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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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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없던 욕구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게 중독이라면 '활자중독'뿐 아니라 '작가중독'도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애연가의 흡연욕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마냥 무시할 만한 것도 아니어서 (중독이 된)그 작가의 글을 읽지 않고 일정 시간이 흐르면 어느 순간 '이제는 정말 XX 작가의 책을 읽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군.'하는 생각이 나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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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없던 욕구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게 중독이라면 '활자중독'뿐 아니라 '작가중독'도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애연가의 흡연욕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마냥 무시할 만한 것도 아니어서 (중독이 된)그 작가의 글을 읽지 않고 일정 시간이 흐르면 어느 순간 '이제는 정말 XX 작가의 책을 읽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군.'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구를 무시한 채 좀 더 오래 버티면 아무리 재미있는 책을 읽어도 그저 시큰둥할 뿐이고 매사에 열의란 열의는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손을 떤다거나 조급해하면서 쉽게 짜증을 내는 식의 금단현상이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무시하고 모른 척하기에는 뭔가 께름칙한 구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제 더 이상 못 배기겠는 걸.' 하는 생각이 들면 작가가 한참 전에 쓴 낡고 오래된 책이라도 빌려 읽어야지 그렇지 않았다가는 정말 금단현상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 그 단계까지 가 본 일이 없어서 진짜 그렇게 되는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독자의 이런 심정을 알고 있는 작가라면 적어도 글을 쓰기 싫어 농땡이를 부리거나 책의 출간 시기를 저울질하며 차일피일 미루는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쉼 없이 작업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같은 작가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작가들도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간 시기를 알 수 없어 이제나저제나 애태우다가 포기하고 이제 막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기우는 독자들이 하나 둘 늘어날 즈음 기다리던 작품이 비로소 나오는 것입니다.

 

제게도 그런 작가가 몇 명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 중 한 명입니다. 한동안 다른 작가의 작품에 빠져 지내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문득 그리워지는 것이죠. '아직 신간이 나오려면 멀었으니 아쉽지만 예전에 읽었던 책이라도 한 권 다시 읽어야겠군.'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퇴근 후 발걸음은 항상 도서관으로 향하게 됩니다. 비록 작가로서 하루키는 상당히 성실한 편에 속하고 독자들의 심정을 나몰라라 하는 작가도 아니지만 근래에 들어 그가 자신의 작품을 내놓는 시기는 상당히 부정기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엊그제 읽었던 책은 <슬픈 외국어>입니다. 신간이 보이지 않을 때 제가 취하는 선택 기준은 전적으로 감에 의존하게 되는데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대체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제가 제목만 보고 이 책을 고른 걸 보면 엊그제 도서관에 갔을 때의 제 느낌은 '약간 슬펐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금 더 슬펐더라면 저는 어쩌면 <노르웨이의 숲>을 들고 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정도까지 슬퍼지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읽는다면 그 우울하고 탁한 기분이 적어도 한 달쯤은 계속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사물을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몸을 움직여서 생각하고, 몸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고,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사람이다. 내가 되도록 많은 나라의 말을 배워, 되도록 많은 나라에서 살거나 여행하며 작품을 쓰는 까닭은, 보다 참된, 그리고 보다 인간적인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p.201)

 

사실 이 책은 제목만 제외하면 '슬픔'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초청을 받아 미국에 체류하면서 그가 받았던 미국 체험의 느낌과 자신의 지난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18편의 에세이가 이 책의 구성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이 책이 그가 쓴 다른 에세이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라고 한다면 하루키 특유의 유머가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작가는 '자신의 자전적인 체험을 통한 삶과 세계관, 그리고 국제 관계와 문학 등에 관한 에세이'를 비교적 진지하게 쓰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없는 그런 거리와 자연의 끝없는 연속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람이 산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문득 빠지게 된다. 그런 무력감은 미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다. 유럽에서도 맛볼 수 없고, 일본에서도 맛볼 수 없는, 절대적인 아메리칸 오리지널이다."    (p.192)

 

전업으로 글을 쓰는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을 솔직하게 내보여야만 하는 어떤 순간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지면으로든 인터뷰를 통한 방송으로든 방법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말입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관점, 과거의 모습 등 어쩌면 밝히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아주 솔직하게 쓰고 있습니다.

 

"작가가 되어서 가장 기뻤던 건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전업 작가가 되면 어느 정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내키지 않는 일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오히려 생활 쪽을 조정하면 해결될 일이다. 이만큼 내게 잘 맞는 생활도 없기 때문이다. 처음 몇 년 간은 여러 가지로 시행 착오를 겪었지만, 그러는 사이에 점점 익숙해져서 내 나름대로의 작가 생활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시스템의 근본 사상은 아까도 얘기했듯이 "하고 싶은 일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며 한다"는 한마디로 설명이 다된다."    (p.235~p.236)

 

작가는 <슬픈 외국어>라는 책의 제목이 '절실한 울림을 갖고 다가온다'고 쓰고 있습니다. 막연히 무엇인가 쓰고 싶었던 작가는 카페를 운영하던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몸을 통하여 생각하는 경험을 했고 야구장에서 문득 소설을 쓰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설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미래는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게 없습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요행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참을 수 없는 불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불행했다고 하여 내일 또 불행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매일매일은 모두가 기적입니다.

 

 

s*****l 2015.10.20. 신고 공감 7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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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슬픈이 무엇인지 알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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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말하는 톤이 거의 일정한 나는 외국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양한 억양을 요구하는 외국어는 정말 발음을 따라 하기가 너무 어렵다. 여러 언어를 시도해보았지만 결국은 다포기하고 한국어만 잘하고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어지껏 살아왔다.   그리고 한국에 살면서 갈수록 외국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을 겪으면서 조금은 불편하였지만 생활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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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말하는 톤이 거의 일정한 나는 외국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양한 억양을 요구하는 외국어는 정말 발음을 따라 하기가 너무 어렵다. 여러 언어를 시도해보았지만 결국은 다포기하고 한국어만 잘하고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어지껏 살아왔다.

 

그리고 한국에 살면서 갈수록 외국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을 겪으면서 조금은 불편하였지만 생활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하다가 외국어 나온 나는 지금 언어를 소홀히 한 내가 조금은 미워졌다.

 

정말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나의 의견을 전달을 할 수 없고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없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무언가를 전달하고 전달받는 일이 힘들다. 정말 언어가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슬프다.

 

몇 일전 수업시간에는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아랍어 선생님께 한국말로 하고 싶은 말을 하였다. 옆에 있던 언니가 통역을 해서 상황은 넘어갔지만 정말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다. 이때 눈에 들어온 책이 ‘슬픈 외국어’였다. 정말 외국어가 슬픈 거라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다. 살아가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것 모든 것이 다른 이들과의 생활에선 언어는 필수적인 것이다.

 

필수적인 만큼 내가 감당할 에너지는 최고이다. 하루키는 그이야기는 그답게 풀었다. 내가 외국에 있지 않다면 너무 쉽게 말하는 그의 문체에서 뭐가 어렵다는 거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 이발소 애기는 공감100%였다. 처음 이집트에 오면서 머리는 포기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화는 없다. 정말 머리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 나 역시 그처럼 1시간이 넘는 거리에 가서 머리를 할 것이다. 아마도.

 

하루키의 소설은 그렇지 않은데 에세이를 읽고 나면 무언가 내속에 남는듯한데 무언가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아직은 그 기분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아직은 하루키의 작품을 많이 접하지 못하여 그런걸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를 좀 더 알아간다면 이 기분이 무언인지 정확히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조금 더 참을성을 가지고 하루키를 만나봐야겠다.

f*******s 2011.08.31.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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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에 대해 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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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아직 알고있지는 않더라도 궁금해하며,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 에세이 집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생각들, 경험들이 담겨져 있다. 그렇다고 기행문 형식은 아니므로, 크게 부담이 되지도 않는다. 일본 사람(특히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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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아직 알고있지는 않더라도 궁금해하며,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 에세이 집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생각들, 경험들이 담겨져 있다. 그렇다고 기행문 형식은 아니므로, 크게 부담이 되지도 않는다. 일본 사람(특히 일본 남자)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또 다른 섬세함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둔하다거나 그런 얘기가 아니라 뭔가 다른 종류의 섬세함을 가졌다는 얘기다. 하루키의 에세이집은 일본인의 그런 면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물론, 일본인에 대한 그러한 대표성 뿐만 아니라 하루키 개인의 특유성 또한 담고 있기도 하다. 하나 덧붙이자면, 이 책은 내가 읽으면서 하하하 웃음을 터뜨려 버린 몇 안되는 책 중 하나다.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이 담고 있는 유머는 오히려 강력한 것 같다.
p*****a 2003.11.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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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슬픈외국어): 타국에서 슬퍼졌던 때를 그립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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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마라톤을 뛰면서 생각한 것 미국의 대학 사회와 계급적 속물 근성 누가 재즈를 죽였는가 나와 자동차 이야기 난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나면 이성을 잃는다 ...   이 책 <슬픈 외국어>의 16개 챕터를 하루에 하나씩 잠자리에서 읽었다. 만삭의 아내는 드렁드렁 코를 골며 뒤척이고, 창밖의 오봉처럼 둥글고 희던 달은 또 어느 때인가에는 봄밤의 때아닌 소나기에 자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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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마라톤을 뛰면서 생각한 것

미국의 대학 사회와 계급적 속물 근성

누가 재즈를 죽였는가

나와 자동차 이야기

난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나면 이성을 잃는다 ...

 

이 책 <슬픈 외국어>의 16개 챕터를 하루에 하나씩 잠자리에서 읽었다. 만삭의 아내는 드렁드렁 코를 골며 뒤척이고, 창밖의 오봉처럼 둥글고 희던 달은 또 어느 때인가에는 봄밤의 때아닌 소나기에 자취를 감추기도 하였다. 하루키 씨는 보스톤 마라톤의 출발지인 홉킨톤을 어슬렁거리다가 문득 일본의 관제적 마라톤대회 운영방식을 비난한다. 미국 대학사회의 여유로움에 감탄하다가 문득 아이비리그 대학과 버클리대학 사람들의 물과 기름같은 이질감에 놀라기도 한다. 미국 여성들의 진취성에 찬탄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가 독립적인 생활인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미국인들의 부정적 반응에 당황하기도...

 

여행이 곧 생활인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하루키 씨는 타국에 머무는 것이 곧 생활이고 모험이자 작품의 원형을 이루는 체험이다. 고국이나 고향에 정주하여 사는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 주변 거의 모든 사물과 사람에 대한 관찰이 생활화되어있는 셈인데, 글쎄 그러한 삶은 한편 매우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 매우 불편하리라 짐작된다. 하루키 씨 자신의 소회는 이렇다;

 

늘 외국에 살며 절실하게 느끼는 건, 대부분의 이방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 역시 무능력한 외국인이며 바깥 세계의 스트레인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신경 쓰이는 건 외국어에서 오는 답답함과 일종의 '슬픔'의 감정에 젖게 하는 이방의 현실 상황이다.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건, 자기 나라 말처럼 명백한 자명성이 결핍된 외국어에 둘러싸인 생활이 어떤 의미의 '슬픔'을 동반하지만, 나는 늘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보다 참된 그리고 순수한 내 자신에 의한 보다 인간적인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맨 마지막 문장에 대해서는 (의아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지만, 나머지 말들은 꽤 진실되게 들린다. "자명성이 결핍된 외국어에 둘러싸인 생활"을 스스로 자초하는 것! 그 결과야 어떻든 간에, 바로 그러한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대에게나 또는 나에게나.

r******a 2007.12.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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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낯설어짐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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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히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나는 하루키의 산문을 읽으며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소설은 어쩐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그만큼 그의 산문에는 솔직,담백함이 배어있다. 이 책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하루키는 스스로 왜 외국생활을 전전하면 안되게 되었는지를 설득력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스스로에게 낯설어짐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기 때문이란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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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히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나는 하루키의 산문을 읽으며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소설은 어쩐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그만큼 그의 산문에는 솔직,담백함이 배어있다. 이 책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하루키는 스스로 왜 외국생활을 전전하면 안되게 되었는지를 설득력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스스로에게 낯설어짐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얼마나 일상에 매몰되어 있는가? 그 결과 우리가 보는 것 느끼는 것 모두는 또 얼마나 천편일률적인가? 사정이 여의치않아 외국에 나가 생활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아마도 하루키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c*****0 2004.02.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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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외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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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가 유럽 국가들을 3년간 스쳐 지나가며 첫인상, 혹은 두번째 인상을 쓴 책이라면 <슬픈 외국어>는 프린스턴과 보스톤에 비교적 오래 머물면서 두번째, 세번째 인상을 쓴 책이다.   하루키 자신이 '뒤에 남은 말'에서 언급했듯 "스쳐 가는 사람에게는 스쳐 가는 사람으로서의 관점이 있고, 그 곳에 뿌리내린 사람에게는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만이 갖는 관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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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가 유럽 국가들을 3년간 스쳐 지나가며 첫인상, 혹은 두번째 인상을 쓴 책이라면 <슬픈 외국어>는 프린스턴과 보스톤에 비교적 오래 머물면서 두번째, 세번째 인상을 쓴 책이다.

 

하루키 자신이 '뒤에 남은 말'에서 언급했듯 "스쳐 가는 사람에게는 스쳐 가는 사람으로서의 관점이 있고, 그 곳에 뿌리내린 사람에게는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만이 갖는 관점이 있다."(P.265)

 

아이러니하게도 장기 체류하면서 쓴 <슬픈 외국어>의 글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얘기하면서도, 동시에 자신과 일본을 더욱 진지하게 돌아본다.

 

첫인상이냐, 혹은 두세번째의 인상이냐가 기록물의 깊이와 방향을 가늠하는 것은 아니며 관건은 "얼마나 자신의 관점과 진지하고 유연하게 관계지을 수 있는가"라는 하루키의 고백을 마주하면 일견 이해가 간다. 타인이라는 거울을 진지하게 바라볼수록 나자신을 관찰할 기회도 그만큼 늘어가는 것이다.

  

외국에 오랫동안 나가 있는다는 건, 나 자신의 사회적 소멸을 미리 경험해 보는 의사 체험을 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것과 조금 비슷한데, 외국에서 지내는 것의 장점 - 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좀 의문스럽지만 - 중의 하나는 자기가 단순히 한 사람의 무능력한 외국인, 이방인에 불과하다고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P.269)

 

한 가지 진지하고 성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미국에 와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혹은 일본어라는 언어에 대해서 상당히 진지하게 정면에서 직시하며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P.270)

  

이국땅을 밟은 이방인은 필연적으로 복수의 언어와 문화를 비교하게 되는데, 이때 모든 언어의 가치가 기본적으로 동등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정닿안 문화교류도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은 눈여겨볼만하다. 우리는 일상에서 '타국의 문화가 덜 발달돼 생각의 깊이가 없고, 언어의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근거없는 비판을 너무나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춰보자면 알면 (사랑하는 단계에 이르는것까지는 아니라도) 관대해지는 것 같다. 스쳐지나간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대해 하루키가 크고 작은 불평을 늘어놓았다면, 프린스턴과 보스턴에 대한 글에서는 다름을 비판하기보다 차이를 인정하고 오히려 나를 돌아보는 단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가와 국가 간의 비교와 더불어 자신과 비슷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에 대해서도 관용을 가지고 접근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이 보다 경제 수준이 비슷한 나라로서 편리하게 지낼 수 있었던 점도 작용했겠지만 수 년을 같은 자리에서 지내면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상황이 된게 아닐런지..

(혹은 미국의 속담 "더운 것이 싫으면 처음부터 부엌에 들어가지 말라" 모드로 전환했을수도..)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자기의 생각을 모국어로 거침없이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은, 외국어를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 해도, 역시 그 언어로 능숙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본래 성격적 경향의 문제라서 고치려고 생각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모국어로도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사람이 영어로 노래를 부른다고 갑자기 잘 부르게 되지 않는 이치와 똑같다.

-'이윽고 슬픈 외국어', p.167

  

"아는 게 힘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소설가에게는 오히려 "오해는 힘이다"라는 쪽이 옳지 않을까? 소설의 세계에서는 이해에 이해를 거듭해서 얻어진 이해보다는, 오해에 오해를 거듭해서 얻어진 이해 쪽이 때때로 더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사내아이'의 동심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싶다', p.178

 

 

일단 어떤 압도적인 경험을 하고 나면, 사람들은 그 경험이 압도적일수록 그것을 구체적인 문장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심한 무력감에 사로잡히는 게 아닐까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당시 자기가 생생하게 느낀 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재현할 수 없다는 스트레스는, 당사자에게는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사물을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p.205

 

 

나는 머리로 생각하는 인간은 아니다. 어떤 쪽이냐 하면 실제로 몸을 움직여서 생각하는 사람이다. 몸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고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사물을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p.213



p****o 2009.07.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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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외국어]: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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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에 찬 경험'이 있고 없고와 상관없이, 살아간다고 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뭔가 매우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참으로 산다는 것은 이상한 것이다.  (본문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가벼움과 유쾌함, 그리고 그 속에서 번뜩이는 삶의 철학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꽤 많은 에세이를 사 모은 바, 시간날 때마다 곶감 빼먹듯 야금야금 읽어가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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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에 찬 경험'이 있고 없고와 상관없이, 살아간다고 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뭔가 매우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참으로 산다는 것은 이상한 것이다.  (본문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가벼움과 유쾌함, 그리고 그 속에서 번뜩이는 삶의 철학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꽤 많은 에세이를 사 모은 바, 시간날 때마다 곶감 빼먹듯 야금야금 읽어가는 재미가 또 쏠쏠하다. 그가 보여주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은 일견 평범한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참으로 감칠맛 나는 세계인 것이다.


그의 에세이 중에서도 <슬픈 외국어>는 비교적 묵직한 편에 속한다. 적어도 어느 에세이집처럼 날아갈 듯 팔랑팔랑한 느낌은 아니다. 컨셉도 괜찮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꽤 오랜 기간 외국에서 머물며 이방인으로 생활했던 경험들을 모아놓았다. 요즘에는 워낙 이런 책들이 넘쳐나지만, ‘일본인 작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미국사회의 단면은 또 다른 느낌을 전해줬다. 그가 여러 해 동안 머물렀던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과 보스턴에서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물론 사회적 차원에서도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주고 있다. 특히 장기간 해외체류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과연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하루키의 결론은 이것이다. 외국에 있든 국내에 있든, 본질적으로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라는 것. 진심으로 동의한다.


ps. 그건 그렇고, 자신의 아내에 대한 에피소드(「미국의 건강한 여성들, 그리고 내 아내」)와 이발소 관련 에피소드(「‘사내아이’의 동심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싶다」)는 너무 재미있었다.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내어 웃는 바람에, 순간 머쓱해졌을 정도로. ^^;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슨 운명 때문인지 나에게 있어 우리말처럼 설명의 필요 없이 스스로 명백한 성격의 자명성(自明性)을 갖지 않는 언어에 이렇게 둘러싸여 있다는 상황 자체가 일종의 슬픔에 가까운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

어디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모두 어떤 부분에서는 이방인이고, 우리가 언젠가 그 자명하지 못한 영역에서 무언의 자명성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버림을 받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으스스한 회의의 감각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나는 아마도 이 ‘슬픈 외국어’를 끌어안고,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올바른 일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비난을 받아도 곤란하고, 칭찬을 받아도(하기야 칭찬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곤란하다. 그 곳이 내가 다다른 곳이고, 결국 거기까지밖에 이르지 못한 것이니까.  (본문 중에서)

YES마니아 : 플래티넘 s******c 2009.04.10.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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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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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자신의 경험과 소설을 일치 시키려 한다. 에세이를 읽고 나서 소설을 읽는 다면 충분히 공감될 이야기다.. 하나예로 하루키가 부인과 함께 미국에 갔을때 인적이 드문 공항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갔다.. 옆자리에 동승한 한 흑인녀석이 헤어 스프레이를 마구 뿌려댔었는데.. 소설'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도서관 여자의 남편이 버스에서 헤어스프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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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자신의 경험과 소설을 일치 시키려 한다. 에세이를 읽고 나서 소설을 읽는 다면 충분히 공감될 이야기다.. 하나예로 하루키가 부인과 함께 미국에 갔을때 인적이 드문 공항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갔다.. 옆자리에 동승한 한 흑인녀석이 헤어 스프레이를 마구 뿌려댔었는데.. 소설'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도서관 여자의 남편이 버스에서 헤어스프레이를 뿌린 소년에게 주의를 주다 쇠로된 꽃병으로 맞아 죽는다.. 아마도 그때의 하루키의 감정을 소설속에 녹아 내린듯 하다..
q*****0 2007.03.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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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하루키. 그의 이야기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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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글은 약간의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솔직히 고전의 반열에 오를만큼의 진지하고 수준높은 글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때가 되면 왠지 읽고 싶어지고, 읽으면서 그의 글들이 주는 그 특유의 기분에 빠져들게 되고, 책을 덮고 나선 역시 하루키야 하고 생각하게된다. 어쩌면 굉장히 문학성이 높은 건데도 내가 무지해서 읽으면서도 모르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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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글은 약간의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솔직히 고전의 반열에 오를만큼의 진지하고 수준높은 글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때가 되면 왠지 읽고 싶어지고, 읽으면서 그의 글들이 주는 그 특유의 기분에 빠져들게 되고, 책을 덮고 나선 역시 하루키야 하고 생각하게된다. 어쩌면 굉장히 문학성이 높은 건데도 내가 무지해서 읽으면서도 모르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그럭저럭해서 하루키의 글을 여러권 읽어왔다. 장편소설도 재밌지만 개인적으론 에세이나 단편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 "슬픈 외국어"를 선택하는데는 많이 고민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하루키의 팬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라는 식의 문구도 어디선가 본 것 같고... 결론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의 글 중에서 가장 편안한 호흡을 느꼈다는 것! 그냥 그의 옆에 앉아서 그가 하는 말들을 편하게 듣는 기분이다. 솔직히 위에서 말한 '그 특유의 기분'은 좀 안 느껴지는 것 같다.. 하루키가 열심히 일해서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라기 보다는, 그저 날마다 일기를 쓰거나 친구에게 보내는 이메일정도의 느낌으로 쓴 글 같다고나 할까? 그저 자신의 소소한 생각들을, 하루키라는 유명세덕에 묶어서 내놓은 듯할 정도로.. 그래도 나는 재밌게 있었다! 소소하다고 했지만, 가끔은 정확하고 날카로운 지적이나 합리적인 생각에 맞아맞아를 연발할 수 있었으니... 때로는 정말 멋진 문장들을 만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하루키라는 작가를 항상 정면으로만 보다가 살짝 옆으로 돌려놓고 본 듯한 느낌이니까.. 이제 하루키의 글을 시작하는 이라면, 너무 큰 기대감을 갖지 말고 가볍게 읽으시길... 하루키 매니아라면 일종의 보너스가 되겠다.

[인상깊은구절]
그런데 더 알 수 없는 건 자기 소개 대신, 1차 시험 점수 얘기를 꺼내는 사람의 심리 상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이런 사람들이 일본에서 엘리트 관료로서 세력을 떨치며 잘난 척하는 걸 생각하니(미국까지 와서도 꽤 잘난 척하고 있다), 그건 좀 곤란한 일이구나 싶었다.
a****9 2001.12.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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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끼의 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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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끼의 에세이집이다. 이전의 고단샤의 『책』이라는 잡지에 연재된 글들을 『뒷 이야기』를 붙인 형태로 모아 출간했다. 한국에서는 「하루키」라는 이름만으로 엄청난 상품이 되는 즐거운 (혹은 슬픈) 현실에 맞춰 출간된 책이다. 하루키의 소설 계보를 따져본다면 1993년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과 1995년 『태엽 감는 새』 사이에 출간된 것이다. 물론 내가 1996년에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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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끼의 에세이집이다. 이전의 고단샤의 『책』이라는 잡지에 연재된 글들을 『뒷 이야기』를 붙인 형태로 모아 출간했다. 한국에서는 「하루키」라는 이름만으로 엄청난 상품이 되는 즐거운 (혹은 슬픈) 현실에 맞춰 출간된 책이다. 하루키의 소설 계보를 따져본다면 1993년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과 1995년 『태엽 감는 새』 사이에 출간된 것이다. 물론 내가 1996년에 하루키를 그다지 좋아했던 것은 아니므로 나에게는 1996년에 이 책이 번역/출간(혹은 1994년에 일본에서 출판)되었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긴 하지만... 교환 교수로 프린스턴 대학에서 2년을 머물면서 미국에서의 생활과 미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일본, 일본인, 일본어의 상대화에 대한 이야기를 에피소드와 함께 엮어간다. 이상한 하루키의 책들와는 사뭇 다른 하루키식 정통 에세이의 축에 속한 이 책을 읽으며, 하루키다움을 찾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하루키다움이라는 것은 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므로 이 책에서 자신의 하루키다움을 발견한 사람이 “나는 발견했다”라고 외쳐도 별 할 말이 없지만..그래도 이 책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은 없다』 식의 이상한 논리의 강고함이 아닌 하루키만의 유연함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것도 별 수 없고, 저것도 별 수 없다. 물론 나에게는 뭐 이런 것 말이다.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하루키가 와세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자신의 지난 날을 이야기하던 것, 그리고 스물 아홉 살에 야구장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경기를 보면서 소설을 써야겠다는 이야기이다.
w****f 2000.08.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