묶어두지 않기를 바란다. 두 갈래의 길을 만나 기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너무하게 평가를 한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나의 본심은 그래도 이 척박한 나라에 청소년을 위한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는 두 출판사가 예쁘게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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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십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것처럼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공선옥, 성석제, 표명희 등등 중견작가들의 십대 이야기가 여덟 편이 실려 있다. 어른들이 함께 읽기에 좋은 창비의 청소년문학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그 동안 읽은 <우리들의 스캔들>과 <구덩이>만으로도 벌써 이 시리즈의 문학적인 수준을 짐작할 만하다. <할머니의 연애시대>는 아직 못 읽었지만도.
이 시리즈의 특징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십대들이 느끼고 십대들이 사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나라고 다를 소냐. 나도 이 아이들처럼 똑같은 십대를 지났다. 물론 시대가 바뀌어 하는 얘기,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때론 위태롭고 때론 사랑스러운 십대의 기본은 바뀌지 않았다. 지나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로 얼마나 많이 웃고 또 많이 울었던지 말이다.
이 작품집은 앞서 읽었던 장편들과 다르게 단편들이어서 그런지 그 느낌이 좀 다르긴 했다.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톤은 장중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현실적이기도 했다. 또한 그 이야기들의 다양성이라니... 선택에도 그 기준과 결정, 원인이 모두 다른 것처럼 말이다.
제일 재밌게 읽었던 것은 성석제의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이었다. 두 사람을 전면에 내세워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가면서 어떻게 하나가 유명한 화가가 되고 또 하나는 그 화가를 기억하는 한 아줌마(!)가 되었는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반전이라면 반전이랄 수 있는 대단한 비밀도 숨겨져 있다.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열망이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새순 같은 감정의 여린 싹이 두터운 어둠의 층을 뚫고 세상을 향해 움터 올랐다.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할리’에 올랐다. 열쇠를 꽂고 시동을 걸었다. 부릉부릉~ 할리의 심장 소리가 힘 있고 듬직하게 울려 나왔다.”
이 이야기들을 읽는 모든 십대들의 심장 소리도 이와 같이 힘차게 부릉부릉~ 거렸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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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동떨어진 느낌,나하나 세상에서 사라지면 모두가 행복할지 모른다는 여물지 않는 자아,정확하게 말하면 여물어 가는 과정의 나를 만나게 되었던 먼 기억 속의 날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 속에서 웅크린 모습으로 울고 있는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불안정한 자아의 시간들을 만나는 시간을 우리는 청소년의 시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요즘 청소년이라는 말을 쓰기가 무색하게 아이들은 금세 어른이 되버린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게 다 쉬울 꺼라 여겼었던 어리석음은 어른이 되고 난 후에야 알게 된다. 분명 어른이라고 불리지만 여전하게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무엇인가를 버린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힘겨운 일이다. 그러기에 이 책 속에서 만나는 8편의 소설 속의 주인공이 결정하고 취하게 될 선택이 얼마나 아름다운 과정임을 안다. 청소년문학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는 창비의 새로운 시도에 반색하는 이는 나뿐만이 아니리라. 또한 좋아하는 작가들의 새로운 글들을 만나게 되어서 더 좋았었다.
선택이라는 말에는 책임도 따르고 후회도 따른다. 그 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달라졌겠지 하는 미련도 있을 것이고 내가 선택했으니까 최선을 다해야지 하며 열심을 내기도 한다. 여러 가기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보기에 대한 글들을 만나게 된다.
여전하게 아픔으로 남아있는 80년대 광주에 숨쉬는 10대 소년 소녀의 아름다운 몸짓을 그린 공선옥님의 라일락 피면 주관적인 해석으로 일반화 시키려는 무서운 여론의 패단을 혈액형이라는 소재로 유쾌하게 풀어간 방미진님의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 하나의 에피소드에 따른 두 명의 시선보기로 쓰여져 그 사건으로 인해 인생이 달라지는 아이러니 하면서 그게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은 성석제님의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세상에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것은 결국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와의 소통이었음을 말해주고 싶은 오수연님의 너와 함께 동성애적인 코드와 그 안에서 진정한 가족애를 만나게 하고 싶었던 오진원님의 굿바이,메리 개리스마스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또 한 걸음 그 세상과 어울리며 눈물겨운 성장통을 앓고 있는 조은이님의 헤바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세상에 당당하게 홀로 서려하는 자아를 표현하는 최인석님의 쉰아홉 개의 이빨 진정으로 세상과 소통하기를 열망하는 외톨이 족의 진심을 꺼내보려 했던 표명희님의 널 위해 준비했어.
8편 모두 참으로 눈부시고 아름다운 글들이었다. 책 속에서 나는 좌절하고 절망하는 청춘들을 본다.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도전을 향한 고분분투하는 몸부림을 느낀다. 그 몸부림으로 인해 몸과 영혼은 상처를 입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가 아물면서 성장하고 또 다른 자아로 태어나게 되리라.
누가 나와 함께 가주지? 처음부터 끝까지 나랑 같이 가줄 사람은 누구지? 중간에 떠나지도 않고,마음이 변하지도 않고,나한테 실망하지도 않고,나를 오해하지도 않고, 늘 함께 가줄 사람은 누구지? 125쪽 별은 빛나는 게 아리라 빛을 내기 위해 잠시 구져지는 것뿐이라고.그래서 인생이 쉽지 않은 거라고.구겨지는 게 인생이라면,난 마음껏 구겨질 거야.그래서 마음껏 빛나겠어.153쪽
이렇게 눈물겨운 문장이 이 책을 다 보여주지는 못하겠지만 고민하고 갈등하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삶이라는 것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그 아이들이 겪어내야 할 그리고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길고 험한 길에 좋은 친구가 될 만한 책이라 지나쳐도 좋을만큼의 강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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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청년과 소년, 그 언저리를 표류하는 존재. 청년과 소년 사이, 누구나 그 터널을 홀로 지나야만 하고, 지나왔다. 어떤 이에게 그 터널은‘삼백오십팔’년쯤은 걸리는 듯 길게 느껴질 수도 있고,‘구약의 신의 무시무시한 분노와 징계 아래’놓여있는 듯 무섭고 아플 수도 있다. 한편 어떤 이에게 그 터널은‘사막여우 한 마리가 모래언덕을 뛰어오르는’일순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터널의 풍경은 각기 다르지만, 그 터널을 지나는 존재, 청소년은 그 존재 고유의 불안정한 성격 때문에 불안하고 쓸쓸하고 혼란에 차 있다. 이러한 흐릿한 존재감 때문인지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문학작품이란 것도 뚜렷하게 존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누구보다도 이들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빛, 거울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이러한 현실을 보완하기 위해 창작과비평(이하 창비)에서‘창비청소년문학’시리즈를 선보인다. 그 작품집 중 하나가『라일락 피면』이다. 고민은 어른만 하냐? 까놓고 말해서 우리 때가 가장 고민 많을 때 아니냐? 80년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인 광주항쟁. 공선옥의 「라일락 피면」은 그 참혹한 시절을 만나 꽃이 지듯 스러진 푸른 존재들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언제나 집안에 분란만 일으키는 말썽쟁이 큰형과, 시험을 앞두고 데모하러 다니는 친구 우식, 석진의 마음에 봄바람을 일렁이게 하는 문간방 소녀 윤희. 광주 거리가 초토화되고 무고한 사람들이 이유를 모르고 죽어가던 그때, 석진은 다락의 어둠 속에 은신하지만, 큰형과 우식과 윤희는 피바람 몰아치는 거리로 나가 푸른 목숨을 내던진다. 그들의 죽음 앞에서 석진은 자신이 있어야 곳은 집도 아니고 그 어디도 아닌 바로 눈앞의 현실, 피의 거리라는 것을 절감하고 그 속으로 뛰어든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영화‘몽상가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영희는 도대체 무슨 놈의 혈액형이냐고? 아직도 그걸 묻고 싶니?
방미진의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혈액형 이야기이다.‘B형 남자친구’라는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우리나라는 혈액형별 성격유형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다. 혈액형 하나로 사람을 구분 짓는다는 것은 얼마나 그릇된 일인가.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재미 삼아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방미진이 그린 일군의 중학생들은 장난이 아니다. 영희의 혈액형이 O형이 아닐 것이라는 근거 없는 전제하에, 그야말로 혈액형에 관한 수다를 떨고 있다. 그리고 이 수다는 잡담에 지나지 않는다.
내 모든 색깔의 원형은, 이상은 그날 그 하얀 시멘트 길과 그 위의 흰 햇빛이야.
“그때 말해야 했을까?”로 시작되는 성석제의「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은 어린시절 사생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현재 유명화가의 자리까지 오른 백선규와, 그 대상수상작의 진짜 주인인 또 다른 화자의 진술이 교차 시점을 통해 이어진다. 이미 사생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백선규는 자만 섞인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만, 강당에 전시된 대상수상작을 보는 순간 그 그림이 자신의 그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백선규와 마찬가지로 사생대회에 나간 자줏빛 원피스의 소녀가 실수로 백선규의 번호를 적어 넣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실수로 얻어진 행운, 그 우연한 상황 속에서 백선규는 침묵을 선택하고, 최고의 화가라는 절찬 속에서도 그의 죄의식과 열등감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 죄의식과 열등감이 그를 최고의 화가로 만들었다는 고백 속에서,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우연의 의미와 그 결과에 대해 곱씹어볼 수 있다. 깊이 있는 작품이다. 어쩌면 마지막에 마지막밖에 없는 마지막 날들로, 가자.
오수연의「너와 함께」에서‘너’는 분열된 또 하나의‘나’이다. 엄마와의 불화로 가출한 소년의‘갈등상태’ 내지는‘자기성찰’의 묘사가 독특하게 전개되어 있는 작품으로, 불안과 혼돈에 사로잡힌‘집 밖의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은 기묘하다. 가히 환상적이다. 이 환상은 파랗고 빨간 불빛으로 깜박거리는 신호등처럼 불안하다. 추운 길바닥에 나와 있는 연약한 토끼들,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한 발짝 거리에 검은 밀물이 쑥쑥 올라오는 방파제, 서로의 발을 잡고 원이 되어 굴렁쇠처럼 굴러가는 아주머니들, 숨 막히도록 뒤엉킨 막차 안의 사람들, 공사 중인 지하도. 소설 후반부까지 함께하던‘너’는“녀석은 내게로, 나는 녀석에게로 스르르 미끄러졌다. 우리는 두 손을 맞잡았다. 녀석은 내게로 들어오고 나는 녀석에게로 들어갔다. 우리는 딱 겹쳐졌다.”라는 문장을 끝으로 사라지고,‘아파트 단지마저 지나 별도 없는 캄캄한 하늘로 이어진’길 위에 소년은 홀로 남는다. 아마도 소년은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혼자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 그럼 조금은 쉽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원한 건 쉬운 삶이 아니었어. 당신들과 함께하는 삶이었어.
동성애자들, 성적소수자들의 커밍아웃은 더이상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삶은 슬프고 외롭다.「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는 동성커플의 자식으로 살아가는 보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속옷 디자이너로 일하는 보린의 아빠는 외국어학원 강사로 일하는 남자 폴과 동거 중이다. 이들은‘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기 위해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인정해주는 네덜란드 이민을 꿈꾸지만, 폴의 배신으로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그들의 크리스마스는 그래서‘개리스마스’가 되지만, 보린은 아빠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닫고, 울음을 삼킨다. 씩씩한 보린이와 아빠는 부조리한 세상을 잘 헤쳐나가리라 믿어본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나비가 아니었을까. 조은이의「헤바HEBA」는 청춘의 여신이란 뜻이다. 중학생 소년 성호에게 이종사촌 윤이 누나가 선물한 지구본의 이름이기도 한‘헤바’는 작품의 의미를 잘 드러내주는 제목이다. 학교를 자퇴하고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온 윤이 누나는 뚜렷한 주관과 자유로운 사고방식의 소유자로, 중학생인 성호에게 또 다른 세상을 펼쳐 보여준다. 성호는 윤이 누나의 세계에 점점 빠져들고, 누나와 단둘이 사막의 불타는 별들 아래 있는 꿈을 꾼다. 하지만 누나가 사막에 단둘이 가길 원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성호는 아릿한 성장통을 치러낸다. 그리고 자신의 안에 숨겨진 날개를 발견한다.
나는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거울 속에서 나 자신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넘겨다보았다. 나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내 이빨 좀 세어봐요.
최인석의「쉰아홉 개의 이빨」. 쉰아홉 개의 이빨을 가진 아버지를 괴물이라 여겼던 어린시절의‘나’는 어느 날 엄마로부터 돌아가신 아버지의 젊은 시절 위대한 활약상을 듣고 아버지의 정의로운 삶을 자신의 모델로 삼는다. 쉰아홉 개의 이빨을 가졌던 위대한 아버지와는 달리, 교회 목사인 새아버지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권위를 휘둘러 자식들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는 위선자이다.‘나’는 이 불합리한 상황에 저항하고 싶지만 엄마의 평온한 삶을 위해 이를 악물고 참는다. 그때마다 하나씩 늘어가는 이빨의 수효를 헤아리면서 아버지의 정의로운 삶에 한걸음 가까워졌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러던 어느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밤, 휘갈겨 쓴 상형문자처럼 나무들이 몸부림치는 풍경을 바라보며‘나’는 가출을 결심한다.
기다려 앨리스, 너를 만나러 갈게. 우리, 섬진강 꽃길을 함께 달리는 거야.
세상과의 불화로 각자의 세계에 웅크리고 있는 앨리스와 빔벤더는 사회공포증 동호회 사이트 대화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다. 저마다의 아픔과 절망으로 세상과 멀어진 두 남녀는 솔직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나아가 서로에게 세상의 창이 되어준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 표명희의「널 위해 준비했어」는 어둠의 터널 속을 지나는 앨리스와 빔벤더의 시간을 발랄한 터치로 그려내고 있다.
본격적 청소년문학은 처음으로 접한다. 나는 이제 청소년이 아니지만,‘청소년문학’시리즈 출간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분명 청소년들에게도 문학계에게도 하나의 빛과 같은 소식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기대가 컸던 것일까. 청소년문학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 소설집은 청소년들의 선택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접근방식이 과연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쉽게 공감할 만한 것인지는 의문이 들었다. 소설의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성인소설과 별다를 것이 없다. 청소년문학이란 경계를 확실히 구분 지어줄 만한 그 무엇이 아쉬웠다. 이 작품집은 기존의 동화작가와 소설가들이 썼다. 앞으로 청소년문학가,라는 새로운 작가군의 발굴을 기대해본다. 청소년문학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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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소년 소설이 많이 나오는 편인것 같다. 이 책은 창비라는 출판사를 믿고 산 책중의 하나인데 솔직하게 말하면 청소년 소설이 아닌 것 같다. 8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 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어른을 위한 추억의 소설인 것 같다. 요즘의 청소년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간과한체 그저 출판사의 역량만 믿고 출판한 책같은 느낌이 들이 진솔하지 못한 면이 있는 것 같았다.
표제작인 라일락이 피면이라는 작품도 80년대 광주사태가 배경이라서 웬지 거부감을 지울수가 없었다. 물론 한 사춘기 고등학생의 순수한 사랑을 표현했지만 표제작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두번째 작품인 혈액형에 관한 이야기도 지금의 청소년들이 고민할법한 이야기이지만 너무 상세하게 이야기를 전개해서 지루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여덟 작품모두 지금의 청소년들이 읽어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한 작품도 없는 것 같다. 창비라는 출판사만 믿고 책을 샀는 시행착오는 다시 하지 말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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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라일락 피면> 을 읽으며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성석제의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이다. 청소년 문학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들에게 어렵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비교적 선택과 인생의 방향에 대해 쉽게 그려낸 소설. 운이 좋은건지 과제 발표도 이 작품으로 하게됐다. 이하 과제 전문^^ -- 성석제 작가의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은 인생의 선택과 우연성에 관한 이야기다. 어린 선규는 그림에 재능을 보인다. 그는 초등학생 때 어느 학예대회에서 대상을 받는데, 대상을 받은 작품이 자신이 낸 작품이 아님을 알게 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이후 그는 유명화가가 된다. 한편 대상을 받은 작품의 주인인 여자는 선규가 자신의 작품으로 대상을 받은 것을 알지만 그녀 역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림 애호가로 살아간다. 우리는 두 인생에 어느 하나 문제점을 제기할 수 없다. 선규가 ‘그 일이 일어난 건 내 탓이 아냐. 그건 확실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어. 우연이야. 아니 누군가의 실수지. 내 실수는 아니라구.’(p. 71) 말한다. 그는 학예대회 때 남의 작품으로 대상을 받은 사건을 어른이 되어서도 회상하지만 그 회상은 자책 이하이다. 어쩌면 그 일을 고뇌했기 때문에 유명화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물론 ‘남 덕분에 화가가 된 그가 행복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곧 ‘그가 정말 남 덕분에 화가가 된 것일까?’ 라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학예회에서의 일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하나의 큰 사건이긴 하나, 화가가 된 하나의 ‘시발점’으로 보는 것이 어쩌면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여자 역시 그녀가 화가가 되지 않은 것을 우리가 동정하거나 비판할 수 없다. 그녀는 ‘나는 그런 상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도 행복해. 그런 스트레스를 받는 것 자체가 싫어. 왜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p. 92) 라고 독백한다. 도덕성을 반하는 선택이라 해도 그녀는 그 사건을 통해 그녀는 만족한 삶을 살아가게 됐는데, 어찌 우리가 함부로 인생의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있겠는가. 성석제 작가는 소설을 통해 얼핏 인생의 허무성을 이야기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될 놈은 된다’는 ‘운명론적 사고’ 말이다. 하지만 소설을 위와 같이 곱씹다 보면 소설은 인생의 허무함이 아니라 ‘우연성’과 ‘인생의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점에서 소설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청소년은 아직 인생을 통찰하기에는 어린나이라고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이 ‘권선징악’ 주제에 길들여진 청소년에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독자 모두가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는 보장은 없다. 나는 이 점에서 소설을 비판하고 싶다.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결론을 도달하게 되는 것은 사실 소설의 재미이자 가치일 수 있지만, 청소년 문학에서는 조금 예외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작품들을 보면 작가는 ‘?’를 던지고 ‘!’는 독자가 구현해야 하는 식의 이야기들이 많다. 이는 마치 현대문학의 트렌드마냥 퍼지고 있다. 작품에서 작가의 개입이 최소화 되는 것이다. 성석제의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역시 ‘?’를 던지고 있다. 작품에서 작가가 많이 개입하지는 않는다. 다만 교차시선을 통해 두 주인공이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청소년들이 이 소설에서 ‘올바른‘!’’를 구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청소년들은 서사구조가 분명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한다. 교과서에 나온 ‘권선징악’이 주제인 소설을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로 분석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서사구조를 나누기 어렵다. 때문에 청소년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인생의 허무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어쩌면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조차 감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필자가 요즘 청소년들의 교양정도를 낮게 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이뤄지고 있는 문학교육을 고려하고, 실제 청소년들이 접하는 'narrative'성 미디어를 생각한다면 결코 기우라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 나의 우려가 청소년들의 문학수준을 묶어두려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기준과 잣대로 청소년들에게 주제와 형식을 제한한 소설만을 제공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자유로운 문학감상을 방해하는 문학교육과 천편일률적인 대중문화를 비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는 당장 개혁할 수 없는 문제이거니와 문학의 분야에서는 청소년 문학이 과도기적 과정을 지나고 있다는 전제 하에 내리는, 문학에 관심이 많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아직은 협소한 개인의 비루한 의견이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얼마 전 김영하 작가의 퀴즈쇼 리뷰에 썻던 문구를 고대로 과제에 배껴썼다. '?를 던지면 !로 받으세요!' 부족하긴 하지만 작가와 독자, ?와 !의 비유는 현대문학의 대표 양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치 인생에 점 같은 사건이 때로는 전 인생을 이끌 동력이 되기도 한다. 소설은 도덕성이나 잣대를 이야기 하는 것대신 인생이라는 큰 굴레에 대해 위와 같은 깊은 사색을 담았다. 때문에 더욱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나의 청소년 시절, 인생 전체를 보지 못하고 당장 눈 앞만 헤맸던, 깨어있어도 늘 막연하고 흐릿했던 시절에 이 소설을 봤다면 나는 조금 더 많은 생각들을 품었을 수 있을까? 가만가만 생각해 보니 지금도 인생의 전체는 보지 못하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애써 애면하는 것 같아서 나는 여전히 성장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인생 전체를 볼 수 있을까, 봐도 될까'라는- 어제 저녁 내가 울음터를 찾게 한 그 질문에 또다시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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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말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났다. 사실 동화작가들이 모여 쓴 단편집이라고 해서 '뭐 대충 아름다운 얘기들이겠지' 하고 별 기대 안했었는데, 첫번째 작품 "라일락 피면" 을 읽고 나서부터 나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10대에 한 선택이 인생을 달라지게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그렇다' 라고 생각한다. 순수하기에 그만큼 맹목적인 시절. 그렇기에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도 그 파급력이 결코 작지 않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웬만해서는 결코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는 충동적인 그 무언가.
이 책에서 가장 감명깊에 읽은 작품은 <라일락 피면> 이다. 처음 앞부분을 읽을 때만 해도 주인공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풋풋한 사랑얘기인 줄로만 알았다. 흐뭇한 미소를 띠고 읽고 있는데 난데없는 깨달음. 이 작품 속의 배경이 광주민주항쟁 때라는 걸 알고는 나도 모르게 비극을 예감했던 것 같다. 결코 바라지 않았지만.
10대라서, 10대이기에 할 수 있었던 선택. 그리고 행동.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그들의 선택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찬란하다. 우리는 모두 10대의 긴 터널을 지나왔기에 그 시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빛이 얼마나 찬란한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살고 있던 그 당시에는 결코 이것을 알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또 충만했던 나날들. 지금 10대를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그들만의 아름다운 선택을 하길 바라며 조용히 책을 덮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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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편의 이야기라는 부제속에 가볍게 생각하고 만났다 아주 심오한 사고속으로 들어가게되었다. 인생의 어느 한순간 중요하지 않을때가 없겠지만 10대의 선택은 전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첫번째이자 최대의 고비가 아닌가한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의 이야기속에 절대 평범을 꿈꾸고 있는 이야기 들은 나의 어릴적 뜻하지 않은 사고들로 힘들때마다 평범, 절대 평범을 외치 던 나의 옛시절을 둘러보게도 해준다.
한동안 탐닉했던 단편문학의 느낌이 많이 묻어나오고 있는 이야기의 결말은 이야기가 끝난후에도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 막 10대 청소년기에 접어든 나의 큰 딸을 한번 바라보면서 조금은 난 해한 이 이야기를 저 아이는 어떻게 해석하면서 읽을까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난후에 이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수 있게 될것인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린시절 선택할수 없었던 환경속에서 10대 그들의인생을 책임지기 시작하는 시기에 무언가에 대한 선택이 시작되고 있는 아이들은 많은 고민과 번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왜 그래야하는지 지금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맞이한 광주항쟁속의 석진이는 풋풋한 설레임으로 다가왔던 윤희의 죽음과 친구 우진이의 학생운동에 열정적인 모습속에서 자신의 자리는 어디일까 난 어 떤 선택을 해야하는걸까 라는 답을 찾기위한 발걸음을 하고 있다 그 선택에서 답을 찾던 영원히 찾지 못하던 그 결과는 오직 자신의 선택한 결과에 책임져야하는 자신의 몫이 되는것이다.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속의 주인공 보닌은 동성애간 가정에서 두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였다. 자신의 가족이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것을 아주 나중에서야 깨닫게되면서 선택당해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이제는 선택해야만하는 상황속에서 정상적인 사랑이든, 정상적이지 못한 사랑이든 사람들의 인생속에 사람은 다 같은 개념인것을 알아가고 있다. 8편의 이야기 모두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평범함을 가장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선택의 여운속에서 나에게 닥쳐올 선택의 시간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준비해야하는걸까 마음속에 담아져 있는 막연한 미래에 대해 밖으로 꺼내보며 생각 해보게 하고있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자신의 인생을 준비하는 10대 그들에게 선택의 시간들은 서서히 찾아오고 있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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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지 않은 삶이 아쉬워서 나를 돌아보면 이해되지 않는 내가있다. 하지만 곰곰히 돌이켜서 기억해내면 그때의 나는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었다. 물론 용기가 없어서 남이 선택해 준 것을 따른 적도 있고, 경솔하게 선택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게 인생인 것을… , 또 설사 지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그 때 했더라도 내 인생의 큰 줄기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 이니까… 이런 생각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라일락 피면’ 에서는 사회성 짙은 의식 때문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화가 치밀고, 받아들일 수 없어서 뛰어드는 석진이 있다. 그 시절 광주의 시민들은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머리보다 가슴이 앞서서 행동하게 했을 것이다. 약간 정치적이어서 청소년문학과 맞지 않다는 생각이 처음에 들었었다. 하지만 나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들 또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누구보다 더 정치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영희가 0형을 선택한 이유’는 읽으면서 계속 웃음이 났다. 내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계속되는 수다와 물고 물리는 별 것 아닌 얘기 속에 친구의 아픔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었다.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은 내용과 구성 모든 면에서 참 재미있었다. 둘 다 용기가 없어서 한 선택이지만 어쩌면 인생의 큰 방향점 이었을지도 모른 결정적인 선택이었다. 특히 ‘너와 함께’는 답답한 현실을 피하기 위해 일탈을 감행하나 그곳에는 무섭고 낯 설은 현실만이 나를 기다린다. 내 곁에는 아무도 없고, 세상은 점점 기괴해져만 가고, 머리 속에는 불쌍한 토끼의 모습이 나를 죄책감에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괴로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나를 지켜주는 것은 나 밖에 없다. 어쩌면 혼자라서 외롭지만 절대로 등 돌리지 않을 믿음직한 내가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용기있게 건널목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 는 너무 안쓰러운 아이가 나온다. 현실의 보린이는 이렇게 담담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엄마라서 그런지 읽는 내내 몹시 괴로웠다. 차라리 울면서 반항이라도 하지. 성 소수자들의 인생도 가슴 아프지만, 그런식으로 아이를 만들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헤바’는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중학생의 이야기이다. 아동문학적인 문체가 많이 느껴지는 글로 아슬아슬하면서도 재미있게 읽었다. 자유로운 삶에 대해서 다룬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쉰아홉 개의 이빨’ 은 인생의 역경을 겪을 때마다 이가 생겨나는 아빠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아이 또한 강압과 폭력 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움에 고통 받으며 그 삶에 맞서는 아이의 성장을 그린 글이다. 아이의 이가 늘어나면서 아이 또한 아빠가 그랬듯이 삶에 치열하게 맞서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널 위해 준비했어’ 는 우울증 때문에 세상과 단절했던 아이가 드디어 세상 속으로 첫발을 내디디는 글이다. 아이를 깊이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초등생들의 고민이나 관심을 다룬 책들은 시중에 많이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생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보다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주로 고전을 읽는다. 어른의 눈으로 10대를 바라보려 하지 말고,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노력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초등 저학년인 내아이가 중학생이 될때쯤이면 많은 책들이 아이를 기다릴 꺼라는 기대를 하게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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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에 대한 자료까지 보내준 것에 대해 참 세심하게 배려했구나 생각했습니다.
첫인상이 좋아서 두근두근 했는데 역시 좋았습니다!
19살, 10대의 마지막 문앞에 서 있는 지금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청소년이구나 라고 간절히 느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첫번째 이야기 '라일락 피면'
5.18 광주 민주 항쟁을 배경으로 한 가슴 아픈 이야기였습니다.
주인공이 선뜻 항쟁에 참가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면서
학교에 대한 불만, 사회에 대한 불만을 품으면서도 그저 불만에만 그치는 제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마음에 두던 아이의 죽음과 친구와 형이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인공도 그 항쟁에 참가하지만 결국 벚꽃 날리는 아름다운 봄날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죠.
후에 주인공의 어머니의 말씀에서 눈물을 찔끔했습니다.
잔인한 정치 때문에 미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이들을 보며 참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
가볍게 읽혔지만 가슴 한 구석이 무거워지고 마음이 따끔했습니다.
오늘도 학교에서 혈액형 얘기가 나왔는데 이 단편에 나오는 부분과 정말 똑같이 일어나는 상황에
혼자서 실실 웃었답니다.
이 작품을 읽고 좀 더 사람을 알아갈 때는 드러나는 것이 아닌 그 속의 깊은 면을 봐야하고
주어진 틀에 얽지 말고 본래 그 사람을 봐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항상 몇 가지 안되는 조건에 맞추어 그 고정관념에 따라 사람을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널 위해 준비했어'
한 때 제 자신도 놀랄 정도로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적이 있었기에(특히 명절에는 밥도 안 먹어가면서)
이 작품은 참 공감이 되었습니다.
저도 몸으로 느끼는 거지만 확실히 인터넷이 이 정도로 대중화 되기 전의 인간관계가
더 긴밀했다고 확신합니다.
물론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 훨씬 더 다양한 사람들,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제 경험으로 그들은 거의 일회성에 그치고 말았어요.
대인공포증인 주인공이 그의 어머니의 선물을 받고 그것을 극복해냄으로써 이야기가 끝나는데
역시 한창 예민하고 민감한 시기인 때에는 주변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신경질을 내고 화를 내지만
함께 참고 극복해 나가면 저처럼 책을 사랑하고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답니다.
꽤 제 선택에 후회도 많이 하고 한살한살 나이 먹는 게 두려워서 울던 날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저는 좋은 대학에도 들어가지 못했고 역시 공부도 썩 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에게 주어진 이 환경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고 물론 만족하고 있습니다.
좀 더 일찍 이 책을 만나게 되었더라면 아마 다른 모습의 제 삶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라도 만난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 제 삶에 든든한 거름이 되어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고민하는 청소년 여러분, 힘내세요~!!
(횡설수설 했지만 이해해 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