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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 책 제목의 의미는 2권에서 드러난다. 고전문헌학 선생이었던 그레고리우스를 평범하고 고정되어있던 삶에서 튕겨져 나가게 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귀족적이고 외견적인 풍모에 자타공인 천재적인 능력과 완벽함을 추구하는듯 보이는 아마데우의 글' 때문만이었을까? 어쩌면 돌고도는 인생의 터널에서 두 사람이 만났던 건 아니었을까'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처럼 말이다.
_ 움직이는 기차에서처럼, 내 안에 사는 나. 내가 원해서 탄 기차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아직 목적지조차 모른다.......중략 > 기차가 멎지 않기를 바랐다. 영원히 멈추어 버리지 말기를, 절대 그런 일이 없기를. 여행은 길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다. 아주 드물게 존재하는, 소중한 날들이다. 다른 날에는 기차가 영원히 멈추어 설 마지막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_
프라두의 족적을 따라가는 그레고리우스의 시선과 프라두의 글들은 묘한 부딪힘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탈을 했던 그레고리우스도 자신을 압박하며 살아왔던 프라두도 역시나 인생의 테두리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거다. 어떻게 삶을 살아가더라도 결국 그 안에서 되풀이되는 어쩌면 같은 범주를 돌고 도는게 아닐까,...
프라두의 관계도 속에서 가장 프라두를 폭넓게 인식하고 있던 마리아 주앙'은 프라두와는 다른 신분이면서 프라두와 끝까지 깊은 유대감과 인연을 이어온 사람이다. 하지만 프라두에게는 절친이라는 표현이상의 사람이었겠지만, 마리아 주앙에게는 프라두는 다른 의미의 남자였던거같다. 서로에게 다른 환상을 가졌던, 하지만 프라두가 가지고자 했던 이상적인 관계를 넘어서지 못해서 괴로웠던 마리아 주앙....어쩌면 사람의 관계라는것이 상대적인거같다. 나는 그 사람에게 이 정도의 감정이고 더 이상의 감정을 원하기도하는데, 상대는 그 이상의 감정과 진전을 원하지 않고 딱 이만큼만! 을 원한다면, 아마도 그 친근함을 잃치않기 위해 상대의 뜻에 따른다고 해도 나에게는 또 다른 딜레마와 고통으로 남을 관계인지도 모른다.
프라두가 종종 언급하고 있는 척추경직증을 앓는 판사인 아버지와 부드럽지만 근엄한 모습으로 프라두를 내적으로 조종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한 인간이 짊어지는 삶의 무게는 가장 가까운 부모에게서 시작되는게 아닐까 싶다.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부담감, 또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낸 틀, 무엇보다 사회가 나에게 부과하는 형식,... 이런 많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가운데 우리는 살아가는것 같다. 물론 그것을 힘겹다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심한 압박으로 여기며 자신을 몰아세우기도 하니깐 말이다.프라두가 느끼는 사유가 꽤나 억압적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하나뿐인 친구이자 삶의 의지처였던 조르지와 같은 여자를 사랑하며 깨져버리는듯하다. 자신다운 것이 어떤것이고 ,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어떤것인지, 무엇을 자신이 누르며 살아왔는지,하긴 그동안의 삶이 모두 허구였다기 보다는 뭔가 대단히 억눌러왔던 무엇을 분출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레고리우스가 안정된 곳에서 도망쳤듯이 말이다.
프라두의 한 권의 책에 끌려 누군가의 삶을 재조명하며 자신을 되돌아보았듯이, 이 책의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프라두의 글, 프라두가 곧 글'이라는 말처럼 자신을 글로 표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게 아닌지...,그렇게 자신의 내적인 자아를 분출하고 싶었던것이 아닐까' 프라두의 주변인물들을 만나게 되며, 그레고리우스는 만남과 관계를 다시 정립해 나가고, 그 사람들에게조차 프라두를 매개로 위로를 주는 존재가 된다.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한 사람을 떠올리며 그와 더불어 각자의 삶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그레고리우스:
등장인물들의 의식의 흐름과 프라두의 내밀한 기록같은 글, 한번은 아니 몇 번은 더 읽어봐야하지 않을까 싶은 책이다. 생각보다 꽤나 괜챦았던 ' 집중해서 다시 한번 읽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