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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20대에게 바치는 버라이어티 퀴즈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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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20대에게 바치는 버라이어티 퀴즈쇼 90년대 후일담 문학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한국 소설계는 80년대의 민중문학과 의미적 단절을 시도 한 듯 보인다. 70년대 출생 작가들의 거침없는 서사와 외침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눈은 애써 기존 한국문학의 흐름 속에 의미 없는 연장선을 찾으려 애쓰는 모습이다. 새로운 글쓰기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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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20대에게 바치는 버라이어티 퀴즈쇼


90년대 후일담 문학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한국 소설계는 80년대의 민중문학과 의미적 단절을 시도 한 듯 보인다. 70년대 출생 작가들의 거침없는 서사와 외침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눈은 애써 기존 한국문학의 흐름 속에 의미 없는 연장선을 찾으려 애쓰는 모습이다. 새로운 글쓰기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김영하 교수의 신작 소설집을 손에 들고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그가 바라보는 지금의 한국사회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퀴즈쇼’ 소리 없는 전쟁

1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퀴즈쇼의 서사구조는 매우 빠른 호흡을 가지고 있어 책장을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한다. 허영으로 가득 찬 외조모 최여사의 죽음과 함께 찾아 온 금전적인 압박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젊은 군상들이 가지고 있는 고통의 근원이며 삶의 터전이 되는 주택을 그 빚 갚음으로 갈음하는 행위를 통해 주인공은 기성세대와의 물질적 유산과 결별하고 고시원으로 상징되는 현대 수많은 하류인생의 삶 속으로 편입된다.

냉장고 박스 보다 조금 더 큰 고시원의 쪽방에서 주인공 ‘이민수’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는 랜선이 깔린 노트북 컴퓨터와 휴대전화뿐이다.


“잠깐만요, 창문 없어도 될 것 같아요, 대신 인터넷을 좀 연결을 했으면 좋겠는데요.”

나는 현실의 창 대신에 빌 게이츠의 창, 마이크로 소프트의 윈도를 선택했다. 그 때는 햇빛이 소중하다는 것을, 한 달 이만원 정도의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P62


고시원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주인공이 주력하는 것은 인터넷 채팅 사이트의 퀴즈방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활동으로서의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이다. 그러나 퀴즈방에서의 흥분과 환호 그리고 은밀한 사랑의 시작과 달리 현실에서의 그의 삶은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점철된 부스스한 모습의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취업준비생의 그것이다.

가상과 실상의 묘한 징검다리인 편의점 아르바이트마저 ‘그깟 돈 사만원’ 때문에 너무나 우습게 사라져 버리고 주인공에게 남은 것은 가상 현실속의 롱맨(퀴즈방에서 주인공이 사용하는 아이디)뿐이다.

작가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통해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20대에게 자조와 위안을 준다.

팜므파탈과 물질주의의 화신으로 분한 주인공의 여자친구 ‘빛나’의 따끔한 일갈을 통해 기성세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의 교묘함도 볼 만한 대목이다.


‘퀴즈쇼’ 안으로 들어가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서사의 한 방법인 환몽구조를 큰 축으로 하고 있다. 현실-꿈-현실 로 이어지는 고래로부터 전해진 서사의 틀을 2007년 현실에 맞게 적절하게 변용한 작가의 상상력이 빛난다.

꿈에 대응하는 부분이 바로 소설의 후반부를 흥미진진하게 엮어 내고 있는 ‘회사’생활 속이다. 전문적로 훈련된 지식인 집단이 팀을 이루어 투견, 경마처럼 주말마다 전국 모처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사행성 도박 이벤트 “퀴즈쇼”에 출전한다.

팀 배틀과 개인전을 통해 벌어들이는 상금과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 거는 배당금을 통해 현실과 철저하게 분리된 또 다른 경제구조를 가진 사회의 모습을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해 만들어냈다. 이 ‘회사’의 ‘마티니’팀에 속해 팀원들과의 알 수 없는 부조화를 겪으며 주인공은 주목받는 삶을 이루어 내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꿈을 깨는 순간은 허망하기 그지없다.

그가 꿈을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곳은 엉뚱하게도 주인공이 알고 있었고 경험을 통해 축적된 인식의 지평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강원도 대관령 어귀의 숲속이다.

‘회사’시절, 팀원 ‘유리’의 입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의심하게 하는 화두를 던져 준다.


“그냥, 우, 우리가 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거 알고 있는지... ... 해서, 아니야, 그냥 이, 잊어버려, 아, 아무것도 아니야”                        P343


“유리의 말대로라면 이 모든 게 일종의 환각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여기서 겪는 모든 일이 과연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나는 내 방에 틀어박혀 고민을 거듭해 봤지만 이 모든 게 환각일지도 모른다는 유리의 말을 반박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 모든 게 한 편의 생생한 꿈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자신 있게 반박할 수 없었다.“     P352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에서 이세와 현세를 구분하지 못하는 성진<양소유>에게 육관대사가 일갈하듯, “장주가 꿈속에 나비되고, 나비가 꿈을 꾸어 장주가 되니 어느 것이 장주요, 어느 것이 나비인가” 라는 물음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현실과 그 가상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해 주변부로 밀려나 버린 냉혹한 실제 현실 속에서 우리들은 어디쯤 와 있는 것인가?


4가지 색깔의 사랑이야기

이 소설 속에는 주인공과 관계 맺기를 통해 이어져 있는 4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이야기의 시작과 함께 주인공의 여자 친구로 등장하는 ‘빛나’라는 여성은 주인공에게 현실적인 삶의 감각을 요구한다. 여자들이 핸드백을 선택하는 비유를 통해 본문에서 드러나는 물질문명의 화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두 번째는 ‘벽속의 요정’이라는 아이디로 가상공간의 삶과 방송국 퀴즈쇼 프로그램의 구성작가인 ‘서지원’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이다. 그녀의 벽 속으로 초대받아 따뜻함과 장난기어린 섹스를 통해 구원을 모색하는 주인공과 그녀의 사이에는 수많은 동질감에도 불구하고 좁혀질 수 없는 벽이 존재하고 있다. 그녀가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벽 속의 요정’으로 남는 것이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라 할 수 있을까?

세 번째는 꿈속의 현실이라 할 수 있는 ‘회사’시절 팀원으로 존재하는 ‘메두사’라는 여성으로 일방적이고 건조한 성교가 팀원 전체로 부터의 소외와 유리의 공격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전형적인 요부<팜므파탈>의 이미지를 가진 여성이다.

마지막 이 소설에서 가장 연민을 이끌어내는 여성은 바로 ‘수희’라는 이름보다 ‘옆방녀’ 라는 익명성이 더욱 눈에 밟히는 여성이다. 아침에는 공무원 수험준비를 위한 학원 강의를 듣고 하루 종일 대형 마트의 포장일로 지친 몸을 1.5평의 고시원 쪽방에 눕히고 아침에 들었던 강의를 복습하는 자칭 ‘촌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옆방녀’의 삶의 궤적을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주인공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손을 내밀며 구원의 눈길을 보내던 인본주의의 상징을 볼 수 있다.

주인공이 지원의 저택에서 행복한 하룻밤을 보내는 동안 ‘옆방녀’는 목을 걸 만큼 튼튼한 구석이 하나 없는 고시원의 쪽방에서 방문 손잡이에 목을 매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난다. 그녀가 빌려 준 10만원의 지폐를 사용하여 자본주의의 행복을 샀던 그 순간에 그녀는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그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싶었을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주변에 있는 이름 모를 ‘옆방녀’를 모른 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퀴즈쇼. 탈락하다.

김영하의 [퀴즈쇼]는 현대를 살아가는 20대에게 바치는 성장소설이라 작가와 평론가들이 말한다. 그러나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보다 쓸쓸한 바람처럼 읽는 내내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아릿함이 있다. 20대의 거친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와 이제 점점 주류사회에 편입하기 시작한 30대의 필자는 주인공의 방황과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퀴즈쇼에서 그들처럼 순발력 있게 부저를 눌러 댈 힘을 잃어버렸다.

본선 진출 이후 ‘마르코 폴로’라는 엉뚱한 오답을 말해 탈락한 주인공이 유체이탈을 경험하며 ‘마테오리치’라는 정답을 비꼬듯 되뇌이는 장면들처럼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내 육신에서 풀려나와 20대의 나를 돌아보며 “바보야!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라며 비웃는 유사체험을 했다.

한번 탈락하면 패자부활전이라는 썩은 동아줄 하나 없이 방청석으로 돌아가 조용히 다른 사람들의 전투를 구경하는 주변인으로 물러나야 하듯, 나의 20대 또한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으로 저 어디쯤 놓여있을 것이다.


따뜻함이 구원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이 소설을 읽으며 가슴속에 남은 따뜻한 장면이 있다.

주인공과 ‘옆방녀’가 한 평 반의 고시원 쪽방을 벗어나 별 하나 볼 수 없는 서울 하늘 아래 고시원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기울이는 장면이다. 가슴 한 구석에 시린 바람이 불어오고 그 젊은 청춘들이 나누는 삶의 편린들이 하나하나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그 초라하고 순수한 서울 밤하늘 아래, 후라이팬 위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의 헛헛한 뜨거움이 그래도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것이 아닐까?

20대, 그 쓸쓸한 삶을 위로하기에는 부탄가스 하나, 휴대용 가스버너의 그 작은 화력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g****6 2007.12.07. 신고 공감 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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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매트릭스+트루먼쇼=퀴즈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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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마지막으로 그의 소설을 읽었던 게 어느새 10여 년이 되어간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호출' 등을 통해 90년대 후반 우리 문단의 지각 변동을 예고했던 대형 신인의 출현. 파격과 혼돈, 물흐르듯 끊임없이 풀어놓는 이야기 줄기와 시지각을 자극하는 강렬한 영상에 압도당했었다. 분명 90년대 후일담 소설에서 미시 담론으로 넘어오는 분기점에서 그의 등장은 화려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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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마지막으로 그의 소설을 읽었던 게 어느새 10여 년이 되어간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호출' 등을 통해 90년대 후반 우리 문단의 지각 변동을 예고했던 대형 신인의 출현. 파격과 혼돈, 물흐르듯 끊임없이 풀어놓는 이야기 줄기와 시지각을 자극하는 강렬한 영상에 압도당했었다. 분명 90년대 후일담 소설에서 미시 담론으로 넘어오는 분기점에서 그의 등장은 화려했다.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나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을 포스트 모더니즘의 태동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그러한 ~이즘을 차치하고 그는 도발적이고, 불온했으며 위험하기까지 했다.

 

사실 당시 공지영, 전경린, 하성란, 김인숙, 배수아, 송경아, 은희경, 조경란 등 수많은 여성 작가들의 한없이 내면으로 침잠하는 소설들을 하루에도 몇 권씩 읽었던 적이 있다. 물론 군대 도서관이란 유폐된 공간 속에서 읽을 거리가 부족했던 이유도 있으나, 그들의 화자들이 말하는 여성성, 그로 인한 아픔과 넋두리를 부담없이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군생활이 지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1996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군대에서 읽으며, 이 당황스러운 글쟁이에 급관심을 가졌다. 이후 그의 장편과 단편, 잡문들을 무수히 접했었는데,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그는 이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야 말았다. 될 성 부른 떡잎이었을까?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김영하가 대중의 인기를 얻고, 각종 문학상을 휩쓸게 되면서 이상하리만치 내게서는 멀어져갔다. 왜?

 

오랜만에 김영하의 소설을 읽게 되면서, 자연스레 예전 추억에 젖어들게 된다. 수다 한보따리가 출렁인다. 그의 장편 '퀴즈쇼'를 읽으며, 왜 김영하의 소설이 2000년대 이후 소설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었다. 김연수 정도를 제외하고, 지난 달과 이번 달 전작 읽기를 마친 박민규, 박현욱의 글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다. 명백한 김영하의 아류라고 얘기하기엔 다소 위험하지만, 글을 가공하고 풀어놓는 틀거리는 다분히 김영하의 그것이라 느껴질 만큼 유사한 부분이 많이 보였다.

 

퀴즈쇼는 제목 그대로, 20대 주인공이 겪는 현재적 인생이 마치 퀴즈쇼와 닮아있음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실제로 퀴즈쇼를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스타일의 성장소설로 보인다. 부모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주인공 나(이민수)는 왕년의 여배우였던 외할머니 밑에서 자란다. 인쇄소를 했던 외할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책에 파묻혀 내면 속으로 침잠했던 조숙한 나. 세상과의 소통에 익숙치 않았고, 그렇다고 주어진 현실에 그닥 힘겨워하지 않는 인물이다.

 

낭비벽이 심했던 외할머니가 돌연 사망하고, 집은 경매에 넘어가 빈털털이로 거리에 나앉게 된 나. 별다른 연애 감정도 없었던 빛나와 헤어지고, 1평반에 창문도 없는 고시원에 들어가게 된다. 보증금 없는 월 29만원의 홍대앞 고시원. 그 속에서 나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쫓겨난다. 그랬던 그가 유일하게 탐닉했던 것이 소위 채팅사이트의 '퀴즈방'이었다. 작가의 말에서도 '단 한번이라도 모니터 앞에서 낯모르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키보드를 두드려 밀어를 나누고, 아바타 뒤에 숨어 얼굴을 붉혀본 이들에게 바치는 소설'이라고 했었다.

 

나 또한 군 제대 후 한동안 세이클럽의 퀴즈방을 자주 들락거렸다. 당시엔 소일거리도, 복학에 대한 애착도 없던 때라 늦은 밤 방 안에 앉아 문학방을 기웃거리며, 유치한 퀴즈를 내고 맞추는 단순 게임에 빠졌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퀴즈방에서 얼굴도 모르는 女행과 사랑의 밀어까지는 아니더라도 별 시답지 않는 수다를 떨며 킬킬거린 적도 있다. 하긴 당시엔 채팅사이트를 통해 벙개를 하는 주위 사람들도 많았다.

 

퀴즈방에 탐닉했던 내가 '벽 속에 요정'을 만나 격정과도 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실제 방송국의 퀴즈쇼 구성작가였던 지원을 만난 나는 이후 장밋빛 사랑을 젖어 하룻밤 잠자리까지 하게 된다. 마치 도플갱어처럼 자신의 영혼과 닮아있는 그녀를 안으며 행복에 젖어있을 때, 고시원 옆방녀는 목을 매고 자살을 했다. 오가며 인사하는 정도였던 옆방녀에게 20만원을 빌렸고, 급한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었는데 돌연 자살을 한 것이다.

 

이후 나는 오랜 방황을 하다가, 이춘성이란 스카우터를 찾아가 매트릭스와도 같은 세상 속에 들어간다. 퀴즈 경기의 선수로 스카웃된 나는 경마 경기처럼 수많은 관중이 있는 경기장에 들어서 상대편 선수들과 퀴즈 경기를 치룬다. 물론 실제감이 떨어지긴 하지만, 박진감 넘치는 대결과 그 속의 인물 군상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치밀해서 완전 몰입 모드로 읽어나갔다. 결국 트루먼쇼와 같은 이상한 공간을 부유하다가 현실로 돌아온 나는... 지원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는 헌 책방의 직원으로 취직하여 그 곳에서 다른 삶을 준비한다. 늘 그랬듯, 지원과의 사랑이 지속되지 않을 것 같은, 또 다시 예전의 자신 내면에 침잠했던 당시로 돌아갈 것 같은 혼잣말을 되뇌이며...

 

참 재밌다. 우선 '나'와 '지원', 그리고 퀴즈쇼의 선수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상 초월의 박식함에 혀를 내둘렀다. 마치 수 십권의 책을 키워드로 미로를 찾아가야 하는 색다른 재미라고 할까? 그만큼 김영하는 지금까지 읽어온 책이 만들어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다소 위험한 발언이긴 하지만, 박민규 소설이 귀엽고 약간은 유치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소설엔 다양한 재미와 풀어놓는 서사 방식의 자유분방함이 엿보였다. 결국 그늘을 찾아 자신의 세계에 숨어야 했던 20대 이민수를 통해, 작금의 방황하는 무수한 디오네게스를 바라봐야 하는 씁쓸함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봐왔던 수많은 성장소설 중에서 단연 손꼽을 수 있을 정도의 재미를 전해준 소설이었다.

 

뱀발>> 아래 퀴즈를 풀어보세요. 순전히 저만의 억지 퀴즈인 셈이지요.^^

1. 성장소설/ 2. 내가 뽑은 best of best/ 3. 여성작가/ 4. 기쁜 거울/ 5. 어린 소녀



t******2 2010.03.24. 신고 공감 10 댓글 20
리뷰 총점 종이책
거칠 것 없는 젊음 그리고 인터넷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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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소설은 일단 재밌다. 특유의 냉소 섞인 유머, 뻔뻔스러움 그리고 가벼움과 경쾌함 등이 혼합된 즐거움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나 <검은 꽃> 같은 진지한 작품이 2% 부족한 느낌이 드는 반면에 <오빠가 돌아왔다> 같은 작품의 유치하면서도 탄탄한 스토리 전개,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작품의 드라마틱한 요소 그리고 젊음을 한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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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소설은 일단 재밌다. 특유의 냉소 섞인 유머, 뻔뻔스러움 그리고 가벼움과 경쾌함 등이 혼합된 즐거움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나 <검은 꽃> 같은 진지한 작품이 2% 부족한 느낌이 드는 반면에 <오빠가 돌아왔다> 같은 작품의 유치하면서도 탄탄한 스토리 전개,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작품의 드라마틱한 요소 그리고 젊음을 한껏 발산한 <퀴즈쇼>까지 김영하스럽게 재밌다.

 

<퀴즈쇼>는 작가도 말했듯이 하이텔이니 천리안이니 하는 인터넷 초기 세상의 탄생을 함께 살아온 이십대를 그린 작품이다. 인터넷의 부작용도 늘 함께 따라다녀 인터넷의 만남이라든가, 채팅이라든가 하는 말은 늘 어딘가 찝찝한 냄새를 풍긴다. 사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거나 카페나 나이트에서 부킹으로 사귀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우연의 극치인데, 이상하게 온라인상의 만남은 더 비밀스럽고 은밀한 느낌을 준다.

 

그런 인터넷을 통한 세상을 그린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요즘도 동아리다 뭐다 해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카페를 운영하지 않는가. 우리도 관심사가 책이긴 하지만 블로그나 서재 활동을 통해 매일 인터넷 상에서 친구를 사귀고 일상을 나눈다. 어떤 땐 단기간에, 십년을 사귄 친구보다 더 친해지는 경우도 있고 오래된 친구보다 단기간에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친구 간엔 못하는 비밀얘기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우리의 일상과 심리를 잘 그린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퀴즈를 매개로 해서 인터넷에서 만나다 친해지고 오프라인으로 그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선 김영하 특유의 환상적인 스토리가 가미되어 그 재미가 배가된다.

 

사실 주인공 민수는 특별한 욕심도 없이, 야망도 없이 그저 그런 이십대를 보내는 젊은이다. 엄마 같던 할머니를 잃고 할머니가 남긴 빚으로 인해 집까지 뺏기고(!) 고시원에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전과 비슷한 삶을 이어간다. 다만 퀴즈에 밝고 퀴즈를 좋아해 인터넷 퀴즈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텔레비전의 퀴즈쇼에 나가게 되고 그 퀴즈쇼를 매개로 퀴즈방에서 좋아해온 ‘벽속의 요정’을 오프라인에서 만난다. 민수의 삶은 하루를 버는 삶, 고시원의 독방의 삶, 인터넷 퀴즈방의 삶 그리고 실제로 만난 지원과의 사랑으로 요약되지만 하루를 사는 삶이 고단해지면서 모든 것이 꼬이고 만다. 부잣집 딸이며 방송국에서 일하는 지원과의 수준 차이도 차이지만 당장 하루를 먹고 사는 것도 버거워진 것이다. 그에, 퀴즈만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생각해내고는 제안을 받아들여 파주의 한 건물로 들어간다. 거기에선 실제 세상과는 다른, 완전 새로운 세상이다. 퀴즈를 내고 푸는, 그래서 머니와 거래가 오가는 퀴즈의 세계, 퀴즈만의 세계인 것이다. 물론 여자와 남자가 섞여 있으니 당연히 질투와 오해가 생기고 민수는 ‘튕겨져 나오게’ 된다. 그 모든 것이 마치 한갓 꿈이었던 것처럼.

 

지원에게 구원을 청하고 헌책방에서 당장 먹고 사는 일을 임시로(!) 해결한 민수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다시 ‘회사’로 통하는 게이트를 찾아다닌다. 어쩌면 민수에겐 지금 사는 일상이 환상이고 ‘회사’가 현실로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십대가 그런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 심드렁한데 자신이 빠져있는 단 하나의 세계를 위해서는 위험도 불사하고 식음을 전폐하듯이 말이다. 그것이 어쩌면 이십대의 특권이자 약점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볼 때는 허상을 쫓듯 보이지만 막상 본인에겐 그것이, 그것만이 삶의 의미인 것처럼. 주인공 민수가 회사에서 배운 게 있다고 말하듯이 어쩌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세상, 그 돌아가는 원리는 다 같은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는 거. 인간은 변하지 않고 문제는 반복되고 세상은 똑같다는 거야. 거긴 정말 이상한 곳이었는데, 처음에만 그랬을 뿐, 적응하고 나니 하나도 다른 게 없었어.(...)”

 

김영하는, 이제는 우리 삶에 필수가 되어 버린 인터넷이라는 매개, 더 작게는 그 안의 퀴즈라는 매개체를 내세워 불안하고 위태위태한 이십대를 담담하게, 그리고 ‘부도덕하고 은밀하다’는 인터넷 세상의 만남을 좀 더 자연스러운 우리 일상의 세상으로 빛을 보게 해주었다. 더구나 아주 재밌게. 

      

“그게 이상해요. 처음에 인터넷에서 만났을 때는 정말 행복했거든요. 그런 기분 아세요? 너무 단 파이를 한입에 삼켰을 때처럼 머리가 띵한 거? 아님 빈속에 독한 위스키를 확 들이켰을 때처럼 아릿한 거? 그러니까 제 말은,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는 거예요. 우리는 얼굴 한번 보지 않았지만 속속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어요. 아니, 그렇게 믿었어요. 정말 정신적인, 플라토닉한, 순수한, 그러면서 친밀한 관계였다구요. 그런데 웬일인지 그 이후로, 그러니까 현실에서 만나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런 짜릿한 감정을 다시 경험하기 어려워졌어요. (...)”     

 

그냥 책을 매개로 한 우리도 블로그나 서재 활동을 하면서 글을 올리고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이런 비슷한 감정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게 비슷한 취미에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녀라면 얼마나 어질어질 할 것인가. 하지만 이건 꼭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만남이 그 세상이 다르다거나 환상이 깨져서라기보다 어쩌면 사랑을 대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남녀가 근본적으로 달라서가 아닐까.

 

“민수야, 난 이해할 수 있어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이해하는 거야. 그게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소통방식 아냐?”라는 지원의 말에 민수는 ‘사랑은 사랑이고 이해는 이해라고’ 다르게 생각한다. 

 

처음에 인터넷에서 블로그와 서재를 열고 책카페에 드나들던 때가 생각난다. 이십대도 아니었는데, 그때 정말 설렜다. 모르는 사람의 댓글 하나에 감동 먹고 방문객이 열 명을 넘어서면 흥분했었다. 누가 만나자고 하면 괜히 두려워서 무조건 피했다. 인터넷을 못하면 궁금해서 둑을 지경이었고 하루라도 들르지 않으면 정말 너무 허전했었다. 일을 하다가도 몰래몰래 들렀다. 웃음이 난다. 이젠 그 모든 단계를 지났기 때문이다. 이젠 초기 인터넷 세상의 부작용도, 흥분도, 두려움도 모두 넘어섰다. 이젠 모두 그냥 편안한 친구가 되길 바란다.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용기가 되는 한마디 말을 해주고, 책을 통해서 함께 읽고 공감하길 바란다. 작가도 우리도 모두 이런 생각이었으면…

g******i 2007.12.17. 신고 공감 8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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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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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를 알게 된 것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김영하라는 소설가를 기억하고 있었던 건 꽤 오래전인 걸로 생각된다. 나는 그의 튀는 소설이 좋았다. 그의 소설은 파닥파닥 거려서 우울했던 기분을 한방에 날려주곤 했다. 아니면 거대한 것을 보여줘서 감탄하게 만들었거나.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하여튼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후퇴하는 것 같았다. 별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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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를 알게 된 것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김영하라는 소설가를 기억하고 있었던 건 꽤 오래전인 걸로 생각된다. 나는 그의 튀는 소설이 좋았다. 그의 소설은 파닥파닥 거려서 우울했던 기분을 한방에 날려주곤 했다. 아니면 거대한 것을 보여줘서 감탄하게 만들었거나.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하여튼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후퇴하는 것 같았다. 별표 다섯 개 주기에는 뭔가 이상해지고 있었다. 그랬는데 조선일보에서 연재하는 걸 보면서 이거 좀 심상치 않겠구나 싶었다. 젊은 애들의 말이 오가는 것이 재밌고 생글거렸다.

 

그리하여 나는 기다렸고 기다렸다. 마침내 ‘퀴즈쇼’를 손에 들었을 때, ‘후다닥’ 봤다.

 

‘퀴즈쇼’는 1980년대에 태어난 젊은 애들의 이야기다. 남자는 백수. 철없는 백수다. 집이 쫄딱 망해서 고시원에서 살고 편의점에서 일한다. 그 와중에 퀴즈방에서 채팅을 한다. (퀴즈방. 나도 그런 거 많이 했는데..ㅋ 소설에서 이런 걸 보게 되다니 놀랍다) 그리고 연애를 하게 되고 퀴즈배틀도 하게 된다. 이 소설, 재밌는 이야기로 몰입하게 만드는데 장난이 아니다. 김영하의 글빨은 살아있었다.

 

애들이 젊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젊지만, 젊지 않은 인간들이 판쳤다. 한마디로 말해서 짝퉁. 고민도 짝퉁 말하는 것도 짝퉁인 애들이 많았지. ‘퀴즈쇼’는 진짜다. 짝퉁이 아니라, 진짜다.

 

후후후. 반했다. ‘퀴즈쇼’에 완전히 반하고 말았다. 책을 넘길 때마다 즐거운 샘물이 퐁퐁 솟아나는 것이 어둡웠던 하루를 환하게 비춰준다. 이렇게 톡톡 튀는 이야기를 보게 되다니. 후퇴? 그것은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퀴즈쇼’를 보니 그런 생각마저 든다. 후후후. ‘오빠가 돌아왔다’ 이후에 가장 마음에 든 소설이다.

b****n 2007.10.28.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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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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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 권의 책을 너무 즐겁게 읽었다. 400페이지에 달하는 긴 장편소설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내가 김영하의 팬이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 "요즘 읽은 책 중에 재미있는 거 없어? 추천 좀 해줘."라고 말할 때 주저없이 자신 있게 추천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책이다.   이 책이 그렇게도 재미있었던 것은 21세기 정보사회인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20대에 대한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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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 권의 책을 너무 즐겁게 읽었다. 400페이지에 달하는 긴 장편소설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내가 김영하의 팬이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 "요즘 읽은 책 중에 재미있는 거 없어? 추천 좀 해줘."라고 말할 때 주저없이 자신 있게 추천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책이다.

 

이 책이 그렇게도 재미있었던 것은 21세기 정보사회인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20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책 말미의 해설에서 설명해주시듯 해설의 필자가 제시한 김영하의 망명 3부작 "검은 꽃", "빛의 제국", 그리고 "퀴즈쇼" 중에 80년대 생인 우리가 직접 겪었음직한 이야기는 "퀴즈쇼" 뿐이다. 건너들은 이야기를 통해 일제에 분노하고 이데올로기 싸움에서의 희생자를 안타까워할 수는 있지만 뼛속 깊이 우리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우리 유전자에는 기록되어 있을지 모르는 민족의 상처이지만 결국 소설 읽기라는 행위는 공감이라는 소득을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지 않겠는가. 마치 내가 겪었던 이야기인듯한 "퀴즈쇼"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울고 웃는다. 김영하는 쓰고 싶었다 했다. 인터넷 속에서 만나고 사랑하는 그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실제로 인터넷에는 타자 연습을 위한 퀴즈방이 있었다. 한 때 거기에 심취해서 꽤 오랜 시간을 거기에 투자했던 기억이 난다. 한 문제 더 맞춘다고 눈에 보이는 무슨 이득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참 열심히 했다. 점수보다도 한 푼 돈보다도 더 좋았던 것은 역시 이것만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확실한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살벌한 퀴즈 배틀을 '지식의 K-1'에 비유한 것은 참 적절해보인다. 지식이 부족하거나 순발력이 부족하거나 정치적으로 약세에 있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철철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흥분하고 우월감을 느낀다.

 

좋아하는 작가 하루키와 어쩔 수 없이 또 비교를 하게 된다. 도서관이나 꿈과 같은 제재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일각수의 꿈)"에서, 사람들에게 별명 붙이기를 좋아한다든지 얼굴 없는 사람이 등장한다든지 하는 것은 "태엽감는새(태엽감는새 연대기)"에서 접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하루키나 김영하 둘 다 쿨하고 이지적인 느낌의 소설을 쓰는 것을 생각해보면 둘다 그런 제재에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앞에 언급한 하루키의 두 소설이 상당히 판타지스러웠다면 "퀴즈쇼"는 상대적으로 리얼리티를 갖는다. 정말 지금 이순간에도 파주 어딘가에서 그런 퀴즈배틀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청춘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인가. 현대의 젊은이가 힘들어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까 아직 영혼의 짝을 만나지 못함에 대한 불안정함 때문일까. 주인공 이민수처럼 현실적으로 일가붙이 하나 없이, 돈 한 푼 없이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현실에서 따뜻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사람 찾아 헤매는 모습, 조금만 힘들어도 도망쳐버리고 싶어하는 모습 같은 것. 7, 80년대에 태어나 젊은이라고 명명되어진 우리에게는 한 번 쯤 겪었음직한 경험이 아닐까. 도망치지말고 현실을 직시해라, 힘들어도 헌책방 먼지를 들이마시면서 부딪쳐라라는 다소 교훈적인 결론인듯 느껴지지만 희망차니 됐다. 단지 말 없이도 영혼이 교류할 수 있었던 민수와 지원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지금도 궁금한데 잘 되었을 것 같지 않아 지레 마음 아프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07.12.31. 신고 공감 6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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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음에 답하라, 그러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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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결코 성장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젊은이가 더 이상 성장을 멈춘 어른아이adult-kid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소설을 통해서 작가가 던지고 싶은 질문이 '성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소설은 "빛의 제국"이 그러했듯이 "알레고리" 소설에 가깝다.   질문은 하나가 아니라, 겹으로 짜여져 있다. 소설은 퀴즈쇼에 대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하나의 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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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결코 성장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젊은이가 더 이상 성장을 멈춘 어른아이adult-kid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소설을 통해서 작가가 던지고 싶은 질문이 '성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소설은 "빛의 제국"이 그러했듯이 "알레고리" 소설에 가깝다.

 

질문은 하나가 아니라, 겹으로 짜여져 있다. 소설은 퀴즈쇼에 대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하나의 퀴즈쇼다. 소설을 읽어가노라면 주인공은 끊임없이 '공간탐색'을 거듭한다. 그것은 '세계-거주자'로서의 자기탐색에 다름없다. 한 젊은이가 홀로 이 세상에 남겨진다. 그에게 남겨진 게 빚뿐이라는 게 이 시대 젊은이가 공유하는 운명이다. 부자든, 가난뱅이든, 그들은 빚쟁이다. 그들은 더 이상 신대륙이 존재하지 않는, 젊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 늙은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조급 좁게 말하자면, IMF이후의 젊은이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에게 공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외적 세계로 통하는 창문보다는 마으크로소프트사가 제공하는 창windows을 통해 접근가능한 세계이다. 젊은이는 각자 굴 속에 갇혀서 하나의 거대한 매트릭스에 링크되는 존재들이다. 그러한 삶 자체가 퀴즈쇼의 세계가 아닐까?

 

 

그래서 이 소설은 여러 개의 문을 지닌 통로가 있는, 불확정적이고 미궁에 가까운 그런 공간들을 보여준다. 소설 속의 젊은이가 보여주는 모험은 이 시대 젊은이들이 누구나 경험하는 그런 일그러진 일상이다. 이 책이 갖는 강렬한 흡인력은, 마치 인터넷 게임처럼 집요하여, 자칫 읽는 사람의 건강을 해치기 쉽다. 어느 순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되어, 밤잠을 설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전혀 다른 생뚱맞은 장소에서-소설 속에서는 파주로 들어가서 대관령으로 나오는데-깨어나게 만든다. 나는 김영하를 사랑한다.

 

 

 

 

 

s***3 2007.11.30.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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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금,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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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을 발산할 패기도 없고, 특별히 뭔가 하고자 하는 욕구도 없다. 그렇다고 일 자체를 하기 싫다는 것이 아니라, 딱딱하고 지루한 회사보다는 좀 더 기발하고 재미난 곳에서 자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예감이 든다. 컴퓨터와 핸드폰 mp3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참을 수 없으며, 어디라도 이동할 수 없다. 저마다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를 쫓고 있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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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을 발산할 패기도 없고, 특별히 뭔가 하고자 하는 욕구도 없다. 그렇다고 일 자체를 하기 싫다는 것이 아니라, 딱딱하고 지루한 회사보다는 좀 더 기발하고 재미난 곳에서 자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예감이 든다. 컴퓨터와 핸드폰 mp3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참을 수 없으며, 어디라도 이동할 수 없다. 저마다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를 쫓고 있다. 영화, 책, 음악, 쉼 없이 발산되는 매체의 유행. 아이디어위해 장초된, 앞으로도 창출해 낼 수 있는 미디어를 향해 미친 듯이 열광한다. 제자리에 있기를 거부하며 빠르게 돌아가는 네트워크, 든든한 백그라운드 없이는 출세하기 쉽지 않는 부조리한 사회와 맞설 힘이 점점 소진되어 가는 우리의 젊은이들……. 허영이나 질투, 끝없는 추락과 절망과 조우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지금, 바로 여기 대한민국 서울이란 장소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20대의 자화상을 이토록 리얼하게 그려낼 수 있다니. 「퀴즈쇼」를 읽는 내내 내 주변의 누군가를 탐색해 보았는데, 대다수가 이 작품의 화자 ‘민수’와 닮아 있다. 심지어 나조차도 이건 내 자신이 아닐까, 싶을 만큼, 김영하씨가 창출해 낸 살아 있는 캐릭터에 공감했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긴 가방끈이 무색할 만치 번듯한 직장 없이, 컴퓨터와 하루 종일 놀고 있는 주인공 ‘민수’. 스물일곱 살이나 먹었지만,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 지조차 알지 못한다. 부모 없이 외할머니의 손에 컸는데, 외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시자, 이 넓고 넓은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자신은 희망마저 사라진 기분이 든다. 딱히 내 새울 만한 것은 오직 퀴즈에 능통하다는 것 뿐. 민수는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상식이 풍부하다는 것 빼곤 무기력한 세상의 낙오자로 비춰지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젊은이다.

 

지금 이 시대의 이십대 젊은이들은, 마치 컴퓨터의 아바타처럼 저마다들 개성은 틀리지만, 그들만이 갖는 분위기는 흡사하다. 무엇을 향한 반항인지도 모른 채 지루한 반항을 하며 기성세대들과 공방을 벌이는데, 그것은 아직도 그들이 순수하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단순히 철이 덜 들어서 정신 못 차리고 반항을 해대는 애송이일 뿐인 걸까? 너무 순수해서 오히려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젊음의 상징을 너무도 잘 지적한 작품이「퀴즈쇼」가 아닌가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막연한 허영의 삶을 선택하는 우리들. 가령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에 동화되거나, 게임 속으로 무한정 빠져 들어간다던지, 혹은 채팅방에서 만난 얼굴 없는 그(그녀)에게 연정을 품고 상상 속에서 사랑을 키워가기도 한다. 이것은 현재의 삶이 실패라기보다는 좀 더 나은 유토피아적 환상을 꿈꾸는 그들만의 특권이기도 하다.

 

혼란을 가중시킬 만큼 무겁지도,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은 주제. 빠른 전개와 기발한 재치. 일반상식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퀴즈쇼」는 매우 즐겁고 유쾌한 소설이다. 소설 속 퀴즈를 하나씩 풀어 가면서 스스로의 무지함을 탄식하기도 했고, 간혹 맞추기라도 하면 민수처럼 희열에 들 떠 세상의 지배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퀴즈는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승자 아니면 패자가 되어 버리는, 혹은 살아남는 자 아니면 죽어야만 하는 자, 라는 무시무시한 법칙이 적용되는 게임이지만, 퀴즈는 바로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다. A인가 B인가 선택하는 사이에 판은 끝나버리고 나 아닌 상대방에게 우승이 돌아간다. 진로도, 삶도, 꿈도, 사랑도, 모두 다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 작가는 이러한 미니어처 인생을 통해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 우리는 방탕하지 않다! 새파란 하늘이 이토록 밝게 우리를 향해 방긋 웃고 있음을.

 

 

 

 

 

 

m*****5 2007.11.16. 신고 공감 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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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라서 공감이 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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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조선일보에 연재중이었단다. 하지만 난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일단 우리집은 조선일보를 구독하여 보고 있지 않거니와 설사 신문을 본들 만화건 소설이건 당췌 연재되는 그 무엇도 유심히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한지 동아일보를 즐겨 보시는 우리 아버지도 허영만의 '식객'이 어떤 만화인지 잘 모르셨다.-,-;;쨌든, 내가 김영하의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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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조선일보에 연재중이었단다. 하지만 난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일단 우리집은 조선일보를 구독하여 보고 있지 않거니와 설사 신문을 본들 만화건 소설이건 당췌 연재되는 그 무엇도 유심히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한지 동아일보를 즐겨 보시는 우리 아버지도 허영만의 '식객'이 어떤 만화인지 잘 모르셨다.-,-;;

쨌든, 내가 김영하의 새로운 소설 <퀴즈쇼>가 발간되었다고 알게된 것은 인터넷 교보문고 사이트에서였다. 하루에도 몇십, 몇백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인터넷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새로 나온책 혹은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을 살펴보는 일은 어느새 습관, 아니 반드시 해야 되는 일이 되어 버렸다. 아, 수많은 인터넷 서점 중에 내가 교보문고를 즐겨 이용하는 이유는 단지 우리집에서 채 20분도 안되는 거리에 교보문고 매장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하는 것에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설사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책의 가격이 저렴하더라손  치더라도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책을 보고 구입하는 게 더 익숙하다. 그러니 나같은 사람이 돈모으기란 여간 어려운일이 아니다.-,-

한때는 처세술책을 즐겨 읽어보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그 책들은 마치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술술 풀어줄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나 보다. 지금은 그 모든 처세술이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렇게 처세술책에 매달려 있을 땐 소설이나 순수문학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게 인지상정이다. 쉽게 얘기하면 "지금 먹고 살기 바빠 죽겠는데 소설은 무슨 소설이야?"라는 한마디로 정리해 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니며 내가 지금 읽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은 무엇인지, 나의 공허함을 채워줄 책은 무엇인지 신발이나 옷가지를 고르며 쇼핑몰 사이트를 뒤질 때보다는 좀 더 무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인터넷 서점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쪽 귀퉁이에 떠오른 책광고 배너를 보게 된 것이다.

"인생은 퀴즈다, 김영하 신작 장편소설 <퀴즈쇼>"
이렇게 써 있는 문구에서 단연 눈에 들어온 것은 '김영하'라는 새 글자다. 날나리 국문학도였던 나는 학창 시절 문학 보다는 어학을 더 좋아했었다. 허구인 소설보다 명쾌한 언어가 더 좋았다고 하면 맞을까? 소설은 그냥 소설일뿐인데 그 가운데서 주제를 찾고 조상들의 정신을 찾고 하는 일이 그때 당시엔 참 부질없는 것이라 느껴졌다. 그러던 중 '김영하'라는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며 꾸밈이 없고 고리타분하지 않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쉽게 풀어 쓰는 그의 글투가 좋았던 것 같다. 그 후로 난 '김영하'라는 작가가 쓴 모든 소설을 소위 말해 '섭렵'했고 학교 졸업 후에도 그가 쓴 모든 책은 나의 수집품 목록 1호에 올려져 있었다. 비록 <검은꽃>과 <빛의 제국>은 책꽂이에 꽂아 두고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꼭 읽을 것이기 때문에 책꽂이에라도 꽂아 두고 있었건만, 그 두권을 채 읽기도 전에 내 눈을 화악 끌어 당기는 <퀴즈쇼>가 발간된 것이다.

'김영하'라는 작가에 한번 끌리고, 주인공이 1980년생 나와 동갑이라는 것에 두번끌렸으며 현재 20대 후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그린 작품이라기에 주저할 겨를도 없이 책을 사서 한번에 읽어 내려갔다.
작가의 말을 잠시 빌리면 '가장 아름다울 나이에 가장 불행한 20대라는 역설...'
내가 생각해도 20대는 참 아름다운 나이다. 무엇보다 젊음이 있고 열정과 패기가 있으며 그래서 두려움이 없는..
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그런 나이..그런데 왜 20대는 가장 불행해야만 하는 것일까?
주변 친구들을 살펴 보면 대부분 공무원 시험 혹은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고 혹은 어떤 일을 하다가 진로를 바꿔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데 문제인 것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들의 결실이 마음 먹은 것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경쟁에 치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치고 열정도 없어지게 되며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이는 30대를 코앞에 둔 20대 후반에 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불행한 나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꿈을 꾸던 시기에서 현실을 알아 버리게 되는 게 20대이기 때문에...

그래도 작가는 <퀴즈쇼>를 통해 20대를 불행하게 살지 말라고 희망의 메세지를 던진다. 주위를 둘러보면 의지가 되는 사람도 있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으며 어딘가에는 다 각자의 길이 있다고..그러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돈에 끌려 다니지 말라고..

나도 이미 현실을 알아 버린 것 같다. 아니, 익숙해 진 것 같다. 어떤 연극 중에 "여자는 현실보다 꿈을 더 바란다"는 대사가 있었는데 100%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그건 단지 꿈일 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현실은 인간을 각박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론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강하게 만들어 지는 과정에서 서로 의지가 되는 사람이 바로 '사랑'의 주인공이 아닐까?

작가는,
'부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청춘의 찬란한 빛이 언제나 그들과 함께하기를.'
이라는 글을 끝으로 책을 마무리 한다.
행복의 의미는 각자가 알아서 찾아야할 문제지만 쨌든 1980년생 내 친구들 모두 꿈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잘 되겠지?



호기심 많은 덤벙 처자
양양씀
http://yyang.kr
yypower@daum.net



y*****r 2007.11.07. 신고 공감 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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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속에서 펼치는 퀴즈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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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영하를 알게 된건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에서였다.   kbs 1에서 10시 즈음에 했던 '김영하의 문화포커스'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내가 처음 이 프로그램을 들은 날, 김영하는 우리나라에서 열리게 되는   앤디워홀의 작품전시회 소개겸해서 앤디워홀에 대해서 소개하는 중이었다.   방학무렵이라 밤을 지나서도 공부를 하고 있어 지쳤던지라 라디오를 잠깐 틀었던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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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영하를 알게 된건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에서였다.

 

kbs 1에서 10시 즈음에 했던 '김영하의 문화포커스'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내가 처음 이 프로그램을 들은 날, 김영하는 우리나라에서 열리게 되는

 

앤디워홀의 작품전시회 소개겸해서 앤디워홀에 대해서 소개하는 중이었다.

 

방학무렵이라 밤을 지나서도 공부를 하고 있어 지쳤던지라 라디오를 잠깐 틀었던 것인데 그럭저럭 재미있는 듯해서 계속 듣게 됐다.

(공부 할 떄는 100분 토론도 재미있는 법이지만;;)

 

그 후로도 계속 듣게 되었는데 내가 접하지 못 했던 예술가들의 업적이나 일화라든가 최근 열리는 공연,전시회 소식들을 알려줘서 흥미가 있었던 점도 있었고, 

 

박사와 이명석, 두분이 나와서 (별로 흥미는 없지만;;) 잘 알지 못했던 만화를 알려주시는 것도 재미있었고...

 

개인적으로 인디음악을 즐겨 듣는데, 연리목의 인디찾기라는 코너도 생겨서 더욱 듣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김영하씨의 좋은 목소리와 가끔씩 내보이는 개그... ;;

그리고 진행을 참 매끄럽게 하신것 같다. 

하지만 오랫동안 들으면서도 김영하씨의 본업이 소설가라는 건 늦게 알았다.

 

 

개학이 되는 바람에 라디오를 듣지 못 하게 되었는데

(라디오는.. 7월달인가? 개편이 되어서 김영하씨가 하차 하게 된 걸 알았다.)

 

 

우연히 조선일보를 뒤적거리다가 김영하씨의 소설을 발견했다!

(하필이면 조선일보에다가...라고 중얼중얼거렸던...)

 

맨 처음 읽은 연재분은 소설상에서도 발단부분인데 주인공이 채팅사이트에 들어가 퀴즈를 푸는 장면이었다.

 

김영하씨 때문에 그 후로도 몇번 조선일보를 뒤적거렸다.

 

어찌어찌해서 책으로보면 100페이지정도가 되는 부분까지는 읽은 것 같은데

 

신문을 보지 못해 연재부분을 놓쳐 중간중간 빼먹고 읽게 되자 아예 포기하고

책이 나올 떄까지 기다려야지 하고 포기했다. 조선일보가 보기 싫기도 하고.

 

그 와중에 김영하씨의 소설 두권을 사서 보게 되었다.

'검은 꽃'과 '오빠가 돌아왔다', 이 두권을 읽었는데...

 

단편집인 '오빠가 돌아왔다'는 김영하씨 소설의 매력이 뭔지 알게 된 책이었고

동시에 내가 2년전 쯤에 이미 김영하씨의 소설을 읽어봤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이 책에 실려있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중학생 때 읽었는데, 뭐랄까... 독특했다!

 

그리고 며칠 전 yes24를 들렸다. 무심코 김영하라고 검색어를 쳤는데

 

퀴즈쇼가 떡하니 상단위에 있는 것 아닌가!

 

며칠전에도 퀴즈쇼가 연재되던걸 봤기에 이렇게 빨리 나와? 라고 놀랐다.

 

어쨌건 신문연재가 끝나면 바로 질려야지 하고 생각했던 책이니 바로 질러버렸다.

(책을 산 날짜는 10월 23일. 발매일은 24일. 도착은 25일.)

 

책 표지는 역시 신문에 연재될 때 일러트스를 넣어주시던 이우일씨가 그려주셨다.

다른 책에서도 이우일씨가 그림을 그려주시고 책도 같이 낸 거 보면 정말로 많이 친한가 보다. 

 

받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다.

 

신문 연재가 되어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 '대충 아마도... 퀴즈쇼를 통해서 무슨 의미를 깨달아 가는 소설이겠고나...라고 생각했는데 대충 플롯을 그렇게 짜였지만

소설의 내용은 역시 상상 이상이었다.

 

주인공의 경제적 몰락, 퀴즈쇼에 출연, 여자친구와의 만남,'회사'에서 일하게 되는것....

 

소설을 풀어내려가면서 단순히 글을 풀어내는게 아니라

 

김영하의 주관이라고 해야하나? 글 속에 녹아있는 김영하 특유의 '무언가'가 참 좋았다.

 

개인적으론 초반부의 사실적인 묘사들이라든가, '옆방녀'의 죽음과 관련한 장면들이 좋다. 특히 주인공이 죄책감 비슷한 걸 느끼는 장면에선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느꼈던 기분들이 다시 재현되는 느낌도 살짝 받았다.

 

읽는 내내 계속 즐겁게 빠져든 것 같다. 김영하씨가 펼치는 퀴즈쇼에 정말 푹 빠졌다.

 

다만, '회사'부분에서 비현실적인 장면들은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김영하가 의도한거라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건... 김영하씨의 친필싸인이 적힌 책이라는 것!

 

항상 이런건 받지 못해서 기대를 아예 안하고 있다가 책을 펼쳤는데 붓펜으로 쓴듯한 김영하씨의 싸인! 정말로 깜짝 놀라버렸다. 후아...

 

겨울에 길목에선, 그리고 곧 수험생이 되는 시점에서 읽기에 정말 좋은 책이었다.

 

 

l*****0 2007.10.28.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름다운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
"아름다운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 내용보기
우리 세대는 '메신저의 세대'이다.   버디버디서부터, MSN, 네이트온에 이르기까지.   지금은 세대를 떠나서 대부분 메신저에 적응을 했지만,   개척자를 우리 세대라고 하는데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필자도 메신저와 꽤 친했다.   쓰면서도 부끄럽지만, 메신저를 작업의 도구로 이용한 적도 많다.   얼굴도 마주보지 못하고 목소리도 못 듣지만,   그 한글
"아름다운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 내용보기

 

 

  우리 세대는 '메신저의 세대'이다.

  버디버디서부터, MSN, 네이트온에 이르기까지.

  지금은 세대를 떠나서 대부분 메신저에 적응을 했지만,

  개척자를 우리 세대라고 하는데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필자도 메신저와 꽤 친했다.

  쓰면서도 부끄럽지만, 메신저를 작업의 도구로 이용한 적도 많다.

  얼굴도 마주보지 못하고 목소리도 못 듣지만,

  그 한글자 한글자에 얼마나 가슴이 뛰고 설레였던가. 

  

  김영하는 채팅세대를

  '글자의 표현만으로 사랑이 가능한 세대'라고 말한다.   

  그렇다. 채팅은 다수의'키보드 워리어'를 생산했지만,

  면대면의 상황에서는 속마음을 표현하기 힘든

  소위 '부끄러운 이'들을 구제해냈다.

  이젠 채팅, 방명록등을 통해 사랑을 고백하고 승낙하는것이 

  더이상 찌질한게 아니고, 부끄러운게 아닌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렇게 사랑표현엔 적극적이게 되었지만, 취업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야하는 이십대의 모습이 이 책에

  그려져있다. 작가의 말대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라는

  역설속에서 발버둥치는 우리 이십대의 모습이 민수를 통해

  고스란히 반영되어있다. 그래서 재밌었다.

  지금까지 읽은 책들은 대부분 남의 이야기였는데 반하여,

  '퀴즈쇼'는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나 자신의 이야기였기때문에.

  나 그리고 민수처럼 사랑, 현실에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신문에 연재되었을때

  매 회마다 이우일씨의 일러스트가 있었는데 그게 없다는 점^^;

  하지만 일러스트들이 포함됬으면 페이지가 어마어마했을 것이니

  이해할 수 밖에.

 

m***1 2007.10.28. 신고 공감 6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