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가지의 성이 있다. 여성과 남성. 윤효는 이중 철저히 여성의 시각을 고수한다. 작가는 자신이 아는 것만을 토대로 하여, 자신이 느낄 수 있는 것만을 적고 있으며, 자신이 절감하는 것만을 표현한다. 또다른 성인 남성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여성의 생활에는 호감이라기보다는 비감에 가까운 풍경이 숨겨져 있다. 그것들 훔쳐보는 일은 그래서 즐겁다기보다는 안타깝다.
「베이커리 남자」. "요즘 자주 싸우거든요. 지긋지긋해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그런데 무서워요. 무서워 죽겠어요. 그 사람이 무서운지 관계가 무서운지 모르겠지만." 여자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오롯이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내면의 소리를 감내해야 한다. 거기에 남편이 있고 가정이 있다. 그래서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또한 그래서 견딜 수 없다.
「더블 베드」. "...언니는 평소엔 담배를 못 피우게 하지만 가끔은 인심을 쓴다. 가슴에 독이 쌓이면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개인적으로 담배 피우는 여자들을 좋아한다. 물론 너무 많이 피우는 여자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주인공 은수는 자신보다 열세살이 위일 뿐인 새엄마격의 혜주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죽고 혜주만 남았다. 그리고 이제 혜주는 은수의 엄마이기보다는 언니이다. 은수는 혜주에게 의지하지만, 혜주 또한 은수에게 의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품 안에 잠재워야 할 무엇이 있을 때 비로소 편안해지는 것일까. 은수는 넌지시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불안한 것은 자신이 다스리고 품어주어야 할 불안을 간직한 누군가가 옆에 없기 때문이라고.
「성가족」. "...역시 내가 원하는 일은 단지 내가 원한다는 이유로 되질 않아, 라고, 윤은 냉소했다..." 외할머니와 사돈할머니와 윤. 이 세 사람의 아슬아슬한 동거. 사그라드는 중인 두 노인의 살얼음판같은 사이. 그리고 이제 막 제 인생을 정말 제 것으로 받아 들이려하는 윤. 양쪽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듯한 이 두 여성 집단, 그리고 여성집단 내부를 위험천만하지만 완전히 탈선하지는 않도록 만드는 가족.
「미세스 랑콤」. "...겨울 바다의 칼바람 앞에서 그녀의 뒤에 서서 껍질처럼 안아주던 그의 몸과 뺨..." "...그녀가 고아처럼 도심지를 떠돌고 있는데도 그가 여전히 세상과 접속하고 있다는 것이 그녀를 화나게 한다..." 여인의 욕망, 광고, 백화점. 이상하게도 앞의 두 문장 앞에서 쩔쩔맸다. 로맨스를 소재로 한 소설쓰기와 깎아도 깎아도 계속 상처를 드러내는 양파의 껍질까기 같은 사랑. 여성의 감정적 허영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
「오래된 연서」. "어두워진 거리를 걷는데 가슴이 저리면서도 왠지 안도감이 들고 기쁘기까지 했습니다. 깨어져버린 줄 알았던 사랑이 다른 방식으로 살아 있다는 것, 비록 한 시절의 추억이지만 그것이 생의 화석으로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지요..." 규와 그, 그리고 나. 규의 죽음으로 인한 나와 그의 급격한 가까와짐,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나와 그의 헤어짐. 여러 해가 흐른 후 다시 만난 나와 그. 갑작스런 사고로 죽음을 당한 은사의 장례를 앞뒤로 하여 지나온 세월의 사랑을 향해 보내는 연서.
「폴리시아스」. "...인생에서 곁에 아무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죽도록 술만 마셔서 생을 빈 깡통처럼 일그러뜨릴 사람이지..." 성장기의 여성인 내가 조금씩 알아가는 삶의 비의. 이혼한 엄마, 재혼한 아빠, 그리고 앞동에 사는 동급생인 너. 조우와 이별이 깍지낀 듯 삶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 하물며 중학생은 그녀에게는 말이다.
「회전문을 돌아나오다」. "...나는 너보다도 네가 짐수레처럼 끌고 가는 너의 생이 가엾어진다. 그 생의 살점들이 내 입 안에 씹히고 핏물이 고이는 듯하다." 여인의 지나온 세월. 그것을 답습하는 같은 여성인 백화점 직원, 그 익명의 인생 후배. 되풀이되는 인생에 되돌임표의 같은 부분을 노래로 부르는 듯한 아스라한 겹침의 이야기.
언젠가 말한바 있듯 윤효(내지는 윤영수)는 전경린, 은희경, 신경숙 등과는 또다른 의미에서 읽어야 하는 작가이다. 이러한 작가는 대중의 채찍질에 쉽사리 굴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더 재밌게, 더 자극적으로, 더 빨리 써내라는 대중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쓸 수 있는 것을 자신의 입을 통해 조용히 하지만 끊임없이 뱉어낸다. 누군가가 그 거미줄 같은 삶의 편린에 걸려들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