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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향기 가득한 이윤기의 교양산문
"인문의 향기 가득한 이윤기의 교양산문" 내용보기
이번에 싱가포르 여행하면서 읽은 책이다. 하나 하나의 산문들로 이루어진 글이라 토막토막 끊어 읽기도 적합하고, 다루는 주제도 다양해서 여행하면서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들과 버무려 우리의 삶을 반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연배가 있는 분이 쓴 다양한 분야의 글이라 내용이 조금 어려운 곳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읽힌다.   크게 5부문으로 이루어진 산문집은 역시 말과
"인문의 향기 가득한 이윤기의 교양산문" 내용보기

이번에 싱가포르 여행하면서 읽은 책이다. 하나 하나의 산문들로 이루어진 글이라 토막토막 끊어 읽기도 적합하고, 다루는 주제도 다양해서 여행하면서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들과 버무려 우리의 삶을 반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연배가 있는 분이 쓴 다양한 분야의 글이라 내용이 조금 어려운 곳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읽힌다.

 

크게 5부문으로 이루어진 산문집은 역시 말과 글로 한평생을 보낸 저자의 주된 관심사인 글살이, 책살이의 문제를 첫 주제로 다루고 있다. 번역가로서 느끼는 애환에서부터 평생 학습을 위한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를 진솔하게 풀어낸다. 2부에서는 환경과 평화를 생각하며 한중일 삼국을 순회하는 ‘피스 앤드 그린 보트’에서 만난 일본인들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한일 관계를 조망한다. 과거의 닻에 매여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관계에서 벗어나 미래를 보며 문화라는 돛을 올리자고 역설한다.

 

3부에서는 저자의 베트남과 인연을 소개하면서 감상에 빠져 보기도 하고, 4부에서는 시골에서 나무 심고 농사 짓는 일의 힘겨움과 그 희망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5부에서는 ‘명창들’ 앞에서도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사연을 비롯해 일상의 여러 측면에서 떠오르는 단상들을 풀어놓고 있다. 산문집 제목에서인용하고 있는 고은 시인의 <꽃>을 이야기하면서 고은과의 개인적 인연들도 소개하기고 하고 자신은 아직 시인의 까마득한 오도송을 흉내조차 내지 못한다고 겸손해 한다.

 

인생의 경륜이 바탕에 깔려 있는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삶이란 누구를 모망하는 것이 아닌 바로 자신만의 노래를 명창들 앞에서도 주늑들지 않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루 하루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진실과 도전과 올바른 가치관이 함께 담겨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c******4 2023.10.01. 신고 공감 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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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로지 내 삶을 살 뿐이다.
"나는 오로지 내 삶을 살 뿐이다." 내용보기
아주 좋은 산문집이다. 그저 살아가는 삶을 가감없이 꾸밈없이 그대로 표현해냈다. 곡절많은 삶을 개척하는 이의 용기와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예순의 나이에 이렇듯 풍부한 내용을 드라이한 문장으로 나타내는 저자의 내공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글과 책에 대한 소회, 일본과 베트남에 대한 생각, 자연에 대한 외경, 그리고 명창들앞에서 노래부르기. 이 책의 다섯 줄기는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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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은 산문집이다. 그저 살아가는 삶을 가감없이 꾸밈없이 그대로 표현해냈다. 곡절많은 삶을 개척하는 이의 용기와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예순의 나이에 이렇듯 풍부한 내용을 드라이한 문장으로 나타내는 저자의 내공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글과 책에 대한 소회, 일본과 베트남에 대한 생각, 자연에 대한 외경, 그리고 명창들앞에서 노래부르기. 이 책의 다섯 줄기는 서로 다른듯 서로 엮어져 저자의 삶을 지탱하는 기둥을 만들어낸다. 놀라운 이의 소박한 아니 정직한 기록이 담겨있다.

평생 소설가로 번역가로 그리고 학자로서 살아온 인생이다. 그는 항상 공부했고, 진지했으며, 매사 의심하고 조심하였다.  하루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 복을 금방 받는 것은 아니지만 / 화는 스스로 멀어진다.
하루 나쁜 일을 한다고 해서 / 화를 금방 입는 것은 아니지만 / 복은 스스로 멀어진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봄 뜰의 풀과 같아서 / 그 자라는 것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 나날이 자라는 바 있으나,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칼 가는 숫돌과 같아서 / 그 닳아 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 사실은 나날이 닳고 있는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입학전 명심보감의 이구절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후 그의 생은 항상 공부하는 생으로서 이어갔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는 "나의 공부를 자꾸만 방해하는 공립학교를 나의 학교에서 퇴학시켰으며, 빈들에서의 고단한 삶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31쪽). 마지막까지 그는 후회하지 않은 생을 살았을 것 같다. "생각없이 사는 일상의 삶, 이것이 바로 악의 근원이다(89쪽)"라는 아렌트의 경구를 마음깊이 새기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는 항상 청춘으로 살았던 듯 싶다. 언제나 카메라를 메고, 주머니 많이 달린 조끼를 어김없이 입었다. 노년의 회환을 그려볼 시간도 없었다. 그러니 "앞날이 구만리 같은 사람이 대뜸 안면을 회고조로 바구고 뒤를 돌아보는 짓은 아무래도 좀 우습다" 허구헌날 뒤를 돌아보고 사는 이 코코넛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그의 일본인에 대한 생각. "우리는 오늘 닻과 돛을 올린다. 닻은 우리들의 과거, 돛은 우리들의 미래다. 한국인들에게 닻은 감정의 앙금일 수도 있고, 일본인들에게 닻은 무관심일 수도 있다. 정치가 박아놓은 이 닻을 쑥 뽑아 올리고 문화라는 이름의 새 돛을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146쪽). 그는 '피스앤그린보트'에 승선, 300여명의 일본인과 15일을 같이 생활하였다. 그가 국가로서의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수 없었으나, 개인으로서의 일본에 대해서는 배울것도 많고 이해할 것도 많은 이웃나라의 쿨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1971년 봄부터 1972년 봄까지 베트남에 있었다. 전투병이었다. 세월이 흘러흘러 그는 베트남을 방문하였다. 일본이 한국에 그러하듯이, 한국도 베트남에 그러하다. 한국이 베트남에 남긴 것은 한국이란 나라의 무자비함과 뒤따른 무관심이었을 터, 베트남에서 낯선 노인이 주는 술을 독주로 오해한 나머지 그는 아직 자신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한탄한다. 그 후유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은 맞다고 생각한다. 작금의 고엽제를 둘러싼 논란을 보니 말이다.  

나이 육십이면 이순의 나이다. 특히나 다양한 경험과 성실의 연륜이 자아내는 일상의 단편들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푸근함과 색다른 기쁨을 전해준다. 소소한 경험들에서 알아내는 그래서 만들어내는 감동은 평범한 이가 아닌 비범한 이가 아니면 알 수 없을 것이다. 결코 세상을 불평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세상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이가 그 스스로의 인생-결코 평탄하다고 할 수 없는-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이 이야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에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명창앞에서 노래부르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오로지 내 삶을 살 뿐이다."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YES마니아 : 골드 d******2 2011.05.31. 신고 공감 9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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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앞에서 노래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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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신문에서 <강기훈씨 '유서대필 누명' 벗는다>는 머릿기사를 봤습니다. 유서대필이라니? 그 때의 일을 모르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간단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1991년 4월 26일 금요일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집니다. 이를 계기로 대학생들과 재야 인사들의 항의 분신이 잇따릅니다. 소위 '죽음의 굿판(김지하씨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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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신문에서 <강기훈씨 '유서대필 누명' 벗는다>는 머릿기사를 봤습니다. 유서대필이라니? 그 때의 일을 모르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간단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1991년 4월 26일 금요일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집니다. 이를 계기로 대학생들과 재야 인사들의 항의 분신이 잇따릅니다. 소위 '죽음의 굿판(김지하씨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표현)'으로 거의 1주일에 한 명씩 11명의 학생, 노동자, 빈민의 분신이 잇따랐고 2,000회가 넘는 항의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강경 진압을 계속했습니다. 5월 25일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 서울 퇴계로에서 시위 도중 당시 성균관대 학생이었던 김귀정이 질식사하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공권력은 두 학생을 죽음으로 몰고 수많은 사람들을 스스로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팔랐던 시위 정국의 결말은 참으로 엉뚱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11명 중의 하나인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분신해 숨지면서 남긴 유서를 같은 단체 총무부장 강기훈씨가 대필했다고 시끌벅적하더니 정원식 총리 서리의 밀가루 투척 세례로 막을 내렸습니다. 당시 신임 총리 서리였던 정원식 전 문교부 장관이 외대에서 무리하게 강의를 진행하다가 흥분한 학생들에게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았습니다(정 전 총리는 100만권 이상이 팔린 베스트 셀러 《인간과 교육》, 《교육환경론》 등을 저술하고 카운슬링의 개념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하는 등 교육학자로서 명성과 업적을 쌓았으나 전교조가 출범한 해인 1988년부터 2년간 문교부 장관을 맡아 1000명 이상의 전교조 교사를 해직시키는 등 악역을 맡은 바 있습니다).

당시 동행했던 기자들에 의해 계란과 밀가루 범벅이 된 정원식씨가 마치 집단 구타를 당한 뒤의 모습인양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1면 톱으로 실렸습니다. 외대생들은 일순간 스승도 알아보지 못하는 '패륜아'가 되었고, 학생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순식간에 싸늘하게 돌아서버렸습니다. 스승을 저리 무참히 만드는 학생들의 민주화 구호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그날 이후 아무도 그해 5월을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정원식 총리 사건 전에 언론은 끊임없이 김기설씨의 유서를 강기훈씨가 작성했다는 경찰의 논리를 적극 알렸습니다. '운동권은 죽음을 조장하고 유서 대필도 서슴지 않는다'며 노태우 정권은 민주화 세력 전반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정원식 총리 일이 터지면서 민주화 세력은 정권의 의도 대로 패륜아 집단으로 내몰리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유서대필 사건은 결국 유죄를 선고받아 강기훈씨는 3년간 형기를 채우고서야 출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운동권은 이 사건을 끊임없이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의혹을 제기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국과수가 분신한 김기설씨의 유서는 본인이 직접 작성했다고 16년만에 필적 감정을 번복한 것입니다.

어제 아침 그 기사를 보고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잊혀진 기억,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일상의 삶이 순간 휘청, 흔들렸습니다. 그러다가 이윤기 선생의 신작 산문집 《내려올 때 보았네》를 읽다가 또 한 번 휘청,하였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 말에.

2차 대전 중 독일의 나치스 친위대 장교로 있으면서 유태인 학살에 깊이 개입한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봤던 한나 아렌트라는 독일 출신 작가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보았던 모양입니다.

아렌트의 눈에 비친 아이히만은 악당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시간 같아 보였다. '악의 평범성'에 대해 아렌트가 남긴 다음과 같은 말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생각 없이 사는 일상의 삶, 그것이 바로 악의 근원이다." (p.89)


이윤기 선생이 받은 충격 못지 않게 저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각 없이 사는 일상의 삶, 그것이 바로 악의 근원이다."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때마침 어제 저녁에 이윤기 선생을 직접 뵙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참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내려올 때 보았네》는 고은 선생의 시 <그 꽃>에서 제목을 빌려왔습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중견 작가이자 탁월한 번역문학가이며 신화 연구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글을 쓰고, 여행을 하고, 나무를 심고, 삶에 대해 사유하는 진정한 자유인이자 영원한 청년 이윤기 - 어제 만난 이윤기 선생은, 이러한 소개글이 딱 어울리는 영원한 청년이었습니다. 열정이 끓어 넘치고, 못다한 일들이 너무나 많아 쉽게 늙을 수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선생은 어림잡아 지금까지 300여 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 합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했듯이 그는 지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꽃처럼 좌중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말솜씨 이전에 그의 글솜씨는 맛깔스럽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너무 좋다못해 읽다보면 주눅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 그가 오히려 주눅 들지 말고 글을 쓰라고 충고합니다. 명창들 앞에서 나의 노래를 부르라고 말합니다.

나는 가수 조영남 앞에서도 겁 없이 노래를 부른다. 그가 음반으로 만들어낸 노래는 부르지 않는다. 그의 노래는 누구 말마따나 들으면 좋은데 불러보면 욕만 나온다. 도저히 흉내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기야 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수련한 그의 내공, 아마추어에게는 시늉조차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그와 어울리는 자리에서는 일본 노래나 몽골 노래나 베트남 노래로 빠진다. 천하의 명가수라는 조영남도 여기에 이르면 속수무책이다.
조영남은 내가 암수를 쓰는 것을 괘씸하게 여기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로부터는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내 노래에 관한 한 그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p.247)

글 또한 그렇다. 직업적으로 글 쓰는 사람들을 두고 '글발 좋은 사람들'이라고 한 모양인데, 그 사람들 시늉할 것 없다. '나'의 글을 쓰면 된다. '나'의 심정을, 말하듯이 소박하게 진정성에 실어 보내면 그뿐이다. (p.8 머리말에서)


또 용기를 얻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글을 쓸만한 내공이 없어 맨날 남의 책을 소개하면서 은근슬쩍 내 생각 살짝 얹어 보내는 저에게 참으로 용기를 주는 말입니다. 내공이 부족하니 암수를 쓸 수밖에요, 그러나 십수년의 수련 끝에 혹 제가 졸저라도 하나 써낼 수 있다면 그때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 중에 오늘 이윤기 선생의 이름도 올려 둡니다.

n******8 2007.11.14.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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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올 때 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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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지 않은 사람이 참 많다. 나도 몇 년전 익숙치 않은 이름들을 더듬거리며 읽었다. 그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그럴땐 아이들의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보기도 했다. 신화를 통해서 읽어 가는 인간에 잠재된 이야기는 현재까지 이어진다. 그가 번역한 변신 이야기처럼 형태가 다르게 다가올 뿐이다. 고은 시인의 '그 꽃"이란 시를 제목으로 붙였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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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지 않은 사람이 참 많다. 나도 몇 년전 익숙치 않은 이름들을 더듬거리며 읽었다. 그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그럴땐 아이들의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보기도 했다. 신화를 통해서 읽어 가는 인간에 잠재된 이야기는 현재까지 이어진다. 그가 번역한 변신 이야기처럼 형태가 다르게 다가올 뿐이다.


 고은 시인의 '그 꽃"이란 시를 제목으로 붙였다.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 로마신화와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이윤기가 살아온 이야기와 일상이 담겼다. 동네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 단어와 말을 알아가는 것과 그것이 권력이 된다는 그의 말이 좋다. 나의 노래를 부르듯 누군가에게 뽐내고 자랑이 아니라 나란 존재에 좀더 순수하고 솔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벼운 글을 통해서 비춰지는 작가는 한 편의 농부, 평범한 남편, 작가, 시대를 반영하는 자화상과 같이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 낸다. 그런데 참 묘하다. 어제는 생각하던 구절이 조금 다르게 표현된 시를 보고, 오늘은 머리 속에 흐르던 생각이 마치 각본처럼에 이 책에서 만나는 일이 생긴다. 생각의 흐름이 알 수 없는 미래와 연결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옮겨적을 생각은 없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내 머리속에 들어왔던 생각, 상상, 느김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다 읽고 난 후, 나는 내가 살아가는 내 삶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돌아본다. 희노애락의 구비구비가 겹쳐진 삶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 그래도 나만의 소중한 이야기가 있었으면 한다. 누군가는 폄하하고, 누군가는 부러워할지도 모르지만, 조용히 살다가 사라져가는 삶은 조금 애처러워 보인다. 너무 많은 이야기도 고난이다. 그래도 한 두가지 돌아보며 되새김할 좋은 삶은 이야기가 내게도 만들어지길 바래본다. 자유롭게 패기와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수 밖에..


 손에 책은 있는데, 어디서 샀는지 알 수가 없다. 갈수록 손이 많이 가는 어른이가 되어가나보다.

k***i 2018.09.10.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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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께 드리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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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읽고 있기가 아깝다는 생각을 먼저 했고, 자연히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이 책을 권하는 대상은 나보다 더 어른들이면 좋아하시겠구나 싶었다. 책을 권하는 사람의 수준까지 저절로 올려줄 만한 책. 이런 책을 권하다니, 권하는 당신 꽤 괜찮은데요? 하는 눈빛으로 화답해 줄 것 같은 책.   물론 젊은 사람들이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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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읽고 있기가 아깝다는 생각을 먼저 했고, 자연히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이 책을 권하는 대상은 나보다 더 어른들이면 좋아하시겠구나 싶었다. 책을 권하는 사람의 수준까지 저절로 올려줄 만한 책. 이런 책을 권하다니, 권하는 당신 꽤 괜찮은데요? 하는 눈빛으로 화답해 줄 것 같은 책.

 

물론 젊은 사람들이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어쩌면 더 많은 젊은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책일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산문의 무게라는 게, 인생의 깊이가 담긴 글이라는 게,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시각이라는 게, 발전적인 반성과 비판을 어떤 표현으로 나타내는 게 더 효과적일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글이니. 도리어 나이든 사람들이라는 으레 그러려니 하는 선입견을 싹 씻어주기까지 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굳이 어른들을 떠올린 이유라면, 요즘 젊은이들의 일부 태도에서도 끝없이 배울 것을 찾고 있는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괜히 어른인 척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도 이렇게 세상을 폭넓게 감싸안아가면서 살아가고 계시는데, 내가 참 뭐라고, 괜히 흥분하고 분노하고 실망하고 저주하고 했던 것인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그의 번역서도 그의 소설도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이 책 또한 막무가내로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읽는 페이지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 읽는 내내 얼마나 만족했겠는가. 앞으로도 이 분의 글은 두고두고 읽고 싶다. 이 분의 생각과 삶의 이야기를 계속 전해 듣고 싶다. 나는 이 분이 글을 많이 쓰시는 분이라는 게 너무 고맙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09.02.20. 신고 공감 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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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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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관심있던 음악가의 연주회가 있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초대한 후배에게서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평소 자잘한 것들로 서로를 기쁘게 해 줄 선물을 나누곤 하던 그녀가 이번에 내게 권한 책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이윤기 님의 산문집 [내려올 때 보았네]라는 책으로, 언젠가 어떤 기사에서 그의 산문집이 새로 나왔다는 기사에 꼭 검색해 보고 사야지 하고 메모를 했다가 그 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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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관심있던 음악가의 연주회가 있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초대한 후배에게서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평소 자잘한 것들로 서로를 기쁘게 해 줄 선물을 나누곤 하던 그녀가 이번에 내게 권한 책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이윤기 님의 산문집 [내려올 때 보았네]라는 책으로, 언젠가 어떤 기사에서 그의 산문집이 새로 나왔다는 기사에 꼭 검색해 보고 사야지 하고 메모를 했다가 그 메모와 함께 기억에서도 아주 잊고 지내던 바로 그 책이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색깔과 내가 즐겨듣는 음악과 내가 좋아하는 문인들의 이름을 낱낱이 기억했다가 놀랄만큼 꼭 드러맞는 때마다 선물로 안겨주곤 하는지, 늘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출근해서 열어본 메일함에서 발견한 그녀의 메일 속에서 정말 예쁘고도 탐나는 표현으로 가슴에 콕 새겨두었던, "봄 뜰의 풀과 같이 살고 싶다"는 말을 그 책 속에서 발견하고 간직되는 그 느낌표 또한, 미리 준비된 선물이라 여기게 된다.  점심시간에 입맛이 당기지 않아 그냥 거르던 차에, 잠시 쉬는 요량으로 펼쳤던 책에서 쏟아지는 단물같은 그 이야기들에, 오늘은 일을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일이야,  내일 더 많이 하면 되는 거니까.) 

 

나는 이윤기 님의 번역본으로 [장미의 이름]도, [푸코의 추]도, [그리스인 조르바]도 읽었다. 그만큼 그의 이름은 내게 친근하고 고마운 사람이다. 자꾸 몇 백배의 것으로 내게 갚아주는 책들, 그리고 그 속의 소중한 이름들 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작가로서 당연히 품게 되는 창작에 대한 압박도 커다란 두려움이듯, 번역이라는 작업에서 오는 그 책임감의 무게와  수많은 공격(피드백)들도 보통 일은 아닐 거라고, 봉사 문고리 잡듯 짐작만 간직하는 나일지라도, 그런 일들을 기쁘게 희망을 두고 감내하고 배워가는 그 분의 글 앞에 다시금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리고 정확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부드러움이든 강함이든 어떤 목적이든 부합되는 힘을 발휘할 수도 있는 귀한 글을 가지고, 좋은 것들을 흐트러뜨리고 목적도 없이 공격을 일삼는 쓰레기 같은 무기로 삼지 말아야겠다는 다짐까지 새롭게 만드는 책이다.

 

좋은 책을 만나고 읽을 수 있고 느낄 수 있음이..."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아, 행복하다.

j********6 2008.10.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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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볼 수 있을까..내려 올 때 그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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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이 맘에 든다. 그리고 작가도. 나는 주로 이윤기 선생님이 번역하신 신화들을 보았지만 어쨌거나 이름 석자의 무게가 가볍지 않은 분이라는 걸 알고는 있기에.     제목은 좀 길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것은 고은 선생님의 시 ’그 꽃’의 전문이다. 역시~! 이 짧은 시 안에 얼마나 많은 사색과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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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이 맘에 든다. 그리고 작가도.

나는 주로 이윤기 선생님이 번역하신 신화들을 보았지만

어쨌거나 이름 석자의 무게가 가볍지 않은 분이라는 걸 알고는 있기에.

 

 

제목은 좀 길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것은 고은 선생님의 시 ’그 꽃’의 전문이다.

역시~!

이 짧은 시 안에 얼마나 많은 사색과 통찰력이 들어있는지.

 

 

그 꽃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꽃

 

 

 

야~ 정말 기가 막히다.

올라갈 때 무슨 생각을 하며 올라갔을까.

그냥 올라가야지, 했겠지.

그러다 내려가는 길, 이제 주변을 살필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발견한다.

분명 아까 지나갈 때 보이지 않았던,

그러나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을, 그 꽃.

바로 삶의 이야기 아닌가.

 

 

이윤기 선생님이 이 시를 보고 절망을 하셨단다.

이런 절창 앞에서 당신의 산문집이 너무 하찮게 여겨지셔서 종일 우울했단다.

그런데 그걸 냉큼, 편집자가 제목으로 쓰자고 했단다. (이런걸 염장지른다고하지 않나?ㅋㅋ)

시인께 허락을 받기는 했지만,

이윤기 선생님 고백컨데, 내려올 때도 그 꽃을 볼 수 있을지 난망이라고 하신다. ㅎㅎ

이런 대가가 난망이면 나 같은 범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오히려 편안하다.

 

 

그래서 이윤기 선생님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연세가 적지 않으신데 사회를 문화를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없이 젊고 여유로우시고 열려 있어서

참 감사하고 본받을 바가 많다.

이윤기라는 이름으로 번역물을 주로 만났을 때는

날선 칼처럼 예리할 것 같은 선입견(?)이 있었는데,

정작 에세이로 만나보니 과연 예리하시지만,

무 자르듯 아무데나 휘두르는 칼은 아닌 듯 싶다.

그 연세에 쌓아놓은 경력이나 연륜이 있어

자칫, 남이 알지 못하는 허세도 부리고 싶고 난 척, 교만도 부리실 수 있을텐데,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함조차 보인다.

가끔 치기와 오기도 보이지만, 곧게 살려고 노력해 오셨다는 자신감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한다.

후배에게도 배우시고, 채팅 용어도 수용하시고, 소통에 애쓰시고, 그러면서 또 계속 공부하시고...

히유~ 나는 그 정도 연세면 그냥 유유자적하면 되는 줄 알았다. ㅠㅠ

그러나 끝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공부하고 소통하는 것이 바로 살아있음의 증거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그런 연세’라는 말은 무정하고 무심한 말이 된다.

살아있으면 생각하고 공부하고 소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누군가에게 증거로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일로 인하여 살아있음이 증거되겠다.

그일을 멈추는 날은 살아도 살아있는것이 아니겠지.

 

 

남의 에세이집 한 권 읽고 생각이 많아진다.

나도 좀, 열심히 부지런히 배우며 생각하며 살아야 겠다.

이윤기가 건너는 강이 있다고 했다.

내가 건너는 강도 있다.

이윤기 선생님과 내가 건너는 강은 각자 다르지만,

어느 물굽이에선 슬몃, 스쳐갈 수도 있으리라. (씨도 안 먹히는 소리를!)

 

그랬으면 좋겠다.

f******j 2012.04.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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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올때 나는 보았네...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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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불화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쓴다. 학교와의 불화는 공부와의 불화가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저금을 따로 하지 않는 나에게는 공부가 곧 저금이다. 나는 《명심보감》에서 읽은 동악성제의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철석같이 믿는다고 했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봄 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나날이 자라는 바 있으나, 착하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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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불화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쓴다.

학교와의 불화는 공부와의 불화가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저금을 따로 하지 않는 나에게는 공부가 곧 저금이다.


나는 《명심보감》에서 읽은 동악성제의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철석같이 믿는다고 했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봄 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나날이 자라는 바 있으나, 착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은 칼 가는 숫돌과 같아서

그 닳아 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나날이 닳고 있는 것’이라는

옛글의 가르침을 지금도 믿는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선과 불선의 구분이었다.

나는 선한가? 나는 선하지 아니한가?

고등학교 들어간 해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쁜 짓을 하고 다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학교와 교회가 금지하는 것들만 좋아했다.


나는 나에게 금과옥조 같은 동서양의 고전만을 좋아했는데

학교에서는 쓰레기 같은 것만 배우기를 강요했다.

나는 영화를 좋아했는데 학교는 영화관 출입하는 나를 쓰레기로 취급했다.

나는 음악 감상실 드나들면서 고전음악 듣기를 좋아했는데

학교는 쓸데없는 음악 이론만 나에게 가르치려 들었다.


나는 그 시절에 이미 막걸리 마시기를 즐겼으니

학교 쪽에서 보면 불량 학생도 그런 불량 학생이 없었다.

나는 절집 드나들기를 즐겼으니 교회 쪽에서 보면

그런 우상숭배와 신성모독이 따로 없었다.


나는 불선인(不善人)인가?

불선(不善)은 악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걸 누가 규정하는가?

규정의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선악의 잣대에 과연 항복해야 하는가?

선은 악의 한 과정은 혹시 아닌가? 악은 또 다른 선의 한 과정은 혹시 아닌가?


나는 나에게 다시 물었다.

머리카락 박박 밀지 않는다고 몽둥이로 찜질하는 학교를 너는 왜 용인해야 하는데?

술 마시다 걸리면 정학 처분 내리는 데를 왜 드나들어야 하는데?

무슨 권리로 때리고 무슨 권리로 벌을 주는데?


나는 동악성제의 가르침을 접해보고는 또 한 차례의 소스라침을 경험했다.

아무래도 그가 말하는 善과 不善은 선악이 아닌 것 같았다.

덩악성제는 도가(道家)사람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아무래도 ‘공부’에 대해서 쓴 것 같았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하루 공부한다고 해서 현명함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지에서는 멀어진다.

하루 나태하게 군다고 해서 무지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명함에서는 멀어진다.

공부하는 사람은 봄 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나날이 자라는 바 있으나,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칼 가는 숫돌과 같아서

그 닳아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나날이 닳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학교는 공부하게 하는 곳이 아니었다.

나의 공부를 방해하는 곳이었다.

내가 보기에 교회는 당시의 내 눈높이에 맞추어 내가 선택한 곳이지

내 눈높이를 돋우어주는 곳은 아니었다.


학교와 교회를 떠나고 보니 고전의 바다였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공부해둔 일본어로 고전 읽기에 빠져들었다.

덕분에 나는 예수의 신비스러운 인격이 쏟아낸 말씀이 마음에 스며드는 것을

한사코 막지도 않고, 부처의 말씀의 향기를 한사코 외면하지도 않게 되었다.

노자와 장자는 어린 시절 나의 큰 스승이었다.

오랫동안 밥맛 없어하던 공자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요즘 나에게 이따금씩 악몽을 안기는 말 한마디가 있다.

‘작가의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 10년 뒤에 온다’는 프랑스 속담이다.

작가의 생물학적 죽음은 진정한 죽음이 아니라는 뜻일 터이다.

죽고 나서 10년 뒤에 작품이 남지 않는다면 그것이 작가의 진정한 죽음이라는 뜻일 터이다.


내가 손을 잡아본 작가나 시인은 부지기수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뒤에도 독자의 기억에 머무는 작가나 시인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서점의 진열대에 저서가 올라가 있는 작가나

시인은 그보다 훨씬 그 수가 적다.

작가나 시인의 생물학적 죽음과 함께 그들에 대한 기억까지 깡그리 사라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지만, 10년 뒤에도 책이 살아남아 있다면 그것도 근사한 일이 아닌가?

노자, 장자, 공자의 어록은 어떤가? 2천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 있지 않은가?


부처의 말씀은 어떤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또 어떤가?

세익스피어 역시 그가 죽은 지 4백년이 지난 지금도 펄펄 살아있다.

나는 세월로부터 검증받지 않은 책은 잘 읽지 않는다.

나에게는 10년 뒤에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나에게는 가장 오래된 책, 가장 오래 살아남은 책이 가장 좋은 책이다.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책이 여기에 속한다. 여러나라 신화 책이 여기에 속한다.

기나긴 세월의 터널을 지나 날빛 아래로 드러난 신화는 나에게 또 하나의 미궁이기도 하다.

나에게 고전은 ‘아리아드네의 실꾸리’ 같은 것이다.

영웅 테세우스를 미궁에서 빠져나오게 해주었던 바로 그 실꾸리 같은 것이다.

나도 미궁 탈출을 시도하고 싶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나의 실을 놓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썼으니

시인 윌리엄 스태퍼드(1914~·993)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임에 분명하다.


그대가 붙잡고 따라가는 한 가닥 실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이 실이 보이지 않아,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이걸 잡고 있는 한, 길 잃을 염려는 없지.


슬픈 일들은 일어나게 마련이어서

사람들은 다치기도 하고 죽어가기도 한다.

그대 역시 고통 속에서 나이를 먹어가겠지.


세월이 펼치는 것은 그대도 막을 수 없으니

오로지 실만은 꼭 붙잡되, 놓치지 말아야 한다.


                                      -  이윤기 산문집 『내려올 때 보았네』 中


제가 좋아하는 이윤기선생님의 책에서 한 꼭지 옮겨봤습니다.


학교와의 불화는 세상과의 불화로 이어질지 몰라도 자연과는 조화롭게 만나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상과의 불화도 진정한 불화였을 때, 그 불화를 뛰어넘는다면

거기에서 만나지는 것은 '自然'이 되겠지요.


불화의 진정성이란 것이 좀 난해해 보입니다.

아는 자는 말하지 못하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고,.

이런 말로 설명을 대신하면 답이 될까요. 


부조리와 불합리에 부딪혀지고 갈등이 일어나야

그 다음 길을 찾게 되고 넘어설 수 있게 되겠죠.

뛰어 넘고자 한다면 먼저 장애물과 만나고 정확하게 보고 인정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그 불합리로 부터 벗어나는 겁니다.

불편 부당한 일상에 안주하지 말것이며,

불화를 외면하지 말 것이며, 다가오는 문제들이 난제일지라도 겁내지 말아야 합니다.


피할 수가 없거니와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넘어서지 않는다면 어디에서도 '나'를 찾을 수는 없는 것이죠.


이윤기 선생님의 다른 책 속에서 얻은 한 구절 떠올리면 "시험에 들게 하소서"


제가 참 좋아하는 말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가 아닙니다.

이윤기선생님 글은 공부가 행복이 되게 합니다.

설레임과 즐거움 또한 기꺼이 동행하는 그 행복을 누구라도 누려볼 수 있기를요,.


그리 된다면 그것 참 근사한 일 아니겠는지요.

h*****k 2010.05.16.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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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소통을 위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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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못된 버릇이 하나 있다. 너무 유명하다 싶으면 외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도 너무 유명세를 타면 보기 싫어지고 너나 나나 할것 없이 모두 입고 다니는 옷 스타일은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신화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나로서는(그렇다고 내가 신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신화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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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못된 버릇이 하나 있다. 너무 유명하다 싶으면 외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도 너무 유명세를 타면 보기 싫어지고 너나 나나 할것 없이 모두 입고 다니는 옷 스타일은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신화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나로서는(그렇다고 내가 신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신화 이야기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파문을 불러일으킨 "이윤기"라는 사람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인지 그냥 그 사람 책은 읽어보기가 싫었다. 그래서 이날 이때까지 이윤기님이 쓴 그리스.로마 신화는 한권도 보지 않았다. 참 웃기는 심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만나게 된 이윤기님의 산문집, <내려올 때 보았네>.  어라. 이 사람이 수필도 썼네? 호기심이 들었다. 원래 소설보다는 수필을 더 좋아하는지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통째로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설사 어느 정도 각색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진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난 좋았다. 그래서 [이윤기]라는 이름에 대한 거부감이 한쪽에는 아직까지 자리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고은 선생님의 시에서 제목을 빌려왔다는 [내려올때 보았네]는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는 앞부분이 생략되어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환경에 따라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한다. 내가 구두를 사려고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두만 쳐다보게 되고 내가 임신을 하면 거리에 임신한 사람만 눈에 뜨인다. 그렇듯 우리네 인생에서 특정 환경이나 사건에 부딪히기 전까지는 보지 못한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윤기님은 그런 이야기들을 뱉어내고 있다. 갑자기 깨닫게 된 사실, 즉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언제 보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작가가 직접 말하는 언어와 글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글에 대해 신뢰를 갖게 만들었다. 소통을 원하는가? 과시를 원하는가? 작가의 글과 말은 과시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어려운 말을 씀으로써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그게 바로 과시하기 위한 말이요 글이라는 것을.

 

이 산문집에는 이윤기님의 신념이 담긴 글도 있지만 그 분의 인간적인 모습에 독자들이 웃을 수 있는 빌미도 제공해 주고 있어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잔디깍이 기계가 실린 트럭을 몰고 가다 잔디깎이 기계를 고속도로에 떨어뜨리고 뺑소니를 고민했던 이야기, 술과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 개고기를 몰래 먹기도 했다는 이야기 등,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소재들에 나는 다시 한번 감격했다.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왜 [이윤기]라는 이름 석자가 그렇게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는지를. 이제 그의 그리스/로마 신화 이야기를 읽어볼까 한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내려올 때 볼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l********d 2007.12.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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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내용보기
사람들은 왜 어려운 말을 즐겨 쓰는가?자기네들끼리만 아는 말을 씀으로써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들을난처하게 하는가?말이 곧 권력이기 때문이 아닐는지.글 부리고 말 부릴 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묻는다.소통을 원하는가, 과시를 원하는가?참으로 통렬하게 꼬집는 말이다.어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어려운 말들을 잔뜩 늘여놔서...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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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어려운 말을 즐겨 쓰는가?
자기네들끼리만 아는 말을 씀으로써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난처하게 하는가?
말이 곧 권력이기 때문이 아닐는지.
글 부리고 말 부릴 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묻는다.
소통을 원하는가, 과시를 원하는가?

참으로 통렬하게 꼬집는 말이다.
어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어려운 말들을 잔뜩 늘여놔서...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윤기 선생님은 알기 쉽게 속시원하게  풀어놓는다.
또한 선생은 세월로부터 검증 받지 않은 책은 잘 읽지 않는다고 하셨다.
죽고 나서 10년 뒤에 작품이 남지 않는다면 그것이 작가의 진정한
죽음이라고 꼬집으신다.
작가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정말 무서울 것 같다.
그래서 더 좋은 글을 쓰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잠시 해본다.

학교와는 잘 맞지 않았던 선생~
'나는 나에게 금과옥조 같은 동서양의 고전만을 좋아했는데
학교에서는 쓰레기 같은 것만 배우기를 강요했다.
나는 영화를 좋아했는데 학교는 영화관 출입하는 나를
쓰레기 취급했다.
나는 음악감상실 드나들면서 고전음악 듣기를 좋아했는데
학교는 쓸데없는 음악 이론만 나에게 가르치려 들었다.'--------p33.

이 책에서 나온 처음들어본 증후군이 있다..다름아닌 눈가리개 증후군!

[눈가리개 증후군]:사시장철 눈가리개를 쓰고 있던 늙은 말이 어느날
눈가리개에서 풀려났다. 오른쪽에는 풀밭, 왼쪽에 있는 시내가 한눈에
들어와서 좋았다. 늙은 말은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하지만 오른쪽 풀밭으로 가자니 왼쪽 시내가 눈에 밟히고 물 먼저
마시자니 풀밭이 너무 아쉬웠다. 풀 뜯고 물 마실 것인가,
목 먼저 축이고 풀을 뜯을 것인가?
늙은 말은 고민고민하다가 굶어 죽었다.....이것이 눈가리개 증후군이다.....

우리들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있는 증후군이다.

w******0 2011.03.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