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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현재에도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다. 근대 이후에는 과학의 힘을 빌어서 어느정도 대처를 한다고 하지만 매번 인간의 대처능력을 벗어나거나 인간의 방심으로 자연재해는 늘 이어진다. 과거에 인간은 자연재해에 더 취약했다. 그 때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늘에 비는 것이었다 하늘에 비는 의식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교해지고 그 시대의 문화를 담게 되었다. 그 양식을 기후의례라고 부른다.
의식과 형식적인 면에서 타종교나 학문에 뒤지기를 싫어하는 성리학도 기후의례에서 빠질 수는 없다. 조선시대에 "기우제 등록"이라는 책으로 기후의례에 대한 기록을 남겨 놓았다. 보면 볼수록 기록에 대해서 조선은 대단한 국가였다. 기후의례에는 여름에 더운 날씨를 바라는 기서제, 겨울에 추운 날씨를 바라는 기한제, 가뭄에 비를 달라는 기우제, 비가 오지 말라는 기청제, 눈을 내려달라는 기설제가 있다. 이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낯익은 것은 기우제일것이다. 왕은 늘 천변재이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지목되었다. 심지어 부여시대에는 자연재해가 심해지면 왕을 교체하거나 죽이기까지 했다. 조선시대 성리학적 세상에서도 기후변화에 대해서 왕은 여전히 책임을 벗어나지 못해다. 자연재해가 일어날 때 마다 왕은 자신의 덕이 부족함을 탓하고 반찬 가지수를 줄이는 등 모범을 보여야 했다.
지고지순한 존재지만 모든것이 왕의 덕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세상에서 왕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근대 이전 자연앞에서 나약하기만 한 우리 조상의 모습속에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본다.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하늘에 비는 수 밖에 없을때가 많다. *1 장마가 이렇게 심해지면 기청제라도 올려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