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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선교사들의 시선에 대한 불편한 진실-문명과 야만 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
"19세기 선교사들의 시선에 대한 불편한 진실-문명과 야만 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 내용보기
아..19세기. 조선의 역사에 관심있는 역사 애호가로서 19세기 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세도 정치로 왕권이 약화되고 실질적 권력은 안동 김씨를 비롯한 가문이 득세하다시피한 시기. 세계사적으로는 제국주의가 발호하던 시기. 조선은 안으로는 치유불능의 수준으로 곪아가고 밖으로는 청-일-러의 주변 강국들의 침략 야욕에 시달리는 그야말로 내우외한에 시달리며 망국으로 향해가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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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19세기. 조선의 역사에 관심있는 역사 애호가로서 19세기 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세도 정치로 왕권이 약화되고 실질적 권력은 안동 김씨를 비롯한 가문이 득세하다시피한 시기. 세계사적으로는 제국주의가 발호하던 시기. 조선은 안으로는 치유불능의 수준으로 곪아가고 밖으로는 청-일-러의 주변 강국들의 침략 야욕에 시달리는 그야말로 내우외한에 시달리며 망국으로 향해가던 시기였다.

 

그런 가운데에도 19세기 조선에는 선교의 목적으로 입국하는 선교사들이 줄을 이었다. 천주교 선교사들은 개항전부터 입국하는 상황이었고, 개항 후에는 주로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들이 조선을 찾았다.

천주교 선교사들 중 다블뤼 주교 등은  정부에 발각돼 참수를 당하는 순교자가 돼었음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조선에 들어왔다. 

천주교나 개신교 선교사들은 종교로서 뿐 아니라 교육과 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서양문명을 조선에 도입함으로써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남긴 기록물을 통해 본격적으로 조선이 서구에 소개되면서 서양인들이 조선에 대한 인상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문명과 야만-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에서는 이 시기 조선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조선을 바라본 시선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아래에 리뷰 올린  '이방인이 본 조선 다시 읽기'와는 관점이 달랐다. 무엇보다 후자에서는 이방인의 시선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면 이 책은 비판어린 시선이 강조되는데, 제목에서 문명과 야만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에서부터 어떤 관점에서 서술이 될지 짐작이 됐다.

 

이들 선교사들은 종교적 사명감 외에도 19세기의 사상과 경제적 상황, 지배적인 가치의 영향권 내에 있었다. 19세기에 유럽과 미국인들이 조선,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에 진출하게 된 배경에는 본국의 식민주의적인 제국주의 침략 정책과 기독교 해외선교붐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비서구문명을 야만의 상징으로 이해하면서 우월감을 갖고 비서구문명에 서구 문명과 기독교를 전파한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미국 선교사의 경우에는 기독교화와 문명화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기독교 우월주의를 서구중심중의와 결합했고, 그리고 그들에게는 미국주의가 숨어있었다. 이 책에서는 선교사들의 이런 의식이 조선을 바라보는 데 반영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에 날카롭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선교사 눈에 비친 조선인들은 비위생적이고 게으르고, 매사에 정확하지 않은 즉 비문명적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이었다. 특히나 조상숭배나 민간신앙은 개신교를 전파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선교사들이 조선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보고 비난만 한 것이 아니었다. 조선사람들이 천성적으로 게으른 것이 아니라 관리의 부정부패나 교육, 혹은 문명의 가치에 대한 이해도 부족이 노동의욕이 떨어지게 만든다고 그 원인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선교사들이 조선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문화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거나 서구 우월주의가 전혀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조선의 모습만을 보려고 하지는 않은 인물들도 여럿이었다는 점에서 화를 누그러 뜨릴 수 있었다. 이들은 조선의 문명화를 이루기 위한 방향을 제시했고, 그 내용을 보자면 이들의 생각은 대체적으로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방향과 대체적으로 일치했고, 조선의 개신교인, 개화지식인들에게 자극을 주고 영감을 불어넣지 않았을까.

이들은 조선에 머무는 동안 본국에서 누리던 생활방식을 유지했고, 사교활동도 해나갔다. 조선의 문화에 동화되기보다는 그들의 서구식 문화를 유지하면서 서구식 문화를 조선에 소개한 결과가 됐다.

 

19세기 조선에 머물렀던 선교사들을 바라보는 심정은 상당히 복합적이고 복잡해졌다. 조선의 교육과 의료 등 백성들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활동한 선교사, 또 조선에서 참수당한 외국인 선교사나 조선의 국권회복을 위한 활동에 기꺼이 참여한 헐버트같은 선교사를 생각하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가도 다시 낮추게 된다. 그러다가도 잇권에 개입한 선교사나 또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던 선교사도 일부 있어서 다시 도끼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되고.

 

이 책에서 선교사들의 우월의식이나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 시기에 선교사들에 의해 남겨진 기록들이 서구사회에 조선에 대한 인상을 형상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야만적인 모습으로 소개되면서, 조선은 서구인들에게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로 백인보다 열등한 인종, 부류로 인식됐고 '타자화'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구인에게 조선이 타자화된 그 기원을 따져보면 19세기 선교사들이 원인제공자인 셈이었다. 또 한가지, 지금도 이런 시선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문명과 야만이라는 용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타자의 시선이란 말도. 이 책에서는 19세기 조선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의 타자적 시선에 대해 비판하는 동시에 우리에게도 경계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보다 경제가 떨어진 동남아국가나 이주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우리의 시선은 어떤가 돌아보라고. 우월감 담은 시선으로 바라보진 않은지, 차별하고 구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국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가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학문이었다.   

e****0 2015.09.06. 신고 공감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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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의 눈에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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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해외 선교 운동이 활성화되었던 서양사의 분위기 속에서 개항을 전후한 시기 조선 선교에 나선 천주교와 개신교 선교사들이 조선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명화된 그들이 바라보는 조선은 천주교와 개신교라는 종파적 구분 없이 대체적으로 '야만성'에 합의하고 있는 듯 하다. 부패한 양반과 관료, 탐욕과 폭식, 게으름, 비위생적인 환경과 정확성이 결여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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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해외 선교 운동이 활성화되었던 서양사의 분위기 속에서 개항을 전후한 시기 조선 선교에 나선 천주교와 개신교 선교사들이 조선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명화된 그들이 바라보는 조선은 천주교와 개신교라는 종파적 구분 없이 대체적으로 '야만성'에 합의하고 있는 듯 하다. 부패한 양반과 관료, 탐욕과 폭식, 게으름, 비위생적인 환경과 정확성이 결여된 사고방식, 미신과 우상숭배의 나라 등. 조선이 가진 공동체 정신의 우월성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선의 독립을 위해 애쓴 선교사가 있기는 하지만 미개인을 바라보는 듯한 그들의 시각은 일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공격적 선교방식은 항상 승리적 우월감이라는 심리적 상태를 기반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을 '문명화'와 동일시함으로 그들의 서구 중심주의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미 그들은 선택받은 백성이고, 조선인과 같은 미개인을 문명화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다양성을 거세하고 그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획일성은 과연 '야만'이 아닌 '문명'적인 사고의 결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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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자료 찾게 해 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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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는 도중에 눈이 번쩍 떠지는 기쁨을 경험하였다. 바로 32페이지에 나온 다음과 같은 글이다.   " 천주교가 17세기 중반까지 중국선교에 크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주도했던 적응주의 선교전략에 힘입은 바가 컸기 때문이다. 마태오 리치로 대표되는 중국 예수회 선교사들은 이른바 보유론(補儒論) 을 내세워, 중국의 전통적인 종교와 관습을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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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는 도중에 눈이 번쩍 떠지는 기쁨을 경험하였다.

바로 32페이지에 나온 다음과 같은 글이다.

 

" 천주교가 17세기 중반까지 중국선교에 크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주도했던 적응주의 선교전략에 힘입은 바가 컸기 때문이다. 마태오 리치로 대표되는 중국 예수회 선교사들은 이른바 보유론(補儒論) 을 내세워, 중국의 전통적인 종교와 관습을 존중하고 천주교가 이들과 배치되거나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다는 점을 역설하여 중국인들의 호의적인 태도를 이글어 냈던 것이다. 그러나 18세기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하였다......"

 

보유론, 바로 내가 찾던 자료다. 서양기독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적응과 배척받는 시기가 있었는데, 바로 보유론이 대세이던 시기에는 적응의 시기였다, 는 사실. 

 

한편 이러한 일연의 변화는 조선으로 천주교가 전파될 때 극심한 박해를 초래한 원인이기도 하다. 바로 그 원인을 이책에서 찾게 되어 기쁘다.  



이달의 사락 s***h 2009.06.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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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 오늘날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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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어르신 할 것 없이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들었다. 모든 것은 반복된다 하였던가! 오래 전 침체된 경기를 뚫고 고개를 들었던 공격적인 구호들이 떠올랐다.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외국인들은 자국으로 돌아가라는 폭력에 가까운 구호가 성립하는 순간 세계는 화염에 휩싸였다. 유대인은 공공의 적이 되어 죽어 나갔는데, 도무지 납득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와 같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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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어르신 할 것 없이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들었다. 모든 것은 반복된다 하였던가! 오래 전 침체된 경기를 뚫고 고개를 들었던 공격적인 구호들이 떠올랐다.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외국인들은 자국으로 돌아가라는 폭력에 가까운 구호가 성립하는 순간 세계는 화염에 휩싸였다. 유대인은 공공의 적이 되어 죽어 나갔는데, 도무지 납득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와 같은 일들은 대다수의 지지를 획득해 이루어졌다. 20세기 초중반은 이른바 야만의 시대였다. 

당시 우리 또한 제국주의의 침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1800년대 중후반부터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은 촛불마냥 나라는 뒤흔들렸다. 보도 듣도 못한 생김새의 외국인들이 하나둘 이 땅에 발을 디뎠다. 그들의 목적은 제각각 달라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접근해 왔다. 당시 우린 가난했다. 나라가 힘을 잃었기에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켜내야만 했다. 누가 보아도 거지꼴을 하고 있었을 터이니 은둔의 나라 조선을 담은 많은 기록들에 수긍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도 기분이 좋진 못하다. 저들의 기록은 일정한 가치 판단에 입각했다. 자신은 옳고 우월하며, 우리는 그릇되고 열등하다는 게 그것이다. 저개발 상태에 놓인 우리를 저들은 구원할 목적으로 먼 이곳까지 왔다. 위생 상태를 개선하고 교육 수준을 향상시키고, 무엇보다도 미신에 가까운 온갖 믿음을 타파한 끝에 비로소 우린 구원을 얻게 될 터였다. 야만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고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토대라 하는 게 너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無)로부터 유(有)를 창조하기란 쉽지가 않다. 

교파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을 취했다. 감리교는 장로교보다 상대적으로 유했으며,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개개인에 따른 차이도 존재했는데, 헐버트처럼 상대적으로 우리를 이해하고 다가선 이도 있었던데 반해 그리피스처럼 일본의 조선 침탈은 당연하다는 식의 입장을 취한 경우도 존재했다. 이는 특정인이 악했기 때문은 물론 아니다. 선교사들은 대다수가 계몽주의에 입각했으며, 동양에 대한 경험을 그다지 갖고 있지 않았다. 사제 서품을 받기가 무섭게(?) 자국을 떠나 동양으로 향한 그들에게 조선은 한없이 낯설고도 척박한 곳에 불과했다. 게다가 쇄국정책을 펼치고 천주교 탄압에도 나선 조선 당국의 태도는 위협적이었다. 당연히 두려웠을 터이고 적대적인 감정을 지니기도 했을 것이다. 몇몇 이들은 경험이 쌓임에 따라 조선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갔다. 다블뤼 주교의 경우, 초반에는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이 조선인들을 미개한 인종 즈음으로 여겼다. 그는 22년간 조선에서 생활하면서 점차 조선 문화로부터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해 나갔다.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문화를 조선의 판소리로부터 느꼈다.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으며 가족끼리 서로가 서로를 잘 돌본다는 것도 깨달았다. 조선인들이 사용했던 상제, 하늘 등의 용어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가 조선의 것들을 받아들인 것이 생존 차원이었을 수도 있다. 저자는 선교의 자유를 얻고 프랑스 정부의 비호를 받을 수 있게 된 선교사들이 더는 조선인들에게 애정을 느끼지 않았다고 보았다. 이른 시점에서 깨친 조선의 지식인들이 앞다투어 서구화, 문명화를 부르짖고 있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불과 100여 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단군의 자손, 단일 민족 등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가 버젓이 교과서에 실려도 어느 하나 나서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게 불과 20~30여 년 전까지도 지속됐다. 최근 들어 많은 외국인들이 유입됐다. 국제 결혼에 의해, 노동자들의 취업에 의해. 이는 낮은 출산율로는 미래 보장이 힘들어진 우리로선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새로이 등장한 이들을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여기기 보다는 배척하기에 급급하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문명 아닌 야만에 속한 족속이라는 것인데 그 판단의 근거가 천박하다. 오로지 경제적인 수치에 의거하여 그들의 출신 국가가 우리보다 가난하면 야만으로 본다. 그들의 피부색이 우리보다 검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영어를 잘 구사하며,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 왔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어쩌다가 우리는 문명을 가장한 야만을 행사하게 된 것일까. 지난날 경험한 문명의 기만을 대대손손 체득한 건 아닌가 싶어 온몸이 떨린다. 

이달의 사락 q*****2 2017.02.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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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가 본 19세기 조선은 '문명'일까? '야만'일까
"선교사가 본 19세기 조선은 '문명'일까? '야만'일까" 내용보기
우리는 팔만대장경, 한글, 조선왕조실록 따위를 말하면서 찬란한 문화 유산을 가진 문명국이었음을 자랑한다. 이런 자랑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과 2세기 전만해도 조선은 문명과 야만 중 '야만'에 가까운 나라였다. 서양 선교사들 눈에 비친 조선은.   조현범은 <문명과 야만>-부제 '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을 통하여 19세기 중엽부터 개항기에 이르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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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팔만대장경, 한글, 조선왕조실록 따위를 말하면서 찬란한 문화 유산을 가진 문명국이었음을 자랑한다. 이런 자랑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과 2세기 전만해도 조선은 문명과 야만 중 '야만'에 가까운 나라였다. 서양 선교사들 눈에 비친 조선은.

 

조현범은 <문명과 야만>-부제 '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을 통하여 19세기 중엽부터 개항기에 이르는 동안 우리를 타자의 위치에 고정시켰던 서양 선교사들의 시선과 움직임을 분석하면서 타자화되어간 우리 초기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독자는 이런 시각을 확인하는 조현범을 지켜보면서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역시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동남아시아를 바라는 시각 역시 19세기 선교사들이 조선을 바라보았던 '야만'이라는 시각과 별 다르지 않다점에서 반추하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선교사들이 우월성으로 조선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현범은 제1장에서 말한다. 19세기 서양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팽창, 기독교 해외 운동의 붐, 문명화의 사명이라는 도덕률의 팽창, 이국 취향과 여행기 장르의 성공이라는 시대 정신이 지배하던 시대였는데 선교사들 역시 시대정신으로 먹고 자란 이들었을 뿐이다.

 

사실 선교사 기독교 진리를 전파하는 명목이었지만 서구 제국주의를 이식하는 과정이었고, 아직도 남아있는 백인 우월성이라는 시각으로 조선을 바라보았다. 우월성으로 바라본 조선은 '야만'이었다. 서양의 문명화된 나라들이 비서양의 뒤떨어진 나라들을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 문명화 사명은 식민지 지배는 신이 내리 사명이 되었다. 

 

"문명화 사명은 제국의 황제와 식민 관료에서부터 식민지 쟁탈 전쟁을 벌이는 군대와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 비유럽 지역을 탐사하는 탐험가와 인류학자들까지 모두가 공유하는 일종의 시대 정신이었다. 그러므로 19세기 조선에 진출했던 서양 선교사들 역시 이런 시대 정신을 어떤 형태로든 공유하고 있엇던 셈이다."(40쪽)

 

19세기 시대정신을 먹고 자란 선교사들이 19세기 조선이 들어왔어서 조선 사회와 조선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보았는지 제2장에서 살핀다. 조범현은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 주교가 김대건 신부 체포 후 천주교 박해령이 내려지자 '어리골'이라는 곳으로 도피 한 후 조선과 조선인들 삶을 닮은 긴 편지를 적은 <어리골서한>이라는 자료와 조선사회를 소개하는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들 남긴 자료들에 주목한다.

 

다블뤼 주교 시선은 복합적이다. 조선 정치 지배 집단은 '부패한 양반과 관료들'로 왕과 백성 중간에서 권력을 남용하여 횡령과 착취를 일삼는 세력이었다. 또 설득력 있는 사회를 질서를 갖춘 나라였다. 조선의 쇄국 정책도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보지만 민족성은 야만인 특유의 까다로운 성격을 가졌다고 보았다. 특히 조선인들은 돈을 좋아하고, 경박한 자들이라고 했다.  

 

다블뤼 주교가 바라본 조선에 대한 내용 중 재미있는 부분은 '폭식 습관'이다. 당시 조선 사회가 정말 폭식을 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극단적인 표현도 나온다. 식탐을 악담으로까지 표현한다. 하지만 그가 조선에서 15년 동안 살았다는 점에서 무시만 할 수는 없다.

 

"식탐이 조선인들이 가진 악덕 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영의정이나 임금도 공공연히 폭음을 한다.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바닥에 뒹굴거나 술을 깨기 위해 잠을 잔다. 그래도 아무도 놀라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혼자 쉬도록 내버려둔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이것은 큰 타락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습이다. 그래서 허용되며, 아주 고상한 일이 된다. 이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이상의 내용에서 우리는 다블뤼 주교가 조선인들의 성격과 생활 습관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즉 문명화되지 못한 야만적 사회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전형적 성격인 까다로움, 탐욕스러움, 수다스러움을 조선인들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그런 탐욕스러움에서 기인하는 생활 습관으로 폭식과 폭음의 관습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다."(76~77 쪽,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 86-88쪽 인용)

 

이런 시각으로 말미암아 다블뤼 주교가 조선을 야만으로 생각했을 것같지만 아니었다. 다블뤼 주교가 조선을 칭찬한 압권은 '공동체 정신과 상호부조 생활'이었다고 조현범은 말한다. 상호부조와 자선 행위는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결한 풍습이었던 것이다.

 

"이 나라 백성들에게 상화 부조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러 차례에 걸쳐서 우리는 큰 감동을 받았다. 애덕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형제애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또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근대적 이기주의에 대해 증오와 가증스러움을 느꼈다."(85쪽,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 75-76쪽 인용)

 

다블뤼 주교 이후 조선은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들이 대거 들어왔다. 미국인 선교사들은 선교를 선교지 문명을 기독교 문명으로 개화하는 것이었는데 학교와 병원 따위로 조선에 정착한다.

 

개신교 선교사들 눈에 비친 조선은 거리는 불결하고, 좁았으며 집들은 음침했다. 근면 절약이 몸에 밴 청교도 후예답게 조선인들은 게으른 천성을 가졌고, 복음 전파가 목적인 선교사들 눈에 비친 조선은 미신과 우상숭배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이런 구조적인 모순을 혁파하는 것이 개신교 선교사들이 할 일이었다. 릴리어스 언더우드 말을 빌어보자.

 

"조선 사람들은 서양 문명에서 최선의 것, 즉 사람의 힘을 분발시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동력이 바로 기독교 신앙과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기독교의 원리, 그리고 이 원리가 실천되는 곳, 이 정신이 숨쉬는 곳, 거기에서 문명이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162쪽)

 

책을 덮어면서 든 느낌은 19세기 서양인 선교사들이 조선을 바라 본 시선과 지금 우리가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하다. 불과 백여년 전 서양인들에게 타자화되어 야만스러운 민족으로 취급받았다는 것에 울분을 토하기 전, 우리도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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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 2009.03.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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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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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만약 역지사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입장 바꿔 생각해 볼 수 있는 능력과 여유가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아졌을 것이다. ‘입장바꿔 타인을 바라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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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만약 역지사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입장 바꿔 생각해 볼 수 있는 능력과 여유가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아졌을 것이다. ‘입장바꿔 타인을 바라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할지 몰라도 이것이 사회적, 이념적 측면에서 용이하지 않다는 것은 되짚어 봐야 할 문제가 될 것이다. 조현범의 ‘문명과 야만: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은 타인을 제대로 바라보기가 사회적, 이념적으로 얼마나 쉽지 않은 문제인가를 보여준다. 이 책은 한국의 근대화가 사회, 정치적으로 유럽과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쟁점은 문명화되었다고 여긴 서양이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을 어떻게 보았는가?하는 것이다. 그가 지적하는 바는 ‘문명과 야만’이었다. 다시말해 서양인들의 기준으로 볼 때, 당시 한국사회의 삶은 미천하고, 야만적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타자를 바라볼 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자기 동일시의 오류’라고 생각한다. 누가 문명에 속하며 누가 야만에 속하다고 구별할 수 있는가? 결국 삶의 기본은 타인이 갖고 있는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19세기 한국을 중심으로 숨가쁘게 진행되었던 열국들의 세력 다툼의 수혜자 중에는 서양인 선교사들도 있었다. 그들의 적지 않은 공로는 한국 땅을 여행하며 자신들의 경험들을 글로 남겼다는 것이다. 그 글들은 한국 근대화의 출발점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료가 된다. 당시의 사회적 변화를 가장 소상하게 그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인식하지 못했던 과오는 ‘타자에 대한 인식’이었다. 제2장 개신교 선교사들은 조선을 어떻게 보았는가?에서 저자는 당시의 선교사들이 기록으로 남겼던 한국에 대한 인식을 소상하게 소개한다. 그가 당시의 서양인들의 시각을 정리한 바에 따르면 (1)비문명적인 생활로서 위생의 관념이 전혀 없는 야만적인 생활, 게으름, 정확성의 결여 등,(2)낯설고 기이한조선의 일상 풍경들로서 모자를 자주 사용하는 풍습, 음식에 대하여, 담배예절 등,(3)조선의 종교생활로서 미신과 우상숭배의 나라, 조상숭배, 중층성과 복합성 등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런 사항들이 우월한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 수정되어야 하고, 변화되어야만하는 ‘덜 떨어진’ 생활 모습이었다는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19세기 한국 사회는 ‘문명화된’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스스로를 야만스럽다고 여기고 그들의 문명화된 삶을 수용하기에 이른다. 근대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처럼 자신의 시각에서 타인을 수정하고, 고치려고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고 올바른 삶인가?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근대화를 수용한 이래, 우리는 우리가 도대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인가?에 대해 지금도 혼란스러워하고 있지 않은가? 돌이켜보면 19세기 서양선교사들의 시각이 보여준 공과의 결과는 애석하게도 21세기 한국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배타적 진리 수호’,‘타인을 받아들이기 어려움’등의 배타성의 단초라는 점이다. 기독교인들이 ‘술과 담배’를 금지하는 것이 신앙적 진리로서 스스로 당위성을 가진 결단적 자기 행동방식이 아니라 야만과 가난을 벗어버리기 위해서는 ‘술과 담배’까지 난삽하게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선교사들의 ‘문명적 금지조항’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유산이라는 것을 왜 분별하지 못하는가. 더 나아가 이 책의 결론에서 지적하듯이 우리 사회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왜 그토록 야만인처럼 대해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가 19세기에 그렇게 취급당했기 때문인가.그래서 그들을 하루빨리 문명화시켜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인가. 최근 한국 기독교 안에서 선교적 주제로 새롭게 고민되는 주제는 타자와의 공존과 대화이다. 전통적 선교주제인 나를 중심으로 한 공격적 방식에서 타자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과 더불어 대화하며 어떻게 기독교의 삶의 방식과 진리를 그 삶 속에서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을 고민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우선적으로 시의적절한 주제일 수 있다. 폭넓은 내용을 다 담아내기 어려운 문고판이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책세상문고 우리시대가 지향하는 바대로 젊고 건강한, 그리고 한번쯤 고민해 볼 주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내용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므로 현대 한국사회가 다양성의 지평위에서 타자의 존재를 승인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역사적 경험을 제대로 반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b*******r 2004.08.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