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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보다는 '붉은 수수밭'이라는 영화 제목이 더 유명한 모옌의 장편 소설 '홍까오량 가족'입니다. 사실 '붉은 수수밭'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이 영화의 원작이 '홍까오량 가족'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장이모의 탓도 있죠. 지금이야 관(官)에 딱 붙어 올림픽 개막식 같이 돈을 쏟아 부은 대규모 퍼포먼스나 '영웅', '황후화'같이 알맹이는 없고 겉만 화려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지만, 이 사람 87년 데뷔작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 상을 수상한 세계적 감독입니다. 모옌이 노벨상을 탓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붉은 수수밭'은 영원히 장예모의 작품으로 기억됐겠죠. 장예모가 '붉은 수수밭'을 공개했을 때 세계인들은 '중국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80년대 중국은 억압, 감시, 학살의 상징이자 인류의 적, 공포의 대마왕이었죠. 그런데 장예모의 영화가 나타납니다. 스크린에는 붉은 수수가 홍수처럼 넘실댔고 그 밑에 단단히 뿌리내린 민중의 삶이 있었죠. 흙냄새가 물씬 풍겼고 그건 바로 인간의 냄새이기도 했습니다. 세계인이 중국이라는 땅을, 새롭게 발견한 겁니다. 뭔가를 새롭게 발견하기 위해선 그 안에 고유한 색채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농촌을 배경으로, 땅을 주인공으로, 그 위에서 생장하는 식물과, 그것을 먹고 자라는 민중을 그려왔던 모옌의 소설에는 토속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의 오리지널리티가 있었죠. '붉은 수수밭'이 중국을 새롭게 발견해냈다는 말은 결국 원작의 오리지널리티를 잘 살렸다는 말 이상이 아닌 것입니다. 산동성 까오미현 둥베이향에서 가장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작고 귀여운 발까지 가진 꽃처녀 따오펑리옌은, 고작 검은 노새 한 마리를 받고 단씨 가문에 팔려갑니다. 문제는 단씨가 문둥병 환자였다는 거에요. 거래를 성사시킨건 돈 밖에 모르는 아버지였죠. 단씨와의 첫날밤, 닭발처럼 갈라진 괴물손이 어두컴컴한 베일 뒤에서 튀어나왔습니다. 따오펑리옌은 소리를 지르며 날카로운 가위를 집어 들었죠. 그날 밤 따오펑리옌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따오펑리옌이 시집을 가는 날 그 가마를 들었던 사람 중에 위잔아오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위잔아오는 건장하고 패기넘치는 젊은이였고, 악당이 될 기질이 충분했죠. 그는 따오펑리옌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닭발처럼 갈라진 괴물손의 아내가 된다는걸 납득할 수 없었어요. 이날 둘 사이에는 찌릿한 전기가 흘렀습니다. 모종의 계약이 성립했죠. 둥베이향에는 시집갔던 처녀가 친정으로 돌아가 사흘동안 지내고 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따오펑리옌이 친정으로 돌아가는 날 위잔아오는 그녀를 납치합니다.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붉은 수수의 바다에 누워,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눴어요. 따오펑리옌이 시댁으로 돌아오는날 마을의 연못은 단씨 부자의 피로 새빨갛게 물들었습니다. 따오펑리옌은 단씨 가문의 양조장을 물려 받았고 후에 위잔아오가 찾아와 일꾼이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안방을 차지하게 되죠. 두 사람 사이에서 난 아이가 또우꽌, 그의 아들이 바로 '나', 이 '나'가 화자가 되어 삼대에 걸친 가족 이야기를 쳘치는것이 바로 소설 '홍까오량 가족'입니다. 붉은 수수밭에서 따오펑리옌 역을 맡은 공리. 이 작품의 그녀의 데뷔작 수수밭 위에서 펼쳐지는 끈적끈적한 남녀상열지사, 이것이 '홍까오량 가족'의 전부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소설의 주 무대는 1930년대. 바야흐로 일제의 침략이 거세던 시기였죠. 칠점매화총 - 탁자 위에 매화 모양으로 일곱개의 동전을 쌓아둔 뒤 탁자에는 흠집하나 없이 동전만을 쏴 맞추는 기술 -, 총쏘기의 달인이자 까오미현의 악당인 위잔아오는 항일 민병대의 사령관이 됩니다. 대악당 위잔아오는 벙어리, 머저리, 멍청이, 겁쟁이 등을 데리고 일본군 트럭부대를 습격, 장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립니다. 하지만 민병대는 위잔아오와 아들 또우꽌을 남기고 전멸해요. 부대를 먹이기 위해 밥을 싸들고 오던 따오펑리옌조차 일본군의 기관총에 가슴이 뚫려 숨을 거둡니다. 두 부자가 거머쥔 승리에는 상실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고향, 따뜻하고 포근하고 아름다운 나의 집은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불타 버리죠. 민병대의 전멸은 연합 전투를 벌이기로 했으나 배신한 국민당 부대(우익) 때문이었어요. 그들은 뒤늦게 나타나 전리품들을 가로챕니다. 위잔아오는 국민당 부대 사령관을 죽이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어요. 잔아오에게 남은 부하는 아들 또우꽌이 전부였으니까요. 코흘리개에 넝마를 걸친 거지 부대 팔로군(좌익)은 숲 뒤에 숨어 전투를 지켜보다 얼마 남지 않은 전리품이나마 구걸하고자 뻔뻔한 얼굴을 들이밉니다. 나라를 지키는 방식에도 두 개가 있는 셈이죠. 이념을 내세운 자들은 결코 협력하는 법이 없습니다. 단씨 부자를 죽이고 여자를 가로챈, 파렴치하고 잔인한 위잔아오지만, 진짜 악당은 이념의 혓바닥으로 민중을 괴롭히는 이런 자들이 아닐까요? 위잔아오는 읽을줄도 쓸줄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지만 나라를 구하는데 자기 몸을 바치는걸 아까워 하지 않았습니다. 허기진 역사는 이렇듯 뒤를 돌아보지 않는 민중의 시체를 먹고 전진하는 법이죠. 살아남은 사람들은 겹겹이 쌓인 상실을 즈려 밟고 꾸역꾸역 살아 나갑니다. 무엇을 위해서? 거창한 이유는 절대 아니죠. 그들은 땅에서 태어났고 땅에서 살다가 땅으로 돌아간다는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받아 들입니다. 그 누런 땅 위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채, 소리를 지르고 욕을 내뱉고 웃고 떠들고 개고기를 씹어 먹으면서. 1987년 '붉은 수수밭'을 보고 느꼈을 서양인들의 충격이 이해가 됩니다. 그들이 상상했던 중국인은 누런 옷을 똑같이 맞춰 입고 회색빛 얼굴을 한 채 맥없이 걸어가는 좀비었을 거에요. 그런데 붉은 스크린 위로 또렷한 개성을 지닌 인간들이 뛰쳐나올 듯 꿈틀대고 있었던 거에요. 그들은 중국을 다시 봤죠. 그 안에서 인간을 발견한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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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국에 업무차 길게는 1개월 짧게는 1주일간 체류하고 중국인과의 협상,언어,풍습,개발 정도 등을 단편적이나마 체득하게 되었고 주로 산동성 위해,청도에서 일을 보았다.산동성의 경우엔 남한보다는 한반도 면적보다는 작지만 인구는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비행기를 타기 위해 위해에서 청도로 향하는 국도,고속도로는 활짝 펼쳐지는가 싶으면 빠른 길을 찾으려 국도로 지나친 적도 있다.기억으로는 국도의 모습은 비포장도로이고 좌우로는 포플라가 즐비하게 서있고 때는 가을 무렵이라 들판엔 끝도 없는 옥수수밭,땅콩밭,수수밭이 한창 자라나고 중국인의 식량으로 기대에 부풀어 오르고 있던 기억이 아련하다.
홍까오량(红高粱)은 붉은 수수라는 의미로 1920~30년대 작가의 고향인 산동성 까오미(高密)똥뻬이(东北)마을과 소년 떠우꽌(豆官)과 사령관 위잔아오(馀佔嗸)가 이끄는 항일부대와 비적을 중심으로 칠흑과 같은 시대상과 가족사를 작가의 조부모님으로 듣고 당시의 상황을 상상력을 발휘하여 최대한 발휘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다만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똥뻬이 마을은 그가 수호신으로 여기고 본향이라고 굳게 믿는 만큼 각별한 애정이 묻어 나기도 하다.
14세였던 떠우꽌은 사령관 위잔아오 장군과 일본군 방어 매복전에 참여하고 똥뻬이 마을 인근 머수이(墨水)에 군영을 설치한 일본군과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어머니 따이펑롄(戴鳳莲)은 지략과 미모의 여주인공으로 여성해방 운동에 앞장을 서게 된다.따이펑롄은 문둥병 환자인 남자와 결혼을 할 예정이었으나 위잔아오가 중간에서 겁탈하는 바람에 위잔아오가 남편이 되며 이 글은 홍까오량 가족을 비롯하여 5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스토리는 한결같이 항일운동과 홍까오량 가족사가 중심이 되고 있다.
할아버지 류루어한은 일본군에 의해 살가죽이 처참하게 벗겾는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똥빼이 마을 주민들은 희생자들을 위해 천인분(千人墳)을 만들게 되는데 시체냄새를 맡고 달려온 빨강이 개를 물리치려다 한 쪽 불알을 물리게 되고 위잔아오는 본부인 따이펑롄 외에 롄얼이라는 첩과 사랑을 나누며 두 집 살림을 하게 되고 본부인 따이펑롄이 죽어 장례를 치르는데 스님의 영생불멸의 염불과 철판회원들의 영구 운반,만장기 등이 한국의 전통 장례식과 흡사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중국 공산당이 창립되기 전 공산당과 국민당의 치열한 내전에 국지전 형식을 띤 항일 유격대원과 일본군과의 이전투구에 조그마한 마을 똥뻬이의 홍까오량 가족의 씨줄과 날줄의 사연은 작가의 거침없는 입담과 필치가 두드러지고 개인적으로는 중국의 전통 문화와 풍습,중국인의 신화적이고 주술적인 신화 구조도 어느 정도 알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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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모우 감독의 '붉은 수수밭'의 원작 '홍까오량 가족'.
현재 중국문학계에서 가장 강력한 노벨 수상 후보로 꼽히는 모옌의 초기작이다. '홍까오량 가족'은 일종의 연작소설로, 영화 '붉은 수수밭'은 1부 '붉은 수수'와 2부 '고량주'만을 다룬다. 비록 장이모우 감독의 '붉은 수수밭'을 계기로 모옌이 유명하게 되었지만 영화보다는 소설이 더 낫다. 개인적인 판단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
소설은 1920년대와 1930년대, 일본이 제국주의의 폭력으로 무장하며 중국을 침략할 때를 배경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일반 민중들의 삶이 그려진다. 비적, 공산당, 국민당, 양조장 사람들, 일본군인.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주인공은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그러니까 서술자는 작품에서 서술만 할 뿐, 사건과 큰 관계가 없다. 때때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도 나타난다. 서술의 다양함이 이 작품의 한 특징이다.
번역은 아쉽다. 단씨 부자의 성이 원래는 '산'씨인데, 결정적인 오역이다. 내가 듣는 수업의 교수님에 따르면, 박명애 씨의 번역이 좀 허술하단다. 사정이 있다네. 확실한 정보는 아니니까 밝힐 수는 없지만 여하튼 번역이 좀 그렇다네.
중국근대사를 압축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일반 민중의 삶을 소박하면서도 재미있게 그렸다는 게 이 소설의 특징. 좀 굵고 비싸다.
그건 그렇고 당최 대산세계문학 중에는 내가 아는 작품이 없네. 아 무식한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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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봣던 영화<붉은 수수밭>를 최근에 한 번더 보고나서야 이 영화에 원작이 있다는것을 알게되었다. 게다가 원작의 작가가 최근에(2012)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고한다. 결코 만만한 두깨가 아닌 이 책을 정독하고 그 내용을 생각하면서 읽어내기는 참 불편하다. 장편소설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 소설은 작가가 각각 발표한 중편소설 5편을 모아 한권을 장편소설로 만들어 낸것이라는것을 책을 다읽고 나서야 알았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작가의 시점과 배경, 인물들이 뒤죽박죽 섞이고 내용자체도 다섯편이 따로따로 발표된 작품이다보니 그렇게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읽어내기가 정말 힘들었다. 사실 영화의 원작은 이 소설에서 제1장 <붉은수수>의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 드넓은 붉은 수수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강렬한 인상을 책에서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소설작품의 내용이 너무 뒤섞여버리는 바람에 그런 느낌을 갖기에는 불가능했다.
모옌이라는 작가가 왜 이렇게 각각 발표된 다섯편의 중편소설을 묶어 장편소설로 다시 출간을 했는지든 모르겟다. 이런 경우도 거의 드문경우라 생각하는데, 차라리 처음부터 이 소설을 장편소설이 아닌 다섯편의 중편작품으로 생각하고 읽는것이 더 나을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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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까오량 가족을 통해 중국 민초들의 삶에 대해 깊이 있게 알 수 있었다. 홍까오량 가족에서는 중국이 식민지 치하에 있을 때 민초들이 일본에 어떻게 대항하는 지와 민초 의병과 정부 군사 사이의 갈등을 주로 다룬다. 우리나라는 1910년에 일본의 식민지에 들어가 극심한 수모를 당했다. 중국은 청일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일본은 중국에서도 만행을 저질렀다. 이런 점에서 중국 민초들의 삶과 일본의 집권 아래 있었던 우리나라이 현실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나라에서 자신의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자신의 나라가 완전히 다른 나라 손아귀 안에 들어갈 위기에 있으면 독립운동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란 독립운동이 시작되면 더 큰 불행이 온다. 상대국에서는 자신의 재산을 빠앗기지 않기 위해 더 통제를 삼하게 가히기 떄문이다, 이럴수록 한 민족은 서로 더 뭉쳐서 응집력을 가지고 저항해야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한 나라의 위상보다는 각 단체의 위상을 중요시해서 합쳐지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서로를 해하려 노력했다. 홍까오량 가족에서도 보면 의병 단체와 국가의 공식적인 군사가 대립된 관계를 가지고 서로를 공격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중국 민초들의 삶은 지나치게 집단 이기주의적이다. 사람은 본래 자신이 소속된 그룹에서 군중심리를 갖고 소속감을 지녀 같은 집단 맴버를 선호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행동도 해야할 때가 있고 하지 말아야할 때가 있는 것이다. 중국 민초들은 개별적으로 봤을 때는 애국심이 강하고 독립하려는 의지가 누구보다도 강하다, 그러나 결국에 비극적 결말을 맞은 것에는 집단 이기주의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반면 어느면에서 볼 떄는 정의롭다. 민초들은 부조리한 사회를 보고 저항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내놓았다. 그들이 비록 중국의 하층민이었지만 결국에는 나라성립의 주춧돌이 된 것이다. 민중의 우직한 정서가 있고 집단이기주의는 사라졌다면 아마 중국은 더 행복한 결말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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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까오량 가족은 수수를 재배하며 고량주를 만들며 사는 한 가족의 생애를 써낸 작품이다. 붉은 수수밭은 수도없이 발생한 전쟁을 통해 이미 공동묘지가 되버렸다. 예전에는 그 수수를 베어 술을 만들며 생계를 꾸려갔지만 이제 그 곳은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위해 싸우는 곳일 뿐이다. 작가는 계속해서 바뀌는 시점과 시간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전에 평화로웠던 마을이 한 순간에 지옥이 되어가는 과정을 더욱 비참하게 표현한다. 중국을 침략하는 일본군과 그에 맞서는 민중들, 이런 상황에서도 서로 단합이 되지 않는 공산당과 국민당이 서로 싸우는 모습은 자신의 사상만이 옳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어리석음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각인시켜주며 그 배경인 붉은 수수밭이 이 일을 더욱 비참하게 표현한다. 책을 읽다보면 사람이 죽는 모습을 너무 잔인하게 표현했다고 느낄 수가 있는데, 전쟁을 겪지 않은 모옌이 이 책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본다면 모옌이 자신이 서설에서 밝힌대로 전쟁 중에 변이된 인간성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작가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모옌은 이런 잔인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모옌은 책의 마지막에서 까오미 둥베이 향을 덮어버린 하이난따오에서 넘어온 잡종수수를 원망한다고 썼다. 이 잡종수수는 자신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마을의 본래의 정신과 의지를 침략하고 어지럽힌 사람을 상징한다. 이는 일본군이 될 수도 있지만 공산당이나 국민당이 될 수도 있다. 애초에 중국이라는 한 국가를 위해서 였다면 공산당과 국민당은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해도 힘을 합쳤어야 했다. 자신이 꿈꾸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가 존재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 잊어버린 듯 두 당은 끊임없이 서로를 헐뜯고 싸웠다. 이는 '개들의 길' 에 나온 세 마리의 개가 처음에는 한 조직으로 뭉쳐있다가 서로를 밀어내고 결국 세력이 약해져 사람에게 당하는 모습과 똑같다. 이 때문에 중국민족은 일본군에게 무참히 짓밟히게 된 것이다. 모옌이 붉은 수수가 다른 누구도 아닌 민족의 정신을 의미한다고 한 것도 공산당과 국민당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자세하고 잔인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문학이 아무리 시대를 넘나든다고 말하지만 이렇게 그 당시의 참혹한 풍경을 눈 앞에서 본 듯이 생생하게 알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모옌 스스로의 역량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이 책을 통해 문학이 작가가 겪은 시대뿐만 아니라 작품 속의 시대까지고 독자에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문학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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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까오량 가족은 201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모옌의 대표작이다. 내가 이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어른들과의 술자리때문이었다. 이 때 질 좋은 고량주를 마시게 되었는데, 내가 중국에서 마셨던 고량주의 독하기만 한 느낌이 아니라, 마치 산뜻한 꽃향기가 머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좋은 술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붉은 수수밭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결국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주로 30년대부터 중일전쟁을 거쳐서 45년 종전 전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내용의 가장 큰 중심은 중일전쟁이다. 중일전쟁 이전에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겪고 있던 평범한 일상들과 인간적인 면모들을 낭만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중일전쟁이라는 큰 고난의 시간부터 변해가는 할머니 세대들을 정교하게 묘사한다. 이 변한 모습들은 용감하지만 잔인하고, 영웅적이지만 악당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서 나는 작가 모옌이 생각하는 영웅은 결코 이상적으로 옳은 일만 하는 선인이 아니라, 때로는 실수도 하고, 악한 짓도 하는 반대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는 인간적인 영웅이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붉은 수수’이다. 이 붉은 수수는 항일전쟁을 하는 할아버지의 부대가 몸을 숨길 수 있는 방패가 되기도 하면서, 가정이나 향촌의 모든 행사에서 쓰이는 고량주가 되는 등 일상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로 나타난다. 책 곳곳에는 건물, 사건, 사물에 대한 상세하고 몽환적인 묘사가 나타나지만, ‘고량주’가 나올 때의 묘사는 절로 주향이 피어오르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실감난다. 화자인 ‘나’의 모습은 잘나타나지 않지만, 가끔씩 자기 생각을 말하는데, 1930년대를 말하다가도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을 하는 등 조부 세대 이후의 이야기와 연관 내용을 적어가는 방식이 독특하였다. 책의 서술적 특징에 대해서 몇 가지 적어보면, 스토리는 시간순서대로 흘러가지 않고, 1936년의 이야기를 하다가 1939년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1941년의 사건을 말하다가도, 다시 과거를 다루는 등 줄거리 흐름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도,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또, 글은 화자 자신이 생각한 것이나 들었던 것을 이야기 하면서도, 전지적인 작가의 시점에서 인물의 심리나 인물이 경험하지 못했을 사건들을 말하고 있다. 한 사건에서도 ‘나’의 시점과 ‘타인’의 시점을 모두 서술하였으며, 이로 인해 내용을 더 잘 이해하고 기억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 사건과 내용이 중복되는 곳은 많지만, 그 내용과 표현의 깊이는 너무 넓고 깊어서 , 새로운 글을 읽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동일한 사건을 여러 인물의 관점에서 여러 번 보여주기 때문에 작품을 이해함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기에 700페이지의 이 책을 다 읽고 나더라도 사건에 대한 상세한 이미지가 머리 속에 선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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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까오량 가족》은 일본이 점차적으로 중국을 침략할 때, 중국 산동성 까오미 현을 배경으로 한다. 책의 제목에서 보이는 홍까오량은 ‘붉은 수수’를 의미하는데, 이 붉은 수수가 책 전반적 분위기를 지배하고, 사건의 대부분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붉은 수수는, 까오미 현의 민초들과 닮았다. 잡초와 같이 아무리 밟아도 다시 그들의 삶을 이어나간다는 민중, 그리고 수수. 붉은 수수는 그들의 삶의 터전이자, 식량이기도 하며 가난하고 순수한 민초들의 정신이고, 그들 자체이다. 그들은 수수를 기반으로 하여 살아가고, 그들의 붉은 피는 다시 수수가 자랄 흙에 뿌려졌으며, 수수는 다시 그곳에서 자라나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인다. “당신은 뭘 무서워하는 거요? 뭘 걱정하는 거요? 누가 관리가 되든 우리는 여전히 농민이란 말이오. 우리는 황제의 양식을 빼앗지도 않았고, 나라 세금도 빼앗지 않았고, 누우라면 눕고 꿇으라면 꿇어앉곤 했는데, 누가 우리를 죄인으로 취급하겠소? 당신들 말해보시오. 누가 우리를 죄인으로 취급하겠소?” (《홍까오량 가족》p.570) 그러나, 사회는 그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선량한 민초들이지만, 그들은 역사 속에서 항상 ‘죄인’이었다. 《홍까오량 가족》에서 보여지는 작가 모옌의 서술 방식은 굉장히 특이하여 나의 눈길을 끌었다. 소설은 ‘나’에 의해서 서술되는데, 실질적으로 소설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나의 할머니’, ‘나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이다. 1인칭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과도 같이 모든 인물들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쉽게 볼 수 없는 서술 방식이기에, 독특한 그의 서술에 쉽게 빨려 들어갔다. 또한, 작가는 작품 속에서 마치 한 편의 영화 또는 하나의 수채화 작품과도 같은 묘사를 보여준다.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 바다와 같이 펼쳐져 있는 수수의 모양새와 같은 풍경 뿐 아니라, 인물의 생각, 행동 심지어는 그들이 당한 핍박과 그로 인한 공포감까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201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모옌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불리우는 《홍까오량 가족》은 일본에 의해, 또한 공산당과 국민당의 세력 싸움에 의해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가는 중국 민초들의 삶을 그려낸다. 그러나 그들의 강한 정신과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으며 지금까지 전해 내려왔다. 이러한 중국 민초들의 삶을 작가는 한 폭의 명화와 같이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묘사로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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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수수밭 속 외침 >
모옌(莫言)의 대표작품인 『홍까오량 가족(紅高粱家族)』은 모옌의 고향이기도 한 산둥성(山東省) 까오미 현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며, 중국이 식민지 치하에 있으면서 이념적 분열을 겪오 있는 1920년대부터 1940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이다.
600쪽이 넘는 장편 소설인 『홍까오량 가족(紅高粱家族)』은 책의 두께에서 살짝 질린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실제로 책장을 넘기다보면 쉬이 읽어진다고 느끼는데 이는 감각적이고 생동감있는 문체와 다양한 시점의 사용 때문인 듯 하다.
『홍까오량 가족(紅高粱家族)』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은 어느 한 이념이나 사상에 얽매여 있는 지식인이 아니라 일반 백성 즉, 농민들이다. 이전에 읽었던 중국 소설들에서는 대게 중국 근대 지식인들의 생각이나 좌절 등을 사실적이고 메마른 감정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홍까오량 가족(紅高粱家族)』에서는 식민지 치하 당시 농민들의 분노와 봉기, 전쟁 속 슬픔을 감각적이고 향토적인 문체로 표현해내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팔월이 되면 끝없이 펼쳐진 수수밭은 마치 아침햇살을 받아 붉게 물드는 드넓은 바다처럼 넘실거렸으니, 수수 마을 까오미는 휘황찬란했고 수숫잎 부딪히는 소리는 은은하고 구슬퍼서 사람들에게 일종의 감동을 일으켰는데, 그 수수들은 사람을 격정에 달뜨게 만들었습니다. (-제1장 붉은 수수, 19p.)
그 중 까오미 현에서 주식으로 삼아 심는 ‘수수’는 그 당시 농민들의 모습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데, 한 개의 수수는 연약하고 쉽게 쓰러지는 존재이지만, 수천 개의 수수들은 서로 하나의 밭을 이루어 바람, 비, 천둥과 같은 자연현상에도 쉬이 쓰러지지 않고 버티며 붉은 수수들을 만들어낸다. 또한 전쟁 속 까오미 현의 수수밭은 전쟁 속에서 죽어간 마을 사람들의 무덤이 되어주고, 적을 피해 숨을 수 있는 은신처 때로는 젊은 남녀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도피처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러한 수수의 특성은 외세에 의한 탄압, 폭력에 굴하지 않고 서로 모여 이에 맞서는 까오미 현, 그를 넘어서 당시 중국 백성들의 모습을 잘 나타내준다. 또한 수수밭이 다양한 장소로 탈바꿈하는 것은 중국 농민들의 자국에 대한 애정과 포용심을 나타내준다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수수밭이 주는 붉은 이미지는 농민들의 생동감적인 모습을 더욱 더 잘 드러내준다.
『홍까오량 가족(紅高粱家族)』에서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감각적인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색(色)과 비유를 이용한 표현이 두드러졌다. 작품 전체에서 ‘수수’의 붉은색은 중국 농민들의 생동감과 애국심을 보여주지만, <제3장 개들의 길>에서 아버지를 공격한 ‘빨강둥이’가 보여주는 붉은색은 광기와 내재된 분노를 잘 보여준다. <제4장 수수 장례식>에서 ‘피투성이가 된 병사가 언덕을 기어오르는 장면’에서 병사의 움직임을 지렁이와 우렁이에 비유하며 분수처럼 쏟아지는 피를 통해 병사의 생(生)에 대한 절박한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모옌(莫言)은 색채를 이용한 묘사, 비유 기법들은 대개의 경우 글을 내용을 조금 더 사실적이고 쉽게 이미지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 『홍까오량 가족(紅高粱家族)』에서 몇몇 장면들은 글의 분위기를 몽환적이면서도 신비롭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제1장 붉은 수수>에서 ‘일본군 전차에 의해 할머니(따이펑리옌)와 왕원이 아내가 죽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영화의 슬로우 모션(Slow motion)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데 이때 쓰러지는 할머니와 왕원이 아내의 붉은색 피, 그들이 준비한 차삥의 하얀색, 대파의 파란색과 같이 색의 사용은 해당 장면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것 같지만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른과 아이가 나란히 달빛 세례를 받으며 수수밭 깊숙이 들어갔대요.(-제1장 붉은 수수, 21p.) 단피엔랑을 죽이고 나서 위잔아오는 후회하지 않았고, 놀라지도 않았다. 다만 참기 힘든 구역질만 느껴질 뿐이었다.(-제2장 고량주, 197p.)
또한 글에서는 한 가지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않고 시점을 다양화하는데, 이러한 방법 역시 독자들이 글을 쉽게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 글에서는 크게 ‘나’가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는 1인칭 관찰자 시점과 함께 특정 인물에 대한 내용이나 감정선을 다룰 때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두 가지 시점의 혼재는 다음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우선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사용은 소설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독자들로 하여금 객관적으로 인물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며 20-40년대의 중국의 참혹한 현실에서 역시 거리를 두어 전쟁의 비극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주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은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룰 때 그들의 감정 하나하나를 자세히 이야기해 독자가 해당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해주며, 주요 인물들의 성격, 사상, 태도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한다. 결국 시점의 혼용은 작품 속 주요 인물들에 대한 세세한 파악을 하면서도 작품 전체의 흐름을 무겁지 않게 보여주어 독자들 글에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모옌(莫言)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중국의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그만의 독특한 문체와 기법을 이용해 독자들이 글을 쉽게 받아들이고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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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이 매몰되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아침 출근길에는 고속도로로 나가는 길이 있다. 직진하면 직장이고 우측차선으로 변경하면 그 길로 중부고속도로다. 나는 거기서 자꾸만 오른쪽을 바라본다. 나가고 싶지만 별 수 없이 직진이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정신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릴 때 여행을 처방한다고 했다. 동료 의사들도 여행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실 정신과 의사가 그렇게까지 환자에게 조언을 할 필요가 있는가 싶어 몸을 사린다고 했다. (내가 단골로 가는 한의원 원장님도 당신은 운동만이 살길이라며 잔소리를 하다가 스스로 절제하느라 입을 다문다. 아마도 그런 마음일 것이다. 지나치면 도리어 하지 아니한 것만 못한 경우도 종종 있다.)
일상에 묻혀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느끼지만 여행조차 자유롭지 못한 당신과 나에게 필요한 것은 책이다. 책 중에서도 바로 이런 책 ‘홍까오량 가족’이다. ‘백년의 고독’, ‘한밤의 아이들’의 중국판이다.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내는 개인의 이야기를 이정도로 쓰면 대부분 노벨상을 탄다. 마르케스나 모옌처럼 말이다. 모옌은 이 책에서 중국의 작은 마을인 까오미 현에서 일어난 항일 운동을 그리고 있다. 해마다 강물이 범람해서 다른 작물을 키우기 어려운 까오미 현에서는 수수를 심었고 그 수수로 고량주를 만든다. 붉은 수수가 펼쳐진 풍경은 좀 낯익지 않은가? 그렇다 이 책은 공리가 주연한 ‘붉은 수수밭’의 원작이다. 고량주의 붉은 색과 수수를 밟는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던, 공리의 야무진 얼굴이 아직도 생생한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대부분 소설을 영화화하는 경우가 그러하듯 영화는 소설의 아주 일부분만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까오미 현을 둘러싼 드넓은 수수밭의 수숫대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는 화자의 할머니인 따이펑리옌이 아들이자 화자의 아버지인 또우꽌을 양아버지 위잔아오 장군 손에 딸려 보내면서 시작한다. 이제 곧 위잔아오는 항일 전투에서 전우를 모두 잃을 것이며 팔을 다칠 것이고 따이펑리옌은 차삥을 가져오다 가슴에 두방의 총을 맞을 것이며 그녀는 죽어가면서 아들인 또우꽌에게 실은 위잔아오가 양아버지가 아니라 친아버지라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계속된다. 나는 마치 뫼미우스의 띠를 그리는 것만 같았다. 위잔아오가 어떻게 따이펑리옌을 얻게 되는지 따이펑리옌의 충복이었던 루어한 큰할아버지는 일본군에게 어떻게 죽임을 당하는지...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고 그 이야기는 또 이야기를 낳으며 다음 이야기는 앞의 이야기로 넘어오고 시공간은 뒤섞이면서 하나로 연결된다. 정교하거나 치밀하지 않다. 때때로 뜬금없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야기의 파도에 휩쓸린 사람은 그런 사소한 문제를 눈여겨볼 겨를이 없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해도 바쁘다.
그렇게 책을 덮고 나면 숨이 가쁘다. 나는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항일전투를 치르는 중국여행을 다녀왔다. 앞으로 IT기술이 발전하면 우리는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때쯤 되면 내가 지금 소설 한 편을 읽고 경험하는 느낌에 비해 훨씬 짜릿하고 실감나는 자극을 얻게 될 것이다.(하기야 롤플레잉 게임이야 말로 경험하는 영화겠지. 이미 하고 있는 일이겠지.) 하지만 말초적인 자극은 쉽게 사라진다. 왜냐하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내가 해야 하는 것이 있지만 영화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내가 능동적으로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책을 읽는 것보다는 실제로 몸으로 겪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아쉽지만 1920년대 중국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항일전쟁을 몸으로 체험할 수는 없으니 차선으로'홍까오량 가족'을 읽는 수밖에 없다. 콜롬비아의 뻥쟁이 아저씨 마르케스와 인도출신의 뻥쟁이 아저씨 살만 루시디와 모옌이 한 자리에 앉아서 허풍을 떨면 누가 이길까 궁금했다. 아주 가관일 것이다. 쌀롸쌀롸 대륙이 들썩거린다. 나는 그 들썩거림에 몸을 실었다. 튀어오를 때마다 조금씩 다른 것이 보인다. 신이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