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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이면서도 흥미로 가득찬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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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령님을 찾아서 (원제목 : They speak with other tongues)저자 : 존 쉐릴출판사 : 규장출판년도 : 2007 (원서 초판 : 1964년; 말미에 40년 뒤의 회고(2004년에 작성된 에필로그)가 붙어 있는 2004년판을 번역한 것임)쪽수 : 254쪽 제목 : 객관적이면서도 흥미로 가득찬 책1. 책의 내용과 구성에 대하여이 책은 가이드 포스트의 '기자'였던 사람이 방언에 대하여 연구를 하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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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령님을 찾아서 (원제목 : They speak with other tongues)
저자 : 존 쉐릴
출판사 : 규장
출판년도 : 2007 (원서 초판 : 1964년; 말미에 40년 뒤의 회고(2004년에 작성된 에필로그)가 붙어 있는 2004년판을 번역한 것임)
쪽수 : 254쪽 

제목 : 객관적이면서도 흥미로 가득찬 책

1. 책의 내용과 구성에 대하여
이 책은 가이드 포스트의 '기자'였던 사람이 방언에 대하여 연구를 하다 (5년간의 지원 프로젝트; 1959년 시작) 결국은 방언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 후(대략 1년 뒤. 1960 또는 1961년), 이를 다시 방언 받은 후 4년 뒤(1964년) 냉정한 자세로 회고하며 쓴 책이다.

이 책이 객관적이라고 제목에 넣은 것은, 이 책의 형식이 방언에 대한 어떤 입장을 강변한다거나 저자의 '심리 상태'의 변화를 강조점으로 하여 작성하기 보다는, 기자된 입장으로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관찰자'로서 계속되는 질문에 답해 나가며 결국 온전히 무릎 꿇기까지, 그 '과정'을 담담히 기술해 나갔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질문을 나도 또한 동일하게 가지고 있으며, 그가 지원 하에 충분한 자료와 중요한 인사들을 접촉한 뒤 이렇게 책의 형태로 내 손에 들려져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가령, 당신이, '요즈음 그렇게 말많은 방언, 도대체 그따위것, 뭐란 말인가. 내 눈으로 봐야 믿겠다'는 태도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비판적 시각으로' 방언에 대하여 검증해 보기를 원한다면, 이 책은 거의 완전한 간접 체험을 당신에게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아주 의미 심장한 질문들을 던지며 그 해답을 찾아 가는데, 내게 특히 유의미하였던 질문과 대답 또는 새로이 알게된 사실들은 다음의 것들이다.

1) 방언은 알아 들을 수 있는 것인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인 오순절 사건에서, 그 방언함을 듣고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방언에 반대하는 분들은 '성경상의 방언은 이런 류의 '외국어' 방언이란 말이다'고 하며 현대의 방언을 비판적으로 많이 말씀하시는데, 저자는 그와 다르게 분석하고 있다.

"바울은 방언을 듣는 사람들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다고 (예루살렘의 오순절에 각 나라 사람들이 제자들이 방언하는 것을 제 나라 말로 알아들었던 것과는 달리)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방언은 언어적 형태가 아니라 알지 못하는 말로, 때로는 단음절 형태로도 온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전 14:2)" (132쪽)

2) 방언은 성령 체험에 있어서 반드시 수반되는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하여는 저자는 명확히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다. 자신이 성령 체험(방언)을 하기 전에도 신실한 기자로서 이미 '가이드 포스트'의 기자였고, 또한 방언을 받은 후에도 40여년간 계속 방언을 부정적으로 보는 '성 마가 성공회' 교회에 착실히 다니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 흐름으로 보아, '방언'의 필수성에 대하여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실제 삶에서 방언이 얼마나 극적으로 한 크리스쳔의 생활을 바꾸었는지를 통하여, 방언은 참으로 사모하여야 하는 것임을 전달하고자 한다. 또한, '방언'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방언을 통하여 성령의 임재하심을 느끼고 변화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3) 방언은 어떤 유익이 있는가?
방언이 외국어적인 방언이라면 물론 그 필요에 따라 많은 유익이 있고 눈에 보이는 기적이지만, 또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의 경우에도, 개인의 신앙 생활에 확신과 기쁨이 넘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며 성령님과의 인격적이고도 친밀한 만남을 갖을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교회를 위하여는 자신이 잘 모르는 사항 특히 중보기도 등을 할 때 대단히 유용하며, '성령'의 간구하심이 바로 이 '방언'을 통하여 이루어질 때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본다면, 우리 인간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방언을 쉽게 배척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4) 객관적인 경험담의 유익
무엇이든지, 먼저 경험한 사람의 자세한 경험담은 후세에 도움이 되는 법이다. 이 책의 저자는 '방언에 회의적인' 자신이 어떻게 마음을 열고 결국 방언을 받고 사고가 바뀌고 생활이 바뀌었는지, 차분한 어조로 전달한다. 이 책을 덮으며 든 느낌은, 이런 방법으로, 이런 은사라면, 나도 정말 꼭 방언하기를 원한다는, 그런 간절한 소망을 가지게 하였다.

2. 개인적인 면에서 추가하는 글
1) 이 서평을 쓰기 전, 이 전의 서평을 몇개 보고 느낀 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책처럼 '방언'이라든지 기타 주관적인 경험에 기초한 책에 대한 서평은, 그 서평을 쓴 사람의 성향을 알기 전에는 도통 신뢰가 생기기 힘들겠구나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간단히 내 개인적인 것을 덧붙여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서평을 쓰는 저는 2007년 10월 30일 현재 대략 20년째 신앙 생활 중이며, 처음 3년은 순복음에서, 나머지 17년은 장로교에서 교회 생활을 하였고, 성향은 보수적이며 은사도 별로 받은 것이 없지만 이상하게 친은사적으로 사고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방언은 무척 사모해 왔고, 정말 간절히 구한 적도 많았으나, 아직 방언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기독교인인 저의 구원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다만 보다 열심을 내어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싶은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2) 나는 현재 '규장 서평단'의 일원이고 이 책은 첫번째로 받은 책이다. 이 점을 밝히는 것은, 이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무언가 공정치 못한 점이 있을 것 같아서이다. 서평단 이외에, 어떤 연관도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서평단이 된다고 하여 별 몇개 이상을 주어야 한다든지, 어떤 방향으로 써 달라고 부탁받은 적은 전혀 없으며 유일한 지침은 '성의껏, 솔직히'이다. 만약 어떤 형식으로라도 내 양심에 걸리는 방향으로 지침을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서평단을 즉시 그만둘 생각이다. 따라서, 이 서평에서의 별점과 평가는 내가 서평단의 일원이라는 점과 무관하며,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음을 밝힌다. 끝.
c*****u 2007.10.3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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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찾아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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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언어'로 시작된 성령님의 은사에 대한 내용들이 계속 다른책으로 이어져 '성령님을 찾아서'까지 이르게 된 여행.이 책의 저자인 존 쉐릴처럼 방언에 대해 회의적이지는 않았지만 방언의 은사에 대한 갈급한 마음들은 크게 없었던 나.어린시절부터 교회 집사님과 권사님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보고 자랐지만 나도 저렇게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못했던 나.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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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언어'로 시작된 성령님의 은사에 대한 내용들이 계속 다른책으로 이어져 '성령님을 찾아서'까지 이르게 된 여행.
이 책의 저자인 존 쉐릴처럼 방언에 대해 회의적이지는 않았지만 방언의 은사에 대한 갈급한 마음들은 크게 없었던 나.
어린시절부터 교회 집사님과 권사님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보고 자랐지만 나도 저렇게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못했던 나.
대학시절 참석했던 찬양집회에서 인도자가 방언을 강조할때는 오히려 부담감을 느꼈던 나.
그 이후 한번씩 나도 방언으로 기도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간혹 했었지만 그렇게 간절히 사모하거나 기도하지는 않았던 나.
방언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게 흘러왔습니다.

그러다 올해 예배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영으로 드리는 찬양이 무엇인지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면서...
하늘의 언어를 비롯한 다른 여러책의 도움을 받아 방언의 은사가 어떤 역활을 하는지 알게 되었고, 방언을 비롯한 모든 은사가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함임을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알게되었습니다.

특히 방언이 주는 가장 큰 유익이 로마서 8:26,27 에 기록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이 말씀처럼 중보기도에 큰 힘을 준다는 사실이였습니다.

책 전체적인 구성은 편하게 읽을수 있어서 좋았고, 저자의 직업이 기자인지라 하나하나 모든 자료들을 객관적으로 접근하면서 기록한것이 방언에 대한 궁금증을 많이 풀어주고 방언의 은사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목말라하는 많은 이들의 갈증해소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 230페이지에 스탠리 존스가 한 말이 있는데, 꼭 적으면서 나누고 싶네요.
"제자는 수동적이지만 사도는 능동적입니다. 제자는 그리스도의 발치에 앉아 있는 사람이지만, 사도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선교사인 셈이죠. 그런 점에서 우리는 누구나 선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지로 들어가야만 선교사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요점은, 성령세례가 수동적인 신자들을 행동하는 신자로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책 전체를 읽지않고 들으면 약간의 오해도 생길수 있는 말이라 생각하지만
<요점은, 성령세례가 수동적인 신자들을 행동하는 신자로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에는 100%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 책이 주는 유익함중 빼놓을수 없는 한가지는 마지막 13장에 기록된 '옛 것과 새 것의 혼인'입니다.
성령세례를 경험한 사람들이 기존의 교회에서 어떤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지, 어떻게 질서를 맞춰가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4장 특히 12절 말씀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을 통해 성령의 은사가 개인의 사적인 용도를 위한 게 아니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임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책을 마무리하며 존 쉐릴은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모든 특성들이 결합되었을 때 과연 어떤 성품이 나오게 될지 질문을 던지며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는, 조용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겸손한,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확신에 가득한,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성령체험의 신자를 묘사하는 말이라 언급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이런 사람이 될 때 성령체험을 증언하는 '걸어 다니는 광고판' 이 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편안하게 읽을수 있어서 좋았고, 저자의 직업이 기자인지라 모든 자료를 분석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접근하고 정리해간 덕분에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 가운데 방언이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방언이 주는 유익함이 무엇인지, 방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고 목말라하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단지 방언만 다룬책이라면 이 책이 가져다주는 유익도 크게 줄었겠지만 성령님의 행하시는 일들을 전체적으로 다루었기에 많은 유익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온맘다해 사랑하고 그분의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그 새계명이라 생각하며, 그 사랑과 은혜가 넘치도록 흘러가도록 도와주는 귀한 선물 중 하나가 방언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상황가운데서도 가장 그 사람에게 맞는 중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도하는 자신에게도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랑안에서 행해지며 방언이 무엇을 측정하거나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며
 책을 읽어가는 중간중간 책을 내려놓고 기도하는 자리에 머무르게 만들었던 '성령님의 찾아 떠나는 여행'이 저와 여러분의 기도의 지경을 크게크게 넓혀가길 소망합니다.
j******n 2007.11.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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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찾아서>를 읽고...
"<성령님을 찾아서>를 읽고..." 내용보기
이 책은 존 쉐릴이 방언에 대해 취재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고백하는 일종의 자서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내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방언을 받았어요.’라고 간증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간증은 읽는 이로 하여금 영적 ‘진동’(행4장)을 일으키기는 기폭제의 역할을 한다. 단순히 방언이라는 코드에 집중하기보다 그 이상의 무엇이 존재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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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존 쉐릴이 방언에 대해 취재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고백하는 일종의 자서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내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방언을 받았어요.’라고 간증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간증은 읽는 이로 하여금 영적 ‘진동’(행4장)을 일으키기는 기폭제의 역할을 한다. 단순히 방언이라는 코드에 집중하기보다 그 이상의 무엇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특별히 이 책을 읽으며 R. A. 토레이 목사님의 저서들과 비슷한 영적 흐름이 있다고 느꼈다. 옛 우물을 파라는 토레이 목사님의 말씀과 존 쉐릴이 고백하는 내용이 맞물렸다. 방언의 흐름을 찾아 취재하며 점차 자신도 ‘빨간문’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과거 자신의 마음속에 쌓여 있었던 것(토레이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우물을 메운 더러운 것)들을 버리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 쉐릴의 취재기이자 간증이 읽는 이로 하여금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책을 읽으며 그 동안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방언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방언을 받은지 3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내 안에는 방언에 대한 막연한 궁금함이 남아있었다. ‘과연 내가 방언을 하는 것인가’, ‘내 잠재의식 속의 말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닌가’, ‘왜 방언을 하면서 내겐 아무런 감정적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가’ 등 여러 가지 질문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동안 숨겨왔던 내 궁금함을 해결해주었다. 그리고 성령님께 사과의 말씀을 올렸다. 책을 읽으며 전해져왔던 떨림이 아직도 남아있다. 만약 이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면 거침없이 구매하길 바란다. 특별히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이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그 심령 가운데 남모를 갈급함이 있는 영혼이라면 이 책을 통해 성령님의 놀라운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길 바란다. 이 책은 우리의 식어져가는 마음을 불소시게로 들쑤셔서 다시금 활활 타오르게 만들어줄 것이다. 더 이상 성령님은 나와 동떨어진 분이 아니시며 내 영혼의 주인이 되심을 다시금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 분을 만나길 원한다면 이 책 가운데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직접 만나보길 추천한다.

f**********2 2007.10.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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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역사와 은사를 체험한 이들의 5년 취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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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서 ‘가이드포스트’ 잡지 등 유명한 신문에 멋지고 예리한 글을 쓰는 작가가 있습니다.존 쉐릴(John Sherrill)이 그 사람입니다. 그는 1595년 어느 봄날에 성령님을 체엄했습니다. 그때 그는 2년 전에 목에서 발견된 암을 수술한 후에 정기 검진을 받던 날이었습니다.그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에게 의사가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죠. 그는 다시금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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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서 ‘가이드포스트’ 잡지 등 유명한 신문에 멋지고 예리한 글을 쓰는 작가가 있습니다.
존 쉐릴(John Sherrill)이 그 사람입니다. 그는 1595년 어느 봄날에 성령님을 체엄했습니다.
 
그때 그는 2년 전에 목에서 발견된 암을 수술한 후에 정기 검진을 받던 날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에게 의사가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죠. 
그는 다시금 고통 가운데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마친 뒤 병실에 실려 온 그는 약에 취해 누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이 되었을 때 비로소 같은 병실에 누워 있는 환자들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연세가 많은 할아버지였는데 천식으로 고생하는 분이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이제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 있다가 그 병실로 옮겨 온 젊은이였습니다.
 
그날 쉐릴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놓고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병실에 있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도 힘든 처지라 그들을 위한 기도가 쉽지 않았습니다.
 
한 밤 중이었습니다. 그는 말똥말똥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때 병원 복도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간호사는 바닥이 고무로 된 실내화를 질질 끌며 병실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방에 누워 있는 두 명의 환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천식 때문에, 청년은 마취에서 깨어난 후라 고통 가운데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렇게도 생생한 상황가운데 그 빛이 점점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빛이 인격체와 같은 중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쉐릴은 그 빛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입에서 그런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예수님이세요?”
 
그때 빛이신 예수님이 그를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통증이 거의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통증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기분만은 완전히 나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쉐릴은 예수님을 향해 간신히 입을 뗐습니다. 
 
“예수님, 저 청년도 도와주실 거죠?”
“예수님, 저 노인도 도와주실 거죠?”
 
그러자 빛이신 주님께서 그를 떠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청년의 침상을 빛으로 채워주셨습니다.
그때 그토록 끙끙거리던 청년의 신음소리는 사라졌고 이내 곤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빛이신 주님께서 노인의 침상 한 가운데에 머물렀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의 기침도 사라지게 되었고 깊은 단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빛이신 주님이 곧장 사라지셨습니다.
 
존 쉐릴의 〈성령님을 찾아서(They Speak With Other Tongues)〉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냉철한 이성주의자요 회의주의자의 삶을 청산하고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와 능력을 체험한 이들을 5년간 취재하러 다녔고, 
자신도 성령님에 의해 방언과 각종 은사들을 체험했고, 그것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었습니다.
 
탐사보도 격인 그의 책을 통해 전 세계 250만 명의 독자들이 성령의 역사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성령은 오순절교회의 전유물인줄 알았던 정통교단들도 그때부터 성령에 목말라 하게 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도 그 전까지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그 책이 발행된 뒤부터 공식적으로 성령의 능력을 표방하게 되었습니다.


s*****e 2018.11.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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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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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으로 아무런 체험없이 습관적으로 교회에 그냥 다녔습니다. 요사이 나오는 종교서적을 통하여 성령세례, 방언... 성령님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언어', '고맙습니다 성령님'  '부흥의 여정'그리고 '성령님을 찾아서' 막연하게 마음속에 있는 성령님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임재를 느끼게 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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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으로 아무런 체험없이 습관적으로 교회에 그냥 다녔습니다.

요사이 나오는 종교서적을 통하여 성령세례, 방언...

성령님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언어', '고맙습니다 성령님'  '부흥의 여정'그리고 '성령님을 찾아서'

막연하게 마음속에 있는 성령님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임재를 느끼게 해주는 책입니다.

 

 

y****9 2008.04.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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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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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이 정말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증표일까요? 그렇다면 방언을 하지 않는, 못하는 사람들은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일까요? 방언이라는 것이 정말 은사 맞을까요? 우리는 방언에 대해 수많은 질문들을 합니다. 일부 기독교인은 방언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방언을 하지 못합니다. 방언을 못하는 목회자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럼 그 목회자들은 성령을 체험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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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이 정말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증표일까요? 그렇다면 방언을 하지 않는, 못하는 사람들은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일까요? 방언이라는 것이 정말 은사 맞을까요? 우리는 방언에 대해 수많은 질문들을 합니다. 일부 기독교인은 방언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방언을 하지 못합니다. 방언을 못하는 목회자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럼 그 목회자들은 성령을 체험하지 못한 분들일까요? 너무나도 궁금한 것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 책이 그런 궁금증들을 시원하게 해결 해줄 것입니다.

 

저자는 방언에 대해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방언에 대해 취재를 하고, 여러 자료들을 찾아봅니다. 그런 과정에서 책이 거의 완성되었을 쯔음 저자는 결국 방언을 하게 됩니다. 수많은 의문들을 하나하나 해결 해나가면서 방언에 대해 부정적이던 저자는 방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이 바뀌었고 결국엔 방언을 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교회에 간건 제가 22살때였습니다. 방언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방언에 대해 배우고 나서는 정말 간절히 방언받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금요철야때 저는 방언을 받았습니다. 그 때의 그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언기도의 유익은 해본 사람만이 압니다.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직접 경험해보지않으면 그 유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금요예배를 없애버린 교회의 성도들을 보면 너무나 불쌍해 보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고 방언의 능력이 터지는 금요예배를 없애버린 교회들을 보면 대부분 능력이 없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많습니다. 그 교회에서 성령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나약해지는 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부인하고 은사들을 부인합니다. 제가 잠시 다녔던 어느 교회의 목회자는 병고침의 은사에 대해 맹비난을 했습니다. 통성기도에 대해서도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이 교회는 금요예배도 없는 교회였습니다. 교인중에 방언을 하는 교인은 1%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 교인들은 쉬쉬하며 방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목회자도 방언을 안하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방언을 할 수가 없던 것입니다.

 

교회를 비판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이단이라고 말하는 목회자들을 보면 안쓰럽습니다. 물론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기 때문에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방언을 하는 사람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 대한 비난은 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여러가지 궁금증들이 풀렸습니다. 저도 방언에 대해 혼자 공부도 해보고 성경도 파해쳐 보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책을 진작에 만났더라면 아마도 더 빨리 방언에 대한 궁금증들을 해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어떤 사람 앞에서도 당당하고 자신있게 방언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궁금증들을 풀어준 저자에게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방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신 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n****7 2007.11.0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천국의 보화를 캐낼 수 있는 좋은 통로 - 방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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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의 보화를 캐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를 주셨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난 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의 저자와 함께 여행(?)하는 동안 성령님과의 참다운 교제, 형용할 수 없는 기쁨, 믿음의 확신, 상처의 치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찬양, 주님의 뜻에 맞는 간구, 참다운 위로와 평안, 사랑이신 예수님 등 그동안 성경 말씀 속에서 보와왔던 보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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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의 보화를 캐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를 주셨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난 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의 저자와 함께 여행(?)하는 동안 성령님과의 참다운 교제, 형용할 수 없는 기쁨, 믿음의 확신, 상처의 치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찬양, 주님의 뜻에 맞는 간구, 참다운 위로와 평안, 사랑이신 예수님 등 그동안 성경 말씀 속에서 보와왔던 보화들을 캘 수 있는 가장 좋은 통로가 방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존 쉐릴은 어느 날 암이 재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한밤중에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빠르게 암이 치유되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좋은 일은 주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와 기쁨, 또한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을 체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님의 은혜와 감격에 대한 체험이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사라져 버리고 말았았는데, 그것은 저자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것은 결코 내가 바랐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제자들 옆에 있다가 홀연히 사라졌을 때 제자들이 느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라고...


그때부터 1년 정도 지난 후 어떤 사람을 만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방언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어요?’ 라는 질문이었다.


저자는 그것이 흥미로운 기사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언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방언에 대해 알아보던 중에 어떤 출판사 관계자로부터 방언에 관한 책을 쓰도록 권유받고, 또한 후원을 받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저자는 방언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각종 방언에 관한 자료들을 구하며, 실제 방언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방언을 녹음하며 그들의 체험담을 듣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성경에 나타난 방언.

성령 임재로서의 방언.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

교회사에 나타난 방언.

방언을 체험한 이들의 진솔한 고백 등.


저자는 방언에 대해 연구해 갈수록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영과 마음이 방언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 신체의 건강, 평온함, 쉼, 긴장과 짐으로부터의 해방, 하나님 임재의 확신 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모임 도중 몇 사람이 호텔 방에서 결국은 성령세례와 방언 받게 된다.

그후 저자의 삶은 확연히 달라지고 말았다.

저자는 그 후 4년 뒤에 이 책의 저술을 마무리 지으며 중요한 깨달음들을 전해주었다.

성령세례가 얼마나 중요한지, 어떻게 주님의 은혜를 유지할 수 있는지, 방언의 유익들이 무엇인지, 성령세례를 받는 신자와 이를 인정하지 않는 신자들의 태도가 기존 교회 내에서 어떠해야 할지 등에 대해서...


저자는 성령세례와 방언을 통해 주님의 기쁨과 은혜를 계속 누리며 살 수 있는 원천을 얻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저자의 고백적인 성령님을 찾아가는 여정을 읽으며 말할 수 없는 감동과 감명을 받았다. 내게 이 책은 방언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며 가장 멋진 천국의 보화를 캐낼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었다.

j*****3 2007.10.3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름다운 신앙인의 일생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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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찾아서’를 추천하며... 존 쉐릴 지음/ 배응준 옮김/ 규장/ 2007. 10. 27. 예기치 않았던 체험으로 시작된 저자의 이야기는, 성령체험과 관련된 책을 쓴다는 명분 아래 실제적으로는, 성령세례를 받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듯, ‘객관적 관찰자’라고 명명된 ‘자의식’과의 오랜 밀고 당김 가운데, 결국은 책의 제목처럼 ‘성령님을 찾아 가는’ 여정을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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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찾아서’를 추천하며...


존 쉐릴 지음/ 배응준 옮김/ 규장/ 2007. 10. 27.


예기치 않았던 체험으로 시작된 저자의 이야기는, 성령체험과 관련된 책을 쓴다는 명분 아래 실제적으로는, 성령세례를 받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듯, ‘객관적 관찰자’라고 명명된 ‘자의식’과의 오랜 밀고 당김 가운데, 결국은 책의 제목처럼 ‘성령님을 찾아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성령에 관한 탐구서 내지는 체험소개서처럼 전개되던 이야기는 후반부에서 저자 자신의 성령체험과 40년이 흐른 뒤 믿음의 삶을 되돌아보며 권면하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어 마치 한 편의 자서전으로 끝을 장식하고 있는 듯합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이야기 하였듯이 비록 개인적 성령세례 체험 후 책의 체제를 바꾸었기 때문에, 독자들이 범상치 않은 도입부에서 이미 글의 대단원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시점으로(우리 각자의 현재와도 같은 시점으로-묘하게도 당시 저자의 나이가 지금의 제 나이와 비슷합니다) 돌아가 생각해보면 저자는 결코 스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성령세례를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엄밀하게 말해 이 책의 제목은 능동적 의미의 ‘성령님을 찾아서’ 보다는 ‘성령님의 찾으심’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약 10년 전 성령세례를 체험했습니다만, 저의 경우에도 성령님께서 찾아오셨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어떤 흠모할 만한 것도 없었지만, 성령님의 임하심은 의심 많았던 저조차도 결코 부인하거나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사실이었고, 성령님께서 오셨을 때 먼저 깨끗케 하시고, 상한 심령을 주셨고, 중보기도 가운데 애통하는 마음을 주셨으며 방언의 은사도 주셨습니다.

1년 여 전부터 느슨해졌던 기도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저를 훈련시키셨고 특히 몇 개월 전부터 경건서적들과 성경말씀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마음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기 원하는 마음, 그리고 성령님께서 부어주시는 신령한 은사들을 더욱 사모하는 마음을 지속적으로 부어주고 계십니다.

특히, 에이든 윌슨 토저의 책들은 저의 잠든 영성을 일깨워주고 기도와 말씀을 더욱 사모하게 하였는데, 놀라운 것은 제가 ‘성령님을 찾아서’를 읽으며 토저와 쉐릴,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중에 등장하는 많은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의 증언, 그리고 저의 개인적인 성령체험들과 그 후에 일어나고 있는 삶의 변화들이 너무나도 동일하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든다면, 성령의 사역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라는 점, 성령세례의 결과로서 거룩함과 온전함을 사모하는 마음 등과 같은 것입니다. 줄을 쳐가면서 책을 읽었습니다만 이와 같은 예를 모두 든다면 지면이 부족할 것입니다.


저는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오늘 저와, 이 땅의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부어주시기 원하신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저자의 말처럼 자신이 가장 부담스럽게 혹은 꺼림직하게 생각하는 것들-자의식을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과 신령한 은사들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성령님을 찾아서’가 출간된 것은 매우 시기 적절할 뿐아니라 큰 영적 영향력을 끼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책은 결코 방언 전도서가 아닙니다. 기존의 교회나, 방언과 같은 은사를 받지 못한 성도들에 대한 폄하의 글도 아니며, 방언과 은사 지상주의를 주장하는 책도 아닙니다. 이 책의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이 책은 다만 저자가 저자 자신과 자신이 만난 많은 성도들의 신령한 체험에 근거하여(이 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을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과거형이 아니며 저자가 책을 처음 썼던 1964년은 물론 제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07년에도 현재진행형임을 강력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인용한 선교사 프랭크 라우바흐의 마지막 말을 인용하면서 추천의 글을 마치려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삶 속에 모실 때 우리 주님을 이끌었던 것과 동일한, 강력하고도 꼭 필요한 능력을 받는다는 것은 실로 도전이며 감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j********8 2007.10.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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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체험은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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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체험해 본 사람은 자신이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 타인에 비해서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경험이라는 것은 그것 자체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체험'은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지적인 신앙인들은 이것을 "주관적"이라고 여길 것이고, 경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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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체험해 본 사람은 자신이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 타인에 비해서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경험이라는 것은 그것 자체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체험'은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지적인 신앙인들은 이것을 "주관적"이라고 여길 것이고, 경험적인 신앙인들은 이것을 자신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경험한 것이기 때문에 "검증된" 것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반대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과연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것 역시 이론적 근거에 바탕을 둔 "주관적" 결론일 수 있음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어떤 일에 대해서 경험을 가진 사람이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거나 "객관적" 또는 "주관적"이라는 용어를 자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늘 주관과 자아에 의해서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까요.)

결국 100%의 순수한 "객관성"이라는 것은 "진리" 자체 외에는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즉,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도 경험해 보지 않았다는 그 사실 자체가 "객관성"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도의 "객관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차선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증된 "문헌 (성경)"과 역사적으로 일관성 있게 나타난 "보고" 내지는 "양상" 그리고 동시대 사람들의 "증언" 및 본인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균형 있게 반영되었을 때 (단, 결론을 미리 예상하지 않고, 이러한 자료들로부터 건전한 결론을 도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비교적 "객관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에도 물론 반대적인 근거들까지 다룰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문제도 "객관적"으로 다루기가 상당히 곤란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이 적어도 위에서 말씀드린 차선책을 따라서 "진리"와 "객관성"에 접근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방언"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지속되어져 왔는지에 대해서 여러 문헌과 자료들을 통해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이들의 서신, 인터뷰 및 녹취 등의 방법을 통한 그의 접근법을 통해서 기자적인 기질을 한 번 더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체험 및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 reference인 성경이 이 주제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통해서 결론을 도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저자는 궁극적인 지점에 도달합니다.

성령세례 의 본질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용어가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의 신학적 성향과 맞지 않으시다면 양해를 구합니다...)

성령 자신을 주목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결코 아닙니다.

성령세례는 한 가지 목적에 이르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한 가지 목적은 바로 언제나 그리스도입니다. (p.239-240)

성령세례의 본질은 "능력"이 아닙니다. "능력"을 본질로 생각하는 것이 "성령운동권 교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많은 교회에서 터부시되는 "방언"이나 다른 "은사"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학적 입장에 따라서 간구하는 자에게 은사를 허락하신다고 믿는 분들이 있고 (이것은 사람이 원하기만 하면 다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이기 때문에 그 분이 원하시는 사람들만 받게된다는 견해를 가지신 분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저는 두 가지가 합쳐진 것이 보다 근접한 답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에 균형을 가져야만 하겠습니다.) 즉,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허락하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본인이 간절히 원하지만 받지 못하는 경우보다 본인이 전혀 원하지 않는데도 받게 되는 경우는 현저히 적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사견입니다만은...아무리 하찮은 은사라고 생각되더라도 이것을 주권적으로 허락하신 분이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님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고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 어리석어 보이는 방법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면 저는 이 책에 언급된 스탠리 존스의 말처럼 "하나님의 바보"가 되는 것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객관적으로 잘 쓰여진 책입니다. 독자에 따라서 이 책의 내용에 동의할 수도 있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책은 “주관성”을 탈피하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과 지난 40년 동안 저자의 삶과 이 책이 많은 귀한 열매를 맺었다는 것은 우리가 인정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령세례와 방언에 대한 내용 외에,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더 도전을 받은 것은 p.226에 기술되어진 데이비드 윌커슨 목사의 이야기 입니다.

또한 나는 주중에 규칙적으로 개인기도 시간을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친구 데이비드 윌커슨은 기도의 십일조를 바친다. 그는 하루 24시간 가운데 2시간 30분을 기도한다…

(데이비드 윌커슨 목사님의 책도 앞으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부디 이 책을 통해서 영적인 유익을 얻으신 분들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생각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방언으로 기도하여서 주님의 말씀대로 늘 기도에 힘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고린도전서 14:14-15)

 

For if I pray in tongues, my spirit is praying, but I don't understand what I am saying. Well then, what shall I do? I will do both. I will pray in the spirit, and I will pray in words I understand. I will sing in the spirit, and I will sing in words I understand.

 

 

 

 

 

1******s 2007.10.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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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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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찾아서 존쉐릴 “성령님은 인격적이시다” 이러한 말을 어느 때인가 부터 나의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은 각각의 주권적인 분으로 우리의 삶을 이끄신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버지 하나님, 구원자 예수님 그러면 성령님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인가를 안다는 것 그것은 나의 지식에 얽어 매인 상태로 20대 시절의 대부분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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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찾아서 존쉐릴

“성령님은 인격적이시다” 이러한 말을 어느 때인가 부터 나의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은 각각의 주권적인 분으로 우리의 삶을 이끄신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버지 하나님, 구원자 예수님 그러면 성령님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인가를 안다는 것 그것은 나의 지식에 얽어 매인 상태로 20대 시절의 대부분을 보내었다.

인격체이나 내안에 온전한 인격이 되지 못했던 성령을 나는 한 달 동한 집중 조명 할 수 있는 은혜를 경험했다. A.W 토저의 “이것이 성령님이다.” R.A 토레이 “성령 세례 받는 법” 마지막으로 존 쉐릴의 “성령님을 찾아서” 특별히 마지막 “성령님을 찾아서”는 나에게 특별한 느낌과 관점을 보여주었다. 닫혀졌던 마음의 문이 그분께 온전히 내어드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의 마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방언을 하는 이들을 향해 한두 번쯤 품어봤을 의문된 내용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해석해려고 노력하는 존 쉐릴의 모습이 객관적 입장에서 주관적 입장으로 성령세례의 주인공이 되어 성령을 경험하고 인정하며 성령님과 교제를 즐기는 그의 삶이 던지는 메시지는 너무나도 분명했다.

성령의 삶은 불붙은 떨기나무와 같은 하나님의 향한 열정으로 충만해진 다는 것이다. 방언이 수단이 되어서 목적을 세워가며 더욱 성령의 열매를 이루어 가는데 동역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니고데모가 논리를 통해서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듯이 오직 우리의 방법은 그분을 체험해 보는 것이다. 성령의 인격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어떠한 것도 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성령은 객관적일 수 없다.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움직이는 바람처럼 그의 정체는 오직 성령 그 분만이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을 구해야겠다. 성령세례를 통해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경험하고 놀랍고 충만한 체험하는 신앙인으로 살아야 겠다.

h******2 2007.10.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