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놀랐다. 이제 까지 읽어 왔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는 너무나도 다른 내용의 책이라서 말이다. 무라카미 소설에 꼭 빠지지 않는 허무함이랄까 그 느낌이 이 책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인지 정말 순식간에 이 책을 다 읽어 버렸다. 이 책의 제목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고 한것 처럼 이 책에서는 각기 다르지만 같은 두 세계에 대해 그려 놓았다.게다가 세계의 끝이라는 곳에서는 그림까지 그려 이해를 돕게 해놓았다. 두 세계라고는 하지만 서로 정말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서로 공통되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이 책을 다 읽고나면 정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인가 할정도로 놀랄것이다. 그리고 더욱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
| 나는 개인적으로 SF영화나 판타지소설, 무협소설 등의 부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은, 현실과동떨어진 세계에 공감이 되지않고, 또 꼭 의미를 찾아내야하는 강박 때문에 공상소설은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현실의 바탕 위에서 심리적인 묘사를 탁월하게 하고 있거나 직설적으로 비판적인 글들은 그래서 쉽게 손이 간다. 그러나, 상상력의 세계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물질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상상력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에 충분하다. 요즘은 더구나 그것을 매스컴에서도 열심히 얘기하고 있다. ‘하늘이 왜 꼭 파래야 합니까?”라고… 다만 그 상상력의 범주와 위험을 감안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개의 경우, 상상력은 어떤 것의 모방 안에서 이루어지거나, 틀이 없는 무한한 상상은 종종 중심을 잃고 작가의 놀음처럼 과장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값싼 상상력은 흥미를 단숨에 빼앗아 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 이나 ‘렉싱턴의 유령’ 등은 여행시 필수품처럼 많이들 읽는다. 나도 그랬고. 이에 비해 그가 가장 힘들게 써내려갔다는 소설 ‘세상의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좀 다른 느낌이다. 나는 이 책이 상상력의 집합체라는 어느 독자의 평에 의해 유혹받았고, 또 작자가 하루키라는 점에서 읽게 되었다. 하루키의 글은 일본 작가답게 서구와 동양 문명을 재주껏 잘 배합시킨다. 동양적 냄새는 사실적 묘사를 통해서 드러나지만, 그 글이 주는 이미지는 서구적이다. 현대적이다.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원더랜드’ 는 그의 새로운 면을 보는 재미를 준다. 우선 소재가 매우 파격적이다.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알고 싶은 ‘세상의 끝’을 얘기하고 있고,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배제된 ‘하드보일드원더랜드’에서는 묘한 세상을 꾸며내고 있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한편의 추리소설을 보는 듯하다. 속도감이 있고 완급의 조절을 통해 영상이 떠오른다. 세상의 끝에는 ‘그림자’와 ‘마음’이 있고, 우울한 환경적 제약이 있다. 숲을 따라가며 지도를 그리는 주인공은 그 제약을 벗어나려는 의지로도 해석이 되지만, 결국은 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든 현실로도 설명된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상의 끝은 하나씩 번갈아가며 구성되어있다. 읽기가 힘들 것 같지만, 가만히 읽다보면 결국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상의 끝’은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상상을 하게 한다. 참 재미있는 글이다. 작가의 상상력을 만끽하면서 슬쩍 나도 상상을 하게 되니 말이다. |
|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지 알수 없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 두개를 얽기설기 엮어가는 듯하다. 하지만, 두세계는 모두다 내가 속해 있는 세계이며 동시에 나는 어디에도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루키의 최대의 역작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드월드는 자신이 자부하는 작품이다. 오히려 가장 많이 알려진,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보다, 또한 출세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보다 스스로 가장 힘들게 쓰내려온 책이다고 작가 스스로가 말하는 책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인 작가인-나는 아니지만-하루키가 스스로 가장 힘들게 써왔고, 또한 스스로 가장 만족을 느끼는 작품이라면, 누구라도 입맛이 당길만하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찾아가는 길, 그 길의 도중에서 주인공은 갈등한다. 길을 찾아서 자신을 찾아가는 길을 찾아서 헤매일때와 결국 그 길을 찾아내고는 자아의 붕괴를 일으킨다.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하던 의지는 거부한 것이다. 현실에의 도피를 말함은 분명 아니다. 그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그곳에서 오히려 명확해지는데, 세계의 끝을 벗어나서 하드보일드 원더월드로 돌아오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답은 어디에나 있는 것, 굳이 삶이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라면, 그것을 남들이 생각하는 곳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은 망각의 세계속에서 살지만, 그 속에서 자신을 찾는다면, 그것이 자신을 찾아가는 더 가까운 길이라면, 나는 이 세상을 버릴 것이다. 하루키가 하는 말은 무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찾은 것은 오히려 그렇게 단정지어서 하루키의 의도를, 하고 싶은 말을 왜곡시키고 싶진 않지만, 바로 이것이다. |
| 장자가 어느 날 낮잠을 자며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장자는 나비가 되어 꽃사이로 나풀나풀 날아다니고 있었다. 잠에서 깬 장자는 어떤 모습이 자신의 진짜 모습인지 혼란스러워 졌다. 내가 '나'인가, 나비가 '나'인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는 의식적 자아와 무의식적 자아가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편의상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어떤 것이 의식이고 무의식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아웅다웅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는 이 세상도 어쩌면 한낮 꿈일지 모른다. 좀 더 느긋하고 편안하게 살아도 좋은 것 아닌가. 그렇다고 되는대로 살라는 건 아니다. 다만 연연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 책은 극도의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책을 권해달라는 친구들에게 서슴없이 이 책을 권한다. 세상에 대한 끈만은 마련해 놓고 읽으라는.. 말을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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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버거울만큼 힘든 적이 있었다.이렇게 한가지 목표만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나..하는 두려움과 고통에 시달리던 때였다. 그 때 이 책을 만났다.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꼭 읽어보라는,지금의 너에게 큰 힘이 되줄 수 있을거라는 이야기와 함께..무라카미 하루키는 물론 한국에서 잘 알려진 일본작가중의 하나이지만,나에게는 생소한 사람이었다.늘 서점 한 중앙 자리를 차지하고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 부담(?)스러웠다.. ...책을 읽은 후에 샀다...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한 책..읽은 후 사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책을 산지 한해가 지나고 다시 읽었다.. 두개의 파트가 한번에 시동이 걸린다.다른 이야기 이지만 결국은 같은 이야기다. 항상 그런 생각을 했었다..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난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무섭지만 이제 두렵지는 않다.홀로 남겨질 곳은 세계의 끝이겠지만,끝을 고하는 그 곳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가지! 세계의 끝으로 가서 내 꿈을 해석할때..아..나는 참 남긴 것이 많았구나^^ 하고 생각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나 자신이 우주의 끄트머리에 홀로 남겨진 듯했다.이제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도 되돌아갈 수 없다.여기는 세계의 끝이고,세계의 끝은 어디와도 통하지 않는다.세계는 그 끝을 고하며 고요하게 멈춰 있는 것이다... |
| 무라카미 하루키를 설명하는 것은 어쩌면 우스운 일이다. 아마도 일본 작가로서 우리나라에 알려진 이들 중 가장 유명할 것이며,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작가로 손가락 꼽힐 정도임에 틀림없다. 그런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에 빠져드는 많은 독자들이 한번 쯤은 거쳐가야 할(?) 하루키의 작품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작가 자신의 말처럼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두 편의 전개가 매우 흥미롭다. 형식면에서, 두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둘 사이에 알듯말듯한 고리를 연결해 나간다. 그러나 하루키에게 있어서 형식적 단절은 곧 그가 말하고자하는 전부이었는지도 모른다. 두 이야기는 서로를 상실한 채 - 상실은 하루키의 일련의 작품에 깔린 모티브일 것이다. - 어디론가 진행되어 간다. 어쩌면 이것은 하루키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인생일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나와 잃어가는(?) 나. 바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다시 한번 하루키의 '상실'을 실감하면서 그의 작품 여정 중 다소 독특한 발자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