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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자 제미란은 어느날 보따리를 쌌는가보다. 그리고 길을 나서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그림과 작가를 만나고, 눈물 콧물 훌쩍거리며 밤새 수다를 떨고 회포를 풀었단다. 그 여정이 가진 의미를 좀 번듯하게 정리하자면 필자에게 그림을 보러 떠나는 일은 ‘순례’의 여정이자 여행자를 위한 "치유"의 과정이었고, 그리고 그 여정을 이 책에 담았단다. 그런데 그림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사실 평범할 수 있다. “길에서 쓴 그림일기”인가하는 책도 그렇고 뭐 ‘길’과 ‘화가’, 혹은 ‘길’과 ‘문학’을 짝 짓는 일은 ‘결혼중매업’만치 ‘통속적’이다. 자칫 제목만으로는 통속이라는 늪에 빠질듯 위태롭던 이 책이, 독자인 나에게 이필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여성미술 순례’라는 소제목이다. 좀 어거지로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림과 작가가 다름 아닌 “여성”이란 사실은 이 시대, 우리에게 뭔가 특별한 데가 있다. ‘계급’이라는 화두가 잠복하면서 ‘여성’과 ‘환경‘이 시대정신을 담는 화두로 급속히 대체되던 시대를 청년으로 살았고, 그 열정으로 나머지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세대가 바로 필자 그리고 독자인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뭇 싱겁게 끝나 버릴 수 있었던 ‘이산가족 상봉’이, 필자와 필자가 만난 작가와의 사이에 ‘여성’이라는 공통성에 기반 한 정서적 공감대 혹은 세계관이 있어 이토록 애절하고 신파적인 감동을 줄 수 있게 한 것이 아닐까 감히 짐작해 본다. 하지만 도대체 그 “여성”의 삶이라는 공통성이 뭐길래, 도대체 그 “여성성”이 갖는 세계관의 차이가 뭐길래 사상적 동지를 만난듯 필자와 작가는 그토록 애절할 수 있었을까? 참 많은 여성 작가의 구구절절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필자가 명시적으로 “여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보질 못했다. 오히려 필자는 작가와 그림을 마주한 개인적 소회와 ‘사적인 대화’를 통해 그 ‘여성성’을 구현해 내고 있는 듯했고, 그것을 읽어 내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은 듯했다. 그래서 더 ‘여성’적 글쓰기에 성공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2. 또 하나, 독자는 호기심 하나로 필자의 생채기를 들여다 본다. 방관자의 특권일 것이다. 나는 필자의 ‘언어장애’를 시대적 상황과 개인의 충돌에서 빗어진 ‘개인’의 좌절로 읽었다. 필자는 한 특수한 시기의 삶이 가졌던 규정성에 의해 침묵이 강요되었던 자신의 정신적 고통 혹은 상처를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치유과정의 설득력이, 치유를 필요로 했던 상처의 ‘우연성’에 의해 손상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왜일까? 동일한 시대 동일한 상황에서 비슷한 ‘증상’으로 고통 받닸던 기억이 있는 독자로서 필자에게 말을 걸고 싶다. 그토록 절실했던가? 스스로의 삶의 진정성에 그만치 충실했던가? 시대를 탓할 만치 우리는 당당한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뭐 시간이 흐른다고 알아질 문제도 아닐 것이다. 길에서 만나 작가들의 크기에 비해 필자의 고뇌는 너무 작은 것이 아닐까? 아니 그러한 나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닐까? 세상에 위대한 삶은 따로 있을지언정, 크기가 작은 삶, 가치가 작은 삶이 따로 있진 않을 것인데, 개인에게 사적인 고뇌는 세상의 전부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렇듯 이 책은 나같은 나태한 독자에게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귀찮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게으른 독자를 책 속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은 엉뚱하다. 책속에서 미술, 특히나 여성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독자인 내가 잘 잡히지 않는 갈피를 찾아 헤메다 문득 자신의 지난 시절 기억과 내면의 알리바이를 추적하고 있는 스스로를 섬짖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한번 더 읽어 봐야겠다.“
3. 필자가 길에서 만난 니키 드 생팔, 키키 스미스, 루이 브루주아 등과 그들의 대표작들은 겨우 한두번 인쇄매체나 전자매체에서 마주한 것이 고작인 무식한 독자인 내가 필자 나름의 작가론이나 작품론이라 할 수 있는 해석과 의미부여에 대해 구구절절 토를 달거나 평가할 자질도 이유도 없다. 그냥 새 세상을 알아가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낯선 대양을 항해하는 초보 항해사의 어설픈 설레임과 괜한 호기 아마 그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졌던 지적, 정서적 반응의 전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미술’ 바깥 세상을 살아가는 나는 팔자에 없던 낸시 스페로와 낸 골딩과의 교분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을 친절한 필자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책을 통해 적어도 나의 무미건조한 삶에 삶이란 얼마나 구구절절한지, 그리고 치열하고 진실해야 하는 건지, 그리고 남성과 다른 여성의 삶은 떠 얼마나 다르게 절실한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는데 이는 다름아니라 미술 역시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자기 표현의 한 양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끝났지만, 아마 필자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독자인 나는 책을 덮었지만, 그 여정의 동반자로서 여전히 길 중에 서 있다. 그리고 긴 여정을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계속할 할 것 같다. 그리고 필자와 필자가 만나 작가와 긴 인생의 도반이고 싶다.
나는 이책이 많이 팔리면 좋겠다. 필자 제미란의 글맛을 두루 나누어서 좋고, 여성과 여성 작가에 대한 세상의 이해가 넓어져서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미란은, 모든 독자가 만나서 와인 한잔 사 달라고 졸라 긴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싶은 그런 필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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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에 읽었던 책 <미친년>을 통해 유숙렬 이프 출판위원장을 만났고, 그녀를 통해 페미니즘 잡지 '이프'를 알게 됐다. 그리고 얼마후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척박한 이땅에서 지난 10여년의 세월을 꿋꿋하게 버텨왔던 이프의 폐간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떤 잡지인지 한 번도 보질 못했지만 이땅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고 그녀들의 목소리를 담아왔던 잡지였다는 점에서 그 소식은 무척 안타까웠다. 그렇게 잡지 이프는 마침표를 찍었지만 그녀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책을 통해서. <길위의 미술관>은 잡지 이프의 아트디렉터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제미란이 이프에 페미니즘 여성 예술가들에 대해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라고 한다. 키키 스미스, 제니 홀처, 니키 드 생팔, 프리다 칼로 등 내로라하는 13명의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이책은 '제미란의 여성 미술 순례'라는 부제처럼 그녀들의 작품들을 찾아 이리저리 길을 나선 저자의 미술기행이기도 하다. 책의 포문을 연 건 키키 스미스의 조각들이었다. 금기시되어 왔던 여성의 몸을 통해 관객에게 이양기를 건네는 그녀의 조각들은 미처 마음의 준비도 못한 내게 약간의 충격을 전해줬다. 리지아 클락의 퍼포먼스들은 글을 읽고 읽어도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고, 제니 홀처의 전광판 미술은(이런 장르가 있는지 이책에서 처음 알았다;) 텍스트를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의 매력을 맛보게 해주었다. 너무나 유명하다는 프리다 칼로, 진한 제비눈썹이 그려진 그녀의 작품들도 강렬했지만 그녀의 삶에 전체적으로 얽혀있는 연인 디에고와의 질기디 질긴 인연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가장 재미있었던 꼭지는 프랑스 조각가 니키 드 생팔을 다룬 부분이었다. 밝고 경쾌한 색채와 둥글둥글 푸근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나나' 연작들은 참 사랑스러워 보고만 있어도 함께 밝아지고 기운이 차오른다. 소개된 그녀의 작품 중 '그녀(Hon)'는 잊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는데, 우리 모두는 결국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도발적으로 느껴지던 처음의 불편함은 사라지고 작가의 의도를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있다는 니키의 '타로 공원' 여행기였다. 험난한 여정을 거쳤지만 그곳에 가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했던 저자의 마음을 책 속의 사진과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니키의 타로 공원에 꼭 가보고 싶어졌다.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답게 작가의 글 사이로 그녀들의 작품 사진들이 실려있다. 직접 보진 못하지만 책 속 사진으로나마 그것들을 접하고 함께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신나는 일이다. 다만 글에서 언급한 작품들 중 한두 작품의 사진만 실려있기에 나머지는 상상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의 사진을 큼직하게 싣는 것도 좋지만 전시된 작품들을 직접 보지 못하고 책을 통해서 접하는 독자의 입장에선 다소 크기가 작더라도 다양한 작품 사진들을 실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속에서 저자는 작품에 대한 감동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독자인 나는 그 작품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말 부지런한 독자라면 인터넷이라도 뒤져서 찾아보겠지만. 또한 현대 미술과 페미니즘 미술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한 나는 처음에 책을 읽어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저자가 들려주는 작가도 작품도 설명도 생소하고 어렵게만 느껴졌고, 쉽지 않은 문장과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소위 전문용어들 때문에 같은 문장을 몇 번씩 읽기도 했다. 또는 작품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그것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해 헤매기도 했다. 그러다 니키 드 생팔의 부분에 이르자 저자의 딱딱하던 글들이 조금씩 편안하게 다가왔고, 글의 내용 또한 프랑스로 엄마 찾아 날아온 아이들이 출연 덕에 그전보다 생활의 감정이 묻어나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래서 니키를 다룬 글 이후론 재미있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등장하는 난해한 용어들은 마지막까지 나를 어렵게 했다. 조금만 더 쉬운 용어를 사용해 쉽게 써주었더라면 나같은 초보자들도 훨씬 더 즐거운 책읽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미란의 <길위의 미술관>은 자주 접하지 못했던 페미니즘 미술 세계를 알려주는 창구같은 역할을 하는 안내서다. 프랑스, 독일, 미국, 남미 등 다양한 출신지역의 그녀들은 회화, 조각, 사진, 설치미술, 전광판 미술,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다. 거쳐온 삶의 길 또한 각양각색이다. 이렇게 다양한 색깔의 그녀들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찾는다면 그건 바로 고난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길을 굳건히 걸어왔다는 점일 것이다. 어렸을 때의 겪었던 고통의 기억들과 사랑과 배신으로 생긴 상처 등을 예술로 승화해내며 지금의 자리에 이른 그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설명하는 글이 아닌, 하나의 작품 앞에서 그걸 만들어낸 작가와 하나가 되어 온몸과 온마음으로 들려주는 글이기에 이책은 감동과 여운이 더욱 진하게 가슴에 남는다. 그런 이유로 제미란의 글은 조금 어렵지만 많이 새롭다. 요즘 많이 만날 수 있는 미술관련 입문서처럼 쉽게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물론 수준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낯설고도 따뜻한 세계를 만나고 삶을 대하는 시선이 보다 넓고 깊어진다는 점에서 이책 <길위의 미술관>은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닐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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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록하는 주체가 남성이기에 여성의 역사는 가십으로 전락했다. 우리의 역사도 그렇지만 타국의 역사에서도 여성의 이름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의 발언은 이성적,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것으로, 여성의 소재는 소소하고도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여성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최근 들어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 성공적인 인생 가도를 달리고 있는 몇몇 알파걸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지구상에 어느 한 성(姓)만이 존재했던 적은 없었기에... 아이엄마로서 자유롭고자 하는 욕망을 갖는 것 자체가 죄악시되는 건 여전하다.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죄책감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순 없겠으나 사회가 만들어낸 굴레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했기에, 저자는 프랑스 파리의 잿빛하늘에 자신을 내맡길 수 있었고 이토록 많은 여성 예술가들과 조우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단순히 생물학적 성이 여자라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여성일지라도 여성의 시선을 갖지 못한 자가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그녀들이 내뱉은 소리는 여성의 입장에 섰을 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남성보다 열등하다 여겨졌던 여성의 신체에 대한 예찬으로부터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인 에로티시즘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몸뚱아리, 아름답길 강요하는 사회 덕에 깡마른 몸매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이 노래한 것은 여성의 몸이 지닌 재생산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일방적으로 아름답지는 않았다.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일종의 편견이요, 강요일지도 모른다. 이는 최근 들어 이슈화되고 있는 저조한 출산율과 관련된 문제제기들에 귀를 기울여보면 분명해진다. 근본적인 환경의 조성에는 그토록 소홀하면서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을 이기적이라 매도하고, 출산이나 아동양육을 여성이 지닌 본능이라 말하는 사회의 목소리는 분명 여성의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여성의 몸이 각종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이는 성폭력이라는 직접적인 형태일 수도 있고, 본인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나 폭력임이 분명한 여성 적대적 문화의 형태일 수도 있다. 그녀들의 작품에 담긴 것은 다름 아닌 자신과 지인들의 삶 그 자체였다. 어린 시절부터 감내해야만 했던 폭력과 소외는 나이가 든다 하여 쉽사리 잊혀지는 바가 아니었기에... 그녀들의 작품 세계는 좀처럼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치유’라는 단어와 만나기 위한 길과 통해 있었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더욱 당당해질 수 있는... 문득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녀들의 이름과 작품 세계를 저자는 어찌 알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여성으로서 깨어있기 위해서는 아마도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가 보다. 강물에 휩쓸리듯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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