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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운명과 사회의 운명적 구조가 우리들의 악몽 같은 현실에서 어떻게 변형, 변이되어지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 모더니즘과 안온한 서정에 빠져있는 한국 시단에, 여전히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암울하며 얼마나 더 관심가져야 하는 실체인가를 그로테스크한 악몽과 미학적 아름다움, 과감한 실험정신을 통해 보여주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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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운명과 사회의 운명적 구조가 우리들의 악몽 같은 현실에서 어떻게 변형, 변이되어지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 모더니즘과 안온한 서정에 빠져있는 한국 시단에, 여전히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암울하며 얼마나 더 관심가져야 하는 실체인가를 그로테스크한 악몽과 미학적 아름다움, 과감한 실험정신을 통해 보여주고 있음.
d******9 2007.10.13.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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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후벼파는 단어들,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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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들이 낯선듯 한데도 가슴을 후벼판다. 해설에서 이경수는  '의심과 불신의 시선을 철저히 감시당하며 이타심과 희생정신과 희망에 세뇌당한 채 링거줄이 연결된 꿈 기게가 되어 살아가는 산타공화국의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한다. 냉소 가득한 최금진의 시는 정신 머리를 쭈볏서게 한다. 팍팍한 현실을 삶이 칼날이다. "친구야 혼자서 가라"의 '살아서 지겨운 가난, 너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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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들이 낯선듯 한데도 가슴을 후벼판다. 해설에서 이경수는  '의심과 불신의 시선을 철저히 감시당하며 이타심과 희생정신과 희망에 세뇌당한 채 링거줄이 연결된 꿈 기게가 되어 살아가는 산타공화국의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한다. 냉소 가득한 최금진의 시는 정신 머리를 쭈볏서게 한다. 팍팍한 현실을 삶이 칼날이다. "친구야 혼자서 가라" '살아서 지겨운 가난, 너 혼자, 너 혼자서, 다 끝내고 가라'는 내가 본 가난에 대한 최고의 표현이다. 죽어야 끝나는 가난이다. 시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는 경우는 참많다. 폐부를 찌르는 그의 말들이 달라붙는다.

s*****9 2024.03.08.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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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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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진의 첫 시집이다. 기대했던 것만큼 역시 대단하다. 사고나서 하룻밤에 다 읽고 또 읽었다. 사랑에대한짤막한질문........ 그런 시들만 쓰는 줄 알앗는데 그게 아니었다 목이 콱 막혀서 읽기가 힘들었다. 읽어본 사람들은 다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 말고도 그 뒤에 숨어 있는 울림이 너무 크다 첫 시집을 샀는데 ㅓ 벌써 두번 째 시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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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진의 첫 시집이다. 기대했던 것만큼 역시 대단하다.

사고나서 하룻밤에 다 읽고 또 읽었다.

사랑에대한짤막한질문........ 그런 시들만 쓰는 줄 알앗는데 그게 아니었다

목이 콱 막혀서 읽기가 힘들었다. 읽어본 사람들은 다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 말고도 그 뒤에 숨어 있는 울림이 너무 크다

첫 시집을 샀는데 ㅓ 벌써 두번 째 시집이 기다려진다

1***z 2007.10.29.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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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의지-최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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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의지’      최금진의 『새들의 역사』(창비, 2007)에는 가난한 이들의 절절한 삶이 시집 곳곳에 산재되어 나타난다. 시인의 개인적 체험이기도 하고, 사회적 체험이기도 한 ‘가난의 체험’은 최금진의 시 세계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틀로 작동한다. 이를테면 “못나고 부끄러운 아버지”의 세계에서는 웃음에도 “민주주의가 없다”(「웃는 사람들」)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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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의지

 

 

 

최금진의 『새들의 역사』(창비, 2007)에는 가난한 이들의 절절한 삶이 시집 곳곳에 산재되어 나타난다. 시인의 개인적 체험이기도 하고, 사회적 체험이기도 한 가난의 체험은 최금진의 시 세계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틀로 작동한다. 이를테면 못나고 부끄러운 아버지의 세계에서는 웃음에도 민주주의가 없다”(웃는 사람들)고 시인은 말한다. 가난한 이들의 삶에 드리워진 살아서 지겨운 가난”(친구야, 혼자서 가라)의 이미지는 시집 전편에 묘사되는 끔찍한 시적 상황과 어울려 시인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산출해 낸다.

 

조용한 가족이란 시를 보자. 한 노파가 파리약을 타 마시고 죽었다. 노파 하나 죽은 게 무슨 큰일이나 되는가? “호상이구만 호상, 닭뼈다귀 같은 노파의 몸을 꾹꾹 펼쳐 놓으며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코를 막았다”. 손아귀에 마지막으로 남은 힘으로 흙벽을 긁으며, 허연 게거품을 물고 맞서며 노파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 가족들에게 증오에 찬 독설을 퍼부었을까. 노파가 어떤 생각을 했든, 중요한 것은 그녀는 죽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서랍장 곳곳에 몰래 먹다 남긴 / 사과며 과자부스러기들이 쏟아져나온 것 말고도 / 썩은 장판 밑에선 만원짜리 몇장이 더 나왔다 / 발가벗겨진 노파의 보랏빛 도는 입엔 / 서둘러 쌀 한줌이 콱 물려졌을 뿐이다. “복날이었고 / 뽑힌 닭털처럼 노파의 살비듬이 / 안 보이게 날아다녔다는 이 시의 결구에 나타나거니와 시인은 더 이상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수 없는 존재의 끔찍한 형상을 담담한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를 소재로 한 시가 유독 많은 이 시집에서 최금진은 가난한 아버지들의 슬픈 형상을 시적 세계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폭력을 일삼던 가난한 아버지의 삶을 이어받아 그 아들도 커서 똑같이 아버지가 되고 아내와 자식들은 툭하면 술 먹고 손버릇 나쁜 남편”(가난한 아버지들의 동화)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다. 가난이 가난을 부르고, 가난한 아버지는 가난한 가족을 부른다. 소년 가장에서 그러한 모습은 죽은 아버지의 영혼이 소년의 등에 올라타 아비랑 가자, 아비랑 함께 가자라는 비극적인 이미지로 나타나고, 수레에 이르면 그것은 그의 아버지처럼 / 그도 나면서부터 하반신에 수레가 달려 있었다 / 당연히, / 커서 그는 수레 끄는 사람이 되었다라는 표현처럼 아비에서 아들로 대물림되는 가난의 끔찍한 형상으로 다시 이어진다. “제일 싼 팝니다, / 자본주의 만세!”(팝니다, 연락주세요)를 외치는 반어적인 상황으로 표출되는 시인의 냉소적인 태도는 자본주의의 힘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자의 자괴감을 드러낸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표제작 새들의 역사에서 시인은 탯줄 없는 남자들의 부유하는 삶을 노래한다. “서른일곱에 정착도 못하고 나는 지금도 어딜 싸돌아다닌다는 시구에 표현되는 대로, 시인은 자본주의 사회의 어딘가를 끊임없이 싸돌아다니고 있다. “밤이면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 유체 이탈한 영혼들처럼 기다란 복도에 나와 열대야 속에 멍하니 앉아 있는 상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 나이 서른여섯에 처음으로”(즐거운 나의 집) 방 한 칸을 얻었다는 가짜 욕망에 만족하지 않으려면, 시인은 끊임없이 싸돌아다녀야한다. 하지만 그렇게 싸돌아다녀도 그가 발붙일 방 한 칸을 이 지상에서 얻기 힘들다. 못나고 부끄러운 아버지들의 유전자를 받았기 때문일까. ‘지렁이를 시적 소재로 한 끝없는 길이라는 시를 보자.

 

 

꿈틀거리는 의지로

어둠 속 터널을 뚫는다

덧난 상처가 다시 가려워지는 쪽이 길이라고 믿으며

흙을 씹는다

눈 뜨지 않아도 몸을 거쳐가는 시간

이대로 멈추면 여긴 딱 맞는 관짝인데

조금만 더 가면 끝이 나올까

무너진 길의 처음을 다시 만나기라도 할까

잘린 손목의 신경 같은 본능만 남아

벌겋게 어둠을 쥐었다 놓는다, 놓는다

돌아보면 캄캄하게 막장 무너져내리는 소리

앞도 뒤도 없고 후퇴도 전진도 없다

누군가 파묻은 탯줄처럼 삭은

노끈 한 조각이 되어

다 동여매지 못한 어느 끝에 제 몸을 이어보려는 듯

지렁이가 간다, 꿈틀꿈틀

어둠에 이 돈다

- 끝없는 길-지렁이전문

 

 

시집의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하면 다소 이질적인 이 시에서, 시인은 꿈틀거리는 의지를 노래한다. “지렁이가 간다, 꿈틀꿈틀이라는 시구에 내포된 삶에 대한 의지마저 시인은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다시 말해 흙을 씹는 온몸의 숨이 쉬어지는 순간까지, 지렁이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 움직임이 아마도 생명 있는 존재로서 태어난 사물들이 세상에 되갚아야 할 몫일 것이다. 새들의 역사에 등장하는 배꼽이 없는 남자들의 방랑 역시 이렇게 보면 생명 있는 존재들이 거쳐가야 할 몸짓으로 봐야 하겠다.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가난을 제대로 겪지 않은 사람들의 관념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지렁이처럼 꿈틀꿈틀조금씩 움직이는 생명의 몸짓을 그래도 희망이라고 제시한다면 그것은 너무 무책임한 관념의 유희라고 할 수 있을까.

 

시인은 못나고 부끄러운 아버지의 세계와 다른 장소에 어머니-할머니의 설화적 세계를 배치하고 있다. 시집의 4부에 주로 실려 있는 어머니-할머니의 세계는 여우가 등장하고 배고픈 귀신들이 떠도는(여자들의 이름) 설화적 공간에 위치한다. 그곳은 죽음의 세계이지만, 악의 꽃에 표현되는 것처럼 여전히 또 다른 생명들이 존재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아버지-나로 이어지는 배꼽 없는 존재들은 그곳을 끊임없이 거부하지만, 그럼에도 그 세상은 항상 그들의 주변에서 음화(陰畵)처럼 맴돌고 있다. “부처님이 할머니를 조금씩 파먹고 남겨둔 자리에 / 나는 참 아름답고 준수한 청년이 되어 자라났다 / 여러 겹의 밝은 눈들이 머리에 돋아 / 뜻도 모를 주문들이 적혀 있는 내 몸을 읽기 시작했다”(거미의 눈)고 시인은 말하고 있지 않은가. 시인이 읽어내는 몸의 기호(의미)는 사실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자본주의라는 아버지의 세계와 설화적 공간이라는 어머니(할머니)의 세계의 경계에 최금진의 시는 자리잡고 있다. 그 경계에서 시인이 어떤 시의 세계를 펼쳐 보일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o*****s 2017.08.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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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죽음 (새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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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죽음[시를 말하는 시 32] 최금진, 《새들의 역사》   - 책이름 : 새들의 역사- 글 : 최금진- 펴낸곳 : 창비 (2007.10.15.)- 책값 : 8000원     스스로 죽는다고 생각하기에 죽습니다. 스스로 산다고 생각하기에 삽니다.   무더운 여름날 이어지는 새벽녘에 큰아이가 문득 아버지를 부릅니다. “아버지, 방에 모기 있어요. 잡아 주셔요.” 잠결에 큰아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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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죽음
[시를 말하는 시 32] 최금진, 《새들의 역사》

 


- 책이름 : 새들의 역사
- 글 : 최금진
- 펴낸곳 : 창비 (2007.10.15.)
- 책값 : 8000원

 


  스스로 죽는다고 생각하기에 죽습니다. 스스로 산다고 생각하기에 삽니다.


  무더운 여름날 이어지는 새벽녘에 큰아이가 문득 아버지를 부릅니다. “아버지, 방에 모기 있어요. 잡아 주셔요.” 잠결에 큰아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부시시 일어납니다. 부시시한 눈으로 부시시하게 앉아서 모기가 내 팔뚝이나 허벅지에 내려앉기를 기다립니다. 아직 날이 훤히 밝지 않은 때라 모기가 어디쯤 날아다니는지 안 보입니다. 소리로만 어디쯤 있구나 하고 느끼며 기다리니 왼쪽 종아리에 착 내려앉습니다. 2초쯤 기다리다 찰싹 칩니다. “얘야, 모기 잡았으니 이제 자렴.”


  까만 시골모기는 붉은 핏자국 남기며 숨을 거둡니다. 손바닥과 종아리를 물로 헹굽니다. 내 피를 빨았나 아이들 피를 빨았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잘 먹고 잘 죽었습니다.


.. 그러나 그녀는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 요리를 하다가, 빨래를 하다가, 애를 낳고,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서둘러 늙고 병들고, 어느 날은 가장 좋아하는 연속극을 놓치고 황망히 소파에 앉아 / 그녀는 TV를 떠나서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  (시청자가 TV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


  나는 어릴 적부터 누군가 죽는 모습을 거의 못 보며 살았습니다. 동무들은 학교 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을 보았다고도 하고, 늙으신 피붙이나 이웃 할매와 할배 죽은 모습을 보았다고 하는데, 나는 좀처럼 누군가 죽는 모습을 못 보았어요. 국민학교 3학년쯤 이르러 할아버지 돌아가실 적에 비로소 누군가 죽은 모습을 봅니다. 그 뒤 할머니 돌아가신 모습을 보기까지는 열 해쯤 흐릅니다.


  어릴 적부터 곰곰이 생각합니다. ‘사람은 왜 죽을까?’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늙어서 죽는 길이 빠를는지, 몸이 아파서 죽는 길이 빠를는지, 차에 치이거나 칼에 찔리거나 총에 맞아 죽는 길이 빠를는지, 전쟁이 터져서 사는지 죽는지 모르는 채 폭탄으로 한꺼번에 사라져 죽는 길이 빠를는지, 참 알 길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썩 재미없더군요. 나는 이렇게 살아서 하루하루 누리는데, 왜 죽음을 생각해야 하느냐 싶더군요.


  돈이 많대서 죽음을 생각 안 하지 않습니다. 돈이 없대서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기를 바라니 죽음을 생각하고, 살기를 바라니 삶을 생각해요. 돈을 바라기에 돈을 생각하고, 사랑을 바라기에 사랑을 생각해요. 전쟁과 권력을 바라는 이들은 언젠가 권력 휘둘러 전쟁을 터트려 한몫 단단히 잡을 생각을 할 테지요.


  죽는 사람은 흙으로 갈까요. 죽는 사람은 하늘로 갈까요. 죽는 사람은 가뭇없이 사라지는 넋이 될까요. 가끔, 내 몸 아닌 다른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며 생각하곤 합니다. 몸은 여기에 둔 채 구름에서 마을 두루 내려본다든지, 아이들 눈높이에서 내 몸을 바라본다든지 합니다. 내 몸을 나 스스로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몸이 몸을 움직일까요, 마음이 마음을 움직일까요, 몸과 마음이 서로 어우러져 내가 살아가며 움직일까요.


  덥다고 생각하니까 덥고, 춥다고 생각하기에 추우며, 슬프다고 생각하는 만큼 슬프다고 느낍니다. 몸이 느끼고 마음이 알며 생각으로 잇습니다. 모든 삶을 온몸과 온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다닐 때면, 시골마을 감도는 바람을 맛보면서 자전거와 아이들 무게를 이끄는 엄청난 땀방울 똑똑 흘리면서 ‘살아가는 빛’이 무언가 하고 느낍니다.


  살아가는 빛이란, 시원한 바람이라고 할까요. 살아가는 넋이란, 맑은 물이라고 할까요. 살아가는 꿈이란, 사랑스러운 웃음이라고 할까요. 살아가는 일이란, 아이와 어른이 어깨동무하며 즐기는 놀이라고 할까요.


.. 밤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데 죽은 아버지 부르는 소리 / 얘야, 오늘은 마을에 제사가 있구나 ..  (소년 가장)


  최금진 님 시집 《새들의 역사》(창비,2007)를 대청마루에 드러누워서 읽다가, 마당 평상에 엎드려서 읽습니다. 최금진 님은 싯말로 가난을 노래하거나 죽음을 밝힌다고 합니다. 그래, 그렇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가난을 노래하는군요. 그러면, 가난이란 무엇일까요. 재미없거나 싫거나 나쁜 것일까요. 죽음을 밝히는군요. 그러면,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못마땅하거나 두렵거나 못된 것일까요.


.. 화장품을 바르고 향수를 뿌리고 / 내가 누군가의 몸에 꽃피우고 싶은 것도 그 때문 ..  (악의 꽃)


  아이들이 꺾은 꽃 한 송이는 죽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자른 나뭇가지도 죽지 않습니다. 다른 숨결이 될 뿐입니다. 다른 넋으로 달라질 뿐입니다.


  살아가는 몸은 늘 살아가는 목숨을 밥으로 삼아 먹습니다. 새우를 펄펄 끓여서 먹더라도 죽은 목숨 아닌 산 목숨입니다. 배추나 무를 뽑아서 냉장고에 넣고는 조금씩 썰어서 먹더라도 죽은 목숨 아닌 산 목숨입니다.


  산 목숨이 내 몸으로 깃들어 내 목숨을 이어요. 싱그러이 산 바람을 마시고, 싱싱하게 맑은 물을 들이켭니다. 푸르게 빛나는 바람을 마시고, 졸졸 흐르는 냇물을 들이켭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마음을 살찌우는 노릇이 되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쌀밥을 먹어 몸을 살찌운다면, 아름다운 이야기 깃든 책을 읽어 마음을 살찌우는 셈인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마, 그럴 테지요. 그러면, 최금진 님 시집은 누구보다 최금진 님 이녁한테 어떤 마음밥이 될 싯말이 되려나요. 즐겁게 노래하는 삶일까요. 기쁘게 꿈꾸는 사랑일까요. 재미나게 어울리는 놀이일까요. 씩씩하게 붙잡는 일일까요.


  가난한 살림을 노래하건 넉넉한 살림을 노래하건, 모두 노래입니다. 죽은 넋을 밝히건 산 넋을 밝히건, 모두 빛입니다.


  우리 마을 개구리들은 마을 할배들 끝없이 뿌려대는 농약에 모조리 죽습니다. 이웃마을까지 아울러 농약 안 치는 집은 꼭 우리 집뿐입니다. 우리 집 마당 안쪽으로 깃들면 개구리도 메뚜기도 사마귀도 방아깨비도 잠자리도 모두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제비와 해오라기는 농약 때문에 해롱거리는 작은 목숨 잘못 잡아먹다가는 그만 골로 갈 수 있어요. 참말 요즈막 우리 시골마을 어디에서나 멧새 한 마리 찾아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온통 농약바람이요 농약물결이거든요.


  사람은 이렇게 농약을 들에 옴팡지게 뿌리면서 쌀을 거두어야 밥을 먹을 수 있나요. 사람은 이렇게 들과 숲과 내를 온통 농약으로 물들이면서 고속도로를 내고 자가용을 달려야 돈을 벌 수 있나요. 오늘날 우리 사회와 문명과 문화와 정치에는 삶이란 없이 죽음만 있는지 몰라요. 오늘날 도시뿐 아니라 시골도 그예 삶하고 등진 채 죽음하고 가까운지 몰라요.


  자전거에 삽자루 끼고 들일 가는 할배 있지만, 자전거 천천히 몰아 굴 캐러 가는 할매 있지만, 모두들 아주 쉽게 농약을 칩니다. 이녁 잡수실 밭에도, 도시로 간 아이들한테 보낼 논에도, 도시사람한테 내다팔 논밭 모두에도, 그예 농약바람입니다.


  농약만 생각하니 농약농사로 나아갑니다. 풀과 숲과 사랑을 생각하면 새로운 흙일과 풀밭과 집숲으로 나아갑니다. 사람한테서 사랑을 받는 감나무가 감알 곱게 맺어요. 사람한테서 사랑을 못 받는 감나무는 감알 제대로 못 맺어요. 사람들이 들들 볶으며 굵다란 열매 맺으라고 하면 감나무는 오래 못 살고 말라죽어요. 들볶는 사람 사라진 빈집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감나무는 홀가분한 마음에 멧짐승과 멧새 먹으라며 감알 소담스레 달아요.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삶이고 사랑하는 대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최금진 님은 스스로 무엇을 이루고 싶어 시를 쓰나 궁금합니다. 최금진 님은 스스로 어떤 길을 걸어가면서 어떤 사랑을 나누고 싶어 시를 노래하는지 궁금합니다. 4346.7.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집 읽기)

 

이달의 사락 h*******e 2013.07.3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