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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직 2권까지 다 읽지 못한 책이고, 워낙에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인지라 서평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서평을 시작하는 것은 책 읽기가 오래되면 될수록 처음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을 정리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책을 시작한 그 때와 지금의 감정은 또 다르고, 생각도 많이 지워져버렸다.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사실 감이 오지 않는다. 한편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철학서에 가까웠던 책의 내용이 나를 어렵게도 만들었지만 알 수 없는 해방감이나 묘한 울림같은 것이 있어 나를 2권으로, 서평으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러하다. 30년 동안 고전문헌학을 가르쳐온 김나지움의 교사 그레고리우스. 그는 그레고리우스라는 이름 대신 '문두스'라고 불리우는 박물관의 조형과도 같았던 사람이다. 그만큼 늘 제자리에 있었으며 사전에 나오는 어떤 정의와도 같았던 사람이다. 늘 변함없는, 늘 한결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출근하려던 길에서 우연히 다리에서 무언가를 내던지며 더불어 투신하려는 몸짓을 하는 것을 발견하곤 쓰고 있던 우산을 팽개치고 그녀를 구해낸다. 빗 속에서 그녀는 그레고리우스의 이마에 전화번호를 적고 독특한 억양으로 그에게 미안하단 말을 전한다. 그녀와 함께 한 잠깐의 시간, 그리고 그녀에게서 나왔던 '포르투게스'라는 말의 억양 때문에 그는 흔들린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의 내부가, 그의 일상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그리곤 그렇게 교탁위에 그의 책과 가방을 놓아둔 재로 그렇게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온다.
이런 시작은 어찌보면 흔한 시작이다. 누군가 어떤 찰나에서 자신이 깨닫지 못하던 무언가를 느끼게 되고, 그렇게 자신이 정한 삶의 길에서 벗어나는 일. 우리가 일탈이라고 부를만한 일을 감행하는 것. 어찌보면 누구나 꿈꾸지만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 일탈. 이런 일탈을 주제로 삼은 소설은 어쩌면 흔한지도 모른다. 그 일탈의 계기가 되는 사건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나 찰나일 뿐이고 그런 계기로 인해 일탈하는 것은 한마디로 미친짓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이런 흔한 시작이 어떻게 누군가의 심금을 울리는 명작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읽어봐야만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제자였던, 고전문헌학과 책읽기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열정을 사랑한(어찌보면 이것은 실제로 진짜 그레고리우스를 사랑했다기보다는 그 남자가 발산하는 열정을 사랑한 것으로 보인다) 젊은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만의 방 안에 갇힌 것처럼 살고 있는 그레고리우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길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선택한 그 외로움이나 고독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무릎이 나와버린 바지를 매일 입는 초로의 남자. 하지만 학문에 대한 그의 열정과 그의 해박함이 그를 학교에서만큼은 빛나게,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도록 만들었지만 실제로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깊게 사유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역에서 마주친 여인의 입에서 나온 '포르투게스'라는 단어가 주는 낯선 울림에 이끌려 서점으로 간 그레고리우스가 우연히 얻게 된 포르투갈 의사 '아마데오 드 프라두'가 쓴 책을 읽으며 그는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 프라두의 길을 좇아가게 된다. 그렇게 그의 삶을 뒤쫓으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심리학에서 '나'를 이야기할 때 내가 아는 나, 나만 아는 나, 나와 남이 모두 아는 나, 남만 아는 나 이렇게 네 가지의 '나'가 있다고 말한다. 과연 진짜 나는 누구인가? 그레고리우스가 그렇듯 '그냥 나가버리'듯 학교를 떠나온 이후 그를 그리워하는 학생들과 그런 일탈을 부러워하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교장이 그레고리우스에게 남긴 편지를 보고 그는 생각한다.
여기서 얻는 결론이 뭘까? 그와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적용할 수 있는 이 사람들의 반응은? 속으로 그의 행동에 동의하거나 한걸음 더 나아가 그를 부러워할까? 그레고리우스는 몸을 일으키고 앉아 은빛으로 동이 터오는 올리브 숲을 내다보았다. 그가 지난 세월 내내 동료들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 익숙함은 착각에 가득한 습관이요, 틈이 생긴 무지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한, 정말 중요한 일인가? 이 문제에 대답할 수 없는 이유가 잠을 못 자서 머리가 복잡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늘 존재했지만, 사회적인 의식 뒤에 숨어 있어 깨닫지 못했던 낯설음을 지금 막 깨닫고 있는 중인가? -p.83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스치며 지나가는 밤의 만남처럼 언제나 서로에게서 벗어나고, 추측과 생각의 단상과 날조된 특성들만 우리에게 남겨두는 건 아닌지. 만나는 게 사실은 사람들이 아니라, 상상이 던지는 그림자들은 아닌지. -p.27
내가 다른 누군가를 안다고 하는 것, 혹은 다른 누군가가 나를 안다고 하는 것. 그것이 그저 착각일 뿐이고, 상상이 던지는 그림자가 아닌가 하는 것. 내 안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진실한 나는 정작 나조차도 모르는 '나'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누군가를 안다고 하는 것, 혹은 다른 누군가가 나를 안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공연히 숙연해진다.
일탈이 일탈로써 끝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며칠 시간을 내어 여행을 다녀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벌이는 '일탈'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이 벗어났던 길과 전혀 다른 길로 가 무엇인가 다시 시작하게 되든, 혹은 원래의 그 자리로 되돌아오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탈을 감행하기 전의 자신과 그 후의 자신이 온전히 다른 사람일 때 의미가 있다. 프라두가 쓴 글을 따라 그의 여동생, 그의 선생님, 그의 친구를 만나러 다니며 그가 쓴 글을 읽고 해석하던 그레고리우스가 불현듯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광장에 선다. 그리곤 그렇게 생각한다. 더 이상 이 광장과 통하지 못했다고. 전혀 다른 그레고리우스로 돌아온 것이다.
"두 번째로 오는 느낌은 처음 것과 같이 않다. 그것은 반복을 의식함으로써 퇴색한다."
사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머릿속에 새기는 기억의 파편들은 참으로 많다.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어떤 장소에 갔을 때 지난 어떤 날을 떠올리게 되는 것. 단순히 과거로 치부할 수 없을만큼 생생하게 내 가슴 속에서 살아있는 듯한 울림을 갖게 되는 것. 이렇게 생생한 느낌을 '과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려운 과제를 앞두고 두근거리는 내 가슴은, 수학을 담당했던 랑송이스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올 때 뛰던 그 가슴이다. 온갖 권위에 직면했을 때 답답해지는 가슴속에서는, 허리를 굽힌 아버지의 호령이 함께 울려 퍼진다. 모르는 여자의 반짝이는 눈빛과 마주칠 때마다, 그 옛날 학교 유리창에서 마리아 주앙의 시선과 내 시선이 마주쳤다고 느꼈을 때처럼 숨이 멎는다. 난 늘 그곳에, 먼 시간의 저편에 있다. 결코 그곳을 떠난 적이 없다. 과거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거나, 그곳에서 출발하며 산다. 이 과거는 단순하고 짧은 일화 형태로 반짝이는 기억이 아니라 현재다. 시간이 몰고 온 수천 가지 변화는, 시간을 초월하는 현재의 이 감각과 비교하면 꿈처럼 덧없고 비현실적이며 환영처럼 기만이 심하다.-p.28
우리는 시간상으로만 광범위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공간적으로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훨씬 넘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어떤 장소를 떠나면서 우리의 일부분을 남긴다. 떠나더라도 우리는 그곳에 남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그곳으로 돌아와야만 다시 찾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단조로운 바퀴 소리가 우리가 지나온 생의 특정한-그 여정이 아무리 짧더라도-장소로 우리를 데리고 가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까이 가고 우리 자신을 향한 여행을 떠난다. 우리가 낯선 정거장의 플랫폼에 두 번째로 발을 디디면, 그래서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다른 곳과 확연히 구별되는 냄새를 맡으면 우리는 외형상으로마나 먼 곳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 먼 곳에도 이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에게서 아주 외딴 구석, 우리가 다른 곳에 있을 때면 무척 어두워 보이지 않았던 곳에......-p.29
과거에서부터 출발하는 현재! 이래서 남자들은 첫 사랑을 못 잊는 걸까? 이런 유치한 말이 결론은 물론 아니다. 우리의 기억이 그저 과거로만 치부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도 가만히 헤아려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가슴을 벅차게 했던 어떤 기억이 가장 처음의 그것과 비견될 때, 우리는 우리의 처음 기억을 떠올려 그것으로부터 두 번째 기억을 만드는 출발점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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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교차하며 진행되는 밋밋한 그레고리우스의 현재와 ‘차가운 열정’의 소유자 프라두의 과거를 따라가면서, 바쁜 일상을 핑계로 미뤄두었던 온갖 상념과 의문들이 살아나 지나온 날들을 가슴 시리게 돌아보았다. 전진만이 미덕인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 소설은 인생 전반에 걸친 사유를 요구하고 특히 과거의 의미를 오랫동안 생각하게 한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더니 친구가 툭 던진 말, “혹시 삼각관계 연애소설이야?” 프라두는 ‘같잖은 천박함으로 현재라고 부르는 현상에 속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내가 내 안의 나를 얼마나 살고 있는지, 내가 탄 기차가 언제 어디서 멈출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향해 동시에 열려 있다. 마지막 날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즐거운 상상이다. 그때도 여전히 ‘그때 그럴 걸’ 또는 ‘다시 간다 해도 아마 같은 결정을 할 거야’라며 후회와 변명과 자기 위로 사이를 오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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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꽤 오랫동안 읽었다. 내용이 어렵다거나 재미가 없어서는 아니다. 뭐랄까? 그레고리우스와 비슷해진다고 할까? 책 속에서 보면 그레고리우스가 자는 장면이 항상 나온다. 프라두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올 때마다 그래서 그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가면서 잠을 잔다. 그리고 항상 꿈을 꾼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랬던 거 같다. 계속 잠이 오는 거다. 졸려서 오는 잠이 아니라 일종의 의례같은. 그리고 그레고리우스처럼 계속 꿈을 꿨다. 이야기는 매우 천천히 읽힌다. 그래야만 할 것 같고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책도둑』을 읽을 때도 그랬는데 뭐랄까? 보라색이 아주 약간 가미된 회색빛이다. 전체적으로. 그래서 나른한 게 아니라 사뭇 진지해진다. 완전한 몰입의 상태라고 할까? 계속 집중하게 된다. 그렇다고 온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서 기진맥진해지는 그런 것도 아니고.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데 『책도둑』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대충 내가 설명하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책소개에 기본 줄거리나 등장인물들이 나오니깐 굳이 그걸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개인적으로는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도 차라리 이런 구성 형식을 취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만약 내가 소설을 쓴다면 내 첫소설은 이런 형식을 취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아마도 내 소설의 첫 문장은 에릭 홉스봄을 인용하며 시작할 것이다.
사실 이건 예전부터 남편이랑 장난처럼 많이 이야기했던 건데(차 탈 일이 워낙 많으니깐 둘이 같이 차 타고 갈 때마다 그때그때 머릿속에 구상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어떻게... 재밌을 것 같지 않아? 그럼 남편이 이런 저런 평을 해준다. 재밌을 것 같다. 그건 좀 별로, 이런 식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언젠가는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고 싶다'가 아니라 '써야 겠다'. 이런 구성 방식으로.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떤 꿈을 꿨나는 비밀이다. 과연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내가 언젠가 소설이라는 걸 쓰게 된다면 그때 저자 후기에 이 책에 대한 언급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면서 꿨던 꿈들에 관한 이야기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 김연수가 추천한 책이라고 해서 읽게 됐는데, 2권도 기대가 된다. 최근에 읽었던 책들 중 가장 진지하게 읽은 책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다 자주 리스본에 대해 검색도 했다. 어느날 훌쩍 그곳에 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책을 꼭 가지고 가서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다. 아주 천천히.
이게 리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받은 인상은 꼭 남기고 싶었다. 특히 에릭 홉스봄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이런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덧붙임] 1. 여러 가지들이 매우 인상 깊지만 그레고리우스가 리스본에서 새롭게 안경을 맞춰 쓴다는 장치는 퍽 맘에 든다. 매우 상징적이고 효과적으로 그레고리우스의 이후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해준다. 이런 건 정말... 오랫동안 안경을 써본 사람은 쉽게 공감할 수 있는데...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작은 변화로 그 이후 전개되는 모든 이야기들에 사실성과 개연성을 부여하는 걸 보고 감탄했다. 대단한 작가다. 매우 철학적인 주제를 일상의 언어와 경험으로 풀어내는 솜씨도 놀랍고. 부럽다. 이 작가. 2. 아마데우(프라두)의 책에 그의 사진을 삽입한 것도 탁월하다. 아마 사진이 들어 있지 않은 책이었다고 해도 이야기 전개엔 문제가 없었겠지만 사진이 들어 있고 없고의 차이는 꽤 크다. 그를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를 더 잘 환기하게 만들고, 그레고리우스와 그를 매개한다. 또한 그레고리우스가 자기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 내지는 우물의 역할을 한다. 그 책엔 반드시 아마데우의 사진이 있어야 하는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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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에게 생일선물로 이 책을 받았다. 출퇴근 시간이 남보다 2배나 되는 내게 이따금 좋은 책을 선물하는 속 깊은 친구다. 그 친구 왈, "이거 읽고 직장 그만두고 떠나도 난 책임없다!"... 그날 퇴근길, 나는 고속철에 앉아 어둠이 내려앉은 차창밖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책 속으로 들어갔다. 천안까지 가는 길이 그날따라 너무 짧았다. 결국 이틀 밤을 꼬박 밝혔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들만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건가?" 작가가 던지는 말이다. 이 책에는 외워두고 싶을 만큼 좋은 글귀가 많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박물관의 조형물" 같은 그레고리우스가 아니지만(변덕과 방랑벽이 있어서), 사유의 세계를 구축하고 사는 프라두 같은 인물은 더더욱 아니다(언제부턴가 직관을 따르게 되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와 만나는 그 풍부하고 아름다운 사유의 공간이 샘 날만큼 넘보고 싶어졌다. 불현듯 오래전 손길을 거둔 철학책들에 눈이 간 것도 그 때문일 터.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나 사이의 간극.나는 이제껏 "내가 아는 나"가 진실에 가깝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요즘엔 "남이 아는 나"가 더 진실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내가 아는 쪽의 자아는 만들어 놓은 이미지, 혹은 그렇게 되고 싶은 이미지의 총체가 아니었을까... 눈물짓게 하고, 가슴 저미게 했던 보기 드문 소설이다. 아침마다 그리고 깊은 가을 저녁 기차역에서 나를 갈등하게 만든 그레고리우스와 프라두... 이번 주말엔 기필코 어딘가 다녀와야겠다. '리스본'은 아니더라도, 혹 누가 알겠는가, '아직' 끝나지 않은 내 여정의 객실에서 '각본에 없던 나'를 만나거나 누군가 따뜻한 영혼을 마주하게 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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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일상에서의 탈출.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을까. 직장에 속해 있고, 가정에 속해 있고, 가장 커다란 존재 아이들이 있기에 생각만 열심히 하지 막상 떠나려고 하면 아이들이 눈에 밟혀 아마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직장에 과감하게 사표를 쓰고 멀리 여행가는 걸 자주 상상하고 꿈을 꾼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보면 무지 부러워 하고는 한다. 하지만 생각뿐,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여동생 책장에서 가져온 <리스본행 야간열차>. 어디선가 들어본 듯 익숙하게 다가왔다. 30년 동안 고전문헌학을 가르쳐온 교사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는 키르헨펠트 다리에서 자살을 하려는 포르투칼 여자를 만나 수업을 끝마치지 아니하고 교탁에 책과 가방을 올려놓고 그대로 길을 나선다. 헌책방에 들러 그 이름없는 여자의 '포르투케스'라는 그 말의 울림에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포르투칼어로 쓰여진 글을 발견하고, 그책에 깊이 빠져 그 책 쓴 저자를 따라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게 된다. 아마데우의 행적을 좇아가며 아마데우를 알았던 사람들을 만나며 점점 그의 삶에 깊이 빠져든다. 거의 자신과 동일시하며 깊은 심연의 바다로 빠진다. 어느 작은 사건 하나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알 수가 없다. 삶을 바꿀만한 한줄의 글. 그 글을 쓴 작가를 찾아 일탈을 하게 되는 그레고리우스처럼 우리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탈에 대한 꿈들. 그 꿈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상에 젖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일들과 낯선 도시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곳에서 느끼는 두려움들 까지도 우리에겐 새로운 경험이 될텐데, 그런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나는 안타깝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보상하려 책을 읽는가. 책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 그 사람들의 인생을 사는 것일까. '사람들의 만남이란 한밤중에 아무런 생각 없이 달려가는 두 기차가 서로 스쳐 지나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는 말을 아마데우의 책으로 표현한 작가는 열차를 우리의 인생과 동일하게 보는 것 같다. 정거장과 떠나 보내는 사람들,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이 만나는 곳. 기차와 우리의 삶. 어떤 사람들 만날 지 알수 없는 기차처럼 우리의 삶도 정해져 있지 않은 삶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 그의 다른 책 <레아>를 같이 가져왔는데 그책은 어떤 느낌의 책일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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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아의 균열. 문두스는 미쳤다. 대학교수라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직업, 신분, 경제적 이득을 버리고 리스본으로 떠나버렸다. 플로렌스와의 이혼으로 생긴 자아의 균열은 삶을 포기하려던 포르투갈 여성이 문두스의 이마에 한 낙서 하나에 와르르 무너저버렸다. 그는 이미 너무 깊은 곳까지 무너져버렸고, 그대로는 더이상 교탁 앞에 설 수가 없었다. 2. 판타지. 문두스의 삶을 보면 굉장히 단조로운 내면의 소유자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로망이라고 표현하면 좀 더 와닿을까?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무수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다만, 현실의 책임감, 생계 혹은 인간관계 때문에 실현 불가능한 몽상이라 치부하며 외면할 뿐이다. 그 판타지가 현실이 되는 순간은 결국 현실의 내 삶이 모두 붕괴되어버리거나 스스로 더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뿐이다. 과연 그때도 판타지가 판타지로서 아름다울 수 있을까? 3. 삶의 태도. 프라두는 신의 권능과 숭고함, 삶의 투쟁을 모두 갖겠다 하였다. 하지만 현실의 판단의 순간 그의 시야는 너무나 좁았고, 한 순간의 선택은 그를 정신적 붕괴의 상태에 이르게 만들었다. 과거에 그가 품은 아름답고 예리한 기상은 모두 잊은 채 자신의 삶을 회의하기에 이르렀다. 의사가 아닌 다른 길을 택한 프라두 자신을 열망했을 만큼. 나는 삶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망함으로써의 삶을 살고 싶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다. 내 삶을 전쟁으로, 내 주위의 사람들을 적 혹은 경쟁자로 만들고 싶지 않다. 서로 아끼고 나누며 각자가 품은 삶의 이상을 향해 달리고, 서로 북돋아주고 응원할 수 있는 서로가 되고 싶다. 삶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사람들을 통해서 받는 건 결국 상처뿐일 수 있다. 선한 의지의 힘을 믿는 우리의 자아는 나약하기만 하다. 비탄에 빠진 우리의 울부짖음을 비웃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자신의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태도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받기 위해 타인을 공격하고 파괴하며 그것을 통해 기쁨을 얻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당신은 신의 뜻과 손길을 느낄 수 있겠는가? 4. 기도 문두스에게 그간의 인고의 삶을 지탱해준 건 무엇이었을까? 근 2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자신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을 거의다 욀 수 있는 걸 보면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는 사실이 그의 삶에 위안을 주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기에 불만이 없었던 것일까? 나에겐 종교가 없다. 그래서 기도를 하는 것이 영 어색하다. 하지만 나는 기도하고 싶다. 나는 너무나 나약하다. 삶의 숱한 그 고통들 앞에서 너무나 쉽게 비탄에 빠지고 번민하고, 스스로의 동굴로 도망친다. 더이상 숨고 싶지 않다. 살얼음 판을 걷는 내 삶은 자꾸만 그 끔찍하게 어둡고 끈적거리는 살얼음판 밑으로 자맥질한다. 나는 의지하고 싶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5. 죽음. 느슨하여 감겨있는지 몰랐던 시간이라는 끈이 어느 순간 절대 느슨해지지 않으리라는 자각과 함께 목이 조일듯한 압박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놀랄 수도 있고, 우울과 분노에 사로잡힐 수도, 불안과 공포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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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으로 분리되어있는 책들을 2권까지 읽고 함께 서평을 남기는것이 좋을것같은데...이놈의 기억력이 2권을 끝낼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뿐더러, 1권만으로도 이야기가 방대하고 (무엇보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 1,2권으로 집약시키는 힘이 내겐 부족한 것같기도하다. 게다가 1권만으로도 충분히 서평쓸것이 넘쳐난다) 완권을 읽고 올리는 것을 제대로된 서평이라고 생각했는데,..내가 해보니 이것이 쉽지도 않을뿐더러, 왜 출판사가 1,2권을 구지 분리해서 내었는지도 알것같다. 물론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르지만, 단순히 책 1권을 더 팔기 위함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연극이나 공연에서 쉬어가는 타임'을 두는것같은 의미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마도 이건 나 스스로에게 내린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고를때 서평이나 책 소개를 보지 않고 작가와 제목만으로 혹은 목차만을 보고 고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이 그 경우였다. 제목이 주는 묘한 여운과 열차안에서 무슨 사건이나 사람을 만나는걸까? 생각하며 골랐던거 같다. 처음 몇 페이지는 집중을 못했고, 중반부부터 그러니깐 리스본으로 떠나는 그레고리우스의 여정을 따라가며 리스본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되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에 점점 흥미를 느꼈다 . 무엇보다 그레고리우스가 리스본으로 떠나는 계기가 되었던 책 속의 글들이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문장들이 꽤나 근사하다. 심각하거나 아름답거나 혹은 치밀한 글들의 면면은 한 사람의 의식의 구석구석을 비추면서 점점 추리극으로 치닫게하는 가이드가 되어준다. 게다가 내가 소설책에서 꽤나 좋아하는 분위기인 탐구하고 몰두하는 모습이 이 그레고리우스의 모습과 사람들의 인상에서 풍긴다. 침착하게 집중되어있는 흐름도 맘에 들고. 점점 드러나는 책의 저자인 의사이며 저항운동가인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행적을 쫓는 그레고리우스의 호흡은 점점 가빠진다. 천재이며 반듯하고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아마데우의 모습은 그의 책에서도 여실히 보여지며, 그 글을 출판했던 여동생 아드리아나의 육성으로 점점 더 실체를 더해간다.
발단은 다리 위에서 자살을 하려던 포르투갈 여자와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만남의 여운을 간직하고 있던 그레고리우스가 전혀 알지도 못했던 포르투갈어로 쓰인 책을 1권 사게되고, 결국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왔던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듯 홀연히 포르투갈, 리스본행 열차를 타게된다. 책의 저자를 찾아서, 그 주변의 사람들을 만나고 , 알게모르게 지금까지의 자신과는 다르게 변모하게된다. 운명이라는것이 정말 있는건가? 리스본에서 연이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가 여기에 지금 꼭 왔어야했고, 이 사람들을 만날것이 미리 예정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고립되어 반복되는 고착된 생활을 그동안 했었다면, 리스본으로 간 후로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 혹은 아마데우의 의식의 흐름을 쫓으며 무언가를 깨달아가고 있는 그레고리우스를 만나게 된다. 어제와 같은 하루를 40여년 동안 살다가, 돌연 일탈을 택한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묘령의 여자에 대한 호기심? 포르투갈어로 쓰인 놀라운 글을 통해 그 저자를 알고자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글쎄, 무엇이 지금까지와 다른 행동을 하게되었는지, 누구든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으로의 호기심은 있을것이다. 잠재되어 있어 돌출되지 않을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향도 많고-
출발-만남'으로 이어지는 그레고리우스의 행적에서 그 동안 행동하지 않고 담아두기만 했던,머물러있던' 곳으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하는 모습이 어쩌면 화산밑에 들끓던 용암이 불출되듯 즉각적으로 나타났던게 아닌가싶다. 아마데우와 그레고리우스의 의식의 흐름이 만나는 부분이 재밌다. 어떤말이나 글때문에 인생을 유턴하는 분위기! 가던 길 한복판에서 끼이익' 브레이크를 걸며 다른 길로 접어드는 스파이크나는 순간이랄까!
갑자기 온몸에서 기운이 빠졌다 정신 나간 생각이었다.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이름 없는 포르투갈 여자, 빛바랜 포르투갈 귀족의 사진, 초보자를 위한 어학 교재,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생각... 이런 것들 때문에 한겨울에 리스본으로 도망치는 사람은 없다 -그레고리우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학교로 다시 가고,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향한 그리움을 채우려는 갈망으로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이것보다 더 정신 나간 일이 또 있을까.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갈망에 따라 움직이는 것.... . - 아마데우 드 프라두
1권을 읽고나면 2권에 대한 기대와 함께 앞으로의 내용을 나름대로 상상하게 된다. 이 책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있을것같은 예감이 든다. 한 인간의 견고한 지적 성찰도 흥미롭고, 그레고리우스의 삶의 여정도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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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권으로 되어 있길래 분량이 많아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정말 두편의 소설이 있었다. 하나는 그레고리우스가 자기를 찾는 여행, 또 하나는 그의 여행을 인도하는 프라두의 삶. 하나의 이야기는 삼인칭이지만 일인칭으로 읽었고,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도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관음증으로 들여다보았다. 오랜만에 책값을 하는 소설이었다. 한 권으로 두 편의 소설을 담은 '경제성'도 매력적이지만 나중에 꼭 다시 한번 읽어야 하겠기에... 우연한 계기로 한 작가의 삶을 추적하게 된 그레고리우스와 우연한 계기로 사회운동에 뛰어든 프라두, 어찌 보면 둘다 첫단추를 잘못 꿴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두사람은 자기 삶의 방향을 찾게 되니 크게 보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더욱이 그레고리우스는 그 우연이 아니었다면 집안의 내력인 정신병적인 경직성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했을 테고, 프라두 역시 우연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넘치는 정열을 쏟아부을 통로가 없었을 테니 그 우연적 필연은 두사람에게 큰 혜택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누구에겐들 없을까? 프라두의 삶을 추적하고 나서 자기 삶의 좌표와 방향을 찾게 된 그레고리우스에게서 그런 아쉬움을 현재의 삶 속에 녹여버리는 방법을 배운다. 소설의 형식을 빌려 학문이나 지식을 가르치는 걸 지식소설이라고 말한다면 이 소설은 지식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지식이란 가르치거나 전달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 책은 훌륭한 지식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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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 책을 구입하면서 몹시 설렜고, 읽고 나서도 가슴속에 뭔가 뜨끈한 게 남은 것 같다. 마치 소설과 철학책을 동시에 읽고 난 느낌이다. 요즘 주로 읽었던 일본 소설처럼 페이지가 가볍게 넘어가지 않아서 읽는 데 만만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철학책처럼 딱딱하거나 졸리지 않다. 오랜만에 소설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면서 음미했던 것 같다. 밑줄 치고 싶은 구절들은 얼마나 많았는지...
소설 속에서 결국 작가가 관찰하고 사색하는 문제도 이 점이었다. 일생 동안 자기가 살던 도시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도, 질곡의 인생을 살아야 했던 책 속의 책 저자인 프라두도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묵직한 주제를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의 숨겨진 진짜 인생을 추적해 나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구조에 녹여 놓는 글솜씨는 가슴을 멎게 한다. 뿐만 군데군데 인생에 대한 성찰을 되새기는 구절들 때문에 언젠가 또 다시 읽어야 할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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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담처럼 여자친구한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너와 내가 만나면 실은 여섯 명의 우리가 만나는 거야. 실제의 나, 실제의 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나, 네가 생각하고 있는 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너, 네가 생각하고 있는 너.” 한데 이 책의 저자 메르시어 아저씨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담 이 아저씨도 나처럼 참을 수 없는 소심함을 지니고 있나 보다.ㅎ) ‘타인이 바라보는 나와 내가 바라보는 나, 과연 무엇이 진실에 가까울까?’, ‘우리가 우리 안의 것들 가운데 작은 부분만 경험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물음은 나뿐 아니라 누구나 해봄직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취업하고 싶지만, 취업이 됐을 때-직업세계로 국한하자면- 한 분야로 결정될 인생이 과연 만족할 만할까 싶다. (써놓고 보니 그럴듯한 백수의 변이다.ㅎ)
피부에 와닿는 주제 때문인지, 읽기 시작하기 전에는 쉽게 읽히지 않은 소설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훌훌 재미있게 읽었다. 쿤데라 느낌도 나고, 카프카 느낌도 난다. 겉으로 평범해 보이지만 간단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소심한 그레고리우스란 인물이 더욱 애틋한 정이 간다. 부디 집으로 돌아온 그가 안정을 찾기를. 내 농담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던 여자친구부터 당장 읽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