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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라는 책을 통해 리사에게 매료된 한국 독자가 많으리라 생각된다. 나 또한 오래동안 신작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기다리던 신작 출간! 망설임없이 구매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와타야 리사의 문장이 아니었다. 번역의 잘못인가 생각도 해봤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이렇게 까지 어색하랴. 마치 습작생이 쓴 인터넷 소설같은 문장들...... 이건 분명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아이돌'을 소재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라고도 생각해봤지만 그것 역시 아닌 것 같다.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좋아하던 작가의 글이 무너져 가는 걸 지켜보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덧붙여, 도대체 저 괴기스럽고 그로테스크한 표지는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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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を與える :: 綿矢りさ 모 연예인 괴소문 사건으로 세간이 잠시 시끄럽다. 근간 이슈가 될만한 스캔들이 눈에 띄지 않는 탓인지, '한물 간 스타' 라고 할 수 있을만한 대상임에도 취재하는 미디어도, 찾아보는 대중도 과하게 많다. 사실 이 해프닝의 포커스는 [옐로 저널리즘의 폐단] 에 맞춰졌어야함인데 대중의 관심은 대체로 미디어 비판보다 '괴소문이 무엇이었는가' 에 더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대중의 속내가 그러하니, 무책임한 미디어의 교정이 먼저인지 대중의 자아 비판적 각성이 먼저인지 닭과 달걀의 관계로 모호해진다. 개인적으론, 읽는 사람이 있기에 글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미디어의 천방지축보다 대중의 천박함이 더 부끄럽게 느껴진다. 도대체 '알 권리' 를 들먹이면서까지 연예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싶은 심리는 어디에서 기인할까? 타인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관음증은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제한되어 있으니 욕구가 있다한들 제어할 수 밖에 없지만, 연예인은 '공인' 이니 그 제어가 해제될 수 있는 것인가? 그 권리를 누가 부여했나? 연예인 부부가 어떠한 방식으로 파경을 맞았다는 뉴스가 지나치게 낱낱이 보도될 때마다 참담한 기분이 된다. 내가 저 이의 입장이라면 그 굴욕과 모욕감을 어찌 견딜까 짐작해보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쓰여진 기사를 기어이 안보고 지나치려 하지만 설령 보았다해도 가급적 입밖에 올려 내멋대로 재해석하지 않으려 주의한다. 그래서 간혹 다수가 모이는 자리에서 안줏감으로 최적인 '연예인 가쉽' 이 이야기 소재로 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카더라' 하며 전해 들은 이야기로 그저 대화를 하고프고 분위기를 띄우고 싶을 따름인 그들을 어느 순간 맹공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당신이 직접 그것을 보고 듣고 당사자의 입장까지 충분히 반영한 이야기인가, 그 이야기의 당사자가 본인이라면 지금 이렇게 입방아 오르는 것이 좋겠는가, 가까이의 누군가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좋든 나쁘든 함부로 흘리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펄펄 뛰지 않겠는가, 그런데 당신은 안되고 연예인은 된단 말인가' 라며 반박할 여지없게 그를 무안하게 만들어버리는거다. 그래서 졸지에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 으로 전락해버리기도 한다. 그렇다해도, 오로지 내 반경에서, 나 즐겁자고, 내 지인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자고 '연예인' 이라는 '남' 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써먹는 건 너무 치사하고 치졸하게 느껴진다. '연예인' 을 미디어를 통해 계속 소비해주고 있기에, 그래서 '알 권리' 를 부여받았다해도 그것을 재해석하고 확대 생산할 권리까지 부여 받았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대중이라는 이름의 우리는, '연예인' 이라는 대상에 대해 치부까지 드러내어 보여준다는 것을 조건으로 그들에게 지불하나? 그들이 쟁취하는 부와 명성에 대한 시기심을 '인권 모독' 으로 대체해도 될 만큼, 대중은 그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고 사나? 대중이 연예인을 소비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그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상호 필요에 의해 공생 관계가 만들어질 뿐이거늘, 그들의 부가 내 주머니에서 나갔다는 착각으로 더한 것을 요구하거나 어거지로 그들을 끌어내리려함은 그야말로 폭도 심리가 아닌가. 설사 그 요구심이 일정 부분 당연하다 하더라도 그 누가 '인권 침해' 의 권리까지 부여받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가정사 폭로만 해도 충분한 사생활과 인권의 침해이건만, 모 연예인의 동영상 사건 같은 것은 해당 당사자는 물론 이 사회에 있어서도 씻을 수 없는 죄악의 상처다. 누군가 악의를 품고 그러한 것을 기획했다는 것만으로도 경악할 노릇인데, 그것을 암암리에 확산시켜 범죄에 동참한 공범들이 바로 대중이라는 사실은 돌이킬 때마다 끔찍하게 느껴진다. 비록 나는 보지 않고 퍼뜨리지도 않았다 할지언정 같은 '대중' 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이상 그 당사자에게 죄책감을 갖게 되는데, 놀랍게도 일부의 대중은 그를 결코 피해자로 보지않고 오히려 단죄하려 들었다. 그 엄청난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생활에 재기하려 애쓰는 것만으로도 감복할 일이건만, 아직 '시기상조' 라며 그의 복귀를 비판했던 것이다. 그 연예인의 생활 전선 복귀 시기를 자기 멋대로 타진해주려는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그런 권리를 손에 넣었을까? 그에게 그토록 손해본 것이 있었을까? 그가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음에도, 자신들을 실망시키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했으니 그것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사명감이라도 느끼게 되는걸까? 백번 이해해서, 그들이 그의 진심된 팬이었다면 실망했을 여지 정도는 공감할 수 있다. 물론 정녕 진심된 팬이었다면 팔이 안으로 굽었을거라 생각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연예인이 그들에게 주었던 환상이 추잡한 동영상으로 산산히 조각나 피해자인 그가 도리어 원망스러웠을 심정,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앞선 글귀처럼, '부서진다' 는 것은 이미 그 실체가 존재해야만 성립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즉, 그는 이미 그들에게 '환상' 혹은 '꿈' 을 주지 않았던가. 이것은 이런 격렬한 일에 휘말린 연예인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매스컴에 비쳐지는 모든 연예인이 어떤 식으로든 대중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면 그 이전에 크건 작건 꿈과 환상, 적어도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는 전제가 주어진다. 보기 즐거운 외모를 가졌기에, 가슴 울리는 노래를 들려주기에, 공감가는 이야기를 해주고 연기를 해주기에 대중은 그들에게 호감을 갖고 자신만의 이미지로 그를 확대하고 환상 속에 가둬넣으며 꿈을 꾸고 대리만족한다. 그러니 연예인 행동에 대한 반응은 그런 감정을 키워온 자신도 책임질 일이지 연예인 당사자에게만 모두 전가할 일이 아닌 것이다. 소설은 허영심 많은 엄마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연예인으로 키워진 아베 유코라는 소녀에 관한 이야기로, 실제 인물의 자서전이나 일대기로 느껴질 정도로 현실적이고 디테일하다. 읽다보면 연예인의 일상이면서도 평범한 소녀의 이야기로 읽혀지는 것이, 아마도 작가가 '보여지는 스타도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다' 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형식의 글을 쓴게 아닌가 싶다. 유아 광고 모델로 시작하여 아역 스타에서 아이돌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유코의 생활은 화려하면서도 단조롭다. 더이상 바랄 게 없는 삶 같은데도 여전히 꿈을 꾸며 여느 십대들처럼 자기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휩쓸린다. 그러나 누구나 한번쯤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일반인은 쉽게 용서받지만 그녀는 연예인이기에 용서받지 못한다. 비록 실체는 공허하고 허황된 것이라해도 누구나 "부러워" 하는 꿈을 주는 위치에 있었기에 대중들은 자유롭게 그녀를 비난하고 조롱하고 내팽겨칠 수 있었던 것이다. "스타" 라고 불리는 존재의 연령대가 갈수록 낮아지면서 그들을 부러워하고 똑같이 되고 싶어하는 또래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그렇게 꿈꾸는 아이들중에 정말 저 십대 스타들이 행복해하고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의문해보는 아이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행여 그 꿈이 이루어진다해도 자신만큼은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고통스런 험담은 듣고 싶지 않을텐데, 그 바람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얼마나 쉽게 '연예인' 에 대해 경솔하게 언급하고 있는지 반성하는 아이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똑같은 사람이다' 하는 기본적 인권에 대한 생각만 염두에 둔다면 그렇게 부러워하지도, 그렇게 험담하지도 않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저 연예인을 보며 마음껏 대리만족하고, 자신도 그 못지않게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각인하기만 한다면 그토록 허황된 꿈에 아파하지 않을 수 있을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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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중고 사이트에 책을 고르면서 2만 원 이상이 되어야지 택배비가 무료라 한 권의 책을 더 고르면 2만 원이 넘었다. 택배비를 아끼기 위해 한 권의 책을 더 고르게 되었고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다른 책과 함께 구입했다. 그때에는 ‘발로 차고 싶은 등짝’을 읽지 않고 책장에 꽃아 둔 상태라서 그 작가의 책이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발로 차고 싶은 등짝’을 얼마 전에 읽게 되었고 이 책의 저자라는 사실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더 빨리 읽어보고 싶어졌다. 언니가 빌려준 책을 다 읽고 책모임에서 빌려온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언니가 이 책을 읽고 싶다고 빌려 달라는 말을 해서 언니를 빌려 줄려는 생각으로 집어 든 것도 있었다.
미키코와 토마 사이에서 태어난 유코. 태어날 때부터 예쁜 얼굴이었던 유코는 잡지사에 일하는 미키코의 친구의 권유로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카탈로그 모델로 일하게 된다. 그때부터 유코의 연예인 생활이 시작 된 것이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카탈로그를 찍다가 어느 날 스타치즈 회사에서 유코가 마음에 든다며 유코의 성장을 CM 스토리로 만들어서 반영구적인 CM을 제의하고 유코의 엄마인 미키코는 당연히 계약을 하게 된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지만 일자리는 1년에 두 번 있는 스타치즈 촬영과 카탈로그 사진 촬영이 전부였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한 유코는 고등학교를 좋은 학교에 합격과 동시에 갑자기 엄청나게 불어난 일거리에 스타가 되어버린다.
여기서 나오는 유코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성화에 연예인이 되어버린 케이스다. 요즘 정말 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연예인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을 어느 TV 다큐멘터리로 본 적이 있다. 그런 엄마들을 보면 솔직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아니다 라는 생각과 나는 아이를 낳게 되면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요즘 연예인이 되어 대 스타가 되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조금은 부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힘들게 일을 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아역배우가 잘 나간다고 해도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뜨지 못하는 배우들도 많이 봤다. 그런 면에서 유코는 조금은 성공한 케이스이긴 하지만 마지막에 자신의 실수로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마는 인생을 걷게 된다.
난 그래도 유코가 자신의 실수로 스타의 인생이 끝이 났지만 다시 용기를 얻어서 재기에 성공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여기서도 이 작가는 전작처럼 희망만 남겨두고 끝을 내 버린다. 독자에게 생각을 떠넘긴 것이다. 하지만 난 유코가 다시 성공해서 이 책의 제목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꿈을 주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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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접하게 된 이유는 '꿈을 주다'라는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어느 한 소녀의 훈훈한 이야기 일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 '와타야 리사'라는 작가는 몰랐다. 그저 제목에 끌려서 그런 내용을 기대하고 이 책을 구입했다.
어떤 한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는 일등의 섬세한 표현은 정말 아름다웠다. 필체가 맘에 들었다.
정말 내용은 훈훈했다. 외모도 아름답지만, 성격도 꾸밈없고, 당돌하고, 학교에서 굉장히 인기 많은 아이도 아니고, 오히려 가난한 집 아이와 마음이 가는 주인공이 마음에 들었다.
친구들과 지내는 것, 자신 내면의 고민 등.. 정말 훈훈하고 순수하고 솔직했다. 어떤 소설속의 아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런 아이가 있을 것 같은 현실적인 주인공이었다.
책의 내용은 정말 내가 기대한대로여서 정말 좋았다.
그런데 후반부 이후.. 일이 꼬인다.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도 좋다.
내면 묘사가 역시 일품이다.
이렇게 다 좋은데.............. 평점이 별3개 인 것은.. 결말 때문이다.
완.전.허.무.
모~~~든 것이, 남자를 잘못 사귄 것에 물말아 먹어버린다..
나는 그 남자를 사귀는 과정에서 이 여자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가 좋아서... -_ㅜ
그래도 정말 푹~ 사랑에 물들어 버리면 그럴 수도 있을리라 생각이 된다.
근데, 그 일로 이 훈훈했던 소설이 막을 팍!하고 내려버리니... 아니 이런 허무가...
더욱더 짜증났던 건. 나 같으면 딸아이를 사랑해서 보호해 주고 싶기도 하겠지만, 딸아이의 진짜 속마음을 털어내게는 하지 않고, 무조건 보호해주려고만 한 부모가 이해되지 않았다. 짜증났다.
이런 부모의 태도도 그 전까지는 정~~말 좋은 엄마, 아빠였는데. 결말에선 그런 극단적인 '딸보호'가 있을줄은 생각도 못했다..
딸의 진심을, 속마음을 헤아리려하기 보다는, 위기를 무마해보려는 부모에게 짜증났다.
결론 : 이 소설책은 다~~~~~~~~~~~~~~~~~~~~~~ 좋은데, 마지막에서 물 말아 먹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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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야 리사.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이후에 3년만에 나오는 장편소설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소설을 접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빠른 시간에 다시 그녀의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을 만났을 때, 천재 문학소녀라는 극찬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의사가 전혀 없을만큼 반했었다. 그랬다. 매우 감성적이었고 신선했다. 와타야 리사의 표현들이 너무 좋아서 160쪽의 짧은 소설속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끔을 주다. '꿈'이라고 하는 잡히지 않는 단어를 '준다'. 누구에게? 아마도 19세의 나이로 화려하게 일본 문단에 데뷔한 와타야 리사는 필시, 시작이 그랬을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좋아서. 글을 쓰고 자신의 영혼이 그 문장속에 담겨지는 작업이 너무 좋았을 것이다. 그녀가 그녀의 첫 작품을 써내려 갈 때 리사는, 세상이 자신에게 그리 주목하리라 예상치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단지, 글을 쓰는 작업만이 자신에게 좋았을 것이고 그것이 자신의 숨겨진 꿈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리사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일본을 놀라게 했다. 놀란 일본의 문단이 또 다시 그녀를 놀라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어른들이 바라는 통속적인 개념보다 그 나이에 걸맞는 보다 소녀스러운 목적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꿈을 주자. 그래, 자신의 글을 통해 또 다른 이들에게 힘이되고, 꿈이 되어준다면 그처럼 보람된 일이 또 어디있을까.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처음 내었다면 그가 아름다운 꿈이자 목표라고 격려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소녀는 24세가 되었다. 그동안에 어떤 변화가 그녀에게 닥쳤쳤을까. 그것이 무엇일는지도 몰라도 예상해보기로 한다면 분명한 것은 하나있다. 그 변화의 무게가 소녀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은 천부적인 어떤 재능을 타고나서 18세에 이르기까지의 한 소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24세의 작가는 세상에 주목에 대해 그리고 그 무게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는지 모른다. 자신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의 놀랍고 급작스러운 변화를 작중 주인공인 '유코'에게 담아내었을는지 모른다. 그 변화가 와타야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남에게 꿈을 준다. 그러려고 했다. 그러고 스스로의 능력이상의 무대를 세상이 만들어 주었고 그 무대는 남에게 꿈을 주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타인의 손에 만들어져가는 커다란 세계가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래서 돌아본다 자신을. 타인에게 꿈을 주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좋았고 행복해서 시작했던 그 일이 점차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의무적인 꿈으로만 가치를 지닌다면. 그래서 자신은 그곳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고자 했던 방법들이 '순수'한 이상 하나만으로는 실현하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그에 걸맞는 각종 장치와 도구들이 그녀에게 거짓을 요구했다면. 그렇게 그녀 스스로가 아니라 끌려가 듯이 시간속에 묶여있었다면. 이 책은 그러한 그녀의 심정이 절절하게 드러나 있다. 결국 유코는 진실을 원한다. 세상이 자신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스스로의 진실로 되돌아 가기를 바란다. 24세의 작가는 유코를 통해 그것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한 때 열광했던 그들이 언젠가는 남보다도 못한 적이 되어 자신을 밟기를 열망할지 모른다는 것을 그녀는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런 두려움을 글 속에 잘 담아내고 있다. 그것은 두 가지의 형태로 드러난다. 첫째는 이야기가 그렇고, 둘째는 문장이 그렇다. 이야기는 인기와 사라짐 그 자체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고, 문장은 이전작에 비해 퇴색되어 있다. 놀랍고 신선했던 아름다운 문장들이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와타야 리사의 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저 통속 소설에 불과한 지루한 읊조림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문장속에서 와타야 리사의 무게감을 느낄수 있었다.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이후에 얼마나 많은 시달림이 그녀의 문장마저 퇴보시켰는가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역시, 세상의 관심은 20대 초반의 아가씨에게는 무리였을는지 모르겠다. 이전 작품은 불과 160쪽 정도의 분량이었고, 그녀의 날카롭고 내면적인 감성이 고스란히 문장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그러나 꿈을 주다는 400쪽에 이르기까지 그저, 이야기를 풀어 놓을 뿐이었다. 간간히 와타야 리사임을 알수 있는 신선한 문장을 만날수있었지만 여전히 전체를 뒤덮고 있는 부담과 무게에 억눌려 있을 뿐이었다. 위트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날 비린내 나는 신선함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만약, 와타야 리사를 그냥 평범한 작가라고 보았으면 이 작품은 괜찮다. '아주'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재미있다. 그러나 그녀가 안고 있는 부담의 원천속에 나에 대한 눈길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와타야 리사이기에 이번 작품에 다소 실망을 했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아직, 그녀에게는 400쪽에 이르는 장편이 무리였을는지 모른다는 생각. 어른들의 세계와 상실에 대한 진정한 절절함이 약했다. 즉, 그녀의 상상속에 상실이란 이럴 것이다 라고 말하는 타인의 경험을 통한 시선이 느껴졌다. 진정한 상실을 경험한 자의 가슴에서 나오는 것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가슴까지는 와 닿지 못했다. 자신의 삶보다 조금 앞에 있는 것을 쓰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이 그저 소설이 되어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와타야는 유코를 통해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과 또 그렇게 했음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그녀에 대한 처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음 번엔 이전처럼 신선하고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빛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그녀를 위해, 또 나를 위해 기원한다. 나는 여전히 와타야 리사를 응원하고 그녀의 글을 사랑하는 팬이다.
내 블로그에 중앙 books 출판사의 직원일는지 어떤지 이 책을 구매하기도 전에 댓글을 남겼었다. 와타야 리사의 신작 꿈을 주다를 만나보라 그거다. 그 당시 이미 나는 와타야 리사의 책을 예약 주문했었고 출판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그 스팸성 댓글이 무척이나 불쾌했다. 댓글의 주인인 블로그를 들어가 보니 역시나 중앙books에서 운영하는 것이었다. 남의 블로그 곳곳에 성의 없는 댓글을 마구 달아놓을 만큼 그렇게 이 책에 자신이 없었던가? 어떤 이들은 그런 댓글을 보고 좋은 책을 소개 받았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까칠하고 막돼먹은 놈이라 그런 식의 상업적이고 무책임한 스팸성 댓글이 불쾌했다. 게다가 찾아내기도 힘들만큼 여기저기에다가. 마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집 이곳 저곳에 중국집 광고 스티커가 덕지 덕지 붙어있는 느낌이었다. 그 때문에 출판사에 불신이 생기고 말았다. 좋은 책을 지녔으면 좋은 방법으로 홍보했으면 좋았을 것을 왜 그리 삼류들이나 사용하는 무차별 스팸 댓글로 책을 가치를 떨어뜨려버리는지... 출판사. 반성 좀 했으면 한다. 한 번 미운 놈은 계속 밉다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지들 신문광고를 때려넣는 무개념. 짜증났다. 난 거기에 내 싸인을 넣어야 하는데 말이다. 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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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 소설을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제대로 읽은 일본 소설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그 장황한 묘사와 밋밋한 내용들에 그닥 흥미가 없다. 잔잔한 일본영화들은 좋아하지만 소설에서는 그 잔잔함이 그냥 밋밋함이 되어버린 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술술 잘 읽혔던 것 같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떄 어린 작가라고 해서 '과연'이란 의문을 품으며 읽게 되었다. 앞부분은 흥미로웠다. 남녀의 이별문제에 대한 내용이 다뤄졌고 그 둘 사이에 유코가 생겨 그 유코가 주인공이라는 건 늦게 알았다.. 뭐랄까 시점을 남녀사이에서 바로 어린소녀에게로 바꿔버리려니 약간 혼란스러웠다.시점이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는 면도 있고 하지만 소설은 어려운 내용도 딱히 없고 술술 잘 읽히는 편이다.
흥미롭게 읽었다. 유코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국 사회의 연예계를 생각했다. 기획사와의 거래 부터 시작해서 남자친구, 섹스스캔들 까지... 연예계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특히 아이돌이 판치는 한국 연예계에서 유코같은 아이들이 많지 않을까.. 너무 어린나이에 연예계에 발을 들여 갈등하고 혼란스러운 청춘을 보내고 있을 아이들.. 새삼 그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 들었다.
또 그런 성공과 부를 얻으면 뒤따라오는 그 성공을 위협하는 인물들과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도 없을 수가 없겠다 생각을 했다. 유코와의 관계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돈을 받은 유코의 남자친구나 결국엔 헤어진 유코의 부모들까지..
그런 명예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유코가 그냥 평범한 한 소녀로 자라났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이용한 남자친구를 끝까지 믿고 상처입고 많은 걸 잃은 유코를 보면서 참 바보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쩌면 그렇게 빠져들수밖에 없었던 유코가 이해가 가기도 했다.
결국엔 그 사랑은 유코를 파멸로 이르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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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따라 책을 읽게 되었다.
표지에서 부터 내용 까지 전체적으로 예쁘게 꾸며져있고 흥미로운 부분들로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일본 연예계와 방송시스템을 자세히 표현하여 그안에서 대중들이 찾는것과 스타들의 태도 그리고 청소년으로서 미래를 향한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내용에 포함되고 있다.
그중에서 제목으로 선택한 "꿈을 주다" 라는 부분은 자기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얼마나 속이고 있는 가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주인공의 생각일것이다.
그 생각이 변하고 변해서 또 어떻게 되는지도 재미있는부분중에 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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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에서는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작가 와타야 리사의 신작... 그녀의 다른 작품을 읽으며 그다지 큰 감흥을 얻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분량의 이 책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가 궁금했다... 하지만 대중에게 꿈을 주는 한 아이돌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 역시 그렇게 수월하게 읽히지는 않았다. 어려운 문장도 없고 내용도 없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