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 지브란 지음
이 작품은 마치 성경책의 한 구절씩을 옮겨 놓은 듯 하였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선지자의 삶이나, 선지자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써 놓은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나서 나는 내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을 알았다. 글을 읽는 동안 나는 이 책이 마치 성경이나 코란 같이 아주 오래 전 사람이 써서 후세 사람들에게 남긴 글 인줄 알았다. 그런데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이 작가가 현대의 뉴욕에 살았었다는 말을 듣고 심히 놀랐다. 말을 듣다 보면 현대를 살아간 사람이 아닌 진실 된 선교자의 모습으로 일반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글을 읽으면서 에필로그가 도움이 된 부분도 있었지만, 이 책에 대한 내 나름대로 정리하는데 있어서는 사고 제한의 범위가 되었다. 선지자가 배를 타고 떠난다는 부분이나, 이 글을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추측하는 면에서도 제한의 폭이 되었다. 또한 전반적인 정리가 이루어져서 내가 다른 방법으로 정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 글은 각 파트별로 사랑, 결혼, 일, 결혼, 슬픔, 법, 선, 악, 미, 종교, 죽음 등 27가지 소주제를 가지고, 올펄레즈 시 시민들의 질문을 받은 선지자의 대답 형식으로 잉루어졌다. 글의 내용들이 마치 성서나 시 같아서 이해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아니 이해하지도 못하고 대충 표면적으로만 한번 훑어보았을 뿐이다.
모든 내용들은 작가 혼자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박면에 있어서 예리한 통찰력과 예지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떤 내용의 글을 보더라도 치우침이 없이 모든 내용이 큰 한가지 주제로만 집중되고 있는 듯 하였다. 그것은 바로 인간과 신에 대한 사람이었다. 모든 초점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어떤 물건이나, 어떤 상황이라도 그것을 인간 자신들이 판단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인간이라도 다른 물질(신이 만들어 낸 모든 것)에 대해 욕심을 가지지 말 것이며, 판단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잇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신의 이름으로만 판가름할 수 있으며 이것은 곧 소외 받는 자들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은 기쁨과 슬픔이라는 부분이었다. 기쁨과 슬픔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사에서 나는 지나간 나의 20년을 뒤돌아 보았다. 실제로 나에게 있어서 그렇게 큰 슬픔이라는 것은 몇 번밖에 없었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 비해 편하고, 쉽게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이 편안함과 안락함이 다른 사람에게는 불행으로 다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섬뜻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 혼자만의 기쁨을 즐거워하고, 좋아하면서 슬픔에 가려졌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던가? 아니었다,. 나는 주위사람들에 대한 배려 없이 오직 혼자만의 축제를 벌여 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기쁨과 슬픔만이 동행하는 것은 아니다. 선과 악, 미와 추, 삶과 죽음 등 인간의 상식으로는 정반대의 개념들이라고 정의되는 것들이 실제로는 다 동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의 사고는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작가도 말했듯이 우리가 가장 좋은 상황에서 나쁜 상황들만 고려한다면 인생이라는 것은 너무 무미건조해지고, 이것은 작가가 가장 우려하던 인간에 대한 사람이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예언자라는 제목은 왜 붙었을까? 예언자가 시민들에게 칭송 받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살펴보고, 그들의 앞길을 지시해주는 통찰력과 지도력 때문일 것이다. 난 이 책의 제목을 선생님으로 바꿔도 되지 않을까 한다.( 실제로 성경에 나오는 예수는 랍비 이스라엘어로 즉 선생임이라는 뜻이었고, 석가모니도 선생이라 불리었다. ) 이런 호칭들이 단순하게 붙여진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들이 아이들에게 있어서 바로 예언자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아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미진한 부분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또한 우리들도 그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예언자 같이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눈높이 교육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이 전에 선생님으로써 그리고 예언자로서의 모습을 충분히 갖춘 뒤 눈높이 교육이 이루어져야지 무분별하게 일어나면 안 된다. 항상 교사로서 아이들을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있느냐를 준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통찰력과 예지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상태가 이루어지지 않는 수업에서는 교사 자체도 방향을 잡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홰 하필 이렇게 어려운 책을 골라 썼느냐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어렵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으로 필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언자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상황이나, 사물이 나의 인식대로만 편협하게 끼워맞춰 생각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